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산청 대원사와 내원사
진주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한 대원사행 버스는 원지를 거쳐 1시간째 대원사로 가고 있다. 가도 가도 끝없이 따라오는 거대한 산 그림자에 머문 시선. 그곳에는 푸른 하늘을 힘차게 떠받치고 있는 지리산 준봉들이 있었다. 드디어 대원사 입구. 손끝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그림자로 성큼 다가선 지리산은, 가슴 밑바닥을 꾸물꾸물 기어다니던 그리움을 급기야는 토해내게 하고야 만다. '와' 하는 깊은 탄성과 함께 짧게 숨이 멎는다. |
지리산의 여러 계곡 중에서도 아직 오지에 속한다는 곳답게 대원사 계곡을 따라 가는 길은 울창한 원시림이었다.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새재에까지 뻗어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오르자 국립공원 관리공단 매표소가 제일 먼저 나타난다. 빨간색 보도블록으로 단장돼 깨끗한 오솔길은 울울창창한 수림으로 뒤덮인 계곡을 따라 대원교를 지나 대원사 일주문까지 이어지는데, 그 거리가 무려 10리 길이나 된다. |
하지만 계곡의 시냇물 소리며, 산새소리를 들으며 손 맞잡고 걷다 보면 길은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다. 산모퉁이를 돌아 대원교를 지나면서부터 시야 가까이로 들어오는 계곡도 10리 길의 지루함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답다. 97년 여름, 수해와 조난을 당하느라 많이 망가진 모습이지만 대원사 계곡은 여전히 낯선 객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할 만큼 고운 모습으로 산천을 적시고 있다. 마치 속세를 떠난 비구니처럼 물빛도 푸르고 깊다. |
최근에 세운 듯한 '방장산대원사(方丈山大源寺)'라고 쓰여진 일주문을 지나 300여m를 더 걷자 경남 양산의 석남사, 충남 예산의 견성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인 대원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에서부터 정갈하고 단아한 멋이 잔뜩 배어나는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그러나 1948년의 여순사건 당시에 모두 불탔다가 1954년 중창된 탓에 고색창연한 맛은 별로 없다. 그 대신 50여 명의 비구니들이 참선하는 도량답게 경내가 아주 깔끔하고 고즈넉하다. |
입구 계단을 지나 천왕문과 2층 누각인 봉상루를 통과해 대웅전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포근하면서도 아담한 느낌이 드는 대웅전이 보인다. |
원통보전과 함께 또 다른 계단 위에 서 있는 대웅전 주위엔 잎이 무성하고 키가 높은 파초들이 맑은 초록빛을 발산하고 있다. 대웅전 왼쪽 옆의 원통보전을 끼고 뒤로 돌아가자 이번엔 아담한 계단 중간에 3열 횡대로 늘어선 장독대가 보인다. 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정갈하게 해주는 이 장독대는 어깨선이 떡 벌어진 경상도 장독의 전형을 보이고 있어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장독대를 지나 작은 들꽃과 정원수들이 길목마다 터를 잡고 앉은 산왕각으로 올라가자, 전국의 비구니들이 한 번쯤 거쳐야 하는 선방인 사리전 위로 대원사 다층석탑의 수려한 자태가 살짝 보인다. 깔끔하고 정갈한 문화유적인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제1112호)은, 철분이 많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어 붉은 기가 도는데, 군살 한 점 없이 훤칠하게 잘 뻗어 올라가 있다. 하지만 나라에 경사가 있으면 탑에 서광이 비치고 향내가 경내를 진동시킨다는 다층석탑은 아쉽게도 사리전 안에 있어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는 없다. |
대원사 답사를 마친 다음에는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장당골과 내원골이 합류하는 위치에 절묘하게 자리한 절, 내원사로 가보는 게 순서다. |
대원사 입구에서 진주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덕천강을 따라 5km 가량 남쪽으로 내려가면 내원사 입구와 마주치는데, 내원사는 이곳(대포초등학교)에서 하차해 대포리 숲을 지나고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매표소를 지나 깊고 맑은 계곡 맛을 실감하며 약 3km를 걸어 올라야 한다. |
계곡이 둘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지리산의 마지막 비경이라 손꼽히는 장당골을 따라 곧장 앞으로 들어가면 내원사에 닿게 되는데, 지혜를 의미하는 '반야'란 이름의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내원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이 반야교 한가운데에 서면 소름을 돋게 하는 계곡의 찬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기암괴석 사이로 미끄러지듯 유연한 계류도 볼 수 있다. 또 흐린 날에는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신비로운 물안개도 감상할 수 있다. |
