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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등산 정보 스크랩 [유럽여행 5국 10일/ Paris] 노트르담대성당의 장미와 악마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72 09.02.15 10:3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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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당의 오른쪽에서 한 방.

 ㅇ

 올려다 보고 한 방. 성자들의 모습을 대고 한 방 한 방 하기가 송구스럽다.

 두개의 탑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탑의 몸은 하나다.

 세개의 문.

 어디가나 한국인들이 버글 버글. 앞 쪽은 우리 일행이다.

파리 가이드 선생의 설명이 열심인데 아마도 내가 여기 쓴 글 중의 몇 대목이리라.

 마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기했다가 들어간다. 마치 먼저 자리 잡는 영화관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과연 깜깜 절벽. 카메라의 후랏시를 터트려보았자 찍히는 것은 앞의 사물뿐.

 노출을 최대로하고 찍으면 사진은 이렇게 흔들린다.

 

 

 아내와 내가 노인의 모습으로 거의 부동 자세로 섰다. 아내는 이런데 사진 나오는 것을

끔직히 싫어하나 이렇게 사진을 올리지 않으면 내 자신이 아내와 함께 갔다는 느낌이 안

나는 건망증 때문이다.

성당의 큰종  

 

 

 여기가 방향의 기점이다. 성당의 앞 마당에 있으나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가 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별로다.

 사탄 모습의 괴수는 결국 할 일은 빗물만을 입으로 토해내는 일만 한다.

 

 괴수가 가까이는 세능강을 멀리는 에펠탑을 본다.

생각하는 것은 언제쯤 비가 오려나 일까.

 중앙에 아기 예수를 껴안은 성모 마리아가 계시다.

 본당 모습. 실제로 이런 사진을 찍기는 아주 힘들다. 워낙 어두워서다.

일본 사이트에서 남의 사진을 퍼왔다.

 



[황지희와 유럽여행 5국 10일/ Paris] 노트르담대성당(Cathdrale Notre-Dame de Paris)의 장미와 악마

2007/09/14 FRI

 

아침의 파리는 고도 파리가 아니다. 우리 서울과 마찬가지로 시끄럽고 떠들썩한 파리이다.

버스는 출발을 했는데 여행사의 인솔자나 현지의 가이드나 옵션 이야기를 꺼낸다.

 

여행객들은 옵션 이야기가 나오면 갈등을 겪는다.

어떻게 온 여행인데 볼 것을 더 보고 가려는 욕심이 나게 마련. 그 마련에는 꼭 돈과 시간이 들어가며 다른 하나의 희생이 따른다.

옵션 이야기는 파리의 버스 속에서 처음 듣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사에서 여행객 개인들에게 이런 옵션 내용을 보냈다.

서유럽

로마시내벤츠투어

60유로

4인기준 50유로2시간정도시내관광

베니스곤돌라

40~50유로

4~5인탑승 15분정도 소요

세느강유람선+에펠탑전망대(야간)

40~50유로

1시간30분~2시간소요

물랑루즈쇼

170유로

일반쇼,1시간30분관람

베니스택시관광

30유로

일반택시아니라 보트임.30분이내소요

카프리섬

120유로

1시간30분소요-날씨좋아야가능

 

그러나 떠나기 전에 이 내용을 제대로 살피는 사람은 한 번 여행을 다녀온 사람 말고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히 꼼꼼한 사람이든지 아주 피곤한 사람일 것이다.

 

파리의 가이드는 말한다.

" 낮에 보는 세느강은 좋지만 밤에 보는 세느강은 더 멋집니다. 두고 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기억이 될 것입니다. 낮에는 노트르담 성당을 보시고 점심을 드신 뒤에 파리 사람에게 영원한 낭만의 언덕인 몽마르트언덕을 보시고 나서 베르사이유에 가셔서 베르사이유궁전을 보시자고요. 그리고 나서 야간 에펠탑을 보시면 훌륭한 파리 관광이 되실 것입니다. "

 

추억을 만들려 온 사람들에게 더 많은 추억을 약간의 현금을 더 내고 추억을 안고 가는데 뉘라서 아니라고 하랴.

