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충주문화대전>에서 옮김.
《충주의 금석문, 2006년》에서 옮김.
《孝婦李哲宰妻慶州金氏之碑》
夫人以慶州金聲喜之二女年十七嫁于全州李哲宰生二子秀賢秀學二七遭夫喪以貧窮家庭上下接濟宲
所難堪而小不動念一心靡他不二其志朝稼穡暮紡績無不殫誠而及其老舅病臥床簀延於十年之久藥餌之供食飲之奉更不擧論大小便尿不自□拾夫人親自□除扶起扶臥終始如一暫不有昇可謂此世無等之孝而其他 嘉行模範於來生者不一其端惟此茫石難可細陳只以大略表述如右焉
檀紀 四千三百年(1967년) 九月
栗齋 李大齋 記
※접제(接濟)가 맞다고 봐서 고친다. 원문은 接齋.
※□는 缺字. 이 부분이 무슨 이유로 결자 처리되었는지 의문이다. 1967년 세워진 비석인데 이 부분만 훼손될 가능성은 적고, 누군가 불편해서 지웠거나 편집자들이 의도적으로 누락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아래에 두 글자를 복원했다.
※원문엔 忙石으로 써있으나 茫石이 맞다고 보아 고친다. 茫石은 변변찮은 비석의 뜻.
<정정(訂正)>
《孝婦李哲宰妻慶州金氏之碑》
夫人以慶州金聲喜之二女 年十七嫁于全州李哲宰生二子秀賢秀學 二七遭夫喪以貧窮家庭上下接濟宲所難堪而小不動念一心靡他不二其志朝稼穡暮紡績無不殫誠而及其老舅病臥床簀延於十年之久藥餌之供食飲之奉更不擧論大小便尿不自收拾夫人親自淸除扶起扶臥終始如一暫不有昇可謂此世無等之孝而其他 嘉行模範於來生者不一其端惟此茫石難可細陳只以大略表述如右焉
檀紀 四千三百年 九月
栗齋 李大齋 記
<표점(標點)>
《孝婦李哲宰妻慶州金氏之碑》
夫人以慶州金聲喜之二女, 年十七嫁于全州李哲宰, 生二子秀賢·秀學. 二七遭夫喪, 以貧窮家庭, 上下接濟, 宲所難堪, 而小不動念, 一心靡他, 不二其志. 朝稼穡, 暮紡績, 無不殫誠. 及其老舅病臥床簀, 延於十年之久, 藥餌之供, 食飲之奉, 更不擧論, 大小便尿不自收拾, 夫人親自清除, 扶起扶臥, 終始如一, 暫不有昇, 可謂此世無等之孝. 而其他嘉行模範, 於來生者不一其端, 惟此茫石, 難可細陳, 只以大略表述如右焉.
檀紀 四千三百年 九月
栗齋 李大齋 記
<번역>
《효부 이철재의 처 경주 김씨의 비》
부인은 경주 김성희(金聲喜)의 둘째 딸로, 나이 17세에 전주 이철재(李哲宰)에게 시집와서 슬하에 수현(秀賢), 수학(秀學) 두 아들을 두었다.
27세의 나이에 남편을 잃는 상(喪)을 당하였는데, 가난한 집안에서 위아래 사람들을 봉양하고 살피는 것이 참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형편이었으나, 조금도 마음을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한마음으로 딴생각을 품지 아니하며 그 뜻을 바꾸지 않았다. 아침에는 밭을 갈고 씨 뿌리며 저녁에는 베를 짜면서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나이가 든 시아버지가 병이 들어 잠자리에 누워 계신 지 10년의 오랜 세월에 이르렀는데, 약을 달여 올리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소변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시자 부인이 직접 깨끗이 치우고 몸을 일으키고 눕혀 드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大小便尿不自收拾, 夫人親自清除, 扶起扶臥, 終始如一) 정성을 다하였으니, 참으로 이 세상에 견줄 데 없는 효행이라 이를 만하다.
그 밖에도 아름다운 행실과 후세의 모범이 될 만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나, 다만 이 비석(茫石)에 일일이 기록하기 어려우므로 그 대략만을 이와 같이 기술하노라.
단기 4300년(1967년) 9월
율재(栗齋) 이대재(李大齋)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