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컴퓨터량 - 10시간 이상.
- 즉석으로 단편소설 하나, 주제는 [사람] 입니다. 넵!
- 자신이 지금 연재하고 있거나 완결난 제목과 어디에 있는지 적기
완결난 소설로는 [여우야, 늑대 잡으러 가자.] [삼류소설]이 있구요.
[사악소녀 교사일기]는 출간되어 삭제되었습니다.
연재중인 소설은 꽃잎소설(2)에 [주인님, 우리 주인님]을 연재중이구요.
단편 나갑니다.(_ _)
## 우산(umbrella) ##
- 알려주지 못했던 사람과 알지 못했던 사람의 사랑 이야기.
새벽에 핸드폰이 울렸다.
누군지 참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알지 못하는 번호였기에 받을까, 말까 잠시 망설이는 동안
끊어진 전화는 다시 또 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전화를 받았다.
[미진씨 핸드폰인가요?]
중년을 넘어선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간의 슬픔이 담겨있는 듯한 목소리에 난 조금 긴장을 했다.
[네, 그런데요.]
[서준이 엄마랍니다.]
[아, 네에.]
서준이.... 서준이에 대해 잠시 떠올려봤다.
서준이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다.
친구? 글쎄.. 친구라고 하기에도 뭔가 조금 묘한 관계였기 때문에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다.
서준이는 한 쪽 눈이 찌를 정도로 앞머리를 길게 기르고,
차가운 표정을 잘 짓던 아이였다.
그래서 애들이 서준이를 무서워했던 것 같다.
서준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수화기를 타고
서준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내일이 서준이 삼일장 마지막 날이랍니다.
오실 수 있다면 오시라고 알려드리는 거예요.]
삼일장....?
난 순간 내가 삼일장과 백일장을 헷갈렸다는 걸 깨닫고는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어 아주머니께 물었다.
[삼일장이요?]
[네. 장례식장은........]
장례식장을 알려준 서준이 어머니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삼일장...
서준이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100년도 더 살 것처럼 행동하던 서준이가....
아침에 정신을 차려보니 난 검은 옷을 입고
서준이의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슬프다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다.
난 그저 서준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있었다.
서준이를 만나지 않은지는 벌써 2년에 가까워온다.
기억이 나지 않을만 하면 찾아와서 내 머리에 자기의
존재에 대해서 꼭꼭 기억시켜 놓고 사라지던 서준이는
이번에도 역시 이런 식으로 내게 찾아와
내가 잊어버릴 뻔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각인시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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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정말 장난 아니라니까...]
[으응..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 무서운 애가
아닐지도 모르잖아.]
[아니, 아니. 걘 여자한테도 가차없다구.]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전학을 간 첫 날,
아이들은 내 짝인 서준이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둡고, 차갑고, 무서운 녀석..
그게 서준이에 대한 아이들의 정의였다.
난 그런 무서운 존재인 서준이에 대해서 상당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서준이는 3일 간, 학교에
나오지 않아서 난 그 무섭다는 강서준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서준이와 처음 마주치게 된 건, 4일째 방과 후였다.
학교 생활에 대한 적응 문제 때문에 잠깐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빈 교실에 놔둔 책가방을 가지러 들어온
나는 내 옆자리에 엎드려 있는 서준이를 보고 굉장히 깜짝 놀랐다.
그건 그 무서운 강서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교실에 예상치도
못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인물이 강서준이란 걸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자리에 그동안 비어있던 서준이의 자리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방에 화이트로 큼지막하게 써져있는 [강서준]이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이야기 때문에 그저 무서운 아이일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가방에 써 있는 이름을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누가 저 낡은 가방을 훔쳐가기라도 할까봐?'
피식, 피식 웃으며 조용히 교실로 들어가 내 가방을 챙기다가 돌아선 나는
어느샌가 일어나 나의 앞을 막아선 서준이의 모습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엎드려 있어서 이마에 자국이 난 상태로 서준이는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넌 뭐냐?]
[아아, 난.... 전학...]
[전학생이냐?]
[으응.]
[쳇. 땅꼬마잖아.]
[뭐, 뭐라구!! 그러는 너도 그렇게 큰 것 같진 않은데?]
[웃기는군.]
[난 하나도 안 웃겨!!]
무서운 강서준.
하지만 서준이의 무서움을 실감할 길이 없던 나는
서준이에게 바락바락 악을 쓰며 나에게 [땅꼬마]라고 한 사실을
사과하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하지만 서준이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거만하게 날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집에나 가자.]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너무나 당연스럽게 집에 가자고 말하는
서준이의 태도에 난 어떠한 반발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왜 같이 집에 가야하는데?]라고
묻는 것이 더 이상할 것만 같아서 그냥 가방을 들고
서준이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그 날, 서준이는 아무 말 없이 날 집까지 데려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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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전철 안.
