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년 7월 3일부터 금년 6월 11일까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25세 청년입니다. 1년 간 밴쿠버에서 생활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만큼 느끼고 돌아온 것도 많아 개인적으로 값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약 1달 반 간의 '밴쿠버 발 토론토 행 캐나다 자전거 횡단'은 제 1년 간의 워킹홀리데이 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교훈을 남긴 경험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밴쿠버 생활을 하면서 횡단을 마음먹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리고 2016년 6월 11일 횡단을 마무리하게 되는 그 순간까지, 그 아름다운 희미한 기억들을 악을 쓰고 되살려 여러 회차에 걸쳐 조금은 긴 글을 써내려갈까 합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밴쿠버에서 생활하시는 분들 모두, 밴쿠버라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는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들 행복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시겠지만, 대한민국으로부터 8000 km가 넘는아주 멀리 떨어진 타지 생활로 인하여 향수, 언어의 장벽, 금전 문제와 같은 많은 고민과 고충, 시련과 고난들을 가지고 살아가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러하였기에, 그 부분들을 이겨내는 데에 있어서 조금이나마 힘을 드릴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하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자전거 횡단과 관련하여 질문사항이 있으시거나, 워킹홀리데이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궁금한 사항 있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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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연락 취해주시면 빠른 답장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6 CROSSING CANADA
FROM VANCOUVER TO TORONTO
BY IAN, PARK
그 첫번째 이야기(PROLOGUE)
2015년 7월 4일 토요일, 전역 후 학업에 매진하는가 싶더니 결국 역마살이 잔뜩 낀 채로 밴쿠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영어영문학과라는 타이틀에 걸 맞는 영어실력을 기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대한민국이 벗어난 환경의 삶과 문화를 느껴보기 위해서였을까, 전자로 시작했지만 후자로 끝을 본 뒤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지금 나는 그 날의 희미한 기억들 한 장 한 장을 되살리며 조금은 긴 글을 써내려가려 한다.
약 지난 1년간의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는 인생에서의 자그마한 변화를 이끌어 줄, 내게 있어서 아주 값진 시간이 되었다. 현지인과 말 한 마디 섞기 어려울 정도의 영어실력을 가지고 친구들을 사귀며 일자리를 구해 이 곳 문화에 적응하며 새롭게 보고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많아 개인적으로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캐나다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었기 때문에 내가 캐나다에서 이루어놓은 성취들은 곧 내게로 하여금 2% 부족한 것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만 이루어낼 수 있는, 남들과는 차별화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밴쿠버 발 토론토로 이어지는 자전거 횡단 프로젝트.’
2016년 1월 31일부터 횡단 관련 일기를 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약 3개월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5월 1일, 밴쿠버를 떠나면서 시작하게 되었고, 42일차인 6월 11일에 토론토에 도착함으로써 대장정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자전거라곤 날씨 좋은 날만 골라 여의도에서 몇 번 타본 것 이외에 경험이 전무 했던 내가 약 4,700 KM 에 달하는 장거리 주행을 완주함에 이르렀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내가 살고 있는 인천에서, 다니는 학교가 위치한 수원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조차 몰랐던 무지함이 이렇게 무모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 일조했고, 그렇게 내린 무모한 결정은 나 자신을 내 인생의 시험대에 올려놓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렇게 횡단은 시작됐다. ‘돈이 얼마 안 남았는데, 무엇을 먹어야 하지?’, ‘오늘은 어디에 텐트를 치고 자야할까? 가령 친다고 해도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까?’, ‘날이 어두워져 고속도로에 멈추게 되면 어떡하지?’ 와 같은 생각들은 나 자신을 걱정과 불안 속으로 내몰고 있었으며, 낮은 경사에도 전력의 힘을 다해야 움직였던 무거운 자전거와 짐들은 깊은 고민의 과정을 거친 끝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과 함께 서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작별인사를 건네며 내게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와 ‘알버타’의 경계에 위치한 대자연 로키산맥을 넘어 ‘서스캐처원’, ‘매니토바’로 이어지는 대평원, 그리고 다시 나타나는 끝이 없는 온타리오의 언덕들을 지나오며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 고난과 시련들은 매 순간 나를 시험대에 올려놓았고, 포기라는 유혹 앞에서 나 자신을 매번 합리화를 시키게끔 유도하고 있었다. 내 옆을 지나가는 몇 대의 자동차들이 나보다 적어도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아주 가볍게 높은 언덕을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볼 때면, 그 고통은 더해져만 갔다.
그러나 주변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더 이상 그들이 부럽지 않았다.
반드시 천천히 가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내 앞으로 보란듯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횡단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응원해주신, 그리고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횡단을 통해 흑과 백(?) 의 피부조화를 이루게 된 나의 영양가 없는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통해서 한 분이라도 ‘삶의 의지와 도전정신, 그리고 희망과 용기가 생겼다.’ 라고 한다면, 이 글의 목적은 이미 달성된 바이며, 또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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