그러나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산에서 온 30-40 일행이 넷인 공무원들이 있다. 그들을 부산갈매기라고 하자.

그들은 낮의 세느강을 보러 간다고 했다.

그것은 여행사와 약속한 당연한 권리로서 주장할 만하다.

따라서 파리의 가이드는 우리를 데리고 노트르담 성당으로 가고 황지희 씨는 그들 넷을 데리고 한 낮의 세느강으로 갔다.

 

지금 와서는 낮의 세느강에서 유람선을 타지 못한 것이 아쉽다.

밤에 보는 세느강도 탄성은 나왔지만 어두운 강을 따라 가는 것은 배에서 강변을 향해 쏘는 조명의 한계가 있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파리의 가이드는 시간을 정해준다.

패키지는 시간과의 여행이다.

누구 하나가 시간을 어기면 일행의 다음 일정이 틀어지기 때문에 당연한 규정이니 따라야한다.

내가 사진에 찍힌 시간 기록을 보니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파리의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시간이 11시 2분, 노트르담 성당에 들어가서 사람들의 꽁무니를 따라 문밖으로 나온 시간이 11 시 16분이니 14분 동안에 본 것을 말하기란 참으로 황당무계하다,

대단한 건물이다. 잘 지었다. 하는 탄성만을 두고 나온다.

건물 하나 건물안의 유리창의 무뉘 하나에도 사연과 곡절이 있는 것을 찬찬히 생각할 틈이 있을 리 없다.

먼저 보고 생각은 나중에 하는 것이 패키지 여행이다.

 

안트워프 츄우오역으로부터 스헤르트강방면을 향하면 넓은 하늘에 꽂히듯 우뚝 솟아 서는 탑과 같은 건물이 보인다. 전체 높이123m에 미친다. 바로크 건축의 이 거대한 건물은, 사실은 두 개의 탑이 될 것이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부터 하나의 탑이 되었다. 사진을 잘 보면 좌우 대칭에 지어졌지만 우측만 도중에 끊어져 있는 상태가 되어 있다. 그 점도 이 대성당의 특징의 하나가 되어 있다. 파리에서 길을 잃으면 이 대성당을 표적으로 하면 아마 미아는 되지 않아도 되리라. (물론 에펠탑을 기준할 수도 있지만 )

 

노트르담 성당의 앞마당에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니 참으로 신기하다.

그들 중 누구는 신자가 있을 터이나 나처럼 무신자 또한 많으리라.

다만 호기심으로 지나가는 사물의 하나로만 볼 따름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거대한 성당을 만든 시대와 같이 지금도 그 믿음은 존재하는가.

 

과거에는 이런 말들이 통했다. 동정녀가 아기를 낳는다든지(말이 되는 소리인가. 처녀가 아기를 뱄다면 상대가 누구든 있기 마련이다라는 반박이 돌아오는 세상이다), 삼위일체론, 그리스도의 신성(과연 그 분만 신성하고 다른 종교의 창시자는 비신성한가), 교황의 무오류성(완벽한 무오류라만 신이 되지 왜 인간으로 태어났는가) 등 과거에는 확실했던 교리들이 곳곳마다 얻어터지고 기본 교리만 잘 지키자는 종파들이 번창하는 시절이 되었다.

신앙의 위기 시대에 대단한 성당은 마치 기분 좋은 허풍처럼 보인다.

 

과연 여기 노트르담 대 성당에 신은 계시는가.

신자와 비신자의 발자국 소리가 하루 종일 가득한 성전에서 신은 세입자 신세다. 전체 공간 중 일부만 당신의 영역이다. 이제는 국가의 자존심의 전당으로 쓰이는 것이 아닌가.

 

파리의 상징 노트르담 성당의 위에는 악마의 석상이 성당에 들어오는 여행객들을 노려보고 있다. 여기저기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려다 본다. 교회 곳곳에 자리를 잡고 파리 전체를 위에서 꼬나본다.

