|
4일차입니다.
오늘은 아말피 트래킹을 마치고, 북쪽으로 이동하며 로마에 들려 명소들을 둘러보는 관광을 합니다.
오늘은 버스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 이른 일정이 시작됩니다
아직 동이 트기 전, 베란다에 나와 봅니다.
벌써 부지런하신 두 분은 아침 산책을 나가 계시네요~
호텔에서 왼쪽 방향으로 산책을 하셨는데 정말 멋지다고 엄청 자랑(^^) 하셨대요~~^^
제가 좋아했던 분위기의 왼쪽 방향 모퉁이 지역.
아침 준비 완료~
이 베란다에서 먹던 분위기 있는 아침이 그리울거 같습니다~~
대략 저희 밥상은 이렇습니다...ㅎ
컵라면은 예비로 남편이 준비했는데 아무래도 그냥 들고 갈듯하여 아침마다 하나씩 일부러 소진하고 있을 정도로
현지 음식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쥬디님도 일부러 소진??...^^
남자의 품격?....
어디서 많이 보던 카피네요~^^
ㅎ~ 분위기 죽이는데요.
베란다도, 빨간 가방도~~~ㅎㅎ
정들었던 모퉁이~
호텔이 있던 낯익은 작은 광장도 안녕~~
오늘 아침 구름 예쁘네요~
다시 버스를 타고 구불거리는 아말피 해안을 빠져 나갑니다.
해안도로.
빡빡머리 안드레아 드라이버.
아침 교통 체증이 꽤 심합니다.
오, 이 구불길의 메슥함~^^;;
오토바이의 신기명기 운전이 불쑥불쑥 비집고 들어오는데 대단합니다.
주유 중~~
모델 없으니 심심~~
급 섭외 모델 김과장님~~^^
자청 모델 하얀구름꽃님~~ㅎ
오늘은 레몬밭을 보게 되네요.
이탈리아의 레몬 생산량은 대단하대요.
산지 알뜰 이용.
오픈 관람버스가 들어왔네요. 기회를 놓칠 수 없지요~~^^
오, 안드레아가 쥬디님 어깨동무까지~~
여성분 다 나오세요~~^^
이제 그만 차 타세요~~~
네, 청산님 ^^
해안을 벗어나 내륙으로 달리며, 여행 기간 유일하게 보았던 포도가 남아있던 농장 ~~
여기를 돌아서니.
오늘은 날이 맑아 나폴리 베수비오화산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잠시 내려 조망합니다.
파노라마도 하나.
저긴 어딘가가 폼페이라고 하네요.
코너링하며 찰칵~
나폴리를 경유해 로마로 가는 중~
첫날 저녁 받은 과일을 간식으로~
드라이버 휴식시간~~
이제는 자연스러운 커피 타임~~
오~~~ ^^
로마 도착.
점심 시간~
먼저 파스타~
어휴~ 양 많아요~~
간밤에 숙면하시고 원기 회복하셨네요~~~^^
주 메뉴는 양고기 구이~~
로마 명소 관광
아말피에서 토스카나로 향하는 길에 로마에 들려 장거리 여행의 지루함에 변화를 주고자
오늘은 포로 로마노, 콜로세움, 스페인 계단, 트래비 분수를 관광합니다.
먼저 가로변의 인상 깊었던 지중해 해송의 도열.
이 해송은 위로 동그랗게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더군요. 로마제국 시절에도 한 여름 뜨거운 도로를
행군하는 군사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 해송을 심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그늘 아래 군인이 있네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콜로세움이 나란하게 있습니다.
관광객 엄청납니다. 가방주의보 발령~~
먼저 단체사진 하나 남기고, 개선문과 콜로세움 외부 돌아보기.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콜로세움과 나란히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먼저 돌아봅니다.
이 개선문은 콘스탄티누스가 정적이던 막센티우스와 전쟁을 하여 이기고 그 승전의 기념으로 세워졌습니다.
후에 파리에 세워진 개선문의 모델이 되었다합니다.
원래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방치되었던 것을 1804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개선문에 붙어 있는 부조물들은 로마 유적지 중에서 제대로 보존된 것들을 끼워 붙인 것이라네요.
화가들의 그림 주제가 되기도 하나 봅니다.
로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콜로세움. 고대 로마의 유적 중에서도 그 규모가 가장 크다해요.
이탈리아어로는 콜로세오(Colosseo)라고 하고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입니다.
콜로세움이란 이름의 유래에는 ‘거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콜로사레(Colossale)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경기장 옆에
네로황제가 세운 높이 30미터의 거대한 금도금상 콜로소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는데 전자가 유력합니다.
