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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의 희생 위에 세워진 유산 대한민국
애국애민 사상 투철한 장보고의 신념에 관한 고찰
대한민국(大韓民國)이 누리는 평화(平和)와 번영(繁榮)이 장보고 같은 영웅(英雄)들이 아낌없는 희생(犧牲) 위에 세워진 위대한 유산(遺産)이 아닌가 한다.
모두를 위한 희생을 기억(記憶)하는 나라는 마래(未來)가 있고, 장보고의 헌신(獻身)에 보답(報答)하는 공동체(共同體)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우리는 장보고의 명예(名譽)를 지키고, 그 숭고(崇高)한 뜻이 미래 세대(世代)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最善)을 다하는 국민(國民)이 되어야 한다.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예우(禮遇)로 보답하는 나라, 장보고의 영웅도 잊지 않는 책임(責任)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안전(安全)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 장보고의 희생에 반드시 보답하여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바다하면, 해군(海軍)하면, 해상무역(海上貿易)하면 장보고를 떠오르며, 그를 기리는 군함(軍艦)이나 잠수함(潛水艦), 장보고 프로젝트를 만들어 대한민국의 국력(國力)을 과시(誇示)하는 작업(作業)이 진행되고 있어, 장보고에 대한 기림은 우리의 자랑이라고 본다.
●영암 월출산 천황봉과 구정봉의 상징성
국립공원(國立公園) 월출산(月出山)에는 천황봉, 구정봉, 사자봉, 도갑봉, 주지봉 등 여러 개의 봉우리가 있다. 주봉(主峯)인 809m인 천황봉(天皇峯)이 있으며, 두 번째로 높은 700m인 구정봉(九井峯)이다.
월출산이라는 이름은 달(월)이 뜨는(출) 산이라는 의미이다. 속고승전(屬高僧傳)에 의하면 백제시대(百濟時代)에는 ‘달나산(達拏山)’ 이라 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신라시대(新羅時代)에는 ‘월나산(月奈山)’ , 고려시대(高麗時代)에는 ‘월생산(月生山)’ 으로 불렀다.
월출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하늘 천(天), 임금 황(皇), 봉우리 봉(峯)자를 써 천황봉으로 불린다.
천황은 하늘 혹은 천체(天體)의 임금 혹은 하늘을 대신(代身)하여 천하(天下)를 다스린 사람의 황제(皇帝)인 천자(天子) 또는 하늘의 임금 상제(上帝)에 관한 사물(事物) 위에 붙여진 말이며, 하늘의 임금 천제(天帝), 만물(萬物)의 주재자(主宰者)를 뜻한다.
황(皇)자가 들어간 월출산 주봉(主峰)이다. 하늘의 임금, 제국(帝國)의 군주(君主)인 황제(皇帝),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천자(天子), 하늘의 임금 상제(上帝), 하늘의 임금 천제(天帝) 이런 의미가 담아 월출산 최고봉(最高峰)을 ‘천황봉(天皇峯)’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높은 봉(峯)인 구정봉(九井峯)은 정상(頂上) 부위에 아홉 개의 우물이 있다고 하여 구정봉이라고 했다. 요(凹)의 구멍은 음(陰)의 혈(穴)이다. 이곳에는 늘 물이 마르지 않는다.
구정봉은 사람의 얼굴을 닮은 형상(形象)을 하고 있다. 이 바위를 〈큰바위얼굴〉 이라고 부른다. 얼굴 높이가 101m에 달한다. 이 거대한 바위가 구정봉이며, 사람 얼굴을 했다고 해서 구정봉은 ‘장군봉(將軍峯)’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군봉의 장군(將軍)은 군(軍)을 지휘(指揮)하고 통솔(統率)하는 무관(武官)을 말한다. 장군은 신라 때는 임금을 호위(護衛)하던 군데(軍隊)의 으뜸 벼슬이었다. 고려 때는 무관의 정사품(正思品) 벼슬이었다. 장군은 벼슬의 품계(品階)에 붙이는 칭호(稱號)이다.
구정봉을 장군봉으로 불렀던 영암 사람들은 근래에 들어와 큰바위얼굴로 불리지만, 구정봉을 ‘장군봉(將軍峯)’ 으로 기억(記憶)한다.
전남 영암 월출산은 하늘의 임금을 지칭(指稱)한 ‘천황봉(天皇峯)’ 이 있다. 그리고 장군을 지칭한 ‘장군봉(將軍峯)’ 이 있다. 하늘의 임금 봉우리는 월출산이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장군봉은 하늘의 임금을 호위(護衛)하는 바위(봉우리)라는 뜻이다.
천황봉과 장군봉은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에 바다를 지배한 장보고를 두고 두 봉우리를 천황봉.장군봉(구정봉)으로 지칭한다. 장보고는 군사를 거리는 우두머리인 장령(將領)의 당나라 장수(將帥)였다. 그는 신라에서도 청해진(淸海鎭)을 총괄(總括)하며, 군사(軍士)를 진두지휘(陣頭指揮)했다. 그리고 그는 무역(貿易)에도 상인(商人)으로서의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에 발 벗고 나섰다. 그는 해상왕(海上王).무역왕(貿易王)이라는 칭호(稱號)가 따라 붙을 만큼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에 놀라운 성과(成果)를 보여줬다.
영암 월출산이 수려(秀麗)한 자태(姿態)를 뽐내며, 세상을 아름답게 해주고 있고, 기운(氣運)이 강한 산(山)으로서 영험(靈驗)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고장에서 태어난 장보고(張保皐)였다. 그는 궁복(弓福)으로 태어나 자랐으며, 궁복이라는 이름은 ‘재주와 재능(才能)이 많은 아이’ 라는 뜻이다. 궁복은 ‘활(弓)을 좋아하는(다루는) 복(福)덩이’ 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다.
궁복은 장보고로서 세상의 우두머리(장수.해상왕.무역왕)가 되었다. 그가 그런 훌륭한 인물로 성장(成長)한 것은, 이미 예견(豫見)된 일이었다. 그가 태어난 곳, 월출산에는 청황봉과 장군봉이라는 명칭(名稱)을 한 두 봉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주지봉(朱芝峯) 혹은 문필봉(文筆峯)’ 이라는 우뚝 솟은 바위가 있다. 주지봉(491m))은 붉은 버섯을 말한다. 문필봉은 글과 글씨를 말하며, 이 봉우리 모양이 붓끝처럼 뾰족해 그렇게 불렀다. 왕인박사, 도선국사, 최지몽 등을 배출한 고장이다.
풍수(風水)에서는 화산(火山)인 첨봉(尖峰)을 학자(學者)와 연결하면 ‘붓(筆)’ 으로 보고, 무인(武人)으로 풀면 ‘칼(劍)’ 로 본다.
장보고도 이런 주지봉 혹은 문필봉의 기운을 타고 났다. 칼처럼 뾰족한 주지봉의 영험(靈驗)함을 입었다. 주지봉은 한국지명총람(韓國地名總攬)에는 벼슬의 관봉(官峯), 붓끝의 뾰족한 필봉(筆鋒), 우애(友愛) 깊은 형제(兄弟)의 형제봉(兄弟峯), 어진 임금의 산인 성제봉(聖帝봉)으로도 부른다고 기록(記錄)되어 있다.
장보고가 태어난 영암에는 이런 산봉우리들이 산재(散在)해져 있어, 영험(靈驗)한 월출산을 간직한 영암을 신령 령(靈), 바위 암(岩)자를 써 상서(祥瑞)로운 기(氣)가 서린 고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장보고가 훌륭한 장수(將帥), 해상왕(海上王), 무억왕(貿易王)으로 불리는 된 것은 그가 태어난 고을에 그런 바위의 봉우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를 지배(支配)한 해상왕(海上王)이 됐다. 그는 군사(軍士)를 거느린 장군(將軍)이 됐다. 그리고 정치(政治).경제(經濟).문화(文化) 등의 지식(知識)을 갖춘 학자(學者)로서의 문인(文人)이 됐다. 무인(武人)과 문인(文人)이 된 장보고, 그는 다재다능(多才多能)한 재주와 능력(能力)을 갖춘 인물(人物)이었다.
궁복(弓福)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고, 의미(意味)를 보여주는 정신(精神)으로 투철(透徹)한 사명감(使命感)을 보여줬다. 그는 또 장보고(張保皐)라는 이름에 빛나는 뛰어난 일들을 해보였다. 나리를 생각하는 마음의 신라 영토(領土) 확장(擴張)이라는 크게 넓힌 ‘장(張)’ 으로, 나라를 지켜 안보(安保)와 평화(平和)를 위한 마음의 돕겠다는 ‘보(保)’ 로, 모든 사람들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겠다는 마음의 의지(依支)하게 만든 ‘고(皐)’ 로 자신의 행실(行實)을 보여준 일은, 그가 태어난 영암 ‘월출산(月出山)’ 이 있었기에 가능(可能)했다.
월출산은 예시(豫示).예언(豫言)했다. 미리 이 고장에는, 이 세상(世上)에는 훌륭한 인물(人物)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자연물(自然物)과 명칭(名稱)으로 나타내 보였다. 월출산 봉우리들이 무언가를 시사(示唆)하는 암시적(暗示的)인 표현(表現)을 취한 형세(形勢)다. 중간(中間)에 매개(媒介)를 통하여 연결(連結)하거나, 그렇게 되게 한 간접적(間接的)으로 보여주는 월출산 봉우리들은 장차(將次) 훌륭한 인물이 나올 것이라며, 그 인물에는 해상왕 〈장보고〉 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장보고는 ‘하늘의 임금(천제.상제)’ 과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탁월한 ‘천자(天子)-천황봉’ 이였으며, 천하를 호령(號令)한 뛰어난 ‘장군(將軍)-장군봉’ 이었다. 훌륭한 ‘문인(文人).무인(武人)-문필봉’ 이었다.
영암 선암마을에 있는 건덕암(乾德岩)과 국두암(國頭岩)은 임금(王)과 장군(將軍)을 상징하는 바위다. 임금을 뜻하는 ‘하늘 건(乾)’ 자를 붙인 건덕암이다. 장군(將軍)을 뜻하는 ‘우두머리 두(頭)’ 자를 붙인 국두암이다. 건덕암은 하늘의 임금을 나타낸 ‘천황봉’ 을 말하며, 국두암은 큰바위얼굴을 한 ‘장군봉(구정봉)’ 을 말한다. 건덕암과 국두암은 문(文)과 무(武)의 ‘주지봉(문필봉)’ 을 말한다.
월출산에는 사자봉(獅子峯, 668m)이 있다. 매봉과 사자봉을 연결하는 구름다리(해발 605m, 지상 120m, 길이 51m)가 설치되어있다.
사자봉은 사자(獅子) 형상(形象)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사자는 백수(百獸)의 왕(王)으로 불린다. 불교(佛敎)에서는 사자후(獅子喉)의 부처(佛)의 위엄(威嚴) 있는 설법(說法)을 ‘사자의 울부짖음’ 에 비유(比喩)한 말로, 이후 크게 부르짖는 열변(熱辯)으로 확장(擴張)되었다.
사자의 울음소리는 백수의 왕으로서 사자가 가지고 있는 위엄과 용맹(勇猛)함을 상징(象徵)한다. 사지의 울부짖음을 뜻하는 어휘(語彙)인 사자후도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사자후는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屈伏)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또 사자의 우렁찬 울부짖음이라는 뜻으로 크게 부르짖어 열변(熱辯)을 토하는 연설(演說)을 이르는 말이다.
또 격렬(激烈)한 감정(感情)으로 크게 부르짖어 외치는 것을 말한다.
또 질투성(嫉妬性)이 강한 아내가 남편에게 암팡스럽게 떠드는 일을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이다.
장보고의 고(皐)는 ‘크게 부르짖다’ 라는 뜻이 담긴 한자(漢字)다. 사자가 한 번 소리를 지르면 짐승이 다 항복(降伏)함과 같이 부처남의 한 설법에 악마(惡魔)가 기뻐 항복(降伏)하는 것의 비유하듯이. 장보고가 한 번 소리를 지르면 사람이나 짐승들이 놀라서 달아나거나 항복한다.
불경(佛經)에서 사자후를 석가모니는 설법의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전등록(傳燈錄)애는 ‘부처가 태어나자마자 사자후 같은 소리를 내었다’ 는 기록이 있으며, 유마경(維摩經)은 ‘석가모니 설법의 위엄이 사자후 같다’ 라고 적고 있다.
불경 밖으로 나온 사자후는 그 의미가 확대(擴大)되어 크게 부르짖어 열변(熱辯)을 토하는 연설(演說)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월출산 사자봉은 사자의 우렁찬 울부짖음을 한다. 천황봉(天皇峯)과 장군봉(將軍峯)의 기운(氣運)을 타고, 입을 크게 벌리며 큰 울부짖음을 하고 있다. 사자가 한 번 소리를 지르면 짐승이 다 항복(降伏)한다. 물론 사람들도 엎드린다.
월출산의 산세(山勢)는 사자형국(獅子形局)이다. 사자(獅子)의 등에는 천황봉의 하늘의 임금이 타고 있다. 발에는 맹수(猛獸)들이 지켜주고(호위) 있다. 꼬리에는 문인(文人)과 무인(武人)들이 뒤를 따르고 있는 형상(形象)이다. 맹수의 왕(王)인 사자가 월출산(月出山)을 우렁차게 한다.
사자 얼굴은 당당하다. 목과 꼬리의 갈기는 꼿꼿하다. 등은 의젓하다. 다리는 꿋꿋하다. 발은 탄탄하다. 발톱은 날카롭다. 얼굴은 용맹(勇猛)스러우며, 갈기는 위엄(威嚴)하며, 등(嶝)은 권위(權威)답고, 다리는 근력(筋力)이 있고, 발은 우직(愚直)하며, 발톱은 용기(勇氣)답다. 강인함과 힘이 느껴지는 월출산이다. 요령(要領)을 부리지 않고, 맡은 일을 묵묵히 하여 믿을 만한, 올곧고 성실한 산이다. 이 산은 부른다. 장보고의 이름 석 자를...
왜 저 월출산은 평소(平素)엔 그렇게 활기(活氣)차고 적극적(積極的)이면서, 결정적(決定的)인 순간(瞬間)에는 미련할 정도로 우직(愚直)하게 한자리만 지키고 있을까? 분명 아이디어도 많고 센스도 넘치는데, 왜 행동(行動)할 때는 저렇게 무겁고 신중(愼重)하게 움직이지?
사자상을 한 월출산은 뜨거운 질주(疾走)와 우직(愚直)한 멈춤이라는 독특한 조화(調和)를 이루는, 알면 알수록 깊고 따뜻한 매력(魅力)을 가진 산(山)이다.
월출산의 내면(內面)은 매일 매일이 뜨거운 불꽃과 단단한 대지(大地)의 소리 없는 전쟁터(戰爭터)다.
생각, 직관적(直觀的), 감성적(感性的), 적극적(積極的) 활동가(活動家), 빠른 아이디어 회전(回轉)을 한다.
행동, 우직(愚直)함, 묵직하게 밀어붙임, 신중(愼重)함, 보수적(保守的)인 리스크 관리(管理)를 한다.
지적(知的)인 갈망(渴望)과 우직(愚直)함에 열정(熱情)을 보탠다. 월출산을 우직하게 지킨다. 규칙(規則)한 생활(生活)로 우직하게 정진(精進)한 장보고였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달렸다. 장보고는 여정(旅程) 도중에 쓴 초콜릿을 마주하더라도 주어진 상황(狀況)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중심(中心)을 지키는 우직함을 보여줬다.
힘과 자본력(資本力)을 앞세운 글로벌 빅파마들과의 거친 도전(挑戰) 속에서 수많은 우여곡절(迂餘曲折)울 겪고 있는 고충(苦衷)에도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우직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월출산은 사자상의 위엄으로 “사자의 우상(偶像)함을 믿고 힘과 용맹(勇猛)함을 믿고 우직하게 나아갑시다” 라고 뿌리 깊고 단단한 흔들리지 않은 정신으로 우직(愚直)하게, 영민(英敏)하게 월출산이라는 캐릭터에 자신감(自信感)을 과시(誇示)며, 장보고라는 존재감(存在感)을 드러냈다.
월출산이 천제(天帝).상제(上帝).천자(天子)의 황제(皇帝), 장수(將帥).장성(將星).장령(將領)의 장군(將軍), 문인(文人), 무인(武人)을 들었을 때, 그 인물로 장보고를 지칭(指稱)했다.
사자상(獅子象)을 한 월출산은 ‘힘과 자유(自由)’ 를 상징(象徵)한다.
장보고는 월출산 사자봉(獅子峯)처럼 위엄(威嚴)의 모습을 취한다. 그는 당나라 서주(徐朱) 무령군(武寧軍)에 재직(在職)하면서 군사(軍史)로서 크게 소리를 내었다. 그는 완도(莞島) 청해진(淸海鎭)에서도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을 담당하며 총지휘자(總指揮者)로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호령(號令)하는 소리가 천리(千里)를 갔다.
장보고는 월출산의 정기(精氣)에 의해 태어났고, 위엄(威嚴) 있는 산(山)을 바라보면서 자랐다. 월출산의 천황봉, 구정봉(장군봉), 사자봉, 주지봉(문필봉) 등 암석미(巖石美)가 뛰어나고 영험(靈驗)함이 깃든 봉우리들을 매일 대하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갔다. 그가 희망한 일이 장수(將帥)와 해상왕(海上王).무역왕(貿易王)이 되는 것이었기에, 그는 월출산의 영험한 봉우리의 천황봉, 구정봉, 사자봉, 주지봉을 매일 쳐다보면서 “나는 황제(皇帝)가 될 것이다.” “장수(將帥)가 되련다.” “바다를 지배(支配)한 해상왕(海上王)이 될 것이다.” “바다를 통한 최고(最高)의 무역상인(貿易商人)이 되고 말 것이다” 라고 기개(氣槪)를 폈다.
그는 장차(將次) 자신이 꿈꾸었던, 훌륭한 군인(軍人)이 되었다. 그리고 뛰어난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의 지도자가 됐다. 그는 왕(王)인양 큰 소리를 내며 천하(天下)를 호령(號令)했다.
그런 훌륭한 인물을 만들어준 월출산 천황봉, 구정봉, 사자봉, 주지봉은 여전히 하늘을 찌른다. 황제답게, 장군답게, 우렁차게...
●대체불가 장보고
대체불가(代替不可)란 말 그대로 다른 것과 1:1로 바꿔도 가치(價値).정체성(正體性)이 같지 않아 서로 대체(代替)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른 것으로 바꾸는 일이 불가능(不可能)하다는 것이며,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대체재(代替財)가 없다는 의미로, 고유성(固有性)을 가리킨다.
장보고는 정말 대체불가한 인물(人物)이었을까? 그는 남이 대신 일을 해주기를 싫어했다. 정 안되면 다른 사람을 시켜서라도 하는 성격이 못됐다. 절대 어떤 일이든 자신이 다 해내려 했다.
대체불가 인재(人才), 조직(組織)에서 그 사람만이 내는 성과(成果).역량(力量)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쉽게 바꾸기 어려운 장보고였다.
장보고는 대체불가 신라, 유일(唯一)한 기준(基準)은 백성(百姓)의 삶이라며 쉴 새 없어 달려왔고 달려가고 있다.
이제 우리가 도전(挑戰)해야 할 문제들은 세계(世界)가 당면(當面)한 문제들이고, 백성들의 어께 너머로 만난 세계는 신라가 이 문제들을 선도적(先導的)으로 풀어갈 나라라고 기대했다.
그 기대(期待)의 이유도, 대체불가 신라라는 담대(膽大)한 도전에 나서는 이유도 하나라며 전 세계가 보고 깊은 우리 백성의 저력(底力)과 가능성(可能性) 덕분(德分)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어떤 위기(危機)와 고난(苦難)도 이겨내고, 오히려 기회(期會)로 삼아 도약(跳躍)해온 백성과 함께라면, 신라의 도전은 세계의 표준(標準)이 될 수 잇을 것이라며 청해진(淸海鎭)은 그 모든 여정(旅程)에서 우리 조정과 유일한 기준(基準)인 백성의 삶 앞에 타협(妥協)하지 않았다.
대체불가 장보고, 대체불가 신라로 당당함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길, 나라의 방향을 확실히 하였다.
저 사람은 정말 대체불가한 사람이야! 라고 말할 정도로, 고집이 셌고, 확고(確固)한 신념(信念)을 가졌다.
만약, 장보고가 대체가능(代替可能)한 정신(精神)과 행동(行動)을 보여줬다면, 그가 추진한 군사력(軍事力)과 해상무역(海上貿易)을 생각대로 하질 못했을 것이다. 장보고라는 이름은 대체(代替)라는 성향(性向)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궁복(弓福), 궁파(弓巴), 장보고(張保皐) 이름에서 절대 대체적(大體的)인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황금시대(黃金時代)를 열어 가는데,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가능(可能)하게 한 일은 장보고 사전(事前)에는 절대 없는 일이었다. 오로지 신라 자력(自力)으로 이루어내려 했다.
신라는 대체(代替)를 했기 때문에 나라가 혼란(混亂)을 부추기거나, 위테(危殆)롭기까지 했었다. 그런 일을 알고 있는 장보고는 신라 나름의 자존심(自尊心)과 국력(國力)을 갖추어야 한다며, 대체불가론(代替不可論)을 펼쳤다.
당당하게 신라만의 정신(精神)과 정책(政策)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창(主唱)하며 대체불기 신라로 만들어 초일류국가(超一流國家)로 거듭나게 했다.
대체불가 장보고, 그는 자신의 이름은 대체불가(代替不可)라는 확고(確固)한 신념(信念)을 보여준 이름이다. 나라를 확장(擴張)하는데, 누구의 손과 힘을 빌리지 않겠다는, 나라를 지키는데 어떤 사람에게 의지(依支)를 하질 않겠다는,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데 당연히 앞장서겠다는 장보고의 진정한 정신이요, 나라 사랑이었다.
장보고는 내가 만든 것, 신라가 하는 것에 우선(于先)되어야 하고, 어느 누구도 흉내를 내거나, 따를 자가 없는 일들을 펼쳐야 한다고 독보적(獨步的)인 기술(技術)과 독창적(獨創的)인 문화(文化), 강력한 안보(安保)와 군사(軍事), 국력(國力)을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逆說)하며 청해진을 세계 제일의 군사(軍事)와 무역기지(貿易基地)로 삼으려고 했다.
신라천년(新羅千年)이 단순한 구호(口號)가 아니라. 실제 경쟁력(競爭力)을 갖추고 유일(唯一)한 정치.경제.문화.사회 구조(構造)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남이 생산한, 남이 만들어준, 남이 차려준 그런 음식(飮食)이 아닌 우리 스스로 해결(解決)하는, 다른 것으로 바꿔 쓰거나 의존(依存)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모든 것들이 신라 자력(自力)으로 일어서야 한다고 했다.
신라 방어(防禦)를 당나라에 의존하는 방식은 신라의 국력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신라 안보위기(安保危機)가 위태(危殆)롭다는 것을 증명(證明)하는 것으로 보았다. 자주국방(自主國防)에 전념(專念)할 필요성을 제기(提起)했고, 그는 청해진을 통해 강한 신라를 만들어내는 데, 노력(努力)했다.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장보고는 이 말을 철칙(鐵則)으로 여겼다. 그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했고, 남이 하지 않는, 남이 따라올 수 없는 대체불가 신라를 만들려고 고민(苦悶)을 했고, 행동(行動)으로 옮겼다.
당.신라 양국은 전략적(戰略的) 조율(調律)과 협력(協力)을 강화하고, 각자의 주권(主權).안보(安保).발전(發展) 이익(利益)을 확고히 수호(守護)하며, 지역(地域)의 평화(平和)와 발전을 공동(共同)으로 유지(維持)해야 한다고 협약(協約)을 맺어 우호(友好)의 관계로 나아가도록 했다.
“당.신라 친선은 영원하라!” “불패(不敗)의 당.신라 친선단결(親善團結) 만세!” 라고 외쳐 됐다.
지금은 바로 신라의 시간(時間)이다. 신라는 올바른 문화적(文化的) 기반(基盤)과 산업적(産業的) 기반, 지정학적 위치(位置)를 모두 갖췄다. 이것들을 활용(活用)할 절호(絶好)의 기회(機會)다.
장보고는 이렇게 판단(判斷).예측(豫測)하고 신라의 미래는 밝다고 봤다.
장보고는 신라황금시대를 다시 부흥(復興)시켜 나가겠다고 하며, ‘천년의 빛남, 천년의 비춤’ 슬로건을 내 걸고, 강한 신라 창조(創造)를 위해 전력질주(全力疾走) 했다.
신라는 작은 나라지만, 반도형(半島形) 국가지만, 이에 위축(萎縮)되거나 굴(屈)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아가도록 힘을 키워가겠다고 하면서, 신라는 지정학적(地政學的) 위치(位置)와 기술(技術) 친화적(親和的) 문화(文化), 신라 천년문화(千年文化)로 대표(代表)되는 세계적(世界的)인 황금문화(黃金文化)까지 국제 생태걔(生態系) 확장(擴張)에 유리(有利)한 조건(條件)이라고 보며, 지금은 바로 신라의 시간이자, 우리의 시간이라며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 우리가 전문성(專門性)을 갖춘 모든 분야가 이제 첨단기술(尖端技術)과 결합(結合)하게 되고, 그 순간 폭발적(爆發的)인 변화(變化)가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체불가 신라, 강력한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운 장보고, 단순한 안정(安定)을 넘어선 글로벌 중추(中樞) 국가(國家)로의 도약(跳躍) 의지(意志)를 명확(明確)히 하고, 그는 신라는 국가적(國家的) 위기(危機) 속에서 회복(回復)과 정상화(正常化)를 위해 절박(切迫)하게 달려온 시간으로 정의(正意)했다.
신라는 그동안 위기 극복(克服), 내란(內亂)과 침략(侵略)으로 무너졌던 나라 질서(秩序)를 백성(百姓)의 힘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전 세계(世界)에 신라천년의 건제(建制)함을 알렸다고 했다.
지정학적(地政學的) 통상(通商).안보(安保) 위기 돌파(突破), 국제 질서의 급격(急擊)한 재편기(再編期)를 오히려 신라의 뛰어난 산업(産業)과 기술(技術) 경쟁력(競爭力)을 전 세계에 집중(集中)하는 기회(期會)로 반전(反轉)시켰다고 봤다.
민생(民生) 위기(危機) 방어(防禦), 주변국의 집요한 간선(干涉)과 공격(攻擊)으로 촉발(觸發)된 세계 경제(經濟) 충격(衝激) 속에서도 하나 된 국민적(國民的) 저력(底力)을 바탕으로 파고(波高)를 해쳐왔다고 진단(診斷)했다.
장보고는 이러한 위기 극복의 동력(動力)으로 신라 백성들과 직접 소통(疏通)을 꼽으며, 주권자(主權者)의 목소리를 국정(國政) 운영(運營)의 최우선(最優先) 나침반(羅針盤)으로 삼아 공직(公職)의 책임성(責任性)과 투명성(透明性)을 높였음을 가장 희망적(希望的)인 변화(變化)로 평가(評價)했다.
장보고는 대체불가 신라인가? 라는 질문(質問)을 스스로 던지면서 대체불가 신라는 세계 어떤 나라도 대신(代身)할 수 없는 압도적(壓倒的)이고 독보적(獨步的)인 국가(國家) 경쟁력(競爭力)을 구축(構築)하겠다는 의지(意志)를 불태웠다.
신라를 글로벌 필수 협력국(協力國)으로 격상(格上), 바다를 접한 나라, 국토(國土)를 지키고 싶은 나라, 모두가 신라와 협력(協力)하고 싶어 하는 나라로서 단순한 경제(經濟) 강국(强國)을 넘어 국제(國際) 사회(社會)의 생존(生存)과 안보(安保)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核心)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戰略)을 세웠다.
초격차(超格次) 기술(技術)을 통한 주도권(主導權) 확보(確保), 첨단(尖端) 문화(文化).기술(技術) 대응(對應), 그리고 현재 호황(好況)을 맞은 신라 문화산업(文化産業) 등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술 우위(優位)를 점해 지정학적 위험(危險)을 정면 돌파했다.
타협(妥協) 없는 실천(實踐) 의지(意志), 하루하루가 임기(任期) 마지막 날이라는 심정(心情)으로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이 다짐은 신라를 대체불가 국가로 향하는 원년(元年)으로 삼고, 백성의 삶과 얽힌 산적(山積)한 민생(民生).경제(經濟) 현안(懸案)을 속도감(速度感) 있게 돌파(突破)하겠다는 강력한 청해진(淸海鎭) 동력(動力) 확보(確保)의 선언을 하며 멈춤 없는 전진(前進)을 했었다.
대체불가 신라를 강조한 장보고는 위기 극복은 끝났다. 앞으로 세계가 신라를 찾게 만드는 독보적(獨步的) 경쟁력(競爭力)을 갖춘 대체불가 신라를 증명(證明)할 시간으로 보고, 내부적(內部的)으로는 소통(疏通)과 협치(協治)를 통해 신라 질서(秩序)와 민생(民生)을 완전히 다지고, 외부적(外部的)으로는 기술(技術)과 안보(安保)의 핵심(核心) 상대자로서 신라의 몸값을 최고로 끌어올리겠다는 전방위적(全防圍的) 공세(攻勢)로 청해진(淸海鎭) 기조(基調)로 신라가 완전히 전환(轉換)되었음을 보여줬다.
장보고는 신라가 국제적(國際的) 공급망(供給網)에서 대체불가능(代替不可能)한 신라로 거듭나도록 공세적(攻勢的)인 경제완보(經濟安保) 전략(戰略)이 필요하다고 제언(提言)하며, 신라 경제안보, 전략(戰略)과 핵심 과제(課題)에 대해 방어적(방어적)인 경제안보 전략으로 신라의 미래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疑問)이라며, 신라가 국제적 공급망에서 대채불가능한 경쟁력을 갖춘 당당한 전략국가(戰略國家) 천년신라로 도약(跳躍)해야 한다고 했다.
장보고는 강력한 제조업(製造業) 기반(基盤)을 갖고 있는 우리가 첨단산업(尖端産業) 전환(轉換)과 결합(結合)해 산업경쟁력(産業競爭力)을 높인다면, 대체불가능성(代替不可能性)과 안보(安保) 협력(協力) 기반 강화까지 고려해야 정확한 전략(戰略)이 된다고 봤다.
청해진 대사 장보고는 세계 사태를 언급(言及)하며 우리는 안정(安定)돤 국제질서(國際秩序)를 전제(前提)로 효율(效率)을 극대화(極大化)하는 방향으로 산업 공급망을 설계해 왔다며, 효율성을 중심으로 집중된 기반시설은 위기 상황에서 대응능력(對應能力)이 떨어진다라고 보고, 앞으로 경쟁력은 속도뿐만 아니라, 지속성(持續性)이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정적(安定的)으로 작동(作動)하는 구조(構造)를 만들겠다고 의지(意志)를 보였다.
경재(經濟)가 안보(安保)인 시대(時代), 제조(製造) 핵심역량(核心力量).기술의 힘 지렛대로 삼겠다고 했다.
장보고는 조선(造船).상품(商品)과 같은 신라의 핵심전략산업(核心戰略産業)이 국제적 공급망 내에서 대체불가능성을 선점(先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당(唐)과는 상호의존(相互依存)을 심화(深化)해 우리를 배제(排除)하는 비용(費用)을 줄이고, 일본에 대한 취약성(취약성)은 관리(관리)해 우리에 대한 압박(壓迫)의 효율(效率)을 낮추는 전략적(戰略的) 위치(位置)에 서야한다며, 국제적(國際的) 나라와 교류(交流)를 확대(擴大)해 전략적(戰略的) 완충(緩衝)의 외연(外延)을 확충(擴充)하는 목표(目標)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보고는 국가들이 자극(自國)의 이익(利益)을 위해 공급망을 무기화(武器化)하는 현 국제정세(國際情勢)를 보호주의(保護主義) 진영화(陣營化) 시대(時代)로 규정(規定)하고, 당과 일본이 국제적 패권(覇權)을 두고 다투는 상황에서 신라가 당과 동맹국(同盟國) 진영(陣營)에서 자신의 강점(强占)을 살리는 주도적(主導的)인 경제책략(經濟策略)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주도적인 신라로 나아가는데 전열(戰列)을 갖추고, 정진(精進)했다.
장보고는 신라는 제조(製造).혁신(革新).군사(軍事).(貿易) 등 기술적(技術的) 축면(側面)에서 국제적(國際的) 공급망의 전략적(戰略的) 결절점(結節點)이라며, 지유주의(自由主義).문화(文化) 첨단기술(尖端技術) 역량(藥量) 등 기술(技術) 강국(强國)이라는 강점도 살려야 한다고 했다.
비패권국가(比覇權國家)라는 약점은 강점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며, 경제안보(經濟安保)를 군사안보(軍事安保)와 같은 수준(水準)으로 격상(格上)할 때라고 강조하면서 경제(經濟)가 안보(安保)인 시대(時代)라고 했다.
당.일본 등 주변국의 영향력(影響力) 행사(行事)로 제조업(製造業) 역량(力量)이 안보(安保) 자신(資産)으로 격상됐다면서 신라는 조선(造船),상품(商品) 등 각종 전략산업(戰略産業) 최선단(崔先端) 생산기반(生産基盤)을 모두 갖고 있는 유일(唯一)한 신라라며, 1세대(世代) 앞선 경쟁력(競爭力) 유지(維持), 즉 초격차(超格次) 생존(生存)의 길이라고 했다. 대체불가 신라는 청해진에서 앞장서 실현(實現)할 것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국가(國家) 간 협정(協定) 이상의 신뢰(信賴) 필요하다며, 국제사회(國際社會) 내 신라 역할(役割) 전략(戰略) 정립(正立)을 시켰다.
그는 신라가 마냥 당(唐)에 의지할 수는 없다며, 새 경제안보(經濟安保) 환경(環境)에 대응(對應)해야 한다고 진단(診斷)하고, 당나라와 군사(軍事).무역(貿易) 협력(協力)을 언급(言及)하면서 국가 간 협정(協定) 하나로 믿고 맡기던 시대는 끝났다며, 다양한 충위(層位)에서 신뢰를 쌓아야한다고, 조정뿐만 아니라, 기업(企業)의 투자(投資), 민간(民間)의 신뢰(信賴) 등이 중요하다고 기업과 민간이 공조(共助)해 천년신라의 초격차(超格次) 세계일류의 대체불가 신라로 만드는 데 헌신(獻身)했다.
장보고는 장기적(長期的).전략적(戰略的)으로 신라가 원하는 위치(位置).역할(役割).질서(秩序)가 무엇인지를 분명(分明)하게 정립(正立) 하였다.
신라, 국제적 공급망서 대체불가능한 경쟁력 갖춘 장보고의 열정(熱情), 그는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에 집중(集中)하며 대체불가(代替不可) 신라(新羅)를 만들어냈다.
장보고는 방어적(防禦的)인 경제안보(經濟安保) 전략(戰略)으로 신라의 미래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疑問)이라며, 신라가 국제적 공급망에서 대체불가능한 경쟁력을 갖춘 당당한 전략국가(戰略國家) 천년신라(千年新羅)로 도약(跳躍)해야 한다고, 신라를 도약대(跳躍臺)에 서게 했다.
장보고는 강력한 제조업(製造業) 기반을 갖고 있는 신라가 첨단산업 전환과 결합해 산업경쟁력(産業競爭力)을 높인다면, 대체불가능성(代替不可能性)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수익성(收益性)뿐만 아니라, 공급망의 안정성(安定性)과 안보(安保) 협력(協力) 기반 강화까지 고려해야 정확(正確)한 전략(戰略)이 된다고 봤다.
장보고는 앞으로 경쟁력은 속도(速度)뿐만 아니라, 지속성(持續性)이라며, 조정(朝廷)과 청해진(淸海鎭)은 물류(物流).생산거점(生産據點)을 보다 균형(均衡)있게 발전(發展)해 어떠한 상황에도 안정적(安定的)으로 작동(作動)하는 구조(構造)를 만들겠다고 강한 정책(政策)과 실현(實現) 의지(意志)로 신라를 국제무대(國際舞臺)로 한층 끌어 올렸다.
장보고는 장기적.전략적으로 신라가 원하는 위치.역할.질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정립시켰다.
신라, 국제적 공급망에서 대체불가능성 선점(先占)한 장보고, 그는 신라가 다른 국가들과 협상(協商)할 때, 우리에게 유리(有利)하게 끌고 나갈 수 있는 근본적(根本的)인 역량(力量), 대체불가능한 신라의 경쟁력을 갖추는 전력이 절실함을 깨닫고, 경제안보 전략을 기존의 방어적(防禦的) 관점에서 신라의 강점을 살려서 협상력(協商力)의 우위(優位)를 점하는 공세적(攻勢的)인 관점으로 전환(轉換)시켰다.
현재 국제질서(國際秩序)가 영토(領土) 중심의 지정학(地政學)과 기술(技術).공급망(供給網) 중심의 기정학(旣定學)이 교차(交叉)하고 있어, 앞으로 신라를 일시적(一時的)인 위기(危機) 회복력(回復力)을 넘어 구조적(構造的) 우위를 점해야 한고 재차(再次) 강조하며, 상호의존(相互依存)이 무기화(武器化)된 국제질서(國際秩序)에서 대체(代替)하기 어려운 역량(力量)을 축적(蓄積)해 협상력(協商力)과 자율성(自律性)을 확보(確保)하는 신라가 되어야 한다고 조선,상품 등 국제적 공급망 내에서 대체불가능성(代替不可能性) 선점(先占)했다.
대체불가능한 동맹에 기여했던 장보고, 방어적 경제안보 대체불가능성을 조성했던 장보고, 재조업과 결합한 신라 경제안보 전략으로 대체불가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장보고, 신라 대체불가능한 공급망 경쟁력을 잦춘 장보고, 방어만 하던 시대는 갔다. 신라만의 독창적(獨創的).독보적(獨步的) 조선.상품 등 핵심 전력산업(戰略産業) 대체불가능한 위치에 서게 했던 장보고, 신라 국제적 공급망서 대체불가능 국가로 거듭나게 했던 징보고, 그는 경재안보 측면에서 조선.상품 등 핵심 전략산업이 국제적 공급망 내에서 대체불가능한 위치를 선점했다. 대체불가 장보고, 대체불가 신라로 만들어냈다.
장보고는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 시대(時代) 대전환(大轉換)에 에 집중(集中)하겠다고 하며, 그는 해상무역(海上貿易)으로 가속화(加速化)되는 산업(産業) 재편(再編)과 국제적(國際的) 복합위기(複合危機) 상황(狀況) 하에서 국제자유무역 대전환에 박차(拍車)를 가하고, 혁신(革新)을 가속화하겠다고 신라(新羅)에서 세계(世界)로 국제자유무역 대전환을 선언(宣言)했다.
장보고는 그 과실(果實)이 신라 백성(百姓) 모두의 기회(機會)와 성정(成長)으로 이어지는 구조(構造)의 전환(轉換)도 이뤄가야 한다고 사명감(使命感)을 가지고 사력(死力)을 다했다.
사회(社會) 각 계층(階層), 다양한 분의 목소리를 경청(傾聽)하며 갈들(葛藤)의 실타래를 풀 수 있도록 노력(努力)했던 장보고, 조정(朝廷)과 성실(誠實) 소통(疏通)하고, 각 기업(企業) 간 긴밀(緊密)한 협력(協力)을 이끌며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신라를 위해 언제나 낮은 자세(姿勢)로 임했던 장보고였다.
장보고는 시대적(時代的) 위기(危機) 앞에서 혁신(革新)과 연대(連帶)로 변화(變化)의 길을 찾아온 신라 백성(百姓)이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모든 백성과 지역(地域), 기업들이 함께 혁신하고 도약(跳躍)하는 신라-주도권(主導權) 시대를 열어 거는데, 자신의 모든 경험(經驗)과 역량(力量)을 쏟았다.
●유학파, 실학파였던 장보고의 선진사상
장보고의 첫 직장(職場)은 당나라 서주(徐朱)에 있는 무령군(武寧軍)이었다. 산둥반도(山東半島)에 설치된 신하방(新羅坊)에서 정보(情報)를 얻어, 그는 이 루트를 통해 당나라에 갔고, 거기서 유학(遊學) 생활(生活)을 했다.
그는 군사기술(軍事技術)과 무역기술(貿易技術), 정치제도(政治制度), 문화창출(文化創出) 등의 다방면에서 공부(工夫)를 했고, 체험(體驗)을 했다.
유학파(遊學派) 장보고는 실학파(實學派)였다, 당나라의 선진문룰(先進文物)을 배워, 행동을(行動)을 중시하며, 사고(思考)나 관념(觀念)의 진리성(眞理性)은 실험적(實驗的)인 검증(檢證)을 통해서 객관적(客觀的)으로 타당(妥當)한 것이야 한다는 주장(主張)을 내세운 실용주의(實用主義) 노선(路線)을 걸었다.
장보고는 선택(選擇)과 집중(集中)을 통한 조직(組織) 효율화(效率化)를 강조했다. 실용주의(實用主義)와 성과주의(成果主義)를 경영(京營) 철학(哲學)의 전반에 내세우며, 전방위적(全防圍的)인 체질(體質) 개선(改善)에 나섰다.
명분(名分)보다 실리(實利), 관행(慣行)보다 효율(效率)에 기반(基盤)한 조직 쇄신(刷新)으로 모멘텀을 확보(確保)하는 전력(戰略)을 구사(驅使)했다.
청해진 대사 장보고가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을 활발(活潑)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유학파(遊學派), 실학파(實學派)라는 선진 문화.정치.경제.사회 등에서 지식(知識)을 축적(蓄積)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일본.동남아.아랍 시장(市場)을 공략(攻略)하며 로열티 수의 마련에 집중(集中)했다.
장보고는 전통(傳統) 학문(學文) 중심의 관념적(觀念的).이론적(理論的) 연구(硏究)와 현실(現實) 문제(問題) 해결(解決)을 위한 실용적(實用的) 연구(硏究)를 병행(竝行)했다.
그는 실용지학(實用志學),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용주의(實用主義) 성향(性向)을 띠었다. 실용지학은 정치.경제.사회.문화.자연과학 전반에 걸친 실용적 개혁(改革)을 추진했다.
