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풋볼뉴스(Football News) 원문보기 글쓴이: 블루문
6월,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을 치르기 위해 소집된 A대표팀에는 새로운 얼굴이 대거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낯선 이름은 황인재였다. 불과 3, 4년 전만 해도 출전 기회를 찾아 여러 팀을 떠돌던 ‘저니맨’이었다. 지금 그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 홈이잖아요. 여기서 떨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ONSIDE와 마주한 날, 황인재는 코리아컵 16강의 숙취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소속팀 포항스틸러스는 전날 안방에서 수원삼성과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연장전에서도 전진우(수원)와 백성동(포항)이 한 골씩 주고받으며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승부차기에 운명을 맡겼고, 승부차기에서 포항이 5-4로 우위를 점하며 8강 진출을 확정했다. 기선 제압에 앞장선 이는 황인재였다. 황인재는 수원삼성의 첫 번째 키커로 나선 이종성의 슈팅을 막아내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격전을 치르는 날이면 대부분은 잠을 설친다. 심부체온이 올라가고 극도의 흥분을 경험한 상태라 숙면에 들기 어렵다고들 한다. 황인재 역시 “온몸이 쑤셔서 한참 뒤척였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더 달콤한 승리였다. 골키퍼의 선방 활약이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흔치 않은 순간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코리아컵은 황인재에게 특별한 무대다. 이 대회 ‘디펜딩 챔피언’인 포항의 우승 여정에서 강렬하게 존재감을 남겼다. 2023 FA컵(코리아컵 옛 명칭) 4강전에서 역시 승부차기 선방으로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결승전에서는 또 전북의 거센 공세를 막아내며 맹활약했다. 황인재 덕에 몇 차례 위기를 막아낸 포항은 후반 매서운 역습과 정교한 마무리로 4-2 대역전에 성공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좋은 일은 또 다른 좋은 일을 몰고 온다. 포항은 새 시즌 사령탑 교체에 따른 대대적인 변화에도 K리그1 우승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고, 그사이 황인재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골키퍼가 됐다. 포항의 우승 싸움을 견인한 선방 활약을 인정받아 6월에 소집된 A대표팀에 선발됐다. 생애 첫 대표팀 발탁에, 2026 월드컵으로 향하는 여정에 함께하는 일원이 된 것이다. 기쁨이 배가됐다. 비록 경기에 나서진 못했지만 대표팀 소집 훈련을 통해 축구인생 통틀어 가장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는 대표팀을 잠시 스쳐간 이름으로 여길지 모른다. 그렇지만 황인재는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 없다. 영광의 자리가 당연해지는 날을 기다리는 일은 그에게 익숙하다. 꿈꾸고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 1년 단위로 팀을 전전하던 ‘저니맨’에서 K리그1 명문 팀의 주전으로 올라서고, 마침내 대표 선수가 된 그 자신이 증거다.
반전의 연속, 마침내 국가대표
지난해 코리아컵(구 FA컵)에서 우승한 포항. 황인재(노란 유니폼)의 활약이 큰 힘이 됐다
올해 시즌 개막을 앞두고 포항이 좋은 순위를 유지할 거라고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어요.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우승권에서 저력을 발휘하고 있네요.
시즌 개막 하기 전에는 변화가 많았습니다. 새로운 감독님에 새로운 선수들이 많다 보니 서로를 좀 믿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올 시즌 방향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선수들이 하나로 뭉치게 됐어요.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좋은 경기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시즌까지 감독의 존재감이 절대적인 팀이었어요. 포항이 큰 흔들림 없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일단 포항만의 DNA가 있어요. 김기동 감독님의 색깔이 워낙 뚜렷했기 때문에 그걸 선수들이 지워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박태하 감독님이 디테일한 부분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틀을 계속 저희에게 다시 공유해 주셨습니다. 선수들도 거기에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이제 새로운 감독님만의 색을 내는 팀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선수로서 느끼는 포항만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밖에서 볼 때는 마냥 상위권에서 전통을 유지하는 팀, 누구나 가고 싶은 좋은 팀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와서 직접 경험해 보니 우선 유스 시스템이 힘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프로 선수들도 축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훈련장이나 퍼포먼스 센터 등 환경이 정말 잘 구축되어 있어요. 이 안에서 훈련하고 생활하면 더 좋은 선수로 발전할 수 있게 만드는 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그 초반 승점 쌓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운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고, 이번 시즌을 앞두고 특별한 기대감이나 자신감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작년에 비해서 선수단에 변화가 컸습니다. (주축)선수들이 많이 나갔죠. 팀이 많이 흔들릴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 속에서 제가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역할을 크게 잡고 준비했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동계훈련 때부터 작년에 비해 저에게 공이 오는 상황이 많아질 거라 봤어요. 김성수 (GK)코치님과 다양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정말 많이 훈련했어요. 그러다 보니 경기 중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동작들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6월 A매치에 처음으로 발탁된 황인재(왼쪽)와 박승욱
조현우(왼쪽)는 K리그에서 라이벌이지만, 국가대표로는 배울 점이 많은 동료다
덕분에 개인적인 경사가 생겼죠. 생애 첫 A대표 발탁 소식을 어떻게 접했나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미리 언질 받은 것도 없었습니다. 막연하게 지금 모습이라면 가능성이 없진 않겠다고 개인적인 기대감만 갖고 있었어요. 명단 발표 당시에도 훈련장에 나가 있었습니다. 팀 장비 담당이 달려와서 ‘대표팀 명단에 형 이름이 있다’고 전해주어 처음 발탁 소식을 알게 됐습니다. 훈련 시간이어서 일단 훈련에 임했고요(웃음). 훈련이 끝나고 나서 선수들과 기쁨을 나눴고, 진심 어린 축하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축구를 시작한 이들은 모두 국가대표가 되는 날을 꿈꾸죠. 꿈을 이루었나요?
