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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따다줘] 15
1. 씬. 강하의 집 거실 (밤)
- 14회 연결 상황에서.
재영 : (억지로 참으면서 애써 태연하게) 놀이 공원에 갔었어?
강하 : ......
재영 : 고맙네. 결혼 전에 애 보는 연습 같은 거 한 거야?
빨강 : (순간 강하를 보는)
강하 : (어두워지고)
재영 : 빨강씨랑 이 꼬마들도 다 초대해야겠지? 우리 결혼식에?
태규 : 큰 삼촌 결혼해?
강하 : .....
재영 : 빨강씨?
빨강 : 네.
재영 : 빨강씨가 내 부케 받을래요?
빨강 : 저 같은 게 어떻게.....
재영 : 왜요? 한 집에 산 정도 있는데, 빨강씨만 받겠다고 하면 던져줄게요.
빨강 : .....
재영 : 아, 좀 망설여지겠구나. 부케 받으면 몇 달 안에 결혼해야 한다는 미신이 있는 거 같던데....
강하 : (2층으로 움직이는)
재영 : 그럼 그건 좀 더 생각해보고 대답해줘요.
2. 씬. 지하방 (밤)
-빨강, 아이들 들어오는.
노랑 : 그럼 이젠 팀장 아저씨 밖에 안 남네.
초록 : 언니는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태규 오빠는 어쩌구?
빨강 : (아이들의 말이 귀에 안 들릴 정도로, 복잡한 감정에 빠져있다)
파랑 : 아니야. 우리 변호사 아저씨는 우리 누나 좋아한단 말이야.
초록 : 그런 아저씨가 딴 사람하고 결혼하냐?
빨강 : 쓸데없는 소리들 말고, 어서 옷 갈아입고 씻어.
3.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웃옷을 벗는. 재영 서있는.
강하 : 옷 갈아입으니 좀 나가달라니까.
재영 : 왜 그렇게 다쳤냐니까?
강하 : 그냥 좀 다쳤어.
재영 : 그냥 왜? 오빠가 얼굴이 그 모양이 될 일이 뭐가 있어?
-태규, 들어오는.
강하 : 넌 또 뭐야?
태규 : 조금 전엔 내가 멍해서 축하한다는 말도 못해서. 큰 삼촌, 재영 누나 정말 축하해.
재영 : 고마워, 태규야. (강하에게) 고맙다는 말 좀 해주지.
강하 : 나 피곤해서 쉬어야겠으니까, 좀 가줄래?
4. 씬. 거실 (밤)
-재영, 준하, 태규 서있는.
태규 : 결혼식은 언제 할 거예요? 재영 누나?
재영 : 곧. 나 갈께.
준하 : 그래.
재영 : 날 잡아서 집안 식구들 모두 모여서 밥 한번 먹을 테니까 태규 너도 그때 꼭 와야 해?
태규 : 그럼요, 가야죠. 식구도 없는데, 내가 빠지면 되겠어요.
재영 : 간다. (나가는)
태규 : 잘 가요, 누나.
준하 :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서는)
태규 : 작은 삼촌은 또 왜 그래?
준하 : 뭐가?
태규 : 큰 삼촌이 결혼한다는데 왜 똥 씹은 표정이냐구? 아, 큰 삼촌이 빨강이랑 다 같이 놀러갔다 와서?
그거야, 내가 기분 나쁘면 나빴지, 작은 삼촌이 왜 그러는데?
준하 : (돌아서는데)
태규 : 진짜들 이상해. 결혼하는 큰 삼촌도 똥 씹은 표정이구.
준하 : (그 말이 마음에 걸리는 느낌 담아서 움직이는)
5.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책상 앞에 앉아있는.
-들어오는 준하.
강하 : 나 좀 쉬고 싶다.
준하 : 무슨 의미야?
강하 : (보고)
준하 : 재영이랑 결혼 말 나오자마자, 얼굴 엉망 되서 들어오는 거랑.
그런 사람이 애들까지 다 데리고 놀이공원 같은 데까지 다녀온 의미가?
강하 : 아무 의미 없어. 파랑이가 놀이공원 가는 게 소원이라고 해서 들어준 것뿐이야.
준하 : 언제부터 형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데?
강하 : ......
준하 : 재영이가 제풀에 나가 떨어져주길 바라면서 하는 짓이면 그만둬. 그런 식으로 빨강씨 이용하지 말라구.
강하 : .....
준하 : 재영이와 형 문제는 둘이서 해결해.
강하 : 넌 괜찮은 거냐?
준하 : (보면)
강하 : 내가 재영이와 결혼 하는 거?
준하 : (잠깐 흔들리지만, 억지로 태연한 척) 재영이 만한 형수감 없잖아?
강하 : 그럼 됐다.
준하 : 근데, 진짜 궁금하긴 해. 왜 갑자기 형이 마음을 바꿨을까. 재영이가 그렇게 매달려도 까딱 안하던 사람이
왜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꾼 건지.
강하 : 지겨워져서. 나 좋다는 애 밀어내는 것도 지쳤다.
준하 : 형이......
강하 : (보면)
준하 : 말도 안 되는 상대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자신한테 짜증이 나서 그런 거라면 다행이야.
이게 모두를 위해서 가장 옳은 일일 테니까. (나가는)
강하 : .......
6. 씬. 지하방 (밤)
-아이들 모두 잠들어 있고, 빨강, 책을 들고 앉아있지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재영E : 빨강씨가 내 부케 받을래요?
빨강 : (고개를 들면)
강하 : 왜.....나였습니까?
빨강 : (일어서는)
7. 씬. 욕실 (밤)
-빨강, 세수를 하는. 거울을 보는데.
강하 : 그냥.....미안합니다. 아주 많이.....미안합니다.
빨강 : (머리 흔들며) 진빨강. 너한텐 애들이 있어. 그러니까 누가 뭘 하든 아무 상관없는 거야.
8. 씬. 지하방 (밤)
-빨강, 의자에 엎드려 생각에 잠겨 있는.
-강하와의 기억들 이어지는. 달걀을 맞던. 헬스클럽에서 만났던. 차를 태워주던.
젖은 옷 입고 추위에 떨던 강하 등등의 기억들이 이어지면서.
빨강 : (눈물이 흐르는) 5년이잖아, 그래도 5년이잖아. 그러니까 이러는 거야, 아무 것도 아니야, 5년 때문인 거야.
9. 씬. 강하의 집 전경 (새벽)
10. 씬. 거실 (새벽)
-빨강, 놀라서 앞치마 들고 뛰어나오는.
빨강 : 미쳤어, 미쳤어, 왜 또 늦잠인데?
11. 씬. 식당 (새벽)
-빨강, 앞치마 두르며 뛰어 들어오는.
-준하, 서서 밥솥 열어보고 있는. -찌개도 끓고 있는.
빨강 : (놀라서) 팀장님?
준하 : (돌아보며) 잘 잤어요? 좋은 아침이죠?
빨강 : 뭐하시는 거세요? 지금?
준하 : 보면 몰라요, 밥하잖아요.
빨강 : (다가서며) 팀장님이 왜?
준하 : 어제 형 간호하느라 잠도 못자고 애들하고 놀이공원 간 거잖아요? 고단할 거 같아서 오늘은 박애정신 좀 발휘했죠 뭐.
빨강 : 그러지 마세요, 어서 들어가세요, 제가 할 게요.
