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느헤미야 13장 28절 말씀)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말씀, 성례, 권징입니다. 개신교는 말씀을 매우 강조합니다. 반면에 천주교에서는 성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가장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권징입니다. 권징이란 교회 안에서 잘못된 것을 경계하고 바로잡는 행위입니다. 지금 느헤미야가 제사장의 손자를 쫓아내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느헤미야가 제사장의 손자를 쫓아내는 극단적인 처방을 한 것은 일벌백계의 모습으로 공동체에 엄중하게 경고하고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의 거룩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런 잣대는 지도자에게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권징을 행하는 목적은 이와같이 다른 신자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하여 공동체에 악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회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교회 내의 죄악을 그대로 방치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모독을 당하게 됩니다.
동시에 권징은 그 대상을 진정으로 사랑함으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바른 권징에는 미움, 보복심과 같은 것들이 끼어들 수 없습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을 가면 사랑의 매를 드는 것이 부모의 올바른 태도인 것과 같이 지체가 죄악의 길로 가면 그를 돌이키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지 않습니까. '좋은게 좋은것'이라는 태도는 오히려 형제와 교회를 멸망의 길로 방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에서는 권징이 힘을 잃고 있습니다. 죄를 저질러 놓고도 그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죄를 고백하고 돌이켜야 하는데도 반항하고 오히려 교회를 공격합니다. 더 쉬운 방법으로 그냥 교회를 옮겨버리기도 합니다. 징계를 받은 교회전체가 그냥 쉽게 소속을 옮기거나 새로운 단체를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목회자가 권징의 대상인 경우 쉬쉬하며 덮으려고 하거나 솜방망이 처벌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신다'고 설교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죄인까지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우리를 회개와 자숙으로 이끕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는 태도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죄악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때로는 아픈 마음으로 징계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징계를 달게 받아들이며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 회개하고 자숙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