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정(翔鳳亭)은 서애(西厓) 류성룡의 종증손 회당(悔堂)
류세철(柳世哲,1627~1681)이 도학(道學)을 연찬(硏鑽)하고 강론하며
말년을 보내기 위해 1662년(현종 3년) 하회(河回)마을 서쪽
강건너 언덕 위에 세운 정자이다.
안동 풍천 상봉정(翔鳳亭)
서애 류성룡(柳成龍)은 이곳을 흡사 봉이 하늘을 나는 형국이라 하여,
상봉대(翔鳳臺)로 이름짓고 정사를 지으려 하였으나 재력이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지명을 자호(自號)로 하였던 곳이다.
담너머로 본 상봉정
상봉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가운데
마루를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의 상봉정(翔鳳亭)으로,
정자의 이름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이곳 절벽을
"상봉대(翔鳳臺)"라 부른데서 따왔다.
1696년 수해로 대지가 침하되어 숙종31년(1705년)에 중건 하였고,
회당의 증손자인 양진당(養眞堂) 류영(柳泳)에 의해 중수하였다.
상봉정(翔鳳亭)은 "봉황새가 날아 오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상봉정 측면
회당(悔堂) 류세철(柳世哲)은 하회마을 건너편인 이 정자에
내왕하기 위해 정자 밑 강가에다 작은 배 한 척을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강건너 하회마을
멀리 왼쪽 절벽위의 부용대(芙蓉臺) 단애가 끝나는 곳에
겸암 류운룡(1539~1601)의 겸암정사(謙巖精舍)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옥연정사(玉淵精舍)가 있다.
안동 풍천 파산정(巴山亭) 전경
파산정은 조선 중기에 류중엄(1538~1571)이 건립한 정자이다.
처음에는 화천서원 맞은편 둔덕에 있던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하회마을 북편에 자리한 이 정자는 낙동강이 파(巴)자 처럼
흐르는 모습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파산정 출입문
이 정자는 자연석 기단 위에 기둥을 세워 중앙에 우물마루를 꾸미고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한 전면 3칸,측면 1칸반의 건물이다.
앞쪽에는 반칸의 퇴를 내어 마루를 만들고 계자난간을 한 아담한 정자이다.
파산정(巴山亭)
류중엄(柳仲淹,1538~1571)은 류공계의 아들로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그가 3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동문수학하던 남치리와 함께
퇴계 문도의 안자(顔子)라 불렀으며, 타양서원과 분강서원에 제향되었다.
툇마루
강건너 하회마을
출입문 안쪽에서
파산정
늦가을의 파산정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