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에 담긴 세월
우리 조상들은 “수지부모(髮膚受之父母)”라 하여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부모에게서 받은 몸이라 여겼다.
그래서 함부로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남자는 긴 머리를 틀어 상투를 올리고, 여자는 곱게 땋아 비녀를 꽂
았다. 머리 모양은 단순한 치장이 아니라 예의였고 삶의 방식이었으며, 부모에 대한 효도의 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왜정 시대에 내려진 단발령은 오랜 전통을 하루아침에 흔들어 놓았다. 사람들은
눈물을 머금고 상투를 잘랐고, 누군가는 그것을 개화라 불렀으며 또 누군가는 치욕이라 여겼다. 그렇게
머리카락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사실 긴 머리는 생활 속에서 불편한 점도 많다. 일을 할 때 거추장스럽고 손질에도 시간과 정성이 든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복을 입고 머리를 짧게 깎아야 했다. 모두가 비슷한 머리 모양을 하고 다녔다.
학생다운 단정함이라는 이름 아래 개성은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자 풍경이 달라졌다. 이른바 ‘장발족’이 나타났다. 어깨를 덮는 머리카락은 단순한 유행
이 아니라 자유의 상징이었다. 획일적인 규율 속에 눌려 있던 젊은이들의 자의식이 머리끝에서부터 피어난
것이다. 머리를 기른다는 행위 하나에도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이 담겨 있었다.
요즘은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의 삭발 소식이 들려온다. 어제도 부산 북구 선거 후보인 박민식 후보가 삭발
을 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시장 후보인 박형준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결의를 보인 적이 있다. 유권자의 관심을
끌고 자신의 절박함을 호소하기 위한 몸짓일 것이다.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는 행위 속에는 “나를 봐 달라”는
간절함과 정치적 메시지가 함께 들어 있다.
생각해 보면 단발, 이발, 삭발은 모두 머리를 자른다는 뜻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단발은 긴
머리를 짧게 자르는 일이지만 동시에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삭발은 단순한 머리
손질이 아니라 결단과 각오의 표현이다. 불교에서는 속세의 인연을 끊고 수행의 길로 들어서는 경계를 뜻하기도
한다. 반면 이발은 보다 현실적이다. 남성들이 자신을 단정하게 가꾸고 사회적 예의를 갖추기 위한 생활의 일부
에 가깝다.
나 역시 평생 학생들 앞에 서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왔다. 그래서 옷차림뿐 아니라 머리 모양에도 늘 신경을 썼다.
한 달에 한 번쯤은 꼭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다듬었다. 학생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도 조심하려 했다. 교단에 서는 사람의 언행은 학생들에게 그대로 비쳐지기 마련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머리카락은 참 묘하다. 자르면 다시 자라나지만, 그 시대의 기억까지 함께 잘려 나가지는 않는다.
상투를 틀던 조상들의 효심도, 단발령의 아픔도, 장발족의 자유도, 선거철 삭발의 절박함도 모두 머리카락 속에
스며 있다. 그리고 나에게 이발은 단순한 미용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잡는 작은 의식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머리 모양은 달라졌지만, 사람의 마음까지 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효를 생각하며 머리를
기르고, 누군가는 자유를 꿈꾸며 머리를 늘어뜨리며, 또 누군가는 결의를 다지며 머리를 민다. 결국 머리카락은 시대에
따라 모양은 달라도, 그 속에는 언제나 사람의 삶과 마음이 담겨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