어렸을 때는 국가대표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또 프로팀을 거치면서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국가대표가 아니라 프로에서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죠.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굵직한 선수가 되는 게 꿈이자 목표였어요. 그걸 순차적으로 이겨내고 보니 좋은 흐름을 더 탈 수 있는 기회도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러 팀에서 선발되어 온 선수들과 새로 만나 단기간에 훈련을 하는 경험은 또 색달랐을 것 같은데요.
원래 제가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긴장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했고요. 이번에 대표팀에 가기 전에는 긴장보다 설렘으로 가득 찼던 것 같아요. 얼른 가서 좋은 선수들과 같이 훈련하면서 발맞춰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기대대로 재밌게 잘하고 온 것 같습니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당장 선발 투입될 거라는 기대감은 크지 않았겠지만, 훈련과 경기를 함께한 시간은 의미있는 경험이었겠죠.
확실히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하다 보니 느끼는 점도 많았습니다. 포항에서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저의 모습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요. 요즘 훈련에서나 경기에서 스스로 성숙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대표팀 경험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A매치)관중 분위기는 크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K리그 관중도 늘고 있는 추세이니까요. 6만 관중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함성과 떨림은 지금 K리그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임시감독 체제였지만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 같아요.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좋은 선수들과 생활하고 훈련하는 경험을 해보니 대표팀에 계속 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나라를 대표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좋은 욕심이겠죠. 개인적으로는 ‘하면 된다’라는 말을 몸소 보여준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계획과 목표를 정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저 같은 선수도 끝내 꿈으로만 생각했던 자리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도훈 감독 혹은 양영민 GK코치에게 특별한 조언이나 격려를 받았나요?
양영민 코치님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가 프로 무대에서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보완점을 짚어 주셨어요. 훈련할 때 단점이 보인다 싶으면 하나씩 잡아 주시면서 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좋은 방향을 알려주셨습니다. 김도훈 감독님은 ‘비록 경기에 세우지는 못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라. 지금 잘하고 있으니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빌드업에 자신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칭찬하고 격려해 주셨어요.
(Q. 양영민 코치가 짚어준 보완점이 무엇인지 공개할 수 있나요?) 음……. 지금은 저 혼자만 알고 싶습니다. 잘 고쳐서 보여드리겠습니다(웃음). 이렇게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코치님이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었어요. 막상 경기장에서는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던 것 같고요. 이번에 훈련하면서 직접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 조언을 들으니까 하나하나 (개선점이) 느껴지고 몸도 반응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잘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리그 라이벌 팀 골키퍼 조현우가 대표팀 넘버1으로 뛰는 모습은 또 다르게 보이던가요?
제가 ‘롤모델’이라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대구 시절부터 지켜봤던 선수였습니다.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점이 많은 골키퍼라고 생각했어요. 같이 운동하면서 보니까 정말 좋은 선수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어요.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죠. (Q. 조현우 선수도 프로에서 꾸준한 성장을 보이면서 A대표팀의 주전으로 올라선 케이스예요)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퍼포먼스가 워낙 좋은 선수예요. 그런 점들을 늘 눈여겨봤습니다.