반야교를 지나고 나면 일주문이나 불이문 같은 입구도 없이 곧바로 경내와 맞딱뜨린다. 작은 장독 위에는 늘 짙은 산그늘이 내려앉아 있고, 산 뒤쪽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대웅전 앞마당에 선 단풍나무 가지를 흔든다. 우람한 바위를 돌고 돌며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와 낮 뻐꾸기 울음소리만 흥건하게 깔릴 만큼 조용한 경내는 아름다운 사찰이라기보다는 어느 사대부 집의 후원처럼 정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
절 앞마당에 머물던 시선을 거두자 건물 몸체에 비해 지붕이 유난히 커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빼곡이 모여 있는 비로전, 산신각, 칠성각, 요사채 등이 눈에 보인다. 그 중에서도 대웅전 왼쪽 옆에 있는 소박한 형태의 삼층석탑 한 기가 눈길을 끈다. 원래 사리와 보물을 간직할 목적으로 신라 무열왕 4년(657)에 세워져 오랜 세월 동안 이 절을 지켜 왔다는 이 탑은, 도굴꾼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61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하는데, 보물 제1113호로 지정돼 있다. |
다음으로 내원사에서 꼭 살펴 볼 것이 비로전에 봉안되어 있는 비로자나불(보물 제1021호)이다. 원만하고 자비로운 얼굴표정과 안정감 있는 풍모가 돋보이는 이 석물은 우리나라에서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내원리 석남암사지에 있다가 내원사로 옮겨졌다고 한다. 입자가 매우 거친 화강암인데다 풍우로 인한 마멸이 심해 그 자비로운 얼굴표정을 제대로 볼 수는 없으나, 불상에서 느껴지는 정성은 있다. |
이렇게 대원사와 내원사를 둘러보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산청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인 남명 조식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유림들이 세운 덕천서원과 문익점의 유물과 각종 베 관련품이 전시되어 있는 면화 시배지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사실 당일로는 대원사와 내원사 여행도 바쁜 감이 없잖아 있으므로 멀리 가는 길에 대원사와 내원사, 덕천서원, 산천재, 면화 시배지를 잇는 1박 2일 여정을 잡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단성 나들목을 나와 20번 국도를 만나면 좌회전한다. 이 20번 국도를 따라 계속 직진하다가 덕천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길 59번 지방도로를 타게 된다. 이 도로를 따라 직진하면서 길 왼쪽으로 내포초등학교 앞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먼저 내원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59번을 따라 산청방면으로 직진하다가 세월교를 건너 좌측으로 4km 정도 들어가면 대원사이다. 단, 산청나들목을 나와 대원사, 내원사로 향하는 길이 다소 구불구불하여 위험할 수 있으니 운전에 자신이 없다면 단성나들목을 택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대원사까지는 약 4시간 30분 정도 소요.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산청행 직행버스가 있으나 자주 다니지 않아 불편하다. 따라서 거창까지 가서 산청 경유 진주행 직행버스를 이용하거나 하루 4회 운행되는 진주행 직행버스를 이용한 뒤, 진주에서 내려 대원사행 버스로 갈아타는 것이 빠르다. 또 서울역에서 진주로 가는 열차를 이용해 진주까지 가거나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20~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진주행 고속버스를 타고 진주까지 간 다음, 진주 시외버스정류장(055-741-6039)에서 오전 7시 15분부터 오후 9시까지 4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대원사행 버스(1시간 10여 분 소요)를 타도 된다. 내원사로 가려면 진주에서 원지를 거쳐 대원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대포에서 내려서 내원사까지 택시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또 산청읍 방면에서 원리까지 가서 대원사행 버스를 타고 가다 대포에서 내려가도 된다. 대포초등학교 앞에서 내원사까지는 2.6km 정도 거리다. |
기타정보 | |
▶▶ 대원사 입장료 : 어른 1,300원, 청소년.군인 600원, 어린이 300원 주차료 : 없음(매표소 앞 주차장 대형차 당일 6,000원) 문의 : 대원사 (055)972-8068, 대원사 매표소 (055)972-7775 문화관광과 관광행정 : (055)970-3544 ▶▶ 내원사 입장료 : 어른 1,300원, 청소년.군인 600원, 어린이 300원 주차료 : 없음 문의 : 내원사 (055-973-0535) 문화관광과 관광행정 : (055)970-3544 |
*굽이굽이 산자락... | |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에 서울에서 승용차로 가려면 김천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빠져나와 3번 국도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야 했다. 산청의 금서면 화계리 왕산에는 가야국의 왕이 올랐다는 ‘왕등재’가 볼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피라미드 모양의 돌무덤도 7단으로 쌓여 있다. 무덤에서 300m쯤 아래로 내려다보면 구형왕의 증손자인 김유신 장군이 시묘살이를 하며 심신을 단련했다는 활터가 보인다.