준하 : 다 해놨는데, 뭘 그러지 말아요? 이럼 내 박애정신 꽝으로 만드는 거예요, 빨강씨.
빨강 : 나머진 제가 해요, 제가.
준하 : 할 거 없어요. 빨강씨는 가서 세수나 해요. 눈꼽 떨어지면 발등 깨지겠어요.
빨강 : (놀라서 눈 부비는)
준하 : 내 유머 감각 싼티 나지만 쓸 만하죠?
-시간 경과.
-준하, 식탁에 찌개 올려놓는데. -강하, 태규, 아이들 쭉 들어오는. 모두 멍하니 보는.
준하 : 오늘 아침은 이 아저씨가 특별히 준비한 거니까 맛있게들 먹어.
노랑 : 완벽해, 완벽해, 너무 완벽해.
태규 : (욱해서) 왜 아침을 삼촌이 해?
준하 : 취사병 출신인 거 자랑 좀 하려고 그랬다, 됐냐?
-모두 자리에 앉는.
빨강 : 제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팀장님이 고생하셨어요.
준하 : (강하 앞에 밥 놔주면서) 형이 좋아하는 무시무시한 꼬드밥. 한번 불어봐, 날아갈지도 몰라.
강하 : ......
-그 사이 빨강은 태규 앞에 밥을 놔주고.
태규 : (밥을 퍼먹고) 이게 뭐야? 난 이런 밥 못 먹어. 난 질척질척한 진밥이 좋다니까.
준하 : (수저로 태규 머리 때리면서) 빨강씨 고생 하는 거 생각해서, 큰 삼촌하고 같은 밥 먹겠다며?
태규 : 그건 빨강이가 해줄 때 얘기지. 난 작은 삼촌이 해주는 이런 꼬드밥은 죽어도 안 먹어.
준하 : 아, 그럼 굶어 죽으시든지요.
노랑 : (찌개 맛 보면서) 아저씨, 너무 너무 맛있어요. 환상 그 자체예요.
주황 : 아저씨 정말 음식 솜씨 좋으세요.
준하 : 그렇지? 나 결혼하면 사랑받는 남편 될 거 같지 않냐?
강하 : (착잡하고)
노랑 : 그럼요, 팀장 아저씨는 타고난 1등 신랑감이세요.
준하 : 우리 노랑이 계란말이 하나 더 먹어.
12. 씬. 강하의 집 앞 (아침)
-강하, 준하, 빨강(남이 안고), 아이들, 태규 나오는.
준하 : (강하에게) 난 애들 학교 좀 데려다주고 갈게.
강하 : .....
빨강 : 그러지 마세요, 팀장님. 제가 데려다주면 돼요.
준하 : 오늘 전학 첫날이고, 가는 길이니까 같이 가면 돼요.
태규 : 나도 가, 나도.
준하 : 차 좁으니까 넌 좀 빠져주지.
태규 : 싫어, 싫어.
강하 : (차에 오르는. 룸미러로. 펄펄 뛰는 태규와, 준하의 차에 오르는 빨강과 아이들을 보는.
준하가 빨강에게 안전벨트 매주는 모습이 보이는. 어색해하는 빨강이지만, 아이들과 한 차에 탄 준하와의 모습이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차 출발 시키는)
13. 씬. 놀이방 사무실 (낮)
-준하, 빨강(남이 안고), 옆에 파랑이 앉아 있고. 원장 상담 중.
빨강 : 정말 이러시지 마세요. 팀장님.
준하 : 가만 좀 있어 봐요. (원장에게) 조금 늦게 애기를 찾아가는 날도 있을 텐데, 괜찮겠죠?
원장 : 네, 그럼요,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으셔서 늦게까지도 돌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맡기세요.
준하 : 다행이네요. (빨강에게) 그렇죠?
빨강 : (어쩔 줄 모르고, 파랑에게) 파랑이는 입학하기 전까지 며칠만 여기 다닐 거니까 남이 잘 보고 있어?
파랑 : (원장에게) 여기 있는 장난감 다 가지고 놀아도 돼요?
원장 : 그럼.
14. 씬. 놀이방 앞 (낮)
-준하, 빨강 걸어 나오는.
빨강 : 계속 이러시면 제가 어떻게 팀장님 얼굴을 봐요. 얹혀사는 것도 미안해 죽겠는데, 이런 신세까지 지면.....
준하 : (자르며) 신세란 말 좀 그렇다. 왠지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라구요.
빨강 : 남이 그냥 업고 다니면서도 일할 수 있어요.
준하 : 다 해결된 일 가지고 말 길게 하게 만들 거예요?
빨강 : .....
준하 : 빨강씨를 위해서나 남이를 위해서나 이게 최선이에요. 누나한테 업혀 다니는 거 남이 녀석도 죽을 맛일 거라구요.
엄마, 아빠 갑자기 잃고, 녀석도 어리둥절하고 힘들 텐데 좀 편케 해주자구요.
빨강 : 그렇지만 아직 제 형편이.....
준하 : 보너스예요.
빨강 : (보면)
준하 : 장래가 촉망되는 우리 회사 사원을 위한 특별 배려 차원의 보너스라구요. 빨강씨가 몰라서 그렇지,
나 애사심 눈물겨운 사람이거든요. 우리 아버지가 회사 창업멤버 중에 한 분이시라 회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에요.
FC로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는 사원을 위해서 주는 보너스니까 못이기는 척 받아줘요. 자, 가죠. (차 문을 열어주는데)
빨강 : 이러지 않으셔도 되잖아요?
준하 : (보면)
빨강 : 두 분 결혼하시는데?
준하 : (잠시 흔들리고)
빨강 : 그럼 그만하셔도 되는 거잖아요. 이 이상한 연극.
준하 : 못된 면 있네요, 빨강씨.
빨강 : ......
준하 : 남의 마음을 이상한 연극으로 몰아붙이는 거. 타요.
15. 씬. 준하의 차 (낮)
-준하, 빨강 차에 타는데.
준하 : (안전벨트 매주려고 하는데)
빨강 : 제가 해요. (안전벨트 매고)
준하 :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빨강 : 형제분들이 전혀 다르신 거 같으면서도, 진짜 많이 닮으신 거 같아요.
준하 : (시동 걸려던 손 멈추고, 빨강을 보는)
빨강 : 형을 위해서 저같이 이상한 애한테까지 지나치게 친절하신 거나.
냉정하신 것 같으면서도 우리 파랑이 침대에서 재우는 변호사님이나 많이 닮으신 거 같다구요.
준하 : 그야, 형제니까 많이 닮은 거야 당연하겠죠.
빨강 : 처음엔 무슨 출생의 비밀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했어요. 형젠데 어떻게 저렇게 다를 수 있나.
준하 : 우리 형이 독재자 스타일인 건, 우리 엄마가 너무 형만 이뻐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빨강 : (보면)
-순간 스치는. 마트에서의 장면.
/빨강 : (외면한 채로) 세상에 엄마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강하 : .....
/빨강 : (강하의 표정을 보는)
/강하 : .....
/빨강 : 엄마랑 사이 안 좋으셨어요?
빨강 : (약간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준하를 보는)
준하 : 우리 엄마한테 전염 되서 그런지 나도 형이라면 껌벅 죽기부터 하죠. 하지만 빨강씨한테 이러는 건, 형하곤 별개예요.
빨강 : (외면하며) 아니시잖아요?