네로는 모의해전을 즐기기 위해 인공호수를 만들었는데, 네로가 죽임을 당한 뒤 그의 아들 티투수가
네로의 황금궁전 옆에 있던 인공호수 자리에 이 콜로세움 건설을 명했습니다.
로마 시민들의 관심과 불만을 이 곳으로 돌려 정치로부터 관심을 멀리 하기 위해 이 원형경기장을
건설하고, 피비린내 나는 검투사 시합, 맹수사냥 시합, 물을 채우고 벌이는 모의 해전 등을 벌이며
시민들의 환심을 얻으려 했답니다. 후에는 그리스도 교인들이 순교 당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콜로세움은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굳건히 서 있는 것 같지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원래 모습의 3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뼈대만 남은 폐허의 모습은 묘한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특히 보름달이 떠 있는 밤이면 더욱더 그렇다합니다.
콜로세움은 요새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지진으로 많이 파괴되기도 하고, 나중에는 성당이나 귀족들이
저택 건축용 석재로 갖다 쓰는 바람에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포로로마노 관람 차례입니다.
이탈리아 하면 연상되는 파란 하늘과 바다, 돌로 만든 유적지들, 그리고 올리브나무...
티투스의 개선문을 통해 포로로마노로 입장합니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인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로마인들이 모여 생활하고 살던 중심지로
고대 로마 시대의 민주 정치와 상업, 법률의 중심지로 예전 우리나라의 종로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도시광장을 뜻하는 포로(foro)에서 영어의 forum이 나왔다고 하지요.
포로 로마노 약도입니다.
오른쪽 중간에 포로 로마노 입구를 통해 들어가 시계 반대쪽 방향으로 관람했습니다.
▶티투스의 개선문입니다.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개선문으로, 티투스 황제가 예루살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81년에 세운 것입니다. 아치 안쪽에는 예루살렘 신전에서 로마군이 약탈품을 운반하는 장면을
묘사해 놓은 부조를 볼 수 있습니다.
입장하며 정면 전경.
포로 로마노는 여러 황제를 거쳐 오면서 발전했습니다. 5세기경 로마가 분열되면서 이곳 대부분의
건물들이 훼손되었지만, 여러 시대를 거쳐 온 다양한 시대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이 포럼은 쇠퇴하다 매몰되었는데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소중한 고대 로마문명 발상지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발굴이 시작되었다합니다. 지금까지도 발굴 작업과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고,
예전의 번성했던 로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약도의 오른쪽부터 한바퀴 둘러 보겠습니다.
▶사진 오른쪽 막센티우스 바실리카(Basilica di Massenzio)
콘스탄티누스 바실리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306년에 지어진 것으로, 3개의 거대한 아치형 천장만이 남아 있지만,
당시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이 건물은 141년 안토니누스 황제가 아내 파우스티나를 위해 세운 사원입니다.
이후 사람들이 로렌초 성인이 이곳에서 처형당했다고 생각하여 11세기 초 산 로렌초 인 미란다 성당으로 바꾸게 됩니다.
▶에밀리아의 바실리카(Basilica Aemilia)
기원전 179년에 건축한 이 건물은 사법, 금융, 상업 등이 이루어지던 공공 건물로,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였습니다.
뒤에 왼쪽으로 보이는 종탑 건물이 로마 시청입니다.
오른쪽 둥근 돔 탑이 솟은 곳이 산타루카에 마르티노 사원이구요
청동상이 있는 하얀 대리석 건물이 19세기 중반 이탈리아를 통일한 에마누엘레 2세를 기리는 기념관입니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조형물을 확대해 봅니다.
포로 로마노 중심길을 더 걸어들어가면 오른쪽에 흰색 지붕이 덮힌 자그마한 돌집 하나가 서 있습니다.
위대한 군인이자 정치가, 웅변가이자 문인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곧 줄리어스 시저가 화장된
곳으로, 카이사르 신전이라고 부릅니다.
시저가 기원전 58년부터 갈리아와 게르만, 영국 원정을 다니며 세력을 키우자
기원전 49년 정적에게 장악된 원로원은 시저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오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시저는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너 돌아오면서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하지요.
현대 영어에까지 숙어 내지 관용구로 통용되는 말입니다.^^
▶쿠리아(Curia. 원로원)
사각 건물이 서양 사극에서 숱하게 봤던 고대 로마 원로원입니다.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가
씨족의 장로들로 처음 구성했던 기구라니까 로마 역사와 같은 역사를 지녔습니다.