잠이 쏟아진다.
어제 나도 모르게 잠을 못 잤던 모양이다.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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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는 소문처럼 나쁜 애는 아니었다.
물론 싸움을 자주 하고 학교에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싸움으로 크게 다쳤을 때마다 날 불러내 내게 기대어 앉아
눈을 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서준이가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또 여자친구 바꿨어?]
[그렇지, 뭐..]
[으이구, 이 바람둥이! 언제쯤에야 한 여자에게 정착할래?]
[언젠가는 하겠지, 뭐..]
[퉁명스럽긴...]
[넌...]
[응?]
[남자친구랑 잘 지내고 있냐?]
[당연하지.]
[쳇..]
[뭐야, 너.. 꼭 깨지기를 바라는 듯한 태도다?]
[.....]
전학을 와서 몇 달 정도 지난 후, 남자친구가 생겼다.
예쁘장한 얼굴, 싹싹한 성격으로 꽤나 인기가 많은 애였다.
난 그 애를 깊이 사랑했다.
내게 다정하고, 늘 미소를 지으며 날 대하는 그 애는
내게 커다란 의미로 자리잡았다.
그 애를 사귀며 난 서준이와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서준이는 서준이대로 많은 여자친구를 사귀고 다녔다.
서준이는 이상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아마도 알 수 없는 카리스마 때문인 것 같다.
바람둥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여자들을 만나느라 정신이 없던 서준이는
내가 남자친구의 매력에 빠져 서준이를 잊어갈 때쯤이면
생각났다는 듯이 내게 전화를 해, 날 불러냈다.
그러면 난 군소리 않고 서준이의 부름에 응하곤 했다.
[야.]
서준이는 날 부를 때, [야.]라고 불렀다.
단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미진아.라고 살갑게 부를 수는 없어?]
[지랄.]
[말투 좀 봐.]
[야, 너 무슨 대학 갈 거냐?]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넌? 생각해 놓은 대학 있어?]
[난 수능 안 본다.]
[왜?]
[졸업하면 취직할 거야.]
[에에. 누가 널 써주기나 한대?]
[두고봐라. 갑부가 될 테니까.. 그래서 가지고 싶었던 오토바이도 사고,
집도 조온나 큰 집으로 하나 사고, 차도 하나 살 거다.]
서준이는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가끔씩 보여지는 서준이의 웃음은 늘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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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온수, 온수 역입니다.]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온수.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는구나.
후우.
일어나기 싫은데....
계속 자고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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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되는대로 점수가 되는 대학, 적당한 과에 들어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서준이와의 연락도 끊겼다.
내 쪽에서 먼저 서준이에게 연락을 하는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난 서준이의 연락처도 몰랐다.
졸업을 한지 1년쯤 지나고,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가장 먼저 서준이가 떠올랐다.
내가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하면 서준이는 뭐라고 할까?
분명히 [쳇, 멍청하긴..]이라고 말하겠지?
하하, 그럴 거야.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진작에 서준이 연락처를 알아둘걸.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쭉 그랬듯이 서준이와 앉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져 아픈 마음을 달래려면
서준이가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남자친구와 헤어진지 3개월쯤 지나 상처가 아물어가고,
또 다른 남자친구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서준이를 만났다.
서준이는 나의 자취방 문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먼 산을 바라보며 멍하니 담배를 피던 서준이는
내 기척을 느끼고는 천천히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씩 웃으며 [여어.]라고 인사했다.
마치 어제 헤어졌다가 오늘 다시 만난 친구처럼 친근하게,
1년이 넘는 공백 기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배고프다. 밥 먹자.]
1년 3개월만에 만난 서준이가 내게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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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드디어 내릴 역이구나.
바깥이 어둑어둑한 거 보니, 비가 올 것 같네.
우산.. 안 챙겨왔는데....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비가 안 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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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서준이가 찾아온 건 6개월 후였다.
동거하던 여자친구랑 깨져서 갈 데가 없다며
[야, 나 며칠만 좀 재워주라.]라고 말했다.
그래서 서준이는 우리 집에서 한 달을 살다가 나갔다.
서준이와 나 사이엔 아무런 일도 없었다.
서준이는 일을 하다가 느즈막해서야 집에 들어왔고,
서준이가 집에 들어왔을 때 난 자고 있었다.
가끔 내가 잠이 들기 전에 서준이가 돌아올 때도 있었는데,
난 서준이에게 별 할 말이 없기 때문에 늘 자는 척을 했다.
