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전세계 국가가운데 무려 70개국이상이 중요한 선거를 치르는 해입니다. 그냥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그 나라의 대표를 뽑고 그 나라를 이끌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인만큼 그 중요도가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선거는 그 나라가 앞으로 향할 방향과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지을 엄청난 계기가 되는 그러한 대규모 정치행사입니다. 정치행사라고 하지만 사실상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예술 모든 부분가 망라된 그런 거국적 이벤트인 셈입니다.
민주적인 선거의 원칙들이 보장된다는 전제속에 남녀노소와 직업을 구별하지 않고, 사회적 계층의 차이를 두지않고 그야말로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며 정당한 것이 선거라는 대전제하에 선거로 인해 당선된 인물에게 정통성과 힘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선거는 민주 정치의 핵심이자 꽃이자 대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 초부터 시작된 각국의 각종 선거와 선거 활동속에 상당히 우려스런 일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에 실시됐던 대만 총통 선거에서는 해당국가도 아닌 중국과 미국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했습니다. 특히 중국은 자국에게 우호적인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각종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군함과 폭격기까지 가동된 압박작전속에 진행된 대만 총통선거는 대만의 선거가 아닌 미중 대결의 한 과정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지난 15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된 러시아 대통령선거도 어수선하고 요란스러운 상황속에 사흘간 진행되고 있습니다. 5선에 도전하고 영구집권을 노리는 푸틴의 승리가 사실상 확정된 것을 보이는 가운데 푸틴의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운동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저항의 표시로 투표용지를 훼손하는 일이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투표소에서 잉크로 추정되는 녹색 액체를 쏟아부어 투표용지를 훼손하는 식입니다. 모스크바를 비롯해 보로네시,로스토프,볼고그라드 등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부지역에서는 투표소에 화염병을 던지거나 불을 지르는 사건도 생겼습니다. 이런 저항운동은 반정부 운동가인 나발니 사망을 추모하고 나발니의 저항정신을 지지하는 저항운동이라고 분석되고 있습니다. 나발니는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지난달 감옥에서 의문사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에서는 친러성향의 사람들이 무장 군인과 함께 투표함을 들고 찾아온 가운데 선거가 치뤄졌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푸틴은 지난 2020년 개헌을 통해 3선 연임 금지를 무력화시켜 버렸습니다. 앞으로 2030년 선거에서 다시 승리할 경우 합법적으로 2036년까지 그러니까 푸틴 나이 83살까지 집권할 수가 있게 됩니다. 사실상 종신 집권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푸틴은 미국 대통령 바이든의 나이 82살에 고무된 듯 합니다. 82살 나이에도 재선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고 푸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혼탁함의 절정은 미국이 가지고 있습니다. 럭비공임을 자임하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는 가면 갈수록 그의 입이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막말의 대마왕격입니다. 어제 공개행사에 참석해 자신이 이번 대선에서 당선되지 못하면 미국 전체가 피바다가 될 것이라는 막말을 쏟아냈습니다. 그는 또 자신이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또 다른 선거를 치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해 미국의 선거제도까지 마비시킬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또한 트럼프후보는 지난 2021년 1월 6일 미국의사당 폭동 사태와 관련해 복역중인 공화당 열성지지자들을 가리켜 바이든의 인질들 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애국자들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전세계 선거전에서 유래가 없는 막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10달이 채 남지않은 시점에서 미국의 민주 공화 양당을 모두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역대 최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갤럽이 조사한 것을 보면 자신을 무당층으로 규정한 응답자가는 전체의 43%로 나타났습니다. 아직도 미국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투표할 대상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양쪽 후보 모두에게 거부감을 가진 이른바 더블 헤이터(double hater)가 15%로 조사됐습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대선 구도에 대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재대결이라고 혹평하고 있습니다.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47%, 바이든이 43%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국민들의 호감을 얻지 못하는 두 후보가 나란히 각당의 최종 후보가 된 것은 미국의 정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런 가운데 전세계 최대 규모의 선거로 일컷는 인도의 총선 일정이 확정됐습니다. 오는 4월 19일에 시작되어서 결과는 6월 4일 발표됩니다. 세계 최대 인구수를 보유하는 인도는 예전부터 총선과 관련된 각종 에피소드가 다양하게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오지마을을 찾아 투표용지를 전달하고 그것을 회수해서 돌아오는 선관위원들의 활약상은 민주 선거사에 정평이 나있을 정도입니다. 또 다른 인구 대국인 중국은 선거가 없기에 그런 광경을 볼 수없지만 인도는 나름 민주주의의 모범국이라는 명성답게 선거를 둘러싼 각종 해프닝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번 인도의 선거는 한국의 대선과 총선을 겸한 것입니다. 인구 5천만명의 한국이 선거철만되면 난리를 치는데 인구 14억명인 인도는 우죽하겠습니까. 인도도 요즘 노골적인 힌두교 국수주의 정책과 야권 탄압으로 현 모디 총리의 3연임 가능성이 커지자 인도의 민주주의도 큰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요. 잘 되고 있다고 판단하십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요즘 전세계적인 선거 트랜드가 뭔가 요상하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민주정치의 꽃이자 핵심인 선거가 갈수록 혼탁해지고 무질서해지는 것도 세계적인 트랜드인가요. 뭔가 세상이 정상에서 비정상으로 바뀌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24년 3월 1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