준하 : (외면한 빨강을 보고) 말했잖아요? 처음엔 빨강씨 말대로 그래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구.
빨강 : ......
준하 : 오래 걸리겠군요. 내 말 믿게 만들려면. 할 수 없죠 뭐. 내가 참아내야지. 원죄가 있는 놈이니까. (차 출발 시키는)
16. 씬. 회사 복도 (낮)
-엘리베이터 앞에서 청소하고 있는 은말, 진주, 장수에게 커피를 건네는.
장수 : (감동해서) 진주씨. 이 비싼 캔 커피를. 그냥 자판기 커피라도 되는데.
진주 : 빨강이를 위해서 어제도 밤새 고생하셨는데 비싼 캔 커피가 문제겠어요.
시간만 있었으면 커피 전문점에 가서라도 사다 드리고 싶은 게 제 진실된 마음이에요.
장수 : 어떻게 진주씨는 한마디 한마디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것처럼 그래요?
은말 : (왝하면서) 아주, 영화들을 찍지. 근데, 단서는 좀 잡힌 거야?
장수 : 그렇게 완벽한 프로가 아마추어처럼 쉽게 단서를 흘리겠어요?
-하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빨강과 준하.
은말 : 어라, 또 같이 오네.
준하 : (인사하고)
은말 : 지금 출근하는 거야?
빨강 : 응. 애들 전학 시켰거든. 첫날이라 데려다 주고 오느라.
진주 : 설마 원팀장님하고 같이?
준하 : 네. 제가 운전기사 노릇 좀 하고 오는 길입니다. 빨강씨, 이따 집에서 봐요. (걸어가는)
은말 : 정말 두 사람 뭐 있는 거 아니야? 애들 학교까지 같이 데려다주고 그러면 뭐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 거 같은데?
빨강 : 그런 거 아니라니까 왜 그래, 은말씨?
진주 : 애들 다 학교 갔으면 남이는? 남이는 어디 있어?
빨강 : .....
17.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책상 앞에 앉아있고, 재영 서있는.
재영 : 어제보단 얼굴 훨씬 나은 거 같은데, 오늘 밤 어때? 꼭 쉬는 날 아니라도 되잖아? 오늘 밤에라도 인사 오는 거?
강하 : 나한테 시간을 주기로 하지 않았냐?
재영 : .....
강하 : 이렇게 급하게 몰아세우면 나 반발심 생길 수도 있어.
재영 : 반발심은 생기겠지만, 거부는 못할 거잖아?
강하 : ......
재영 : 다 오빠를 생각해서야. 시간을 주면 머리만 복잡해질 테니까. 내가 몰아붙일 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따라와 주는 게
오빠를 위해서도 좋을 거 같은데? 아니야?
강하 : (핸드폰 울리는) 네, 회장님? 네. 지금 가겠습니다. (전화 끊고 일어서는)
재영 : (강하 팔 잡고) 할아버지, 걱정 끼쳐드리는 말은 안 할 거지? 어른께 그 정도 예의는 있는 사람일 거라고 믿어.
18. 씬. 회장실 (낮)
-강하, 들어오는, 정회장 앉아있고.
정회장 : (강하 얼굴 보고) 얼굴이 왜 그런 게냐?
강하 : 좀 다쳤습니다.
정회장 : ......30년 가까이 널 봐왔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이구나.
강하 : .....
정회장 : 강하야?
강하 : 네.
정회장 : 재영인 너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하던데.
강하 : .....
정회장 : 사실이냐?
강하 : 네.
정회장 : 저번에 만났을 때는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하진 않았냐? 마음이 바뀔만한 일이라도 있었던 게냐?
강하 :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정회장 : (깊은 시선으로 강하를 보다가) 재영일 사랑하는 거냐?
강하 : 결혼하겠습니다.
정회장 : 내 손주 놈을 사랑하냐고 물었다.
강하 : 결혼 하겠습니다. 회장님.
정회장 : 다시 한 번 물으마. 그 놈을 사랑하는 거냐?
강하 : 나중에 하겠습니다. 결혼해서.....
정회장 : (암담하고) 나중에도 그럴 수 없으면?
강하 : 그냥 살겠습니다.
정회장 : (눈을 감는)
강하 : 죄송합니다. 지금은 이 말씀 밖에는 드릴 수 없습니다.
19. 씬. 회사 엘리베이터 (낮)
-강하, 앞에 서있고, 직원들 인사하며 내리고. 맨 뒤 쪽에 울고 서있는 빨강.
강하 : (당황하고)
빨강 : (울면서 고개 들다가 멍해지고. 꾸벅 인사하고 내리려는데)
강하 : (팔 잡고) 왜 그래요?
빨강 : 아니에요, 아무 것도.
강하 : 왜 그러냐구요?
빨강 : ......
20. 씬. 회사 앞 길 (낮)
-준하, 남자 직원 1,2 와 걸어오는.
직원1 : 그 집 감자국 진짜 괜찮으시죠? 팀장님?
준하 : 그렇네요. (하면서 무심히 고개 돌리는데)
-통창인 커피 전문점 눈에 들어오고. 고개 푹 숙이고 있는 빨강.
-강하, 커피를 가져다 빨강 앞에 놓아주며 맞은편에 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준하 : (흔들리는 표정으로 보는데)
직원2 : 언제 단합 대회 한번 하시죠? 팀장님? 다들 그 집 맛있어 하는데.
준하 : 아, 네. 그러죠. (하면서 걸어가면서, 커피숍으로 눈길을 주는)
21. 씬. 커피숍 (낮)
-빨강, 강하 마주 앉아있는.
강하 : 말 안할 겁니까?
빨강 : 아무 일도 아니라니까요.
강하 : 아무 일도 아닌데, 회사에서 질질 울고 다닙니까?
빨강 : (보는)
강하 : 질질이라고 했는데 버럭 안 해요? 버럭하면서 울만하니까 운다, 이만 저만한 사정이 있는데 그럼 울지 안 울게 생겼냐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 진빨강씨답게?
빨강 : 저다운 게 제일 문제예요.
강하 : 그게 무슨 말이에요?
빨강 : 이젠 괜찮은 FC가 되가나보다 했는데, 역시 전 있으나마나 미스진이었던거예요.
강하 : 툭툭 던져대지 말고, 앞뒤 얘기를 자세히 해봐요.
빨강 : 얼마 전에 200만원이나 되는 고액 계약 따내고 신나했어요.
강하 : 잘했네요. 근데 그게 왜요?
빨강 : 오늘 가입해주셔서 고맙다고 선물 들고 인사하러 갔었는데.....
강하 : 갔었는데요?
빨강 : 오늘 새벽에 공장에 불이 났대요.
강하 : ......
빨강 : 아무 것도 안 남고 다 타서..... (울먹이는) 사람도 한 사람 다치고...... 유예기간도 지나서 보험료를 돌려드릴 수도 없구...
강하 : .....
빨강 : 그 계약 아무래도 해약해야 하시겠다구.
강하 : (안쓰럽지만, 억지로 센 척 하면서) 아, 그만 일로 뭘 울고 그럽니까? 보험일 하다보면 그런 일은 다반사지.
수당 안나올까봐 그런가본데, 할 수 없지 어떡합니까?
빨강 : (답답해서 보며 욱하는) 저 때문이라구요. 그 놈의 수당에 눈이 멀어서 무조건 큰 액수를 권해드렸다구요.