장보고는 신라로 돌아가 신라 조정(朝廷)의 ‘시대정신(時代精神)’ 을 강력(强力)하게 뒷받침하는 것이 백성(百姓)의 바람이자 신라 모든 백성들의 사명(使命)리면서 제 다음 임무(任務)는 신라 조정의 시대정신을 실현(實現)할 강력하고 유능(有能)한 희망의 나라, 미래의 신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신라 조정은 장보고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 임명(任命)에 대해 당나라에서 군대(軍隊)를 통솔(統率)하는 지휘자(指揮者)로서의 무령군(武寧軍) 소장(少將)이라는 경험(經驗)을 바탕으로 시대적(時代的) 과제(課題)인 신라 해안(海岸) 안전(安全)과 질서(秩序)에 만전(萬全)을 가하고, 해상무역(海上貿易)을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으로 격상(格上)과 함께 활발한 추진에 차질(蹉跌)없이 완수(完遂)하고, 백성 일부가 아닌 신라 모두의 성장(成長)을 이끌 적임자(適任者)라고 보고, 그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겼다.
신라 조정에서는 신라 번영(繁榮)의 황금시대(黃金時代)를 새롭게 열기 위해서는 청해진 대사로 임명한 것은 실세형(實勢形) 대사(대사) 대신 실무형(實務形) 대사를 통해 백성 행복(行步)에 발동(發動)을 걸기 위한 것이었다.
신라 조정에서는 새로 신설(新設)된 청해진 대사는 실물(實物) 경제(經濟)에 방점(傍點)을 두고, 국정(國政) 전반에 주도권(主導權)은 왕이 직접 쥐어 국정 운영(運營)의 효율(效率)을 높이겠다는 구상(構想) 담겨져 있다.
국정 장악력(掌握力)을 높여 빠르게 성과(成果)를 내야 한다는 긴박(緊迫)하고 절실(切實)함이 있었다.
제 다음 임무는 기득권(旣得權)의 저항(抵抗)을 돌파하고, 신라 조정의 시대정신을 실현할 강력하고 유능한 신라를 만드는 것이라며,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23년 생활(生活)을 가감(加減)히 접고, 미련(未練) 없이 신라로 귀국(歸國)했다.
그는 신라의 바다에서 황금시대(黃金時代)을 열겠다고 신라 번영(繁榮)에 강력한 의지(意志)와 의욕(意慾)을 보였다.
장보고는 신라는 역대(歷代) 왕(王)이나 대신(大臣)들에 이르는 신라 역사(歷史)의 교훈(敎訓)은 왕과 조정 일체(一體)와 백성(百姓) 실용확장(實用擴張) 노선(路線)만이 성공(成功)과 연속(連續)의 길이라고 봤다.
국정성공(國政成功), 신라번영(新羅繁榮), 연속집권(連續執權)의 3대 과제(課題)를 달성(達成)하려면, 경제성장(經濟成長)과 민주주의(民主主義)를 함께 거머쥔 강력한 실용연합(實用聯合) 신라가 돼야 한다고 했다. 백성주권(百姓主權)과 조정주권(朝廷主權) 강화(强化)의 길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신라 조정의 시대정신은 우리 역사의 황금시대, 즉 금빛 찬란한 신라 황금시대(黃金時代)를 만드는 것” 이라며 “당나라 새로운 개척시대(開拓時代), 일본의 복지국가(福祉國家) 건설(建設) 시대(時代)처럼 신라를 대체(大體) 불가(不可)의 선도국가(先導國家)로 우뚝 세우는 것” 이라고 했다.
●장을 보러간다 청해진에 열린 장보고
오랜만에 전통시장(傳統市場) 상점가(商店家)를 이용(利用)해서 장도 보고, 저녁도 직접 만들어 먹었다.
가정에서 저녁 먹거리를 위해 시장을 볼 때 이런 말을 해된다. 장을 볼 때는 역시 장바구니가 필요하다. 보통 일반적(一般的)인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오지만, 가끔은 카트를 장바구니로 활용한다. 바퀴가 달려서 무거운 짐을 실은 데는 적격(適格)이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은 ‘청해진(淸海鎭)’ 을 말한다. 상점가는 ‘해외시장(海外市場)’ 이다. 이 두 시장을 이용하며 장도 보고, 즉 장보고 만든 청해진에서 각종 물품(物品)을 본다는 뜻이다. 좋은 물건(物件)을 사서 풍성(豊盛)한 식탁(食卓)을 꾸린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표현(表現)했다.
“아들아, 장한 우리 아들 궁복아 나도 진짜 네 목소리 듣고 싶구나!” 당나라에 가서 23년 동안 부모(父母) 곁을 떠나 있으면서 군인(軍人)으로 생활(生活)했던 장(壯)한 아들 장보고, “장보고야 장하다. 대견하구나!” 영암 선암마을에서는 그런 장한 이들을 두어 마을사람들은 궁복의 부모에게 “정말 장하요” 라고 환호(歡呼)하며 칭찬(稱讚)했다.
부모는 “궁복아 너무나 장하구나, 네가 먹고 싶다고 한 음식, 집에 오면 엄마가 맛있는 것들 많이 해줄게, 암 그렇구 말구,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해주기 위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거라!” 하며 장보고(張保皐)가 된 궁복(弓福)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장보고를 ‘장을 보러간다고’ 라고 한다. 장(壯)한 뜻을 품고 먼 길을 떠나는 궁복의 앞날을 축복(祝福)하고, 송별(送別)하기 위한 모임 장행회(壯行會), 장보고의 이름을 빗대 씩씩할 장(壯)을 써 떠난 그를 위한 송별회 모임을 ‘장행회’ 라고 하며, 떠너 보냈다. 또 보배 같은 인물(人物)이 돼서 돌아와 이를 환영하는 모임이라고 해서 ‘보행회(寶行會)’ 라고 했다. 또 장을 보러가고 함께 가 돌아보는 모임이라는 뜻에서 ‘고행회(顧行會)’ 라고 했다.
장쾌(壯快)했다. 가슴이 벅차도록 장(壯)하고 통쾌(痛快)했던 장보고였다. 장쾌한 진출(進出), 어마어마하게 크고 튼튼한 배의 군사선(軍事船),무역선(貿易船)이 물거품을 내면서 장쾌(壯快)하게 항해(航海)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을 앞바다에서만 놀던 궁복이 당나라 산둥반도(山東半島) 앞바다, 완도(莞島) 앞바다에서 장쾌(壯快)한 물길을 박차(拍車) 보니 어께가 으쓱거리고 기운(氣運)이 용솟음쳐 일어났다.
장보고의 베풀 장(張).넓힐 장(張).크게 할 장(張)은 씩씩할 장(壯)이며, 보(保)와 고(皐)는 쾌할 쾌(快).기뻐할 (快).즐거워할 쾌(快)가 됐다. 장보고는 가슴이 벅차도록 장(壯)하고 통쾌(痛快)할 만큼 장쾌(壯快)했다.
궁복인 장보고, 장(壯)한 일을 했다고 칭찬(稱讚)합시다. 보배라고 자랑합시다. 고합시다.
장을 보려고 간다. 장한 장보고, 장쾌한 장보고가 풀 성장할 장(莊)이라는 ‘장을 보려고 한다’ 라는 뜻을 두고, 크게 하겠다는 장(張)을 ‘성하게’ 하겠다는 장(壯)으로, 장은 ‘무성하게’ 장(莊)으로써의 장을 말하며, 이 장으로 마련된 것을 보려 간다. 보려고 간다 라고 한 것이다.
장은 또 꾸밀 장(裝)으로써 차리게 하겠다는 의미를 두고 있으며, 장은 또 감출 장(藏)으로 ‘간직하게’ 하겠다는 의미에서 ‘장봐가지고 갑니다’ 라는 ‘장보고 가다’ 라고 했다. 보고 간다. 신라 바다와 배를 보고, 신라 백성을 보고, 신라의 왕을 보고, 신라 문화를 보고, 당.일본.동남아.아랍 등 여러 나라를 보고, 여러 장면들을 보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장보고는 신라를 보고 가라. 더 해보고 가라.
신라에서 펼친 장은 다양했다. 신라 바다에서 볼 만한 곳, “청해진 군사(軍事).무역기지(貿易基地) 보고 갔다가 규모(規模)에 놀랐습니다” 라고 말할 정도로, 신라가 야심작(野心作)으로 추진(推進)하고 있는 청해진, 이건 보고가세요 했다.
‘청해진 진영 보고, 완도 청해진 보고 가자’ 라고 군사.무역기지를 설치한 지역, 가 보고 싶은 방어무역도시(防禦貿易都市)를 늘린 장보고였다.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장을 보고 간다’ 라는 정책 슬로건 아래 ‘다 해 보고 가리라’ 하며,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은 보고(保皐)를 잘한다. 일 잘하는 사람은 보고의 질(質)이 다르다.
장보고는 상대방(相對方), 목적(目的), 자산(資産), 문화(文化), 사고(思考), 생활(生活), 삶을 기준(基準)으로 파악하여, 그 의미와 마음을 공유(共有)했다.
장보고는 적극적(積極的)으로 경처(敬聽)하라. 어떤 방식(方式)이 좋은지는 상대방이 정한다. 목적(目的)에 따라 방식을 바꿔라. 자신을 포함한 상황(狀況) 전체(全體)를 바라. 정보(情報) 공유(共有)의 상승(上昇) 효과(效果), 아는 것과 이해(理解)하는 것은 다르다. 정보를 공유해 마음이 통(通)하게 하라. 듣는 방법(방법)에 다라 반응(反應)이 달라진다고, 경청하며 공유하여 서로 통하게 했다.
장보고는 자신의 능력(能力)을 두 배 이상으로 인정(認定) 받는 창의적(創意的)인 보고의 기술(技術)을 발휘(發揮)했다.
첫째 상대방의 관점(觀點)에서 생각했다. ‘왜’ 를 가장 먼저, ‘어떻게’ 는 마지막에 배치(配置)했다. 자신이 중시(重視)하는 좋은 생각들을 추가(追加)했다.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 절절(適切)한 시점(時點)에 보고했다. 내용과 표현(表現)의 균형(均衡)을 생각했다. 지시자(指示者)에게 직접 보고했다. 실수(失手)는 신속(迅速)하게 처리(處理)했다.
그는 또 보고의 목적 생각하기, 상대방의 목적을 헤아리기, 자기 목적도 충족(充足)시키며 경영(經營) 이념(理念)을 이해하고, 자신의 뜻으로 뒷받침하게 했다.
장보고는 철저한 중간보고(中間保皐)를 중요시(重要是)했다. 보고에는 종점(終點)이 없다며, 효율적(效率的)인 일 처리에 중간보고를 활용(活用)했다. 상황이 바뀌면 즉시 보고하게 했다. 상황이 바뀌었을 때는 복수(複數) 안(案)을 만들게 했다. 상대방의 행동(行動) 유형(有形)에 따라 보고 방식(方式)을 바꾸었다. 일을 끝낸 후(後)의 보고는 이미 늦다고 보고, 중간보고를 강조했다.
장보고는 창의적(創意的)인 제안형(提案形) 보고, 사실(事實)의 보고만으로는 충분(充分)하지 않다며, 문제(問題) 해결(解決)의 폭(幅)을 넓하는 구호(口號)를 따르면 자립형(自立形) 인간(人間)이 되라고 했다.
부하(部下) 직원(職員)의 능력(能力) 발휘(發揮)는 상사(上司)에게 달려있다며, 산대의 보고에 문제가 있다면, 당신에게도 책임(責任)이 있다고 보고, 정직(正直)하게 보고하라고 했다.
정확(正確)하고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사실(事實)을 전달(傳達)했던 장보고, 중요한 연락은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確認)한 장보고, 안 좋은 내용일수록 빨리 전한 장보고, 감사(感謝)의 인사(人事)는 하루빨리 전한 장보고, 연락의 목적을 의식(意識)하며 사실 정보에 의미 정보를 덧붙여 목적과 배경(背景)을 제대로 전달(傳達)한 장보고였다.
장보고는 사고(事故) 파장(波長)의 공유, 사실에 의미를 더해 마음을 공유하라며, 정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상사(上司)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정보(情報) 제공(提供), 제언(提言), 대행(代行)으로 상사를 보좌(補佐)하게 했다. 사실 정보와 함께 가공(加工) 정보도 전했다.
당신은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일의 범위(範圍)를 스스로 한정짓지 않고, 의미부여(意味附與)에 따라 연락했다. 정보에 의미를 부여했다.
의논(議論)할 때, 의논해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상대에 따라 판단(判斷)했던 장보고였다. 그는 질문(質問)으로 정보 공유를 확고히 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질문했다.
의논으로 사전 조율(調律)한 장보고는 상사에 대한 제언은 의논하듯 했다. 솔직한 자기표현으로 의논의 수준을 높였다. 혼자 할 수 있는 큰일은 상명하달(上命下達式).상명하복(上命下服) 식(式)의 수직(垂直) 체계(體系)가 아닌 동등(同等)한 개념(槪念)이 ‘수평적(水平的)’ 의논 방식(方式)의 원탁식(圓卓式) 토의(討議)-Roundtable Discussion' 방식(方式), 또는 수평적 관계에서 의견(意見)을 나누는 토론(討論)의 ‘평등한 참여-Horizontal Discussion’ 방식과 함께 일하며 의견을 나누는 토론의 '협동.(協同).협업(協業)-Collaboration Cooperation‘ 방식으로 달성(達成)했으며, 도움을 아끼지 않는 의논의 고리를 만들었다. 사태(事態)가 악화(惡化)하기 전에 용기(勇氣)를 내어 의논했다. 서로 신뢰(信賴)하면 말하기도 쉽다며 의논(議論)의 일상화(日常化)했고, 수준(水準)을 높였다.
장보고는 수직적(垂直的) 방식보다 수평적(水平的) 의시소통(意思疏通)이 이뤄줘야 나라와 기업(企業), 그리고 청해진(淸海鎭)이 지속(持續) 발전(發展)을 기할 수 있다고 보고, 수평적 풍토(風土)를 조성(造成)했다. 장보고는 외부(外部) 변화(變化)에 유연(柔軟)하게 대응(對應)하는 조직(組織)을 만들려면, 경영진(經營진)이 문제의식(問題意識)을 갖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시스템을 바꾸었고, 결국에는 신라 번영(繁榮)과 백성(百姓)이 행복(幸福)한 신라의 미래 산업(産業)을 구현(具現)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게 했다.
수평적 조직문화(組織文化)의 가장 특징(特徵)은 ‘소통(疏通)이 활발(活潑)’ 하다는 것이다. 장보고는 이점을 두고 직원(職員)들이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산(發散)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업무(業務) 혁신(革新)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보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조성했다.
수평적이라고 해서 조직이 느슨해지는 것이 아닌, 오히려 직원들의 몰입도(沒入度)가 높아졌다. 직원들의 자발적(自發的)인 참여(參與)가 늘어나면서 조직에 대한 헌신(獻身)도 높아졌다. 그는 이런 수평적인 조직문화의 토대(土臺)로 서로 존중(尊重)하고 신뢰(信賴)하게 했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고, 실행(實行)하려는 힘도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 것.
상관(上官)은 명령조(命令調)가 아닌 수평적인 대화(對話)를 하고, 일 지시(指示) 등을 명료(明瞭)하게 임무(臨撫)를 부여(附與)해주고, 실행(實行) 계획(計劃)을 공유(共有)하는 소통방식(疏通方式)을 원했다. 또 상관에게 부하(部下)들은 간결(簡潔)한 두괄식(頭括式) 설명(說明) 등 전문성(專門性)을 갖춘 업무(業務) 추천(推薦) 및 의논 등의 소통법(疏通法)을 취하게 했다.
장을 보고 간다. 이 말은 여러 측면(側面)에서 그 의미(意味)를 유추(類推)하거나, 해석(解釋)할 수 있다. 장을 보고 간다는 장보고가 추진한 정책(政策), 모든 사업(事業)에 대해 직접 보고 가, 이를 활용(活用)하게 하는 장보고(張保皐)라는 제공자(提供者), 선행자(善行者)로서 나라와 백성(百姓)의 삶과 미래(未來), 즉 〈해피 라이프-Happy Life〉 로써의 요긴(要緊)하게 쓰이게 하거나, 영화(榮華)롭게 한다는 ‘번영(繁榮)의 신라. 천년신라(千年新羅)’ 로 기여(寄與)하는, 이로움을 넘어〈의로움〉 을 말한 것이다.
장을 보고 간다는 이미 장보고가 어린 궁복(弓福)으로 있을 때부터, 그는 장을 보고 가게 했다. 그때는 베풀 장(張), 크게 넓힐 장(張)이 아닌 몸집을 크게 튼튼하게 건강하게 하고 성하게 한 클 장(奘)으로 장을 보고 가게 했다. 보고도 지킬 보(保), 언덕 고(皐)가 아닌 클 보(甫), 날 고(翶)로써의 ‘건장(健壯)한 큰 모습으로 비상(飛上)‘ 하는 것을 보고 가게 했다.
장보고를 천년이 지난 오늘에는 장을 보고 간다는 뜻을 우두머리 匠(匠)과 보배 보(寶)와 큰 배 고(胍)로 보고,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군사(軍事)무역(貿易)의 해상왕(海上王)으로 군림(君臨)했던, 바다를 지배한 우두머리로서 보배, 큰일을 한 인물(人物)로 다시 떠오르며, 그를 기린다.
건장하고 큰 모습으로 날았던 그는 당나라에서 장보고(張保皐)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더, 더욱 나래를 펴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다. 역시 신라에 들어와서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장보고를 신라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그 이미지를 심어줬다. 당연 세상(世上) 사람들한테 자신의 면모(面貌)와 사상(思想), 행동철학(行動哲學) 각인(刻印)시켜줬으며, 그러면서 자신을 부각(浮刻)시켰다. 세상 사람들은 장보고를 ‘바다 위를 나는 남자’ 라고 진정한 바다사나이로 인정(認定)했다.
우리는 장보고가 바다 위를 나는 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다. 천 년 전에는 그런 광경(光景)이 매일 펼쳐져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상(想像)으로만 보게 된다. 다만 ‘장보고함(張保皐艦)’ 이 라는 군함(軍艦)으로 그런 모습을 그려낸다.
●청해진, 장보고 23년 당나라 지식 축적 집대성
집대성(集大成)은 여러 가지를 모아 하나의 체계(體系)로 완성(完成)한 것을 말한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했는지, 그런 일로 어떤 결과(結果)와 영향(影響)을 미쳤는지, 역사적(歷史的)으로 평가(評價) 받을 만한 인물인지 등 특정(特定) 인물(人物)의 전반적(全般的) 업적(業績)과 생각을 한권의 책이나 작품(作品)으로 정리(整理)한 것으로, 사람.개념(槪念).작품(作品) 따위를 모두 모아 집대성한다.
청해진(淸海鎭)은 장보고(張保皐)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그야말로 장보고의 그 자체(自體)였다. 특히 눈길을 끈 건 장보고가 꿈꾸고 희망(希望)했던, 그토록 바랐던 군사기지(軍事基地)와 무역기지(貿易基地)를 병행(竝行)하는 시설(施設)을 전남(全南) 완도(莞島) ‘장도(長島)’ 에 둔 일이었다.
신라는 숙원(宿願)이었던 〈군사+무역〉 시설이 들어서길 바랐던 일이 장보고를 통해, 그 사업(事業)인 〈청해진〉 이 이루어졌다. 장보고는 단순히 기지(基地)를 설치한 것 이상(以上)으로 청해진 대사(臺詞)와 주요 정치(政治).경제(經濟).문화(文化) 등에도 관여(關與)했다.
청해진 설치, 완도 군사.무역기지는 장보고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그야말로 신라 그 제체였다.
알고 보면 반할 청해진 생활(生活)의 단면 유쾌(愉快)한 미학(美學) 신라천년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의 모든 것이 신라 백성(百姓)은 물론, 전세계적(全世界的)으로 청해진에 관심(關心) 있는 사람에게 사랑받기 좋은 시설(기지)이었다.
청해진은 장보고에 대한 새 관점의 원조(元祖)가 집대성한 장보고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느끼게 되는 신라의 결정체(結晶體), 군사(軍事).무역(貿易).문화(文化)의 역사적(歷史的)인 결과물(結果物)이다.
장보고의 청해진의 완벽(完璧)한 집대성, 장보고가 당나라의 신라소(新羅所) 설치(設置), 무령군(武寧軍) 근무(勤務) 등으로 당나라에서 23년간 머물면서 헌신(獻身).기여(寄與).희생(犧牲).봉사(奉仕).충성(忠誠)이라는 큰 족적(足跡)을 남겼다.
장보고는 자신이 당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며 나라의 안정(安定)과 평화(平和)가 유지(維持)하고, 나아가 장르의 대명사(代名詞)로 굳어지기까지 필요한 시간이다.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숙성(熟成)되고 완성(完成)된 청해진 최신작(最新作)을 남들보다 먼저 체험(體驗)한다는 것은, 청해진 대사(大使)이기 이전(以前)에 연작(連作)과 궤(軌)를 함께해 온 오랜 백성(百姓)으로서 가슴 벅찬 일이다.
그리고 정권(政權)을 쥐고 조정(調停)의 진동(振動)과 함께 해상을 누빈 지 단 몇 분 만에, 그 벅찬 기대감(期待感)은 형언(形言)하기 힘든 희열(喜悅)로 바뀌었다.
청해진 일이 으레 그렇듯 장보고(張保皐) 귀환(歸還) 연작(連作) 역시 그동안 수많은 장점(長點)과 단점(短點)의 교차(交叉)를 거쳐 왔다. 전작(前作)에서 극찬(極讚)받았던, 전략(戰略)이 후속작(後續作)에서 돌연 사라져 짙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고, 불필요한 실험적(實驗的) 전략이 추가(追加)되어 혹평(酷評)의 대상(對象)이 되기도 했다.
백성들의 공유(共有)에서는 항상 왜 그 전략(戰略)이 빠졌는가, 신작(新作)에서는 제발 이것만은 추가(追加)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희망(希望) 고문(顧問)이 반복(反覆)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체험한 〈장보고 귀환, 청해진 항해〉 는 달랐다.
기존 백성들이 마음속으로만 바랐던 다양한 욕구(欲求)와 갈증(渴症)을 정확(正確)히 꿰뚫고, 이를 현대적(現代的)인 감각(感覺)으로 충족(充足)시켜 주는 지위(地位)나 자격(資格)이다. 청해진 신작(新作)은 연작(連作)의 완벽(完璧)한 집대성(集大成)이라고 부르기에 조금의 부족(不足)함도 없다.
장보고 귀환(歸還), 7과 3을 잇는 828(신라 42대 흥덕왕 3년)년의 바다, 장보고 귀환의 무대(舞臺)는 〈장보고 귀환8〉 로써 치열(熾烈)했던 전쟁(戰爭)으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828년이다.
연작의 방대(尨大)한 세계관(世界觀) 연표(年表)를 기준(基準)으로 본다면, 국가(國家) 간 전쟁을 다루었던 7편과 다국적(多國籍) 초거대(超巨大) 기업(企業)들이 세상(世上)을 지배(支配)하는 미래전(未來戰)이었던 3편 사이의 간극(間隙)을 메우는 핵심적(核心的)인 시대(時代)다.
백성(百姓)들 사이에서 가장 궁금증을 자아냈던, 어떻게 세계(世界)의 주도권(主導權)이 국가(國家)에서 다른 나라로 넘어갔는가에 대한 실마리가 풀렸다.
단순한 시각(視覺) 효과(效果)를 넘어선 입체적(立體的) 청해진(淸海鎭), 다층(多層) 파도(波濤)이었다. 장보고 귀환이 내세우는 그림과 환경(環境) 물리(物理) 동력(動力) 진화(進化)의 핵심(核心)은 단연 〈다층 파도〉 이다.
전작(前作)인 7편에서도 파도의 묘사(描寫)는 훌륭했지만, 이번 신작의 청해진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배경(背景)이나 일회성(一回性) 전략(戰略)을 넘어 완벽한 전술적(戰術的) 환경으로 작동했다.
파도는 이제 층별(層別)로 밀도(密度)와 기상(氣象) 조건(條件)이 다르다. 꼬리를 무는 적(敵)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높은 파도 속으로 기체(機體. 상선.군함)를 쑤셔 넣으면, 단순한 시야(視野) 차단(遮斷)을 넘어 실시간(實施間) 가상(氣象) 변화(變化)가 기체를 덮쳤다.
파도는 적의 공격(攻擊)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직관적(直觀的)인 은폐물(隱蔽物)인 동시에, 기체 제어(制御) 불능(不能)이라는 치명적(致命的)인 위험(危險)을 감수(減數)해야 하는 양날이 검(劍)이 되었다. 진행(進行)은 매 순간(瞬間) 파도를 이용(利用)할 것인지, 아니면 탁 트인 위험한 해역(海域)에서 회피(回避) 기동(機動)에 의존(依存)할 것인지 결단(決斷)했다.
행위예술(行爲藝術)에서 실전(實戰)으로 퇴각(退却)하며 뒤로 쏘는 사격(射擊) 형태(形態)의 재빠른 기동(機動)을 펼치며, 화살을 발사해 퇴각(退却)시키거나 침몰(沈沒)시켰다.
취향(趣向)을 넘어 전술적(戰術的) 효율(效率)로 묵직해진 기체(機體) 선택(選擇)의 의미를 상황(狀況)에 따라 달리했다. 장보고 귀환8에서는 기체 간 조직감(組織感) 차이와 성능(性能)의 채감(體感)은 역대(歷代) 연작 중 가장 뚜렷했다.
단순히 속도(速度)가 빠르고 둔한 정도를 넘어, 각 기체의 태생적(胎生的) 목적(目的)이 조직감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를 가장 뼈저리게 체감(體感)할 수 있었던 것은 체험 선박(船舶) 후반부(後半部)인 장보고號 해상모함(海上母艦) 공략전(攻略戰)이었다. 거대한 바다를 가로지르는 요새(要塞)와도 같은 해상모함을 상대할 때, 장보고의 기체 선택은 회전(回轉) 속도(速度)나 회전력(回轉力)의 장르 자체를 바꿔버렸다.
전술(戰術)의 완성(完成), 2개의 특수무장(特殊武將)과 편대(編隊) 지휘(指揮) 전력(戰力)의 부활(復活), 기체 선택의 무게감을 더욱 배가(倍加)시키는 것은 새롭게 추가되고, 부활한 전략들이, 청해진 신적에서 연작 최초(最初)로 한 선박에 두 개의 특수무장을 선택해 출격(出擊)하게 했다.
바다에 흩뿌려지는 파괴(破壞)의 연쇄(憐殺), 파편(破片) 전략(戰略), 전장(前場)의 혼란(混亂)을 가중(加重)시키는 연쇄파괴(連鎖破壞) 전략을 구사(驅使)했다.
거대 군함(軍艦)이나 해상모함(海上母艦), 무역선(貿易船)의 부위(部位)를 파괴(破壞)했을 때, 혹은 적(敵) 선박(船舶)을 화살로 포탄(砲彈)으로 산산조각(散散彫刻) 내어 침몰(沈沒)했을 때 발생(發生)하는 막대(莫大)한 파편(破片)들이 그대로 물리(物理) 동력(動力)의 적용(適用)을 받았다.
이 파면들은 해상(海上)을 부유(浮游)하며, 주변에 밀집(密集)해 있던 다른 적(敵) 선박에게 부딪히면 물리적(物理的)인 추가 피해(被害)를 줬다.
적에게 이러한 연쇄(憐殺) 피해를 입힐 경우(境遇) 단순히 적을 겨냥하고 화살을 쏘는 반복(反復) 작업(作業)에 질린 해적(海賊).군사(軍事)들에게 고도의 전략적(戰略的) 사격(射擊)이라는 새로운 방어(防禦)와 공격(攻擊)을 해보였다.
기대감(期待感)을 끌어올리는 체험(體驗)의 시간(時間)이었다. 청해진 〈장보고 귀환8〉 은 장보고 귀환 연작의 이상을 모두 담고자 한 전략적(戰略的)의 뼈를 깎는 노력(努力)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신라는 청해진의 설치를 통해 이야기는 더욱 드라마틱해졌다. 시선(視線)을 가득 채우는 대규모(大規模) 해상전(海上戰)은 물론, 압도적(壓倒的)인 실력(實力)을 자랑하는 경쟁(競爭) 선박(船舶) 및 선장(船長).함장(艦長)의 등장(登場)으로 숨 막히는 치열(熾烈)한 싸움을 구현(具現)했다.
여기에 기체별(機體別)로 묵직하게 체감할 수 있는 조직감과 더욱 세밀해진 물리동력(物理動力), 그리고 티끌 하나까지 살려낸 상세(詳細)한 기체(機體) 모형(模型)과 전장(全長) 배경(背景) 등 가히 연작이 지향(志向)했던, 모든 것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던 결정체(結晶體)였다.
장보고는 뜻하지 않은 사고(事故)로 청해진에서 18년 간 일하고 말아, 아직 본편(本編)의 전체(全體) 형태(形態)나 규모적(規模的)인 다양한 환경(環境) 등을 더 펼쳐보지 못하고 말았지만, 적어도 이 체험 청해진이 보여준 방향성(方向性)만큼은 기존 백성들을 실망(失望)시키지는 않았다.
당나라 23년, 신라 18년 장보고의 생애(生涯)가 지나칠 정도로 선명(鮮明)한 메시지를 생생(生生)하게 천년(千年) 이상 내내 긴박(緊迫)하면서도 흥미(興味)롭게 끌고 가는 연출력(演出力)은 지금도 우리 기억(記憶) 속에서 여전히 불록버스터 장수(將帥)임을 여실히 입증(立證)한다.
파도가 이는 바다에는 그때의 무역선(貿易船)이나 군함(軍艦)은 아니지만, 다른 형태의 배로 둥둥 떠다닌다. 장보고가 바다 위에서 멋지고 훌륭한 출연작(出演作)을 선보여 줬듯이, 지금은 그를 대신(代身)한 선박(船舶)들이 최고(最高)의 항해(航海)를 보여준다. 혼란(混亂)과 불안(不安)을 넘어 확산(擴散)과 결단(決斷)으로 나아가는 미묘(微妙)한 절취선(截取線)을 절묘(絶妙)하게 이어 붙인다.
항해의 ‘폭풍(暴風)의 날’ 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人類)가 항해 발산(發散)하는 간절(懇切)한 호소(呼訴)다. 그는 공감(共感)-Empathy가 진정한 인류의 힘이며, 미지(未知)의 존재(存在)와 소통(疏通)할 능력(能力)이라고 호소한다. 동의(同意)할 것인가. 거부(拒否)할 것인가 장수의 응답은 끝 대사(臺詞)에 들어있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천 년 전 바다를 지배(支配)하며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으로 크게 기여(寄與)했던 장보고의 생애(生涯)에 대해 그가 당나라 서주 무령군(武寧軍)에서 23년, 신라 완도 청해진(淸海鎭)에서 18년 간 희생(犧牲)했던, 40여 년 동안 활약(活躍)한 그의 발자취를 집대성(集大成)한, 〈장보고의 재해석〉 이라는 제목(題目)으로 프로젝트를 드라마나 영화, 책으로 그려내고 있다.
장보고는 “신라인의 참 모습을 보여주겠습니다” 라고 신라방(新羅坊)에 머물고 있는 신라인(新羅人)들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주며, 신라를 대표(代表)하는 큰 인물(人物)로 성장(成長)하겠노라고 약속(約束)했다. 장보고는 “저는 궁복(弓福)이라는 ‘활을 좋아한 아이’ 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 이라며 “이름답게 저도 반드시 군인(軍人)이 되어, 훌륭한 군사(軍事)로서 나라를 지키고, 지역의 안전(安全)과 평화(平和)를 이루는데, 헌신(獻身)하겠다” 고 강한 신념(信念)과 의지(意志)를 드러냈다. 그는 바다를 접한 곳에 군대(軍隊)를 둔 무령군(武寧軍)에 입대해 신라인이지만, 당나라의 방어(防禦)와 안전(安全)을 위해 설치한 군(軍)에 자신의 몸을 희생(犧牲)시켰다.
군대의 장수(將帥)로 있을 만큼, 그는 소장(少將)으로서 지휘자(指揮者)가 되어 군사(軍士)를 이끌며, 지역(地域) 안보(安保)와 방어(防禦)에 철두철미(徹頭徹尾)했다.
장보고는 염상격(炎上格)이다. 기세(氣勢)를 타면 하늘을 찌를 듯 성공(成功)하지만, 기세를 거스르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될 수 있는 모 아니면 도의 강력한 힘을 지닌 충격극(衝擊極)이다.
장보고는 화명목수(火明木秀)와 강력한 식상(殖傷).상관(傷官)의 발현(發顯)의 사주(四柱)다. 그는 불(火)이 극도(極度)로 왕성(旺盛)한데, 시주(施主)에 거대(巨大)한 산이자 댐인 무토(戊土)가 들어서면서 이 엄청난 힘이 한곳으로 집중(集中)되어 뿜어져 나온 팔자(八字)다.
장보고는 천재성(天才性), 기발(旣發)한 생각, 기존(旣存)의 틀을 깨는 혁신성(革新性)을 지녔다. 남들이 생각지 못한 군사(軍事)와 무역기지(貿易基地)라는 미지(未知)의 영역(領域)을 개척(開拓)하고 종합적(綜合的)인 기반(基盤)을 논리적(論理的)으로 구축(構築)하는 천재적(天才的) 기획력(企劃力)은 바로 이 무토상관(戊土傷官)의 강력(强力)한 설기(泄氣)의 힘을 뿜어 나와 군사와 무역을 진두지휘(陣頭指揮)할 수 있었다.
장보고는 화금교전(火金交戰)의 치밀(緻密)함과 종합적(綜合的) 분석력(分析力) 뛰어나다. 그는 뜨거운 불(火)과 시지(施지)의 정밀(精密)한 바위(岩),쇠(金)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불은 쇠를 녹여 기(機械)를 만들고 제련(製鍊)한다.
화(火)와 금(金)이 강하게 부딪치면 수리력(數理力), 공학적(工學的) 두뇌(頭腦), 종합적(綜合的) 분석력(分析力), 금융(金融), 무술(武術), 상술(商術) 감각(感覺)이 극도(極度)로 발달(發達)한다.
단순히 감정(感情)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방대(尨大)한 종합적(綜合的) 문서(文書)와 정보(情報)를 조율(調律)하고-화, 이를 정밀(精密)하게 구조화(構造化)하는-금(金), 능력(能力)이 탁월(卓越)한 뇌(腦) 구조(構造)를 가졌다.
장보고는 시신형합(巳申刑合)으로써 형은(刑)은 어떤 결합(結合) 따위를 근본적(根本的)으로 고치는 일의 수술(手術), 분쟁(紛爭)을 중간(中間)에서 화해(和解)시키거나 타협(妥協)해서 합의(合意)하도록 한 조정(調停), 칼(刀)을 대는 정밀(정밀)함을 뜻하고, 합(合)은 끌어당기는 힘을 뜻한다.
이것이 뇌세포(腦細胞)와 발상(發想) 영역(領域)에서 작용(作用)하면, 복잡(複雜)하게 얽힌 알고리즘(규칙의 집합)이나 문제(問題)를 칼로 자르듯 명쾌(明快)하게 재조정(再調整)하고, 이를 다시 하나의 시스템(체계.조직.제도)으로 묶어내는-합(合), 고도(高度)의 전략가적(戰略家的) 두뇌(頭腦)를 의미한다.
장보고는 주변의 수많은 불(동료, 경쟁자, 군인, 상인, 문화인, 경제인, 정치인, 종교인 등)의 힘이 자신을 거쳐 무토-상관이라는 거대한 댐으로 모이게 했다. 이 댐에 모인 힘이 다시 신라의 황금시대(黃金時代), 거대(巨大)한 시장(市場)의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 을 생(生)하고, 활기(活氣)하게 해주었다.
장보고는 당나라 ‘무령군(武寧軍)’ 이 창작(創作) 활동(活動).행동(行動)의 동기(動機)와 영감(靈感)의 모티브가 됐고 모델로 삼아, 신라에 청해진(淸海鎭, 828년)을 설치했다. 그는 신라방(新羅坊)과 무령군에 23년간 있으면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청해진에 도입(導入)해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 군사(軍事).무역(貿易)을 담당(擔當)케 하였다.
청해진은 방어(防禦).안보(安保).전술(戰術).소탕(掃蕩).질서(秩序).훈련(訓練)를 위한 군사(軍事)와 경제(經濟).문화(文化).교역(交易).통상(通商).외교(外交).친교(親交)를 위한 무역(貿易) 등 모든 것들이 집약(集約)된 곳이다. 이곳은 장보고의 진면목(眞面目)을 찾아볼 수 있는, 그의 철학(哲學).사상(思想).정신(精神).이념(理念).신념(信念).꿈.희망(希望).의욕(意慾),비전 등과 충성심(忠誠心)이 서려진 역사적(歷史的)인 공간(空間)이다. 청해진은 우국(憂國)의 ‘충렬사(忠烈司)’ 같은 곳이다.
청해진은 장보고 인생사(人生史), 모든 것들을 집대성(集大成)한 한권의 책과 한편의 드라마를 제작(製作)해낸 장소(場所)다.
영암 선암마을의 전설(傳說), 당나라 서주 신라방의 인연(因緣), 당나라 서주 무령군의 군인(軍人), 완도 청해진의 해상왕(海上王)이라는, 그가 58년의 생애(生涯)에서 보여준 인생역전(人生逆轉) 휴면드라마나, 연극(演劇)의 단막극(單幕劇) 같은, 극사실적(劇事實的)이고 흥미진진(興味津津)한 블록버스터의 서사시(敍事詩)가 펼쳐졌다.
●바닷길 만드는 일 넘어 세상 가능성 확장
신라, ‘지속 가능한 내일의 길 바다를 통해 열어갑니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면서 다짐하는 말이다. 그는 그런 기치(旗幟)로 우리는 길을 만드는 일을 넘어, 세상(世上)의 가능성(可能性)을 확장(擴張)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意志)를 보인 것이다.
장보고는 신라의 국격(國格)을 세계적(世界的)으로 높이기 위해, 국제사회(國際社會)에 어께를 나란히 하고자, 그는 바닷길 만드는 알 넘어 세상 가능성 확장을 주장(主張)했다.
청해진 활용 및 역할 범위(範圍) 확대(擴大), 무역(貿易) 소재(素材)의 제품군(製品郡) 확장(擴張), 정책(政策) 사업(事業)의 서비스 범위 확대 등에 있어서 기술(技術) 분야(分野) 활용(活用), 제품(製品).브랜드 확장, 정책사업 확장, 투자(投資).금융(金融)에 집중(集中)하여, 신라 기업 해외(海外) 진출(進出) 가능성을 확장시키겠다고 뛰었다.
‘신라 청해진 무역, 발로 뛰는 장보고 대사(大使), 신라 기업 해외 진출 가능성 확장’ 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제시(提示)하며, 신라무역(新羅貿易)을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으로 끌어올렸다.
장보고는 신라 내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과 경쟁력(競爭力) 확보(確保), 투자유치(投資誘致) 지원(支援)을 위해 해외 시장(市場)을 직접 발로 뛰었다.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協力)을 확대(擴大)하고, 글로벌 공급망(供給網) 변화(變化)에 공동(共同) 대응(對應)하기 위한 기반(基盤)을 마련했다.
장보고는 신라무역(新羅貿易), 신라문화(新羅文化) 운영(運營)은 국제적(國際的)인 기술(技術) 흐름을 읽고 신라 내 기업의 해외(海外) 진출(進出) 가능성(可能性)을 확장(擴張)하는 계기(契機)라며, 협약(協約)과 현장(現場) 공유(共有).교류(交流)를 바탕으로 신라 내 기업이 당.일본.동남아.아랍 시장(市場)과 국제(國際) 무대(舞臺)에서 경쟁력(競爭力)을 확보(確保)할 수 있도록 사후(事後) 지원(支援)을 지속(持續)해 나갔다.
장보고는 교역국인 당.일본 등 관계자들을 만나 “당(唐)과 신라(新羅)는 많은 영역(領域)에서 서로 협력(協力)하고, 또 협력을 통해 상승효과(上昇效果)를 만들 수 있는 국가(國家)” 라며 “당의 의견(意見)도 많이 듣고, 저희도 새로운 말씀도 좀 드리고, 다시 신라와 당이 정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단계(段階)로 도약(跳躍)할 수 있도록 같이 노력(努力)하자” 고 협력관계(協力關係)를 더욱 강화(强化)시켜 유지(維持)했다.
장보고는 “신라는 당나라에서 굉장히 군사(軍事).경제(經濟).정치(政治).문화(文化).예술(藝術) 등에서 협력관계로서의 높은 평가(評價)를 받고 있고, 지금까지 협력이 좋게 진행(進行)되고 있다” 며 양자(兩者) 관계를 굉장히 좋게 봤다.
그러면서 “당과 신라, 서로 왕래(往來)를 하면서 도움이 될 일을 지속적(持續的)으로 추진(推進)해 나가자” 고 했다.
장보고는 “당과 자주 만나 무역(貿易) 등 정보(情報)와 교류(交流)를 하게 돼서 너무 기쁘다” 며 “양국(兩國) 관계는 계속(繼續)해서 관계는 더욱 성장(成長)해 왔다고 하면서 신라는 국방(國防).투자(投資).문화(文化)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시켜 왔고, 앞으로도 함께할 것” 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당과 신라는 정치.경제.문화.군사 등에서 꼭 필요할 때 좋은 정보(情報)와 힘이 되어주는 등 예전부터 아주 깊은 인연(因緣)을 갖고 있다” 며 “우리가 큰 은혜(恩惠)를 입었고, 지금은 유사(有事) 입장국(立場國)으로서 서로에게 도움 되는 관계로 양국 관계가 매우 발전(發展)되고 있다” 고 했다.
●월드 클래스 장보고
성과(成果)를 이루다. 이루어진 결과(結果), 즉 실적(實績)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해냈던 장보고의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 그리고 해상(海上) 안보(安保)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記錄)했다. 신라 왕(王)이나 조정(朝廷), 백성(百姓)들은 장보고가 외국(外國) 순방(巡訪)에 나설 때마다 어떤 성과를 거두고 올까 기대를 많이 했다. 월드 클래스 세계적(世界的)인 정치(政治) 지도자(指導者)로서의 풍모(風貌)를 십분(十分) 발휘(發揮)한 장보고의 역대급(歷代級) 외교(外交) 성과에 경의를 표했다.