◆약초밭 산청 산골이다 보니 변변한 공장 하나 없다. 산물도 사과 딸기 곶감 배 둥굴레차, 그리고 ‘메뚜기쌀’ 정도. 그러다 최근 약초가 주요 산물로 떠오르고 있다. 지리산에는 산삼과 더덕, 천문동 등 1000여종의 약초가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봄 지리산 등지에서 약초를 팔러 나온 약초꾼과 이를 사기 위한 관광객들로 산청은 늘 붐빈다. 수량으론 재배 약초가 더 많다. 산청읍에서 승용차로 진주 방향으로 30여분 달리면 생비량면 고리저수리에 닿는데, 좁은 농로를 따라 가면 집현산 자락을 개간해 만든 수만평의 약초밭을 볼 수 있다. 밑에서 올려다 보면 ‘어떻게 개간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아찔한 급경사다. 생리통과 갱년기 장애 등 부인병에 좋은 당귀, 인삼보다 좋다고 알려진 지리·가시 오가피, 관절에 좋은 마가목, 술독을 푸는 허깨나무 등 10여종의 약초 수만그루가 거기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산청읍에서 10여분 떨어진 지리산 자락에는 ‘산청약산원(055-973-7840)’이 건립되고 있다. ‘약초 산청’을 널리 알리고 싶어 공무원을 명예퇴직한 김승주(55)씨가 250여종 수만포기를 7만여평의 산에 심어 놓고 뒤늦게 건물을 올리는 중이다.
#나무들 틈새로, 산책로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홀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약초들이 저마다 향기를 뿜어낸다. 몸에 좋은 ‘만병초’와 정력·강장제로 쓰이는 삼지구엽초(음양곽), 뼈 붙이는 데 특효인 덧나무(접골목), 부인병에 좋은 산작약 등 희귀한 약초가 많다. 산청약산원은 오가피차와 쌍화차 등으로 약초를 가공, 판매하기도 한다. 김씨는 “약초를 자연 상태로 놔둬야 병에도 강하고 약성도 좋아진다”며 “정식 개장하는 내년까지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1000여종의 약초를 모두 심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산청군의 약초밭은 167㎗에 달하는데, 주종은 민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천마와 장뇌삼, 독활 등 30여종이다. 수확철은 봄가을이다.