처음엔 귀족만 참여하다 평민으로 확대됐고 공화제 시절에는 정치의 최고 기관이었습니다.
시저가 아끼던 공화정 옹호파 브루터스의 칼에 쓰러지면서 "브루터스, 너 마저"라고 외쳤던 곳이지요
원로원들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지붕을 높이 올린 것이 특징입니다.
포로 로마노엔 온전한 건물보다 잔해가 더 많습니다.
포로 로마노에 나뒹구는 돌덩어리 하나에도 2000년 역사가 숨쉬고 있습니다.
로마제국 멸망 이후 야만족의 침입과 약탈로 손상됐고, 그나마 14세기 말 대지진으로 대부분 건물이
무너진 뒤엔 권력자와 시민들이 이곳에서 대리석 잔해들을 가져다가 집 짓는 데 써버리면서 더욱 황폐해집니다.
▶베스타 신전(Tempio di Vesta)
불의 여신 베스타를 위한 신전입니다.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며 20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어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전이었다고 합니다. 이 신전에서 6명의 처녀 사제인 베스탈
들이 성화가 꺼지지 않도록 지켰다고 하는데, 엄격한 자격을 통해 선발하여 30년 동안 불을 지키는
일만 담당한 후 세속할 때 재산이 주어지기 때문에 귀족 자제들이 선발되는 비리도 있었다는군요.
가운데 기둥 ▶포카스의 기둥(Col. Phocas)
13.5m 높이의 이 기둥 역시 포로 로마노에서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몇 안 되는 유물 중 하나입니다.
▶로마 문명의 발상지 팔라티노 언덕 입니다
오른쪽 언덕엔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궁을 비롯한 황제의 궁전과 귀족의 저택들이 모여 있던 주거지가 남아 있습니다.
버려진 쌍둥이 아기 로물루스 형제가 서쪽 테베레강을 떠내려가다 독수리가 팔라티노 언덕으로
건져냈고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가 원수를 갚은 뒤 이 언덕에 도시를 세웠다는
건국설화가 깃든 곳이지요.
기원전 8~6세기의 집터와 우물이 발견돼 설화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답니다.
기원전 484년, 두 형제 수호신을 기려 아름다운 코린트 양식으로 지은 신전이 기둥 세 개로만 남았습니다.
이 곳에 있던 대리석들은 귀족들이 저택 건축 자재로 갖다가 사용해 지금은 거의 사라진 상태입니다.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콜로세움
콜로세움 내부 관람을 시작합니다.
콜로세움의 바깥벽 높이는 거의 50미터이고, 콜로세움의 기초의 두께는 하중이 큰 바깥벽 쪽은 12~13미터,
하중이 작은 안쪽 관객석은 4미터가 되는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가라앉거나 금 간 곳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답니다.
하중에 강한 아취 공법으로 세워졌습니다.
콜로세움은 모두 4층으로 축조되었는데 이오니아식, 도리아식, 코린트식의 기둥들로 되어 있습니다.
기둥의 구멍들은 돌을 연결하기 위해 박았던 청동못을 모두 빼간 흔적이랍니다.
시멘트가 발라진 곳이 관중석이 있던 곳입니다.
콜로세움은 5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입석까지 포함하면 7만 명이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이 곳이 황제 자리가 있던 가장 좋은 위치였다는군요.
콜로세움에서 마지막으로 벌어졌던 행사는 서기 523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콜로세움은 거의 450년 동안 사용되었던 셈입니다.
굳건하게 서 있던 콜로세움은 중세 때 여러 차례의 지진으로 서서히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햇빛이 강할 때 돛과 같은 천막을 쳤다고 하는데, 이는 아주 고도의 기술이였다고 합니다.
콜로세움에서 로마 시민들은 맹수 사냥이나 검투사 시합을 즐겼습니다. 경기장 바닥에는 모래를 깔았는데,
‘모래’를 뜻하는 아레나(arena)는 ‘원형경기장’이란 뜻으로 굳어져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열리던 여러 행사 가운데 최고의 인기 종목은 단연 검투사 시합이었습니다.
콜로세움은 입석까지 포함하면 7만 명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 관중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15분이 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1층의 80개의 아치 중에서 4개의 주입구를 제외한 76개는
출입구477 I(1)부터 LXXVI(76)까지 새겨져 있고 입장권에는 출입구477 쓰여 있어서 출입통제가 수월했습니다.
콜로세움 관람을 마치고 트래비 분수로 이동합니다.
