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흘산을 비롯한 여러 험준한 산들을 뒷 배경으로 자리 잡았던 문경은 도로망의 발달과
급속한 산업화에 발 맞추어 일찌거니 도시의 중심지를 사통팔달한 지금의 점촌으로 옮겨
버렸기 때문에 현재의 문경읍은 문경새재가 아니면 아는 이도 찾는 이도 별로 없는 쇠락한
읍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문경읍은 일제 시절 고 박 정희 대통령께서 대구사범을 졸업하시고 한동안 교편을
잡았던 곳이며 문경 가은읍은 후백제 견 훤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금은 명맥도 없지만 한동안 이곳은 석탄 산업이 매우 활달하여 문경이라고 하면 시커먼
석탄만을 떠 올리지만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숨겨 놓은 보물같은 존재가 있는데 그거이
바로 막사발이다.
막국수,막장,막된장 그리고 막걸리를 비롯하여 접두사로 막짜가 들러 붙으면 값어치가
별로 없는 거친 존재가 틀림 없을진대 막사발이 어째서 보물같은 대접을?
막사발은 거친 백토로 만든 보기에도 막스럽게 생긴 일종의 찻잔이다.
과거 영.호남사람들이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길은 세갈래 였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지나 가는
추풍령과 문경의 조령 그리고 소백산맥을 건너는 죽령인데 선비들이 한양에서 급제를
하였을 경우에 우선 하인들이 제일 먼저 고향으로 달려 내려가 이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는데
한양에서 영남으로 가장 먼저 당도하는 곳이 이곳이고 이곳에서 그 경사스런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을 수가 있다고 하여 만들어진 지명이 바로 문경(聞慶)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 하였을 때도 이미 사전에 조선의 지형과 도로망을 샅샅이
정탐했었던 왜구들의 주 공격로도 바로 이 세개의 령이 였었고 중앙에서 지휘 임무를
맡고 내려 온 신 립 장군은 일당백을 할 수가 있다는 천혜의 자연 요새인 조령에서의
방어를 포기하고 조령을 지난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으나
전투다운 전투도 벌려 보지 못하고 탄금대로 뛰어 드는 처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데
신 립 장군이 천혜의 조령을 버린 이유가 과연? 유능한 장수였던 신 립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수비를 할 병졸도 몇 명 되지 않고 그나마 몇 명 있는 병졸들도 조련이 되지 않아
왜구의 조총 소리 한방에 도망갈 궁리만 했었기 때문에 도망을 갈 수가 없이 패배하면
죽음 밖에 없는 배수진을 선택 하였다고 하지만 조총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왜구들을 향해
무모한 기마전을 시도 했었던 걸로 미루어 신 립 장군은 아무래도... 각설하고
나무로 만든 목기만을 사용하던 왜구들이 문경에 와서 처음으로 막사발을 보곤 뼝 가 버린다.
당근 막사발과 이를 만드는 도공들을 납치하여 일본으로 데려 갔었는데 막사발은 청자나
백자 아니면 분청사기 처럼 극치의 완성미가 없이 우선 보기에도 투박한데 세월이 바뀌다
보니 이 투박함에서 또 다른 어떤 미가 추구된다는 것이다. 흔히들 하는 말로
일본놈들이 입는 기모노는 우리가 장례 때 착용하는 상복을 전수해 준 것이며 머리에 쓰는
두건(hood)는 우리의 버선을 머리에 씌워 주었다면서 왜놈들을 비하하기도 하지만 조선에서
푸대접을 받던 막사발에 대한 일본인들의 깊은 심미안은 우리가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문경 부봉을 향하는 느림보 산악회에 일찌거니 방부를 드려 놓았던 것은 남 모를
사유가 분명 있었다. 흐 흐
가마솥 부(釜)짜를 쓰는 부봉은 내 비록 올라 가 보진 못했지만 밑에서 몇 번 쳐다 본 적은
있었다. 보나 마나 로푸 잡고 오르 내리는 암봉이 즐비할 것이다.
옛말에 환과고독이란 말이 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동정을 받아야 할 서러븐 존재들로 이중
가장 먼저 나오는 환(鰥)이 바로 호로애비 환짜다. 늙은 숫사자처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인데 모계 아니 여성 사회가 되다 보니 절믄 남자들도 어머니나 예팬네 치마폭을
벗어 나질 못한다고 한다.