한발짝 늦은 출발, 훈련으로 따라잡기
축구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버지부터 축구를 하셨던 축구가족이었어요. 형이 먼저 축구를 시작해서 저도 따라서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대학교까지 축구선수였는데, 뛰던 당시에는 나름 유명세가 있었던 것 같아요. 형이 아버지를 이어서 꿈을 키웠고 제가 그 뒤를 따랐죠. 저는 중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어요. 남들보다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포지션은 공격수로 시작해서 점점 더 내려와 골키퍼가 되었죠. 1학년 때는 공격수와 중앙수비수로 뛰었고 2학년 때부터 골키퍼로 섰습니다. (Q. 축구가족이었다면 좀 더 일찍 시작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망설였던 것인가요?) 초등학교 때부터 형이 운동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게 좀 겁이 났어요. 합숙 생활에도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고요. 친구들이랑 뛰어노는 게 마냥 좋은 시절이었으니까요.
골키퍼로 뛰게 된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나요?
어린 마음에는 정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공격수나 수비수로 뛰고 있는데 갑자기 골키퍼를 하게 되었으니까요. 축구를 그만두기 직전까지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중학교 감독님의 설득과 부모님의 권유로 결국 골키퍼 장갑을 꼈지만요. 포지션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축구를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습니다. 잘만 하면 다른 포지션에 비해 골키퍼로 더 큰 꿈을 키워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골키퍼로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언제부터 생기던가요?
처음에는 공을 다이빙으로 잡아내지 못하고 뛰어가서 발로 막아내는 수준이었어요. 골키퍼를 시작한 시기가 늦다 보니 부족했습니다. 기본기 다지는 훈련을 많이 했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어느 정도 골키퍼로서 자신감이 생겼고, 대학교에서는 잘해 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제가 슈팅을 막아내서 팀이 이기기도 하고, 경기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경험했으니까요. 동료들에게 ‘정말 최고다’ 같은 말을 들으면 자존감이 많이 올라왔죠.
골키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끝끝내 막아내서 팀이 지지 않는 경기를 했을 때 희열이 가장 큽니다.
선방 활약을 펼친 경기 중 최고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경기가 있다면?
아무래도 작년 FA컵 결승전이 기억에 남아요. 전반전에 저희가 상대(전북) 공세에 엄청나게 밀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흔들림 없이 버텼기에 결과적으로 후반전에 저희가 4-2로 크게 뒤집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우승 트로피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트로피를 저희 집에 갖다 놔도 되지 않을까요?(웃음)
광주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데뷔 시즌에는 윤보상이라는 골키퍼의 존재감이 뚜렷했죠.
보상이 형이 입단동기예요. 선방 능력이 좋은 골키퍼라 감독님이 기회를 먼저 주셨던 것 같습니다. 시즌이 이어지는 도중 제게도 몇 번 기회가 찾아왔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때는 준비가 안 되었던 것 같아요. 경기에 나서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신체적으로나 마음으로나 준비가 덜 된 느낌이었습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였나요?) 골키퍼에게 필요한 신체적 능력들이 있는데 그걸 미처 갖추지 못했다고 할까요. 중고교 시절 제가 게으르지 않았나 반성했습니다. 프로에 온 이후로는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쉼 없이 달렸던 것 같습니다.
이후 안산, 성남을 거쳐 다시 안산으로 복귀했죠. 사실상 1년 단위로 팀을 옮겼어요.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나요?
저는 계속 올라서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찾아 팀을 알아보고 옮겨 다녔던 것 같습니다. (Q. 계속 옮겨 다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는지?) 매년 불안했고 매년 스트레스가 있었습니다. 시즌이 끝나도 편하게 쉬지 못하고 다른 팀에 가서 테스트를 보는 상황이 이어졌으니까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준비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기회도 잡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2019년 안산에서 18경기를 소화했어요. 개인 기록으로 보면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선 시즌이었는데 다시 포항으로 이적한 건 모험 아니었을까요?
안산에서 처음으로 주전으로 뛰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슬슬 나이가 찬다고 느끼던 차에 이적 기회가 열렸는데, 안주하기보다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부리그 팀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역시나 또 (강)현무라는 벽에 부딪히게 되었지만요. 정말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비록 경기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계속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군 팀(상무)에 입대했고, 그곳에서 꾸준히 준비하다 보니 다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2022년 김천 상무 시절 황인재
체육부대에서 보낸 시간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성적에 대한) 부담은 다른 프로팀에 비해 적은 팀이지만 국가대표급 기량을 가진 좋은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저 역시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 훈련 시간이 많았어요. 그때 조규성처럼 집중적으로 몸을 만든 선수도 많았고요. 실전에서도 부담 없이 우리가 하고 싶은 축구를 하면서 재미있게 발맞춰 본 시간이었습니다. 실력이 향상된다고 느꼈죠.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전에는 제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실수할 때 이어지는 질책이 부담스러워서 도전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군대 동기 박지수가 ‘실수해도 괜찮으니 이렇게 해 보자’하면서 저를 끌어주었습니다. 마음 편하게 도전해 본 기억이 있습니다.