갑자기 큰 일 당하셨는데, 그럴 때 2백 만원이 어디예요? 그런데 저 때문에 2백 만원을 홀랑 날리게 생기셨단 말이에요.
강하 : 그렇다고 그만 일에 웁니까? 그렇게 약해 빠져서 애들 데리고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
빨강 : 누군 울고 싶어서 울어요?
강하 : ......
빨강 : 그냥 눈물이 나는데 어떡하냐구요?
강하 : (흔들리는 눈빛으로 보다가 고개 돌리며) 아, 커피나 마시고 일어섭시다. 난 무슨 큰일이나 난 줄 알았네.
빨강 : 저기......
강하 : (보면)
빨강 : 결혼....축하드려요.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세요.
강하 : (보다가) 난 회의 있어서 먼저 일어서야겠네요. 커피 마시고 들어와요. (일어서서 걸어가는)
빨강 : ......
강하 : (복잡한 심정으로 걸어가는)
22. 씬. 회장실 (낮)
-정회장, 재영 앉아있는.
정회장 :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거라.
재영 : (보면)
정회장 : 그 녀석이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냐?
재영 : 알아요.
정회장 : 그런데도 굳이 결혼을 해야겠어? 왜? 널 사랑하지도 않는 놈을 붙잡아서 어쩌려구?
평생 마음 고생하면서 살 일이 두렵지도 않냐? 네 놈이 왜?
재영 : 제게 필요한 사람이니까요.
정회장 : (보면)
재영 : 강하 오빠, 제겐 완벽한 파트너니까요. 아직도 죽은 강하 오빠 아버님 편이었던 간부들이 건재해 있는 상황이에요.
어느 순간 강하 오빠가 마음만 잘못 먹으면 회사가 양분될 수도 있다는 건 할아버지도 모르지 않으실 거예요.
정회장 : 재영아?
재영 : 네.
정회장 : 넌......진심으로 강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냐?
재영 : 사랑해요, 강하 오빠.
정회장 : 하지만 네 말은 강하보다는 회사가 먼저인 것처럼 들리는구나.
재영 : 제 사랑만큼 우리 회사도 제겐 소중할 뿐입니다. 소중한 두 가지를 한꺼번에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구요.
우리 회사와 관계없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강하 오빠를 사랑하고 있어서...
정회장 : 네 녀석은 젊은 시절에 날 너무 많이 닮았어. 그래서 네 녀석이 늘 안타깝다. 난 가족조차 나몰라라 하고
사업에만 미쳐 있던 내 과거가 한스러운 사람이다. 난 네 녀석이 나와 같은 길을 걷는 걸 바라지 않는다.
재영 :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전 가정과 일 둘 다 완벽하게 성공시킬 자신이 있어요.
정회장 :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마지막 단추는 낄 구멍이 없게 되는 법이다.
재영 : 강하 오빠가 결혼을 하겠다고 한 이상,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워진 거예요.
23. 씬. 사무실 (낮)
-팀장, 앉아있고, 그 옆에 빨강.
빨강 : 죄송해요. 전 아직 너무 멀었나 봐요.
팀장 : 벼락치기가 왜 문제인 줄 아니?
빨강 : ......
팀장 : 시험은 잘 볼지 모르지만, 그건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니거든. 그날 하루만 내 머리 속에 있는 거니까.
오늘 시험 범위를 다 못 본다 해도,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넘어가는 게 진짜 공부야. 무슨 말인지 알아?
빨강 : 네.
팀장 : 큰 일 당하시고 경황없으실 텐데, 가서 뭐든 도와드려. 그게 너 때문에 큰 손해 보게 되신 고객님께 네가 해드릴 일이야.
24. 씬. 인구 사무실 (낮)
-인구, 강하 앉아있는.
인구 : 뭐? 미국 지사?
강하 : 1년이 길면 6개월도 상관없습니다.
인구 : 강하야, 너 왜 그러냐? 뜬금없이. 결혼 날짜 받을 일만 남았는데, 갑자기 미국 지사가 웬 말이냐구?
강하 : 결혼 전에, 더 경험을 쌓아두고 싶습니다.
인구 : 아니, 네가 무슨 경험이 부족하다구 이러냐? 이러길. 미국 지사 경험을 안 해 본 것도 아니구?
강하 : 보내주십쇼.
25. 씬. 회사 복도 (낮)
-재영, 준하 걸어오는.
준하 : 회의 때 직원들 좀 다그치지 마라. 다들 살벌해서 살겠냐?
재영 : 실적이 제자리걸음인데도 위기의식이 없잖아? 다들 너무 무사안일주의야.
-인구, 걸어오는. 준하, 재영 인사하고.
재영 : 퇴근하세요?
인구 : 어떻게 된 거야?
재영 : 네?
인구 : 강하 미국 지사로 가겠다는 거 말이야?
재영 : (굳어지고)
인구 : 몰랐어?
재영 : .....
준하 : (당황하고)
인구 : 말로는 결혼 전에 경험을 더 쌓고 싶다는데, 지가 더 쌓을 경험이 왜 필요하냐구? 니들 혹시 싸웠냐?
어제 인사 오기로 해놓고, 안 왔다고 너 바가지 긁고 그런 거야? 임마, 결혼 전에 남잔 싱숭생숭이 이만 저만이 아니야.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그러지 마.
26.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책상 앞에 앉아 일하고 있고, 화가 나서 들어오는 재영, 뒤 따라 들어오는 준하.
재영 : 무슨 말이야? 지금 이 시점에서 미국 지사 얘기가 왜 나와?
강하 : .....
재영 : 왜 나오는 거냐구 묻잖아?
강하 : 그냥 좀 떠나 있고 싶다.
재영 : 이러는 거 아닌 거 같은데요, 원강하씨?
강하 : .....
재영 : 오빠만 반발심 있는 거 아니야. 내 반발심이 무슨 짓을 할지 예상 안 되는 거 아니잖아? 사람 그렇게 만들지 마. (나가는)
준하 : 재영이 뭐라고 한 거야? 반발심 얘기가 뭐냐구?
강하 : 나가봐라.
준하 :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강하 : 그런 거 아무 것도 없어.
준하 : 재영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잖아?
강하 : 도망치려는 내가 미워서 하는 말이야.
준하 : 도망치려는 거야?
강하 : ......
준하 : 도망치고 싶을 만큼 싫은 결혼을 대체 왜 하려는 건데?
강하 : 나 아니면 죽겠다는 애니까.
준하 : ......
27. 씬. 준하의 사무실 (낮)
-준하, 들어오면, 재영 서있는.
준하 : 왜 여기 있어?
재영 : 우리 오늘 셋이서 술 마시자.
준하 : (보면)
재영 : 결혼이 겁나서 내빼려는 느네 형 잡아야 할 거 아냐?
준하 : ......
재영 : 네가 데려와 줘. 네 형. 친구를 위해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준하 : 그거 하나만 묻자. 내 반발심이 무슨 짓을 할지 예상 안 되는 거 아니잖아. 무슨 뜻이야?
재영 : (흔들리다가, 단호하게)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야.
준하 : 그건. 저번에도 써먹었던 방법이잖아? 그땐 안 먹혔던 방법이구.
재영 : 우리 엄마, 우리 아빠와 결혼하기 위해서 음독 하셨었어.
준하 : ......
재영 : 몰랐지?
준하 : 응.