월드 클래스-World Class, 세계(세계) 최상급(최상급) 수준(수준)의 외교(외교).정치(정치).군사(군사).무역(무역).문화(문화) 등에 월클, 즉 뛰어난 기량(기량)을 세계 무대(무대)에서 활약성(활약성)을 보여줬다.
장보고는 월드 클래스, 쉽진 않지만 자신감(自信感)을 내비치며 모든 시선(視線)은 세계로 향했다. 그는 미래의 월클을 꿈꾸는 신라를 위한 군사(軍事).무역(貿易) 가이드를 펴내며, 세계무대(世界舞臺)에 진출(進出)을 희망(希望)했고, 성과(成果)를 이루며 경제영토(經濟領土), 안보영토(安保領土)를 넓혔다.
장보고는 월드 클래스, 도전자(挑戰者)가 아닌 ‘기준점(基準點)’ 을 꿈꾸었다. 신라는 국제무대(國際舞臺)에 부단한 노력(努力)을 하며 교류(交流)를 해왔으나, 형식(形式)에 불과했다. 국제항구(國際港口)를 신설(新設)하여 활발한 외교(外交)와 무역(貿易)으로 급변(急變)하는 이용자(利用者) 요구(要求)에 맞춰 변화(變化)해 왔다.
그러나 사업(事業) 운영(運營)의 핵심(核心) 기반시설(基盤施設)인 관리체계(管理體系)는 양강 체제(體制)를 구축(構築)한 이후 오랜 기간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
신생(新生) 관리체계 월드 클래스는 이런 양상(樣相)을 흔들었다. 단순한 기능(機能) 추가(追加)를 넘어, 실제 매출(賣出)과 운영 효율(效率)에 직결(直結)되는 구조(構造)를 제시(提示)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실제(實際)로 국제자유무역에서 업주(業主)들의 반응(反應)을 즉각적(卽刻的)이고, 시장(市場)에서는 뚜렷한 변화가 감지(感知)됐다.
월드 클래스가 기존 시장에서 시도(試圖)하지 않았던 기능들을 앞세워 빠르게 점유율(占有率)을 확대(擴大)하자, 둔중(鈍重)했던 경쟁(競爭) 관리체계들이 분주(奔走)해진 셈이다. 또한 이런 움직임들의 면면(面面)은 독자적(獨自的) 혁신(革新)이 아니라, 이미 제시(提示)된 방향(方向)에 따라 가는 쪽이었다.
과거(過去)에는 관리체계들이 각자 특장점(特長點)을 살리면서 개성(個性)을 분명히 드러내는 시기(時期)도 있었지만, 장보고 시대에는 월드 클래스의 기획(企劃)과 기능(機能)이 하나의 기준(基準)처럼 작동(作動)한다는 인상(印象)을 남겼다.
장보고는 신라의 관리체계들의 새로운 변신(變身)을 총평(總評)하자면 ‘월클’ 처럼으로 정리(整理)할 수 있을 정도다. 장보고의 월드 클래스를 지지하는 무역(貿易) 업주(業主)들도 조금씩 조금씩 늘어났다.
이처럼 물오른 기세(氣勢)는 분명 신라는 물론 당.일본 등 외국(外國)의 사내(社內) 분위기까지 격려(激勵)하여 기세(氣勢)를 돋는 등 고무(鼓舞)시켰다. 장보고의 월드 클래스가 이런 흐름을 계속(繼續) 유지(維持)해 나가며, 도전자(挑戰者)가 아닌 기준점(基準點)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정치적인 논쟁은 전쟁이 아닌 경쟁
장보고는 군사가(軍事家).무역가(貿易家)이자 이론가(理論家).사상가(思想家).이상가(理想家).운동가(運動家)였다. 그는 정치는 동조자(同調者), 공감(共感)하는 사람을 모으는 걸 좋아했다. 그의 정치는 언제나 포용적(包容的)이었다.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의 의미와 비전을 정확히 나타냈고, 실천했다. 장보고라는 이름은 논쟁(論爭)을 하되 전쟁(競爭)보다는 ‘경쟁(競爭)’ 을 하려 했다.
장보고는 “싸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유리(有利)한 위치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경쟁(競爭)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군쟁(軍爭)의 의미로 생각한 장보고였다. “군쟁은 단순히 군대(軍隊)가 싸우는 것이 아니다” 라며 그는 누가 먼저 움직이는가, 누가 먼저 도착(到着)하는가, 누가 먼저 요충지(要衝地)를 차지하는가. 누가 상대(相對)보다 먼저 기회(機會)를 잡는가를 경쟁(競爭)의 의미로 여겼다.
오늘날로 말하면 시장(市場) 선점(先占) 경쟁, 신기술((新기술) 경쟁, 안재확보(人材確保) 경쟁, 정보전(情報戰) 경쟁과 같다. 징보고는 이미 1000년 전부터 “승부(勝負)는 전투(戰鬪)보다 먼저 결정(決定)된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모든 이동(移動)은 도보(徒步).마차(馬車),말(馬),배 뿐이었던 시기(時期), 적(敵)보다 하루 먼저 점령(占領)하면 승리(勝利)한다.
전쟁(戰爭)의 승패(勝敗)는 길에서 결정(決定)된다. 전쟁은 전투장(戰鬪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출정(出征)하는 순간(瞬間)부터 시작(始作)된다. 병력(兵力)이 아무리 강해도 이동(移動) 경로(徑路), 보급(普及) 상태(常態), 지형(地形) 선택(選擇)이 잘못하면 패배(敗北)한다는 것을 장보고는 알고 있었다.
얼마나 빨리 갈 수 있는가? 가 아닌 도착했을 때, 싸울 힘이 남아 있는가? 였다. 속도(速度)와 체력(體力)의 균형(均衡)을 중요시했다.
그런 그가 전쟁은 항상 신중히 하였다. 전쟁보다 경쟁하기를 좋아했다. 특히 무역(貿易)에 그는 경쟁자로 상대를 대하며, 상대보다 더 우위(優位)에 서려고 했다.
통일신라가 강했던 이유, 후일 한반도(韓半島)를 통일(統一)한 신라는 군대(軍隊) 이동(移動) 능력(能力)이 뛰어났다. 신라는 해로(海路) 정비(整備), 군수(郡守) 체계(體系), 물자(物資) 저장(貯藏)에 엄청난 투자(投資)를 했다. 덕분(德分)에 대규모(大規模) 병력(兵力)을 빠르게 이동(移動) 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력(行政力)이 아니었다. 기동력(機動力) 그 자체였다.
먼저 도착한다고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 아니기에 장보고는 먼저 움직이는 것과 먼저 승리하는 것은 다르다며, 그는 속도보자 효율(效率)을 강조했다.
장보고는 “정보(情報)가 없는 군대(軍隊)는 눈먼 군대다” 라고 했다. 지형(地形)을 모르고 움직이자 않았다. 길을 모르고 움직이지 않았다. 상황(狀況)을 모르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적을 끌고 다녔다. 직접 따라가지 않고 상대를 움직였다. 상대가 산 위에 있으면, 굳이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보고, 상대가 내령도록 만들었다. 식량(食糧) 창고(倉庫)를 우협(威脅)하거나 보급로(補給路)를 차단(遮斷)하면 적은 스스로 움직일 것이라고 보고, 그 순간 공격(攻擊)했다. 이것이 장보고의 방식(方式)이다.
기업(企業)이라며 시정조사(市場調査) 없이 투자(投資)하지 말라는 의미다, 투자자(投資者)라면 기업 분석(分析) 없이 매수(買收)하지 말하는 의미다. 개인이라면 충분히 정보 없이 중요한 결정(決定)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군사술(軍事術)에 능한 장보고였기에 무역(貿易)에도 군사술을 적용(適用)했다.
싸우지 않고 유리한 위치를 만들었던 장보고,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조건적(無條件的)인 공격이 아닌 가장 좋은 승리는 유리한 위치(位置)를 만든 후 싸우는 것이었다.
상대가 지쳤고, 굶주렸고, 혼란(混亂)스럽고, 멀리 이동(移動)했고, 보급(補給)이 끊겼다면 전투(戰鬪)는 이미 절반(折半) 이상(以上) 끝났다고 봤다.
장보고는 기업(企業) 경쟁(競爭)과 군쟁(軍爭)에 있어서 군쟁은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適用)된다고 보고, 기업들은 기술(技術) 경쟁만 하는 것이 아닌, 인재(人材) 확보(確保), 특허(特許) 확보, 시장(市場) 선점(先占)을 의해 경쟁(競爭)했다. 이것이 신라의 군쟁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투자(投資) 시장(市場)도 군쟁이다 라고 하면서 누가 먼저 정보(情報)를 얻는가, 누가 먼저 산업(産業) 변화(變化)를 읽는가, 누가 먼저 위험(危險)을 발견(發見)하는가, 경쟁(競爭)은 이미 시작됐다. 투자(投資) 역시 군쟁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인간관계에(人間關係)에도 군쟁은 존재(存在)한다고 봤다. 그는 군쟁은 사람 사이에도 적용(適用)된다며, 상대의 감정(感情)을 이해(理解)하고 상황(狀況)을 읽고, 유리(有利)한 타이밍을 찾는 것 역시 경쟁이라고 보면서,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을 중요시했다.
장보고는 단순한 무장(武將)이 아니었다. 그는 전략가(戰略家)였다. 그가 말한 승리(勝利)는 칼로 얻는 승리가 아닌 ‘준비(準備)로 얻는 승리’ 였다.
전쟁(戰爭) 전 준비, 전쟁 전 정보(情報), 전쟁 전 위치(位置) 선정(선정), 전쟁 전 심리전(心理戰) 이 모든 것이 승리를 만든다고 봤다.
장보고가 현대인(現代人)에게 주는 교훈(敎訓), 장보고의 군쟁편(軍爭編)은 1000년 전에 군사서(軍事書)지만, 지금도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現實的)이다. 장보고는 우리에게 말한다. 서둘지 마라. 감정적(感情的)으로 움직이지 마라. 정보(情報)를 수집(收集)하라. 상대(相對)를 움직여라. 유리(有利)한 위치(位置)를 선점(先占)하라. 준지(準備)된 상태(狀態)에서 경쟁(競爭)하라 이 원칙(原則)은 전쟁(戰爭)뿐 아니라, 직장(職場), 사업(事業), 투자(投資), 인간관계(人間關係), 조직(組織) 운영(運營) 등 모든 분야(分野)에 적용(適用)된다.
“승리는 싸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전에 만들어라” 장보고의 어록(語錄)이다.
그는 1000년 전에 남긴 이 통찰(洞察)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有效)하다. 변화(變化)가 빠른 동작(動作)일수록 무작정(無酌定) 달리는 사람보다 방향(方向)을 읽는 사람이 강하다. 그리고 장보고의 군쟁편은 바로 그 방향을 읽는 법(法)을 알려주는 장보고법의 중요한 장(場)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은 하되 경쟁을 하듯이 하라.’ 그 경쟁은 안보(安保)와 평화(平和), 그리고 발전(發展)과 번영(繁榮)을 위한 군사경쟁(軍事競爭)이 되어야 한다. 전쟁은 득(得)보다는 실(失)이 크고 상처(傷處)가 깊다. 전쟁보다 경쟁을 해야 만이 손실(損失) 없는 이득(利得)에 더 혜택(惠澤)이 돌아온다고 장보고는 쟁(爭)의 투쟁(鬪爭)에 있어서 전쟁보다 ‘경쟁’ 에 신경(神經)을 썼다.
●청해진은 하청해안에서 따온 명칭이다
청해진(청해진)의 청해는 ‘하청해안(河淸海晏)’ 의 사자성어에서 유래됐다. 하청해안은 ‘황하(黃河)가 맑아지고 바다가 잔잔하다’ 는 뜻으로, 태평(太平)한 세상(世上)의 조짐, 곧 성군(聖君)이 나서 세상이 편안(便安)해짐을 비유한 말이다.
‘은산덕해(恩山德海)’ , 산과 바다처럼 크고 넓은 은혜(恩惠)를 입고 싶었던 장보고, 그는 큰 강이나 바다와 같이 큰 은혜의 ‘하해지은(河海之恩)’ 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청해진(淸海鎭)의 진은 ‘진압하다. 진정시키다. 누르다’ 의 뜻이다. 진은 군사상(軍事相) 중요한 지역(地域)에 설치(設置)한 지방(地方) 행정(行政) 구역(區域)을 말한다. 누르다의 진은 한 지역을 편안(便安)하게 진정(鎭靜)시키는 군대(軍隊)를 말한다.
진무(鎭撫), 안정(安定)시키고 어루만져 달래는 일과 번진(藩鎭), 특정 지역에 경제(經濟), 군사권(軍事勸)을 행사(行事)한 조직(組織)이다. 진압하다의 진은 한 지역을 진압(鎭壓)하는 군대(軍隊) 또는 그 군대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중국에서 ‘진압하다. 진정시키다’ 의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옛 중국(中國)에서는 군사도시(軍事都市)를 의미했다. 진압하는 군대가 주둔(駐屯)하는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주둔지(駐屯地)라는 의미가 파생(파생)되었고, 군대라는 의미가 빠지면서 소도시(小道市)라는 의미로 파생되었다.
진해(鎭海)는 진이 ‘누르다. 진압하다. 진정시키다’ 의 뜻을 갖고, 해(海)가 바다를 뜻해 ‘바다를 진정(鎭靜)시키고 안정(安定)시키는 곳’ 이라는 의미로써의 진해다. 진은 군사적 거점이나, 주둔지의 의미로도 쓰여, 진해는 해안(海岸) 방어(防禦) 거점(據點)이라는 성격이 반영(反映)된 것이다.
해진(海鎭)은 해상(海上) 군진(軍陣), 해상 요충지(要衝地)을 뜻하며, 해진은 바다와 관련된 군사적(軍事的) 요충지를 말한다. 해진은 해상 교통(交通), 무역(貿易), 방어(防禦)의 중심지로 가능한 요충지를 가리킨다.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興德王) 때 장보고(張保皐)가 설치한 군진으로, 해상권(海上權)을 장악(掌握)하고 해적(海賊)을 소탕(掃蕩)한 뒤 당.일본 등과의 중계무역(中繼貿易) 요충지로 발전한 사례이다.
흥덕왕은 장보고의 간청(懇請)에 의해 당나라 무령군(武寧軍) 같은 성격(性格)의 국토(國土) 방어(防禦)와 안보(安保)를 담당하는 군사기지(軍事基地)와 무역기지(貿易基地)를 한곳에 둔 것을 신라에도 설치(設置)하자고 제안(提案)했다.
그래서 흥덕왕은 경륜(經綸)과 전문성(專門性), 그리고 실행력(實行力)을 갖춘 실행형(實行形) 인사로 진용(陣容)을 갖추고, 국정(國政) 전반(全般)에 긴장감(緊張感)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여기에 합당(合當)한 인물(人物)로 당나라 무령군(武寧軍) 소장(少將)으로 재직(在職)했던 장보고(張保皐)를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로 임명(任命)했다.
장보고를 첫 청해진 대사로 임명하는 것은 정책(政策)을 개발(開發)하고 이행(移行)하는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의 주도(主導)와 청해진 중심 청해진 운영(運營)이 이뤄져야 속도감(速度感)이 붙는다고 본 것이다. 바다를 안정(安定)시킬 만한 인물로 장보고가 만큼 뛰어난 인물은 없었다고 봤다.
맹산서해(盟山誓海), 산과 바다에 맹세(盟勢)를 한 장보고였다. 그는 백천조종(百川祖宗), 모든 강이 바라도 흘러든다고 봤다. 육지(陸地)의 모든 세력(勢力)과 기운(氣運)은 바다에 모아져 파도처럼 세차진다고 생각했다.
장보고는 수천일벽(水天一碧), 물과 하늘이 한 색으로 맞닿아 경계(境界)가 없다고 봤다. 수천방불(水天彷佛), 물과 하늘이 거의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일벽만정(一碧萬頃), 푸른 물이 한없이 넓게 펼쳐져 있음을 알고, 그는 완도(莞島) 장도(長島)에 청해진을 설치했다.
영구히 존재(存在)하는 산과 바다에 매우 굳게 맹세한 장보고는 바다의 푸른 물이 한없이 넓게 펼쳐져 있는 완도 장도에 청해진을 만들고 맹세(盟勢)했다. 그는 바다에 파도가 일지 않는다. 임금의 선정(善政)으로 백성(百姓)이 편안한 수천익벽(水天一碧)을 꿈꾸었고 희망(希望)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은 하해지택(河海之澤).하해지은(河海之恩), 큰 강이나 넓은 바다와 같이 넓고 큰 은택(恩澤)이 있다고 봤다.
청해진은 맑은 바다, 즉 안정(安定)된 바다의 청(淸)과 해상(海上) 군진(軍陣)의 요충지(要衝地) 해진(海鎭)으로서의 청해진이다. 해상(海上) 교통(交通).무역(貿易).방어(防禦)의 중심지(中心地)로 기능한 군사적(軍事的) 요충지인 청해진은 바다를 안정(安定)시키는, 바다를 지키는(保) 역할을 띠었다. 청해진의 진(鎭)은 ‘누르다. 진압(鎭壓)하다. 진정(鎭靜)시키다’ 의 뜻으로 바다를 진정시키고, 안정시키는 곳이 청해진(淸海鎭)이다. 진은 역사적(歷史的)으로 군사적(軍事的) 거점(據點)이나, 주둔지(駐屯地)의 의미로 쓰였다. 청해진은 해안(海岸) 방어(防禦) 거점이다.
청해진은 ‘장보고’ 라는 이름에서 비롯됐다. ‘장보고+청해진=신라’ 라는 등식(等式)이 성립(成立)된, 불가분(不可分)한 상관(相關) 관계(關係)로서의 성격(性格)을 같이했다. 장보고는 ‘확장(擴張)+보호(保護)+의지(依支)’ 를 말한다. 청해진은 ‘안정(安定)+해상(海上)+진정(鎭靜)’ 을 말한다.
영토(領土)를 확장(擴張)하고 지키고 의지(依支)하게 하겠다는 자신의 이름처럼 신라에 청해진을 두어, 신라(新羅)를 안정(安定)시키고 해상(海上)을 진정(鎭靜)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장보고+청해진=신라〉 라는 고차원적(高次元的) 방정식(方程式)을 구사(驅使)했다.
장보고의 보(保)는 사람인(人) 변을 쓴다. 청해진의 청(淸)과 해(해(海)는 물수(氵) 변을 쓴다. ‘바닷물을 일으키는 장보고’ 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바다에는 장보고가 있다. 바다를 항해(航海)하는 자(者), 장보고라는 것을 말해준다. 보(保)의 사람인(人) 변 앞에 ‘물수(氵) 변’ 을 붙이면, ‘보 보(湺)’ 또는 ‘사람이름 보(湺)’ 가 된다.
보(湺)는 하천(河川)의 흐름을 막아 물을 담아두고, 필요할 때 관개용수(關係用水)로 끌어들이는 저수(貯水) 시설(施設)을 뜻한다. 보는 벼농사와 밭농사에 필수적(必須的)이다.
보는 눈에 물을 대기 위한 ‘수리(水利)’ 시설의 하나다. 보는 수위(水位)를 높이고, 농업(農業)에 필요한 수량(水量)을 확보(確保)하기 위해 하천(河川)의 일부(一部) 또는 전부(全部)를 가로막아 만든 것으로 취입보(吹入湺)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보처럼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의 보(保)자를 물수(氵) 변을 붙여진 보(湺)처럼 바닷물을 가두었다고 생각하고, 그 보 안에 청해진을 두었다.
장보고는 청청(靑淸)하고 넓은 청해진으로 둑을 막고, 그 안에 물이 정체(停滯)되는 저수(貯水) 공간(空間)을 형성(形成)했다. 관계용수로 끌어들여 농사(農事)나 식수(食水), 필요한 용도(用度)에 사용하게 했다. 수리를 이용하여 생산력(生産力) 증대(增大)를 불러들었다. 바다에 보(청해진)를 설치해 세상(世上) 모든 것들이 가두어둔 바닷물에서 군함(軍艦)이나 상선(商船)들이 항해(航海)하게 했고, 지휘(指揮)하에 움직이게 했다. 보(湺)는 세력(勢力)의 ‘지배(支配)’ 다. 청해(淸海)는 자유(自由)의 ‘공간(空間)’ 이다.
이런 의미로써 장보고의 보(保)와 청해진의 청해(淸海)로, 사람인(人) 변과 물수(氵) 변이 들어간 단어(單語)를 선택(選擇)한 것이며, 보는(保)는 보(湺)로 하여〈보+청해=항해〉 라는 등식(等式)이 성립(成立)되게 하며, 바다를 청해진의 지배(支配)하에 두고,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으로서 통치(統治)했다. 장보고(張保皐)의 보(湺)로 청해(淸海)에 진(鎭)을 쳤다.
보(保)=보(湺). 청(淸)=창(滄), 해(海)=해(瀣)
지킴은 둑으로, 맑음은 푸름으로, 바다는 이슬기운으로 장보고+청해진=신라라는 고차적(高次的) 등식관계(等式關係)로 형성(形成)해 갔다. 둑을 쌓아 보호(保護)했다. 맑은 바다로 안정(安定)을 취하게 했다. 밤의 맑은 이슬, 즉 신선(神仙)이 마신다는 이슬의 바다 위에 어린 기운(氣運)이 서리게 했다.
저녁 무렵의 이슬에는 방울방울 올라가는 상승(上昇)의 기운이 있다고 보는 것이 기(氣)를 느끼는 시각(視覺)이다. 아침 이술은 뭉쳐 떨어지게 하강(下降)의 기운을 가지고 보는 기를 느끼는 시간(時間)이다.
건곤청기(乾坤淸氣), 천지(天地)에 가득 찬 맑은 기운(氣運)이 넘쳐난 청해진, 혈기지용(血氣之勇), 형기(血氣)에 찬 기운으로 불끈 일어나는 용맹(勇猛)스러운 장보고, 그는 전남(全南) 영암(靈岩) 덕진(德津) 선암(船岩) 마을에서 형제자매동기이생(兄弟姉妹同氣而生), 형제(兄弟)와 자매(姉妹)는 기운을 같이하여 태어난 정년(鄭年)과 함께 자랐다. 그들은 의기투합(意氣投合), 마음이나 뜻이 서로 맞아 예기방장(銳氣方張), 날카롭고 굳세며 적극적(積極的)인 기운이 한창 성했다.
장보고와 정년이 태어난 선암마을은 호기(浩氣),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元氣)가 가득한 거침없이 넓고 큰 기개(氣槪)를 펼쳤다.
장보고와 정년은 간기인물(間氣人物), 여러 세대에 걸쳐 드물게 뛰어난 기품(氣品)을 타고난 인물(人物)이며, 탄우지기(呑牛之氣), 소를 삼킬만한 장대(長大)한 기상(氣象)이 뻗쳤다.
충화지기(沖和之氣), 하늘과 땅 사이의 조화(調和)를 이루는 기운이 화기치상(和氣致祥)이라고 할까? 음(陰)과 양(陽)이 서로 화합(和合)하면 그 기운이 서로 어우러져 상서(祥瑞)를 나타냈다.
장보고는 힘은 산을 뽑을 만큼 매우 세고, 기개(氣槪)는 세상(世上)을 덮을 만큼 웅대(雄大)함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였다.
장보고의 호연지기(浩然之氣),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元氣)는 거침없이 넓고 큰 기개(氣槪)였다.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신라에 귀국(歸國)해 풍운지회(風雲之會), 용이 바람과 구름을 얻어서 기운을 얻는 것처럼 총명(聰明)한 임금과 어진 신하(臣下)가 서로 만나는 일은 큰 행운(幸運)이었다. 그는 신라 42대 임금 흥덕왕(興德王)을 만나 출세기도(出世街道)를 걸었다.
힘은 산을 뽑을 만큼 매우 세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큼 웅대했던 장보고는 그가 설치한 청해진은 혈기방장(血氣方壯), 힘을 쓰고 활동(活動)하게 하는 원기(元氣)가 왕성(旺盛)했다.
해상왕(海上王)이라 부른 장보고, 훌륭한 인물을 배출(輩出)한 곳은 바로 ‘영암(靈岩) 선암(船岩) 또는 선암(仙岩)’ 마을이다. 인결지령(人傑地靈), 뛰어난 인재(人材)는 땅의 신령(神靈)스러움에서 난, 위대한 인물이 난 곳에 이름이 나는 것처럼 사람의 운명(運命)은 그가 태어나 자란 산천(山川)의 기운(氣運)에 의해 결정(決定)된다고 보는 견해(見解)인데, 인걸지령은 장보고를 두고 말한 것 같다.
장보고라는 이름은 국가(國家)의 상징(象徵)으로써 국가대표(國家代表)이며, 국가의 가치(價値).목표(目標).역사(歷史)를 표현해 사람들을 단결(團結)시킨다. 청해진이라는 명칭(名稱)은 민족공동체(民族共同體)의 정체성(正體性)을 강화(强化)시키면서 나라의 안보(安保))와 평화(平和)를 이루고, 경제(經濟)를 튼튼하게 하여, 안전(安全)하고 번영(繁榮)하는 신라를 만든다.
국가대표성(國家代表性)을 띤 장보고(張保皐), 안전하고 번영을 이룬 청해진(淸海鎭)의 신라(新羅)로서 국제성(國際性)을 띤다. 장보고와 청해진은 ‘글로벌 장해진(張海鎭)’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청(淸)의 안전(安全)함, 진(鎭)의 진정(鎭靜)함을 이룬 바다를 갖춘, 신라임을 장보고는 꿈이 아닌 현실(現實)로 보여줬다. 청해진은 장보고 이름의 의미를 시사(示唆)한 것이며, 자신의 철학(哲學)과 신념(信念), 정신(精神)과 뜻을 나타낸 것이다.
장보고라는 이름은 청해진을 두어 나라에 이비지하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인간(人間)의 사상(思想)이나 감정(感情)을 언어(言語)로 표현(表現)한 이름이다. 청해진이라는 명칭(名稱)은 장보고라는 이름에 빛나는 일을 해보이겠다는 의지(意志)이며, 다시 편안한 백성(百姓), 나라를 부강(富强)하게 해 모든 사람이 빛나는 신라를 구현(具顯)해냈다.
징보고는 장보고+청해진=신라는 등식으로 빛나는 신라, 성실성(誠實性)과 꾸준함이 결국 가치(價値)가 빛나는 결과(結果)로 이어지게 했다. 그는 홀로 빛나도 외롭지 않은 인연처럼, 개인(個人)의 강인(强忍)함과 독립성(獨立心)을 빛남으로 보여줬다.
빛나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에서 ‘장보고’ 라고 이름을 지었고, 이름의 의미를 살리고자 ‘청해진’ 을 두었다.
장보고, 청해진은 미션(Mission)을 부여한 작전(作戰) 용어(用語)다. 정치(政治).경제(經濟).안보(安保).방어(防禦) 등의 임무(任務)나 사명(使命)을 의미하며, ‘보내다. 파견(派遣)하다’ 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장보고와 청해진의 미션을 정책(政策) 기술(技術)과 발전(發展)시켜 세상(世上)을 바꾸는 데 부여(附與)한 성명(姓名)이요, 기지(基地)로서 수행(隨行)해야 할 임무(任務)나 사명(社名)이다.
이는 해당 조직(組織)의 존재(存在) 이유(理由)를 나타낸다. 장보고.청해진은 위대한 군사(軍事)와 안보(安保), 외교(外交)와 무역(貿易)을 통해 나라 또는 백성(百姓)에게 영감(靈感)을 주는 경험(經驗)을 창조(創造)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았다.
또 신라 문화(文化) 기반시설(基盤施設)을 구축하는 기업(企業)을 미션으로 설정(設定)했다. 이러한 미션은 조직(組織) 구성원(構成員)들이 같은 목표(目標)를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役割)을 하게 했다.
장보고.청해진은 임무.목표.과제였던 것, 청해진을 통해 파견(派遣)의 임무를 수행(隨行)했던 장보고였다. 그는 해외(海外)로 이동(移動)하여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종교적 임무를 띠고 파견된 선교(宣敎) 역할(役割)도 수행했다.
장보고.청해진은 한 개인의 이름과 한 나라의 기지(基地)로서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닌 세계적(世界的)인 인물(人物)로서, 국제적(國際的)인 기지로서의 성격을 띠고, 특별(特別) 임무(任務)를 맡은 사절단(使節團), 파견지(派遣地)로서의 길고 험한 여정(旅情)에 나섰다. 특히 외국(外國)으로 파견되는 사람에게 맡겨지는 임무를 부여(附與)했다.
미션은 나라가 생존(生存)하는 한 절대(絶對) 변하지 않는 목적(目的)과도 같은, “우리는 어떠한 가치(價値)를 실현(實現)할 거다” 와 같은 내용으로 불변(不變)의 진리(眞理)와도 같은 것이다.
장보고,청해진의 미션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인간적(人間的) 도구(道具)들을 제공(提供)하여 우리가 일하고, 배우고, 소통(疏通)하는 방식(方式)을 바꾸게 했다.
신라는 장보고.청해진 미션으로 전 세계(世界)의 정보(情報)를 체계화(體系化)하여 모두가 편리(便利)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사람들에게 공유(共有)할 수 있는 능력(能力)을 주고 세상(世上)을 좀 더 개방적(開放的)이러 연결(連結)된 곳으로 만들었다.
장보고.청해진은 새로운 인간(人間)으로 만든다는 내용적(內容的), 구심적(求心的)과 새로운 국가(國家)로 만드는 비전적, 핵심적(核心的)인 임무(任務), 즉 의무(義務)를 맡겨 세계적(世界的)인 규모(規模)의 접촉(接觸)이 외국(外國) 전도(前途)의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장보고는 청해진이라는 서브미션(submission), 여러 기술(技術)을 사용(私用)하여 상대편(相對便)을 제압(制壓)하고 쓰러뜨리거나, 상대(相對)와 경쟁(競爭)하여 발전을 도모(圖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장보고.청해진은 세계를 상대한 비밀작전명(秘密作戰名)이었다. 장보고라는 이름과 청해진이라는 기지에 모든 것들이 집약(集約)된 정치적(政治的).군사적(軍事的),경제적(經濟的),사회적(社會的).문화적(文化的).종교적(宗敎的) 정책(政策)들을 담은 명칭(名稱)이다.
장보고는 자신에게 부여된 미션으로 소중한 동반자(同伴者)로서 함께 성장(成長)하고 협력(協力)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길 희망(希望)했다.
장보고+청해진=신라, ‘장해진 신라’ 로 나라를 부강(富强)하게 했고, 위상(位相)을 높였다.
장보고+청해진=신라 이 등식은 〈신라+국제=번영〉 의 등식이기도 하다. 신라는 한 나라의 범위(範圍)를 떠나서 여러 나라와 관련(關聯)된 활동(活動)을 하는 분야(分野)의 국제무대(國際舞臺)를 통한, 그 무대에 함께 서며 모두가 번영(繁榮)의 길을 걷겠다는 고차적(高次的)인 방정식(方程式)이다.
신라는 신라만의 안보(安保)와 평화(平和), 발전(發展)과 도약(跳躍)을 하려하지 않고, 전 세계(世界)가 함께 평화 속에 공동(共同) 번영하는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장보고+청해진=신라, 신라+국제=번영’ 이라는 공식(公式)을 성립(成立) 시켰다.
장보고는 어떻게 하면 신라를 세계(世界) 최고(最高)의 부강(富强)하고, 안전(安全)한 평화(平和)로운 나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는 항상 궁리(窮理)하며 24시간 나라의 안녕(安寧)과 번영(繁榮)을 걱정)했다.
장보고는 나라를 기필코 지켜내고 평화롭고 번영된 신라를 만들어내겠다며, 자신의 희생(犧牲), 다음 세대(世代)에 더 좋은 나라를 물려주겠다는 많은 헌신(獻身)을 해보였다.
장보고는 “다시는 전쟁(戰爭)의 참화(慘禍)를 겪지 않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 기회(機會)가 넘치는 희망(希望) 있는 세상(世上)을 만들어 후손(後孫)에게 물려주는 것이 자신이 할 일” 이라고 하면서 장보고라는 이름과 청해진이라는 기지(基地)에 대해 분명하게 그 뜻을 전달하고, 실천(實踐)했다.
장보고는 “바다는 어떤 때는 높은 파도(波濤)를 친다. 그런 바다가 어떤 때는 잔잔해지기도 하다. 이게 바다의 특성(特性)이다. 기상(氣象)에 따라 바다의 일기(日氣)가 달라지고, 상태(狀態)가 시시(時時) 때때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듯이 한 나라의 정치(政治)도, 경제(經濟)도, 문화(文化), 환경(環境)도, 생활(生活)도 달라진다” 며 “바다의 현상(現象)을 어떻게 대체(代替)하고, 이해(理解)하며 받아 들이냐에 따라 바다는 이로움을 줄 수가 있고, 해로움이 있을 수 있다” 고 바다의 특성을 잘 파악해, 바다를 즐겼다.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 보(保)를 보(湺)로 만들며, 청해(淸海)라는 거대한 바다를 형성(形成)했다. 보(湺)라는 ‘둑’ 은 ‘가두어둔다’ 라는 의미보다는 ‘물을 모아, 이 물을 활용(活用)한다’ 는 수상(水上) 운송(運送)의 편리(便利)의 ‘수리(水利)’ 개념(槪念)으로 둑을 쌓았다.
이런 둑으로 장(張)이라는 ‘확장(擴張)’ 과 보(保)라는 지킴이 되어주었고, 고(皐)라는 기댈 ‘언덕’ 이 되어 나라에는 안정(安定)과 평화(平和), 발전(發展)과 번영(繁榮)을 이루게 하며 당당(堂堂)한 신라, 부강(富强)한 신라, 안보(安保)가 튼튼한 신라, 안전(安全)한 신라, 평화(平和)로운 신라로서의 글로벌 신라로 만들었고, 백성에게는 안녕(安寧)과 희망(希望), 부(富)와 영화(榮華)를 누리게 하는 등의 ‘국태민안(國泰民安)’ 이 되게 했다. 이런 일을 해보이고자, 그는 ‘청해진(淸海鎭)’ 을 둔 것이다. 청해진이 있는 완도(莞島) 장도(長島)가 바다의 물고, 둑이 된 것이다.
●장보고=신라 전략자산
장보고는 해양을 지배했던 인물이다. 그는 ‘세계 경제는 바다에 있다’ 라고 보고, 바다에 모든 삶을 걸었다. 바다라는 고차원(高次元) 방식(方式)으로 신라는 지리적(地理的)으로 반도(半島)지만, 산업(産業) 구조(構造)만 놓고 보면, ‘섬’ 에 가깝다. 에너지와 원자재(原資材) 대부분(大部分)을 바다 건너서 들어오고, 완성(完成)된 제품(製品)은 다시 선박(船舶)에 실려 세계(世界) 시장(市場)으로 나간다.
수출(輸出)로 성장(成長)한 한국(韓國) 경제(經濟)의 강점(强點)이지 동시(同視)에 구조적(構造的) 취약점(脆弱點)이다. 한국 경제의 동맥(動脈)은 도로(道路)도, 철도(鐵道)도 아닌 바다다. 원유(原油).액화천연가스(LNG).철광석(鐵鑛石).석탄(石炭) 등 핵심 자원(資源) 대부분이 선박을 통해 들어오고 자동차(自動車).반도체(半導體).베터리.가전제품(家電製品) 역시 대부분 컨테이너선으로 수출(輸出)된다.
산업의 시작(始作)과 끝이 모두 해상(海上) 물류(物流)에 연결(連結)돼 있는 셈이다. 한국은 세계적(世界的)으로 두문 ‘해상(海上) 의존형(依存形)’ 경제(經濟)다.
제조업(제조업 중심 구조 속에서 에너지와 원자재를 외부(외부)에서 조달(調達)하는 시스템이 굳어지면서 바다는 한국 산업의 생명선(生命線)이 됐다.
지금처럼 예전의 신라도 마찬가지였다. 신라의 경제는 주로 바다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런 바다 경제가 어떠한 위험(危險) 요인(要因)의 나라간 갈등(葛藤), 지정학적(地政學的) 긴장(緊張), 해상(海上) 운송(運送) 차질(蹉跌)이 동시(同視)에 생기고 얽힌다면, 신라 경제는 큰 타격(打擊)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해상(해상 공급망(供給網) 안정성(安定性)은 단순한 물류(物流) 쟁점(爭點)을 넘어, 국가(國家) 산업(産業) 전략(戰略)의 과제(課題)가 됐다.
신라 경제의 과제는 더 많이 수출(輸出)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안정적(安定的)으로 조달(조달)하는 것이다. 에너지 수입선(輸入先) 다변화(多邊化), 전략(戰略) 비축(備蓄) 확대(擴大), 해상(海上) 물류(物流) 위험(危險) 대응력(對應力) 강화(强化)가 필요했다. 신라의 경제 안보(安保)와 공급망 안정성(安定性)을 산업(産業) 정책(政策)의 핵심(核心) 축으로 끌어올렸다.
신라 경제는 바다를 통해 성장(成長)했다. 수출 중심 산업 구조 속에서 해상 물류는 번영(繁榮)의 경로(徑路)였다. 그러나 바다가 흔들리면 경제 전체(全體)가 함께 흔들었다. 그래서 장보고는 이제는 바다를 이용(利用)하는 경제(經濟)에서 바다 리스크(危險)를 관리(管理)하는 경제로 전략을 전환(轉換)시켰다. 바다는 여전히 한국 경제의 길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변수(變數)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래서 장보고와 청해진을 두고 바다를 안전(安全)하게 지키는 ‘보해(保海)’ 라고 일컫는다. 보해는 보배로운 바다의 ‘보해(寶海)’ 라고 보며, 장보고.청해진의 보해(寶海)로서의 바다를 소중하게 여겼다.
장보고를 신라를 확장(擴張)해 나갈 수 있도록 바다를 진정(鎭靜)시키는 ‘장해진(張海鎭)’ 으로, 청해진을 신라를 지켜주고 안정(安定)시키고 의지(依支)하게 만든 ‘청보고(淸保皐)’ 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장보고가 일으키는 파도(波濤)는 그릇된 관행(觀行)으로 얼룩진 역사(歷史)를 밀어내는 첫 격류(激流)가 될 것이라면서 우리의 적수(敵手)들은 감당(堪當)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불안(不安)을 안고 우리 청해진의 전술(戰術)과 선박(船舶)의 위력(威力)을 확인(確認)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처럼 자신에 찼고, 자신이 만든 청해진에 큰 용기(勇氣)를 갖고 불굴(不屈)의 의지(意志)를 보였고, 투지(鬪志)에 불탔다. 그는 신라는 절대 무너지지도, 물러서지도, 굴하지도, 작아지지도, 열세(劣勢)를 보이지도, 경쟁(競爭)에서 뒤지지도, 무기력(無氣力)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당당한 우위(優位)와 강력한 힘, 뛰어난 실력(實力)과 우수한 기능(技能)을 갖춰 안전(安全) 태세(態勢)로 상대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 하며, 그는 장보고.청해진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確實)하게 보여줬다.
사람들은 장보고를 얕잡아 볼 수 없었고, 청해진을 쉽게 여길 수가 없었다. 그는 신념(信念)이 확고(確固)했고 의지(意志)가 강했다. 장보고는 결과(結果)에 대한 믿음(신념)이 단단하고, 그 믿음을 행동(行動)으로 옮기려는 마음(의지)이 굳건했을 정도로, 그는 목표(目標)를 향해 흔들림 없이 꾸준히 나아가려는 태도(態度)의 결심(決心)이 대단했다.
장보고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결정을 내렸고, 결과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명명지지(冥冥之志), 마음속에 품은 원대(遠大)한 이상(理想)과 확고한 신념을 갖춘, 외부(外部)에 드러내지 않는 굳은 마음으로, 묵묵히 한곳에 집중(集中)하여 노력(努力)했다.
철석간장(鐵石肝腸), 굳센 의지(意志)나 지조(志操)가 있는 마음과 확고불발(確固不拔), 태도(態度)난 결심(決心) 등이 굳어져 흔들거나 움직이지 않는 마음과, 벡절불요(百折不撓), 백번 꺾어도 굴하지 않는 마음과 위무불굴(威武不屈), 권세(權勢).무역(武力)에 굴복(屈伏)하지 않는, 외부의 위엄(威嚴)아나 강제력(强制力)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태도(態度)를 갖추었다.
그는 전신관주(全神貫注),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등 온 정신(精神)을 다 기울였다. 또 일심일의(一心一意), 분산(分散)된 마음을 한 방향(方向)으로 모아 목표를 향해 집중했다. 심무방무(心無旁騖), 마음에 겉 눈질이 없고 한 가지에 전념(專念)한 다른 대로 마음이 새지 않는 등의 잡념(雜念)에 흔들리지 않고 현재의 일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취정회신(聚精會神), 한 가지 일에만 한 결 같이 몰입했다. 심무이용(心無二用), 마음을 두 가지로 나눠 쓰지 않고 한 가지 일에만 전념(專念)했다. 병기응신(竝記應身), 숨을 죽이고 정신에 집중(集中)할 만큼,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모습이나 주위를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용지불분(用志不分),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고 여기저기 정신을 나누지 않는 등의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전심치지(專心致志), 오직 한 일에만 마음을 바쳐 뜻한 바를 이루려고 정신을 한곳에 집중했다.
장보고는 강인한 정신, 곧은 마음, 한 길을 걷는 행동을 보여줬다. 성찰(省察)과 결단(決斷), 그리고 역사(歷史).유산(遺産)에서 말하는 정신(精神)과 곧은 마음의 삶의 태도(態度)를 보여줬다. 산책길에서의 겸손(謙遜)의 나무처럼 한 길을 선택해 꾸준히 나아가는 모습의 한 길을 걷는 행동을 보여준 것처럼 그도 그런 겸손의 나무처럼 한 길을 걸었다. 한 가지 길을 선택하고 길림 길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그 길을 계속 걷는 태도를 해보였다.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과 청해진이라는 것에서 겸손과 절제(節制)를 삶의 미학(美學)으로 삼아, 겸손한 행동을 통해 성공(成功)의 열매를 맺었다.
넓고 넓은 푸른 바다가 있는 청해진은 곧은 마음을 따라 걷는 천년(千年) 정신의 길이었다. 천년의 시간 속에 담긴 화랑(花郞)의 기개(氣槪)와 선비의 품격(品格)으로 천년 정신의 길, 완도 청해진에는 시대를 이끈 곧은 마음과 정신이 살아있었다. 파도가 쉼 없이 물결을 일으키듯이...
