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년대 초반에 고향에서 어른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또 다른 어른의 회갑연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동행했던 당숙 한 분께서 당신의 막내딸이 사는 동네에 들르자고
하셨다. 당숙의 막내딸이자 나의 육촌 동생이 세들어 사는 산골 집은 매우 허름했다.
잠깐의 만남이 끝나고 차가 떠나자 당숙께서 황소처럼 꺼이 꺼이 울기 시작했다.
장승처럼 큰 키에 타고난 강골인 데다 평소에 거의 말을 안 하시던 분이라서 차에 탄
모두가 당황했다. 아직 20 대이던 나는 당숙의 울음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주 토요일 두 딸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왔다.
아이들 넷은 뛰고 떠들고 난리가 났는데 내 눈은 두 딸에게 갔다. 직장에 다니며 애들
둘씩을 키우는 그들은 지쳐 보였다. 큰딸은 가까운 곳에 살아 우리가 아이들을 볼봐
주는데 과천에 사는 작은딸은 시어머니가 애들을 봐주시니 눈치도 보이고 매우 고단할
것이었다. 마음이 짠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 자고 가라는 데도 일요일엔 자기들 집에서 푹 쉬고 싶다면서 제 엄마가 바리바리
싸주는 반찬을 갖고 밤늦게 집에 가는 딸들을 배웅하고 산책하며 딸들을 키우던 지난
날들을 떠올렸다. 거기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름다운 시간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리고 형편이 아주 어렵던 시절 열 평짜리 아파트에 산 적이 있었다.
그 허름한 아파트 작은 방에서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딸들이 발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방에 들어와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손가락에 침을 발라 그림책을 넘기며 웃고 있었다.
그 때 작은 방을 비추던 햇살과 창으로 들어오던 바람, 두 딸의 해맑은 미소와 조그만
부엌에서 아내가 밥을 지으며 딸그락거리던 소리까지 그 시간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진정 아름다운 시간들은 박제가 되지 않고 화석이 되지도 않은 채 생생하게 살아서
나를 살아가게 하고 감사하게 만들고 있었다.
40 년 전 당숙의 울음의 깊이는 너무나 아득해서 아직 나는 온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지만, 내 사정 상 아이들의 재능을 더 키워주지 못 하고 더 뒷바라지를 해 주지 못한
마음의 빚은 이만 내려 놓으려 한다. 딸들을 강하게 키운다고 엄하게 대한 것도 이제
그만 미안해 하기로 했다.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만을 바라기로 한다.
2024. 06. 04
앵커리지
첫댓글 각자의 삶은
또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요.
각자의 삶은 각자의 몫이지요.
친정 아버지의
부성애를 그리셨습니다.
그 당시
20 대였을 때,
어찌 시집 보낸 아버지인
당숙을 이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만을 바라기로 한다' 는
끝맺음에서,
딸들이 이제는 아버지 보다 더 잘 살아가겠죠.^^
애들을 키우면서, 저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진정
바랐습니다. 제가 사춘기와 청년시절 신산스러운
시간을 보냈기에 그랬는데, 다행히 그 소원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당숙의 울음은 짐작은 할 뿐 아직 온전히 이해하진
못 합니다만, 당숙모께서 돌아가시고 혼자 사시던
분이 막내딸을 만나니 감정이 복받쳤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숙님의 마음의 행로와 앵커리지님의 마음의 행로가 평행선인 듯 서로 만나네요.
잔잔한 감흥이 입니다.
평행선인 듯 맞 닿았다는 표현이 아주
적절하겠습니다.세상의 부모 마음이 똑같으니
그러하겠지요.
저는 그런 마음들은 못 가져보고
갈 것 같습니다.
딸과 아들이 있지만 둘 다 결혼에는
관심이 없고... 아니 관심이 없다기 보다는
타인과 깊이 엮여지고 그 결과로
무한책임을 져야하는 자식을 가지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결혼을
안 하겠다 하고, 그런 일은 부모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라...
그냥 네 식구가 따로 또 같이
한 집 안에서 흩어져 삽니다. ㅎ
시집간 딸에 대한 아버지의 애틋함에
경험은 없어도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 친구들과 만나면 금기어가 자식들에
관한 얘기입니다.
결혼했느냐 아이가 있느냐 하는 말은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에 가까우니 세상이 많이 변한 게지요.
그러다 불쑥 결혼하는 젊은이들도 많이 봤으니
아직 기대를 하셔도 좋겠습니다 ^^
마음이 찡하네요..
당숙님의 마음이 이해가 가고
앵커리지님의 딸들에 대한 미안함도
이해가 가요
자식에겐 한없이 베풀고 뒷바라지 하고 싶지만
각자의 사정이란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들을 보면
그마저도 사치라 생각되었어요
온전히 건강하게 낳아 주심에 저도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늘 정확하게 짚어주시는 루루님입니다.
