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이름
동짓달 '새알심'에 섣달의
'골무떡'
떡의 중요성 일깨우는 속담도
많고
겨울 방학이면 할머니는 꼭 서울로 올라오셨다.
하얀이는 할머니와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았다. 오늘도 하얀이는 아침을 먹자마자 할머니가 계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가 부르셨다.
"하얀아, 할머니 방에 들어가려거든 이것 좀 갖다 드려라. 떡이란다."
할머니는 떡을 퍽 좋아하셨다. 그런데, 할머니께 갖다 드릴 떡을 보니, 하얀이도 보지 못했던 떡이었다.
할머니는 방에서 텔레비젼을 보시고 계셨다.
"할머니, 이것 어머니가 갖다 드리래요. 떡 잡수셔요."
"오냐, 어서 오너라. 하얀이도 같이 들자꾸나."
"예, 할머니, 그런데 이건 무슨 떡이예요?"
"어디 보자. 응, 이건 '골무떡'이라는 건데, 옛날부터 음력 섣달에 많이 먹던
떡이지."
"할머니, 오늘은 떡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오냐, 그러자꾸나. 그런데, 떡 이야기를 할 때는 떡을 들면서 듣는 게 제격 아니겠니? 떡 좀 들며서
내 이야길 듣거라."
하얀이는 떡 한 조각을 들고 할머니 앞으로 다가앉았다. 할머니도 떡을 드시면서 말씀을
하셨다.
우리 나라에서 옛날부터 떡, 엿, 과일 등의 군것질을 즐겼다. 그 중에서도 특히 떡을
즐겼다.
떡은 계절에 따라 달랐고, 잔치나 제사 또는 명절 때는 이 떡이 빠지지 않았다.
요즘 어린이들은 케이크나 피자 같은 서양 음식을 좋아하지만, 옛날에는 생일 축하 음식으로도 그저 떡이
최고였다. '떡 들어가는 배 따로 있고, 밥 들어가는 배 따로 있다'는 농담이 나올 만큼 우리 나라 사람들은 떡을 좋아했다.
지금도 잔치집 피로연에 가면, 서양식이든 우리 나라 전통상 차림이든 대개 떡 한 접시가 곁들여
나오는데, 여기서의 떡은 그저 군것질처럼 먹게 돼 있다.
예부터 서울에선 '남촌은 술, 북촌은 떡'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것은 옛날 서울 사람들은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대개 그 북쪽에는 잘 사는 벼슬아치들이, 남쪽(주로 남산 밑)에는 벼슬 없이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북쪽에선 떡을 자주
해 먹고, 남쪽에선 술이나 들면서 세상을 한탄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를 한자말로 할 때는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고 하였다.
지금 서울 종로 낙원동 일대에 떡집들이 많은 것은 그 일대에 양반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떡은 우선 그 재료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팥떡', '콩떡', '호박떡', '무우떡', '밀개떡', '꿀편' 등이 모두 그 재료에 따른
이름이다.
우리 나라엔 여러 가지 떡이 발달했는데, 지방에 따라 이름난 떡이 따로 있었다.
예를 들면, 강원도에선 금강산의 석이(石餌. 돌버섯)를 넣어 만든 떡인 '꿀편'이 이름났고, 황해도
연백 지방에서는 찹쌀이 좋아 이것으로 만든 '인절미'가 이름났다. 함경도 지방에서는 귀리로 만든 떡인 '절편'이 잘 알려져 있었다.
인절미는 지금에 와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너무나 찰기가 있어 서로 끌어당겨 떼어 먹는다고
해서 '끌인(引)'자, '자를절(切))'자의 인절이 들어간 떡 이름이다. 옛날엔 '인절병(引切餠)'이라고도 했는데, 이 떡은 친한 사람끼리
서로의 끈끈한 정을 다짐할 때 많이 먹었다.
떡은 철이나 명절에 따라서도 그 재료나 이름이 달랐는데, 서울 지방에 전래돼 오는 '떡타령'이라는
민요에는 다음과 같은 떡 이름이 나온다.
정월 보름엔 '달떡',
이월 한식엔 '솔떡',
삼월 삼짇날엔 '쑥떡',
사월 초파일엔 '느티떡',
오월 단오날엔 '수리치떡',
유월 유두날엔 '밀전병',
칠월 칠석엔 '수단(水團)',
팔월 한가위엔 '오려송편',
구월 중구일엔 '국화떡',
시월 상달엔 '무시루떡',
동짓달엔 '새알심',
섣달에는 '골무떡'
위에서 '솔떡'이란, 솔잎을 얹어 만든 떡인 송편을 말하는데, 한자로는 '송병(松餠)'이라고 했다.
'밀전병'은 밀가루로 만든, 빈대떡처럼 생긴 떡을 말하는데, 식량 사정이 아주 어려운 농촌에서 음력 5.6월쯤 잘 여물지도 않은 밀이삭을 따서
맷돌에 둘둘 갈아 적당히 부쳐 먹던 떡이었다.