장보고는 단순한 무사(武士)나 귀족(貴族) 청년(靑年) 집단(集團)이 아니었다. 그는 유교(儒敎).불교(佛敎).도교(道敎)를 아우르는 정신세계(精神世界)를 바탕으로 자연 속 수련(修鍊)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鍛鍊)한 청년 엘리트였다. 장보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價値)는 스스로를 바로 세운 뒤 공동체(共同體)를 위해 나아가는 삶이었다.
그 정신적(精神的) 기반(基盤)은 당나라 서주(西周)에서 시작됐다. 그는 무령군(武寧軍)에 입대(入隊)해 군인정신(軍人精神)이 깃든 투철(透徹)한 사상(思想)은 청해진이 하늘의 뜻으로 세워진 공동체(共同體)라는 자긍심(自矜心)을 심어주었고, 이는 공동체를 위한 책임(責任) 윤리(倫理)의 근거(根據)가 되었다.
완도(莞島) 청해진(淸海鎭)에 펼쳐진 거대(巨大)한 군사(軍事).무역기지(貿易基地)가 신라 왕실(王室)과 그 미래(未來)를 짊어졌던 이들이 얼마나 큰 이상(理想)을 품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청해진에서 바다를 향해 띄웠던 선박(船舶)들은 미지(未知)의 세계(世界)를 향해 항해(航海)하려 했던 용감(勇敢)한 도전(挑戰) 정신(精神)의 흔적(痕迹)이며, 군사(軍事)와 경제(經濟)가 어떻게 공동체의 이상을 하나로 묶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장보고 정신은 스스로를 바로 세워 공동체를 위해 용기(勇氣) 있게 나아가는 힘이었다. 신라 장보고 등 군인(軍人)과 상인(商人)들이 걸어간 그 길은 오늘날 우리가 변함없이 걸어가야 할 바름의 길이다.
장보고는 올곧은 도리(道理)를 지키며,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했다. 화랑(花郞)의 기개(氣槪)와 선비의 품격(品格)은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가” , 그리고 “그 힘으로 세상(世上)을 이롭게 할 수 있는가” , 이 질문(質問)에 답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것, 그 자체가 오늘의 우리가 천년 정신의 길 위에서 역사(歷史)의 흔적(痕迹)을 함께 풀어야 할 숙제(宿題)이다.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이 장보고가 걸었던 이 길을 다시 걷는 날, 신라와 청해진, 즉 신라가 지켜온 정신은 또 한 번 새로운 천년을 열어갈 것이다. 천년 정신은 과거(過去)의 역사(歷史)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瞬間) 미래(未來)의 역사로 건너가는 다리이다.
“과거(過去)의 가르침은 현재(現在)의 길이 되고, 현재의 발걸음은 빛나는 미래(未來)가 됩니다” 라는 장보고의 정신사상(精神思想)에 우리는 깊이 깨달아 볼 필요가 있고, 그를 다시 그리워할 필요가 있다. 천년 정신의 길에서 만난 장보고의 마음이 조용한 울림으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개조.개혁.개척.개발과 혁신을 좋아한 장보고
"신라를 일대 혁신해야 한다."
신라 대변혁을 외치며 신라 군사(軍事).정치(政治).경제(經濟).사회(社會).문화(文化) 전반에 혁신(革新)과 쇄신(刷新)이 필요하고 본 장보고, 그는 자신의 이름 장보고(張保皐)와 자신이 설치한 청해진(淸海鎭)을 내걸고, 개조(改造).개혁(改革).개척(開拓).개발(開發)의 일대 혁신(革新)을 일으켰다.
장고는 “신라는 지금까지 큰 변화(變化)를 통해 발전(發展)과 번영(繁榮)을 누렸지만, 아직 할 일이 더 남아있고, 새롭게 추구(追求)해야 할 일이 있다” 며 신라의 대수술(大手術)이 절실(切實)하다고 봤다.
장보고는 “신라는 현재(現在)에 안주(安住)해서는 안 된다. 긴장(緊張)할 필요가 있다” 며 “신라는 나름의 큰 성과(성과)를 이루었지만, 아직도 멀었다. 갈 길이 멀다. 해야 할 일이 많다” 고, 신라 군사.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에 있어서 일부 개조(改造)가 아니라, 재건축(建築)이 필요하다는 전형(全形)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장보고는 신라는 사람의 교체(交替)가 아니라, 기관(機關)이나 시설(施設)의 쇄신(刷新)이라며 뜯어고치는 것으로 해결(解決)되지 않는다면 과감(果敢)히 허물고 다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장보고는 신라는 일부 세력(勢力)에 의해 정체(停滯)되고 있다며 신라를 통치(統治)하거나 조정(朝廷)에 근무(勤務)한 분이나, 군사(軍事)를 담당(擔當)한 분들의 책임이 크다. 이분 들이 나라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한다면, 신라의 미래(未來)는 없다. 신라의 내일을 위해 물러나야 하고 대변혁(大變革)이 필요하다고 했다.
참사는 우연히 반복(反覆)되지 않는다. 잘못된 방식(方式)을 방치(放置)할 때 반복된다고 했다.
장보고는 개조.개신.개혁.개척을 주장했다. 기존(旣存) 체계(體系)의 구조(構造).정치(政治)를 새롭게 바꾸는 제도(制度).절차(節次).역할(役割)을 재설계(再設計) 하는 것., 기존 틀을 깨고 새로이 개혁(改革)하는 기존 권위(權威)와 관행(慣行)을 재검토(再檢討)하는 것, 체계(體系).가치(價値).정책(政策)을 근본적(根本的)으로 바꾸는 절차적(節次的) 민주주의(民主主義)와 지역사회(地域社會) 발전(發展) 등 현실(現實) 문제(問題) 해결(解決)하는 것, 아직 정착(定着)되지 않은 영역(領域)을 개척(開拓)하는 새 방식(方式).새 영역을 탐색(探索)하는 혁신적(革新的) 접근(接近)을 하는 것을 주장하며, 신라 전반(全般)에 장보고 바람과 청해진 물결을 일으켰다.
●바다를 보고 미래를 고민한다
바다를 보고 미래를 고민한다. 이 말은 장보고의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글귀다. 보고와 고민 이 단어는 장보고의 보와 고를 살펴볼 수 있다.
바다를 보고 미래를 고민하는 장면은 막연(漠然)한 불안(불안)과 함께 선택(선택)의 무게를 느끼는 심리(心理) 상태(狀態)를 말한 것보다는 바다에서 미래를 찾은 것을 궁리(窮理)한다는 것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마음의 평온(平穩)과 치유(治癒), 인생(人生)의 전환점(轉換點), 자아(自我) 성장(成長)을 암시(暗示)하는 긍정적(肯定的) 의미이며, 바다가 거칠거나 혼자 바라보는 상황(狀況)은 불안감(不安感), 예기(豫期)치 못한 변화(變化)에 대한 두려움, 고립감(孤立感) 등을 반영(反映)할 수 있다.
장보고는 세상의 일은 바다에서 만들고, 모든 것은 바다에서 일어난다. 미래는 바다다 라고 보고, 그는 바다에서 모든 것을 찾고 이루려고 했다.
장보고는 바다 전망(展望)에서 미래 계획(計劃)을 세웠다. 그런 행위(行爲)는 바다를 무한(無限)한 가능성(可能性)과 깊은 내면(內面)의 상징(象徵)으로 보며, 불확실성(不確實性)을 탐색(探索)하는 심리적(心理的) 효과(效果)를 가져오게 했다.
확장적(擴張的) 사고(思考), 즉 바다는 넓고 깊은 이미지로 가능성의 범위(範圍)를 넓혀 더 큰 목표(目標)를 설정(設定)하고 창의적(創意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내면(內面) 탐색(探索), 즉 바다의 심연(深淵)은 억압(抑壓)된 감정(感情) 숨겨진 욕망(慾望)을 상징(象徵)해, 현재(現在)의 불안(不安)과 갈등(葛藤)을 명확(明確)히 인식(認識)하고 정리(整理)하는 데, 도움을 주게 했다.
불안(불안) 왕화(완화), 즉 바다 전망이 평온(평온)함을 연상(연상)하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불확실성)으로 인한 긴장(긴장)을 낮추고 계획(계획)을 세우는 데, 필요한 정서적(정서적) 안정감(안정감)을 높일 수 있게 했다.
당나라에서 배우고, 신라에서 써먹은 장보고는 신라 밖 외교(外交).무역(貿易), 완도(莞島) 앞바다에서 미래(未來)를 보았다. 바다에 미래가 있다고 그는 미래를 바다에서 찾았다.
바다에서 미래를 찾기 위해 바다를 보고 고민했던 장보고였다. 보고, ‘바다를 보고 고민한다’ 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임을 알았을 때, 우리는 그런 심오(深奧)한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뜻이 담긴 장보고라는 이름에 경외감(敬畏感)이 들뿐이다.
아마, 청해진(淸海鎭)은 ‘청해(淸海)의 진심(眞心)을 두다’ 라는 의미로 쓰였을 것 같다. 청해의 진심이란 바다에 진심, 신라 바다.경제(經濟) 살린다. 청해진 브랜드는 바다愛 진심을 새롭게 선보인다. ‘바다를 사랑하는 진심을 담아’ 라는 슬로건 아래 바다 환경(環境) 보전(保全), 어업(漁業) 종사자(從事者) 지원을 통한 어촌(漁村).어부(漁夫) 상생(相生), 무역상인(貿易商人) 지원을 통한 무역(貿易) 교류(交流) 증진(贈進), 그리고 선박(船舶) 보호(保護), 나라 안전(安全) 및 안보(安保) 강화(强化)라는 지속(持續) 가능(可能)한 해양(海洋) 안보 등 바다를 주제(主題)로 다양한 청해진 활동(活動)을 이어나갔다.
바다愛 진심, 청해 진심이다. 장보고는 바다 보호(保護), 바다愛 진심은 청해 진심으로 행동(行動)할 것이라며, 진심은 ‘보해(保海)’ 라고 했다.
바다를 보고 미래를 고민한다. 보고는 바다를 안전(安全)하게 지켜 선박의 원활(圓滑)한 항해(航海)와 나라의 안보(安保), 국민의 생명(生命)을 보호(保護)하겠다는 마음이다. 고민(苦悶)은 신라의 발전(發展)과 번영(繁榮)에 대한 고민, 사회(社會) 안정(安定)에 대한 고민, 경제(經濟)와 무역(貿易)에 대한 고민, 국제(國際) 관계와 교류(交流)에 대한 고민, 세계(世界) 무대(舞臺)에 서는 고민, 신라 영토(領土) 확장(擴張)에 대한 고민, 천년신라(千年新羅) 영원성(永遠性)에 대한 고민, 정치(政治)에 안정에 대한 고민, 문화(文化) 융성(隆盛)에 대한 고민, 왕권(왕권) 강화(강화) 및 조정(조정) 안정에 대한 고민, 백성(百姓) 건강(健康)과 생활(生活) 안정에 대한 고민 등 여러 분야에서의 고민을 했다. 고민은 언덕이 되어주겠다는 의지(依支)의 고(皐), 고민이다.
바다를 보고, 보다의 그 의미는 ‘지킬 보(保)’ 로써 보고는 장보고의 ‘보고(保皐)’ 이며, 보호(保護)해주는 기댈 언덕이 되어주겠다는 것이다. 미래를 고민한다, 고민의 그 의미는 ‘언덕 고(皐); 로써 고민은 장보고의 ’고(皐)‘ 이며, 나라와 백성의 든든한 배경(背景)과 버팀목이 되어주어, 그런 관계 속에서 신뢰(信賴)를 기반(基盤)으로 한 우호(友好) 관계(關係) 형성(형성)과 호혜적(互惠的) 관계 지향적(指向的) 관계 발전(發展)과 번영(繁榮)을 기하겠다는 것이다.
신뢰(信賴).소통(疏通) 바탕으로 협력(協力)하면 신라 경쟁력(競爭力)을 높일 수 있다고 본, 바다를 보고 미래를 고민한다 라는 신라의 미래(未來)와 번영(繁榮), 그리고 안보(安保)는 장보고(張保皐)를 바탕, 청해진(淸海鎭) 신뢰도(信賴度)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바다를 보고 미래를 고민했다.
장보고라는 이름, 장(張)이라는 것은 ‘확장(擴張)’ 을 말한 것으로써. ▲군사기반(軍事基盤) 확장 ▲무역기반(貿易基盤) 확장 안보기반(安保基盤) 확장 경제기반(經濟基盤) 확장과 정치기반(政治基盤) 확장, 문회기반(文化基盤) 확장, 그리고 국제기반(國際基盤) 확장, 신라영토기반(新羅領土基盤) 확장을 말한다. 이 확장 정책(政策)을 보(保)로 보호(保護)하고, 고(皐)로 의지(依支)하도록 하겠다는 의미에서 〈장보고〉 라고 하였다. 이런 장보고 정신은 청해진(淸海鎭)으로 완성(完成)해보였다.
●완도 장도와 장보고 상관관계
장보고(張保皐)는 왜 청해진(淸海鎭) 장소(場所)로 완도(莞島)의 장도(長島)를 선택했을까? 물음표가 붙여진다. 장도와 장보고와의 어떤 관계(關係)가 있는 듯하다.
장보고의 장은 펼 장(張) 또는 베풀 장(張), 넓힐 장(張), 크게 할 장(張)의 뜻을 지닌 장이다.
완도의 장도는 길 장(長)을 쓰고 있다. 길 장은 갑골문(갑골문)에서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진 노인(老人)의 옆모습을 본떠 만든 한자이다. 장은 ‘오래 산 사람, 어른, 우두머리’ 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장은 정구(長久).장단(長短).교장(敎長).성장(成長).신장(伸長).연장(延長).확장(擴張) 등에서 길이.시간(時間).지위(地位)를 뜻한다.
길 장은 길다 이외 ‘크다. 우수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길 장은 유교애서는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개념(槪念)을 통해 어른과 아이 사이의 질서를 강조한다. 또한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의미로 덕(德)을 쌓고 인내(忍耐)한다.
길 장과 관련된 한자로 ‘길게 뻗어간다’ 는 펼 장(張)에서 유래(由來)됐다.
중국(中國)의 명산(名山)인 장가계(長家界)란 명칭은 장가(長家)들의 지경(地境)이란 말이다. 옛날 유방(劉邦)을 도와 한(韓)나라를 세운 장량(長良)이 유방에게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하고 피신(避身)한 데서 연유(緣由)됐다는 것과도 맥(脈)을 같이한다. 즉 장가계는 세속적(世俗的)인 부귀영화(富貴榮華)와 명예(名譽), 권세(權勢) 등에서 벗어나 검은 머리가 아닌 흰머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지(境地)를 가리킨다.
장가계의 장은 그런 의도(意圖)로 쓰였으며, 완도의 장도 그런 의미로 쓰인 길 장(長)이다.
장보고의 성인 펼 장(張)은 길 장(長)과 활 궁(弓)자가 결합(結合)한 한자(漢字)다. 장은 본래 머리가 긴 노인(老人)을 그린 문자다. 그것은 곧 흰머리를 길게 날리는 노인을 가리키고, 거기에 궁(弓)이 붙은 장(張)이 되면, 장(張)은 ‘흰머리를 날리면서 활을 쏘는 노인네’ 를 그린 것이다. 이것은 멀리 있는 목표(目標)를 향해 활을 쏘면서 달려온 것이 인생(人生)인데, 흰머리가 날리는 노년(老年)에 마침내 그 요행(僥倖)을 터득(攄得)하여 세상(世上)에 베풀어주는 신선(神仙)을 가리킨다. 이것은 우리 민족(民族)이 추구(追求)해온 진정(眞正)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전형(典型)이다.
장보고는 장도에 청해진을 두어 멀리 있는 목표를 향해 활을 쏘면서 달려온 사람, 흰머리가 날리는 노인네처럼 세상에 베풀어주는(張) 신선(神仙) 같은 존재(存在)가 되겠다는 마음에서 장자가 들어간 완도(莞島) 장좌리(長左里)의 ‘장도(長島)’ 에 청해진을 설치(設置)한 것이다.
장보고는 자신의 성씨(姓氏)인 장(張)과 관련된 장(長)자가 들어간 곳의 섬에다가 청해진(淸海鎭)을 두었다. 張+長=大(커지다. 넓히다. 영향을 끼치다. 오래 지속되다) 라는 등식(等式)이 성립(成立)된 곳에 군사(軍事)를 크게 하여 나라를 오래도록 지키겠다는 마음에서 군사기지(軍事基地)와 무역(貿易)을 크게 하여 더할 나위 없는 부강(富强)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마음에서 무역기지(貿易基地)로 삼았다.
장가계에 세상을 베풀어준 흰머리를 한 신선(神仙)이 존재(存在)했다면, 장도에는 세상을 이끌어준 흰머리를 한 신선이 존립(存立)하며, 국가(國家)에서 특별(特別)히 설치(設置)해준 청해진(淸海鎭)이 그 위치(位置)를 지켰다.
장보고는 장도의 청해진이 그대로 있거나 지속(持續)한 존속(存續)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길 장(長)이 무색하리만큼 17년에 그치고 말았다. 짧은 역사(歷史), 이것은 장보고가 능력(能力)이 부족해서, 실적(實績)을 못 내서, 잘 운영(運營)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불의(不意)에 의한 사고(事故)로 그만 멈추고 말았다. 장보고는 조정(朝廷)에서 보낸 염장(閻長)한테 암살(暗殺)되고 말아, 장보고(張保皐)의 생애(生涯)는 마치게 됐고, 덩달아 청해진(淸海鎭) 인생(人生)도 끝나버렸다.
장보고가 완도 장도에 청해진을 둔 이유(理由), 즉 우리는 장(張)과 장도의 장(長) 상관관계(相關關係)가 있음을 새길 필요가 있다. 장(張)+장(長)은 상관관계이면서도 종속관계(從屬關係)였다.
●장보고는 열망과 열정은 포기하지 않았다
내 사전(事前)에는 절대(絶對) 포기(抛棄)란 건 없다.
장보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基本的)인 가치(價値)나 이상(理想), 어떤 열망(熱望).열정(熱情)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감(自信感)을 표출(表出), 신라의 대격변(大激變)을 외쳤다. 대체불가(代替不可)라는 구호(口號)로 신라가 급격(急擊)하게 변화(變化)는 시대를 열겠다고 의지(意志)를 보였다. 신라를 세계(世界)) 어떤 나라도 대신(代身)할 수 없는. 대체불가 신라의 담대(膽大)한 꿈이 시작(始作)되는 신라시대(新羅時代)로 만들겠다고 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에 첫 부임(赴任)을 하며 신라가 보유(保有)한 경험(經驗)과 역량(力量), 가치(價値)와 매력(魅力), 국가적(國家的) 위기(危機)를 이겨내겠다는 국민적(國民的) 역량(力量) 디딤돌 삼아, 신라천년(新羅千年)을 이어 가겠다고 했다.
장보고는 “그동안 신라에 대해 우리는 신라 주권(主權)의 위기, 통상(通商).안보(安保) 위기, 백성(百姓) 위기라는 새 가지 위기의 파고(波高)를 헤쳐 왔다” 며 “쉼 없이 몰아친 위기 앞에서도 하나 된 신라의 위대한 저력(底力)이 있기에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確認)했다” 고 하면서 신라 위기 극복(克服)에 혼신(渾身)을 다했다.
장보고는 “우리가 먼저 길을 만들어 낸다면, 신라의 도전(挑戰)은 세계(世界)의 새로운 표준(標準)이 될 것” 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세계가 주목(注目)하는 나라에서 세계가 꼭 필요(必要)로 하는 나라로, 힘차게 도약(跳躍)하겠다고 강한 의지(意志)를 보였다.
장보고는 백성 모두가 성장(成長) 기회(機會)와 혜택(惠澤)을 고루 누리는 초격차(超隔差) 산업국가(産業國家), 백성 모두의 평화(平和)와 자부심(自負心)을 지키는 국제(國際) 외교안보(外交安保) 강국(强國), 백성 모두가 합의(合意)한 규범(規範)과 규칙(規則)이 지켜지는 정상(頂上) 사회(社會), 백성 목숨을 살리는 청해진으로서 모두의 생명(生命)과 인간(人間)다운 삶을 지키기 등에 앞장섰다.
장보고는 “그동안 신라가 그랬듯이, 앞으로도 청해진 운영(運營)의 유일(唯一)한 기준(基準)은 오로지 백성의 삶과 나라의 발전(發展)과 신라의 번영(繁榮)” 이라며 “그동안의 신라보다 앞으로의 신라가 더 기대(企待)되는 청해진이 되겠다” 고 했다.
장보고는 “청해진 설치에 대해 신라는 되돌아보면 역대 임금들도 시대(시대)의 갈림길에서 언제나 새로운 도전(도전)을 통해 더 큰 도약(도약)의 문을 열어왔다” 며 “신라는 천년동안 많은 것들을 일구어왔고, 문화(文化)를 꽃피워왔다.
그러면서 “청해진은 단순한 신라에 대한 안보(安保)와 무역(貿易)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신라가 국제(國際) 경쟁력(競爭力))에서나 국제무대(國際舞臺) 진출(進出)에서 최종(最終) 승자(勝者)가 되는 길이자, 최고(最高)의 위치(位置)를 선점(先占)하는 일” 이라고 했다. 또 “한계(限界)에 직면(直面)한 서라벌(경주)를 넘어 성장(成長)의 축을 전국(全國)으로 다극화(多極化)해 국토(國土) 전체(全體)를 신라판(新羅板) 선진구역(先進區域)으로 탈바꿈시키는 원동력(原動力)이 되는 일” 이라며 “미래 세대(世代)를 위한 역사적(歷史的) 결단(決斷)” 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백성이 주인(主人)인 나라, 함께 행복(幸福)한 신라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장보고는 “신라 전체(全體)를 세계 최고(最高) 문화기지(文化基地), 무역기지(貿易基地), 군사기지(軍事基地)로 만들어 대체불가 신라를 반드시 열어갈, 대체불가 신라를 반드시 현실(現實)로 만들겠다” 며 “그 과정(過程)에서 어떤 백성도, 어떤 지역(地域)도 소외(疏外)되지 않도록 세심(細心)히 살펴 또 다른 신라천년을 이루겠다” 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속도전(速度戰)으로 청해진을 긴장(緊張)하게 했다.
●청해진은 외교 통상의 무역거점, 경제.문화.산업기지였다
신라 52대 흥덕왕(興德王)은 장보고의 부탁(付託)에 의해 신라 발전을 이끌며 국제적(國際的)으로 교류증진(交流增進)이 활발(活潑)하게 하여 신라의 발전(發展)과 위상(位相) 드높인 중심축(中心築)으로 자리매김하고, 신라의 도약(跳躍)을 견인(牽引)할 수 있도록 전폭적(全幅的)으로 지원(支援)하겠다고 완도(莞島) 바다의 장도(長島)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도록 인가(認可)를 했다.
장보고는 청해진 설치(設置)에 대해 육지(陸地)와 바다의 생명력(生命力)을 하나로 이어져 마침내 〈淸海鎭〉 이라는 희망(希望)을 돛을 올리게 됐다고 했다.
청해진은 해적(海賊) 소탕(掃蕩) 등 단순한 방어기지(防禦基地) 목적(目的)으로 두지 않았다. 설치 의도(意圖)는 방어기지보다 무역(貿易)에 있었다. 청해진은 당나라 무령군(武寧軍)을 참고(參考)로 하는 것으로 군사기지(軍事基地)이면서 무역기지(貿易基地)였고, 사실 청해진은 무역기지에 더 가깝다. 청해진은 외교(外交) 통상(通商) 기능(機能)을 담당(擔當)했다.
군사는 무역(貿易)을 위한 보조(補助) 역할(役割)로 띠었을 뿐이다. 신라 무역을 위해 든든한 뒤 배경(背景)이 되어 준 것이다.
청해진은 국가(國家) 발전의 동력(動力)을 만드는 역사적(歷史的) 전환점(轉換點)이자 지방(地方) 주도(主導) 성장(成長)으로 신라의 미래(未來)를 바꾸는 담대(膽大)한 도전(挑戰)이라고 평가(評價)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통해 신라는 국제교류(國際交流)로 영토(領土) 확장(擴張) 노렸다. 그는 ▲국제교류(國際交流) 증진(增進) 및 외교(外交) 지평(地坪) 확보(確保) ▲신라 상품(商品) 해외(海外) 진출(進出) 및 발전(發展) 도모(圖謀) ▲신라 국격(國格) 상승(上昇) 및 위상(位相) 제고(提高) ▲강한 신라를 위한 목적으로 청해진을 두었다.
●신라는 내개 맡겨라
확장정책(擴張政策), 보호정책(保護政策), 의지정책(依支政策)을 펼치고자 자신의 이름을 장보고(張保皐)라고 지은 그는 “신라는 나에게 맡겨라” 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에게 미래를 맡겨라. 이게 우리 신라의 마지막 도전(挑戰)이라고 신라천년(新羅千年) 신라번영(新羅繁榮), 변곡점(變曲點)에 선 정치(政治)와 경제(經濟), 사회(社會)에 대한 질문(質問)을 던지면서 그는 미래(未來)를 말했고, 변화(變化)를 호소(呼訴)했다.
바다의 피동(波動)에 스스로를 맡겨라. 장보고 선 공개선언(公開宣言) 물결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신라의 안보(安保)와 평화(平和), 그리고 발전(發展)과 번영(繁榮), 더 나아가 국제적(國際的)인 위치(位置)를 확고(確固)히 하기 위해 신라 니라와 백성(百姓), 그리고 ‘해안(海岸)과 선박 (船舶) 안전(安全)은 내게 맡겨라’ 라고 장보고라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국토(國土)의 지킴이를 자청(自請)했다.
●장보고, 장의 또 다른 의미
장(張), ‘베풀다. 넓히다. 확장하다. 늘이다. 펴다’ 의미를 지닌 장은 활 궁(弓)과 길 장(長)이 합쳐진 한자(漢字)이다. 장은 ‘활시위를 길게 당겨 펼친다’ 는 뜻이다. 장의 한자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또 다른 뜻이 담겨있다.
장(張)은 크게 활 궁(弓)과 길 장(長)로 구성(構成)이 되어있다. 활 궁(弓)에서는 몸 기(己)와 힘 력(力) 또는 칼 도(刀)의 한자로 구성이 됐다. 궁(弓)은 ‘힘차게 일어남’ 을 나타낸다.
활 궁(弓)이 몸 기(己)와 힘 력(力) 또는 칼 도(刀)자로 이루어진 한자(漢字)라는 것을 갑골문(胛骨文)에서나 금문(金文),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풀이하고 있지 않다. 활을 당기는 동작(動作) 정도로만 풀이한다. 몸 기(己)에서 파생(派生)된 한자로 ‘일어날 기(起)’ 가 있다. 활 궁은 화살을 당기는 힘, 즉 ‘힘차게 일어선다’ 는 뜻이다. 활을 당기면 화살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듯이 말이다. 몸 기(己)는 ‘다스리다’ 는 뜻이기도 하다. 직역(直譯)하면 ‘몸의 힘으로 다스린다’ 는 뜻인데, 활을 당기는 힘을 지녔으니, ‘힘차게 일어선다’ 는 강인(强靭)함을 보여준 ‘활 궁(弓)’ 이다.
힘차게 일어난다는 표현은 넘어짐.실패(失敗).절망(絶望)을 딛고 다시 일어서거나, 잠에서 깨어 힘차게 움직이는 의미로써 일어나다는 확장(擴張)해 부활(復活)처럼 위로부터 힘을 얻어 다시 일어선다는 의지(意志)의 표현(表現)이다. 넘어졌다 일어난, 실패(失敗)나 좌절(挫折) 후 다시 일어서서 행동(行動)을 재개(再開)한, 절망(絶望)이나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난, 마음의 무게를 덜고 새롭게 나아가는, 잠에서 깨어 일어난 일상에서 아침에 힘차게 일어나는, 부활(復活)처럼 위로부터 힘이 일어난 ‘힘차게 일어나라, 빠르게 출발하라, 당당하게 걸어라’ 는 구호적(口號的)인 의미로 쓰인다.
궁은 “오늘도 힘차게 시작(始作)합시다.” 장보고는 “축 처진 어께로 앉아 있지 말라” 며 “일어나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넘어진 자리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事實)을 잊지 말아야 합나다” 라고 ‘활 궁(弓)’ 자를 용기(勇氣)와 희망(希望)의 단어(單語)로 제시(提示)했다.
힘차게 일어나, 역동적(力動的)인 활 궁(弓)이다. 사물(事物)의 움직임이나 변화(變化)가 활발(活潑)하고 힘차게 일어나는 상태(狀態) 또는 성질(性質)의 물리적(物理的) 역동성(逆動性), 심리적(心理的) 역동성, 사회적(社會的) 역동성으로써 산태나 변화를 묘사(描寫)하는 형용사(形容詞)로써 예술(藝術).스포츠.경제(經濟).문화(文化)사회(.社會)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표현이다.
역동적인 궁(弓)은 일과 물건(物件)의 움직임이나 사물의 형상(形象).성질(性質) 등이 달리지는 등 변화가 활발하고 힘차게 일어나는 상태(狀態) 또는 성질(性質)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이 용어(用語)는 정지(停止)되어 있거나 변화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정적(政敵) 또는 정태적(情態的)의 반대 개념(槪念)으로, 다양한 분야(分野)에서 상태나 변화의 양상(樣相)을 묘사(描寫)하는 데 널리 사용(使用)된다.
궁의 역동성은 물리학에서는 물체(物體)의 운동(運動) 에너지나 힘찬 움직임을, 심리학에서는 정신(精神) 내부의 갈등(葛藤)이나 변화하는 심리(心理) 과정(過程)을, 사회학에서는 사회(社會) 구조(構造), 문화(文化), 관계(關係)가 지속적(持續的)으로 변화하고 상호작용(相互作用)하는 속성(屬性)을 의미한다.
궁은 ‘솟아오르다’ . 감정이나 힘이 힘차게 일어나는 힘이 솟아나는 상태(狀態)를 말한다. 신라의 영적(靈的) 싸움터 청해진(淸海鎭), 신라가 힘차게 일어나길 바라는, 어려움을 딛고 꼭 힘차게 일어날 것이라고 활 궁(弓)이 들어갈 ‘장(張)’ 을 내세웠다.
활 궁(弓)이 들어간 장(張)은 ‘귈기(蹶起)하다’ 라는 뜻을 지닌다. 어떤 목적(目的)을 이루기 위하여 마음을 돋우고 기운(氣運)을 내서 힘차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뜻에서 장보고(張保皐)라고 하였다.
장보고는 신라를 빛내고, 나라를 지킬 법(法)을 만들었다. 그 나라의 빛냄은 그 나라의 정신(精神)으로써 그 나라가 일어나고 튼튼하려면 가장 먼저 나라를 지키고 바른 몸가짐을 해야 정신력(精神力)에 튼튼해져서 신라가 힘차게 일어난다는 신념(信念)을 가졌다.
긴 장(長)에는 갈고리표지 궐(亅) 또는 뚫을 곤(丨)자를 찾아볼 수 있다. 장에는 하늘.땅.시림을 의미하는 석 삼(三)의 글자를 찾아볼 수 있디. 또 사림 인(人)을 닮은 형태(形態)를 읽어볼 수 있다.
갈고리(亅)는 무언가 갈고리에 걸어 ‘끌고 간다’ 는 의미다. 끝이 뾰족하고 굽어 있어 물건(物件)을 걸거나 끌어당길 때 도구(道具)인 갈고리는 일상(日常)의 도구뿐 아니라, 무기(武器)나 특정(特定) 생물(生物)의 갈고리로서 ‘갈고리 질 하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 갈고리, 공격(攻擊) 기술(技術)을 뜻하는 기술 숙련도(熟練度)나 전투(戰鬪) 효율(效率)을 높이는 의미에서 갈고리 짓을 한 장(長)자다.
뚫을 곤(丨)은 ‘세우다‘ 위 아래로 통하다. 나아가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 뚫음은 ‘막힌 것을 통하게 하거나, 장애물(障碍物)을 헤치다’ 는 뜻이다. 막힌 것을 해소(解消)시키는 행동(行動)을 뜻한다. 살아갈 길을 찾아내다. 살아갈 방법(方法)을 찾아내다. 수단(手段)이나 방도(方道)를 찾아내다. 또는 상품(商品)을 판매(販賣)할 곳이나 방법(方法)을 새로 찾아내는 판로(販路)를 뚫다. 바다를 뚫어 새로이 길을 내다. 천착(穿鑿)하다. 착공(着工)하다. 조철(照徹)하다. 관통(貫通)시키다. 장보고는 “뚫고 나가요” 하며 장(張)으로 막힌 길을 뚫고, 더 나은 길을 뚫어내었다.
장(張)에서의 활 궁(弓)과 뚫을 곤(丨)자가 햡쳐진 한자로 끌 인(引)이 있다. 인은 ‘끌다. 끌어당기다. 활을 쏘다. 물리치다. 인도하다. 늘이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 펼 장(張)은 활시위를 길게 잡아당기다. 펴다. 넓히다. 당기다. 뻗치다. 크게 하다. 일을 벌리다.베풀다’ 라는 의미로써 끌 인(引)에서 파생(派生)된 한자어다.
장(張)을 보면 끌 인(引)의 뚫은 곤(丨)에 하늘.땅.사람을 뜻하는 석 삼(三)자를 붙여놓았다. 장(張)은 베풀 장(張), 펼 장(張), 넓힐 장(張), 크게 할 장(張), 뻗칠 장(張), 당길 장(張)으로써의 한자에서 ‘끌 인(引)’ 의 의미를 부여(賦與)한 한자다. 끌어들인다는 것은 활을 쏘아 물리치거나, 영토(領土)를 크게 확장(擴張)시키거나, 사람을 끌어 모은다라는 의미로써 장(張)은 인(引)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
이런 일은 ‘사람(人)’ 에서 발생(發生)한다는 장보고의 철학(哲學)이요, 신년(信念)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짓기를 장(張)의 의미가 담긴 성씨(姓氏)를 선택해 장보고(張保皐)라고 하였다.
장(張)은 힘이나 무기(武器)의 무력(武力)으로 의한 뚫는다. 즉 세우거나. 통하게 하거나, 나가게 한 일을 하는, 이로 인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關係)를 맺어 우주(宇宙)의 질서(秩序)를 잡고, 나아가 세계(世界)의 안보(安保)와 평화(平和)를 유지(維持)시키겠다는 의미로서의 장(張)이다.
장보고는 단순히 장씨(張氏) 성(性)을 쓰지 않았다. 그는 살펴봄과 같이 그저 베풀 장(張). 펼 장(張)이라는 의미 때문에 그 성을 쓴 것은 아니다. 장보고는 장의 의미를 더 깊게 파악(把握)해 자신의 성(性)으로 쓰게 된 것이다.
장(張)은 ‘흰머리를 휘날리면서 활을 당기는 사람’ 을 형상화(形象化)한 한자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 외에 또 다른 면은 하늘과 땅, 사람(三) 과의 조화를 이룬 채 끌어당기려는(亅) , 뚫으려고(丨) 의 ‘힘차게 일서겠다’ 는 숨은 뜻이 담겨져 있다.
장보고는 장(張)의 상형문(象形文)의 뜻보다는 장(張)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조합(組合)된 한자(漢字)에서 더 의미를 두고, 달리는 말에 머리카락 휘날리며 활을 당겼다.
청해진은 신라를 더 힘차게 일어서게 했다.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은 당나라 무령군(武寧軍)에서 보여줬던 것보다 더 나은 탁월(卓越)하고, 월등(越等)한 능력(能力)을 발휘(發揮)했다.
완도(莞島) 장도는, 그 장이 ‘길 장(張)’ 이었다. 무언가를 늘려 오래도록 하게 하는 섬으로 여겨 장도(長島)라 하였다. 길 장(長)은 ‘펼 장(張)’ 으로 신라 바다를 출렁거리게 했고, 장도는 청해진을 통해 시각적(視覺的)으로는 섬이 작게 보였지만, 생각에 따라 장도는 장도(張島)로서의 사회(社會).문화(文化).정치(政治).경제(經濟).군사(軍事) 등이 다 모두 갖추어진, 모든 것들이 망라(網羅)한, 한곳에 하나에 집중(集中)되어 모아진 집약(集約)된 첨단(尖端) 국가(國家)로 골격(骨格)을 갖춘 보고(寶庫)의 대륙(大陸)으로 보였다.
길 장(長)이 하늘과 땅, 사람이 조화(調和)를 이뤄서 끌어당긴, 뚫은 일을 한 장소(場所)였음을 청해진을 통해 보여줬다. 장도(長島)는 장보고의 이름에서 더욱 빛났다. 살펴본바와 같이 장(張)에 지킬 보(保)와 언덕 고(皐)를 붙였다는 것은, 장도는 장보고에 의해 청해진으로 신라를 더 찬란(燦爛)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이미 당나라에서 궁복(弓福)이 아닌 장보고(張保皐)라는 이름으로 가여(寄與)했고, 그는 미리 조국(祖國) 신라(新羅)를 위해 지식(知識)과 기술(技術), 여러 분야에서의 경험(經驗)을 축적(蓄積)했다. 그런 바탕으로 그는 완도 청해진에서 자신 이름의 의미를 유감(有感)없이 표출(表出)해 보였다.
장보고의 장(張)이 획장(擴張) 개념(槪念)을 넘어 힘차게 일어서는 장보고, 하늘과 땅, 사람이 일체(一體)가 되어 모든 것들을 끌어들이고, 미래(未來)를 개척(開拓)하겠다는 마음으로 길을 새롭게 뚫은 장보고로서 나라를 지키고(保) 백성들에게 의지하게 기댈 언덕(皐)이 되어주는 장씨(張氏) 성(性)을 한 장보고로 자신을 당당(堂堂)하게 나타내 보였다.
장(張)의 일어남, 그리고 힘과 하늘.땅.사람의 일치성(一致性).조화성(調和性).사상성(思想性).정체성(正體性)을 일체(一體)시키는 이 심오(深奧)한 뜻이 담겨져 있음을 장보고는 살펴봤고, 해석(解釋)하며 성씨(姓氏)에는 장씨(張氏) 성만큼 의미(意味)가 담긴 훌륭한 성씨는 없다고 보고, 부모(父母)가 지어준 ‘궁복(弓福)’ 이라는 이름을 ‘장보고(張保皐)’ 로 개명(改名)하여 당나라 서주(西州) 무령군(武寧軍)의 군사(軍事)로서 임무(任務)에 최선(最善)을 다했으며, 그는 또 신라방(新羅坊).신라원(新羅院) 같은 곳에서도 자신의 이름처럼 뜻을 행동(行動)으로 나타내 보였다.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百姓)을 생각하는 한자가 ‘장(張)’ 으로 봤다.
그런 그가 다시 신라에 들어와 완도(莞島) 장도(長島)의 청해진(淸海鎭)에서 장보고(張保皐)라는 이름은 무슨 의미(意味)인지, 어떤 철학(哲學)과 정신(精神)을 가졌는지. 무엇을 하고자 한 이름인지를 분명(分明)하게 보여줬다.
징보고는 자신의 이름이 ▲국가(國家)의 정신사상(精神思想) 투철(透徹) ▲미래(未來)의 개척정신(開拓精神) 투지(鬪志) ▲국가의 안보관념(安保觀念) 확고(確固) ▲국가의 발전지향(發展志向) 의지(意志) ▲바다의 안전(安全)과 평화(平和) 확보(確保) ▲무역(貿易)의 교류증진(交流增進) 활발(活潑)함과 나라에게는 안정(安定)을, 백성(百姓)에게는 희망(希望)을 안겨주고자 한 장보고라는 이름으로 올곧게 했다.
길 장(長)을 ‘노인(老人)이 흰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모습’ 으로 표현(表現)은 그 머리카락의 가닥은 하늘과 땅의 기운(氣運), 사람의 영혼(靈魂)을 보여준 일로 세상(世上)이 하나가 되고, 평온(平穩) 상태(狀態)로 유지(維持)되고, 발전(發展)을 이루어 번영(繁榮)의 시대(時代)로 나아간다는, 긴 머리 휘날리며 신라 장수(將帥) 장보고, 신라 청해진부터 당.일본.동남아.아랍까지 활발(活潑)한 국제무대(國際舞臺) 진출(進出)이 흥미진진(興味津津)하게 펼쳐졌다.
청해진은 〈긴 머리 휘날리며〉 가 첫 진행(進行)부터 화제(話題)가 됐다. 청해진은 장보고와 정년(鄭年) 등 여러 장수(將帥)의 색다른 모습을 보고 활동(活動)이 궁금했는데, 그들의 내면(內面)의 세계(世界)까지 이어 보게 돼서 더 반가웠고 기대(期待)가 됐다.
완도 장도 청해진에서 펼쳐진 장수 3인방의 뱃놀이, 그리고 장보고의 즉석 활 솜씨가 군사(軍事).무역기지(貿易基地)인 청해진 진행의 시작(始作)을 알렸다. 부하(部下)이 신청한 〈아름다운 구속〉 은 청해진 진행(進行), 〈긴 머리 휘날리며〉 청해진 배경(背景)과 어우러져, 이 장면(場面)을 보는 백성(百姓)들의 감성(感性)을 자극(刺戟)했다.
바다의 출렁거림처럼 장보고는 온몸을 흔들어 됐다. 그는 청해진을 벗어나 망망대해(茫茫大海)로 향했다. 장보고는 높은 파고(波高)를 해 보이는 바다여도, 그에게는 무섭지가 않았다. 바다가 그에게는 모험심(冒險心)을 자극(刺戟)했고, 거침없고 두려움 없이 도전(挑戰)했다. 긴 머리 휘날리며 활을 당긴 장보고는 신라를 위협(威脅)하는 적(敵)들을 일시(一時)에 소탕(掃蕩)하거나 퇴치(退治)했다. 그의 용기(勇氣)는 무소불위(無所不爲)였고, 그의 실력(實力)은 유감(遺憾)없이 발휘(發揮)했다.
장보고는 바다의 쌀, 갓 지은 쌀밥에 감탄(感歎)했고, 장보고의 행동(行動)을 보면서 “주식 오른 줄 알았어!” 라며, 주식(主食)을 주식(株式)을 표현하는 특유의 우스게 소리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며, 장보고의 끝판왕의 단하나, 바다만 집중(集中) 공략(攻略)하며, 오랜만에 출연(出演)에도 변함없는 장보고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긴 머리 휘날리며 가장 두드러지거나 흥미(興味)있는 장면(場面)은 완도 장도의 〈청해진〉 이다. 신라 시림들은 물론, 세계 사람들이 유심(唯心)히 봤다.