◆인물 많은 산청 산세가 좋아서인지 산청에는 유달리 큰 인물이 많다.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의 스승 유의태도 이곳 출신. 그는 산안면 하정리 상정에서 태어나 금서면 화계에서 의술 활동을 편 것으로 전해진다. 구형왕 무덤에서 1.5 떨어진 곳에는 유의태가 치료에 이용했다는 약수터가 있는데, 위장병과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는 소문에 힘입어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중국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삼우당 문익점도 단성면 사월리에서 태어났다. 삼우당은 생가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목화씨를 처음 심었는데, 1965년 이곳에 ‘목면시배유지(木棉始培遺址)’가 조성됐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600평의 목화밭을 볼 수 있는 곳이다. 8년 장좌불와(長坐不臥)와 10년 동구불출(洞口不出) 등으로 유명한 퇴옹 성철(1912∼93) 스님의 고향도 단성면 묵곡리다. 조계종은 2001년 3월 생가를 복원하며 옆에 겁외사(劫外寺)를 지었다. 영원을 상징하는 ‘시간 밖의 절’이란 이름은 스님이 요양을 하던 부산의 한 암자에 붙인 이름에서 따왔다. 기념관에는 평생 근검절약한 스님의 누더기 장삼과 고무신 등이 전시돼 있다. 금박을 입힌 부처님을 모시고 화려한 단청을 한 대웅전과 대조적이어서 씁쓸한 느낌도 든다. 대웅전 벽화에는 전국 사찰 중 유일하게 부처님 대신 성철 스님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다. |
*먼저 핀 철쭉 봄을 깨우고... | |
성큼 다가온 봄. 서울에서는 유난스런 꽃샘추위로 봄을 느끼기 어렵지만 남도 땅 곳곳에서는 봄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럴 때 싱그러운 봄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가족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경상남도 산청군. 꿋꿋한 역사와 장엄한 지리산이 빚어낸 산청은 자연의 숨결이 오롯이 살아있어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이다. 산청에서 신비로운 역사의 발자취를 쫓다 보면 자연의 넉넉함을 느끼며 일상의 피로를 말끔히 털어낼 수 있다. 대전-진주 고속도로 단성나들목을 나와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바로 ‘목면 시배지’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고려 말 문익점이 목숨을 걸고 들여온 면화를 처음 재배했던 지역이다. 한적한 도로 옆에 세워진 목면 시배지는 운치 있는 한옥과 한가로운 시골 풍경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매표소 앞의 ‘해설자가 안내해드립니다’란 팻말이 설명하듯 목면 시배지에서는 이곳을 관리, 운영하는 이산 소장의 자세 한 설명과 함께 관람을 할 수 있다. 목면 시배지 전시관에는 물레와 베틀 등 면직물을 짜기 위한 도구와 함께 면화가 무명천이 되기까지 과정이 잘 전시돼 있어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 된다. 목면 시배지에서 3km 떨어진 단성면 성철대종사 생가는 몇 년 전에 조성됐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법어를 남긴 성철스님의 생가답게 입구에 놓인 대형 화로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이 편안하고 한가롭다. 성철대종사 생가를 나와 중산리로 방향을 틀어 서천면에 당도하면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2km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식 선생을 기리는 덕천서원을 만나는데 서원도 서원이려니와 서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빼어난 절경이다. 중산리 계곡을 계속 오르다 보면 역사의 아픔이 담긴 ‘지리산 빨치산 토벌 전시관’도 보인다. 아이들에게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이해시킬 수 있는 산 교육장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다시 돌아나와 산청읍을 거쳐 10km 떨어진 차황면에 이르면 태백산맥의 산세를 닮은 황매산이 있다. 정상에 올라 바라본 주변의 풍광이 활짝 핀 매화꽃 잎과 닮았다고 해서 ‘황매산’이란 이 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 매년 5월이면 황매산은 철쭉이 장관을 이룬다. 5월 전에는 노란 민들레가 장관이다. 황매산을 20분쯤 오르면 확 트인 초원에 지천으로 피어난 노란 민들레가 기막힌 풍경을 만들고 있다. 