재영 : 강하 오빠도 모르는 일이야. 내가 그런 엄마의 딸이라는 거 얘기 했어. 나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구.
그냥 협박하려는게 아니라, 정말 그럴 수 있다구. 엄마, 얘기까지 하는 게 섬뜩했나봐. 그래서 백기 든 거야, 네 형. (나가는)
준하 : .....
28. 씬. 동대문 옷가게 (낮)
-빨강, 열심히 손님에게 옷 대보고 있는.
빨강 : 이 스타일 손님한테 정말 잘 어울리신다. 아니네, 손님은 진짜 무슨 옷을 대봐도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리세요.
몸 관리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저 좀 알려주세요.
손님 : 뭐 몸매 좋으신데.
빨강 : 아니에요, 손님에 비하면 전 새발에 피죠. 이거 입어보세요. (손님, 옷 들고 탈의실 장막 속으로 들어가는)
주인 : (다른 손님에게 돈 받고, 고마워서 빨강을 보는) 이렇게까지 할 거 없는데.
빨강 : 큰 손해 입혀드렸는데, 뭐라도 해야죠.
주인 : 내가 좋아서 든 보험인데, 빨강씨가 잘못한 게 뭐 있어?
빨강 : 고객님의 잘못된 선택을 수정해드리지 못한 잘못이 얼마나 큰데요. (울리는 전화벨) 네? 어, 주황아.
29. 씬. 거실 (낮)
-피자 배달원에게 돈 주고 있는 태규. 아이들 청소하고 있고.
-주황 전화 받는.
주황 : 파랑이랑 남이 다 데리고 출근한 거야? 어. 놀이방? 거기 비싸지 않아?
태규 : 내가 보면 되는데 왜 놀이방에 맡기고 그러지?
주황 : 알았어. 어디? 아.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알아, 찾아갈 수 있어. 내가 가서 남이 찾아올게.
근데 늦게까지 일 해야 해? 밥 꼭 챙겨 먹어? (전화 끊고)
노랑 : 남이랑 파랑이 놀이방에 있대? 남이랑 파랑이는 좋겠다, 학교 가서 공부 안하고 놀이방에서 실컷 놀고.
초록 : 언니, 제발, 그런 말 하면 창피하지 않아?
노랑 : 내가 뭘.
태규 : 자, 자, 피자 먹고 파랑이랑 남이 찾으러 가자.
초록 : 오빠, 피자도 좋은데요.
태규 : 왜 딴 거 먹고 싶어?
초록 : 아침 상 차리는 거하고, 피자하고 어떤 게 더 감동의 물결일 거 같아요?
30. 씬. 술집 (밤)
-강하, 술 마시고 있는.
준하 : (전화 중) 남이랑 파랑이 잘 놀고 있죠?
강하 : (보는)
준하 : 네? 아, 네, 우리 애들이 데려갔군요. 알겠습니다. (전화 끊는, 강하에게) 남이랑 파랑이 놀이방에 있거든.
-재영, 걸어오는.
재영 : 혹시나 해서 집에 가는 길에 들러봤는데, 또 역시나네. (앉고) 잘됐다. 준하야. 오늘 강하 오빠 술 퍼 먹여서
미국 지사 껀 포기하게 만들자.
-시간 경과.
-강하, 재영 술 마시고 있는.
재영 : 포기해줘. 미국 지사.
강하 : 6개월만 시간을 좀 줘라. 가서 생각 좀 정리하고 올 테니까.
재영 : 정리해야 할 생각이 뭐가 있는데?
강하 : 나....너하고 결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야.
재영 : .....
강하 : 그런데 너하고 결혼해야 하는 사람이구. 그럼 6개월 정도는 혼자 있게 해줘도 되는 거 아니냐?
-준하, 손 씻고 걸어오는.
재영 : (강하와 준하를 번갈아 보고)
준하 : (자리에 앉으며) 포기 시켰냐?
재영 : (묘하게 웃으며) 그런데 말이야. 이상해. 준하 넌 느네 엄마랑 쏙 빼닮았는데, 강하 오빠는 왜 엄마랑 하나도 안 닮은 걸까?
강하 : (확 올라오는 느낌으로 재영을 보고)
재영 : (강하의 표정을 의식하면서 술에 취한 척) 성격도 그렇지 않나? 준하, 너 느네 엄마 성격 그대로지?
준하 : 갑자기 왜 우리 엄마 얘기는.....
강하 : (일어나서 재영의 팔을 잡아끄는)
재영 : 왜 그래? 오빠?
준하 : (의아하게 보는)
31. 씬. 술 집 앞 (밤)
-강하, 거칠게 재영의 팔을 잡아끌고 나오는.
강하 : (팔 놓으면서) 이렇게까지 치사해야겠니?
재영 : 날 이렇게 만든 건 오빠야. 그러니까 왜 날 이렇게 치사하게 만들어?
-나오는 준하.
강하 : (재영 보다가 준하 못보고) 그래, 하자. 결혼. 해버리자. 그깟 결혼.
재영 : (멍해지는)
강하 : 해버리자구. 그깟 결혼. 못할 거 없어. 하자구, 해. (돌아서서 걸어가 버리는)
재영 : (눈물이 뚝 흘러내리고)
준하 : (다가오는)
재영 : (준하를 보고) 저 남자, 느네 형. 나랑 결혼한대. 하겠대. 그깟 결혼.
준하 : 원하던 대로 됐는데, 왜 또 울어?
재영 : 그깟 결혼을 해버릴 여자가 헤헤거리는 건 더 웃기잖아?
준하 : 울지마. 정재영. 그건 네가 아니야. 뭘 하든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그냥 헤헤거려.
재영 : 원준하?
준하 : .....
재영 : 너까지 왜 이래? 넌 이러면 안 되잖아? 넌 내 친구잖아? 이럴 때, 말만 그렇게 하는 거야, 우리 형.
원래 못돼 먹은 사람이잖아. 그래도 결혼 한다는 게 어디야. 어쨌든 축하한다. 그래줘야 하는 거잖아? 너?
준하 : 네 친구라서.....내 둘도 없는 친구라서.....언제나 네 편이었어. 그래서 우는 네가 싫었고.
당당한 네가, 무슨 일에도 울지 않는 네가 내 친구라서 좋았어. 근데 정재영.
재영 : .....
준하 : 이상하게 우는 네가 마음 아프지 않다, 이젠.
재영 : .....
준하 : (돌아서서 걸어가는)
재영 : (소리치는) 원준하 너까지 이러지마. 너까지 내 편 아니면 난 어떡하라구?
준하 : (걸어가는)
32. 씬. 재영의 방 (밤)
-재영, 술에 취해 들어오는. 따라 들어오는 민경.
민경 :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셔?
재영 : 가서 주무세요.
민경 : 강하 미국 지사로 가겠다고 했다면서?
재영 : (짜증스럽고)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민경 : 그런 말이 나온 건 사실이잖니?
재영 : 안 간다구요, 안가. 그냥 결혼 할 거라구.
민경 : 너랑 결혼 피해서 미국 지사로까지 가겠다는 앨 꼭 잡아야겠니? 그런 결혼을 꼭 해야겠냐구?
재영 : (돌아서서 매몰차게 보면서) 엄마도 그랬잖아요? 우유부단한 아빠 잡으려고, 엄마 싫다는 할아버지 마음 돌리려고
목숨까지 걸었잖아? 그래도 난 목숨까진 안 내놓고 원하는 사람 잡았으니 된 거 아니야?
