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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뉴욕에 엄청 눈 내린 다음 날
경인 호랑이 해에는..
불자로서 부처님의 바르게 접하는 것은 욕심이라 하기 어려운 욕심이라고 봅니다.
하여 부처님의 숨결이 눈에 잡힐 듯 스며있다는 <잡아함경>을 펼치게 되는데..
"색(色, 물질)은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正觀]이니라...
주머닛돈은 아주 쉽게 그리고 컴이나 책상까지는 생(주이)멸 한다는 게 그래도 관찰이 되지만..
동해물이나 백두산이 생멸한다는 것은 잘 관찰이 되지 아니 합니다.
그러니 첨부터 <경> 내용은 잡힐 듯 그러나 잡히지 않는 따오기 같습니다..^^..
무상이란 무엇인가??..
하여 먼저 항상하지 않고 변한다는 무상(無常)과 관련된 [제행무상게(諸行無常偈)]를 보면..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모든 행이 무상하니 이는 생멸하는 법이요,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생멸하는 법을 멸하면 적멸하여 즐거우리라.
이것을 보통
제행무상(諸行無常)...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엇이든 한결 같음이 없도다.
시생멸법(是生滅法)...이것이 바로 생멸하는 일체 속에 내재해 있는 법.
생멸멸이(生滅滅已)...그러므로 생멸하는 것을 멸해 버린다면
적멸위락(寂滅爲樂)...고요하고 고요한 진정한 열반의 즐거움을 얻으리라.
라고 가르칩니다.
해석의 내용은.. 무상을 멸하면(生滅滅已) 열반을 성취한다(寂滅爲樂)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행무상게(諸行無常偈)]는 과연 그런 뜻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에서 보이듯.. ‘색(色) 무상하다고 관찰하라’하셨는데..
그 뜻은 색(色)을 멸하라는 것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제행무상게(諸行無常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겁니까?..()..
첫댓글 글자만을 얼핏 보아서는 무명에 의한 행이 없어지면 열반을 얻을 수 있다, 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색이 무상하다고 관찰하는 방법은 우리가 색을 인식하는 방법인 안입처를 통해서는 절대 관찰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색이 저 바깥에 실재하는 색이라고 여긴다면요.
따라서 색이 무엇인지 또 색 무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관찰로 번역된 觀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하얀 눈이나, 컴, 책상 등은 무상하다고 아는 게 어렵지 않지요..^^..
문제는 동해물이나 백두산이 과연 무상한지 보고 있느냐?.. 더 나아가 저 태양이 ,우주가 무상하다고 보고 있느냐??.. 가 아닙니까???..
한문은 소리글자가 아닌 뜻글자라고 하지요?.. 그래서인지. .한문은 글자 뜻만 해석하는 게 아닌 문장의 뜻을 새겨야 하는 가 봅니다.^^..
색을 무상하다 관하는 것은, ,색은 고정되어 있지 않은, 변하는 것임을 확인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변하는 것은 생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구요.
[제행무상계]에 보이지 않는 뜻이 苦입니다.
苦를 염두에 둠 없이 이해하려면 혼란이 생깁니다.
만일 苦가 없거나,.. 苦를 모른다면.. 부처님께서는 결코 무상을 강조하지도 설하지도 않으셨으리라 봅니다.
인생을 모르는 곧 苦를 모르는 젊은이에게 무상이란.. 씹다 버린 껌보다도 더 가치가 없는 말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 苦가 무엇인지 알고.. 그런 苦를 없애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생길 때.. 무상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일체를 고라고 가르치는 허무주의 종교라고 말하는 지식인은..
苦를 아직도 자기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유치하고 허접한 지식인이라고 광고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생멸에서 포인트는 멸이 아닙니다. 멸이 되면 미련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생겨 머물고 있다는 것이 대상이지요.
그리고 생긴 것은 당연히 멸할겁니다. 헤서 생멸을 본다는 것은 생겨 있는 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생겨 있는 게 苦라고 합니다.
생멸이 고가 아니라 생겨 있는 게 고라는 겁니다.
무상이 고가 아니라 무상을 거부하고 있기에 고가 되는 겁니다.
해서 생멸한다는 것을 거부하는 마음을 멸하면.. 곧 생멸법을 멸하면
그것이 열반이라는 것이지요.(寂滅爲樂)
질문 가운데 동해물과 백두산이 나오는데.. 그것들이 무상한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지금까지 진행해온 설명과는 다른 관점에서 설명이 됩니다.
그리고 쉽지 않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눈[眼]이 무상한 것이요, 빛깔[色], 안식(眼識), 안촉(眼觸)과 안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受],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또한 무상한 것이다. 귀·코·혀·몸·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195. 무상경>
일단 여기서 눈이 무상하다고 한 것은 안입처가 무상하다는 말이 되겠지요? 안입처는 당연히 무상할 것 같습니다. 색이 무상하다는 것은 색입처가 무상하다는 말이 될 것이구요. 그 후의 식, 촉연수 등이 무상한 것은 그래서 당연한 것 같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과 이것을 연결해서 생각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것(一切)은 12처에 포섭된다고 했습니다.
이때 12처는 (안과 색),(이와 성),..(의와 법)입처를 의미 합니다.
그러니까 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6근과 6경이 아닌 6내외입처이며,
6내외입처에 의해 생기는 6식, 6촉, 6수를 의미 합니다.
만일 6근과 관계없이 놓여있는 6경인 백두산이나 동해물이 무상하다고 하면..
당장 당신이 그것이 생기고 멸하는 것을 보았느냐?.. 는 반문에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 상황은 만동자가 세상은 영원한가 아니면 무상한가?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그처럼 부처님께서 무상하다고 하는 것은.. 6근경이 아닌..
6내외입처이며, 6내외입처에 의해 생기는 것들 임을 잘 보셔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무상하다는 동해물과 백두산은 6내외입처에 의해 생긴 것으로..
6경인 동해물과 백두산이 아니라는 뜻인데..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