긴 머리 휘날리며 연출(演出)을 해 보이는 장수(將帥)의 모습이 다들 강해서 강한 매력(魅力)만 있을 것 같은데, 무대(舞臺)에서는 실제(實際) 모습의 다른 모습이 오히려 이 청해진 군사(軍事).무역(貿易) 활동을 보게 되는 것이 매력적(魅力的)이었다.
긴 머리 휘날리며, 장도(長島)의 이름에 걸맞은 무대(舞臺)에, 그 무대에 장보고가 주연(主演)으로 연기(演技)를 펼쳤다. 조연(助演)에는 정년(鄭年) 등 여러 장수(將帥)와 부하(部下), 그리고 무역상인(貿易商人)들이 출연(出演)했다.
긴 머리 휘날리면서 끌어들었고, 뚫었다. 이게 바로 ‘장(張)이’ 라는 한자(漢字)의 숨은 뜻이다.
●군사력과 무역력을 갖춘 장보고
장보고는 직업군(職業軍)이다. 그는 활을 다루는 궁복(弓福)이라는 어이로 태어나 당나라에서 23년간 군(軍) 생활(生活)을 했다. 무령군(武寧軍) 소장(少將)으로 있으면서 군사기술(군사기술)을 터득(攄得)했다. 그리고 그는 군인으로서 있으면서 경제(經濟).정치(政治).문화(文化)에도 관심(關心)을 두었다. 특히 해상무역(海上貿易)에 관심을 보였다.
당나라는 신라보다 더 선진화(先進化)된 나라다. 선진문명(先進文明)이 발달(發達)된 당나라였다. 장보고는 선진문명이 발달된 당나라에서 자신의 생애(生涯)를 바쳤다. 58세 일기(一期)로 세상(世上)을 떠난 그는 23년을 당나라에 머물며 보냈다.
선진문명을 배운, 군사기술(軍事技術)과 무역(貿易)을 배운 장보고였기에 그는 군사(軍事)면 군사, 무역(貿易)이면 무역에 있어서 전문가(專門家)다운 실력을 갖추었다. 어느 누구보다 능력이 뛰어난 장수(將帥)였고, 전략가(戰略家)였다. 그리고 무령군이 지역을 방어(防禦)하는 목적(目的)이외도 해상무역(海上貿易)에도 손을 뻗쳐, 장보고는 이를 경험(經驗)했다.
이런 장보고가 조국(祖國) 신라(新羅)에 다시 들어와 당나라에서 배우고 실천(實踐)했던 것을 신라에서도 진행(進行)하였다. 42대 흥덕왕(興德王)의 재가(裁可)를 받아 완도(莞島) 장도(長島)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했다. 청해진은 해안(海岸)과 해역(海域)을 지키는 역할(役割)을 띤 군사기지(軍事基地)였다. 그 기지는 무역기지(貿易基地)로도 함께 쓰이게 했다. 장보고는 당의 무령군이 했던 것처럼 신라 청해진에서도 그대로 군사(軍事).무역(貿易) 등을 추진(推進)했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역사상 훌륭한 장수(將帥)를 배출(輩出)했다. 성울(聖雄) 이순신(李舜臣)을 비롯하여 고구려(高句麗) 광개토왕(廣開土王) 등 뛰어난 장수들이 한 시대(時代)를 호령(號令)했다.
특히 장보고는 다재다능(多才多能)한 재주를 갖춘 장수(將帥)로 알려진다. 그는 알다시피 군사를 거느린 장수이면서 무역을 담당(擔當)한 무역상인(貿易商人)이었다. 그는 단순한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을 추진하지 않은 신라를 대표(代表)하는 외교관(外交官)으로서 역할(役割)을 띠었다. 심지어 그는 신라 조정(朝廷)에까지 간여(干與)했을 정도다.
장보고에 대한 명암은 다양(多樣)하다. 군사(軍事).무역(貿易).외교(外交).통상(通商).정치(政治).문화(文化) 등 여러 분야(分野)에서 활약(活躍)을 했다. 특히 그는 해상무역(海上貿易)에 집중(集中)했고, 탁월(卓越)한 능력(能力)을 보여주며, 신라를 글로벌 신라로 한 단계(段階) 높여났다. 신라를 국제자유무역항(國際自由貿易港)으로 만들어냈다. 그런 그였기에 해상왕(海上王)이라는 칭호(稱號)를 붙여주고 있다.
장보고는 신라는 단순한 무역상인(貿易商人)이 아니라, 외국(外國)의 안보(安保)를 함께 책임(責任)지는 전력적(戰略的) 동반자(同伴者).협력자(協力者)라고 보고, 외국의 전략적 중심축(中心築)인 당.일본.동남아.아랍을 잇는 삼각지대(三角地帶)에서 정치(政治).외교적(外交的) 신뢰(信賴)를 확보(確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重要)한다면서 신라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한 것을 긍정적(肯定的)이고 희망적(希望的)으로 생각하고, 일회성(一回性)이나 단발성(單發性) 아니라, 지속적(持續的)이고 영구적(永久的)인 신뢰 구축(構築)으로 이어지게 했다.
신라는 청해진을 국가적(國家的) 과제(課題)를 풀 수 있는 곳으로 여기고, 신라의 미래(未來)가 달려있다는 생각으로 ‘신라의 변영(繁榮)과 안보(安保)는 청해진이다’ 라는 신념(信念)으로 군사시설(軍事施設)을 넘어 무역시설(貿易施設)로, 무역시설을 넘어 안보시설(安保施設) 및 동맹국(同盟國) 중심(中心)으로 외교(外交) 전략(戰略)을 재설계(再設計)했다.
장보고는 이런 정책으로 당.일본.동남아.아랍 등의 국가(國家)와 공동(共同) 질서(秩序), 공동 안보(安保), 공동 무역(貿易), 공동 번영(繁榮)이라는 공동(공동)을 핵심(核心) 키워드로 제시(提示)하며, 전 세계(世界)에서 안보(安保).무역(貿易)은 나라와 기업(기업)의 경쟁(競爭)이 아니라, 동맹(同盟)간 경쟁으로 여기고, 신라도 최소(最小)한 안보와 무역에 있어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결의(決意)하에 동맹 관계(關係) 구축(構築)에 더욱 적극적(積極的)으로 나섰다.
민(民).관(官).군(軍)이 총력(總力) 대응(對應)하여 축적(蓄積)한 경험(經驗)과 협업(協業) 체계(體系)를 군사(軍事)에 관련된 것은 물론 무역(貿易)에 관련한 모든 것들을 군사 교류(交流)나 무역 수출(輸出) 전반(全般)에 활용(活用)했다.
●이름이 성서(聖瑞)가 된 장보고
장보고(張保皐)의 장은 확장(擴張).확대(擴大)이라는 의미 외에 ‘확신(確信)’ 이라는 신뢰(信賴)와 보는 보호(保護),안보(安保)라는 의미 외에 ‘보상(報償)’ 이라는 기대(期待)와 고는 언덕이라는 의미 외에 ‘동반(同伴)’ 이라는 성장(成長)으로 자신의 이름을 빛냈다.
그는 이런 의미를 담은 이름으로 세상(世上)을 꿈꾸었고, 그렸다. 그가 꿈꾸고 그린 세상은 더 나은 사회(詩會)와 다양(多樣)한 삶을 응원(應援)하는 세상을 말한다. 장보고는 민주주의(民主主義), 정치(政治).경제(經濟),문화(文化) 그리고 환경(環境) 모두가 위기(危機)라고 진단(診斷)하고, 장보고는 “모두가 일상(日常) 속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남의 어려움을 내가 겪는 문제(問題)가 아니라는 생각을 흘러 보내게 되면, 결국 그 일이 일상에 물밀 듯이 밀물처럼 나에게까지 밀려온다고 보고, “내 자신을 위해, 그리고 이 다음 누군가를 위해 그림을 그려요” 했다.
앞으로 신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간(時間)을 지나 우리는 새로운 신라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절실(切實)한 순간(瞬間)에 놓이게 되었다면서 ‘천리(千里) 길도 한 걸음부터’ 속담(俗談)처럼, 장보고는 새로운 신라를 만들기 위해 백성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그 중 첫 번째 시리즈로 예술(藝術)을 통해 세상(世上)을 말하는 문화가 있는 삶이다. 신라는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나라다. 끊임없이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사람을 보았을 때 희망을 느낀다고 했다.
장보고는 “역사(歷史) 속에서 수많은 변화(變化)들은 한 사람의 노력(努力)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평범(平凡)한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오고가는 순간에서 만들어졌다” 면서 “더 다양한 생각들은 더 좋은 사회(社會)를 만드는데, 필수적(必須的)인 요소(要素)니까요” 했다.
장보고는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瞬間), 어떤 사회를 꿈꾸고 계신가요? 라고 물으며, 그는 이제 신라 백성(百姓)이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들며, 그 말들을 행동(行動)으로 옮겼다.
장보고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이 바라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마음 속 열망(熱望)을 청해진을 통해 표출(表出)했다. 목표(目標) 그 성취(成就)의 기술(技術)의 마음 속 열망(熱望), 꿈 목록(目錄), 핵심목표(核心目標) 하나는 부강(富强)한 신라, 안전(安全)한 신라, 편안(便安)한 백성, 번영(繁榮)의 신라였다.
장보고는 “외면(外面)으로 표출(表出)되는 모든 일들은 명확(明確)하든 흐릿하든 내면(內面)의 가치관(價値觀)에 의해 결정(決定)된다며 외면적(外面的)으로 하고 있는 일이 나면이 가치관과 일치(一致)될 때, 가장 큰 행복(幸福)을 느낀다” 고 했다.
자신(自身)의 진정(眞正)한 가치관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이 곧 자기 확신(確信), 자기 존중(尊重), 자부심(自負心)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본 장보고는 자기 존중의 수준(水準)이 행복(幸福)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봤다.
그런 생각을 가진 장보고는 꿈의 목록(目錄)을 작성(作成)했다. 장보고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아라” 하며 “그때부터 당신은 나비를 쫓아다니는 일을 그만두고 금(金)을 깨려 다니기 시작(始作)할 것이다” 라는 말을 새기고, 그저 낭만적(浪漫的)이거나 환상적(幻想的)인 일에 몰두(沒頭)하지 않는 현실적(現實的)이고 사실적(事實的)인 일에 집중(集中)했다.
핵심(核心) 목표(目標) 하나를 정한 장보고, 그는 “관심(關心)이 사람의 열쇠다” 라고, 명확(明確)한 주목적(主目的)에 대해 그것을 성취(成就)하는 방법(方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수록, 끓어 당김의 법칙(法則)이 더욱 활발(活潑)하게 작동(作動)하게 했다.
장보고는 “실패(失敗)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확실(確實)하다면, 감히 꿈꾸고 싶은 위대(偉大)한 일은 무엇인가?”
어떠한 목표를 선택(選擇)하든 그것을 종이에 적어라.
모두 적은 다음 그 가운데 적어도 하나를 행동(行動)에 옮겨라.
정기적(定期的)으로 검토(檢討)할 수 있도록, 호주머니용 색인(索引) 수첩(手帖)을 만들어라.
목표를 성취(成就)하기 위해 추가적(追加的)으로 들여야 할 노동(勞動), 시간(時間), 노력(努力)을 결정(決定)하라.
그 다음 부지런히 그 대가(代價)를 지불(支拂)하라.
목표에만 전념(專念)하라.
그렇게 다짐을 한 장보고는 “이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라” 며 “그러면 내가 당신의 인생(人生) 철학(哲學)을 말해주겠다. 당신이 바라는 일에 힘에 되어주겠다. 나도 당신과 함께 하겠다” 고, 내가 가장 가치(價値)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성실(誠實), 끈기, 지속적(持續的)인 노력(努力), 관심(關心), 배려(配慮), 사랑, 보호(保護), 책임(責任), 정작(正直), 절약(節約), 검소(儉素), 자기 절제(節制)라면서 한 문장(文章)으로 ‘정직(正直)하고 성실(誠實)한 사람’ 이라 했다.
장보고가 그린 멋진 세상은 천년신라(千年新羅)를 더 위대(偉大)하고 영화(榮華)롭게 해주었다.
신라(新羅)가 꿈꾸고, 백성(百姓)이 그린 세상
장보고는 상상(想像) 속 신라와 백성들을 세상 밖으로 꺼냈다.
신라 청해진 한쪽에는 색이 가득한 그림들이 놓여 있다. 물고기들이 우주(宇宙)를 여행(旅行)하고, 당근을 먹던 말(馬)이 활을 쏘기도 한다. 고래가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항해(航海)한다. 현실(現實)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場面)들이지만, 그 세계(世界)에서는 모두 자연(自然)스럽다.
장보고는 잘못은 신(神)에게도 있다면서 사랑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에 대해 노력(努力)하지 않는 자,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 불의(不意) 맞서려들지 않으려는 자가 있기에, 그들에게 아무리 따뜻한 사랑을 쏟아도 소용(所用)없다면서 신라는 노력한 사람, 여러 사람들 생각한 사람,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한 사람, 불의를 참지 못한 사람이 있었을 때 신라는 가장 멋진 나라요, 행복(幸福)한 신라라고 했다.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에 빛나는 일의 장(張)-확장(擴張)=확신(確信)했고, 보(保)-보호(保護)=보상(報償)했고, 고(皐)-의지(依支)=동반(同伴)했다.
●장보고와 신라의 상관관계 그리고 글로벌 프로젝트
국제신라를 만들고자 했던 장보고의 국가관과 사명감. 장보고가 설치한 청해진,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역사 이래 육지(陸地)와 해상(海上)을 연결(連結)하는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의 군무(軍貿), 대규모 글로벌 프로젝트를 실시한 일은 900년 이전에서는 처음이자 가장 큰 사업(事業)이었다. 간혹 고구려(高句麗).백제(百濟) 등이 청해진 같은 국직 한 정책사업(政策事業)을 진행(進行)한 적은 있지만, 청해진만큼 대형 프로젝트는 못됐다.
청해진은 한 나라의 방어(防禦).안보(安保)와 무역(貿易)을 위한 기지(基地)로 그치지 않았다. 세계(世界)의 군사(軍事).무역기지(貿易基地)로 역할(役割)을 띠었다.
신라를 세계의 중심(中心) 국가(國家)로 만들기 위한 전략적(戰略的) 측면(側面)에서 설치(設置)했다. 특히 청해진은 경쟁력(競爭力)이 증명(證明)된 무역(貿易)을 선보이고, 생산(生産) 및 판매(販賣)에 최적화(最適化) 전략(戰略)을 병행(竝行)에 시장(市場) 점유율(占有率)을 확대(擴大)해 나갔다.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 장보고, 그는 군사(軍事)와 무력(貿易)의 실무자(實務者)였다. 그는 국제무대(國際舞臺)에서 직접(直接) 무대에 서서 지휘(指揮)를 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를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은 828년에 푸른 파도(波濤)가 춤추는, 해양대국(海洋大國)을 꿈꾸고 추진(推進)할 수 있는 완도(莞島) 장도(長島)가 최적지(最適地)로 보고, 그는 왕의 허락(許諾)을 받아 신라 군사.무역기지로서 대형(大形) 프로젝트 사업(事業)을 진행(進行)하게 했다.
장보고는 기획가(企劃家).전략가(戰略家).전술가(戰術家).외교(外交).통상전문가(通商專門家),무역상인(貿易商人)과 정치가(政治家).경제인(經濟人),문화인(文化人)이라는 수식어(修飾語)가 따른다. 그런 탁월(卓越)한 인물(人物)이 청해진이라는 신라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推進). 성사(成事)시켰다.
이런 훌륭한 인물이 청해진 대서로 첫 부임(赴任)해 신라는 청해진을 통해 국제적(國際的)을 발돋움하게 했다.
특히 장보고는 당나라와 인연(因緣)을 계기(繼起)로 당나라와의 우정(友情) 바탕으로 신라(新羅)와 당(唐) 간 정치적(政治的).경제적(經濟的).문화적(文化的) 신뢰(信賴)를 공고(鞏固)히 하고, 전략적(戰略的) 동반자(同伴者) 관계(關係)를 한층 심화(深化)시켜 갔다.
청해진은 군사적(軍事的)인 것들이 모두 집약(集約)된 기지(基地)이다. 해안(海岸) 방어(防禦) 목적(目的)으로 그치지 않았다. 신라 국토방위(國土防衛)와 안보(安保) 등의 정보(情報)와 전략(戰略)을 짜내는 본부(本部) 역할(役割)을 띠었다. 청해진은 다른 군사기지(軍事基地)와는 달리 국제적(國際的) 성격(性格)을 갖추었다. 청해진은 신라 해안(海岸)은 물론 해역(海域)까지 담당(擔當)했다. 청해진은 또 무역(貿易) 창구(窓口)로써의 보고(寶庫)다. 무역창구로써 무역 업무(業務)를 처리하는 창구(窓口) 역할이나, 활용(活用)을 했다. 무역창구인 청해진이 거래처(去來處)와의 사무(事務) 처리(處理), 수입(輸入).수출(輸出) 서류(書類).통관(通關).운송(運送)을 일괄(一括) 처리하는 업무를 수행(隨行)했다.
청해진은 해외(海外) 공급자(供給者)-Supplier, 국제복합일관(國際複合一貫) 수송업자(輸送業者)인 혼재업자(混在業者)-Forwarder와의 연락(連絡) 및 내용(內容) 확인(確認) 등 사무처리(事務處理)를 담당했다. 상품(商品) 문의(問議)부터 발주(發注), 납기(納期) 확인(確認).조정(調停).송금수배(送金手配), 축하수배(出荷手配) 등 전 과정(過程)을 관리(管理)했다.
해외국(海外國)과의 수입(輸入) 관련 서류(書類)를 확인하고, 통관업자(通關業者).운송사(運送社) 견적(見積) 의뢰(依賴)를 진행했다.
청해진은 당.일본.동남아.아랍 등과의 무역창구로서 입하(入荷)까지 일괄적(一括的)인 업무(業務)를 맡아, 당.일본 등 국내(國內) 수입업무(輸入業務)와 신라 청해진으로 보내는 수출(輸出) 업무를 함께 담당했다.
청해진은 당.일본.동남아.아랍 등의 국제무역단일창구(國際貿易單一窓口)로서 농산물(農産物).수산물(水産物).공예품(工藝品) 등 수출을 위한 업체(業體) 등록(謄錄).신청(申請), 품목(品目) 등록(謄錄), 서류(書類) 업로드 등 절차(節次)를 안내(案內)하는 단일(單一) 창구(窓口) 운영(運營)했다.
장보고는 자신이 축적(蓄積)한 모든 것들을 신라 청해진에서 작품(作品)을 완성(完成)해 보였다. 자신이 그린 청사진(靑寫眞)을 당나라에서 기획설계(企劃設計),계획설계(計劃設計).기본설계(基本設計)를 진행했다면, 신라에서는 실시설계(實施設計)를 하여 완성도(完成度)를 높였다.
바다.바람.태양이 만든 태초의 청해진 결정체(結晶體)-Crystallization, 무결(無缺)한 인도자(引導者)의 결정체는 안보(安保)와 평화, 발전(發展)과 번영(繁榮)으로 안내(案內)하는 인도자의 기운(氣運)이 서린 결정체가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전해져오는 듯한 진동(振動)이 느껴졌다. 모든 공격력(攻擊力).방어력(防禦力), 최대(最大) 생명력(生命力).생존력(生存力), 사회력(社會力).문화력(文化力), 정치력(政治力).경제력(經濟力)을 소환(召還)하여 새로운 길을 열어갔다.
이름 하여 황금시대(黃金時代)를 활짝 연 청해진으로서의 입지(立志)를 다졌다. 그리고 황금빛의 찬란(燦爛)함을 반짝이는 신라의 진(眞) 모습을 보여줬다.
천일염(天日鹽)이 바닷물 속 미네랄 성분(成分)을 고스란히 품은 바다의 선물(膳物)이듯이 청해진은 바다의 성질(性質)과 환경(環境)을 그대로 품은 바다의 고귀(高貴)한 산물(産物)이다. 청해진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소중한 유산(遺産)으로 남는다.
천일염은 부드러운 짠맛 뒤로 쌉싸래함과 은은한 단맛까지 다채로운 맛이 스팩트럼이 펼쳐진다. 소금 한 알이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듯한 느낌은 좋은 천일염만이 갖는 놀라운 능력(能力)이다. 청해진도 천일염 같은 결정체를 내며 천일염 같은 다채로운 맛.멋의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청해진, 그리고 장보고, 다들 음표의 미음 결정체(結晶體)는 몇 개일까?
청해진의 이해(理解), 현장(現場) 최고(最高) 전문가(專門家)의 결정체는 장보고이며, 그의 결정체는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의 두 개로 결정체는 육각형(六角形)을 이루고 있다.
장보고는 법(法)의 정신(精神)을 만들어 그 규칙(規則)을 지키면서 청해진을 추진(推進)했다.
덕성(德性)으로 유지되는 민주(民主) 청해진
절제(節制)로 유지되는 귀족(貴族) 청해진
명예(名譽)로 유지되는 군주(君主) 청해진
자유(自由)로 유지되는 백성(百姓) 청해진
질서(秩序)로 유지되는 정부(政府) 청해진
평화(平和)로 유지되는 군정(軍政) 청해진
안보(安保)로 유지되는 국가(國家) 청해진
장보고는 자신의 일이 오래 할 수 있도록 바랐다. 장(張)이라는 한자는 ‘크게 넓히다’ 는 확장(확장)의 개념(개념)이기도 하지만, 이런 뜻이 길게 이어지게 했으면 한 장(長)이라는 개념도 담겼다.
그는 여러 일들이 오랜 기간(其間)에 걸치는 장기적(長期的)으로 이뤄지고 유지(維持) 되도록 바랐다. 짧게 그쳐서는 안 된다는 자신만의 철학(哲學)과 집념(執念), 강한 의지(意志)를 보였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자신의 성(性)을 장씨(張氏) 삼고, 뜻을 펼쳤다. 장(張)이란 판자(漢字)를 가장 좋아하고, 자신의 뜻임을 알리며 신라(新羅)와 백성(百姓)을 생각했다. 세계(世界)의 평화(平和)와 번영(繁榮) 위해 뛰었던, 자신의 꿈이 오래도록 펼쳐지기를 원해 장(張)과 장(長)은 의미(意味)가 같고, 성향(性向)이 동일(同一)하다고 여겼다. 장(張)은 장(長)이 되어야하고, 장(長)은 장(張)이 되어야한다. 이로써 두 장은 ‘보(保)’ 가 유지(維持)돼, 결국(結局) 기댈 언덕이 생긴다는 ‘고(皐)’ 가 성립(成立)된다고, 장보고(張保皐) 사상(思想) 논리(論理)를 들었다.
천년신라(千年新羅)를 꿈꾸었던, 신라 조정(朝廷)과 백성(百姓)들의 그 마음을 안 장보고는 신라가 영원(永遠)한 번영(繁榮)을 누려고 존재(存在)하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에서 그는 사리지지 않은 신라, 이 세상(世上)에서 신라가 망(亡)하지도 없어지도 않고, 계속(繼續) 존재(存在)해주길 소망(所望)하는 마음에서 그는 〈장보고〉 라는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랐고, 쓰이도록 노력(努力)했다.
청해진이 있는 장도(長島), 이 섬 이름마저도 ‘길 장(長)’ 이 들어가게 할 정도로 장보고는 길게 이어져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음을 알 수 있다. 길이길이, 오래도록 자신의 일이 펼쳐지고, 일들이 지속(지속)되기를 바랐다. 내 일에는 장(張.長)이 아니면 안 된다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장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장보고는 그런 장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광장(廣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市場)의 ‘마당 장(場)’ 을 선호(選好)했다. 그는 또 ‘장차 장(將)’ 에 매력(魅力)을 느꼈다. 장수(將帥)로서의 용장(勇壯)이 되고 싶어 이 장을 좋아했다. 장은 또 ‘꾸밀 장(裝)’ 으로써의 자신을 치장(治粧)하려 했다. 치장은 곱게 모양(模樣)을 낸다는 의미(意味)보다는 ‘세상(世上)을 아름답게 만든다’ 는 의미다.
장보고는 장보고라는 이름으로 온 세상이 아름다워지기를 바랐다. 세상이 아름답다라는 것은 함께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의미로, 공동체(共同體) 동행(同行)의 가치(價値)를 창조(創造)하는 신라로서 좋다. 그런 신라가 있어 세상이 아름답고, 평화(平和)롭고, 영화(榮華)롭고, 활기(活氣)차다.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이런 문장을 반복적으로 해되며 ‘張=長=場=將=裝’ 으로 이어지게 했다.
완조(莞島) 장좌리(長左里) 장도(長島)는 긴 섬이라는 뜻이지만, 장보고는 이 섬의 이름 장도를 장도(長道)로 보았다. 길게 길(道)이 난 장도로 여기면서, 장도에 있는 청해진에서 모든 길이 나고, 뻗어가길 바랐다. 길이길이 난 ‘장도와 청해진 그리고 장보고’ 라는 관계(關係)를 설정(設定)해 오래 오래라는 시간(時間)이 흐르고, 역사(歷史)가 써지기를 바랐다.
장도는 청해진을 길게 뻗어가게 하였고, 청해진을 국제(國際) 규모(規模)로 키우거나, 성 장(成長)시킨 장본인(張本人)은 바로 ‘장보고’ 였다.
궁(弓)이 화살을 길게 당긴 모습이라고 하지 않던가? 장보고는 활을 좋아하는 아이의 ‘궁복(弓福)’ 이라는 아이로 태어났다. 활을 길게 당기는 일이란, 장(張)과 장(長)을 말한다. 이 장은 광장(廣場)과 시장(市場)의 장(場), 용장(勇將)과 덕장(德將)의 장(將), 치장(治粧)과 단장(丹粧)의 장(裝)으로 발전(發展)됐다. 발전이 오래도록 유지(維持)되기를 바란, 신라번영(新羅繁榮)이 지속(持續)되기를 바랐던, 장보고의 간절함은 영원(永遠)하다.
●청해진은 신라 이상의 세계적인 안보와 무역거점
신라에 청해진(淸海鎭)을 둔 것은 한반도(韓半島) 역사(歷史)를 새롭게 쓴 획기적(劃期的)인 혁신(革新).창조(創造)의 변화(變化)요, 희망(希望)의 기대(期待)이다.
청해진은 단순한 방어(防禦).교역(交易) 이상(異常)의 의미를 갖는다. 신라는 물론 해외 나라들이 안보(安保)와 평화(平和), 그리고 경제(經濟)와 문화(文化)를 유익(有益)하고 편리(便利)하게 되면서 국가(國家) 간 동맹(同盟), 국가 간 교역(交易)의 저변(底邊)이 넓어지고, 국가와 기업(企業) 가치(價値)도 재평가(再評價)될 가능성(可能性)이 커졌기 때문이다.
신라는 청해진 성장(成長)으로 글로벌 차세대(次世代) 군사(軍事),무역(貿易) 등 군사.경제(經濟) 전반(全般)에 연결(連結)을 더욱 강화(强化)하고 박차(拍車)를 가해 새로운 시업(事業) 기회(機會)를 발굴(發掘)하고, 전략적(戰略的) 관계(關係)를 강화하는 계기(契機)로 삼겠다고 하면서 전 세계(世界) 투자자(投資者)들의 접근성(接近性)을 높여 군사.무역 핵심 관계자와 국제적(國際的) 청해진, 신라가 되겠다고 강한 의지(意志) 나타냈다.
장보고는 혁신(革新)을 통해 군사.무역 가능성(可能性)의 경계(境界)를 넓혀가며, 함께해준 임직원(任職員)과 왕(王), 조정(朝廷) 대신(大臣), 그리고 군사(軍事) 관계자(關係者)들이 더 큰 성취(成就)를 이루도록 지원(支援)과 협조(協助)를 해준 덕(德)에 청해진은 세계 최고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의 모범(模範)으로 증명(證明)하며, 군림(君臨)하고 있다고 했다.
장보고는 당.일본 등 낯선 이웃이 아닌 가까운 친구(親舊)로 여기며 깊은 신뢰(信賴)와 특별(特別)한 유대감(紐帶感)을 나누는 나라라고 했다.
장보고는 군사.무역에 있어서 양국(兩國) 당.신라, 일본.신라 협력(協力)의 황금시대(黃金時代)를 선언(宣言)하고, 전략적(戰略的) 동반자(同伴者) 관계를 한 단계(段階) 더 발전(發展)시키기로 뜻을 모아, 양국 백성(百姓)이 실생활(實生活)에서 체감(體感)할 수 있는 협력(協力)을 지속(持續) 확대(擴大)해 나갔다.
장보고는 양국 백성이 오랜 역사 속에서 형제(兄弟)와 같은 우의(友誼)를 이어왔고, 신라와 당.일본 등 ‘모두 사람은 직접 사귀어봐야 한다’ 는 뜻의 속담(俗談)을 갖고 있다며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양국의 전략적(戰略的) 동반자(同伴者) 관계가 더욱 발전(發展)하기를 기대(期待)했다.
장보고는 당.일본 등 군사(軍事) 협력(協力), 무역(貿易) 교류(交流)의 계기(繼起)로 정말 새로운, 더 깊이 있는 관계가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양국 관계의 지속 발전을 위해서는 양국 정부(政府)가 법적(法的)인 조치(措置) 등을 통해 영국 간 활발(活潑)한 교류(交流)를 뒷받침하는 데, 정부의 역할(役割)이 매우 중요하고 보고, 양국 정부 역할의 적극(積極) 협조성(協助性) 주문(注文)했다.
●도전 청해진 신라 바다는 넘실거렸다
저 바다가 내가 꿈꾸는 바다. 파도는 친다. 그러면서 바닷물이 밀려들어 온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잔잔하게 바닷물은 차오르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나는 그런 바다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푸르름보다는 바닷물의 강인함이다.
그 강인(强忍)함음 ‘도전(挑戰)’ 이라는 단어(單語)가 떠오른다. 도전은 맞서 싸우는 일로, 도전에 응하다. 정면(正面)으로 도전하다 라는 도전, 군사(軍事).무력기지(貿易基地)의 청해진(淸海鎭)을 설치(設置)한 장보고는 ‘도전(挑戰)하지 않는다면 미래(未來)는 없다고 했다.
파도치는 물결을 도전하는 모습으로 봤던 장보고는 〈도전 청해진〉 기치(旗幟)를 걸고, 그는 강력(强力)한 힘과 단호(斷乎)한 의지(意志)로 ‘세상(세상) 일은 도전(挑戰)에서 비롯된다’ 라고, 도전정신(挑戰精神)을 길렀고, 그 도전에는 불의(不意)를 마다하지 않았다.
“도전하지 않는 청해진은 필요 없다.”
“청해진은 도전만이 살길이다.”
청해진의 도전은 신라의 미래(未來) 개척(開拓)이요, 백성(百姓)의 삶을 영위(營爲)하는 일이다. 그리고 세계(世界)를 평화(平和)롭게 하는 일이다. 번영(繁榮)과 영화(榮華)를 위한 〈도전 청해진〉 이다.
장보고는 도전을 길 도(道)와 뛸 도(跳). 싸울 전(戰)과 펼 전(展)으로 여겼다. 신라가 나아가는 길, 쉼 없이 뛰어 상대(相對)와의 걍쟁(競爭)에서 자신의 기량(技倆)을 마음껏 펼치겠다는 의지(意志)를 보였다.
●신라는 신화를 말한다
신화(神話), 설화(說話)의 한 가지, 만족(民族).국가(國家)의 기원(起源), 초자연적(超自然的) 존재(存在)와 그 사적(事迹), 유사(有史) 이전(以前)의 민족사(民族史) 따위의 이야기를 말한다.
신화창조(神話創造), 신라는 신화를 창조한 나라라고 말한다. 찬란한 신라로 역사(歷史)에 남고 있다. 그런 신라가 ‘새 신(新), 새그물 라(羅)’ 로서의 정신(精神)과 품격(品格)을 유지(維持)한다. 신라의 신(新)은 산화의 신(神)이다. 신이라는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는 이상야릇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 정신(精神), 혼(魂)’ 을 말한다.
신라가 불가사의할 만큼, 정신세계(精神世界)를 추구(追求)하고 있고, 그 넋이나 얼이 신비(神秘)스럽다. 그래서 신라를 신화라고 여기기도 하며, 새 신(新)이라는 것은 ‘처음’ 을 나타낸 말로써 시초(始初), 맨 처음으로 문화(文化)를 꽃피우고, 사회(社會)를 일군 신라, 〈신화창조〉 의 신라임을 말한다.
새롭다는 뜻은 ‘신화를 이룬다’ 라는 의미로 본다. 그래서 〈신라=신화〉 라는 등식(等式)이 성립된 신라의 국명(國名)의 위대(偉大)하고 거룩하며, 찬란(燦爛)하다. 신비(神秘)의 상서(祥瑞)로운 기운(氣運)이 느껴진다.
신라=신화, 이런 등식을 장보고는 풀기를 좋아했다. 수학적(數學的) 공식(公式)처럼 신라에 대한 문제(問題)를 ‘신화(神話)’ 라는 답으로 문제를 풀었다. 서라벌+신라=신화 이렇게 풀어본 장보고의 문제 풀이는 아무리 고차적(高次的) 방식(方式)이라도, 그에게는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그는 〈장보고〉 라는 이름으로, 〈청해진〉 이라는 기지(基地)로 그 해답(解答)을 내났다. 신라의 신화창조를...
신라 신화는 곧 장보고 신화였으며, 청해진 신화창조였다. 신라는 통일신라 이전에부터 신화창조(神話創造)를 해왔다. 삼국통일(三國統一)을 하면서 그 신화(神話)는 더욱 드러났고, 빛났다.
장보고가 신라=신화를 만들어내는 만큼, 적(敵)이 생겼다. 신회창조를 구현(具顯)한 장보고에 대한 시기심(猜忌心)이 커졌다. 그는 결국 염장(閻長)이라는 한 자객(刺客)에 의해 단 칼에 목숨을 잃었다. 장보고의 신회창조를 자신들의 위기창조(危機創造)로 보아 불안(不安)을 느껴, 신화적(神話的)인 인물인 장보고 제거(除去)에 나섰다.
그런 무서운 견제(牽制) 세력(勢力)에 의해 〈신라=신화〉 라는 등식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신라는 얼마가지 못하고 패망(敗亡)하는 불운(不運)을 맛봤다. ‘천년신라, 영원한 신라, 사리지지 않는 신라’ 라는 말이 무색(無色)하게 되어버렸다.
장보고는 58세의 일기(一期)로 세상(世上)을 떠났다. 그는 청해진에서 오랫동안 존속(存續)하지 못하고 17년간 임무(任務)를 마쳤다. 역사가(歷史家)들은 장보고가 10년만 더 임무를 수행(隨行)했었더라면, 신라는 더 훌륭한 나라로 번영(繁榮)을 누렸고, 영토(領土)의 지평(地坪)을 고조선(古朝鮮)을 넘어 중국(中國) 대륙(大陸)으로 그 범위(範圍)를 훨씬 넓혔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육지(陸地).바다 등 신라의 영토는 반도를 넘어 대륙으로 대국(大國) 신라(新羅)로 칭기즈칸이 대륙을 점령(占領)하며 그 위세(威勢)를 떨쳤듯이 장보고에 의해 신라도 바다와 대륙을 점령하며,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을 것이라고 장보고의 죽음에 안타까워한다.
신화창조를 한 장보고는 해상(海上)을 통해 무역(貿易)이라는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을 건설(建設)했다. 무역은 당.일본 등 여러 나라들과 외교(外交).문화(文化) 등에 발전(發展)을 도모(圖謀)했고, 깊은 신뢰(信賴)를 쌓았다. 신라 국격(國格)을 한층 높였다.
이런 신화적(神話的)인 인물(人物)의 정보고가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 통일신라(統一新羅)의 무주별기(茂朱別記)를 역임(歷任)한 장수(將帥) 염장(閻長)에게 암살(暗殺) 당했다. 838년 장보고가 왕위계승(王位繼承) 분쟁(紛爭)에서 패배(敗北)하여 청해진(淸海鎭)에 피신(避身)해 있던 김우징(金祐徵)을 도와 반격군(反擊軍)을 파견(派遣)할 때, 이순행(李順行).정년(鄭年) 등과 5000명의 군사(軍士)를 이끌고 참여(參與)하여, 45대 신무왕(神武王) 즉위(卽位)에 일익(一翼)을 담당(擔當)했다. 이후 장보고가 자신의 딸을 46대 문성왕(文聖王)의 왕비(王妃)로 세우려고 중앙정부(中央政府)와 갈등(葛藤)을 빚자 중앙정부측(中央政府側)에 가담(加擔)했다. 염장은 장보고의 막하(幕下)에 거짓 투항(投降)했다가 주연석상(酒筵席上)에서 그를 암살하고 돌아갔다. 그 대가(代價)로 아간(阿干) 또는 아찬(阿湌)에 임명(任命)되어 이어진 장보고 세력(勢力)의 저항(抵抗)을 진압(鎭壓)했다.
장보고의 그 깊은 뜻이 담긴 장과 보와 고라는 정신(精神)과 행동강령(行動綱領)은 더 이상(以上) 진행(進行)되지 못했고, 역사(歷史)의 이슬로 사리지고 말았다.
●불멸의 장보고, 사라지지 않은 우상
불멸(不滅)-immortal,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아니함을 뜻한다. 영원함, 죽지 않음의 의미다. 장보고는 ‘불멸의 인간(人間)’ 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人物)이다. 그는 신라의 장수(將帥)로서 청해진(淸海鎭)을 처음 설립(設立)한 인물로서 그는 군사(軍事).무역기지(貿易基地)인 청해진을 통해 안보(安保)를 강화(强化)시켰고, 해상무역(海上貿易)으로 신라 부강(富强)하게 함은 물론, 국제적(國際的)으로 위상(位相)을 높였다.
그런 장보고를 우리는 사라지지 않은 우상(偶像), 영원히 남을 인물로서의 불멸의 이야기로 써가고 있다. 장보고는 해상왕(海上王)이라는 거창(巨創)한 칭호(稱號)를 붙여주며, 불멸성(不滅性)을 주제(主題)로 한 신화(神話)의 역사(歷史) 서평(書評)을 한다.
장보고는 “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고 장보고에 관한 신라 속 인물과 백성의 만남에서 장보고 이야기의 안팎의 경계(境界)를 무너뜨린 대담(大膽)한 서술(敍述), 불멸을 향한 인간(人間)의 헛된 욕망(慾望)과 그 불멸로 인해 더욱 깊어지는 고독(孤獨)이 쌓인다.
장보고를 보기를 무협(武俠), 정파(政派), 시파(時派), 망나니, 지존(至尊)으로 표현(表現)한다. “나는 무공(武工)을 익힌 낭인(浪人)이다” 라고 한다. 칼질과 활, 피 보는 걸 마다하지 않는 의협심(義俠心)이 강한 그였다.
지구상(地區上)의 인간(人間)은 필멸(必滅)의 신(神)이며, 천상(天上)의 신은 불멸(不滅)의 인간이었다. 장보고는 천상의 신이 되고 싶었다. 그는 신라 불멸의 안물(人物)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불멸의 혼(魂)이 위태(危殆)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천상계(天上界)에서 거의 불멸의 존재(存在)가 되어 가고 있었다.
청해진(淸海鎭)은 본래 혁신(革新)과 실험(實驗)과 학습(學習)의 원칙(原則) 위에 세워줬다. 15년이 넘는 시간(時間) 동안 이곳은 세상(世上)을 움직이고 일처를 버꾸고, 미래(未來)를 꿰뚫어본 예언자(豫言者)들을 배출(輩出)했다.
청해진의 뿌리는 학계(學界)와 산업(産業) 현장(現場), 그리고 정부(政府)의 넉넉한 자금(資金)줄에 있다. 거기에 천재적(天才的)인 두뇌(頭腦)와 자본(資本), 널널한 규제(規制) 기능(可能), 기성세대(旣成世代)나 정책(政策)에 저항(抵抗)하는 반문화적(反文化的) 반항(反抗) 정신(精神)이 어우로진 덕분(德分)에 이곳은 전 세계(世界)에서 위험(危險)을 감수(甘受)하고 빠르게 도전(挑戰)하며 실패(失敗)해도 금방 반등(反騰)하는 독보적(獨步的)인 성지(聖地)가 됐다.
장보고는 불멸주의자(不滅主義者)들처럼 과거(過去)에 그어진 국경(國境)에 안주(安住)하기보다는 자신이 건설(建設)할 문명(文明)이 국가(國家)라는 개념(槪念)을 재구성(再構成)하게 되리라 상상(想像)했다.
바다로 흐르는 장보고 불멸의 사랑, ‘사랑의 찬가(讚歌)’ 가 이토록 신라다운 선율(旋律)이 또 있을까? 무한(無限)의 주인(主人), 불멸의 활, 영생(永生)이라는 저주(咀呪)에 홀린 천재(天才) 궁사(弓師) 장보고, 그는 어린 나이에 호위무사(護衛武士)가 되었다.
불멸의 장보고, 신라의 반격(反擊),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의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새로운 시대(時代)를 열려면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고 집념(執念)을 보였다. 세계(世界)의 신화(神話)가 역사(歷史)을 거쳐 전 세계인(世界人)이 사랑하는 불멸의 정보고, 장보고의 신화가 역사를 거쳐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불멸의 이야기가 되기까지는 피나는 희생정신(犧牲精神)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보고의 신화는 단순한 옛날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신화(神話)에 나온 유적지(遺蹟地)가 실제(實際)로 발굴(發掘)되면서 불멸의 역사가 되고, 예술품(藝術品)에 녹아들어 인문학(人文學)을 발전(發展)시키기도 했으니, 장보고의 신화는 그 당시(當時) 인간사(人間事)의 발전에도 지대(至大)한 영향(影響)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신라 신화에서 주목(注目)할 인물은 〈장보고〉 다. 그는 뛰어난 리더십의 소유자(所有者)였고, 대범(大凡)한 모험가(冒險家)였다.
장보고는 그의 이름의 뜻대로 세상(世上) 못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으며, 그는 활(弓)과 검(劍)을 소유(所有)했는데, 허리띠를 매고 쇠장갑을 끼고 무기(武器)를 시용하면 천하(천하)에 무서울 일이 없었다.