그럼 서준이는 씻고 나와서 나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잘 자.]라고 말하곤 자기 이불로 들어가곤 했다.
난 그 느낌이 싫지 않아, 어느샌가부터는 일부러 자는 척을 하며
서준이를 기다리곤 했다.
서준이가 떠난 건, 비 오는 날이었다.
[비 오네. 우산 좀 빌려주라.]
[싫어.]
[왜?]
[너 고등학교 때도 내 우산 빌려 가면 안 돌려줬잖아.]
[쪼잔하게 굴기는... 돌려줄게.]
[늘 그렇게 말했었지.]
[야, 야. 비 맞으면서 나갈 수는 없잖냐.]
[맞으면서 가. 나도 니 덕에 비 맞으면서 다닌 적 많아.]
[꼭 필요할 때 돌려줄 테니까, 우산 좀 줘.]
[필요하기 전에 돌려줘도 돼.]
서준이의 느긋한 재촉에 난 하는 수 없이 우산을 꺼냈다.
좀 특이한 우산이었다.
[뭐냐, 너.. 넌 우산에 이름까지 써두냐?]
[응, 요새 학교에서 분실 사고가 많거든.]
[별로 비싸 보이지도 않는구만...]
투덜대며 나간 서준이는 그 날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간 서준이가 다시 날 찾아온 건, 2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2년 전의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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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욱.
[아, 죄송합니다.]
난 나와 부딪힌 사람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표를 내고 전철에서 나왔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장례식장의 위치를 가늠하던 난
걸어가던 사람을 잡아 물어보는 것을 택했다.
유난히 길눈이 어두웠기 때문에 혼자서 찾으려 애쓰다가는
분명 다른 곳으로 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친절한 아주머니가 길 건너에서 택시를 타라고 알려줬고,
난 조금 잰걸음으로 횡단보도로 향했다.
먹구름이 낀 하늘이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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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줘.]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주기로 했잖아.]
[꼭 필요할 때 주겠다니까...]
[꼭 필요한 시기가 벌써 몇 번이나 지났는지 알아?
널 만난게 자그마치 3년 전이라구.
그 3년 동안, 우산 쓸 일이 한 번도 없었을 리가 없잖아!]
[깐깐하게 굴긴.. 딴 우산 사서 썼을 거 아냐.
배 고프다, 밥이나 주라.]
[너야말로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밥 주라야?]
[내가 오랫동안 안 찾아와서 외로웠냐?]
[그럴 리가...]
난 툭 내뱉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서준이도 당연하다는 듯 나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남자친구 있나 보지?]
서준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나와 남자친구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보고 있었다.
[응.]
[괜찮은 놈이냐?]
[그렇지, 뭐.]
[좋냐?]
[응. 좋아. 뭐 먹을래?]
[몇 살이냐?]
[28살. 뭐 먹을 거냐고..]
[직업은 뭔데?]
[회사원이야. 야, 뭐 먹을 거냐니까?]
[돈은 잘 버냐?]
[후우, 그래. 잘 벌어.]
[집 안은..?]
[좋아. 부모님들도 좋으시고...]
서준이의 계속되는 질문에 난 저녁 메뉴를 묻는 걸 포기하고
서준이의 말에 대답해주기로 했다.
그에 대한 서준이의 질문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고,
난 30분 동안 서준이의 옆에 서서 질문에 답을 해야만 했다.
[행복하냐?]
[응.]
서준이가 씩 웃었다.
[아버지 역할 같은 거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
저녁을 먹고, 서준이가 가려고 코트를 걸칠 때
서준이의 지갑이 떨어지며 그 안에서 작은 전화번호부가 튀어나왔다.
전화번호부는 두 개였다.
[왜 두 개나 가지고 다녀?]
[그냥...]
얼버무리던 서준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거엔 내가 진짜 사랑하는 여자 이름만 적을 거다.]
그러면서 들어보인 건, 파란색의 전화번호부 책이었다.
[여자 이름이 한 백 명 정도 써있겠네?]
[하하. 그러려나?]
내 빈정거림에 서준이는 통쾌하게 웃고는 집을 나섰다.
[담에 보자.]
[그러지, 뭐.]
[행복해라.]
[알겠어. 너나 행복해.]
[그래.]
빠이빠이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서준이의 뒷모습.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본 서준이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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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장.
짙은 향을 피우고, 난 서준이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조문객들이 많지는 않아서 난 서준이 어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내가 어색하게 말하자, 어머니는 슬프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무거운 분위기.
장례식장은 처음이었기에 어떻게 행동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어색하게 앉아 있다가 일어났을 때,
어머니께서 내게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난 영문을 모르고 그 봉투를 받아들었다.