물론 이 장면은 성당의 위에서나 올라가서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괴수의 용도는 어떤 상징과 용도일 것이다.

고딕 건물의 고딕양식은 높이와 상향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고딕시대 교회의 건물들은 거의 가 높다. 이런 건물들은 비 온 뒤 고인물의 막히지 않고 잘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지붕의 낙수 홈을 특별히 만들어야 했다. 고딕시대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은 지붕의 낙수 홈을 만들 때 괴수의 주둥이를 사용하고 그에 따른 몸통인 괴수의 석상을 만들었다.

 

낙수 홈은 건축 구조학적으로 당연히 교회 밖에 있다. 그때 건축예술가들은 신의 은총이 가득한 신성한 교회 내부세계와 악의 세력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외부세계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키기 위해 낙수 홈으로 악마의 석상을 사용했다. 즉 건축가들은 “교회 밖에는 악마가 항상 노려보고 있으니 신앙으로 무장”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던 것이다. 매 일요일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런 괴수의 석상을 보고 공포에 휩싸이며 신앙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성서적으로 살기를 다짐한다. 고딕양식이 문화재로 가치가 있는 것은 이렇게 당시 유럽 사람들의 생활까지 녹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괴수를 무서워 할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을 가장 무서워하여야 한다는 것을 간과했을까.

괴수가 존재하는 참된 조건은 달리 있었다. 성당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괴수의 석상들은 용이나 6개의 몸을 가진 괴수 등 강력한 모습으로 귀신의 왕들이다.

교회의 건물에 귀신의 왕이 다른 잡귀가 감히 범접을 할 수 없다. 강하고 힘 있는 악귀가 있으니 다른 악신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땅으로 보따리를 싸고 간다. 교회밖에 귀신왕의 석상을 둠으로써 악마의 세력을 몰아낸다. 교회와 수도원을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돌로 만든 부적의 의미이다.

우리가 사찰에 가면 문에 자리 잡은 사천왕이 눈을 부릅뜬 모습을 볼 수 있다.

악귀를 물리치자는 생각에서는 같은 뜻이다.

 

최초로 괴수의 석상이 사용된 곳은 1220년 라옹 교회였다. 그 후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 이를 모방해 짓자 노트르담 성당의 괴수 석상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시대가 바뀌자 동물의 모양에서 사람의 모양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뜻이 바뀌어 반유대주의 운동에 사용되기도 했다.

 

고딕교회에 붙어 있는 괴수의 석상을 가고일이라 부른다. 가고일은 영어의 gargle에서 왔다. 교회 지붕 처마 밑에서 물을 입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괴수의 몸 안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서양인이 듣기로는 가글 가글 하고 ?렸는가 보다. 이 소리를 본 따 이름을 붙였다.

 

파리의 노트르담대성당(Cathdrale Notre-Dame de Paris,노트르담 사원 )은 고딕 건축물을 대표하는 건물이며,프랑스,파리의시테섬에 있는 로마·가톨릭교회의 대성당.「파리의 세이누 하안」라고 하는 명칭으로, 주변의 문화유산과 함께 1991년에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 현재도 노트르담대성당은, 파리 대사교좌 성당으로서 사용되고 다. 노트르담과는 프랑스 말로 「우리들이 귀부인」즉 성모 마리아 가리킨다.

 

노트르담 성당의 부지는 로마 시대에는 Jupiter신사의 경내에서 있었지만 로마 붕괴 후 크리스트교도가 바실리카를 건설했다. 1163년에 주교 모리스·드·쉬리-에 의해서, 현재에 볼 수 있는 건축물이 착공되어 1225년에 완성했다. 외관을 구성하는 쌍탑은1250년에 이르기까지 공사가 계속되었다. 플라잉·밧트레스하12세기에 현 양식으로 되었다. 있었다. 최종적인 준공은1345년.