나의 미안함과는 전혀 별개로, 아이들이 아픈 곳
없이 무탈하게 자라 사회인이 된 것만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저도 한 때 아버지의 무책임에 화가 나다가도
이나마 누리고 사는 게 부모님 덕이라고 생각하려
애씁니다.
아버지는 딸의 결혼식장에서 우시지요.
저는 오래비도 울더만요.
당숙의 눈물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딸들이 잘 살길 빌며
마음의 짐은 내려 놓으시길요.
키우고 출가시키고
앵커리지님도 수고 하셨습니다.
지언님의 위로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딸들이 잘 자라고 결혼해서 존주들이 건강하니
감사하며 살려고 합니다.
이제껏 가졌던 짐들을 그만 내려놓구요.
당숙의 울음을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에, 그 울음이
마음 아프게 다가오네요.
두 따님의 아빠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참 자상하신 아빠세요.
직장생활 하면서 두 아이 키우기가
쉽지 않지요.
피곤한 따님들의 얼굴을 세세히 지켜보신
아빠의 마음이 아릿했을 것 같습니다.
젊은 날 어느 한때 아이들과 함께 했던
때가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지요.
저도 아이들에게 미안해 할 때가
많은데, 이제 더 이상 미안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따님들을 향한
아빠의 마음 잘 읽었습니다.
아버지란 그런 존재입니다.
아이들에게 살갑게 대하기 보다는 엄하게 예의를
갖추게 하는 악역이라서 오해받기 십상이지만,
속으로는 한없는 사랑을 갖고 있지요.
이베리아님도 더 이상 미안해 하지 마세요.
그간 수고 많으셨고 지금도 수고하시니까요 ^^
저도 자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간절히 내려 놓고 싶습니다.
헌데 아직은 내려놓고 싶은 맘보단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니
자식들 생각과는 다르게 지은 죄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
경험 없던 초짜 아비란 것 만으로 합리화 하기엔
스스로 용서가 아직 안되고 있어요.
표현 못하는 아비의 마음이 아들 결혼식 축사를 하면서
순간 눈물을 쏟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간 저도 미안한 맘 내려 놓을 날 오겠지요?^^
우리는 서로를 좀 아는 사이라서 말씀드리는데.
둥실님도 이제는 미안한 마음 내려 놓으십시오.
최고로 잘 해주진 못 했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으니
이젠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생각만 잘 해도
좋은 때입니다 ^^
@앵커리지 감사합니다.^^
딸이 없어서 그런 심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얼추 짐작은 갑니다.
애틋한 부성애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야 다
똑같지 않겠습니까만,
아들 보다는 딸이 더 애틋하다고 합니다.
저는 아들이 없어서 아들을 가진 분들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
글을 읽어내려가며 구절마다 장면이 머리속에 그려집니다.
바리바리 반찬 싸주시는 엄마
아빠의 독서를 방해 하지 않기 위해 발뒤꿈치 들고 조심스레 걷는 아이들
더 많은 뒷바라지를 해주지 못한 마음의 빚을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노라는 아버지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세상 더 없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펼쳐집니다.
따뜻한 마음의 가족들 모습이 사뭇 아름답습니다.
얼마 전에 올린 글에 '딸의 딸'과 함께 흰수염 고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저는 살면서 인상 깊은 순간들의 세세한 면들을
잘 기억하는 특성이 있는데, 표현이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짐은 내려놓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또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잘 기억해 두려 합니다 ^^
저는 36세에 결혼하여 딸한명만 있는데
어릴때 너무 엄하게 키운게 지금도 많이 미안합니다
앵커리지님처럼 그만 미안해야 하는데
저는 아마 죽을때까지 그럴것 같습니다
저도 아주 엄하게 딸들을 대했습니다.
그게 지금은 미안하긴 하면서도 아이들이 남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바탕은 되었다고 자위합니다.
아버지란 악역을 맡는 존재이니 어쩔 수 없지요 ^^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만 남는게
부모의 마음이 아닐는지요.
잘 키운다고 엄하게 대한것이
왜 그리 미안한 일이었는지..
왠지 남의 얘기 같지가 않군요.
애틋한 부성애가 절절이 느껴집니다.
정보를 찾아보니 수국화님께서는 저보다 위의
세대이시니 이해를 잘 하시는 듯합니다.
어머니가 자애로우면 아버지는 엄한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만, 좀 과하게 엄격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희집은 남편이 아이들 뜻을
다 받아주고 너무 잘하니까 버릇 없을까봐
저는 악역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새벽 2시에 딸아이가 복숭아통조림 먹고 싶다고 하면 그때는 편의점이 없으니까
남원역까지 가서 사다 먹이는 진짜
완전 딸바보 아빠였거든요.