[이게...]
[미진씨꺼 같아서요. 그럼...]
[네, 안녕히 계세요.]
대체 뭐지?
봉투를 열어보려다가 한 방울씩 비가 떨어져서
얼른 핸드백 안에 집어넣고 지하철로 향했다.
한산한 지하철에 앉아 난 봉투를 꺼내들었다.
봉투엔 아무 것도 쓰여져 있지 않았다.
밀봉되어 있지도 않았다.
난 봉투를 열고 안의 것을 꺼냈다.
파란색 전화번호부.
서준이의 전화번호부였다.
이걸 왜 내게 주신 걸까?
의아하게 생각하며 전화번호부를 펼쳐봤지만
전화번호부엔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역시 서준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못 만난 거야.
바보 같긴....
난 왜인지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며 눈을 감았다.
[이번 역은 구로, 구로역입니다.]
잠깐 졸았는데 벌써 구로다.
눈을 떴을 때, 난 밖에 주륵주륵 내리는 비를 보며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비 많이 오네.
쫄딱 맞고 가게 생겼군.
역시 조금 더 일찍 출발할 걸.
속상한 마음으로 표를 내고 나오던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매표소 앞에 기대어져 있는 하얀색 우산.
전혀 낯설지 않은 하얀색의 우산이 나의 걸음을 붙잡아 놓았다.
심장이 쿵쾅댔다.
하얀색 우산일 뿐인데, 조금 특이하게 생긴 하얀색 우산일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모를 일이다.
난 지금 불가능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리 없어.
**꼭 필요할 때 돌려줄게.
그럴 리 없어.
**꼭 필요할 때 돌려줄게.
그럴 리 없잖아.
서준이는 죽었는데...
우산을 몇 년 전에 잃어버렸을 게 분명한데...
이제 와서... 돌려줄 리 없잖아.
난 떨리는 손으로 우산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손잡이에 써진 이름.
[최미진]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난 우산을 팔에 걸고
부랴부랴 핸드백을 뒤져, 아까 서준이 어머니가 주셨던
파란색 전화번호부를 꺼냈다.
그리고 맨 앞면부터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네 장 가량 넘겼을 때,
서준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놓겠다던
파란색 전화번호부 책엔
서준이의 못난 글씨로 비뚤비뚤 [최미진], 나의 이름이 써있었다.
어째서 우산이 내게 돌아온 건지,
어째서 이 전화번호부 책에 써진 나의 집 전화번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살던 집 전화번호인 건지 생각할 틈도 없이
난 우산을 부둥켜안고 허물어져 내려 눈물을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밖에 내리는 비보다 더 많은 눈물을
그 자리에서 그렇게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을 빽으로 세상과 맞짱 뜬다...by백묘
카페 게시글
인소닷단편소설
[지대신청]
[백묘] 우산
백묘
추천 0
조회 889
04.04.01 18:38
댓글 16
다음검색
첫댓글 슬퍼요.
꺄아!! 소설 최고 멋져요..ㅠ_ㅠ!!!!
백묘님. 정말 글 잘쓰시는군요. 제 생각엔 백묘님 지대작가 되실거라고 봅니다. 건필하세요!
사악소녀 교사일기도 감명깊게 봤었어요. 묘사력이 지대시더라구요^^ 좋은 소식 오시길 바랄게요.^0^ 아. 이 단편 정말 죽이네요.ㅜㅜ찡.
역시 백묘님 . . .
정말 잘쓰신다. 와와. 부럽네요 ㅠㅠ; 절제된 감정에… 와우 존경해요!
마루씨 의견에 올인 ! 최대 유망주랄까요 ? 벌써 출판까지 한 분께 이런 말씀은 너무 모순적이지만, ^-^ 좋은 결과 있을거라 믿어요/
백묘님 글 오늘 처음 봤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떨리는 느낌 그대로... 정말 최고라는 생각만 드네요. 잘되실겁니다^^ 글 너무 멋졌어요...훌쩍. 하나님을 빽으로 세상과 맞짱뜬다...ㅠㅠ 멋져요. 꼭 잘되실겁니다. 건필하세요!
엇; 이거 저번에 쓰신 거 아니던가;;
꼬릿말 감사합니다.(_ _) 오도방정님. 저번에 쓴 거랑 좀 다른 건데요.^^;;
아....진짜 슬프다...
아...어떠케요...서준이 죽은거야>>??그럴리가 엄서...넘흐 슬퍼여~ㅜㅜ
역시..잘쓰시네요^^
이거 너무 슬퍼요 ㅜㅜ 그래두 잼있어요 ^^
ㅠㅜ 넘 슬퍼요...ㅠㅜㅠㅜ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