철쭉과 민들레 말고도 황매산은 영화 ‘단적비연수’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산청군은 영화 세트장을 영화 주제공원으로 꾸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추억을 선사한다. 또 황매산 중턱에는 허준의 스승 유의태가 이용했다는 ‘유의태 약수터’가 있다. 봄철 산청의 최고 볼거리는 경남 최대의 축제로 꼽히는 ‘지리산 한방약초축제’다. 지리산 자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청은 예로부터 한방약초의 산지로 이름이 높았으며, 조선시대 최고의 명의 허준과 그의 스승 유의태를 배출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산청군은 2000년부터 해마다 지리산 한방약초축제를 열고 있다. 축제기간 산청읍 산청체육관에서는 지리산에 자생하는 1,000여 종의 각종 약초와 표본재료, 약초솔, 한방향토음식, 야생화 등이 전시된다. 또 행사장을 찾는 관광객은 ‘산음 혜민서’에서 실시하는 무료 진료를 전문한의사로부터 받을 수 있으며, 산청에서 생산되는 각종 한약재를 농특 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행사기간 차황면에서는 ‘황매산 철쭉제’가, 상초면 창작스튜디오에서는 ‘국제현대조각심포지엄’이 열린다. |
*산청 경호강 | |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정기가 갈무리되는 지리산. 그 자락에 터를 잡은 경남 산청(山淸)은 봄볕이 따사로운 고을이다. 산빛도 맑고 주민들의 심성도 순박하다. 무엇보다 산청을 적시고 흐르는 경호강의 물빛이 아름답다. 따사로운 봄볕이 터지는 봄날에 경호강 물줄기를 따라서 달려보자. 구형왕릉에 얽힌 수수께끼 경호강의 첫 여정은 왕산(923m)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구형왕(仇衡王)을 만나는 일로 시작한다. 금관가야의 제10대 왕(재위 521~532)인 구형왕은 지금의 김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이다. 532년, 신라에 항복하면서 492년간 지속되었던 금관가야는 역사의 무대서 사라진다. 항복한 대가로 신라 진골로 편입한 후손들은 이후 크고 작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게 되는데,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金庾信ㆍ595-673)이 바로 구형왕의 증손자다. 아마, 구형왕릉을 처음 보는 이라면 눈이 동그랗게 될 것이다. 무덤이 흔히 보듯이 흙을 쌓아 만든 봉분이 아니라,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좁은 계곡 안쪽 경사면에 마치 피라미드처럼 돌로 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산청에 전하는 전설은 신라와의 전쟁에서 진 구형왕이 죽어 가면서 병사들에게 돌로 덮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형왕은 나라가 망한 뒤에도 30여 년을 더 살았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는 왕릉이 아니라 석탑이나 제단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풀리지 않는 역사의 수수께끼다. 구형왕릉 바로 앞 갈림길에서 임도를 따라 2km쯤 오른 뒤 오솔길을 200m쯤 걸어 올라가면 너덜지대에서 솟아나는 시원한 약수터를 만난다. 단군 이래 최고의 명의로 추앙 받는 허준을 가르친 스승, 곧 류의태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너덜 지대에서 샘솟는 물은 수량도 많고, 물맛도 특이하다. 류의태는 약재를 달일 때 반드시 이 약수를 썼다고 한다. 1,000여 종의 약초가 자생하는 지리산 자락은 전통적으로 한방 약초의 보고였다. 그래서 산청에는 여느 지방에 비해 뛰어난 의술을 가진 명의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많이 전한다. 류의태도 그 중 한 명이다. 전설에 따르면 류의태는 왕산 아래의 화계마을에서 의료 활동을 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의서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도 산청에서 한의학의 거성 류의태를 스승으로 만나 의술이 일취월장하게 되었다 한다. 물론 허준이 스승 류의태의 시신을 해부했다는 이야기는 픽션이고, 류의태라는 인물도 허준이 죽은 후 민간에 떠돌던 야담에서 끄집어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산청 사람들은 ‘허준 스승 류의태’의 실존을 굴뚝 같이 믿고 있다. 목화 시배지와 성철스님 생가 산청으로 다시 나와 경호강변의 3번 국도를 따라 30~40분 달리면 단성면 소재지. 