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는 집착을 일으킵니다. 그 동기가 너무나 처참한 광경이기에 집착은 더욱 무섭게 따라붙습니다. 인생을 걸기도 합니다. 동기 중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가 복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은 지우기 힘듭니다. 그런데 무참하게 살해를 당했다면 아픔은 분노로 격화됩니다. 그리고 집착으로 이어집니다.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청소년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자책감과 슬픔을 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무시무시한 집착으로 이어집니다. 주변의 모든 상황은 복수를 행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수배자가 되고 죄수가 되는 것이 대수가 아닙니다. 오로지 원수를 찾아내서 처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자신이 어떠한 처지에 놓이든 상관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참으로 희한합니다. 이런 말이 여기서도 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뜻이 확고하니 그 뜻을 이루도록 환경이 묘하게 이루어집니다. 우선은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앳된 모습에 총기판매업자가 불쌍히 보고 먹을 것을 주며 달래서 돌아가라고 타이릅니다. 그러나 이미 자기의 삶을 걸었습니다. 하기야 돌아가 봤자 가족도 없습니다. 함께 살자던 이웃은 있었지만 단호히 거절하고 뛰쳐나왔습니다. 더구나 부모의 마지막 모습은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악인들의 피로써만 지워질 것입니다. 속된 말로 땅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피 맛을 보아야 합니다.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한 동안 따라다니며 총 다루는 법과 사격술을 배웁니다. 백인과 인디안 혼혈로 태어나 그 기질이 살아있습니다. 칼은 제법 잘 다루어도 총은 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삭막한 서부에서 목숨 부지하려면 어쩌면 총질은 기본입니다. 더구나 복수를 하려면 필수입니다. 칼로 대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그러나 깨우쳐줍니다. 총질을 잘한다고 해서 복수를 성공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일단 사람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면 그들이 잘 가는 곳을 찾아가야 하고 그들이 잘 하는 것을 알아서 들어가야 합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지요. 또한 그런 정보를 알아내려면 글도 알아야 합니다. 글은 또 어떻게 누구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까?
일단 먹고살기 위해 카우보이로 취업하여 따라다닙니다. 한번 일을 마치면 그들은 보통 술집으로 향합니다. 긴 시간 소몰이를 하며 광야를 떠돌았으니 젊은이들의 혈기를 풀 곳이 그런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맥스’는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의 방에 찾아온 인디언 여성과 다른 인연을 가지게 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큰돈을 건네줍니다. 그래서 찾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내줍니다. 그렇게 하여 한 사람을 처리하지만 자신도 치명상을 입습니다. 응급조치는 하지만 마을 보안관은 맥스에게 추방령을 내립니다. 위험인물이라는 것이지요. 인디언 여성이 그를 자기 부족에게로 데려가서 치료를 받도록 해줍니다. 그 동안 글도 가르쳐줍니다.
아무리 신세를 지고 은덕을 입고 사랑을 입어도 맥스에게는 집착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곳을 미련 없이 떠납니다. 여행 중 신문기사를 보는데 익숙한 이름이 나타납니다. 글이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 물어봅니다. 강도짓을 해서 무시무시한 감옥으로 이송 당한다는 기사였습니다. 그 감옥으로 가려면 은행 강도짓을 하면 된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합니다. 일부러 그 감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원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죄수라도 꺼리는 외딴 섬과 같은 감옥입니다. 탈옥이 거의 불가능하고 또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경우 무시무시한 대가가 치러지는 곳입니다. 그곳까지 찾아가서 그를 만나고 함께 탈옥을 시행합니다. 탈옥 중에 사살합니다. 그 전에 그에게서 마지막 주모자의 정체를 확인해둡니다.
주모자 ‘톰 피치’만 찾아내면 됩니다. 자신이 ‘피치’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며 다닙니다. 아마도 총기업자 ‘조나스 코드’의 해준 말이 적용되었을 것입니다. 강도는 돈이 있으면 쓰려고 할 것이고 없으면 강도짓을 할 것이다, 그러니 그럴 만한 곳을 따라다니면 됩니다. 어느 날 한 떼의 도적을 만납니다. 사실 실제 피치도 자기 이름을 가지고 다니는 놈이 누구인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만납니다. 솜씨 좋은 이 쌈꾼을 자기 부하로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체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확인을 합니다. 맥스가 말합니다. 사실 자신이 수배자이고 그래서 듣던 이름을 그냥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여 부하로 일하기로 합니다.
금궤 수송마차를 습격하기로 합니다. 무리가 나뉘어 매복하였다가 탈취하고는 각자 알아서 떠나는 것으로 합의합니다. 그렇게 습격을 감행하고 각자 흩어지는데 맥스는 마차를 습격하는 게 아니라 피치를 쫓아갑니다. 결국 둘이 마주합니다. 그리고 맥스는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그리고 피치에게 총질을 합니다. 그러나 죽이지는 않고 심각한 부상만 입히고 돌아섭니다. 죽이라고 아우성치는 피치를 뒤로 하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어쩌면 그렇게 단순히 복수하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설사 살아남는다 해도 평생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살 것입니다. 영화 ‘네바다 스미스’(Nevada Smith)를 보았습니다. 1966년 작입니다. 집착, 정말 무섭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