민경 : (톤 높여서) 넌..... (감정 가라앉히고) 노름빚 때문에 딸 손잡고 술집에 가져다 파는 아버진 없었잖아?
재영 : ......
민경 : 대야 이고 장바닥에 나가 앉을 용기도 없는 무능한 엄마는 없었잖냐구? 누나가, 언니가 술집에 나가든 말든,
그렇게 번 돈으로 사온 쌀로 밥해주니까 그것만 좋아라 하는 동생 셋은 없었잖아?
그런데 네가 왜 나처럼 살아? 내가 어떻게 해서 얻은 자식인데? 네가 나한테 어떤 자식인데?
재영 : 나 때문이라고 하지 마. 엄마 자신을 위해서였잖아?
민경 : (굳어져서 보는)
재영 : 지긋지긋한 가난, 떨거지 같은 가족들한테 벗어나기 위해 그런 거였잖아?
민경 : .....
재영 : 그러니까 제발 네가 나한테 어떤 자식인데 이러냐구 하지 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게 엄마가 원하는 삶 아니야?
사랑 때문이 아니라, 야망 때문에 선택하는 결혼, 그럼 등이라도 두들겨줘야지. 엄마한테 보고 배워서 이렇게 사는 딸,
대견하다 그러셔야지.
민경 : (뺨을 갈기는)
재영 : .....
민경 : 다들 그러지. 이민경이 사랑도 없이, 애 하나 가진 걸 기회로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구.
우유부단한 남자, 잡기 위해 자살 소동까지 벌였다구. 정말 죽으려 한 게 아니라, 쇼였다구.
재영 : ......
민경 : 그래,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그랬으니까. 잘 했다구. 죽으려 약까지 먹은 자식한테 잘 했다구 그랬어.
그래야지, 성공한다구. 왜 대견하다구 못해 주냐구?
재영 : ......
민경 : 정말 죽으려고 했으니까. 네 아버지 자식이 맞냐고 의심 받는 너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 세상에 널 내놓느니 차라리 같이 죽자 했으니까. 그래서 나 네 등 못 두드려 줘. (돌아서는)
재영 : 미안해요. 잘못 했어요.
민경 : (돌아선 채로) 꼭 강하가 아니어도 돼. 필요해서 하는 사랑이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구.
넌.....그냥.....사랑 받고 사는 여자로 살아. 너무 무거운 짐 짊어지려 하지 말구.
재영 : 왜 강하 오빠여야 하는지 모르겠어.
민경 : (보는)
재영 : 어려서부터 저도 이뻐하지 않으시는 할아버지가 강하 오빠는 귀여워하시니까.
살갑게도 굴지 않는데, 강하 오빠는 마음에 들어 하시니까. 그래서 좋았던 거 같아. 나도 못 받는 사랑, 받는 강하 오빠가.
민경 : (애잔하게 보는)
재영 : 그러다보니 그냥 강하 오빠와 꼭 결혼해야겠다 그래졌어.
민경 : 아버지와 나 때문인 거니? 할아버지한테 인정 못 받는 아버지와 엄마 대신해서 인정받고 싶어서?
재영 : 어려선 그랬던 거 같은데, 처음엔 그래서 바라봤는데, 지금은 그 사람 밖에 안보여.
그러니까 야망 때문이라고만은 생각하지 말아줘요. 사랑을 못 받는 한이 있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은 거니까.
민경 : .....
33. 씬. 인구의 방 (밤)
-인구, 잠들어 있는, 민경 침대에 앉아, 인구의 머리칼을 넘겨주면서.
민경 : 당신하고 나, 우리 재영이 한테 어떡해? 우리 재영이 한테 지은 죄 다 어떡해?
34. 씬. 지하철 앞 (밤)
-빨강, 계단 올라오는. 준하, 서있는.
빨강 : (놀라서) 팀장님?
준하 : (미소 짓고)
빨강 : 왜 여기 계세요? 차는 어떡하시구요?
준하 : 버리고 왔어요.
빨강 : 어디다가요?
준하 : (웃으며) 아무데나.
빨강 : 그럼 추운데 빨리 집에 들어가시지.
준하 : 나 한잔 더 하고 싶은데, 술친구 좀 해줄래요?
빨강 : .....
35. 씬. 포장마차 (밤)
-준하, 빨강 앉아있는. 주인 소주와 안주 가져다 놓는.
준하 : 좋은 데서 사줄 수 있는데.
빨강 : 집에서 제일 가깝잖아요? 남이 보챌지도 모르는데 빨리 들어가 봐야죠.
준하 : (소주 따르는) 자, 건배 하고.
빨강 : (술잔을 마주치고 그냥 내려놓는)
준하 : 술 못 마셔요? 좀 마실 것 같은데?
빨강 : 이젠 안 마셔요.
준하 : (보면)
빨강 : 예전엔, 엄마 아빠 돌아가시기 전엔, 네, 술 좀 푸고 살았어요. 맨날 오르지 못할 나무 올려다보느라 속이 많이 탔었거든요.
진주 언니한테 술 사게 만들고 주정이랍시고 주접 좀 떨며 살았어요.
준하 : 오늘은 마시고 싶을 거 같은데?
빨강 : (보면)
준하 : 그렇게 오래 쫓아다녔던 사람이 결혼한다잖아요?
빨강 : 그게 왜요? 그냥 길게 꾼 꿈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 때문에 뭐 하러 술까지 마셔요, 없어 보이게.
준하 : 그럼 없어보이게 나만 마셔야겠네. (하면서 술을 쭉 마시는)
빨강 : 전 속은 시원 했어요. 여기 저기 떠들고 다녔으니까. 나 저 사람 진짜 좋아, 지금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꼭
내 사람으로 만들 거야. 다들 비웃는데도 정신 줄 놓은 인간처럼 마구 떠들고 다녔어요.
그래서 짝사랑이지만 속이 터져 죽을 거 같진 않았어요.
준하 : 어떻게 확신하게 됐어요? 내가 그 여잘 짝사랑한다구?
빨강 : 변호사님이 우리 애들이랑 같이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팀장님은 제일 먼저 정재영씨부터 봤거든요.
준하 : (쓰게 미소 지으며) 형수 될 사람 눈치를 본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빨강 : 근데 그때마다 변호사님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은 표정이었어요, 팀장님.
준하 : 차라리 보험 설계사 대신 탐정을 하지 그랬어요?
빨강 : 왜.....한 번도 고백할 생각을 못했어요? 형이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인데?
준하 : 그 여자가 우리 형을 사랑하니까. 형 껀 건드리면 안 된다구 우리 엄마가 매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으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건 줄로 알았어요.
36. 씬. 강하의 집 앞 (밤)
-빨강, 준하 걸어오는.
준하 : (비틀하는)
빨강 : (얼른 부축하면서) 괜찮으세요?
준하 : 괜찮아요. 나 술 세요. 허여멀건 해서 깡도 없어 보이지만, 나 우리 형보다 술도 훨씬 세요.
빨강 : 센 척 안하셔도 돼요. 소주 세 병이나 혼자 드셨는데, 비틀거리는 거 창피해하실 거 없다구요.
준하 : (웃으며) 우리 비밀 결사대 말이에요.
빨강 : 그게 왜요?
준하 :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가고 싶은 비밀까지 들켰는데, 절대 해체하면 안 되지 않겠어요?