그런데 애들이 크니까 아빠보다
악역을 자처했던 엄마를 더 좋아하더라고요.
아빠는 아이들에게 잘해주고 못해주고를
떠나서 엄마 후순위라니까요.ㅋㅋ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해서 미안하다는
생각은 앵커리지님 생각이지 정작 아이들은
아버지를 고마워 할거예요.
자녀들 잘 키워서 결혼시켰으니
정말 아빠노릇 잘 하신거예요.^^
제라님 댁은 일반적인 가정과는 반대로 아빠가
진짜 딸바보였고 악역은 제라님이 하셨군요^^
좀 엄격하긴 했지만, 그런 교육이 아이들에게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나아가 배려하는 마음을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숫컷은 그렇게 살다 가는 존재입니다.
많은 뒷받침을 하고도 크게 기억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숙명이라고 봅니다.
@앵커리지
언젠가 제가 아들을 혼내고 나서
너무 과했나 싶어서 사과를 했어요.
그랬더니 아들이
엄마가 저를 사랑해서 그런다는거 아니까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은 그런 일로 상처받지 않았다는 뜻이잖아요.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그런 마음 아이들도 알아요.
사랑해서 혼도 내고 악역도 하고 엄하게도
했다는걸요.
자녀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아빠는
정말 좋은아빠 착한 아빠예요^^
@제라 경험과 진심이 담긴 댓글 고마워요.
지금 두 딸은 나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아부지' 라고 부른답니다.
적당한 거리감과 애정이 담긴 그 호칭이
난 참 정겹고 좋습니다 ^^
부모 중 한 사람은 엄해야 한다고 믿어요
작은 방 창틈으로 들어오던
햇살과
아빠가 책 읽는 등뒤에서
숨 죽이며.
그림책을 보던 두 딸아이는
분명
속으로 키득거렸을 거에요
크게 웃고
떠들고 싶은데
분위기 상
참아야 했을 테니까
딱
두 장의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글
너무 좋소
특히
화석이 되지도
박제가 되지 않고
살아가는데 원동력 된다는
아름답던 시간들 말입니다ㆍ
푸하하하 역시 조여사답소.
글이 길어지는 걸 싫어해서 다 쓰지 못 했는데
두 딸은 소곤대며 키득거렸다오.
난 그런 그들을 돌아보며 웃음 지었구요.
내게도 그 풍경은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는데
색은 전혀 바래지 않았다오.
큰딸은 애를 키우는 지금도 독서광이라서
저를 흐뭇하게 한답니다.
두 딸이 말빨(?)이 센 것도 아비 탓일 게요 ^^
ㅋㅋㅋ
과거는 늘 화장을 하고 나타난다고 하였어요.
돌이켜 보면 힘들었던 그때가 행복하였던 시절이었어요.
딸들도 지금은 힘들지만 먼 훗날 아이들 키우고 바쁘게 살던
지금이 아름답게 추억될 것입니다.
과거는 화장을 하고 나타난다... 명언입니다^^
딸들도 나중에 저처럼 지난 일을 돌아보며
행복하다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살기 어려운 시절이였죠.. 그래도 그때를 기억하고 회상하는것은 지금이라도 보상받고 싶고 보상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나가 버려 아쉽기만 한거죠..
아쉽다기 보다는 그리운 거 아닐까 해요.
그땐 대개가 그리 살았으니까요.
우리 윗세대는 더 어렵게 살았겠지요 ^^
따뜻한 부정이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모쪼록
앵커리지님의 앞날에
부녀간 정이 더욱 돈독해지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부녀간이란 모녀간에 비해 아주 친해지기
힘들지만 이해를 깊게 할 수는 있겠지요
아름다운 글
평화 로운 글
참 멋진 부모님 인듯!!!
과찬에 부끄럼만 더합니다.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글을 읽었으면서도 댓글을 못 드렸습니다 .
앵커리지님의 따님들에 대한 사랑을
마음으로 도 읽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우리 가정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답니다 .
감사합니다.
아녜스님 가정의 사연을 알 수는 없으니 그저
짐작을 할 뿐입니다.
우리집도 제가 젊은 날 불쑥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암흑기가 있었는데 다행히 잘 극복을
했답니다.
딸애들에게 향한 아빠의 무한대 사랑
발꿈치 들고 아빠에게로 왔던
딸들윽 아빠에 대한 존경
세월 지나 지금
가족의 행복한 웃음이 보이는 듯 한 글
잘 읽고
부러워 합니다.
내내 그리 사시길요~~
고맙습니다.
그리 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