'오려송편'은 '오리송편', '오례송편'이라고도 이는 새로 거둔 쌀로 만드는 떡이라고 해서 이 이름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오려'라는 것은 '올'에서 나온 말로, 이 말은 '일찍'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올벼'라고 하면, '이른 벼'라는
뜻을 갖는데, 이 올벼로 만든 송편이 오려송편이다.
'새알심'은 '새알심팥죽'을 말한다. 새알 모양의 작고 둥근 쌀떡을 넣은 팥죽이다.
행사용 떡에는 결혼식이나 회갑용에 쓰이는 '약식', '인절미', '송편', '개피떡', 아기의 백일
잔치상에 놓는 '백설기', 돌 잔치에 내는 '무지개떡', '오색 경단'이 있다. 축하식엔 케크 대신 '등대떡'이 쓰이기도
한다.
가정 평화를 의미할 때는 '갖은떡'이라는 것이, 어른 공경을 의미할 때는 '두텁떡', 갓 결혼한
여자가 신혼 여행을 다녀와서 시댁에 방문할 때는 '신행떡'이라는 것을 마련하기도 한다.
떡은 나라에 따라서도 주재료가 다르다.
우리 나라는 쌀이 주재료이고, 일본은 찹쌀이 주재료이며, 중국은 밀가루가 주재료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 떡들이 다양하지 않고, '모찌(찹쌀떡)'라는 것이 좀 알려진 정도이다. 중국에서도 우리 나라와 같은 다양한 모양의 떡을 볼 수
없다.
떡은 예부터 우리 나라 사람이 많이 이용해 온 음식이어서 이에 관한 속담도 많다.
'개떡도 끼 에워 먹는다'란 속담이 있는데, 이는 떡이라면 어느 것이나 좋다는 뜻이다. '아주머니 떡도
싸야 사 먹는다'는 속담도 떡의 중요성을 나타낸 것이다.
남은 생각도 않는데, 남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한다는 뜻의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도 있는데,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떡방아 소리 듣고 김칫국 찾는다'가 있다.
"어디, 떡 이야기 들을 만했냐?"
"아녜요, 할머니. 재미있었어요. 다음에 또 해 주셔요."
할머니는 입 안이 마르셨는지 물부터 한 모금 드셨다. 창살 사이로 들어온 겨울 햇살이
가래떡처럼 긴 그림자를 방바닥에 드리우고 있었다.
떡국考
설날 시식이 떡국이요 이날 아침 떡국 먹지않은 사람은 드물줄 안다. 떡 사오 떡사려로 시작되는 떡
타령에 정월달에서 섣달까지의 명절 떡이 각기 다르게 나오는데 정월 떡은 달떡으로 나온다. 흰떡을 여러 사람이 떼어먹기 좋게끔 달처럼 큼직하고
만들어놓아서 달떡이다. 일본에서도 흰떡을 모찌라 하는데 미치쓰키(滿月)→모치쓰키(望月)→ 모치(望)→모치(餠)가 됐다했으니 바로 한국과 뿌리가
같은 달떡이다. 왜 여러 사람이 먹게끔 크게 해놓았느냐면 떡이 제사 음식이요 신명에게 바쳤다가 그 신명의 혜택을 입을 많은 사람끼리 더불어
나누어 먹음으로써 일심동체를 다지기 위해서다.
고금의 크고 작은 제사에 떡이 오르지 않은 제사가 없음이 그때문이다. 일본에서 각종 제사때 신전에
올리는 떡을 따로 시도기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떡을 시덕(함경도)시더구(평안도)시더기(강원도)라 했음으로 미루어 같은 어원의 제사음식임이
분명하다.
흰떡을 끌어다 잘라 먹는다 해서 인절미(引切米)라 했음도 떡이 공식(共食)음식임을 입증하는 것이된다.
연변지방에 가면 지금도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밥상 복판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떡 한무럭ㅡ 달떡이 놓여나온다. 그럼 각기 이를 끌어 떼어다
떡고물에 묻혀 먹곤 한다. 첫날밤 신랑신부가 한잔술에 입을 같이 대고 합근주를 마시고 한 인절미 갈라먹는 것이며 시집간 딸 친정에 왔다 돌아갈
때면 이바지로 인절미 한 석작 지어보내는 것도 바로 인절미가 이질인간의 동질화를 가져다주는 상징 음식이기 때문이다.
한 집안 식구끼리 한솥밥 먹고 한 직장사람끼리 큰 한 술잔으로 돌려마심으로써 일심동체를 다지듯이 끈적
끈적 들러붙은 흰떡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한마음이 돼 친화력을 길렀던 것이다.
이 인절미의 동질화 정신을 살리고 먹기 편하게 만든것이 떡국이다. 달떡을 가래로 길게 빼어 먹음으로써
오복중의 으뜸인 축수(祝壽)를 가중시킨 것이다. 떡가래를 장명루(長命縷)라 불렀음도 그때문이다. 설날 아침 떡국은 그저 먹으면 한살 더먹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이화력을 동화력으로, 이질감을 동질감으로 수렴하는 성숙을 요구하는 정신음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