(Q. 도전이라면?) 공이 올 때 공격수가 들어오면 골키퍼는 아무래도 공을 빨리 걷어차기 바쁩니다. 지수와 함께 뛸 때는 공을 받으면서 앞선에서 미리 반응하거나 패스로 연결도 해보는 식이었죠. 왼발로 잡아서 왼발 킥도 시도해 봤습니다. 처음 시도한 게 맞아 들어갈 때 짜릿했어요.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빌드업을) 제 장점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지수와 연락을 하고 지내지만, 지수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입니다.
(Q. 오늘의 대표 선수로 만들어준 최초의 인물이다?) 그런 셈이죠. 이번에 대표팀 명단이 발표됐을 때도 지수로부터 진심어린 축하 인사를 받았어요. ‘너는 될 줄 알았다’라면서 계속 좋은 이야기를 해 주더라고요.
2023년 포항 복귀할 때 좀 더 특별한 마음이었겠어요. 군에서 얻은 자신감도 있었을 테고요.
현무가 입대하면서 포항의 1번 자리는 비어 있는 상황이었고 저와 (윤)평국이 형이 경쟁을 하게 됐습니다. 그 기회를 어떻게든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정말 컸습니다. 제대를 하면서 생긴 개인 훈련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동계 훈련을 잘 소화할 수 있는 몸 상태로 만들었어요. 실제 동계 훈련에서 제 컨디션이 정말 좋았어요. 덕분에 김기동 감독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개막전에도 저를 선발로 세우셨고요. 저도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쉴 틈 없이 달렸습니다. 한 시즌 내내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예요.
실제 많은 전환점이 생긴 해였죠. FA컵 4강, 결승에서 결정적 선방 활약 펼치면서 팀 우승에 한몫했으니까요.
처음에는 실수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이 컸습니다. 감독님이 계속 믿음을 주시니까 자신감이 더 커졌고, 그런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니까 또 좋은 활약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팀에도 기여하는 선수가 되면서 생긴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시대에 따른 골키퍼 덕목이랄까, 변화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본인에게 적용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골키퍼를 시작하던 시절에는 선방 능력이나 뒤를 지키는 안정감이 최고의 덕목이었죠. 저는 안정감도 중요하지만 계속 공을 차고 싶어하는 골키퍼였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골키퍼의 발기술도 중요해지고 골키퍼에서 시작하는 빌드업의 길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도전하고 노력한 끝에 그런 흐름에 맞는 골키퍼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포항의 스타일과 빌드업에 관여하는 본인 스타일도 잘 맞는다고 느끼나요?
박태하 감독님이 저를 통해 풀어가는 상황들을 많이 기대하십니다. 디테일하게 주문하시는 편이죠. 저도 그 부분에 자신감을갖고 있어서 감독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24년, ‘열매’가 익어 가는 시간
올해 코리아컵 4라운드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한 포항. 이 기세를 몰아 코리아컵과 K리그1에서 우승 경쟁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훈련 없는 날에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나요?
특별한 취미 활동은 없습니다. 동료들과 카페를 찾아 얘기하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지금은 아내가 포항으로 내려와서 숙소에서 저를 찾기 힘들겠지만요(웃음). 아내가 임신 중이라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Q. 경사가 이어지는 시즌이네요) 큰 복덩이가 온 것 같습니다. 9월에 출산 예정이고 태명은 ‘열매’예요. 딸이라고 하는데 얼른 만나고 싶어요. 요즘은 어떻게 하면 예쁘고 바르게 잘 키울 수 있을지 아내와 함께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프로 입단은 오래전이지만 이름을 각인시키고 신임을 얻고 있는 시기로 보자면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느낌입니다.
지금까지는 높은 자리에서 좋은 선수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좀 더 큰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어떤 팀을 말할 때 바로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골키퍼가 되고 싶어요. 선수로서 욕심이라면 경기에 많이 뛰는 게 최우선이고,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저 선수도 정말 대단했지’라고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코리아컵과 K리그1 우승 경쟁, 끝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요?
경기 일정이 이어지고 있지만 저희 팀은 또 충분히 로테이션으로 힘든 시간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제가 잘 버틴다면 우승 경쟁을 이어갈 수 있다고 보고요. 마지막에 좋은 결실로 이어질 거라고 기대하고 싶습니다. (Q. 우승 싸움에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를 꼽아 본다면?) 역시 울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남은 시즌 활약 여부가 중요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짐이나 목표를 전한다면?
작년에 이어 전경기 출전이 목표입니다. 전경기를 소화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거라는 자신감도 있어요. 제가 좋은 모습을 보이면 팀 성적으로도 이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포항이 계속 좋은 자리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이 될 수 있도록 제가 더 힘을 쓰겠습니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7월호 ‘INTERVIEW’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배진경
사진=이연수, 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