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곤히 잠든 아이들과 아내를 깨우느라 부산피웠다. 퀭한 눈을 뜬 아내는 좀더 자고 싶었는지 우물거리는 표정이 심드렁해보였다. 오히려 아이들이 먼저 선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편다.
부지런히 여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장화와 장갑을 챙기고 호미와 조개 캐는 삼발이도 꾸렸다. 오늘 우리가 조개 캐러 가려고 하는 곳은 무창포 옆에 있는 독산해수욕장이다. 무창포가 모세의 기적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반면 그 옆에 있는 독산해수욕장은 아직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아 한산했고 조각달같은 섬이 웅숭그리는 모습이 고향 시골같은 정겨움이 묻어있으며
사람의 손이 덜탄 것만큼 조개와 맛도 풍부한 터라 나는 붐비는 무창포보다도 함초롬한 독산을 더 즐겨 찾는다.
오늘은 어패류중의 하나인 맛조개를 잡으러 가는 날이다. 갓 잡은 맛은 숯불에 구워서 초장에 찍어 안주삼아 먹어도 일품이고, 국을 끓여도 담백한 맛이 끝내 준다. 독산에서 맛 잡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호미로 개펄을 파헤치다 보면 맛이 들어가 사는 숭숭한 구멍이 나온다. 거기에다가 맛소금 몇 점 뿌려주면 처음에는 더듬이를 내보이면서 두리번거리던 맛이 종국에는 하늘을 향해 박차고 튀어나와 고개를 내민다. 그때 맛을 손으로 거머쥐기만 하면 게임은 끝나는 것이다.
집을 나선 것은 아침 7시 50분이었다. 아직 겨울 하늘가에는 마지막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남색 벙거지를 앞으로 푹 눌러쓴 채 철저하게 겨울을 무장하고 있었는데 흡사 눈사람같기도 하였고 에스키모인 같기도 하였다.
차는 한적한 국도를 매끈하게 빠져나갔다. 고도(古都)인 공주를 지나서 3,000궁녀의 숨결이 숨어있는 부여의 백마강을 달렸다. 바닷물때가 10시니까 제법 여유도 있다 싶었는데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이 복병은 언제나 생퉁한데 숨어있는 법이다.
부여를 지나서 서천가는 이정표가 나오길래 그쪽으로 달리다보면 좀더 빠를까 싶어서 접어들었는데 웬걸 보령댐을 지나서 춘장대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간의 여유로움만 있으면 제법 호젓한 보령 호반을 운치삼아 펼쳐도 좋으련만 조개잡이를 위해 바다의 물때에 맞추려다 보니 어룽거리는 겨울강가를 뒤로한채 부지런히 달려야만 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가로질러서 한참을 들어서자 마침내 오른편으로 무창포가는 이정표와 왼편으로 독산해수욕장 가는 이정표가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는 비포장도로인 오롯한 마을 어귀를 지나서 마침내 독산해수욕장에 당도했다.
작년 여름철만해도 제법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법한 해수욕장이건만 철지난 바닷가에는 인적이 끊기면서 적요함만이 감돌고 있었고 썰물이 찾아든 바닷가에는 망망한 개펄이 아스라히 펼쳐져 있었으며 하늘가에는 갈매기 몇마리만이 낮게 선회하고 있었다.
우리는 민박집을 들렀다. 작년 봄에 들렸던 민박집이었다. 주인장인 반백 노인네가 내온 귤 몇개를 까먹으면서 지난 여름의 조개잡던 기억을 곱씹었다. 그런데 그 노인네의 말에 의하면 작년 봄 그렇게 많았던 조개들이 가을이 들면서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나는 믿기지 않았다. 지난 봄에 조개들이 마치 자갈처럼 널려 있었는데 어찌 자취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인지. 지난 봄 우리는 잠간사이에 사이에 양동이 하나 가득 조개를 잡았었는데 그 많던 조개가 하나도 없다면 그 조개는 어디로 갔을까. 지난 여름의 유난한 무더위 탓이었을까. 아니면 조개가 많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관광차로 실어나른 향락객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꾸 문명화 되어가면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에 대한 이제는 자연의 경종이나 준엄한 응징이었을까.
우리는 어구를 챙겨들고 개펄에 들어갔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삽을 이용하여 물꼬를 튼후 개펄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맛이 사는 집굴을 발견하고 소금 몇점 뿌렸더니 맛은 세상을 향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아이들은 마냥 신기해 환호성을 지르며 깡총깡총 뛰었다.
한동안 삽질과 삼발이질로 개펄을 파헤치자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어룽졌다. 조금 쉴 요량으로 옆에 호젓한 갯바위켠으로 다가갔다. 겸사겸사 바닷고동을 따기 위해서였다. 바닷고동은 어른 엄지크기 정도로서 딱히 골뱅이를 축소해놓은 것과 유사한데 삶아서 이쑤시개로 빼 먹으면 참 감칠 맛난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고동따는 나를 보고 의아해 했다. 뭐 할려고 그것을 따냐는 식의 도통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이었다. 경남 사천에서 살았을 때 대접 하나 가득 담은 바닷고동을 시장에서 제법 비싸게 팔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맛과 개불을 잡거나 굴을 따는데만 열중할 뿐, 바닷고동 따위에는 별루 관심을 두지 않는 눈치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갯바위 밑에서 웅숭히 붙어있는 고동들 부지런히 땄다.
그런데 그옆에서 맛 잡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소금으로 맛을 잡는 것이 아니라 쇠꼬챙이를 이용하여 맛을 잡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의 예리한 손놀림은 저절로 혀를 내두르게 했다. 한손으로는 연신 개펄을 파헤치다가 다른 한손의 꼬챙이로는 날렵하게 맛을 건져올리는데 그 예의 주도면밀한 솜씨는 신기하다 못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벌써 그 할머니가 잡은 맛은 다라로 하나 가득 넘실거렸다. 그 할머니가 사용하는 쇠꼬챙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맨끝이 예리한 갈고리로 되어있었다. 거기에 한번 걸려든 맛은 속수무책으로 코가 꿰어 따라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는 쇠꼬챙이로 맛을 잡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맛잡는 속도도 맛소금을 이용하여 잡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정도 빨랐다. 나는 그 할머니의 광주리에 쇠꼬챙이가 하나가 더 있길래 잠시만 빌려달라고 양해를 구한후 직접 꼬챙이로 맛을 잡아보았는데 아주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금세 한움큼을 잡았다. 아내가 쇠꼬챙이로 맛잡는 사람들을 멀거니 바라보더니 우리도 하나 살걸 하는 표정에는 부러움과 아쉬움도 배어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맛소금도 떨어지고 허기도 지길래 개펄에서 나왔다. 우리가 잡은 맛은 큰 바가지로 하나 가득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작년 가을에 들렸던 음식점에서 석화구이와 해물칼국수로 허기를 면했다.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벌써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집에와서 전자렌지에 돌려서 갓 잡은 맛을 초고추장에 찍어먹기도 하였고, 시원하게 국도 끓여먹었다. 그런데 유난히 뻘이 씹히는 맛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 맛살안에는 온 몸에 흐물흐물 짓이겨져 있었다. 그것들은 다름아닌 꼬챙이로 잡아 올린 것들이었다.. 예리한 갈고리로 사정없이 온 몸을 들쑤셔 놓았으니 그 안에 생채기를 입고 뻘이 들어간 것도 당연한 부산물이리라.
우리는 얼른 마음을 고쳐먹고 꼬챙이로 잡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역시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을 이용하여 잡는 것이 한결 낫구나 하는 이야기와 함께 저녁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