여전히 해송은 저의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이 곳이 영화 벤허에 나오는 전차경기장이였다고 합니다.
옷차림이 특이하죠?,..
오밸리스크.
포로로마노에서 보았던 흰색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거리 끝에 보입니다.
트래비 분수
음~ 일단 사람 많습니다...
후기 바로크 양식의 걸작으로 불리는 트레비 분수는 로마 여행의 하이라이트래요.
로마에는 크고 작은 분수대가 많은데, 르네상스 시대에 교황들이 고대 로마 제국의 상수도 시설을
보수하고 추가로 건설하여 물 공급이 원활해지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많은 분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옆 건물의 이 조각도 멋져서 먼저 한 컷.
사람이 너무 많아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분수대의 중앙에는 바다의 신 넵튠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주변으로 반인반어의 해신 트리톤이 있어,
한 트리톤은 해마를 길들이고, 다른 한 트리톤은 동물을 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성난 바다와 잔잔한 바다를 의미한대요. 대리석으로 만들었지만, 바로크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이 살아 있어 로마의 분수 중 가장 아름다운 분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쪽은 명품 거리이고,
이쪽은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방향입니다.
헵번처럼 아이스크림 먹기~~~ㅎ
구름꽃님은 햅번 스타일?..^^
그레고리팩은 어디에....?...ㅎ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합니다.
스페인 광장/계단
스페인 대사관이 있던 곳.
와우~ 인파가 대단합니다.
스페인 광장은 17세기 교황청 스페인 대사가 이곳에 본부를 두면서 스페인 광장으로 불리게 된 이 광장은
영화〈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광장의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으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유적의 보존을 위해 주요 관광지에서의 음식물 섭취를 금지하고 있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습니다.
스페인 대사관 방향.
아~ 사람이 너무 많아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17세기 베르니니의 아버지인 피에트로가 스페인 계단과 함께 설계한 바르카치아 분수(난파선의 분수)
스페인 계단입니다.
17세기 베르니니의 아버지인 피에트로가 만든 스페인 계단은 137개의 계단, 3개의 테라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계단에 앉아서 내려다보면 앞쪽으로 뻗어 있는 콘도티 거리입니다. 로마 쇼핑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콘도티 거리에는 다양한 명품 브랜드점들이 모여 있어 스페인 광장과 함께
언제나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합니다.
어느 분이 사진의 주인공??.....
그래도 윗쪽 계단은 좀 한적하군요.
계단 위에는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Trinita dei Monti)이 있습니다.
석양이 지기 시작합니다.
오늘 일정을 여기서 마치고,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관람 포인트 없이 거리를 걷는 느낌도 좋네요...^^
버스를 타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 중.
창밖으로 현재 로마를 완성한 건축가이자 조각가 베르니니가 만든 '트리톤 분수'가 지나갑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노을빛이 물들기 시작하는 로마 시내 거리 멋집니다...
잠시 스쳐간 순간이였지만 멋졌습니다....
통일??
와, 진짜 눈동자 같이 생생한 그라피티입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여행 중 유일한 한식당에서 삼겹살구이입니다.
맛나게 먹고...
유럽에서 삼겹살 파티 특이했습니다.^^
오늘 숙소는 로마에 Hotel Barcelo Aran Mantegna입니다.
바쁜 일정 끝~ 굿 나잇~~^^
첫댓글 외관만 보고와서 많이 아쉬웠던 콜로세움을 이렇게 사진으로 보네요.
포로 로마노의 건물에 대한 설명과 약도
혼잡한 콜로세움에서의 멋진 시야의 구도
정말 최고입니다👍
명품 후기의 진수👍👍
사진정리 및 설명까지 하느라👍👍👍
수고하신 토로님께 감사의 박수를 드립니다
' 짝짝짝 ' 들리시죠? ㅋ
잘봤습니다..^^
이 많은 사진과 해설!!
잠 못 주무시고
정리하셨을터~~
책으로 발간해도
손색없는
여행 가이드북 이네요.
트레비 분수에서
명품거리 가는 길에서
에스프레소 마시던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셔서 감사^^~
로마시내로
들어오면서
트레킹 의상 확 벗어버리고
환한 복장하신 발도행 회원
멋져부러~~ㅎ
로마로 들어오니 사람홍수에 정신이 없어 사진찍을 엄두도 안나던데 토로님은 이렇게나 상세하게 !🤩 놀라우십니다.
이제 찬찬히 사진보며 "아하~~"하고 있슴다.
Thank u~🙋♀️
좋은 사진들 즐감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