신라의 위대(偉大)한 유산(遺産), 불멸의 군사기지(軍事基地)와 무역기지(貿易基地) 청해진(淸海鎭), 그리고 그가 태어난 고장, 전남(全南) 영암(靈岩)의 선암(船岩)마을에 있는, 장보고의 전설(傳說)이 서린 건덕암(乾德岩)과 국두암(國頭岩)도 위대한 유산으로 장보고에 대한 존재감(存在感)을 과시(誇示)하고, 장보고(張保皐)와 신라(新羅)의 역사(歷史)를 보여주고 있다.
불멸(不滅)과 필멸(必滅)이 만난, 장보고의 생애(生涯), 그는 58세의 일기(一期)로 생(生)을 마감했지만, 그의 영혼(靈魂)은 세상(世上) 떠돈다. 장보고는 세상을 떠났지만, 사리지지 않은 인물(人物)로서, 우리는 천년(千年)이 지났어도 아직도 그를 맹목적(盲目的)으로 추종(追從)하고 존경(尊敬)하는 대상(對象)으로써 우상(偶像)으로 여긴다.
●청해진 매력적인 사업구조+높은 신작 가능성과 잠재력
신라 청해진(淸海鎭), 장보고(張保皐)가 제안(提案)해 완도(莞島) 장도(長島)에 설치(設置)한 청해진은 신라 군사(軍事).경제(經濟).외교(外交).안보(安保).무역(貿易) 정책(政策) 혁심(核心) 통합(統合) 관제(官製) 담당(擔當)의 청해진으로서의 투자(投資) 매력도(魅力度)가 매우 높은 비전 있는 미래(未來) 사업(事業)이요, 신라를 한층 발전(發展)과 번영(繁榮), 그리고 안정(安定)과 평화(平和)를 불러들일 신사업(新事業)이다.
청해진은 신사업(新事業) 성장(成長) 동력(動力) 보유(保有), 높은 투자 매력도(魅力度)가 있는 가운데 신사업에서 긍정적(肯定的) 성장 동력이 기대(期待)된 세계적(世界的)으로 보기 드문 군사(軍事)와 무역(貿易) 시설(施設)을 갖춘 다목적(多目的) 사업구조(事業構造)는 드물다.
신라는 청해진이라는 성장 동력을 다수 확보해 가능성(可能性)과 잠재력(潛在力)의 매력도를 높였다. 청해진은 실적(實績) 개선(改善)의 가시성(可視性)이 높아 투자 매력도가 상승(上昇)했다. 향후 실적(實績) 개선 가시성이 높고, 국제적(國際的)인 규모(規模)와 교류(交流)를 감안(勘案)하면, 청해진 사업에서는 투자 매력도와 기대치(期待値)가 높았다.
청해진, 수익성(收益性) 높은 사업(事業), 국제해상자유무역(國際海上自由貿易)은 매력적인 자화사(子會社)의 성장 동력까지 실적도(實績度)가 호전(好轉)되어 신라 경제(經濟)는 활기(活氣)를 띠었다.
청해진, 군사(軍事) 체력(體力) 회복(回復) 속 무역(貿易) 성장(成長) 가속화(加速化)에 높은 배당(配當) 매력(魅力)까지 불러들어 성장 동력의 매력이 극대화(極大化)된 강력(强力)한 매수(買收) 기회(機會)를 낳게 했다.
청해진은 군사(軍事)를 배경(背景)으로 한 무역(貿易) 사업이 수익성(收益性) 높은 전력(專力) 사업 비중(比重) 확대(擴大)를 불러들었으며, 그 만큼 가능성(可能性)과 잠재력(潛在力)의 매력도는 UP-상승됐다.
●장보고는 왜 섬에 기지를 세웠을까?
바다를 동경(憧憬)했던 장보고(張保皐), 그는 바닷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나라에서 무령군(武寧軍) 소장(少將)으로 지역(地域)의 방어(防禦)와 안전(安全)을 기했다. 그가 완도(莞島) 장도(長島)에 청해진(淸海鎭)이라는 군사(軍事)와 무역기지(貿易基地)를 둔 것은 육지(陸地)보다 바다가 있는 섬이 더 유리(有利)함으로 봤다.
섬이 소통(疏通)의 징검다리와 고립(孤立)이라는 표상(表象)이라는 이중적(二重的) 인식(認識) 속에서 성(城), 즉 요새(要塞) 같은 방어시설(防禦施設)을 건설(建設)하는데, 더 이로운 점이 있다고 본 것이다.
섬은 지리적(地理的)으로 접근(接近)이 재한(制限)되어 상대적(相對的)으로 방어(防禦)가 유리(有利)해, 외부(外部) 침입(侵入)에 대비(對備)한 요새(要塞).성(城) 건설(建設)로서의 적합(適合)하다.
섬은 해상(海上) 교역(交易)의 징검다리로도 가능(可能)해, 항로(航路) 보호(保護).관세(關稅).거래(去來) 중심지(中心地)로 성(城)을 세우는 목적(目的)도 있어, 유리(有利)한 조건(條件)에 충족(充足) 하기 때문이다.
섬은 방어성(防禦城), 통제력(統制力), 감시력(瞰視力)에 뛰어나다. 섬은 바다라는 지연적(自然的) 방어막(防禦幕)으로 둘러싸여 있어, 적(敵)의 접근(接近) 경로(經路)를 제한(制限)하고 방어(防禦)를 강화(强化)하는 데, 유리(有利)하다.
요새(要塞)를 섬에 두면 주변(周邊) 해역(海域)을 감시(瞰視).통제(統制)하기 쉬워, 해상(海上) 침입(侵入)을 조기(早期)에 탐지(探知)하고 대응(對應)할 수 있어서 육지(陸地)보다 섬을 더 선호(選好)했다.
섬에 성(城), 기지(基地)를 두면 적(敵)이 사리(射利)나 공성탑(攻城塔) 등 공성(攻城))이나 봉쇄(封鎖)를 시도(試圖)할 때, 지원(支援)과 시간(時間)을 더 소모(消耗)하게 만들어 방어(防禦)를 유리(有利)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장보고는 섬에 청해진이라는 기지(基地)를 둔 것은 군사면(軍事面)보다는 무역(貿易)에 더 치중(置重)하고자 했다. 모든 교역(交易)은 바다로 통(通)한다고 본 장보고였다. 그래서 그는 바닷길을 열어 물품(物品) 등을 교환(交換)했다. 그는 청해진을 국제자유무역항구(國際自由貿易港구)로 활용(活用)했다.
섬에 설치(設置)된 청해진은 쉽게 침범(侵犯)하지 못했다. 사방(四方)으로 바다가 에워싸고 있어 육지와는 달리 접근(接近)이 쉽지가 않았다. 배가 없으면 기지를 접근(接近)하거나. 침입(侵入)하거나, 기지에 둔 물건(物件)들을 흠처가지를 못했다. 육지(陸地) 같았으면 군사(軍士)나 도적(盜賊)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可能)했을 텐데, 섬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안전(安全)을 확보(確保)하기 다소(多少) 어려움이 따랐던 육지보다 섬이 더 안전(安全)해 섬에 기지(基地)를 둔 이유(理由)다.
육지가 아닌 섬에 기지를 둔 장보고의 지혜(知慧), 전략적(戰略的) 측면(側面)이 뛰어났다. 이건 그가 당나라 무령군(武寧軍)과 신라방(新羅坊)에서 느낀 점을 집대성(集大成)한 그의 기발(奇拔)한 발상(發想)이다.
장도(長島)+경주(慶州)=신라(新羅)
장도는 징검다리의 가교(架橋) 역할을 띠며 경주(慶州)와 소통(疏通)했고, 장도를 통해 당.일본.동남아.아립 등과 교류(交流)했다. 신라는 ‘청해진(淸海鎭)’ 이라는 군사(軍事).무역(貿易)을 담당(擔當)하는 기지(基地)를 거쳐 해외(海外)로 진출(進出)했다.
바다를 성곽(城郭)으로 삼았던 장보고, 그에게는 파도(波濤)가 무기(武器)였고, 방패(防牌)였다. 그리고 출렁이는 바다는 진출(進出)이라는 도전(挑戰)의 용기(勇氣)였고, 희망(希望)의 루트였다.
육지의 기지는 상당한 위험(危險)을 동반(同伴)했다. 하지만 바다는 안전(安全)이라는 시야(視野)를 확보(確保)할 수 있었다. 장도란 섬의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확 트여 침입자(侵入者)의 동태를 잘 파악(把握)할 수 있었지만, 육지는 산과 강 등으로 시야가 바다만큼 넓거나 확보하지 못해 항상 위험(危險) 요소(要素)가 도사렸다. 특히 바다는 교역(交易)을 쉽게 할 수가 있어 바다에 둘러싸인 섬을 기지로서 최적(最適)의 장소(場所)로 보았다.
장보고는 청해진은 한계(限界)를 거두는 천장(天障)이 아닌 새로운 혁신(革新)을 위한 출발선(出發線)이라고 했다. 그는 기존(旣存) 핵심(核心) 사업(事業)의 경쟁력(競爭力)을 근본적(根本的)으로 끌어올리고, 새로운 성장(成長) 동력(動力)을 확보(確保)할 청해진이 되어야 한다며, 청해진은 큰 꿈과 포부(抱負)를 갖고 설치(設置)해 나름의 성공(成功)을 거두고 있지만, 일시적(一時的)인 방어(防禦).퇴치(退治).안보(安保)와 교역(交易),외교(外交) 성과(成果)의 효과(效果)가 컸던 만큼, 청해진의 장기(長期) 성장을 이끌 사업(事業)을 만들어야한고 강조하고, 청해진의 핵심 사업이 새로운 성장 추진(推進) 동력(動力)을 얻기 위해서는 군사(軍事).무역(貿易) 기본(基本)에 충실(充實)한 본원적(本源的) 경쟁력(競爭力).추진력(推進力)과 강인함을 갖춘 청해진을 만들 필요가 있다면서 기존 사업의 내실(內實)을 다졌다.
장보고는 섬은 나라와 나라를 이어주는 관계(關係)이자 우정(友情)이다. 섬을 우정관계로 볼 만큼 그는 섬이 단순한 바다의 섬이 아니라, 관계를 지속적(持續的)으로 이어가며 신뢰(信賴)와 희망(希望)을 바탕으로 깊어지는 상호작용(相互作用)의 유대(紐帶) 관계로 보았다. 섬을 징검다리 역할(役割)을 띤 바다와 섬, 섬과 섬, 섬에서 육지(陸地)로 연결(連結)된다고 봤다. 육지는 섬이 바다를 이어주고, 바다는 다른 나라로 진출(進出)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장보고는 산과 바다를 두고, 산은 길을 막기도 하고, 높고 험하다. 하지만 바다는 파도와 큰 바람이 아니라면 산보다 어려움이 덜 한다고, 풍랑(風浪)이 있는 바다를 더 선호(選好)했다. 바다는 물의 흐름과 바람을 이용해 배를 이용할 수 있지만, 산은 말과 마차(馬車) 이외는 다른 운송수단(運送手段)이 없다고 보며, 선박을 띄울 수 있는 바다가 운송수단이나 교류(交流)를 하는데, 용이(容易)하고 시간(時間)도 절약(節約)된다고 봤다.
섬의 성(城)을 바다로 본 장보고, 그의 시선에는 풍랑(風浪)이 활(弓)과 검(劍)보다 더 강하다고 했다. 바다를 무기로 삼은 것이다. 섬에 구지 성을 쌓지 않아도 바다가 성 역할(役割) 대신(代身)해준다고 보고, 그는 여러 섬 중에 완도 ‘장도(長島)’ 를 청해진을 설치하는데 최적지(最適地)로 보았다.
장도를 군사(軍事).무역(貿易)의 교두보(橋頭堡)로 삼았던 장보고는 청(淸)은 장(張)이요, 해(海)는 보(保)요, 진(鎭)은 고(皐)라고 했다. 청(淸)으로 크게 넓히는, 해(海)로 지키는, 진(鎭)으로 의지(依支)하게 해주는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 장도(長島)는 신라의 국운(國運)을 융성(隆盛)하게 하고, 안보(安保)를 평화(平和)롭게 해주었으며, 번영(繁榮)의 신라를 만들었다.
●제품군 넓히고 미래 먹거리 찾은 장보고
신라가 국제무대(國際舞臺)에 서려면 영토(領土)를 넓혀야 한다. 해외무역(海外貿易)은 신라의 영토를 넓히는 핵심적(核心的)인 사업(事業)이다. 그래서 신라 경제(經濟) 영토는 무역(貿易)에서 찾아야 한다고 ‘수출(輸出)’ 을 최고(最高)의 경제 영토로 삼았다.
장보고는 신라 기업(企業)이 성장(成長)하려면, 이제 수출은 필수(必需) 불가결(不可缺)하다라며 신라의 기업들이 한 단계(段階) 도역(跳躍)하려면, 수출과 제품군(製品群)을 넓히고 미래 먹거리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고 강조(强調)했다.
장보고는 신라 제품들을 해외(海外)로 수출(輸出)하기 위해 완도(莞島) 장도(長島)의 청해진(淸海鎭)에 각종 제품(製品)들을 쌓아두었다. 물류창고(物流倉庫)인 청해진에 여러 제품들을 미리 쌓아두고 주문(注文) 즉시 공급(供給)하는 한편, 대금(貸金)은 제품을 보내고 나서 한두 달 후에 받는 등 선수출(先輸出) 후지불(後支拂) 방식(方式)을 채택(採擇)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못한 방식인데, 그걸로 해외(海外) 시장(市場)을 장악(掌握)했다. 신라는 당.일본은 물론, 동남아와 아랍 등 여러 개국으로 제품을 팔고, 매출(賣出)은 기하급수(幾何級數)로 늘어났다. 무역(貿易)이 활발(活潑)해졌다.
장보고는 신라 수출 비중(比重)을 100%가까이 늘리는 게 목표(目標)인데, 이 과정(過程)에서 가장 신경(神經) 쓰이는 부분(部分)은 당(唐)과의 경쟁(競爭)이다. 그동안 신라 제품들에 대해 당이 관세(關稅)를 부과(賦課)하려던 당이 이를 더 낮추면서 경쟁이 커졌다. 그래서 장보고는 국내(國內) 기업(企業)이 아무리 원가(原價)를 줄어도 당과 가격(價格)으로 경쟁하기는 어려운 만큼, 고품질(高品質)과 고부가치(高附價値) 기술(技術)로 차별화(差別化)해야 했다.
장보고는 성장(成長)과 수출(輸出) 확대(擴大)의 비결(秘結)은 ‘사람’ 으로 꼽았다. 경영난(經營難)을 겪는 기업(企業)을 인수(引受)한 뒤에는 구조조정(構造調整)보다 작업(作業) 환경(環境)을 먼저 개선(改善)했다.
해상무역(海上貿易)에 있어서 해상로(海上路)가 불편(不便)하거나 해로(海路)가 없다면, 바닷길을 용아(容易)하게 해주고, 새로 뚫어줬다. 그리고 제품을 실은 선박(船舶)이 낡았으면 보수(補修)해주거나, 새로 건조(建造)를 하는 등 새로 짓는 수준(水準)으로 보고, 설비(設備) 투자(投資)도 적극적(積極的)으로 했다.
장보고는 사정(事情)이 어려운 해외(海外) 고객사(顧客社)의 결제(決濟)를 미뤄주거나, 자금난(資金難)에 처한 업체(業體)들에는 돈을 빌려주거나, 담보(擔保)를 해주기도 했다. 그는 당장(當場) 비용(費用)이 들더라도 어려울 때 도와야 오랫동안 신뢰(信賴)를 쌓을 수 있다고 했다.
장보고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투자(投資)해야 직원(職員)들도 주인의식(主人意識)을 갖고 일하게 되고, 이것이 청해진과 신라 발전(發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善循環) 구조(構造)가 된다고 했다.
장보고는 이런 사고(思考)로 글로벌 파고를 넘고자, 제품군(製品群)을 넓혀 미래(未來) 먹거리를 찾았다.
미래 먹거리를 찾고자 그는 부단(不斷)히 노력(努力)했으며, 여러 품목(品目)을 마련하고, 일 제품(製品)들을 해외(海外)로 수출(輸出)하기 위해 무역상인(貿易商人)과 외교통상(外交通商) 전문가(專門家)로서 역할(役割)을 띠었다. 청해진은 단순한 군사기지(軍事基地)로서의 방어(防禦) 퇴치(退治) 기능(機能)에 그치지 않았다. 군사(軍事)를 배경(背景)으로 한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에도 역할 띠게 하는 등의 청해진(淸海鎭) 사업(事業) 범위(範圍)를 크게 확대(擴大)시켰다.
장보고는 당(唐)과 풍부(豊富)한 자원(資源)에 신라(新羅) 기술(技術)을 더한, 공동(共同) 번영(繁榮)의 미래(未來)를 함께 열어갔다.
그는 신라와 당의 두 나라는 단순히 자원(資源)과 상품(商品)을 주고받는 관계(關係)를 넘어서려고 노력(努力)했다. 당의 풍부한 자원과 넓은 시장(市場)에 신라가 기술과 혁신(革新)이 더해져 함께 공동 번영의 미래를 개척(開拓)해 갔다.
당.일본.동남아.아랍 등 공동의 미래 개척을 위해 교류(交流) 협력(協力).공동연구(共同硏究).공동사업(共同事業) 등으로 협약(協約)을 맺었다. 미래 개척자(開拓者)들이 모여 토론(討論) 등을 운영(運營)하며 미래 담론(談論)을 만들어 교류증진(交流增進)을 활발(活潑)히 하였다. 교류(交流) 준비태세(準備態勢)를 위해 평가(評價).연구(硏究) 역량(力量)과 교육(敎育) 실천(實踐)을 결합(結合)해 미래를 개척하는 협력(協力)을 열어갔다.
공동, 다수(多數)의 주체(主體). 즉 개인(個人).기관(機關).국가(國家)가 협력(協力).교류(交流) 공동사업(共同事業)을 통해 목표(目標)를 추구(追求)했다.
미래, 기술(技術) 시장(市場).지식(知識).정책(政策) 등 분야(分野)에 따라 달라지며, 첨단(尖端).교육(敎育).과학기술(科學技術).산업(産業) 등에 목표(目標)로 삼았다.
개척(開拓), 기존(旣存)의 틀을 넘어 새로운 영역(領域), 즉 지식(知識).시장(市場).연구(硏究) 방향(方向)을 탐색(探索).개발(開發).확대(擴大)하였다.
미래 산업 공동개척, 항상 비즈니스 테이블에 올려났던 장보고는 ‘기술협력 강화 아름다운 미래 공동개척’ 이라는 기치(旗幟)로 협력(協力) 미래(未來) 산업(産業) 분야에서 협력의 폭(幅)을 넓히며, 국제(國際) 시장(市場) 공동(共同) 진출(進出)과 공급망(供給網) 다변화(多邊化)를 위해 각국의 무역(貿易) 관계자(關係者)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당나라의 신라방(新羅坊)은 당과 신라 공동번영 미래개척, 동포(同胞)들이 든든한 가교(架橋) 역할(役割)을 해주었다.
공동번영(共同繁榮)의 미래 개척은 장보고의 이름에서 이미 그 내용(內容)과 의지(意志)가 담겨져 있음을 비췄고, 개척자(開拓者) 장보고는 “공동 성장(成長)이 인류(人類)의 미래(未來)를 구현(具現)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물질적(物質的) 부(富)나 세속적(世俗的) 권력(權力)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며 “우리 모두가 상호(相互) 성장(成長)의 주인공(主人公)이 되어 행동(行動)을 선택(選擇)하고 실천(實踐)해야 한다” 고 역설(逆說)했다.
장보고는 일대일로(一對一路), 공동(共同) 건설(建設)의 더욱 밝은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시종일관(始終一貫) 평화적(平和的) 협력(協力), 개방(開放)과 포용(包容), 상호(相互) 학습(學習), 호혜(互惠) 상생(相生)의 〈비단의 길〉 정신(精神)을 견지(見地)했으며, 협력(協力) 분야(分野)가 끊임없이 확장(擴張)되고, 협력의 범위(範圍)가 끊임없이 확대(擴大)되고, 협력차원(協力次元)이 끊임없이 향상(向上)되었으며, 국제적(國際的) 강화력(强化力), 영향력(影響力), 응집력(凝集力)이 끊임없이 증강(增强)되고, 중대(重大)한 성과(成果)를 이룩하여 공동건설국가(共同建設國家)와의 친선(親善)을 증진(增進)하고, 공동건설국가의 경제(經濟)사회(社會) 발전을 촉진(促進)하는 데서 해외진출(海外進出)을 도모(圖謀)했으며, 그들과 활발(活潑)하게 교류(交流)하였다.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 열매를 거둔다. 청해진 대사 장보고는 몸소 계획(計劃)하고, 몸소 포치(布置)하고, 몸소 추진(推進)한 일대일로(一對一路) 공동(共同) 건설(建設)은 이념(理念)으로부터 행동(行動)으로 전환(轉換)되었고, 청사진(靑寫眞)으로부터 현실(現實)로 전환되었다. 계획과 배치(配置)의 밑그림으로부터 일심(一心)을 들인 공필화(公筆花)에 이르기까지 세계적(世界的)으로 규모(規模)가 가장 크고, 범위(範圍)가 가장 넓으며, 영향(影響)이 자장 심원(心願)한 국제경제협력(國際經濟協力)의 무대(舞臺)로 되었다.
장보고는 당면(當面)의 준엄(峻嚴)하고 복잡한 국제환경(國際環境)에서 일대일로 공동건설을 추진하는 고품질(高品質) 발전(發展)의 기회(機會)와 도전(挑戰)이 병존(竝存)하고 있으나, 전반적(全般的)으로 보면 기회가 도전보다 많다. 우리는 전략적(戰略的) 자신감(自信感)을 확고(確固)히 하고, 전략적 정력(定力)을 유지(維持)하며, 용감(勇敢)하게 담당(擔當)하고 행동(行動)하여 일대일로 공동건설의 더욱 밝은 미래를 개척(開拓)해야 한다고 했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고, 물이 모여 못이 되게 했던 장보고, 그의 청해진을 통한 일대일로 공동건설은 평화적(平和的) 협력(協力), 개발(開放)과 포용(包容), 상호(相互) 학습(學習), 호혜(互惠) 상생(相生)의 비단 길을 개척하며, 공동건설국가의 경제.사회 발전을 촉진(促進)하는데 신라에 기여(寄與)를 했다.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을 깊이 학습(學習)하고 터득(攄得)하여 일대일로 공동건설의 국제협력(國際協力)을 힘 다해 추진(推進)하고, 일대일로 공동건설 국제적(國際的) 동반자(同伴者) 연결망(連結網)을 공고(鞏固)히 하고 강화(强化)하며, 일대일로 공동건설 안전보장체계(安全保障保障體系)를 보완(補完)함으로써 신라식(新羅式) 현대화(現代化)를 추진하고, 인류운명공동체(人類運命共同體)를 구축(構築)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장고는 일대일로 공동건설 추진 기제(基劑)를 보완하고 더욱 수준(水準) 높고 더욱 인성(人性)을 갖고, 더욱 지속(持續) 가능(可能)한 상생(相生) 발전(發展)의 새로운 공간(空間)을 부단히 확장(擴張)하는 등의 일대일로 공동건설의 고품질 발전을 전면적(全面的)으로 추진하고, 상징적(象徵的) 공정(公正)과 작지만 아름다운 ‘민생프로젝트’ 건설(建設)을 총괄적(總括的)으로 추진했다.
장보고는 높이 서서 멀리 보았고, 전반적(全般的)인 국면(局面)을 총괄(總括)했다. 청해진은 일련(一連)의 중대(重大)한 상징적(象徵的) 공정(公正)이 건설되어 사용(使用)에 투입(投入)되고 많은, 작지만 아름다운 〈민생프로젝트〉 가 현지에 뿌리내리면서 백성(百姓)들의 생활(生活)에 접근(接近)하고, 민심(民心)을 결집(結集)시키는 더욱 많은 협력(協力) 성과(成果)를 형성(形成)됐고, 일대일로 공동건설이 여러 나라에 복지(福祉)를 마련해주고, 세계(世界)에 혜택(惠澤)을 주는 한 갈래 행복(幸福) 길로 되었다.
장보고의 세계 현대화(現代化), 마땅히 평화(平和) 발전(發展)의 현대화이고, 호혜(互惠) 협력(協力)의 현대화이며, 공동(共同) 번영(繁榮)의 현대화였다. 장보고는 공동건설이 추구하는 것은 ‘발전’ 이고, 숭상(崇尙)하는 것은 ‘상생(相生)’ 이며, 전달(傳達)하는 것은 ‘희망(希望)’ 이다. 고품질(高品質) 일대일로 공동건선은 국제경제협력(國際經濟協力)을 위해 무대(舞臺)를 마련했으며, 세계경제성장(世界經濟成長)에 동력(動力)을 더해주었고, 부동(符同)한 나라와 부동한 군체(群體)가 발전(發展) 성과(成果)를 공유(共有)하도록 했다.
신라특색사회주의사상(新羅特色社會主義思想)을 지도(指導)로 하는 것을 견지(見地)하고, 중앙(中央)과 전체(全體) 당(黨)의 핵심(核心) 등 두 가지 확립(確立)의 결정적(決定的) 의의(意義)를 깊이 터득하고, 중앙권위(中央權威).집중통일(集中統一).수호(守護).조정(朝廷)의 단결(團結) 등 네 가지 의식(衣食)을 증강(增强)하며, 이론(理論).제도(制度).문화(文化).노선(路線) 등 네 가지 자신감(自信感)을 확고(確固)히 하고, 조직(組織).운영(運營) 등 두 가지 수호(守護)를 실천하며 마음과 힘을 모으고, 일대일로 공동건설 발전이라는 최대공약수(最大公約數)를 단단히 착실하게 틀어쥐고 실무적(實務的)으로 일하면서 고품질 일대일로 공동건설을 확고부동(確固不動)하게 추진함으로써 세계의 공동 발전과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을 추진하는 데, 더욱 큰 힘을 이바지하였다.
●장보고와 원, 세모, 네모 도형의 삶 공식
장보고, 장(張)은 확장(擴張)시켜 크게 하다. 보(保) 지켜 보호(保護)하고 안전(安全)하게 하다. 고(皐) 기댈 언덕이 되어 의지(依支)하게 하다.
이런 의미(意味)가 담긴 장보고라는 이름의 숨은 비밀(秘密)이다. 이 이름에는 수학적(數學的).미술적(美術的) 도형(圖形)이 담겨있다.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을 ‘팔각(八角) 태극도(太極圖)’ 를 그려냈다. 태극도는 원, 세모, 네모가 결합(結合)된 사상철학(思想哲學)의 도형(圖形)이다. 이런 팔각형 태극도는 태극의 움직임과 이기(二氣), 그리고 오행(五行)의 움직임에 의해서 남녀(男女)가 태어나고, 만물(萬物)이 생성(生成)된다는 원리(原理)를 설영하기 위해서 고안된 도형이다.
크게 확장시키는 장(張)은 ‘원(圓形)’ 을 뜻하며, 동그라미를 말한다. 둥글게 원(圓)을 그리면서 이원이 파장(波長)처럼 더 커지고 번져가게 하겠다는 ‘확장적(擴張的)’ 개념(槪念)이 들어져있는 원주(圓周)이다.
원(圓)은 완전(完全)함으로써 우주(宇宙) 전체(全體) 통합(統合)을 뜻한다. 원은 천연계(天然界)의 우주 만물(萬物)의 완성(完成)과 융합(融合)과 가능성(可能性)을 나타낸다. 이는 세계(世界) 속의 장보고의 선도적(先導的)인 역할(役割)과 미래지향적(未來指向적)인 이미지를 시각화(視覺化)한 것으로 세계 곳곳의 선두자적(先頭者的) 역할(役割)을 하는 장보고의 능력을 봉사(奉仕)와 손길로 나타낸다.
원은 상징적(象徵的)으로는 한정(限定)된 우주적(宇宙的) 공간(空間), 생명(生命), 순환(循環), 중심(中心) 등을 의미한다. 또한 원은 태양신(太陽神)의 지물(地物)이다. 천공(天工), 광명(光明), 영원(永遠), 힘, 조화(調和), 통합(統合)을 뜻한다. 순환하는 원은 모든 움직임을 나타내며, 통합과 분할(分割), 재통합(再統合), 진화(進化)와 퇴화(退化), 성장(成長)과 퇴행(退行), 생(生)과 사(死)의 과정(過程) 등 영원(永遠)한 시간(時間)의 상징으로서 알려져 있다.
영원한 시간을 나타내는 원은 영원히 자신을 삼켜서 반복(反復)하는 순환적(循環的)인 시간의 경과(經過)나 원초적(原初的) 혼돈(混沌) 또는 모든 것을 포함(包含)하는 일자(日子)를 나타낸다. 원은 무한(無限)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태극도(太極圖)’ 에 가까운 것으로, 각 순간(瞬間)에서 대립(對立)하는 것의 통합(統合)과 조화(調和)를 의미한다.
이런 우주만상(宇宙萬象)을 상징하는 원형(圓形) 곡선(曲線) 안에 장보고의 장을 원으로 시각화(視覺化)하였다. 원은 해와 달 등 우주를 상징(象徵)한다. 해를 희망(希望), 생명력(生命力), 탄생(誕生), 창조(創造) 등으로 해석(解釋)한다. 우주 질서(秩序)의 수호(守護) 원형(圓形)으로서 ‘장(張)’ 이다.
사방으로 방어태세를 취하면서 두루 보호(保護)하고 안전(安全)을 기하겠다는 보(保)는 세 걔의 모서리로 둘러싸인 세모(三角形)를 뜻한다. 세 개의 선분(線分)으로 둘러싸인 평면(平面) 도형의 세모, 세 개의 모서리는 ‘천(天).지(地).인(人)’ 을 의미한다. 이 세 조합으로 하늘을 보호(保護)하고, 땅을 보호하고, 사람을 보호하며 안전(安全)을 기하겠다는 것이다.
삼각형의 기호(記號)는 고대(古代) 문명(文明)에서 지혜(知慧), 균형(均衡), 신성(神聖)함을 상징(象徵)하며, 이는 현대(現代) 상황(狀況)에서 정신적(精神的) 중심(中心)을 유지(維持)하고, 자기 성찰(省察)에 기여(寄與)할 수 있는 ‘보(保)’ 이다.
기댈 언덕이 되어 의지(依支)하게 하는 고(皐)는 ‘네모(四角形)’ 를 가리킨다. 사각형(四角形)은 전반적(全般的)으로 ‘안정(安定), 균형(均衡), 규칙성(規則性), 경계(境界)와 소유(所有) 공간(空間)’ 를 상징한다. 안정(安定).평온(平穩).단단함을 뜻하는 사각형의 정돈(整頓)된 형태 때문에 ‘안정감(安定感)과 확고(確固)함’ 을 상징한다.
균형(均衡).완전성(完全性)을 뜻하는 시각형은 균형 잡힌 완전체(完全體)로 보거나 성스러운 중심의 기초(基礎)로 여긴다.
땅.공간(空間).경계(境界)를 뜻하는 사각형은 직선(直線)으로 구획(區劃)을 나누는 특성 때문에 땅, 소유(所有)한 공간, 경계의 의미로 쓰였다.
규칙(規則).원리(原理).신뢰(信賴)를 뜻하는 사각형은 원리원칙(原理原則)을 중시(重視)하고 약속(約束)을 지키는 성향(性向)과 연결(連結)해 언덕이 되어 의지(依支)하게 하였다.
사각형의 네 개의 모서리는 동서남북(東西南北)을 상징한다. 사방이 다 마음을 기대어 도움을 받을 만한 곳임을 말해준 ‘고(皐)’ 이다.
네모 상징은 ‘하늘.땅.불.물’ 등을 상징해 우주(宇宙) 질서(秩序)와 조화(調和)를 나타낸다. 네모는 우주 만물(萬物)이 음(陰과 양(陽)의 조화로 생명(生命)을 얻고, 발전(發展)한다는 대자연(大自然)의 진리(眞理)를 뜻한다.
장보고는 이런 동그라미, 세모, 네모의 이 기초적(基礎的)인 도형(圖形)들의 배치(配置)와 의미(意味) 조합(組合)으로 신라의 자연(自然) 풍경(風景)을 표현(表現)하는 아주 아방가르드(혁신적 미래파)한 원.세모.네모 도형으로 나타낸 현대 산수화(山水畵)이다.
장보고는 “자신을 그대로 그리지 말고, 자신이 가진 힘과 리듬만 남겨보자” 고, 세상(世上)을 그저 원형(圓形), 삼각형(三角形), 사각형(四角形)과 굵은 색면, 단순한 선, 이렇게 바꾸어버렸다. 즉, 세상(世上)을 본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본질(本質)을 느낀 사람이었다.
이건 당시 엄청난 충격적(衝擊的)인 발상(發想)이었다. 그런데 이런 엉뚱함, 마치 우리 대한민국(大韓民國) 국민(國民)들과 닮아 보인다.
장보고는 기초적인 도형(圖形) 간의 관계(關係)에 대하여 탐구(探究)하고, 그 것들을 무령군(武寧軍)과 청해진(淸海鎭)에서 실험(實驗)하며, 장수(將帥) 생활(生活)을 하였다. 사물(事物)과 도형(圖形) 간의 관계를 만드는 방식(方式)이 꼭 신라인(新羅人)들의 자유(自由)로운 상상(想像)을 닮았다.
장보고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가지고 놀던 나무토막, 종이접기 같은 놀잇감에서 한번쯤은 보았을 조합(組合)들을 장보고는 장차 커서 이 도형방식(圖形方式)을 자신 이름과 조합해, 이름을 도형으로, 도형을 자신의 이름으로 풀고, 군사(軍事).무역(貿易)과 정치(政治).경제(經濟).문화(文化) 등에 적용(適用)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특히나 예술분야(藝術分野)에서는 비움의 미학(美學), 여유(餘裕)의 미학인 한국(韓國) 미술(美術)에선 정확(正確)하지 않은 형태(形態), 어딘가 찌그러진 모양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득 담겨 풍요(豊饒)로운 정신(精神)을 뽐냈다. 장보고 역시 그런 의미에서 장은 원으로, 보는 세모로, 고는 네모로 관계(關係)를 맺어, 장보고를 시각적(視覺的)으로 나타내보였다.
자신의 이름을 태극도로 그려낸 장보고, 그는 자신의 이름에 태극(太極)의 우주(宇宙) 생성(生成) 원리(原理), 즉 무극(無極), 태극(太極), 음양(陰陽), 오행(五行), 만물(萬物) 생성(生成)을 가리킨다. 장보고+태극도설은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을 바탕으로 태극이 움직이고(動), 고요함(靜)이 교차(交叉)하며 양(陽)과 음(陰)이 분화(分化)되고, 나아가 오행(五行)과 만물(萬物)이 생성(生成)된다는 논리(論理)로 장보고를 동그라미, 세모, 네모로 도학(道學)의 형이상적(形而上的) 사유(思惟)와 인간(人間)의 도리(道理), 성인(成人)의 중정인(中正人) 등의 도덕론(道德論)으로 연결(連結) 시켰다.
원, 하늘의 무한(無限).정신(精神).이상(理想) 같은 상징으로 근원적(根源的) 순환(循環)과 연결(連結)해, 이 논리로 크게 확장(擴張)시키겠다는 무한(無限)한 가능성(可能性)을 꿈꾼 장보고였다.
그는 사람을 상징하는 삼각(三角)으로 천간(天干).지지(地支).일간(日干)처럼 인간(人間)의 결단(決斷).작용(作用).중재(仲裁) 구조(構造)를 나타내는 기호(記號)로 삼았다.
장보고는 네모는 하늘과 땅이 나뉘기 전 우주만물(宇宙萬物)의 근원(根源)으로서, 음양(陰陽)의 배합(配合)으로 천지(天地)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변화(變化).생성(生成)이 이어진다고 보고, 그는 장(張)-무한(無限)한 우주적(宇宙的) 공간(空間)을 향한, 보(保)-보호(保護)를 받으며 안전(安全)하게 행해(航海)하는, 고(皐)-든든한 배경(背景)이 되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장보고라는 이름 한자 한자에 장(張)은 ‘원’ 으로, 보(保)는 ‘세모’ 로, 고(皐)는 ‘네모’ 로 형상화(形象化)했다.
원.세모.네모로 형상화한 장보고는 태극도(太極圖)라는 시상논리(思想論理)로 자신이 이름을 팔각형(八角形) 안에 원.세모.네모가 그려진 태극(太極)으로 도형화(圖形化)시켰다. 원과 세모와 네모가 결합(結合)되어진 팔각형(八角形) 태극도(太極圖), 만나는 교차점(交叉點)을 중심점(中心點)으로 삼고 원을 그렸다. 팔각형 안에는 원.세모.네모가 도형(圖形) 및 공간(空間)의 성질(性質)을 연구(硏究)한 수학(數學)의 한 부분(部分)인 ‘기하학적(幾何學的)’ 으로 그려져 있다. 팔각형 태극도에는 장보고의 사상철학(思想哲學)과 행동철학(行動哲學)이 들어있다. 팔각형 태극도가 원과 세모와 네모가 서로 맞물리거나 교차(交叉)해 조화(調和)를 이루며 정신세계(精神世界)를 보여주고 있듯이, 장보고의 이름 석 자가 하나의 조합(組合)으로 정신사상체계(精神思想體系)의 기조(基調)를 이루고 있다.
●세계관이 담겨져 있는 이름 장보고
장보고라는 이름은 다양하게 해석(解析)해볼 수 있다. 장보고 이름에 대해 여러 번 다뤄왔지만, 그의 이름에서 또 하나의 철학(哲學)과 사상(思想), 꿈과 희망(希望), 비전과 미래(未來)가 장보고(張保皐)라는 이름으로 축약(縮約)됐고, 인생관(人生觀)과 사명감(使命感)을 엿볼 수 있다.
장보고 이름에는 세계(世界) 지도(地圖)가 그려져 있다. 장(張)은 각 국가(國家)들의 땅, 보(保)는 각 국가들의 울타리인 구역(區域), 고(皐)는 각 나라의 의지할만한 장소(場所) 등을 이름으로 암시(暗示)해났다.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으로 세계를 향한 군사(軍事).정치(政治).경제(經濟).문화(文化).예술(藝術)의 지평(地平)을 넓혔고, 이들 나라들과 관계(關係)를 맺어왔고, 맺어가려 했다.
기술(技術).산업(産業) 정보(情報), 경제(經濟).무역(貿易) 교류(交流), 정치(政治)문화(文化) 공유(共有)에서는 크게 넓혀 차지한다는 ‘장(張)’ 의 지도를 펼쳤다. 이런 정책(政策)으로 넓히면서 돕고자 ‘보(保)’ 의 지도를 그려냈다. 그는 또 이런 사업(事業)으로 인한 발생(發生)된 것에 대하여 얻은 것들로 든든한 힘이 되어주고 희망(希望)이 된, 의지(依支)할만한 곳에는 반드시 ‘고(皐)’ 의 지도로 제시(提示)해주었다.
장보고지도는 21세기의 세계지도 못지않은 8~9세기 때의 거대(巨大)한 메가 프로젝트였다. 이 지도를 통해 그는 원대(遠大)한 꿈을 키웠다. 장보고는 이미 궁복(弓福)에서부터 세계를 꿈꾸었다. 지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궁복이라는 이름의 정신사상(精神思想)과 행동철학(行動哲學)의 기조(基調) 이루돼,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했기에 궁복이라는 이름을 장보고(張保皐)로 바꾸고, 세계(世界)를 바라봤다.
당나라 무령군(武寧軍)에 있을 때, 그는 상당한 영향(影響)을 끼치는 정치.경제.문화.군사 지도(地圖) 지식(知識)을 터득(攄得)했다. 이를 토대(土臺)로 그는 신라에 와서도 군사(軍事).무역(貿易) 기지(基地)인 청해진(淸海鎭)이라는 지도를 그리고, 이 중심으로 동(東)에는 일본(日本).아메리카와 태평양(太平洋), 서(西)로는 중국 당(唐).중동(中東)과 대서양(大西洋), 남(南)으로는 동남아(東南亞)와 인도양(印度洋).남극해(南極海), 북(北)으로는 고구려(高句麗).러시아와 북극해(北極海) 등으로 진출(進出)을 꿈꾸는 등의 태평양.북극해.남극해.인도양.대서양 등의 오대주(五大州)와 아시아.유럽.아프리카.오세아니아.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 등의 육대주(六大洲) 등으로 영토지도(領土地圖)를 그렸다.
장보고는 “오대양 육대주는 우리의 일터입니다” 라고 하면서 “소유(所有)보다는 성취(成就)를 느낄 줄 아는 청해진이 되길 바란다‘ 고 했다.
장보고는 그런 영토지도를 그려가며 세계 경영(經營)을 선포(宣布)했을 당시, 신라에서는 큰 감격(感激)을 했다. 이런 장보고를 두고 17세에 당나라에 가서 군인(軍人)으로서 세계(世界)를 꿈꾸며 자신 만의 세계를 꿈꾸며 그려냈던 그가 나이 40세에 청해진을 창업(創業)해 세게 시장(市場)을 누비며 신라 청해진(淸海鎭) 그룹을 다국적(多國籍) 기업으로 키워 ‘장거인’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장보고에게는 신라(新羅)는 좁았다. 세계를 무대(舞臺)로 활동(活動)할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찬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름에 세계자도를 그려낸 사람은 장보고가 유일(唯一)하다고 볼 만큼, 그에게는 늘 세계지도를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그 지도를 펼쳐놓고 꿈꾸는 일들을 차근차근 해내었다.
장보고라는 이름은 세계지도이면서 세계가 걸어가야 할 길과 펼쳐야 할 정책(政策)과 나아가야 할 방향(方向)을 담아낸 이름이다.
장(張)은 활 궁(弓)변이 들어간 한자다. 활을 당긴다는 것은 끌어들인다(引)는 것이다. 활을 끌어당겨 쏘면 활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이것은 무언가를 맞추겠다는 것이다. ‘당긴 만큼 맞추는 것도 많다’ 라고 보면서 장보고는 활로 영토(領土) 지도(地圖)를 그렸다. 이 영토에 그는 보(保)라는 도움을 드렸다. 활이라는 무기(武器)로 지켜준 것이다. 보는 사람 인(人)변을 쓰고 있다. 지키는 일, 돕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서 그 사람에는 반드시 장보고가 하겠다는 약속(約束)이다. 이 약속은 장보고의 공약(空約)으로써 세상(世上) 사람들에게 보다도 더 나은 삶이 되게 하겠다는 맹세(盟誓)이다.