대전 - 통영고속도로 단성 나들목 근처에 있는 사월리는 고려말 공민왕 때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ㆍ1331~1400)이 목화를 처음 재배한 마을이다. 고려의 멸망이 가까워진 1369년(공민왕 18), 원나라로 귀양갔던 문익점은 돌아올 때 목화씨앗 10여 개를 붓대롱에 넣어와 이곳에서 처음으로 심었다. 재배에는 성공했으나 금방 면을 생산한 건 아니다. 어느날 원나라 승려 홍원이 찾아왔다가 자기 나라에 있는 목화를 보고 매우 좋아했다. 마침 그는 직조술을 알고 있었고, 문익점의 장인 정천익이 그에게 기술을 배워서 물레를 만드는 데 성공해 결국 무명 한 필을 만들어냈다. 이와는 달리 실 잣는 기계를 문익점의 손자인 문래(文萊)가 발명하고, 문영(文英)이 베 짜는 법을 발명하 여 명칭이 ‘물레’, ‘무명베’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그 후 해마다 씨가 불어 목화는 10년도 채 못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조선 태종 때는 일반 백성들도 두루 무명옷을 입을 만큼 면업은 발전하게 되었다. 목화 시배지에서 경호강을 건너면 성철(性澈ㆍ1912~1993)스님 생가가 나온다. 스님의 생가는 벽해루(碧海樓)를 거쳐 들어가게 되어 있다. 벽해루를 지나면 정면에 성철 스님의 동상(사리탑)이 서 있고, 동상 좌측으로 대웅전이 보인다. 혜근문(惠根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성철 스님의 생가를 복원해 놓은 율은고거(栗隱古居)이고 우측 건물은 사랑채, 좌측 건물은 스님의 기념관인 포영당(泡影堂)이다. 포영당에는 스님이 입으셨던 누더기 두루마기와 덧버선 등의 유품과 유필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등 성철 스님이 26살로 입산하기 전에 속세에서 읽었다고 기록한 목록들도 눈에 띈다. 그러나 방문객들은 거창하게 금칠을 한 성철 스님의 동상을 본고 매우 당혹해 한다. 현대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인 성철 스님을 불교계는 물론이요 다른 종교인들도 존경해마지 않았던 것은 바로 고된 수행자로서 철저히 무소유의 자세 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산청 왕산-비운의 왕 잠못이루는 가락국 ‘마지막 영토’ | |
왕이시여! 무엄하게도 왕이 1500년째 고이 잠들고 계신 왕산(王山)의 정상을 밟는 무례를 범했습니다. 가락국의 애환이 서린 왕산을 오른 것은 오로지 산청군 금서면 화계마을의 덕양천 계곡에 뿌리를 내린 능수벚나무의 은근한 유혹 때문이었습니다. 머리를 풀어 헤친 능수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린 능수벚나무의 하얀 꽃은 흰옷 입은 가락국의 여인처럼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던 산벚나무의 꽃잎이 봄바람을 타고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봄날의 왕산 산행은 이렇게 들뜬 마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즉위 11년만인 서기 532년. 국운이 다한 가락국을 신라의 법흥왕에게 넘겨주는 대신 사랑하는 백성들이 차별대우를 받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한 왕의 깊은 뜻은 증손자인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왕과 계화왕후의 위패를 모신 덕양전과 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돌무덤(傳 仇衡王陵) 중간쯤에 위치한 김유신 장군의 사대(射臺)도 왕의 밀알정신이 잉태한 결과물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화랑 김유신의 화살이 바람을 가르던 숲은 그때처럼 연초록 잎들이 나날이 초록색 물감으로 덧칠을 하고 있습니다. 구형왕이시여!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16번지에 주소를 둔 왕의 돌무덤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왕은 수로왕 이래 연면히 이어져 오던 가락국의 국통을 끊어놓고 어찌 따뜻한 흙속에 묻힐 수 있냐며 차가운 돌무덤 속에 묻히기를 자청하셨습니다. 왕산의 경사진 산비탈에 거친 돌로 7개의 단을 얼기설기 쌓아 만든 피라미드 모양의 돌무덤은 오랜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능수벚꽃 만큼이나 아름다운 석화가 피어 있습니다. 산새도 왕릉을 피해 날고 물밀듯 밀려오는 신라군처럼 맹렬한 기세로 뻗어 나오던 칡덩굴도 왕의 무덤 앞에서는 고개를 돌려 되돌아 나간다니 한갓 미물이라도 왕에 대한 경외심은 인간들보다 나은 듯합니다. 왕릉에서 1.4㎞ 떨어진 소나무숲 속의 수정궁터는 왕이 나라를 신라에 넘겨준 후 여생을 보냈던 곳으로 김수로왕이 이곳에 수정궁이라는 별궁을 지어 요양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입니다. 