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의정부 한마음 수련장에서 3시간 강의가 있었고, 미아동 성당에서 2시간 강의가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다면 함께하려고 합니다. 한마음 수련장에서 강의를 마치고, 잠시 시간을 내서 의정부에 사시는 어머니에게 다녀왔습니다. 저는 잠시 시간을 내서 어머니를 뵈었는데, 어머니는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뵈니 죄송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다음에는 잠시 시간을 내서 찾아뵙는 것이 아니고, 온전한 시간을 내서 찾아뵈려고 합니다.
조조의 아들 조식이 지었다는 7보시가 있습니다. 7걸음 안에 형 조비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만들지 못하면 죽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생 조식이 지은 시입니다. 형은 동생의 시를 듣고서 마음이 움직였고, 동생을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煮豆燃豆? (자두연두기 - 콩대를 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 솥 속의 콩은 울고 있다)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 본래 한 뿌리에서 났건만)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 어찌 이리 급하게 삶아대느뇨)”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세상입니다. 분명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합니다. 그래야 정의가 바로서고,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리는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으로는 드러나기 어렵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옳은 길을 갈 때면 격려해 주셨고, 우리가 그른 길을 갈 때면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셨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어릴 때의 기억입니다.
친한 친구와 구슬치기를 하다가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저의 목을 조르고 있었고, 저는 친구의 급소를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놔!’ 그러면서 서로 먼저 놓지를 못하고 한참을 울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우리는 서로를 향해서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습니다. 눈물을 멈추고 사이좋은 친구가 되어서 다시 구슬치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가끔씩 어릴 때 그 사건을 생각합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씩 친구들과 다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릴 때처럼 상대방의 급소를 잡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곤 합니다. 내가 먼저 자존심을 버리면 쉽게 끝나는 일들도 오래 가는 것을 봅니다. 신자들의 모습에서도 가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별 것 아닌 일인데 화해를 하지 못하고 한동안 어색한 침묵으로 상대방이 먼저 용서를 청하기를 바라는 것을 봅니다.
진리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드러나는 것입니다. 어느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겨울이 떠나야 봄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봄이 오기에 겨울이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봄과 겨울은 서로 다투거나,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겨울과 봄이 만나는 것입니다. 겨울은 봄에게 눈 소식을 알려주고, 봄은 겨울에게 꽃 편지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려 주십니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첫댓글 진리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드러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