장보고라는 이름으로 서명(署名)하고 서약(誓約)하며 선서(宣誓)를 했다. 그런 장보고는 여러 나라들과 동맹(同盟)을 맺고 연맹(聯盟)으로 연합(聯合)을 이루면서 제휴(提携)와 협력(協力)을 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 고(皐)로 ‘행복쉼표’ 를 찍어주고 싶어 했다. 행복쉼표는 다른 것에 마음을 기대어 도움을 받는 일이다. 힘들어하는 자(者)가 기대고 싶을 때 위로(慰勞)를 해주는, 생활(生活).조건(條件)의 의존(依存), 그게 없으면 안 된다는 어느 누구한테나 기댈 언덕이 되어주겠다는 것으로, 어려울 때 서로 돕고, 기대는 관계(關係)의 강화(强化)를 시켜 더 돈독하게 만들겠다는 Count On-믿고 기대다. Depend On-없으면 안 되는 의존/조건, Rely On-경험(經驗).실력(實力)에 근거(根據)한 신뢰(信賴), Tum To-도움을 받으러 찾다. Lean On-정서적(情緖的)으로 기대다의 행복쉼표다.
장보고(張保皐), 장(張)은 세계 국토(國土)+세계 해양(海洋)의 구역(區域)이 정해진 ‘영토지도(領土地圖)’ 요, 보(保)는 세계 질서(秩序)+세계 안보(安保)의 삶이 보장(保障)된 ‘안전지도(安全地圖)’ 요, 고(皐)는 세계 평화(平和)+세계 번영(繁榮)의 정서(情緖)가 담긴 ‘행복지도(幸福地圖)’ 다.
장보고는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로서 신라(新羅)를 분열(分裂)시키는 편협(偏狹)된 사고(思考)에서 벗어나 지역(地域) 전체(全體)를 통합(統合)하고, 국민(國民)을 하나로 아우르는 국가(國家) 지도력(指導力)을 보여줬다. 그는 일부 조정(朝廷) 대신(大臣)이나, 귀족(貴族)들은 자신 만의 권위(權威)와 군림(君臨), 세력(勢力)이나 행세(行勢)를 자행(自行), 신분(身分)을 앞세워 복종(服從)시키거나 위협(威脅)을 가하려했지만, 장보고는 이걸 타파(打破)하려고 했고, 평등사회(平等社會)를 구현(具現)하려고 했다. 그는 어느 한 사람의 의해 자행하는 권의의식(權義意識), 권력(權力)을 내세워 복종(服從)을 강요(强要)하거나 군림(君臨)하려는 태도(態度)로 권력(權力)을 휘두르거나, 나라 안에서만 권위적(權威的)으로 행동(行動)하는 일에는 단호(斷乎)하게 배척(排斥)했다.
장보고는 어떤 일에 있어 권위(權威)를 내세워 남에게 복종(服從)을 강요(强要)하거나 군림(君臨)하려는 의식(意識)이 아닌, 질서중립(秩序中立) 성향(性向)의 개성(個性)과 권위(權威)와 규칙(規則)을 중시(重視)하되, 그 권위가 부당(不當)하거나 명분(名分)을 넘어선 경우( 境遇)에는 절대(絶代) 복종을 강요하지 않았다. 장보고는 권위와 규칙을 중시하며, 사회(社會) 질서(秩序)와 도덕(道德)을 유지(維持)하는 수단(手段)으로 법(法)과 원칙(原則)을 세웠다. 사용자(使用者), 그들의 권위와 군림 하에 핍박(逼迫)받는 일이 없도록 했다. 통치(統治)는 하되 군림(君臨)하는 일은 지양(止揚)했다.
●명사수는 바람을 계산하지 않는다
장보고는 궁수(弓手)의 명사수(名射手)다. 어릴 적부터 그는 활을 잘 다른 아이로 여겼다. 그가 성장(成長)해 활을 잘 다른 아이에서 활을 쏘는 군사(軍事)로 성장했다.
장보고는 나이 17세에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서 군인(軍人)이 되어 당나라를 지켰다. 당나라 산둥반도(山東半島)의 서주(西周)에 있는 무령군(武寧軍)에 입대(入隊)해 23년간을 근무(勤務)했다.
그는 활을 잘 다른 군인이면서 활을 잘 쏘도록 교육(敎育)시키는 훈련관(訓練官)이자 지휘관(指揮官)이었다.
장보고는 “명사수는 바람을 계산(計算)하지 않는다” 고 하면서 그는 바람의 영향(影響)을 신경(神經)쓰지 않고 활을 쏘았다. 외부(外部) 변수(變數)에 좌우(左右)되지 않고 목표(目標)를 향해 집중(集中)했다.
장보고는 강물이 바다를 포기(抛棄)하지 않듯이 자기가 주장(主張)한 일들을 기필코 해내려했다. 그는 바다를 보기를 강으로 여기고 이 강물은 분명 바다로 흘러가게 됨을 알고, 그는 신라를 감싸고 흐르는 바닷물이 당,일본,동남아 등 여러 지역(地域)의 해역(海域)으로 흘러간다고 보고 “나는 강물이다.” “강물은 절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강물은 바다로 흐르게 되어있다” 라고 강물처럼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이는 포용성(包容性)과 개방성(開放性)을 보여준다” 라고 보고, 자신도 바다 같은 인생(人生)을 살고 싶어 했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어떤 역경(逆境) 속에서도 끝내 목표(目標)를 향해 나아가는 삶의 자세(姿勢)를 취하겠다는 뜻이다.
이 문장(文章)은 단순한 자연(自然)의 순리(順理)를 넘어 한 사회(社會)가 공동(共同)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자세나 개인(個人)의 실천(實踐)이 모여 거대(巨大)한 변화(變化)를 만든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강물이 바위를 만나거나 굽이치더라도 결국 바다로 향하듯, 원칙(原則)을 지키며 나아가는 과정(過程)의 중요성(重要性)을 비유(比喩)하는 문장이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 삶의 자세를 담고 있다. 강물은 때로 바위를 만나고, 방향(方向)을 잃은 듯 굽이치기도 하며, 어떤 구간(區間)에서는 흐름이 멈춘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끝내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듯,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 또한 쉽게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 장고였으며, 그는 때로는 더디게 보일지라도 원칙을 향한 걸음은 결국 공동체(共同體)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냈다.
장보고는 기억(記憶)은 과거(過去)에 머무르기 위해 존재(存在)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현재(現在)를 비추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늠하기 위한 등불과 같다고 봤다. 바다는 더러운 물이나, 깨끗한 물이나 사양(辭讓)하지 않는 ‘해불양수(海不讓水)’ 의 지혜(知慧)로 오늘 우리의 선택(選擇)을 조금 더 깊고 신중(愼重)하게 처신(處身)했다. 강물은 운명(運命)처럼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갔다.
장보고는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그 인연(因緣) 안에서 함께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하며 살아갔다.
넓은 바다는 강물을 물리치지 않는다는 해불양수의 지혜를 해보인 장보고였다.
물은 깨끗한 물이라고 해서 환영(歡迎)하고, 더러운 물이라고 해서 물리치지 않는다. 물은 어떤 환경(環境)을 구분(區分)하지 않고, 자기에게 오는 모든 물은 다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기 안에서 정화(淨化)를 시켜나간다.
어떤 인연(因緣)이든 긍정(肯定)으로 받아주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아름다운 진실(眞實)된 마음을 갖춘 장보고였다.
바다는 어떠한 물도 사양(辭讓)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사람을 차별(差別)하지 않고 포용(包容)했던 장보고, 해불양수의 마음을 보이며 청해진(淸海鎭)을 꾸려갔다.
장보고는 해불양수와 같이 모든 백성(百姓)이 포용(包容)과 화합(和合)으로 힘을 모아 힘차게 나아가기를 바랐다.
그는 또 해불양수의 청해진에서 소통(疏通)과 통로(通路)의 역할(役割)을 하는 다리, 사람과 사람, 문화(文化)와 문화를 잇는 다리로 자리매김했다.
태산(泰山)은 한 줌의 흙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거대(巨大)함을 이루었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깊이를 이루었다. 왕(王)은 백성(百姓)들을 물리치지 않았기에 그 덕(德)을 이룰 수 있었다.
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 고능성기대(故能成基大)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고능취기심(故能就其深)
왕자불각중서(王者不却衆庶) 고능명기덕(故能明其德)
장보고는 이런 글귀에 관심(觀心)을 보였고, 실천(實踐)하려고 노력(努力)했다. 특히 하해불텍세류 고능취기심,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깊이를 이루었다’ 는 이 문장에 귀를 기울이며 바다를 통해 포용성(包容性)과 개방성(開放性)을 배웠다.
바다는 ‘받다’ 와 ‘들이다’ 가 결합(結合)된 합성어(合成語)에 어원(語源)을 두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인생(人生)과 같다. 바다는 작은 물줄기부터 시작해 맑은 물, 더러운 진흙탕 물, 썩은 물, 기름 등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낸다.
즉, 나라는 바다에도 너와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이 흘러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흘러 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장보고는 직시(直視)하고 포용성과 개방성을 해보였다.
바다는 이러한 포용성과 개방성으로 깊고 넓은, 아름답고 빛나는 대양(大洋)을 이루었다. 그러하듯이 장보고도 포용성과 개방성으로 모두를 품었다. 바다가 작은 물줄기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깊은 바다를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해불양수를 삶에 적용(適用)하고 실천한 장보였다.
장보고는 이런 마음을 갖고 활(弓)을 대했다. 활은 ‘당기다. 나아간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기는 것은 끌어들인 ‘포용(包容)’ 한다는 것이요, 나아간다는 것은 열어간 ‘개방(開放)’ 한다는 것이다.
장보고가 ‘명사수는 바람을 계산하지 않는다’ 고 했던 것은 강물처럼, 바다처럼 어떤 것도 계산하지 않고, 마다하지 않으며 받아들었던 것처럼, 그렇게 대한 것처럼 그런 자세(姿勢)로 임하겠다는, 자기만의 철학(哲學)과 신념(信念)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바다처럼 마다하지 않는 가리지 않은 명사수인 장보고도 바람을 마다하지도, 피하지도, 꺼려하지도, 두려하지도 않고 아무리 바람 불어도, 그 바람을 계산하지 않은 채 그는 화살을 당겼고 쏘아 됐다.
‘궁복(弓福) 지금은 화살을 세게 당기는 시간, 화살을 쏠 그날을 기다려본다’ 는, 장차 그가 분명코 활을 잘 쏜 궁복으로서의 역할 띤, 보여준 일이 있을 것이라면서 그는 궁복에서 장보고(張保皐)로 이름을 개명(改名)하여 ‘더 멀리, 더 높이, 더 넓게, 더 크게 위대한 신라!’ 청해진(淸海鎭)의 도전(挑戰)은 점점 크게 일어나고 있다라고 의지(意志)를 보였다.
당겨 놓은 화살을 놓을 수 없었던, 장보고는 이미 만반(萬般)의 준비(準備)를 갖추고 시작한 일을 도중(途中)에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고(思考)로 ‘이발지시(已發之矢)’ 를 해보였다. 화살을 쏘아 발사(發射)한 뒤, 화살을 다시 잡아 놓을 수 없다는 의미로, 이미 출발(出發)한 일은 멈추기 어렵다는 뜻을 새겨, 한 번 잡은 활은 끝까지 놓지 않고, 명중(命中) 시켰다.
장보고는 청해진 대사(大使)로서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을 담당(擔當)하는 기지(基地)로서의 청해진을 통해 신라를 꾸준히 지켰으며,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으로 멈춤 없이 활발(活潑)하게 하면서 성장(成長), 발전(發展)시켰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그는 화살을 당겼고, 그는 바다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었다.
장보고는 천년신라 전환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채, 그는 세계무대에서 그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대체 불가 신라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장보고, 세계관.미래관을 볼 수 있는 이름
장보고는 범위(範圍).규모(規模).세력(勢力) 등을 늘려서 넓히는 ‘확장(擴張)’ 이라는 사고(思考)와 정신세계(精神世界)를 확고(確固)히 했다. 영토(領土) 확장, 안보(安保) 확장, 방어(防禦) 확장, 교역(交易) 확장, 관계(關係) 확장, 질서(秩序) 확장, 협력(協力) 확장, 소통(疏通) 확장, 정치(政治) 확장, 경제(經濟) 확장, 문화(文化) 확장, 종교(宗敎) 확장 등 확장을 의미(意味)하는, 넓히다. 크게 하다라는 뜻을 지닌 ‘장(張)’ 을 자신의 성씨(姓氏)로 삼았다.
이런 장은 ‘지키다. 돕다’ 라는 의미가 담긴 ‘보(保)’ 로 확장을 개진(改進)했으며, 장을 통해 국가(國家)를 보호(保護)하면서 평화(평화)를 유지(유지)하게 했고, 백성(百姓)을 안심(안심)시키면서 편안(便安)한 삶이 되게 해주었다. 장보고는 위험(위험)이나 곤란(곤란) 따위가 미치지 않도록 보살펴 돌보는 ‘보호(保護)’ 라는 정책(政策)으로 세계관(世界觀)과 미래관(未來觀)을 출실(充實)히 임했다. 국토(國土) 보호, 국민(國民) 보호, 주권(主權) 보호, 안전(安全) 보호, 재산(財産) 보호, 생명(生命) 보호, 생활(生活) 보호, 자연(自然) 보호 등 보호를 의미하는, ‘지키다. 돕다’ 라는 뜻을 지닌 ‘보(保)’ 를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이런 장과 보는 의지(依支)의 기댈 ‘언덕’ 라는 덕목(德目)으로 실천(實踐)했다. ‘둔덕지다. 기대다. 고하다. 부르다’ 라는 뜻을 지닌 ‘고(皐)’ 를 자신의 이름으로 썼다. 너의 언덕이 될 수 있다면, 이곳에서 너를 부를게, 내 목소리가 닿을 때, 모든 순간(瞬間)에 새롭게 향했던, 사랑을 채운 그 모든 문장(文章)이, 시간(時間)이 지나도 바래지지 않도록, 이 언덕이 네 곁에 남아, 영원(永遠)을 꿈꿔 볼 수 있다면, 멈추지 않고 널 부를게, 의지(依支)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며, 장(張)과 보(保)를 내세워 고(皐)를 해보였다. 언덕은 사랑(愛) 언덕, 경제(經濟) 언덕, 문화(文化) 언덕, 복지(福祉) 언덕, 힘(力)의 언덕, 쉼(休) 언덕 등 사회적협동조합(社會的協同組合)의 ‘마을 언덕’ , 사회적경제기업(社會的經濟企業)의 참새 언덕, 공공시설(公共施設)의 ‘무지개 뜨는 언덕’ . 사회연대공동체(社會聯隊共同體)의 ‘구릉 언덕’ , 생활편의(生活便宜)의 ‘달빛 언덕’ , 협동조합(協同組合)의 ‘초원 언덕’ 이 되게 하겠다는 마음에서 자신의 이름을 ‘장보고(張保皐)’ 라고 하였다.
장보고는 신라 국민에게 비빌 언덕 혹은 의지할 곳이란 그렇게 형식적(形式的)으로 따지지 않으면서도 유연(柔軟)하게, 통합적(統合的)으로, 실제적(實際的)으로 도움을 제공(提供)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편안(便安)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겠다는 장보고였다. 비빌 언덕을 만들어주자. 아닌 비빌 언덕이 되어야한다. 비빌 언덕을 통해 제공되도록 정책(政策)을 기획(企劃)하고, 집행(執行)하였다. 비빌 언덕을 만들도록 신라 지역사회(地域社會)를 지원(支援)하는 정책을 구현(具顯)해 냈다. 자신의 이름 장보고를 걸고...
이런 장보고라는 이름으로 그는 세계관과 미래관을 꿈꾸었다. 그가 태어난 영암(靈岩) 선암(船岩)마을에서 그는 일찍이 궁복(弓福)이라는 이름으로 ‘확장(張)과 보호(保), 언덕(皐)’ 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런 생각이 있었던 그였기에 그는 당나라에 있을 때 영암 선암에 계신 부모(父母)님이 지어준 이름, 궁복보다는 더 위대한 일을 해보이겠다며, 궁복(弓福)이라는 정신사상(精神史想)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이름을 ‘장보고(張保皐)’ 로 개명(改名)했다.
장보고는 청해진(淸海鎭)을 남해(南海)의 완도(莞島) 장도(長島)에 설치(設置)했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랐던 장보고, 바다를 선호(選好)한 장보고는 ‘물가에 있는 누각(樓閣)이 달빛을 먼저 받는다’ 는 뜻을 지닌 ‘근수루대(近水樓臺) 선득월(先得月)’ 이라는 의미를 새기면서 지리적(地理的)으로 가까운 위치(位置)나 좋은 환경(環境)에 있는 사람이 이득(利得)을 먼저 누린다고 보고, ‘가까움이 유리함’ 이라는 신념(信念)으로 신라와 가까운 당.일본.동남아 등과의 관계(關係)를 중요(重要)시하고 우애(友愛)를 다지면서 지리적(地理的).문화적(文化的) 거리가 가까운 국가(國家).지역(地域)이 협력(協力).물류(物流) 등에서 유리(有利)함을 확신(確信)하고 ‘외교(外交).정책(政策)’ 을 추구(追求)했다. 좋은 정보(情報).환경(環境)을 먼저 선점(先占)하고 네트워크를 가까이 두는 것이 성공(成功)의 열쇠라는 비즈니스에 적극성(積極性)을 나타냈다.
근수루대 선득월, 이런 정책으로 주변국(周邊國)과 협력(協力)을 강화(强化)하며, 신라 발전(發展)에도 유리하게 했다. 당나라와 우호적(友好的)으로 협력하는 것은 신라의 국익(國益)에 부합(符合)한마며, 물가의 누각이 달빛을 먼전 받는다는 뜻의 ‘근수루대 선득월’ 이라는 표현을 하며 청해진은 당나라 산둥반도(山東半島)와 가깝게 지내면서 교류(交流)했다.
장보고의 장(張)에 대한 성씨(姓氏)는 당나라에서 기장 많은 성씨를 차용(借用)했는지. 아니면 확장(擴張)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썼는지, 둘 다 부합(符合)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장보고라는 이름은 분명 당나라에서 가장 흔한 성씨를 썼다는 설(說)보다는 ‘넓히다. 크게 하다’ 라는 뜻을 지닌 ‘확장(擴張)’ 이라는 의미(意味)에 더 와 닿는다. 이런 의미가 담긴 장(張)을 자신의 성씨로 했다는 게 가장 설득력(說得力)이 있고. 타당(妥當)하며 신뢰(信賴)할만하다.
완도 장도(長島)는 ‘길게 늘어선 섬’ 이라는 뜻의 지명(地名)이지만, 어쩜 장도는 ‘확장시켜 나가는 섬’ 이라는 장도(張島)로 여겼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장(張)은 활 궁(弓)자가 들어가 있다. 자신의 본 이름이었던 ‘궁복(弓福)’ 을 참고(參考)해서 성씨로 ‘장(張)’ 자를 택했던 이유(理由)이며, 완도 장도(長島)가 자신의 이름을 담은 지명으로 보고, 장보고는 이곳에 청해진(淸海鎭)을 두었다. 청해진은 ‘군사기지(軍事基地).무역기지(貿易基地)’ 로 확장(擴張).보호(保護).의지(依支)하게 해주었다.
●황금시대 연 장보고
신라는 ‘황금(黃金)’ 으로 상징된다. 반짝반짝 빛나고 영원(令媛)한 가치성(價値性)을 띤 금(金)이다. 이런 화려(華麗)하고 찬란(燦爛)한 금으로 신라의 빛을 발했던 〈신라천년의 빛〉 이 오늘날에도 그 빛이 유지되고 있다.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23년간 머물다가 그의 나이 40세에 신라에 귀국(歸國)했다. 그는 58세에 세상(世上)을 떠났다. 영암(靈岩) 선암(船岩)마을에서 17년간 어린 시절(時節)을 보냈다. 그는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로 18년간 재직(在職)했다.
장보고는 당나라에 있을 때부터 그는 조국(祖國)을 떠난 몸이었지만, 항상 그의 가슴에는 조국 신라(新羅)를 새겨져있어 조국을 그리워하면서 지냈다. 산둥반도는 황해(黃海)와 서해(西海)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어서 그는 고향(故鄕) 생각(生角)이 나면 늘 바다를 바라봤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달래면서 자신이 바란 꿈, 〈신라천년의 빛, 그리고 약속〉 이라는 희망(希望) 사항(事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신라가 다시 부활(復活)해야 한다.”
“신라가 더 크게 번영(繁榮)해야 한다.”
“해가지지 않은 신라가 되어야 한다.”
“사라지지 않는 신라가 되어야 한다.”
“위대(偉大)한 신라가 되어야 한다.”
“찬란(燦爛)한 신라가 되어야 한다.”
“황금시대(黃金時代)를 연 신라가 되어야 한다.”
영원(永遠)한 번영(繁榮) 속에 찬란(燦爛)한 신라가 되기를 바랐던 장보고는 결국 23년간 머물렀던 당나라 생활(生活)을 접고 귀국(歸國)했다. 〈신라천년의 빛〉 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설치(設置)해 신라천년의 빛, 황금시대(黃金時代)를 활짝 열어가겠다고 강한 집념(執念)과 의지(意志)를 드러냈다. 신라의 부흥(復興), 연속(連續) 집권(執權)을 유지(維持)하겠다며 새롭게 틀을 짰다.
신라 42대 흥덕왕(興德王)에게 건의(建議)해 완도(莞島) 장좌리(長佐里) 장도(長島)에 청해진이라는 군사(軍事).무역(貿易) 기지(基地)를 둔 장보고는 청해진을 통해 신라 황금시대를 바라보며 “연속 집권, 신라 번영의 틀을 짜고 신라천년의 빛 노선(路線)을 회복(回復)하겠다” 면서 이같이 말했다.
외연(外延) 확장(擴張)을 통한 신라 번영(繁榮) 계획(計劃)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장보고는 흥덕왕을 만나 “신라의 황금시대를 열겠습니다” 라는 문구(文句)를 가슴에 새기고 청해진을 통해 반드시 신라천년(新羅千年)의 빛 황금시대(黃金時代)를 열어가도록 이 한 몸 기꺼이 바치겠다고 약속(約束)했다.
●대양해군을 꿈꾼 장보고
장보고는 ‘대양해군(大洋海軍)’ 을 꿈꾸었다. 그는 ‘대양해군 준비’ 를 표어(標語)로 내걸고, 연안(沿岸) 방어(防禦) 중심(中心)이던 해군(海軍)을 원양(遠洋) 작전(作戰) 능력(能力)을 갖춘 해군으로 전환(轉換)하는 기반(基盤)을 마련했다.
장보고는 해군(海軍) 전력(戰力) 건설(建設) 계획(計劃) 보고서(報告書)를 내났다. 장보고가 흥덕왕에게 신라형(新羅形) 구축함(驅逐艦), 대형(大形) 상륙함(上陸艦)과 무역의 대형 상선(商船) 등 무역선(貿易船) 확보(確保) 계획(計劃)을 보고(報告)하자 흥덕왕은 “대단히 야심(野心)찬 계획이구만, 해야지 합시다. 장보고(張保皐) 장군(將軍)” 이라고 말했다.
이를 계기(繼起)로 대양해군 건설은 본격적(本格的)으로 추진(推進)되기 시작(始作)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장보고가 건의(建議)했던 군사(軍事).무역(貿易)을 담당(擔當)할 청해진(淸海鎭)을 두었다. 장보고가 구상(構想)했던 전력(戰力)은 지금 대한민국(大韓民國) 해군(海軍)의 핵심(核心) 전력이 됐다.
장보고가 대양해군의 설계자(設計者), 대양해군의 아버지라고 평가(評價) 받는 이유(理由)다.
장보고는 대양해군을 국민(國民)의 해양(海洋) 활동(活動) 지원(支援) 및 국가(國家) 이익(利益) 수호(守護)를 위해 외부(外部) 지원 없이 대양(大洋)에서 수행(修行)할 수 있는 해군(海軍)으로 거듭났다.
장보고는 대양해군은 단순히 해군의 규모(規模)나 전력(戰力)을 키우는 개념(槪念)이 아니라, 국가가 세계(世界) 속에서 감당(堪當)해야 할 책임(責任)과 역할(役割)에 부응(副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해군의 모습이고, 신라가 더 이상 연약(軟弱)하고 보호(保護)받는 나라가 아니라, 국제사회(國際社會)에 기여(寄與)하고 책임(責任)을 나누는 나라로 성장(成長)했음을 전제(前提)로 한 개념(槪念)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대양해군은 해군이 갈 길이기도 하지만, 신라가 가야 할 길이기도하다” 며 “청해진은 신라 해양(海洋) 강국(强國), 대양해군(大洋海軍)으로 나아가는 길에 나침반(羅針盤)이자 길동무이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라는 엄중(嚴重)한 통보(通報)이기도 하다” 라고 했다.
●장보고의 개척정신 오늘날의 유용하다
828년 흥덕왕(興德王) 3년부터 846년 문성왕(文聖王) 8년까지 18년간 청해진(淸海鎭)을 운영(運營)한 장보고(張保皐)는 속도전(速度戰)을 펼쳤다. ‘빠르게 점령하다. 빠르게 진출하다’ 라는 강력한 힘으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42대 흥덕왕(興德王), 43대 희강왕(僖康王), 44대 민애왕(閔哀王), 45대 신무왕(神武王), 46대 문성왕(文聖王) 등 5명의 임금이 장보고의 강력한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의 질주(疾走)를 지켜봤다.
장보고는 개혁(改革).개척(開拓)에 대해 신하(臣下)와 백성(百姓)들의 타오르는 열망(熱望), 변화(變化)에 대한 열망을 받아 안아서 세상이 유용(有用)하고, 안정적(安定的)으로 개혁(改革)과, 개척(開拓)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정보고는 신라의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을 책임지고 있는 청해진 대사로서 겸손(謙遜), 진중(鎭重), 치밀(緻密)하게 행동해서 세상을 바꾸자며, 그래서 백성들이 “장보고가 참 잘하는 구나! 우리 삶을 바꾸는 구나!” 라고 느끼게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장보고는 “신라는 더 찬란(燦爛)한 신라로, 신라천년이 신라 이천년으로 나아가고 성공(成功)해야한다” 며 “지금보다 훨씬 더 힘을 많이 쏟아야하고, 공부(工夫)도 하고, 백성(百姓)도 많이 만나야 한다” 고 더 치밀(緻密)하게 정책(政策)을 잘 세워 추진했다.
장보고는 그는 단발성(單發性) 투자(投資)에 그치기보다는 상호 보완성(補完性)을 바탕으로 신라 기업이 신라를 거점(據點)으로 글로벌 산업시장(産業市場)을 확장(擴張)할 가능성(可能性)에 주목(注目)하게 했다.
신라가 세계로 뻗어가는 것이 장보고의 꿈이라며, 그는 〈장가계〉 라는 정책을 펼쳤다. 장가계(張家界)는 ‘신라의 희망을 세계로 확장시킨다’ 라는 철학이다. 장가계는 중국에서 가장 중시하는 여행 도시 중의 하나로, 중국 제1호 국가심림공원(國家深林公園)이며, 중요 풍경 명승구(名勝區)다. 장가계(張家界)는 주요 관광 지역으로서 중국이 이 명산(名山)을 위주로 중국 전역과 다른 아시아 나라들로 확대되고 있다. 이렇듯 장보고도 ‘장가계’ 라는 구호로 〈신라를 넘어 해외로〉 라는 글로벌 무대로 진출을 모색하고 실천했다.
세계지도가 초일류국가(超一流國家)로 벌어지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경쟁(競爭)보다 ‘협력(協力)’ 을 통해 규모를 키워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장보고의 생각이었다. 그는 진출에 있어서 과도한 경쟁보도 ‘협력’ 을 강조하며, 신라 주력 상품인 신라 특산품에 관련, 협력체계(協力體系)로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해, 경쟁 관계이기도 했던 차세대(此世代) 제품(製品) 개발(開發) 및 생산(生産), 글로벌 무역 분야에서도 과도(過度)한 경쟁(競爭)을 지양(止揚)하고, 해외시장(海外市場) 공동(共同) 진출(進出)도 추진했다. 협력사(協力社) 공급망(供給網)을 공유(共有)하고, 연구.개발(R&D)도 했었다. 이런 사업 구상(構想)과 정책(政策)으로 시너지 확대에 나섰다.
●장보고의 속도전에 세계가 움직이다
장보고의 속도전(速度戰), 건설(建設) 등의 작업(作業)에서 마치 전쟁(戰爭)에서 진격전(進擊戰)을 하듯이 재빠르게 공사(工事)를 마무리하는 운동으로서 모든 역량(力量)을 동원(動員)해 건설 사업을 되도록 빨리 진행했다.
선동구호(煽動口號) 장보고 속도전은 신라인의 높은 정치적 지각(知覺)과 창조적(創造的) 적극성(積極性)을 가지고, 신라 건설에서 끊임없는 비약(飛躍)과 기적(奇蹟)을 이룩해나가야 한다는 사업 원칙으로, 이는 〈신라천년운동〉 을 심화(深化)시키고자 한 정책이다.
신라 속도전은 개혁(改革).개척자(開拓者)의 혁명적(革命的) 열정(熱情)과 창조적(創造的) 지혜를 적극 동원하여 모든 창작(새로 개발한 제품) 사업을 능동적(能動的)이며 전투적(戰鬪的)으로 전개함으로써 가장 짧은 시일 내에 사상(思想).경제적(經濟的)으로 우수한 〈신라작품〉 을 창작(創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라 재창조(再創造).재건설(再建設) 속도전 선언(宣言), 장보고의 신라 개발(開發) 판(版) 뒤집을 〈착착개발〉 승부수(勝負手)를 던지는 등 재창조(再創造),재건설(再建設) 정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바다를 무대(舞臺)로 “신라 재창조.재건설 착공(着工)까지 징보고가 책임지겠다. 신라를 〈세계경제중심나라〉 로 만들겠다” 고 추진했다.
장보고의 속도전은 신라 경제 돌파구(突破口)인가? 신화(神話)인가? 장보고가 해양(海洋)을 흔드는 가운데, 신라는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신라를 경제 성장(成長)의 핵심(核心) 수단(手段)으로 삼았다.
속도전-Being Speedy, 주어진 시간 내에 양적(量的)으로 질적(質的)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일의 추진 방식을 장보고는 선호했다.
장보고는 속도전에 있어서 자칫 빨리 생산하려다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에 염두하고, 그는 제작자들이 더 좋은 제품을 더 빨리 만들어 신라와 혁명(革命)에 훌륭히 이바지하겠다는 헌신의 열정과 높은 정치적(政治的) 지각(知覺)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치밀하게 챙겼다. 또 속도전을 벌이기 위한 집체적(集體的) 지혜(知慧)는 한 사람의 힘과 지혜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높은 수준에서 빨리 해결하게 해, ‘창작(創作)의 속도’ 와 함께 제품(製品)의 질(質)을 높게 했다.
장보고는 창작과제(創作課題)가 방대(尨大)하고, 여러 생산자(生産者)들이 그에 참여할 경우 조직(組織) 지도(地圖)가 없다면, 창작 과정은 산발적(散發的)으로 이루어 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속도전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이런 의미에서 속도전은 고도(高度)로 조직화(組織化)되고 계획화(計劃化)된 창작(제품 설계.제작.생산) 전투(戰鬪)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장보고의 주장이었다.
장보고는 속도전의 성과(成果)를 보이기 위해서는 정치적(政治的) 자각성(自覺性)을 강조했다. 신라주의적(新羅主義的) 생산(生産)의 극대화(極大化)를 꾀했으며, 사상(思想).이념적(理念的) 통제(統制)와 조직적(組織的) 검열(檢閱)을 강화하는 한편, 생산을 독려(督勵)하는 기능적(機能的) 역할을 하면서 밀어붙였다.
장보고의 〈착착개발〉 모델은 신라 변화(變化)와 혁신(革新) 과정을 행정(行政)이 직접 관리하는 방식으로 주요 내용은 이렇다.
✱신라창조,재건설, 착공까지 신라 밀착 지원
✱담당자 전담 매니저가 사업 관리
✱사업 속도 지연 시 행정이 직접 해결
✱재창조.재건설 지정 권한을 청해진에 이양
✱절차 간소화로 사업 속도 개선
이렇게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통해 신라의 세계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해양개척(海洋開拓)도 강조했다.
핵심 방향으로
✱세계 기업 유치
✱외국 인재 유입
✱비자.법인세 혜택 검토
✱특구 지정 추진
이런 정책으로 펼쳐갔다.
속도전은 〈장도전+보도전+고도전〉 이라는 등식(等式)으로 추진했다.
장보고는 통일신라 번영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위대한 백성들의 여정을 든든히 뒷받침하겠다고, 시대 변화를 반영하고 백성 공감대가 있는 개혁 과제들도 발굴해 국법(國法)에 담길 수 있도록 하겠다며, 신라의 또 다른 세계의 변화(變化)와 혁신(革新)에 나섰다.
●당나라가 없었다면 장보고도 없었다
장보고와 당나라의 인연(因緣)은 ‘숙명(宿命)’ 이었다. 장보고를 키운 당나라, 그는 당나라에서 군인(軍人)으로서 세상에 눈을 떴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졌으며, 생각도 깊어졌다. 당나라에서 20년 이상 머물면서 여기서 보고 느끼고 배운 지식들이 풍부했다. 그는 고향에서 있을 때부터 나는 지금 이곳이 나의 〈꿈공작소〉 가 아니라며, 그는 시야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해외다. 당나라 산둥반도(山東半島)에 마음을 두었다. 거기에는 이미 신라인들이 이주.정착해 살던 신라방(新羅坊)이 있었다. 그곳에 가서 당나라의 선진문물(先進文物)들을 배워 나라(신라)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큰맘 먹고,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더 큰 인물로 성장하고자, 그는 미련 없이 신라를 떠났다. 당나라 신라방에 머물다가 서주에 있는 무령군(武寧軍)에 입대하며 군인(軍人)으로서 당나라의 질서(秩序)를 바로 잡고 안정(安定)을 기하는데, 일조를 했다. 장보고는 당나라에 온 것을 두고 나의 운명(運命)이다. 어쩜 당나라와 나는 ‘숙명(宿命)’ 이었을지도 모른다며, 이런 피할 수 없는 인연으로 〈장보고+당〉 이라는 공식(公式)을 성립(成立)시켜 청춘(靑春)을 보냈다.
장보고가 당나라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궁복(弓福)으로만 살았을 것이다. 궁복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안 그이기에, 그는 궁복의 이름값을 하기 위한, 당나라로 이민(移民) 한 것이다. 그런 자신을 장보고라는 이름으로 다시 이름값을 하기 위한 열정(熱情)을 쏟았는데, 그의 노력은 헛되지가 않아, 훌륭한 인물로 성장(成長)하게 됐다.
궁복이 당나라를 갔기 때문에 장보고라는 인물이 탄생(誕生)된 것이다. 그런 장보고가 있었기에 군사기지(軍事基地)와 무역기지(貿易基地)인 ‘청해진(淸海鎭)’ 이라는 국제무대(國際舞臺)가 등장(登場)하게 됐다.
궁복이 당나라에 가지 않았으면 장보고라는 이름도, 장보고가 당나라에서 배우지 않았다면 청해진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 궁복은 이미 장보고라는 인물로, 청해진이라는 곳에서 삶을 이어가며 나라에 기여할 것으로 예단(豫斷)을 했다. 그의 시나리오는 치밀했고 훌륭했고 흥미진진했다. 정치적.경제적.사회작.문화적.예술적.종교적.철학적 등 세상은 보는 관점(觀點)이 특출했으며, 관념(觀念)은 세상을 능가했다.
영암→서주→완도 행적(行蹟)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영화(映畵)로 치면 블록버스터다. 거대(巨大)하고 웅장(雄壯)한 화면(畵面)이 펼쳐진 것이다. ▲발주(發注) 신라 ▲제작(製作) 신라 ▲각색(脚色).각본(脚本).연출(演出) 장보고로 합작품(合作品)이 탄생돼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인들이 장보고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신라작품(新羅作品)에 주목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청해진은 장보고의 ‘청사진(靑寫眞)’ 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마스터플랜이다. 미래지도(未來地圖)이다. 계획(計劃)이면서 방향(方向) 설정(設定)이다.
그는 당나라를 가고 싶어 얼마나 안달이 났던지, 뛰는 가슴이 멈추지 않았고, 지축(地軸)을 흔들었다. 바다는 궁복의 심장인 듯 출렁거렸다. 지금도 그렇다. 그의 ‘활을 보여주다. 활 쏘는 솜씨를 보이다. 활 잘 쏘는 실력을 드러내다’ 의 궁복(弓福) 이름과 ’활이 사람을 빛나게 하다‘ 장보고(張保皐)의 이름을 생각해본다. 그 의미의 숨은 뜻을...
●장보고가 해적이다 왜곡된 시각에 슬프다
당나라에서 무령군 소장으로 활약한 뒤 귀국해 완도에 청해진을 세워 해적(海賊)을 소탕하고, 당.신리.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장보고, 청년기에 정년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서주 무령군에서 복무했던 장보고, 지방군벌(地方軍閥)의 속성과 군대 양성 방법을 익힌 장보고, 당시 당나라의 동해안에는 신라인들이 거주하며 연안(沿岸) 운솝법(運送法)과 국제무역(國際貿易)에 종사했던 장보고, 장보고는 해적의 위협과 산라인 노비(奴婢) 매매를 목격했던 장보고, 당나라 동해안(東海岸)에서 신라인들이 아라비아.페르시아.일본을 내왕하는 국제무역을 이해했던 장보고, 그의 나이 40이 된 해 828년 귀국해 완도에 해군기지(海軍基地)를 건설해 해적을 근절하고 무역로(貿易路)를 보호(保護)할 것을 주장했던 장보고, 신라 42대 흥덕왕의 승인을 받아 1만여 군대로 청해진을 세운 장보고, 청해진을 통해 당.신라.일본을 잇는 해상교역(海上交易)의 중간 기착지로 청해진을 둔 장보고, 청해진을 기반으로 해적을 소탕해 해상권(海上權)을 장악하고, 당.신라.일본을 잇는 국제무역을 주도 했던 장보고, 신라 상인은 금속제품.모직물 등을 수출(輸出)하고 면.비단 등을 수입(輸入)했던 장보고, 장보고의 무역선(貿易船)도 피혁.문방구류 등을 취급했던 장보고, 아직도 완도 장도에는 외성(外城).내성(內城)과 목책(木柵) 등 방어(防禦) 시설이 남아 있어 장보고의 역사성과 활동성을 확인해볼 수 있는,그에 대한 참 정신은 신라를 국제적(國際的)인 나라로, 그 위상(位相)을 떨치게 했다. 이런 훌륭한 업적(業績)과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기억된다.
장보고가 당나라에서 신라로 다시 들어와 청해진을 설치했던 것은 일개의 도적(盜賊)이 만든 것이라는 것인가? 에 반문하고 싶은 마음이다.
장보고가 해적(海賊)으로 물건(物件)을 빼앗고 괴롭히거나 사람을 죽였다는 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잔인(殘忍)한 것이 아닌가 한다. 무지(無知)인데, 그건 정도를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노략질을 하다가 나중에 청해진을 설치해 해적으로서 활동을 했다고 보는 시각에 과연 그럴까? 어떤 정보로 그렇게 말 할 수 있는가에 통곡(痛哭)을 하게 만들고 원망(怨望)스럽다.
그는 여러 번 다루듯이 전혀, 그런 못된 짓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세운 청해진은 군사기지.무역기지였다. 해적소굴(海賊巢窟)의 청해진이 아니다.
그는 청해진을 통해 배를 많이 건조(建造)했다. 군사(軍事)로서의 ‘군함(軍艦)’ , 무역(貿易)으로서의 ‘상선(商船)’ 을 제작했다. 군사선(軍事船)은 안보(安保)를 지키고, 방어(防禦)를 하기 위함이다. 군함(軍艦)은 국토(國土)를 지키면서 신라 상선을 보호(保護).수호(守護)를 한 호위함(護衛艦)이었다. 나라와 나라간 무역(貿易)하거나 지역에서 지역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안전(安全)하게 항해(航海)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런 장보고였는데, 그를 해적이라고 본 시선이 지금도 우리 국민들은 말해 된다. 역사적(歷史的) 서술(敍述)은 다방면(多方面)에서 다양하게 보고 해석한다. 그릇된 서슬을 적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서술가(敍述家)들이 의도적으로 잘 못 알고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라는 추측도 해보곤 한듯하다.
역사의 진실은 우리의 시각에서 나온다. 우리가 안 했던 것도, 한 것처럼 말할 수 있는 게 언론(言論)이다. 역사서(歷史書)다.
정말 장보고가 해적을 위해 청해진을 설치하고, 배를 만들어 그런 짓을 했을까?
우린 진실선상(眞實線上)에서 그를 바라보고 말해야 된다.
장보고는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을 추진한 인물이다. 해적이 국제자유무역이라는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봤으면 한다. 그는 군사를 조직한 것은 국토방어(國土防禦)와 안보(安保)만을 위함이 아니었다. 무역(貿易)을 하려는 상선(商船)을 보호(保護)하려는, 안전(安全) 항해(航海)에 가이드와 보드가드를 해주었다.
장보고가 해상왕(海上王)이라는 칭호가 해상에서 선박(선박)을 위협(위협)하여 물건을 빼앗는 도둑의 약탈자(掠奪者)나 괴롭힌 사람으로 군림(君臨)해서 그런 칭호가 붙여졌다고 보는데, 다시 말하지만 장보고를 두고 해상왕이라 부르는 것은, 그가 바다 질서(秩序)를 바로 잡았고, 안전항해(安全航海)를 도왔고, 바닷길을 개척(開拓)하고, 바다를 지배(支配)했다. 그러면서 활발한 해상무역(海上貿易)에 있어서 안전(安全)하고 활발(活潑)하게 진출(進出)하게 해줬다고 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를 바다를 다스리는 신, ‘해신(海神)’ 라고 본 이유다.
1000년 전의 일이라서 별별말말도 있을 법도하다. 하지만 왜곡(歪曲)된 시각(視覺)은 궁복, 장보고의 이름에 먹칠 한 것이다. 그의 이름의 뜻을 안다면, 나라를 위한, 무역선(貿易船)을 위한, 바다의 안전(安全)을 위한, 평화(平和)를 위한 사람으로서의 바라봄, 그가 해적이 아닌 해적을 소탕(掃蕩).퇴치(退治)하는 장보고로 좋은 시선(視線)을 보내리라 본다.