가락국의 여인들이 연분홍 꽃으로 다시 태어난 듯 진달래꽃이 만발한 수정궁터는 궁궐터라기보다 산비탈을 계단식으로 깎아 만든 산막터에 더 가깝습니다. 죽어서 돌무덤에 묻히기를 소원한 왕이 어떻게 여기에 호화로운 궁을 짓고 살았겠습니까. 수정궁터 인근의 약수터는 왕산의 온갖 약초 뿌리에서 우러난 성분들이 녹아 흐르는 샘으로 왕도 이 물맛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돌무더기 속에서 솟아나는 약수는 여름엔 차고 겨울엔 따뜻한 한천수라 예로부터 산청 지역의 의원들이 이곳의 약수로 약을 달였다고 합니다. TV드라마 ‘허준’의 인기 때문인지 ‘류의태 약수터’로 명명된 이후 하루에도 수백명의 산행객들이 장사진을 이뤄 행여 왕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 지 걱정됩니다.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시여! 수정궁터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2㎞쯤 오르면 나타나는 평전(平田)은 왕산이 예사로운 산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해발 800m 지점의 평전은 수백 평 넓이의 평평한 지대로 가락국 병사들의 훈련장이었다는 설이 전해져 오는 곳입니다. 수백 명이 동시에 목을 축이고도 남을 정도로 솟아나는 평전샘과 발끝에 차이는 고풍스런 기와 파편들로 보아 이곳에 수백 명의 가락국 군사들이 거주했었다는 전설이 빈말은 아닌 모양입니다. 평전에서 왕산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500m의 산행로는 가파르지 않은데다 솔향이 그윽해 ‘사색의 산행로’라 명명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성 싶습니다. 왕의 보좌보다 백성들의 안위를 우선한 왕의 뜻을 헤아리며 걷다보면 어느새 소나무가 두 그루가 다정한 전망대에 닿습니다. 왕산 전망대에 서면 산의 모습이 붓끝을 닮았다는 필봉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산과 산 사이에 삶의 터전을 잡은 산청의 크고 작은 마을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곰이 웅크리고 앉은 형태의 웅석봉과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의 연봉들이 왕산을 보듬은 산세는 가락국의 병사들이 왕을 호위하는 형상입니다. 해발 923.2m 높이의 왕산 정상에서 굽어보는 경호강의 흐름은 곡선이 나타낼 수 있는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자랑하고 있습니다. 지리산과 황매산 줄기에서 뻗어 나온 산들 사이로 흐르는 경호강은 멀리서 왕산을 둘러싸고 반원을 그리다가 나지막한 야산이라도 만나면 S자를 그립니다. 산과 강이 서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산청의 산과 강은 역사의 흐름을 거부하지 않은 왕의 지혜와 덕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강원도의 가리왕산(加里旺山)을 비롯한 이 땅의 산들이 무지막지한 일제에 의해 왕(旺)으로 바뀔 때도 왕의 왕산만은 그대로 왕(王)을 유지할 수 있었나 봅니다. |
[여행메모] 산청에 가면… | |
약초의 본고장인 경남 산청이 웰빙의 고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단성IC에서 중산리방향 5.5㎞ 지점에 위치한 ‘지리산참숯굴찜질방(055-974-0117)’은 참나무로 숯을 만드는 전통 숯가마. 황토가마에서 나오는 열기와 원적외선은 피로회복은 물론 아토피성 피부와 건성 피부에도 좋아 8개의 가마는 종일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입장료도 2000원으로 싼 편. 목초액으로 만든 비누,주방세제,음수용 목초진액 등도 판매할 뿐 아니라 참숯골찜질방 내의 활법운동원에선 1시간에 걸친 손 마사지 등으로 몸을 풀어준다. 시천면 신천리의 양수발전소 맞은 편에 위치한 ‘오덕원(055-972-9366)’은 순수 국산콩으로 만든 된장,간장,청국장 등이 유명하다. “전통 된장엔 단심,항심,불심,선심,화심 등 다섯 가지의 미덕이 있다”는 김애자(49)씨가 전국을 8년 동안 돌아다니며 전수받은 비법으로 메주를 뜬다. 택배도 가능. 왕산 산행은 구형왕릉 주차장에서 시작. 구형왕릉∼류의태 약수터∼평전∼정상 왕복에 3시간. 산청군 문화관광과 055-970-6421 |
*산청...왕산 호연지기 세상을 품는다 |
