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소득도 없는 일에, 바쁘지도 않고, 편한걸 바랄처지도 아닌데, 홀로 좌석에 비스듬히 누워가는 복에 없는 우등버스를 탔다. 지난달까진 일반좌석이었는데, 1시간여 거리를 달리는데 2,500원이 추가되었다.
나의 선택이 아니라, 승객수가 떨어지니 요금은 통제되어 올리 수 없고, 차체는 그대로인데 좌석을 개조하여 요금을 더 받기위힌 회사의 고육지책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들어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하던 조크가 사라졌다. 금전적 여유있어 불티나게 오르는 주식이란 것에 편승하였거나, 이런저런 사유로 정부의 눈먼 돈을 타먹지 않았으면 오르는 물가에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차창밖은 이제 꽃들을 보기가 힘들거 같다. 요란스레 사람들의 마음을 흐트러놓던 철쭉이 지고, 아카시아에 이어 하얀 찔레꽃이 드문드문 피었다. 꽃들의 자태를 보면, 철쭉은 높은 곳에 피고, 아카시아는 중간지대, 그리고 찔레꽃은 집근처나 개울가에 많이 핀다.
차에서 내려 산으로 향했다. 나는 자연인 못지않게 자연을 대할때마다 기분이 좋다. 순응하고 열심히 일하면 먹거리를 내어주기 때문이다.
엇그제 남미 페루에서 오랫동안 살다 귀국한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유튜브를 통하여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들은 한템포 늦어 게으르고, 가난한 사람들로 여긴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를 볼때는 왜 저렇게 허급지급 사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하였다. 하긴 출산율 꼴찌에다 자살율 1위, 노년의 가난함을 보노라면 그런 생각도 들만하겠다.
그들은 '왜 우리가 선진국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란다. 행복하지도 않은 선진국을 만들어 삶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삶이 반갑지 않다는 것이다.
멀리 고속도로엔 차량들이 소리내어 달리고, 나의 시야엔 사람 흔적이 사라졌다.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의자에 잠시 앉았더니 뒷산 먼곳에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맘때면 탁란이라 하여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다 몰래 알을 낳아 불법 양육을 시킨다고 하더니, 요즘은 산을 올라도 산새소리 듣기도 귀하니 뻐꾸기도 자식 양육에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일부러 시간을 늘리려고, 이젓저젓 주변 정리를 하다 오후 두시가 넘자 시내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날씨가 무덥다는걸 느꼈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본격적인 더위가 올 것이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4시 20분 버스가 있었다. 카드를 들이밀고, 버스표를 받고보니 요금이 이상했다. 8,200원 이어야 하는데, 10,700원이다. 내가 잘못 인식했나 생각하여 휴대폰으로 매표소위의 전광팜을을 찍고, 비교해 보았더니, 4시 20분 버스는 분명 일반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매표창구 여직원에게 찍은 사진과 나의 승차권을 내보이며, 뭐가 잘못된것 같다고 하였더니 그녀는 그게 맞단다. 내가 어떻게 맞느냐고 하였더니, 그시간에 배차가 돌아가며...어쩌구 저쩌구...그게 말이되나? 여직원이 무슨 잘못이 있나? 그럼 어디에 물어봐야 하느냐고 물으니 버스 회사에 물어 보란다.
기가 차서 버스의 행선지판을 휴대폰을 찍고, 차에 올라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중얼거렸더니, 기사란넘은 듣기 싫다는듯 "11번에 앉으세요"하고 꼭집어 말한다. 속엣 말로 "알고 있어"하며 응수했다.
학생들 통학버스격인 첫차도 우등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마도 모든 버스가 우등으로 변해 버렸을 것 같다. 버스는 지자체 보조금 받는 것 아닌가? 왕복 5,000원이면 백수에겐 생탁이 세병이다.
우리사회가 어쩌다 이렇게...가난한 서민들 눈에는 자신의 노력은 별개로 하고, 자신들만 잘살겠다고 설쳐대는 힘을 가진자들이 도적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도둑질 하려면 임꺽정과 일지매 같은 의인은 없고, 누를 잡은 사자가 살코기 뜯어먹고, 남은 살은 하이에나, 뼈다귀는 독수리떼가 챙겨먹는 각자도생의 길로 간다고?
내꺼는 내꺼, 니꺼는 우리의 것, 송도말년의 불가사리, 몰락해 가는 고려 말기의 민심과 당시 사회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하나의 설화로 아카데미 영화상 탈 꺼리는 못되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의 가슴을 휘젖는 영화, 어째 어째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하루였다.
별거 아니란 생각도 하겠지만, 이렇듯 생활 하나하나에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옥죄임을 당한다.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