빨강 : .....
준하 : 비밀 하나 더 알려줄까요? 우리 비밀 결사대의 우의를 다지기 위해서?
빨강 : 뭔데요?
준하 : 그 애가 우는데도 돌아서 왔어요.
빨강 : ......
준하 : 나란 놈 예전엔 절대 그럴 수 없는 놈이었거든요. 그 애가 울면, 돌아서지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어요.
빨강 : 어쩌면.....
준하 : (보면)
빨강 : 더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겠죠.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준하 : (하는데 멀리서 걸어오는 강하가 눈에 들어오고)
-빨강의 반대편으로 걸어오는 강하, 빨강은 보지 못하고.
강하 : (서있는 두 사람을 보는)
준하 : (강하를 보면서, 와락 빨강을 끌어안는)
강하 : (굳어지고)
빨강 : (놀라는)
준하 : 어떻게 하면 믿어 주겠어? 그게 아니란 거. 당신 짝사랑이 끝났다고 하는 것처럼 나도 끝난 거 같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빨강 : (밀쳐내려고 하면서) 이러지 마세요.
준하 : (더 꽉 끌어안으며) 아직도 안 끝난 건가? 그래서 내가 널 보게 됐다고 말하는 걸 듣고 싶지 않은 거야?
빨강 : (밀쳐 내고) 제발 이러지 마시라구요. 슬프면 슬픈 대로 혼자 견디세요. 이런다고 위로가 되지는 않아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술친구 정도만이에요. (집으로 들어가는)
준하 : (허탈하게 서있는)
강하 : (다가오는) 그만해도 된다.
준하 : (보는)
강하 : 나 재영이와 결혼 할 거니까, 애쓰지 않아도 된다구.
준하 : 내가 저 여자한테 이러는 게 형 때문에 애쓰는 것처럼 보여?
강하 : 아니면? 넌 나보다 끈질긴 놈이야. 하나 밖에 모르는 놈이라구. 쉽게 마음이 바뀌는 놈이 아니라는 거 알아.
그러니까 저 여자 상대로 서툰 게임은 그만둬.
준하 : 게임이 아니라면?
강하 : 또 진심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준하 : .....
강하 : 그 말을 내가 믿을 거 같냐?
준하 : 왜 재영이와 결혼 해?
강하 : ......
준하 : 저 여자 때문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어?
강하 : ......
준하 : 저 여자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냐구?
강하 : ......
준하 : 저 정도 상대한테 흔들리는 게 싫은 거 아냐? 흔들리긴 하지만, 선택은 할 수 없는 거 아니냐구?
강하 : 그러는 넌? 진심으로 이게 게임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냐?
준하 : .....
강하 : 너하고 내가 게임에서 다른 점이 뭔지 알아?
준하 : .....
강하 : 난 여자들한테 환상을 심어주진 않아. 낚인 여자한테는 관심이 없으니까.
하지만 넌 한번 낚은 여자는 절대 놔주지 않지. 네 여자를 만들지도 않으면서.
준하 : 그래서?
강하 : 그게 더 잔인할 수 있다는 거 생각해본 적 있냐?
준하 : 지금 진빨강이 나같이 잔인한 놈한테 놀아날까봐 걱정하는 거야?
강하 : .....
준하 : 재영이와 곧 결혼할 거면서 진빨강이 나같이 잔인한 놈한테 걸릴까봐 걱정을 하신다.
차라리 솔직해져, 형. 저 여자가 걱정 된다구. 저 여자를 선택할 용기는 없지만, 흔들리는 자신이 두려워서
하고 싶지 않은 결혼까지 억지로 하는 거라구. 아니면 다 관둬버려. 흔들리지만 선택을 할 수 없는 여자도 그냥 놔두고,
하고 싶지 않은 결혼도 하지 마. 그럼 재영이도 비참해지지 않을 거잖아.
강하 : 난 재영이와 결혼한다.
준하 : 그러면서 왜 진빨강을 걱정해? 내가 데리고 놀든 말든?
강하 : 네가 스스로 왜 나란 놈은 이렇게 잔인한가 괴로워하게 될까봐. 내가 걱정하는 건 그것 뿐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준하 : (벽에 주먹을 날리는)
37. 씬. 지하방 (밤)
-아이들 잠들어 있고, 빨강, 전화 버튼 누르는.
38. 씬. 정회장 서재 (밤)
-정회장, 책상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전화 받는.
정회장 : 빨강이냐? 이렇게 늦게 웬 일이냐? 무슨 일 있어?
39. 씬. 지하방 (밤)
빨강 : 할아버지? 저 정애 아줌마 찾아드리면 그 돈 저 주실 거죠? 3천 만원?
40. 씬. 정회장 서재 (밤)
정회장 : 그럼. 주고 말고, 왜 뭐 생각난 거라도 있냐?
41. 씬. 지하방 (밤)
빨강 : 아니요, 아직은요. 하지만 꼭 생각해낼 거예요. 그 돈이 꼭 필요하거든요.
우리 애들 데리고 마음 편히 살 집이 꼭 필요하거든요.
정회장E : 왜? 그 집에 무슨 문제 있냐? 계약 연장까지 해주고 잘해준다면서?
빨강 : 네. 너무 잘해주셔서요. 너무 잘해주시니까 부담스러워서요. 불쌍해서 너무 생각해주시는 게 미안해서요. (눈물이 글썽한)
42. 씬. 강하의 집 전경 (새벽)
43. 씬. 식당 (새벽)
-빨강, 들어오는데, 엉망인 부엌. 채소란 채소는 다 늘어놓고, 밀가루가 바닥에 쏟아져 있고.
밥은 타고 있고, 찌개는 끓어 넘치고.
-태규, 테이블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빨강 : (놀라서 가스대 앞으로 가서 밥뚜껑 열다가 손 데고) 우태규, 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니?
태규 :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빨강 : 이게 웬 난리야?
태규 : 밥 되는 동안 잠깐 눈 좀 붙이려고.
빨강 : 누가 너더러 밥 하라고 하디?
태규 : 나도 뭔가 보여줘야 할 거 아냐? 나도 내 사랑을 증명해야 할 거 아니냐구?
44. 씬. 거실 (새벽)
-강하, 2층에서 출근 복장으로 내려오고. 준하 방에서 나오는.
-식당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두 사람 다 멈추고.
태규E : 작은 삼촌이 하는 거 나도 할 수 있단 말이야. 나도 자기 도와줄 수 있다구. 내 사랑이 어떤 건지 보여줄 수 있다구.
왜 그렇게 내 마음을 몰라줘.
빨강E : 내가 정말 석 달 계약 기간만 끝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간다.
태규E : 왜 그래? 자기? 내 사랑을 정말 그렇게 모르겠어?
빨강E : 정말 징글징글해서 못살겠다. 이 집 식구들은 왜 다들 사랑 타령인데?
배부른 사람들이 하는 사랑 놀음 난 관심 없다구, 관심 없단 말이야.
강하 : (현관을 나가는)
준하 : .....
-F.O
45. 씬. 한정식 집 정도의 장소 (낮)
-강하, 준하, 태규, 정회장, 인구, 민경, 재영 마주 앉아 식사하는.
인구 : (준하에게) 시동생 시집살이도 만만찮다는데 준하 너도 그럴 건 아니지?
준하 : (어색하게 미소 짓는)
인구 : 아니다, 그럴 거 없이, 강하 너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건 어떠냐?
