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18>
첫댓글 신라 시대에 축조된 농업용 저수지로, '위양(位良)'이라는 이름은 '백성을 위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저수지 수면 위로 주변 고목과 정자가 반사되는 물빛 반영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명소이다.
원래 명칭은 양양지(陽良池)였다. 연못 안에 5개의 작은 섬이 있으며, 그중 가장 큰 섬에는 1900년에 안동 권씨 문중이 입향조 권삼변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정자인 완재정(完在亭)이 자리 잡고 있다.
매년 4월 말~5월 초가 되면 완재정 주변과 저수지 일대에 하얀 이팝나무 꽃이 만개하여 눈이 내린 듯한 풍경을 만든다.
물결이 잔잔한 아침 시간에 고목과 완재정이 저수지에 비치는 거울 같은 반영 풍경이 백미로 평가받는다.
위양지가 "신라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사실은 신라 당대의 일기나 비석 같은 출토 유물이 직접 확인된 것은 아니며, 조선 시대 문헌 기록과 지역 향토 지리지, 그리고 제방의 역사적 명칭을 근거로 추정·전승되어 온 것이다.
조선 시대 대표 지리지인『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밀주구지(密州舊誌)』등에서 이 지역을 신라 및 고려 시대의 '양양부곡(陽良部曲)'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 지명에서 유래하여 '양양지(陽良池)'라 불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지정명: 밀양 위양못) 지정 안내 및 밀양시 기록에 따르면, "위양못은 신라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에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수리시설"로 기록되어 전해진다.
신라 제22대 지증왕(502년 노동용 수리시설 권장)이나 법흥왕·진흥왕 대를 거치며 한반도 남부 지방에 대규모 수리시설(제방)이 집중 축조되던 시기(예: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등)와 궤를 같이하는 농업 치수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구 무술오작비나 영천 청제비처럼 신라시대에 저수지를 직접 만들었다는 당대의 석비(石碑)나 발굴 유물이 명확히 확인된 것은 아니나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방이 지속적으로 수리 및 축소되었고, 인근에 대형 가산저수지가 들어서면서 원형 규모(당시 제방 둘레 약 4.5리 추정)는 줄어들었으나, 신라 시대 이래 이용되어 온 고대 농업 수리 시설의 터라는 역사적 연속성을 인정받고 있다.
위양지는 약 1km 길이의 평탄한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산책을 즐기며 사계절의 아름다운 수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둘레길은 잔잔한 저수지 수면을 따라 한 바퀴를 도는 순환형 코스로, 전체 구간이 경사 없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걷기 유연하다.저수지 주변으로 수령이 오래된 왕버들과 이팝나무가 우거져 있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연못의 반영을 보며 걸을 수 있다.
완재정 건너편 저수지 제방 산책로는 위양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대표 포토존이다. 저수지 건너편에서 연못 중앙의 완재정과 주변 왕버들 고목, 수면에 그대로 비치는 완재정의 완벽한 대칭 반영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일교차가 큰 봄·가을철 이른 아침에 방문하면 잔잔한 저수지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완재정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첫댓글 신라 시대에 축조된 농업용 저수지로, '위양(位良)'이라는 이름은 '백성을 위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저수지 수면 위로 주변 고목과 정자가 반사되는 물빛 반영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명소이다.
원래 명칭은 양양지(陽良池)였다.
연못 안에 5개의 작은 섬이 있으며, 그중 가장 큰 섬에는 1900년에 안동 권씨 문중이 입향조 권삼변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정자인 완재정(完在亭)이 자리 잡고 있다.
매년 4월 말~5월 초가 되면 완재정 주변과 저수지 일대에 하얀 이팝나무 꽃이 만개하여 눈이 내린 듯한 풍경을 만든다.
물결이 잔잔한 아침 시간에 고목과 완재정이 저수지에 비치는 거울 같은 반영 풍경이 백미로 평가받는다.
위양지가 "신라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사실은 신라 당대의 일기나 비석 같은 출토 유물이 직접 확인된 것은 아니며, 조선 시대 문헌 기록과 지역 향토 지리지, 그리고 제방의 역사적 명칭을 근거로 추정·전승되어 온 것이다.
조선 시대 대표 지리지인『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밀주구지(密州舊誌)』등에서 이 지역을 신라 및 고려 시대의 '양양부곡(陽良部曲)'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 지명에서 유래하여 '양양지(陽良池)'라 불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지정명: 밀양 위양못) 지정 안내 및 밀양시 기록에 따르면, "위양못은 신라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에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수리시설"로 기록되어 전해진다.
신라 제22대 지증왕(502년 노동용 수리시설 권장)이나 법흥왕·진흥왕 대를 거치며 한반도 남부 지방에 대규모 수리시설(제방)이 집중 축조되던 시기(예: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등)와 궤를 같이하는 농업 치수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구 무술오작비나 영천 청제비처럼 신라시대에 저수지를 직접 만들었다는 당대의 석비(石碑)나 발굴 유물이 명확히 확인된 것은 아니나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방이 지속적으로 수리 및 축소되었고, 인근에 대형 가산저수지가 들어서면서 원형 규모(당시 제방 둘레 약 4.5리 추정)는 줄어들었으나, 신라 시대 이래 이용되어 온 고대 농업 수리 시설의 터라는 역사적 연속성을 인정받고 있다.
위양지는 약 1km 길이의 평탄한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산책을 즐기며 사계절의 아름다운 수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둘레길은 잔잔한 저수지 수면을 따라 한 바퀴를 도는 순환형 코스로, 전체 구간이 경사 없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걷기 유연하다.
저수지 주변으로 수령이 오래된 왕버들과 이팝나무가 우거져 있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연못의 반영을 보며 걸을 수 있다.
완재정 건너편 저수지 제방 산책로는 위양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대표 포토존이다. 저수지 건너편에서 연못 중앙의 완재정과 주변 왕버들 고목, 수면에 그대로 비치는 완재정의 완벽한 대칭 반영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일교차가 큰 봄·가을철 이른 아침에 방문하면 잔잔한 저수지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완재정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