사람의 경우에는 구래도 양호한 편이다. 당랑거철로 유명한 사마귀는 체격도 암놈 보다
왜소한 숫컷이 어렵게 어렵게 후배위 공격에 성공하여 한참 재미를 그 순간에 고개를 뒤로
돌린 숭칙한 암놈의 기계톱 같은 주둥이에 대가리 부터 바삭 바삭 씹히기 시작하는데
이 너무 자슥이 구래도 숫컷이라꼬 대가리가 다 날아 가는 그 지경에도 아랫도리 피스톤
운동은 계속 한다는 것이고 요즘은 자연 환경 문제 때문에 내 놓고 팔지는 않지만 오래 전
설악산 오색 약수터 앞에 있는 매점에서 빠게츠에 그득 들은 겨울 개구리가 있어 한마리에
얼마씩 받냐고 하니 주인장 왈. 숫놈은 금(값)도 업써요
구러면 공짜로 주시느거냐고 물으니 암놈 개구리 한마리 사면 숫놈 깨구리(와군)를 다섯
마리나 끼워서 덤으로 준다는 것이고 내 고향 안동땅에선
허우대 멀쩡하게 해서 동네 돌아 댕기면서 한량 노릇이나 하는 인간을 내려다 보면서 말을
할 적에 저 놈 장닭 붕알 같은 놈이란 것이다. 그리고
온 동네 휘 젓고 다니면서 허장성세를 부리며 건들 건들 거리는 인간을 향해선 느림보
벗님들도 잘들 아시는 짜아식 쑷개 젓자랑 하고 다니네 인데 이 젓에 대해서 가장 푸대접을
받는 존재는 홍어가 가장 으뜸이다. 만만한게 홍어좆이란 말은
어부가 홍어를 잡아 올리는데 숫홍어는 크기와 맛에서 별 볼 일이 없기 때문에 금이 나가질
않는다 구래서 암홍어가 잘 잡히질 않으면 칼로 아랫배에 붙어 있는 우람한 숫홍어의 좆을
칼로 댕강 잘라 버리곤 암홍어로 둔갑을 시켜 버리기 때문에 만만한 홍어젓이 되었고
홍어와 약간은 비슷하게 생긴, 아구찜을 해 먹는 아구는 구래도 양반이져, 배에 올라 오면
무겁기만 하고 돈도 되질 않아 잡는 즉시 바다로 텀벙 텀벙 던져 버리기 때문에 서해안
지방에선 홍어를 물텀벙이 라고 하고 으 으 음 오래 전에는 상당히 촉망 받는 직업이
있었는데 이거이 바로 병아리 감별사란 것이다.
숫벌이나 숫개미 처럼 빌 볼 일이 없는 장닭을 골라 내는 이 병아리 감별사는 우선 손끝이
예민하게 발달 하여야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부봉 산행을 앞둔 며칠 전 부터 병아리 감별사 흉내를 내어 동네 철물점에서 사 온 보드라운
삿포(sand paper)로 손끝에 있는 각질을 섬세하게 제거하곤 예폔네가 아끼는 핸드 크림을
듬뿍 듬뿍 발라 주면서 결전의 그 날을 고대하면서 마구 들썩이는 내 심장을 진정 시키느라 무쟌 고생을 했었다.
문경 새재 옛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화원에서 본격적인 산행로가 시작되어 다래 줄기가
마치 쥬라기 공원을 연상시키는 상큼한 계곡 길을 한참을 오르니 능선길이 시작되는 동암문이
나온다.
암(暗)문은 문루를 만들지 않아 적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아군들이 비밀리에 드나 드는 비상
출입구인데 여타 성벽들 처럼 초췌한 모습으로 이리 굴르고 저리 굴르고 있었다.
적들의 침입이 얼마나 가혹하고 모질었으면 이리도 높은 곳에 저리도 든든한 방벽을 만드느라
우리 선조들이 피눈물을 흘렸을 까를 생각하며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벌어 질 부봉을 향해
거친 숨사위를 고르며 질풍같은 등반길을 재촉해 본다. 허나
죽을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부봉엘 도착하였으나 결론은 버킹검 이였다. 이미 고기는
죄 그물을 빠져 나간 상태이고 죄송하지만 맹물 두 사발만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염 고문님과 고옹 고문님.
어떤 이는 말하길 산엘 오래 다니다 보면 마운틴 오르가즘이란 걸 느낀다고 하는데 난 안즉
구런 수준은 아니지만 암릉 잔재미란 건 잘 알고 있다.
로푸 구간에서 어마 어마 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여성 횐님들 히푸를 뒤에서 밀어 주고
혹은 하산 구간에선 밑에서 죽치고 있다간 정면으로 제대로 안아 볼 수가 있는 암릉
잔재미 쬼 볼려고 삿포질에 핸드 크림 바른 손에 장갑도 끼질 않고 험한 부봉을 올랐건만
전어나 밴댕이 보다 더 빠른 느림보 여성 횐님들은 콧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마지막 6봉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우리 미모의 느림보 여성 횐님들은 이미 저만큼이나
앞서서 하산길을 재촉하고 있다. 생침을 꼴까닥이곤 후일을 기약하며 앙 하고 어금니를
물어 본다.
제3관문을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 오니 전 사장님의 느림보 리무진이 음전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하루 비록 전어나 밴댕이 낚시질엔 실패를 했지만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을 영원토록
퍼질러 앉고만 싶은 순간들의 연속 이였다.
우리 느림보 산악회는 참으로 괜찮은 선남선녀들이 모여서 너무도 보람있는 산행을 하는
곳이다. 소중한 인연을 맺어 주신 제산 신령님들께 다시 한번 더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이만
분당 탄천변에서 약삥아리 감별사 돌삐 드립니다.
첫댓글 누가 노치라고 했나
전어나 밴댕이 빠져나갔다고 맹물이라니!!!
썩어도 준치라고 나는 아직도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는데
괜히 나한테 맹물이라니~~ ㅎㅎㅎ
부봉을 오르신 돌삐님의 입담에 고개를 절레절레..ㅋㅋㅋㅋ
놓친고기 아쉬워 마시고 주변 고기들 귀하게 여기시길..ㄹㄹ
두분 역전 노장들께 감사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시면 어째요..ㅎ
이미 다 이해해주실거란 생각입니다만..ㅎ
이 가을 자주 만나지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돌삐님의 이 글을 보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가 아내로 부터 핀잔을 들었습니다.^^
하여간 대단한 필력이시고 "낭중지추"라고 느림보의 이 좁은 울타리에 계시기엔 너무나 그 재주가 아까우신 분이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강대장님이 이 표현에 조금은 섭섭하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