강하 : ......
인구 : 시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 그럼 준하랑 조카도 편할 거구, 재영이 계속 회사일 해야 하는데
집안 살림 걱정 없이 회사 일에만 매진할 수 있고. 거 정말 갑자기 생각난 거지만 굿아이디어네. 그렇죠 아버지?
정회장 : 처가살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인구 : 저희가 뭐 서로 서먹한 사인가요. 강하 쟨 제 아들이나 다름없는데.
안 그래? 여보? 강하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거 괜찮은 아이디어지?
민경 : 원변호사가 불편할 거예요.
인구 : 불편할 게....
민경 : (인구 지긋이 누르며) 그냥 식사나 하죠.
인구 : (구시렁) 굿아이디어 맞는데....
민경 : 난 약혼식도 했으면 좋겠는데, 어때요? 원변호사?
재영 : 엄마, 무슨 약혼식을 해요. 그냥 우린 결혼하기로 했는데.
민경 : 우리 집에선 한번 밖에 없는 혼사야. 해도 되죠? 원변호사?
강하 : 네, 그러시죠.
46. 씬. 강하의 집 전경 (밤)
47.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잠이 들어 있다가 눈을 뜨는, 발치에서 잠이 든 파랑.
강하 : (깊은 시선으로 보는)
48. 씬. 거실 (밤)
-강하, 파랑을 안고 내려오는.
-빨강, 지하방에서 나오는.
빨강 : 파랑이 또?
강하 : (빨강에게 파랑 안겨주고 돌아서서 올라가는)
49.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들어와서 문을 잠그는.
50. 씬. 강하의 집 전경 (아침)
51. 씬. 강하의 방 (아침)
-강하,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가는.
52. 씬. 2층 거실 (아침)
-강하, 방에서 나오는데, 문 앞에서 쪼그리고 잠들어 있는 파랑.
강하 : (순간 안쓰럽지만, 참으면서) 야, 임마, 일어나, 일어나.
53. 씬. 거실 (아침)
-강하, 파랑을 데리고 내려오는.
-준하, 방에서 나오는.
강하 : 이봐요. 진빨강씨.
-빨강, 식당에서 뛰어나오는.
빨강 : 네? (파랑 보고) 너 또? 죄송해요, 변호사님. 제가 밥하는 사이에 또 올라갔었나 봐요.
강하 : 애가 몽유병이면 치료를 받게 해야지. 언제까지 사람을 귀찮게 할 겁니까?
준하 : 그거야, 형이 참아주니까.
강하 : 앞으론 얘 좀 올라오지 않게 해주시죠. (하고 올라가 버리는)
파랑 : (울상이 되어 있는)
준하 : 파랑이 아저씨랑 병원 가보자.
파랑 : 누나, 변호사 아저씨 왜 저래?
빨강 : .....
54. 씬. 웨딩홀 (낮)
-재영, 강하, 소영. 둘러보고 있는.
소영 : 경건하고 성스런 분위기의 채플형 홀이에요. 로맨틱한 예식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한 곳이죠.
재영 : 좋네요. 그날 예약은 가능한 거죠?
소영 : 그럼요. 불가능해도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귀한 손님들이신데.
재영 : 다음 주 토요일이 약혼식인데. 약혼 드레스도 여기서 맞출 수 있을까요?
소영 : 그럼요. 근데 다음 주에 약혼 하세요? 그럼 약혼 기간이 3주 밖에 안 되는 거잖아요?
재영 : 어른들이 원하셔서 할 수 없이 하는 약혼식이에요.
소영 : 네. 어른들은 그런 거 따지시죠 왜. 오세요. 저 쪽이 드레스샵이에요.
재영 : (강하를 보면)
강하 : (아무 관심이 없는)
재영 : (그런 강하가 마음에 걸리지만, 애써 밝은 표정으로) 준하 친구가 웨딩홀을 하니 다행이지?
강하 : (대꾸 없이 걸어가는)
55. 씬. 병원 진료실 (낮)
-의사, 빨강, 준하, 파랑 앉아있는.
의사 : 중추신경계가 늦게 발달하는 아이들에게 종종 있는 증셉니다. 성장하면 대부분 없어지지만,
수면 중에 보행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약물 치료를 하는 게 좋겠군요.
56. 씬. 병원 복도 (낮)
-빨강, 준하, 파랑 걸어오는.
빨강 : 저 혼자 데려오겠다니까.
준하 : 계속 그럴 거예요? 사람 무안하게 왜 그래요?
빨강 : 팀장님 배려 부담스럽거든요.
준하 : (멈춰 서는)
빨강 : .....
준하 : 정말 못된 거 알아요?
빨강 : .....
파랑 : 나 쉬....
준하 : 응. 저기 화장실.
파랑 : (뛰어가고)
준하 : 사람이 내 말 좀 들어라,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빨강 : 듣지 말아야 할 말을 왜 들어요.
준하 : (빨강 어깨 잡는)
빨강 : ......
준하 : 지금은..... 사랑한다는 말까진 못해.
빨강 : ......
준하 : 하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 당신이라곤 말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
빨강 : .....
57. 씬. 드레스샵 (낮)
-재영, 드레스 입고 있고, 그 옆에 소영.
소영 : 불편한 데 없으시죠?
재영 : 네. 잘 맞는 거 같네요.
소영 : 그 회사 여자 분들은 다 이렇게 몸매가 좋으신 건가요?
재영 : (보면)
소영 : 얼마 전에 진빨강씨도 여기서 웨딩드레스 입어봤거든요. 아세요? 진빨강씨란 FC 분?
재영 : 진빨강씨도 여기 왔었나요?
소영 : 네. 준하가 보험 때문에 소개 해줘서. 오랜 친구지만 누굴 소개하고 그런 일 없는 친구라서 희한했어요.
준하가 어떤 감정인지 궁금해서 진빨강씨한테 웨딩드레스 입혀서 보여줬어요.
재영 : (보면)
소영 : 실은 제가 준하 많이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자학하는 심정으로 그랬는데.
(피식 웃으며, 민망한 느낌으로) 저 너무 솔직하죠? 이게 제 병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사이코 기질이라고도 하는데.
재영 : .....
58. 씬. 드레스샵 (낮)
-강하, 앉아있는. 울리는 핸드폰.
강하 : 여보세요? 파랑이냐? (일어서는) 너 어디야? 거기?
-뛰어나가는.
-커튼 열리고. 소영, 재영.
소영 : 신부님이 정말 마음에 드실 거예요. 어, 어디 가셨지?
직원 : 전화 받고 뛰어나가셨어요.
재영 : (굳어지는)
59. 씬. 병원 복도 (낮)
-준하, 빨강, 놀라서 뛰어다니는.
60. 씬. 길 (낮)
-강하, 운전하고 오다가 길에 서있는 파랑 보고 차 세우는.
강하 : (차에서 내리는) 너 어떻게 된 거야?
파랑 : 길 잃어버렸어요.
강하 : 그럼 누나한테 전화 해야지, 왜 나한테 전화를 해?
파랑 : .....
강하 : 너 길 잃어버린 거 맞아?
파랑 : .....
강하 : 이 자식, 너 왜 그래?
파랑 : (강하에게 안기면서) 길 잃어버린 거 아니에요. 아저씨한테 할 말 있어서 그런 거예요. 아저씨?
강하 : .....
파랑 :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지 마세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