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김병우
스마트폰에 딩동! 신호음이 울렸다. 집에 사람이 없어서 택배물 무인함에 넣어놓았다는 문자다. 몇 시 사이에 배송예정이니 부재 시 연락 달라는 문자를 본 것 같았으나 깜빡 잊고 답을 주지 못하고 집을 나왔기 때문이다. 지인이 보낸 과일 상자였는데 부피와 무게가 만만찮아서 무인보관함으로 도로 옮기면서 힘들어했었을 배달원의 모습을 떠올리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물건을 받을 사람이 없으면 문 앞에 그냥 두고 갈 수도 있는데 분실로 인하여 말썽의 소지도 있고 해서인지 그렇게 한 것 같았다.
오십여 년 전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시골 친척으로부터 햇곡식과 과일을 OO 정기화물로 보내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가는 철사로 된 꼬리 물표를 들고 화물회사로 직접 물건을 찾으러 갔었다. 물표를 받아든 직원 아저씨는 커다란 창고 문을 열고 물건더미가 가득 쌓여있는 곳에서 한참이나 뒤적거리더니 자루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자루는 못에 찔렸던지 옆구리가 터져있었고 내용물은 절반이나 없어진 상태로 군데군데 쥐똥까지 보였다. 자전거에 자루를 싣고 집으로 오는 내내 걱정이 되었지만, 당시는 그런 일들이 흔해서 인지 부모님은 재수가 없어서 그렇다는 말 외에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과일 중에 쥐 이빨 자국이 있는 부분은 칼로 도려서 버리고 동생들과 나눠 먹었던 기억은 흑백영사기를 되돌려 놓은 듯이 배고픈 시절의 아련한 옛 추억이었다.
세상 참 많이도 변했다. 인터넷으로 주문만 하면 자질구레한 물품에서부터 생수에 이르기까지 집으로 직접 배달해주는 편한 세상이니 말이다. 쥐가 먹었던 음식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먹었다면 자식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7~80년대 그때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일이었다.
작년 추석 때는 추석을 쇠고 한 달이나 지나고 나서야 아파트경비실에서 물건을 찾은 적이 있었다. 명절 전으로 폭주하는 택배물들이 주인에게 제때에 전달이 되질 않고 아파트경비실에 방치되었다. 물건을 경비실에 맡겨 뒀으니 찾아가라는 문자를 받은 적이 없어서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만약 그게 상하는 물건이었다면? 뒤늦게 찾은 기쁨보다 황당함이 더 컸었다.
요즘 아파트경비원들은 세입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물건을 찾아가라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고 한다. 본연의 업무 외에는 신경을 쓰려 하지 않는다는데 이는 명절이라고 경비실에 찾아와서 수고한다며 양말짝이라도 선물하는 예전의 그런 모습들이 사라지다 보니 서로서로 오가는 따뜻한 정이 메말라버린 탓일까. 참으로 각박한 세상이 아닐 수가 없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딸아이에게 밑반찬 등을 우체국 택배 편으로 이따금 보낸다. 박스의 빈 곳을 최대한 채울 욕심에 밑반찬뿐만 아니라 생활용품까지 죄다 챙겨서 꾸역꾸역 쑤셔 넣는다. 종류도 다양하다. 식용유, 통조림, 과일, 치약, 비누…, 박스가 터질 정도다. 과일은 신문지에 일일이 하나씩 싸야만 안심이 된다. 운반 중에 치여서 멍이라도 든다면 상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더 넣어서 보내야 직성이 풀리니 그게 부모 마음인가 보다. 물건을 골고루 담고 포장하는 과정에 부부의 즐거움이 묻어난다. “아빠 보내주신 택배 잘 받았어요. 고맙습니다. 맛있게 잘 먹을게요.” 딸아이로부터 보내온 답례의 인사말 문자가 그간의 피로를 잊게 한다.
김치나 반찬류들은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별도로 포장해야 하는데 일반박스로 보냈다가 터져서 다른 것 까지 못 먹고 버린 적이 있었다. 몇 차례 실수를 거듭하다 보니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아내와 손발이 척척 맞는다. 운반하기 편하게 노끈으로 제대로 묶는 방법도 터득했다.
칠순이 넘은 노인네들이 공짜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택배물을 배달하는 모습을 티브이를 통해서 본적이 있다. 관계기관에서는 신종 일자리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들이 소일삼아 하는 일이라면 또 몰라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생계의 수단으로 할 수밖에 없다면 마냥 서글퍼질 것이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곡예 운전을 하면서 도심을 달리는 퀵서비스 역시 우리에게 눈에 익은 이웃이다. 그들의 배달 박스 안에는 촌각을 다투는 서류뭉치에서부터 손자의 도시락에 이르기까지 배달이 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다. 일의 특성상 항시 시간에 쫓겨 다녀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천만한 모습을 시시각각 연출해야만 한다. 각종 배달원의 바쁜 일정이 그들의 고달픈 삶이 오토바이의 굉음과 함께 오늘도 도심지를 누빈다.
옛날에는 우체국 집배원이 자전거를 타고 두메산골로 편지며 소포를 실어 날랐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한없이 느리고 답답해 보일 테지만 그 당시의 그런 여유가 새삼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정 때문만은 아닐 터인데… (2017.3.4)
첫댓글 택배공화국이라 할 만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택배 문화가 일상화된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부작용인지 사람들의 성미는 급해지고 인정은 매말라가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시대상의 변화를 말해주는 택배에 관한 글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보내는 사람의 정성을 받는 사람이 고마와 하는 그런 선물들이 오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친정에서 과수원을 했기에 어머니가 부쳐주시는 과일, 쌀, 자동차가 없던시절 물표들고 화물취급소 가서 찾는것도 예사일이 아니었지요. 사철 흔하게 먹던 과일 엄마가 가시고 바로 오빠가 가신 후 그때야 비로소 어머니의 고마움을 알았답니다. 딸년은 도독년이라는 말을 돌아가시고 알았답니다. 요즈음 처럼 택배라는 문화가 발달했더라면 어머님의 고생도 훨씬 덜 했을건데 택배를 받을때마다 그 옛날 일이 생각이 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택배사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어릴적 건영화물 취급소 옆집에 산적이 있어 그때의 화물배달 과정을 어느 정도알고있어 선생님의 택배 내력에 얼킨글 공감하며 잘 읽었읍니다.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있음 알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명절때 윗사람들이나 사돈댁에 택배를 자주 이용하고있어 공감합니다. 천일화물이나 건영화물 모두가 사연이 많을것 같습니다.과거를 회상하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