우리나라 산 이름 가운데 '임금 왕'(王)자가 들어가는 곳은 흔치 않다. 하늘 같은 임금을 칭하는 글자를 쓰기가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여 '왕'자를 쓴다 해도 '임금 왕' 대신에 '성할 왕'(旺)자를 사용하곤 했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에는 임금 왕(王)자를 사용하는 산이 있다. 가야국의 역사가 깃들여 있는 왕산이다. 이곳에는 가야국의 마지막 왕이자 김유 신의 증조부인 구형왕(또는 양왕)의 피라미드형 돌무덤이 있다. 왕릉으로서는 국내 유일한 돌무덤이다. 이 왕릉에는 새들도 배설물을 흘리지 않고 뱀들도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왕산 오르는 길은 이 구형왕릉에서 시작된다. 등산로는 구형왕릉 입구에서 류의태 약수터로 이어진다. 서기 1516년 산청군 신안면에서 출생했다는 명의 류의태가 약을 달이는 물을 길었던 곳이다. 이곳에선 한천수가 나온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한천수는 36가지로 분류되는 물의 종류 중에서 최상급으로 꼽힌다. 약수터 주변에는 위장병에 좋다는 소태나무, 잎을 식용으로 사용하는 햇잎나무, 찧어서 바르면 종기를 낳게 한다는 누름나무, 뿌리가 정력제로 좋은 삽추등 각종 수목들이 발견된다. 류의태 약수터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약 2.4㎞로 길은 소나무 숲 가운데로 이어진다. 수줍은 듯 노랗게 꽃을 피운 산동백과 길을 따라 늘어선 환한 진달래꽃을 벗삼 아 길을 오르노라면 정상을 조금 못미쳐 널찍한 평지가 나온다. 안성맞춤이랄까 쉬어가기 좋은 평지에 샘물까지 있다. 평전샘이라고 불리는 이 샘물 인근에선 옛 기와의 잔해가 발견돼 신라시대에 이 곳에 훈련소가 있었다는 전설에 신빙성을 더한다. 평전샘에서 정상까지의 길은 비교적 평탄하다. 사색을 하며 걷기에 적당하다. 기묘하게 몸을 틀며 자란 소나무를 지나 15분 정도 더 걸었을까, 어느덧 해발 9백23m의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왕산을 돌아가는 경호강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천왕봉과 필봉이 눈 에 들어온다. 어느새 뽀얀 솜털을 피운 버들개지와 정상을 지키듯 서있는 두 그 루의 나무는 역사를 되새기며 걷는 왕산 등정에 마지막 운치를 더한다.
<여행수첩>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산청IC에서 내리면 된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산청이나 원지, 생초행 버스가 1시간∼1시간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오덕원(055-972-9366)에서 순수 재래식으로 담근 장맛을 볼 수 있다. 김애자 원장이 8년간 전국을 찾아다니며 배운 비법을 적용해 지리산 자락에서 청국장, 고추장, 간장, 장아찌등 전통 먹거리를 만들어 낸다. 이곳을 찾는 사람에게는 무료로 밥을 해주기도 한다. 단성면 길리에는 지리산 참숯굴(055-974-0117)이라는 찜질방이 있다. 금방 숯을 구워낸 황토굴에 들어가 땀을 내는 전통방식을 이용한다. 땀 흘린 뒤 참숯에 구워 먹는 지리산 흑돼지(1인분 4천원)도 별미다. 남사리 예담촌(yedam.go2vil.org)에서는 고가 숙박체험을 할 수 있다. 6집이 민박을 운영하고 있으며 숙박료는 1인당 1만원 정도. |
요즘은 한국한의대보다 외국한의대를 나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한의사로 활동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이 현실감있게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그런데 외국한의대 입학을하고자할 때는 반드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있는 정규 한의대(예를 들어, 경희대학교를 비롯한 한국 한의대, 미국 워싱턴 배스티르대학교, 써든크리스챤대학교, 중국 중의대)로 입학을 해야 일반대학에서도 인정하는 정규한의대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각 나라의 고등교육국(교육부)에 등재되어 있지 않는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일반 정규대학교에서는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대학 강단에 서고 싶어도 정규교수가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Chea,org 기구에서 두 개의 검색창(대학인증 검색창-상단창, 프로그램인증창 - 하단창)에 모두 이름이 나오지 않는 한의대는 비정규 한의대입니다. 대부분 미국 비정규 한의대는 이러한 사실을 감추고 아래부분, 프로그램 검색창에 학교 이름을 넣어 이름이 나오면 정규대학교라고 거짓홍보를 합니다. 반드시 두개의 검색창에 모두 나와야만 정규대학교로서 한의대라고 인정받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비정규한의대를 졸업했다고하면 모든 공직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학력 사칭범죄행위자로 간주하여 구속될 수도 있습니다.
각 국가의 고등교육국으로부터 인증을 받고 유네스코 등재 정규한의대를 나오면 서방 세계 어디에서나 절차를 거쳐 한의사, 혹은 자연의학 의사NHD로 활동이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