해적(海賊)인 장보고가 자신의 신분(身分)을 속이고 왕에게 알현(謁見)해 청해진을 설치하여, 자신의 약탈(掠奪) 짓을 더 해되려했다고 보고 있는데, 원래 그가 해적이었다고 보는 시각은 더 이상 하질 않았으면 한다.
장보고는 무령군(武寧軍)에 있을 때, 무령군이 추진하는 일이 해적(海賊) 소탕(掃蕩).퇴치(退治), 안전(安全) 해안(海岸)을 확보(確保)하는 것이었다. 그런 일에 종사하며, 그는 23년간을 무령군에서 보냈다. 그런 그가 다시 신라로 들어와 무령군에서 했던 것처럼, 인명(人命), 재산보호(財産保護), 치안유지(治安維持), 해적소탕(海賊掃蕩).퇴치(退治), 질서회복(秩序回復)의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을 신라에서 청해진(淸海鎭)을 통해 펼쳤던 것이다.
장보고(張保皐), 활(弓)이 사람(人)을 빛나게(白) 하다 라는 뜻은, 곧 〈장보고가 신라를 빛나게 하다〉 라는 의미이다.
장보고는 “바다 질서와 안전을 위해 사령관의 마음으로 바다에 나서겠다. 이 거친 바다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 제게 주어진 모든 책임을 다하겠다.” “난 바닷길을 개척하여 선박들이 언전 속에 순조롭게 항해하도록 하겠다” 라고 확고한 신념을 갖고, 강한 의지로 바다 사나이로 나섰다.
●중계무역상 장보고, 장보고의 의해 선진물품 접하다
장보고의 해양무역(海上貿易)은 단순한 신라의 물품(物品)을 해외(海外)로 수출(輸出)한 것에서 머물지 않았다. 그는 신라의 물품을 당.일본.동남아.아랍 등으로 수출하는데 도왔지만, 다른 나라에서 생산(生産)하는 물건(物件)들도 구입(購入)했다. 그런 물건들을 신라는 물론, 일본과 동남아 등으로 교역(交易)을 했다. 무역상인(貿易商人)으로 나섰던 것이다. 다른 나라의 물건을 사서 다른 나라로 파는 장사꾼이었다.
장보고의 1인 3역, 그는 군사의 장수(將帥)이면서 무역의 대표(代表)였다. 그리고 정치계(政治界)의 영향력(影響力)을 행사(行事)했다.
장보고는 신라의 해안(海岸)은 책임지고 방어(防禦)와 안정(安靜)을 취하게 했다. 그러면서 무역에도 손을 댔다. 무역은 신라를 알리는 데, 목적을 두고 추진했다. 특히 신라의 문화(文化)를 세계적(世界的)으로 알리면서 신라인들의 뛰어난 기술(技術)과 우수한 제품(製品)에 관심을 끌게 했다. 그러면서 당나라, 일본, 동남아, 아랍 등의 좋은 물건들을 국내로 들어와 문화(文化)의 혜택(惠澤)을 누리게 해주었다. 그는 당나라나 신라 제품 등을 일본으로 가지고 가 일본사람들이 이 물건에 빠지게 했다.
장보고는 이런 무역상(貿易商)이었으며, 그는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물래 도둑질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법에 따라 서로 교역(交易)을 했을 뿐이다.
징보고는 무역에 있어서 신뢰(信賴, Trust) 관계를 구축했다. 아무리 좋은 물건도 신뢰(信賴)가 없다면, 그 물건은 외면(外面) 당한다. 신뢰가 없으면 정상적(正常的)인 상거래(商去來)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시장(市場)은 곧 정글이 된다. 그때그때 속이고 살아남는 자만이 번영(繁榮)을 구가(謳歌)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정글의 특징은 모두에게 골고루 행복(幸福)을 가져다주지 않는 데 있고, 그래서 평균적(平均的)인 행복지수(幸福指數)가 정상적(正常的)인 시장(市場)보다 낮아지게 된다.
아무리 물건을 많이 만들어도 신뢰가 없으면 문건을 제대로 팔고 살수 없고, 행복도 골고루 누리기 어려워서 경제에는 일종의 ‘동맥경화(動脈硬化)’ 증세(症勢)가 나타난다. 그리고 동맥경화 증세가 발생하면, 그 증세는 호전(好轉)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惡化)되기 마련이다. 많이 부수고 많이 만들어, 많이 벌고 많이 쓰는 것보다 서로를 〈신뢰〉 할 수 있는 건강(健康)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라는 것을 장보고는 알고, 신뢰를 자신의 철학으로 삼고 〈신뢰 속에 무역을〉 이라는 신념(信念)으로 추진했다.
장보고는 거래(去來) 소비에서 신뢰가 무너지면 정상적인 상거래(商去來)가 어렵고, 사회적(社會的) 비용(費用)이 커진다는 것을 알았다. 소비자(消費者)가 기업(企業)을 신뢰하면 제품을 따져보지 않고도 구매(購買)가 쉬워지고, 기업은 설득 비용(費用)을 줄일 수 있다는 것에 장보고는 이점을 명심(銘心)했다. 그는 신뢰가 무너지면 거래가 정글처럼 되어 속임수로 살아남는 구조(構造)가 생기고, 사회적(社會的) 비용(費用)이 늘어난다는 것을 알고, 신뢰 구축에 산경을 썼다, 또한 신뢰가 무너지면 운송(運送).무역(貿易) 등 유통(流通) 같은 시스템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개인이 불안 비용을 더 지불하게 되는 일에 어리석은 일은 범하질 않았다.
장보고는 생산에 기여하는 물적자본(物的資本)이나 금융자본(金融資本)이 중요한 것에 ‘인적자본(人的資本)과 지식자본(知識資本), 자연자본(自然資本), 사회적(社會的) 자본(資本)’ 에 대한 중요성도 참고하며 추진했다.
신뢰는 규범(規範), 네트워크와 함께 사회적 자본의 핵심 요소로 인정되고 있어, 사회적(社會的) 자본(資本)으로서 신뢰는 ‘대안 신뢰와 기관 신뢰’ 로 구분, 대안 신뢰는 다시 일반적 신뢰와 특정 대상에 대한 신뢰로 구분하며, 사회적 자본으로서 중요한 것은 〈일반적 신뢰와 기관 신뢰〉 라는 것을 알고 신뢰 구축에 집중했다.
일반적 신뢰란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속이거나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뢰는 사회적 교류의 협력을 촉진해 ‘사회적 자본‘ 이 된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으면 세금을 내려는 의향도 높아지고, 기업에 대한 신뢰는 경영 활동에 기여한다. 사회적 자본으로서 신뢰는 거래의 효율성을 증진시켜 경제성장에 기여한다. 신뢰가 있으면 대리인게 일을 맡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에 의한 비용도 감소한다. 이점을 알고, 〈신뢰 속에 신라무역〉 이라는 경영이념을 세웠다.
양심과 신뢰가 살아있는 시회, 장보고는 이점을 중점을 두고 양심에 따른 진정한 물건, 신뢰에 의한 진정한 교류를 해왔다.
장보고가 운항(運航)하는 배들을 선박(船舶)이라 하지 않고 착한 ‘선박(善舶), 베푸는 ’선박(宣舶)‘ , 고운 ’선박(鮮舶)‘ , 아름다운 ’선박(璿舶)’ 이라고 했다. ‘진정한 장보고 船’ 이라고 불러줬다. 양심의 물건을 실은, 신뢰의 교류를 한 배로 받아들었다.
해양질서는 상호간의 ‘약속이자 신뢰 구축’ 이다. 질서(秩序)가 깨지면 신뢰(信賴)도 무너진다. 신뢰는 질서 속에 만들어졌고, 질서를 잡기 위해 서로 노력했다. 장보고는 해상무역으로 바다의 질서를 회복시켰다. 질서 속에 무역이 추진됐고, 무역 속에 질서를 찾았다.
청해진에 왜 군사들을 두었는지, 그런 군사들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여러 자료나 서슬 등으로 파악해볼 수 있고 이해가 됨이다.
군사(軍事)에 머물지 않은 안보와 경제에 보조적(補助的)인 역할로 수행했음을 볼 때. 신라의 야심 作 ‘청해진(淸海鎭)’ 은 지금의 어느 기관이나 업체보다 더 훌륭한 명칭(名稱)의 참 브랜드로서 신라의 품격(品格)을 높인 일이라고 보여 진다.
군사(軍事)가 아름다운 무리의 ‘군사(群社)’ 가 되게 한, 무역(貿易)이 풍족한 나라의 ‘무역(茂域)’ 이 되게 한, 해양(海洋)이 함께 성장하게 하는 ‘해양(偕養)’ 이 되게 한, 청해진(淸海鎭)이 맑게 개이고 풀어주고 나아가게 하는 ‘청해진(晴解進)’ 이 되게 한, 신라(新羅)가 보배로움을 쌓아올린 ‘신라(賮摞)’ 가 되게 한 일의 〈신리의 청해진〉 으로 명예롭게 했으며, 청해진을 국제적인 군사.무역 중심지로 만들어냈다.
청해진은 ‘탐욕(貪慾)이 없다’ 라는 청(淸)으로 순수한 역할을 띠며, 올바른 세상을 열려고 했다. 군사로 ‘평화(平和)’ 를, 무역으로 ‘번영(繁榮)’ 을 위한 ‘순수한 영혼(靈魂)의 결정체,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 순수한 아름다움과 멋의 결정체, 순수한 맑음의 결정체’ 다.
청해진은 ‘풍부(豊富)함이 있다’ 라는 해(海)로 넉넉함 모습을 띠며, 여유로운 삶을 누리려고 했다. 군사로 ‘안정(安定)’ 을, 무역으로 ‘부강(富强)’ 을 위한 ‘넉넉한 정신(精神)의 가꿈체. 넉넉한 마음의 가꿈체, 넉넉한 세련의 가꿈체, 넉넉한 여유의 가꿈체’ 다.
청해진은 ‘축적(蓄積)이 있다’ 라는 진(鎭)으로 차곡차곡 쌓은 형태를 띠며, 든든한 일상을 보내려고 했다. 군사로 ‘수호(守護)’ 를, 무역으로 ‘희망(希望)’ 을 위한 ‘탄탄한 행동(行動)의 공동체, 탄탄한 실천(實踐)의 공동체, 탄탄한 삶의 공동체, 탄탄한 정도(正道)의 공동체’ 다.
●신라무역이 국제무역을 촉진한다
‘국제무역이 아니라 신라경제가 세상을 이롭게 한다’ 라는 장보고의 설파(說破)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장보고는 〈오랜 된 과거, 오래된 미래〉 라는 저술에서 인류가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고, 그가 주장할 때 세상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불편했다. 서구의 제국주의(帝國主義) 침략도 싫었지만, 대륙을 신비화하고 빈곤까지 낭만화 하는 시선들은 종종 한 인간의 보호나 동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괜스레 그의 남성적이고 야성적인 인상까지 정치적이지 않아보였다. 그의 저서를 펼치지도 않았다. 1000년 전의 그를 상상해 봤을 때 수려하고 섬세한 모습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지적 옹졸함으로 눈을 가린 나를 발견했다.
신라가 우리가 나갈 것이다.
사람들은 발전 개념을 비판해왔다. 당도, 일본도, 신라도 발전이 아니라, 나눔과 돌봄을 이야기할 때라고 말한다. 장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말로만 그럴 뿐 전혀 준비되지 않다. 그동안 국가들이 국제무역교류(國際貿易交流)에 할까 말까로 시끄러웠던 이유도, 국제무역에서 유리한 거점을 따진 것이다. 장보고는 발전을 반대하지 않았다. 자신의 메시지는 신라 경제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제 발전론은 국제무역과 그것을 주도하는 대기업을 그 중심에 두고 있었다.
장보고는 “신라 경제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신라에 필요한 더 많은 기업가와 더 많은 기술자를 배출하고, 더 많은 사람이 제품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라며 “글로벌 구조의 하청이나 투자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는 〈국제무역이 아니라 신라경제가 세상을 이롭게 한다〉 고 정의를 내리고, 국제무역에는 신라경제가 먼저 일으켜서 국제무역을 부흥시켜야 한다고 했다. 장보고는 분명하게 신라가 우리가 나갈 길이다라며 경제구조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었다.
장보고는 무역정책을 강하게 지원하고, 더 많은 무역을 강조하며 세계적인 운송을 증진시켰다.
장보고는 공정무역(公正貿易)이 협동조합(協同組合)을 만나면 자선 아닌 사회변혁운동으로 탈바꿈시켜, 민주적 협동조합은 공정무역의 혜택이 지역 유지나 토호세력 등에 독점되지 않고, 조합원들에게 골고루 분배될 수 있도록 했다. 품질 관리와 생산 기술이 전파돼 지역공동체가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거점이 되게 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되게 했다. 협동조합을 통해 생산자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제품 노동자가 될 있게 했다. 협동조합에서 조합원들은 힘없는 생산기업이 아니라 자신의 생산물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공정무역의 꿈은 저개발국 생산자들을 변화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모든 영역에서 연대(連帶)와 호해(互惠), 그리고 공정(公正)함이 경제의 기본 원리가 되는 날을 꿈꾸는 것이다. 그래서 공정무역은 저개발국 생산자들을 협동조합으로 조직하고 장기적 발전 기반을 마련했다. 공정무역을 지지하는 선진국 소비자들과 생산자들이 더불어 공동체를 이루게 했다.
장보고는 국부.평화 지키는 원천은 ‘무력(武力) 아니 무역(貿易)’ 이라고 강조하며, 신라는 통일신라 이후 전쟁의 참혹함이 거의 없었던 시기였다. 있어도 국지적일 뿐이었다. 이 시기에는 자유무역, 사유재산, 제한된 정부를 기본적인 이념으로 하는 자유주의의 전성기로서 신라 역사로서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
이 자유주의(自由主義) 사상이 통일신라 이전에는 보호무역, 정부개입, 큰 정부를 기초로 하는 경제적 국수주의(國粹主義)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장보고는 이런 국가주의였던 중심주의의 오류를 지적하며, 자유기업(自由企業)과 자유무역(自由貿易)을 주장했다. 그리고 비교우위에 기초를 둔 장보고의 자유무역이론에 따라 폐쇄적인 교역 조례를 철폐했다.
이런 조치들은 신라 경제를 자유경제로 전환시키고, 산업혁명(産業革命)으로 일어난 경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신라의 경험에 자극을 받은 당.일본 등이 신라의 모형(模型)을 따르면서 자유무역(自由貿易) 시대가 열렸다.
국가 간 무역으로 세계 도처의 사람들이 더욱 가까워졌고, 상호 존중(尊重)과 우위(優位)가 돈독해졌다. 사람들은 차별적 거래가 쌍방 모두에게 이익(利益)을 주고, 국가의 부(富)를 증진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실을 깨달은 많은 국가가 중상주의(重商主義)의 경제적 국수주의(國粹主義)를 버리고, 전쟁(戰爭)을 하지 않았다.
전쟁은 분업(分業)을 통한 자발적 거래를 깨뜨려 모두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사실, 목축업을 하는 마을과 벼농사를 하는 마을이 서로 자신들이 생산하는 것을 교환해 생활하다 전쟁을 한다면, 한쪽에서는 육류를 섭취하지 못하고, 다른 쪽에서는 쌀을 먹지 못하게 돼 서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충족하기 위해 세계 모든 사람들과 협력하고 있다.
입은 옷의 비단은 중국, 향신료는 아랍에서 공급받는다. 신라는 신라의 생산물을 이것들과 교환하면서 세계 여러 지역에 공급한다. 이런 분업은 경제를 성장시키며, 신라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그런데 분업은 평화가 지속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래서 서로 교환을 하는 국가 간에는 전쟁을 하지 않으려는 인센티브가 있다. 자유무역의 평화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장보고는 이런 이점을 고려해, 전쟁을 막은 방법으로 〈자유무역〉 을 선택했다.
●해양주권 사수한 장보고
청해진 통솔자 장보고의 모든 전술과 전략은 신라의 안보는 물론 국제 평화를 기여하는 검증된 진영(鎭營)이다.
확장된 진출범위 능력과 강화된 공격(攻擊)과 방어(防禦) 능력을 바탕으로 신랑 ‘해양주권(海洋主權)’ 을 더욱 사수했다.
신라가 청해진을 통해 추진한 군사적(軍事的) 역할과 상업적(商業的) 역할은 매의 위용처럼 뛰어난 탐지, 추적능력과 무장, 신속한 가동으로 적에게는 패배를, 아군에게는 압도적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고 했으며, 상어의 위엄함처럼 탁월한 재치, 속도와 이동, 빠른 항해력으로 해외에게는 우수함을, 신라에게는 든든한 성과를 안겨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빈 배로 돌아오지 않은 뱃고동소리
짐을 가득 실고 떠났던 배가 다시 신라로 들어올 때는 절대 빈 배로 오게 해서는 안 된다. 장보고의 철칙(鐵則)이다.
신라무역에서 상선은 매일 바다에 배들이 항해를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배들이 물건을 잔뜩 싣고 수입국(輸入국)으로 항해를 했다. 팔려가도 했고, 주문에 의해 싣고 갔다.
그런 배들이 타 나라의 항구에 도착해 물건을 내렸다. 그런 배들은 다시 그 나라의 물건을 싣고 신라로 들어오거나, 일본,동남아 등으로 교역(交易)을 했다.
장보고는 〈신라는 빈 배를 띄우지 않는다〉 라는 철칙으로 배들은 갈 때나 올 때도 배에는 물건들을 실었다.
구산에서의 빈 배(虛舟) 철학은 싸움을 회피하는 최고의 처세술(處世術)로 비유하지만, 적을 만들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지만, 이는 결국 오랫동안 마찰(摩擦)을 방지하는 비결로 작용하지만, 마찰의 주인공인 사람의 부제로 인해 갈등의 요인이 사리진 상태를 의미하지만, 마찰의 가장 큰 대상이 빠져있기에 무소유의 가치마저 동반하지만, 무역에서는 빈 배는 전혀 다른 빈 배 철학을 접하게 된다.
장자(莊子)의 외편 제20편 산목(山木)에는 “빈배(虛舟)처럼 자신을 비우면 걱정도 해도 없다” 고 했다. 배에 사람이 타고 있는 도중에 서로 부딪히면 화가 나지만,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부딪힐 들 누가 화를 낼 사람이나 싸울 일이 없다는 것을 장자는 빈배철학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장보고는 빈 배 가득 밝은 달빛만 싣지를 안했다. 그는 빈 배에는 늘 물건들을 실었다.
장보고는 야정수한어불식 만선동재월명귀(夜靜水寒漁不食 滿船空載月明歸), 『밤은 깊고 물은 찬데 물고기는 없으니/빈 베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라는 화정 덕성 선사의 글 같이 빈 배로 돌아오지를 아니했다.
징보고는 어부들은 물고기를 잡지 못하면 허탈한 마음으로 교교한 달빛 속에 빈 배로 돌아오게 되지만, 화정의 뱃사공 덕성 선사는 빈 배에 물고기 대신 밝은 달빛을 가득 싣고 만선의 풍요보다 더한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온다고 하지만, 장보고가 운행한 배들은 가을 달빛에 더 괴괴한 물줄기를 헤치며 노를 젓는 진리를 닿아 번뇌 없는 삶을 사는 일에 정진하는 선사가 아니기에, 그는 덕성 선사처럼 빈 배의 여유를 즐기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어떻게 하던 배에 무언가를 채워 싣고 항해(航海)를 하려했다.
바다로 간 강물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장보가 띄운 배는 다시 돌아왔다. 물건을 다시 싣고서...
장보고는
신라를 떠난 배들은 어디 쯤 가고 있을까
출렁이는 파도의 바다엔 홀로 선 배가 외롭다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형의 바다
그 바닷물 속엔 너도 흐르고
나도 흐른다
라고 읊었다.
●장보고의 고향의 바다, 두고 온 그리움에 사무치다
장보고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영암 선암의 그날의 바다, 바다를 배경을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과 그리움을 떠나보내는, 아련하고 서정적인 발라드는 흐른다. 물을 향한 바다의 그리움은 산으로 솟아난다. 그가 태어난 마을 뒷산, 오봉산과 마을 앞의 월출산을 그리워한다.
고향의 바다, 애증(愛憎)을 그린다. 바다, 상심을 느낀다. 바다, 그리움으로 물든다. 또 다시 바다에 선다.
장보고가 그리워하는 바다는 고향의 바다다. 영암 선암마을의 바다를 그리워한다. 〈그리움의 바다, 스토리채널-그리움〉 이 드라마가 되어준다. 장보고는 바람결에 그리움이 실려 온 듯, 흔들리는 창가에 귀 기울이면, 흘러가버린 세월의 저편에 있을 적한, 오랜 기억 속에서, 장보고는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한다. 어부들을 사랑했고, 그들처럼 자신도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 했었다. 오랜 세월의 뒤안길에서 아쉬움을 담은 책갈피만 뒤적이는 나날들...
긴긴 삶의 길에서 가을 낙엽 길은 그리움이 추억 속에서 흔들릴 때, 세월 자락 부여잡고, 가끔은 목 놓아, 망각이란 파도가 쓸어가 버리고, 아쉬움을 가슴에 남기고, 떠나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 데, 장보고의 가슴에 멍으로 남은 그리움은 파란 하늘 바다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청해진의 바다는 출렁거려 그리움은 사랑으로 춤을 춘다. 고향 바다는 더 이상 볼 수 없어 춤추는 바다는 다시는 볼 수 없어 이별의 그리움만 쌓인다.
●깨어있는 청해진, 잠들지 않는 신라
청해진이 있는 바다는 어딘가에 불빛이 보인다. 어두컴컴해도 그 불빛은 반짝거린다. 누군가가 불을 밝히기 때문이다. 그 불을 밝힌 사람은 바로 청해진에서 근무를 한 군인과 상업인들이다.
청해진은 항상 깨어있다. 청해진의 리더인 장보고는 항상 깨어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성공하겠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다. 작은 기업이든, 큰 기업이들, 과거에 잘 나갔던 기업이든, 지금도 잘 나가고 있는 기업이든, 기업을 일군 사람들의 제 1 성공 요인은 자신감이다.
장보고는 청해진의 할 일에 대해 이것이 최선인가? 이 일로 신라를 안정 속에 부강할 수 있을까? 다른 나라들과의 왕래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라는 스스로 자신에게 묻는다. 그러면서 항상 깨어있는 장보고, 청해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보고는 청해진이 ‘깨어있으면 세상이 보이고, 잠들면 세상은 보이지 않는다’ 라는 진리를 깨닫고, 깨어있는 청해진을 보여줬다.
잠들지 않는 신라, 신라는 항상 눈을 뜬다.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잠을 들면 세상도 잠이 든다는 신라 먼의 無 수면법을 보이며 떠 있는 눈은 늘 세상 곳곳으로 주시(注視)한다.
“항상 깨어있어라!”
“언제나 잠에 들지 말아라!”
신의 계시(啓示)인양, 장보고는 깨어있는 청해진을 보여줬고, 신라는 잠들지 않는 도시를 보여줬다. 청해진이 깨어있으니, 세상의 모든 것들도 움직임을 보인다. 신라가 잠들지 않으니, 전 세계가 새롭게 다가온다. 신라가 밝힌 불빛에 거리는 밝아지고, 청해진이 깨어나 있어 불안(不安)은 사라진다.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처럼 청해진과 신라는 ‘지킴과 생명(生命)’ 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항상 깨어있어라’ 라는 말은 정산을 바짝 차리고 매사에 신중히 임하라는 주문이며, 즉시적인 행동개시다. ‘언제나 잠에 들지 말아라’ 라는 말은 눈을 감으면 세상이 보이지 않고, 눈을 뜨고 있으면 세상은 늘 그렇게 아름답게 다가온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처럼 ‘주주행동, 군사행동, 무역행동, 정치행동, 문화행동’ 등의 결정 후 행동개시를 보인 청해진과 신라였다. 깨어 있으면 적으로부터 방어(防禦)를 할 수 있고, 잠들지 않는 것은 그 환경이 분주하고, 쉼 없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깨어있는 청해진, 장보고는 늘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늘 깨어있는 장보고의 마인드는 오늘도 새로운 하루다. New Day다. 또 하루가 아니다. 유일무이(唯一無二)하고,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고, 새 도화지이다. 그는 새 하루를 받게 된 걸 감사함으로 기도드리고, 도화지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하루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내일의 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이 생을 뜰지도 모르는 것을... 새 도화지 그리기에 열중해도 모자란 시간이 오늘이다. 깨어있으면 그 시간을 그림으로 채울 것이요, 잠들면 그 도화지에 그림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장보고는 늘 깨어있는 사람이 되자며 의욕도 없이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보다 무엇을 끊임없이 갈망하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더 활력이 있고, 생기가 넘치는 것 같다고 봤다.
장보고는 “앞으로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것들도 너무나 많다” 면서 “오늘의 삶의 공식은 바로 가장 중요한 것은 늘 깨어있는 사람이 되자.” 고 늘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책임감이 부여가 됐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의욕(意慾)이 있다면, 조금씩 움직여 보였다.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주인으로서 당당히 세상을 살펴야 한다고 신라인 그 자체로 매우 귀하고, 가치 있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기를 바랐다.
장보고는 깨어있는 듯한 느낌,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하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조금씩 움직인다면, 삶에 활력도 생기고, 얼굴에 생기도 넘쳐난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좋은 생각들이나 아이디어, 의욕, 의지, 모든 것들은 깨어있는 정신 상태일 때 발생이 된 것 같다며,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면서 삶을 살아가는 의욕(意慾)과 시너지를 더욱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다.
장보고는 청해진은 정신 줄 놓지 않고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늘 상 말해 됐다.
정신 줄 놓지 않고 늘 깨어있는 장보고의 맨탈 갑, 불안과 편안, 높은 산 위에서 아래 내려다보듯, 지혜로 두려움 따위 가볍게 봄, 세상이 다 밝게 보임.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왜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고 하는 사람, 장보고는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라는 말을 좋아했고, 사랑했고, 자주 썼다.
깨어있다-Awake는 뜻은 맑은 정신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순 말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나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장보고는 청해진이 깨어있도록 노력했다.
장보고는 생각이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생각이 깨어있는 장보고는 주변의 흐름 지형도(地形圖)를 바꾸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생각은 꿈을 그릴 수 있고, 또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게 했다. “장보고는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고로 “청해진은 깨어있는 곳입니다” 라고 그는 바다처럼 늘 흘러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꿈을 그렸다.
장보고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그려가는 멋진 사람이었다. 장보고는 늘 깨어있는 사람으로 청해진을 출렁거리게 했다.
장보고는 “위기(危機) 대응과 기회(機會) 포착을 위해 늘 깨어있어야 한다” 고 강조하며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위기에 대응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늘 성실히 준비하는 행동을 바탕으로 내실 있는 청해진이 되자” 고 이 같이 주문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의 성과에 대해 “어려운 과정이 있었기에 그 결과가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며 “지나고 보니 조정이나 귀족들이 적극 지원했다면 타성에 젖어 더 열심히 못했을 것 같다. 직접 투자하고 나서 청해진을 적극적으로 이끌다 보니 오늘의 모습을 만들 수 있었다” 고 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의 성공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며 청해진 직원들은 서로서로에게 끊임없는 칭찬으로 다른 사람의 잠재능력도 개발해주는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랐다. 장보고는 신라 정신을 아는 눈이 열린 사람이 된, 늘 깨어있는 사람이 되자고 했다. 보고 느끼는 삶을 동경(憧憬)하고, 늘 깨어있는 사람이 되길 희망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이라는 한계적(限界的) 사태를 수용하면서 늘 깨어있는 성성존존(成成存存)한 사람으로서, 그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장보고라는 인물 표현은 다양하다
뛰어난 인재는 땅의 신령스러움에서 난다는 ‘인걸지령(人傑地靈)’ , 그게 영암이다., 북두칠성의 남쪽에서 제일가는 사람의 천하에 으뜸가는 훌륭한 인물의 ‘두남일인(斗南一人)’ , 그게 영암 선암이다, 강호에 살면서 큰 뜻을 지니고 있는 ‘호해지사(湖海之士)’ , 그런 곳이 영암이었다, 용이 때를 만나면 물을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듯이 영웅도 때가 되면 세상에 나와 뜻을 펴 대성한 ‘비지중물(非池中物)’ , 영암에서다, 큰 기러기와 고니의 포부가 원대한 큰 인물의 ‘홍곡(鴻鵠)’ , 장보고라고 말하고 싶다. 배를 삼킬 만한 물고기로 큰 인물의 ‘탄주지어(呑舟之漁)’ , 장보고였다. 장수나 재상이 될 만한 인재의 ‘장상지재(將相之材)’ , 그것도 장보고이다. 방패와 성의 나라를 지키는 믿음직한 군대나 인물의 ‘간성(干城)’ , 당나라 무령군과 청해진이다. 마릇대와 들보의 기둥이 될 만한 인물의 ‘동량재(棟梁材)’ , 장보고가 아닌가 한다. 나라의 일을 맡아 다스릴 만한 큰 재주를 가진 ‘경국대재(經國大才)’ , 장보고다. 나라에서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선비의 ‘국사무쌍(國士無雙)’ , 장보고란 사람이다. 세상을 뒤덮을 만큼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의 ‘개세지재(蓋世之才)’ , 장보고가 그렇다. 닭의 무리 가운데서 한 마리의 학인 많은 사람 가운데서 뛰어난 인물의 ‘계군고학(鷄群孤鶴)’ , 장보고이다. 바다에 가득 찰 물고기의 바다를 채울 정도의 훌륭한 인물의 ‘횡해린(橫海鱗)’ , 장보고는 그런 물고기 같았다. 장차 큰일을 할 수 있는 재능 또는 그 사람의 ‘유위지재(有爲之才)’ , 장보고가 보여줬다. 뛰어오르는 교룡과 날아오르는 봉황의 재능이 뛰어난 ‘등교기봉(騰蛟起鳳)’ , 장보고를 두고 말한다. 사리에 밝고 판단에 민첩하며 역량과 재능이 뛰어난 ‘정민강간(精敏强幹)’ , 장보고가 그런 사람이다. 기상이나 위력.재능 따위가 세상을 뒤덮을 만큼 뛰어난 영웅의 ‘개세영웅(蓋世英雄) ’ 으로 볼만한 인물에는 장보고만큼 더 나은 사람은 없다.
●장보고 완도 태생 인식, 그릇된 역사 왜곡
장보고는 단지 그런 조건을 들어서 가장 좋은 위치는 부산도 아닌 목포도 아닌 신안도 아닌 동해 쪽도 아닌 곳인 〈완도〉 를 최적의 선택지로 삼고, 여기에 맑고 드넓은 바다에 진영의 ‘청해진(淸海鎭)’ 이라는 진지를 치고, 안전과 질서, 무역 속에 부강(富强)한 신라를 만들고자 완도에서 살며 그런 일을 했을 뿐인데, 태어난 고장이라고 말하거나, 확대시키거나, 인정해버린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이요. 아주 잘못된 사고요. 그릇된 역사 왜곡과 인식이라고 본다.
장보고가 태어난 곳의 궁성산(弓城山)은 ‘궁복(弓福)’ 이라는 이름을 점지(點指)해줬다. 그런 이름을 더 빛내주기 위해 그는 ‘장보고(張保皐)’ 라는 이름으로 명성(名聲)을 떨쳤다.
장보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꿈을 갖게 해준 것은 활(弓)을 쏘는 군사를 훈련시킨 훈련장이 있는 〈궁성산과 활성산〉 이었음을 다시 한 번 거듭 말해두고자 한다.
●태몽,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꿈
7년간 기도 끝에 귀한 아들을 얻은 장보고는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꿈’ 을 꾸었다고 한다. 이 꿈은 장차 ‘외국에서 출세할 아이가 태어날 꿈’ 으로, 해외에서 성공하여 명성(名聲)을 날리게 될 아이를 얻을 태몽(胎夢)이다.
궁복이라는 이름을 지어줄 만큼 복덩이가 장차 장보고로서 당나라에서 출세를 했다. 장보고는 꿈에 자주 바다와 관련된 꿈을 많이 꾸었다. ‘맑고 푸른 바다를 보는 꿈’ 을 꾸었는데, 이 꿈은 희망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상징하는 데, 인생에 새로운 기회와 밝은 미래가 다가오고 있음을 나타낸 꿈이다. 내면의 평화(平和)와 질서(秩序)를 회복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꿈’ 도 꾸곤 했는데, 이 꿈은 도전(挑戰)과 성취(成就)를 상징한다. 장보고가 새로운 기회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감정적으로 자유로워지고, 내면의 역량을 발휘하는 시기를 나타낸다.
장보고는 ‘바다에서 배를 타는 꿈’ 도 있었다. 이 꿈은 여행(旅行)과 새로운 여정(旅程)을 상징한 것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나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도전적인 상황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비다 속으로 잠수하는 꿈’ 도 꾸었는데, 이 꿈은 탐구(探究)와 깊은 자기 성찰(省察)을 상징한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나타낸다.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나 통찰을 얻는 기회를 암시한다.
창의성과 소망을 상징한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만드는 꿈’ 도 꾸었고, 목표나 욕망이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의미한 ‘바다 속에서 큰 물고기를 만나는 꿈’ , 새로운 기회나 독립적인 공간을 상징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을 발견하는 꿈’ , 희망과 기쁨, 그리고 좋은 소식을 상징한 ‘바다 위로 무지개가 나타나는 꿈’ , 자유와 높은 성취를 상징하고 새로운 시야를 가지게 될 가능성을 의미한 ‘바다 위로 날아가는 꿈’ , 인생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상징한 ‘깊고 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꿈’ 을 꾸었다.
장보고가 새로운 기회와 모험을 했는데, 〈바다로 큰 배가 떠나가는 꿈〉 을 꾼 뒤, 해양무역으로 그런 일을 해됐다. 또 〈바다에서 고래를 보는 꿈〉 을 꾸었는데, 강력한 지원과 내면의 힘을 갖게 했다. 조정에서 지원을 받거나 적극 힘을 실어준 게 고래를 본 꿈을 꾸어서 그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지평선을 보는 꿈’ 으로 장보고는 무한한 가능성과 새로운 목표를 세우며 나아가는 등의 현재의 한계를 넘어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려는 열망을 갖게 했다. 그는 바다에서 누군가를 구조하는 꿈을 꾸었기에 누군가를 구조하는 등 도움과 협력을 했다. 그는 ‘바다로 뛰어드는 꿈’ 도 꾸며, 변화를 두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열망을 불태웠다. 그는 ‘바다 위를 걷는 꿈’ 도 꾸었는데, 강력한 자신감과 안정감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갔다.
장보고가 청해진대서로 있으면서 국제자유무역항을 통한 해양무역으로 성공과 큰 명성을 떨쳤는데, 이것은 〈바다에서 섬으로 건너가는 꿈〉 을 자주 꾸어서 그랬을 것 같다. 그는 새로운 목표를 향한 도전을 했으며, 자신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성공적으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장보고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었던 것은 ‘바다 속에서 숨을 쉬는 꿈’ 을 꾸었기에 그랬으며, 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내면의 평정을 유지했다. 현재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준비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꿈이었기에 그는 도전에 두려워하질 않았다.
장보고의 〈제왕의 꿈, 신라의 꿈〉 은 실제 일어난 일로써, 그가 꿈꾸는 대로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 다만 그가 간절히 바랐던 자신의 딸이 왕비가 되는 일은 허망한 꿈으로 남았다.
〈지평선 위로 해가 떠오른 꿈〉 ,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지평선을 보는 꿈〉 ,〈바다에서 섬으로 건너가는 꿈〉 , 〈바다로 큰 배가 떠나가는 꿈〉 이 꿈이 길몽(吉夢)으로써 장보고를 훌륭한 인물로 탄생하게 했다.
●장보고에게 길을 열어준 영암 선암, 그리고 이어진 길
꿈의 길, 희망의 길, 미래의 길 여러 길을 튼 장보고, 그는 영암 선암마을에서 궁했지만 복이 많은 아이로서 궁복(弓福)으로 태어나 신라의 미래의 길을 여는 ‘궁하면 열린다. 복하면 펼쳐진다’ 라는 자신의 이름을 빗대면서 그는 자신이 태어난 마을 도로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그는 고향을 떠났다.
어디로, 어느 곳으로, 어떻게 마을 앞 부두역할을 한 국두암이라는 너럭바위에서 배를 타고 당나라 서주로 갔다. 군인으로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23년간 당나라에 머물면서 무령군 소장으로서 명성을 떨치며 자신의 길을 열었다.
그 길은 영암 선암 ‘궁복의 길’ 에서 당나라 서주 〈장보고의 길〉 을 새로 만들었다. 선암의 길이 꿈의 길이었다면, 서주의 길은 ‘희망의 길’ 이었다. 꿈의 길→희망의 길은 다시 신라가 낳는 완도 〈청해진의 길〉 을 놓았다. 이 길을 통해 더 뻗어갈 수 있게 〈해양의 길〉 을 개척했다. 해양의 길은 〈Global Road-세계적인 길〉 이었다.
이런 길을 개척한 장보고, 그에 대한 길(road, path, way)을 활용한 역사와 전통의 미래 도약의 연결의 ‘1000년 장보고 새로운 길’ , 국내와 연결과 글로벌 비전의 ‘장보고 Global New Way’ , 걷기 자연문화 체험의 즐거움의 ‘걷.길.바람’ , 포용.평등.공동체의 ‘함께하는 길, 평등으로 향하는 길’ 등의 장보고 로드를 곳곳에 두었다.
길을 확장해 ‘여정-Journey, 연결-Connect, 발견-Discovery’ 를 설치해 함께 가는 길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 길은 ‘경험으로 묶어 걷는 길 바람처럼’ 이라는 감각적 요소로 더해 기억에 남게 했다.
이런 장보고가 걸었던 길을 걸면서 역사를 알고 문화의 곷을 피우는 일을 해보는, 이런 길을 통한 즐거움, 위로, 치유, 건강 등을 나는 길이 되게 하자.
장보고의 길 걷기 축제가 대한민국의 대표관관광지로서 영암과 완도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데, 이바지하자.
그 길을 걸면서 궁복.궁파.장보고에 대한 한 인물을 되새겨보는 역사의 길, 문화의 길, 그리고 미래의 길로 ‘개척의 선구자 장보고의 길 걷다’ 슬로건 아래 장보고 순례(巡禮)에 나서보자. 개척의 선구자 장보고의 길 걷다에 순례단(巡禮團)을 구성해 장보고의 생애와 세계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며, 신라천년의 대장정을 도보로 걸어보고 배로 건너보자. 걷기 순례가 곧 수행이라며 장보고의 정신사상, 그리고 미래관의 핵심 가르침인 〈세상을 깨우다. 세상에 미치다〉 이루기를 발원하고자 여러 사람의 지혜, 중지(衆智)를 모아보자.
왜 구지라고 할 수 있지만, 궁복이 선암에서 걸었던 길, 그 길에서 꿈동이로 성장하여, 그는 당나라에 가서도 희망동이로 커가면서 완도 청해진에서 미래동이의 성인으로 성공가도를 걸었던 장보고의 길을 걷는 이유를 스스로 혹은 다른 이들로부터 “왜 걷는가?” 하는 질문을 수없이 받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역사의 숨결을 찾아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려 한다. 그래서 장보고의 발자취 존중을 위해 걷는다는 발원(發願)을 하며, 장보가 놓았던 그 길을 순례에 나서보려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평화(平和)와 자비(慈悲) 속에서 살아가기를 기원하는 것이 곧 장보고의 뜻이며, 순례의 처음부터 끝은 〈장보고존중〉 에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이런 점을 볼 때, 장보고가 걸었던 길을 우리가 다시 그 길을 ‘걷.길.바람’ 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한민국 발전과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임하도록 정부의 지원과 국민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장보고의 국제적인 동맹
장보고는 해양무역으로 글로벌 표준화(標準化)-Standardization으로 무역을 선점했다. 그는 중계무역이라는 새로운 무역지도를 그리고 무역 선점에 나섰다. 그는 신라.당.일본.동남아 등과 중계무역 컨소시엄 킥오프 행사를 열어 국제무역 시대를 겨냥한 차세대 해양로 개척과 무역항의 글로벌 표준화를 발표하면서 신라+당+일본+동남아와 함께 해양무역을 업계 표준으로 마련해 무역생태계 전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대한민국의 보고(寶庫), 장보고
장보고는 대한민국의 ‘보고(寶庫)’ 입니다. 보고(保皐)라는 이름은 ‘어짊이 있는 귀중한 존재’ 입니다. 김대호 기자의 ‘바다를 제패한 해상왕 장보고의 생애...그 탄생신화의 비밀을 밝히다’ 글은 그가 태어난 곳, 선암(仙岩).선암(船岩)의 보고(報告)인 것을...
●마무리
장보고의 탄생 설, 설화를 실화(實話)처럼 과장됐다고 보고 싶지 않습니다. 고증에 입각한 저의 소신껏 쓴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장보고는 〈영암 사람〉 이라는 게, 이것만은 주장하고 싶습니다.
장보고는 영암이 낳은 장한 아들
장보고는 단순한 혁신가 개척가가 아닙니다. 그는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장보고, 그 위대한 이름으로 그는 보고청해진, 보고해군함, 보고안보선, 보고무역선, 보고여객선 등 청해진을 통해 여러 배를 운영하며 신라를 더 안전하고 튼튼하게 했습니다.
장보고는 대한민국의 보고이자, 세계의 인물입니다. 그는 알다시피 해양무역을 개척한 시대를 앞선 선구자입니다. 1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의 가슴에 남아있고, 그가 바다인생이었듯이 지금도 파도로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영암 월출산 구정봉 큰바위얼굴은 네 분의 위인(偉人)이 탄생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일찍이 세분의 성현(聖賢)이 월출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그 세분이란 왕인박사, 장보고, 도선국사다. 왕인박사는 글로벌 문화 창달의 선구자이고, 장보고는 해상무역의 국제자유무역 개척자이고, 도선국사는 새로운 왕조 탄생의 멘토였다.
장보고의 삶의 과정
《영암 선암→당나라 서주→완도 청해진》
장보고의 삶의 과정과 활동 무대를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정보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건강한 삶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건승을 빕니다.
이상, 오늘 하루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장보고 대서사시 8편
김대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