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추억이 남아있는 음악다방
속어로 '판돌이' 라는 DJ (디스크 작키) 가 LP 판을 골라
신청곡을 들려주는 음악다방도 있으며,
은은한 차 한 잔 ~
다향이 흐르는 탁자에 마주앉아
인생을 이야기 하던 추억어린 장소
다방
다방이라면 떠오르는 곳이
아마도
대학로의 유서깊은 학림다방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첫댓글 서울 중구 을지로3가 타임다방, 종로2가 천궁다방이 유명했죠.
그시절 빠듯한살림이라서 음악다방 가보지를 못했내요
저는 종로3가에 있는 참다방에 자주 갔네요.
@맹명희 단골로 가시는곳이 있었군요
@김진철(대구달서구) 서울서 요리강사로 일할 때 그 근처에서 미팅하고 종로5가 광장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그랬습니다.
@맹명희 요리연구를 굉장히 일찍부터 하셨습니다
을지로 6가 대광다방에 자주 갔지요맞은 편에 계림극장이 있어같이 영화보러 갈 친구도 기다리며...^^
계림극장은 집에서 가차워서 뚜벅이로 가서 영화 보고는 다시 뚜벅이로 귀가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서울서 공부를 하셨군요
광주에서충장로 화신다방황금동 르네쌍스.스피커가 양쪽에우리 키크기 옆면 넓이 넓고.. 팝숑 크게다방홀이 울려서소리질러 따라 부르기도~좋은 시절이였어요커피에 위스키~탄걸 주문해서먹고 즐겼지요
재미가 있었겠습니다
명동에 있던,꽃반지 끼고 노래 하던 청순했던 긴 머리의 은희! 그때가 통키타 라이브의 시작?다방이라 안부르고... ?잊어버렸네요
무엇으로 불렀는지 궁금하내요
디스크자키의장발머리,바지 뒷주머니의 도끼빗~ㅋㅋ두근거리며 음악을 청하던쪽지~진주시 곰다방을 아는분계신가요?
진주가 고향이군요
친구가 좋아하는 DJ가 있어서 따라가 쪽지에 신청곡 써서 듣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왜 그렇게들 DJ에 해바라기가 되었는지 그친구 생각허면 웃음이 납니다
그시절 DJ의 인기는 아이돌수준 이었지요
그당시 서울에서는종로에 YMCA 다방이 제일크기 때문에 연일 자석이꽉차 신청곡 한곡 이상 할수도 없었어요ㅎ명동에는 라이브 쉐브르가 있어 그당시젊은이 메카였는데너무 세월이 흘러 추억이 되었어요감사히 보고갑니다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
감사합니다
박병민님 정보에 35세이시던데 이 아이디 본인 것 맞아요?
@맹명희 제가 아들명의로 핸드폰을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박병민(서울강남) 실제 나이는요?
@맹명희 69세 입니다만나이 아니구요
@박병민(서울강남) 그게.... 다음메인에서 수정이 가능한 겁니다.폰과 관계 없습니다.
@맹명희 네 수정하도록하겠습니다 전음방2 에는 제대로되어 있습니다미국 영주권자라처음에 어찌 하는지몰라 아들이 해줘서 그리되었습니다한국에와 핸드폰을아들이름을 구입하다니 그리되었엉ᆢㄷ
@박병민(서울강남) 그러셨군요.
저는 명동에 있던 라이브 카페 쉘부르를 많이 갔었어요그곳서 많은 가수들이 통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했어요.
서울에서 사셨군요고맙습니다
첫댓글
서울 중구 을지로3가 타임다방, 종로2가 천궁다방이 유명했죠.
그시절 빠듯한살림이라서 음악다방 가보지를 못했내요
저는 종로3가에 있는 참다방에 자주 갔네요.
@맹명희 단골로 가시는곳이 있었군요
@김진철(대구달서구) 서울서 요리강사로 일할 때
그 근처에서 미팅하고 종로5가 광장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그랬습니다.
@맹명희 요리연구를 굉장히 일찍부터 하셨습니다
을지로 6가 대광다방에 자주 갔지요
맞은 편에 계림극장이 있어
같이 영화보러 갈 친구도 기다리며...^^
계림극장은 집에서 가차워서 뚜벅이로 가서 영화 보고는 다시 뚜벅이로 귀가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서울서 공부를 하셨군요
광주에서
충장로 화신다방
황금동 르네쌍스.
스피커가 양쪽에
우리 키크기 옆면 넓이 넓고.. 팝숑 크게
다방홀이 울려서
소리질러 따라 부르기도~
좋은 시절이였어요
커피에 위스키~
탄걸 주문해서
먹고 즐겼지요
재미가 있었겠습니다
명동에 있던,
꽃반지 끼고 노래 하던
청순했던 긴 머리의 은희!
그때가 통키타 라이브의
시작?
다방이라 안부르고... ?
잊어버렸네요
무엇으로 불렀는지 궁금하내요
디스크자키의
장발머리,
바지 뒷주머니의
도끼빗~ㅋㅋ
두근거리며 음악을 청하던
쪽지~
진주시 곰다방을 아는분
계신가요?
진주가 고향이군요
친구가 좋아하는 DJ가 있어서 따라가 쪽지에 신청곡 써서 듣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왜 그렇게들 DJ에 해바라기가 되었는지 그친구 생각허면 웃음이 납니다
그시절 DJ의 인기는 아이돌수준 이었지요
그당시 서울에서는
종로에 YMCA 다방이 제일크기 때문에 연일 자석이
꽉차 신청곡 한곡 이상 할수도 없었어요ㅎ
명동에는 라이브 쉐브르가 있어 그당시
젊은이 메카였는데
너무 세월이 흘러 추억이 되었어요
감사히 보고갑니다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
감사합니다
박병민님 정보에 35세이시던데 이 아이디 본인 것 맞아요?
@맹명희 제가 아들명의로 핸드폰을
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박병민(서울강남) 실제 나이는요?
@맹명희 69세 입니다
만나이 아니구요
@박병민(서울강남) 그게.... 다음메인에서 수정이 가능한 겁니다.
폰과 관계 없습니다.
@맹명희 네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음방2 에는 제대로
되어 있습니다
미국 영주권자라
처음에 어찌 하는지몰라 아들이 해줘서 그리되었습니다
한국에와 핸드폰을
아들이름을 구입하다니 그리되었엉ᆢㄷ
@박병민(서울강남) 그러셨군요.
저는 명동에 있던 라이브 카페 쉘부르를 많이 갔었어요
그곳서 많은 가수들이 통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했어요.
서울에서 사셨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