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38G, 16완투, 1완봉, 9승 16패 4세이브, 208이닝, 2.89
1984년, 51G, 14완투, 1완봉, 27승 13패 6세이브, 284이닝, 2.40
1985년, 42G, 14완투, 4완봉, 20승 9패 8세이브, 225이닝, 1.92
1986년, 39G, 17완투, 4완봉, 19승 14패 2세이브, 267이닝, 1.55
1987년, 32G, 15완투, 4완봉, 14승 12패 2세이브, 224이닝, 2.81
1988년, 16G, 3완투, 1완봉, 7승 3패 3세이브, 83이닝, 2.05
1989년, 8G, 0완투, 0완봉, 1승 2패 0세이브, 30이닝, 2.10
1990년, 22G, 2완투, 0완봉, 6승 5패 1세이브, 92이닝, 5.28
오늘로 4주기를 맞은 고 최동원 선수의 기록입니다.
그야말로 철완, 무쇠팔을 자랑했던 당대 최고의 투수였죠.
토론토와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하고도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한국시리즈 4승의 불멸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으며,
2군 선수의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선수협 창설을 주도하다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 또한 많은 선수였습니다.
특히나 그는 프로야구 초기 주먹구구 선수관리에 대표적인
희생양이었습니다.
저 위에 입이 딱 벌어지는 그의 기록만큼이나
그는 투구수, 등판간격, 출전경기수에서 관리받지 못했으며
강렬했던 전성기에 비해 너무 일찍 은퇴를 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그의 어깨는 아마추어 시절의 살인적인 혹사로 인해
이미 망가져 있었으며
아마추어 시절 던지던만큼의 위력적인 공을
프로에서는 던지지 못했다고
훗날 고백했습니다.
그의 엄청난 출전기록은
선수 본인이 가지고 있는 승부욕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뒤늦게 밝혀진 롯데와의 이면계약을 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연봉상승폭이 제한되어 있던 시절
최동원은 오늘날의 옵션 형태로 승수와 등판간격에 대한 계약을 맺었고
놀랍게도 15승이 그 기준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14승을 하면
연봉이 깎이게 되는 것이죠.
물론 최동원이 '돈'때문에 던졌다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시절의 최동원에게도
팀사정상 어쩔 수 없다,
니가 아니면 누가 막겠느냐,
돈내고 경기장을 찾아준 팬들에게 보답을 해야한다,
이왕 이까지 온 거 조금만 더 고생하자 같은
부담이 없었을까요?
최동원은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자신의 등판을 비롯한 프로야구 초창기 투수들의 등판에 대해
분명한 혹사이며,
그 부작용이 반드시 뒤따르게 된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시절에 그만큼 던져도 끄떡 없었는데
요즘 투수들은 너무 나약하다거나
투수의 어깨는 쓰면 쓸수록 단련된다거나
잘못된 폼이 아니면 오래 던져도 상관없다와 같은 입장을
주장하는데
'최동원' 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동원의 전성기를 생생히 기억하기에 저는 너무 어렸습니다.
기껏했야 삼성시절의 몇 경기가 생각납니다.
하지만 누구가의 기억 속에, 아니 많은 야구팬들의 기억속에서
그는 여전히 금속 안경테를 다시 한번 고쳐쓰고
다이내믹한 투구폼으로
강속구를 뿌려대는 에이스겠죠.
위대한 투수 고 최동원의 4주기를 추도합니다.
첫댓글 고 최동원은 86년, 87년에 [14승을 기록하면 연봉 2%삭감/15승이면 동결/16승이면 2%인상] 조건으로 연봉 계약을 맺은 바 있습니다. 16승 이후 1승이 추가될 때마다 연봉 인상폭이 오르는 옵션 계약이었죠. 14승 아래로도 1승이 적을 때마다 단계별로 깎이는 옵션이 있었고요. 모두 최동원의 투혼만 기록할 뿐, 그 배경은 잘 기억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래 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최동원을 기리는 분이 있어 아쉬운 마음으로 써봤습니다.
그 연봉인상율이 있는 표입니다.이거대로라면 류현진선수는 4번이나 인상을 못하고 깎였네요...ㅜㅜ
군인들이 쿠데타로 권력 잡고 총칼로 국민을 억누르던 시대에 뭐든 제대로 돌아갔을까요? 모두 극단의 시대가 남긴 거겠죠. 다만 우리는 이글스에서 또 다른 극단의 야구가 재현되는 것을 경계할 뿐입니다.
생전 많은 고생과 고초 그리고 불합리 속에서도 투혼의 야구를 펼쳐오신 고 최동원 선수의 야구에 임하셨던 숭고한 자세를 통해 오늘을 바라보고 싶을 뿐입니다.
최동원선수 고교시절 경남고 야구부였는데
저희 학교가 그앞을 지나는 여중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4연승 하던 경기를 직관했고
그때는 야구에 미쳐 살았었죠.
한동안 야구에서 머얼리 떨어져 살다가 다시 돌아와서 한화팬이 되었는데 최동원선수에 대해서는 애틋한 마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