 

외관을 장식하는 조각, 지붕의 탑, 그 외 많은 분은,19세기의 고딕·리바이바르기에우제누·에마뉴엘·비오레·르·듀크에 의해서 큰 폭으로 바꾼 것이다. 1831년의 빅토르·Hugo의 소설 「노트르담·드·파리」( 노트르담의 곱사등이)의 무대가 되었다.

 

1804년5월28일에 제정을 선언했던 나폴레옹·보나파르트의 대관식은1804년12월2일에 노트르담대성당에서 행해졌다.

 

파리로부터 각지에의 거리를 나타낼 때의 기점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앞이다.

 

대성당에 들어가면, 거기에는 아주 큰 예배당이 있다. 좌우 측면은 많은 스테인 글라스로 덮여 그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들어온다. 루벤스의 그림이 좌우에 놓여 있습니다. 왼손에는 「십자가에 붙여지는 그리스도」라고 오른손에는 「십자가로부터 강판 당하는 그리스도」가 있어 성서 속 예수가 십자가에 걸리는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이 훌륭한 그림의 옆에는 큰 스테인 글라스에서 햇빛이 루벤스의 그림을 비추고 있다. 시간대에 따라 변하는 햇빛에 따라 그림의 표정도 달라진다. 달이 비추일 때는 어떠했을까 .

천정으로부터 매달린 이 거대한 십자가는, 루스의 그림과 함께 중요한 심벌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안에 들어와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이 십자가와 정면에 있는 루벤스의「성모승천」이다.

 

십자가의 디자인도 복잡하고 섬세하여 가까이서 압도되고 만다.

십자가는 크리스트교의 상징이며 여러 가지 작품이 있지만 세계에서 아름다운 십자가의 하나이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는 장미를 많이 본다. 성모 마리아가 바칠 수 있었던 원형이 큰 채색창, 장식된 꽃, 대성당의 벽이 작은 조각….장미는 7백년 남짓 전부터, 방문하는 사람들을 천상의 낙원으로 이끌어 왔다.

 

파리·노트르담대성당의 내부. 아치형의 천정아래에, 십자가와 슬픔의 성모상이 자리 잡고 있다.

대성당의 측면, 높이 21미터의 위치에 있는 원형 스테인 글라스 '북쪽의 장미창'

이다.

 

대성당의 정면 2층에는 서쪽의 장미창이 있다

정면에서 보이는 서쪽의 장미창은 직경10미터, 측면에 있는 북쪽과 남쪽의 장미창은 직경 13미터. 햇볕을 받아 빛나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그 중에서도, '북쪽의 장미창'은 1252년의 제작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이다. 기조색은 새벽 무렵을 나타내는 청자색깔이며 도안은 어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와 둘러싸고 있는 80명의 성자들이다.

사원의 이름 「노트르담」은 「우리들의 귀부인」의 의미이다. 프랑스에서는 친밀감을 담아 성모 마리아를 이렇게 부른다. 즉 대성당은 「여성안의 여성」이라고 여겨지는 마리아가 바칠 수 있었던 건물이다. 그리고 장미는 「꽃안의 꽃」이라고 칭해진다.

 

그런 배경을 가지면서, 대성당의 벽에 꽃 피는 「장미창」.그러나 성서에 등장하는 마리아 연고의 꽃은 백합. 왜 「장미창」인가 ―.

 

초기의 크리스트교에서는, 가시가 있는 장미는 「사악한 꽃」이라고 여겨지고 있었다. 포교자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로마인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상징하는 이교의 꽃으로서 싫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트교가 로마 제국에 공인되면서 "장미에는 원래 가시가 없다"라는 가르침으로 교회는 장미를 천천히 받아들인다.

 

4 세기의 성인 안브로시우스는 "가시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범한 원죄를 잊지 않도록 신이 새롭게 더하는 한편 낙원을 나타내는 고상한 모습과 향기는 남겨졌다"라고 설교했다고 전하고 있다.

 

"사악한 꽃"에서 "고상한 낙원의 꽃"으로 탈바꿈하여 색깔마저 뜻이 담겼다. 빨강 장미는 순교자의 피를 상징하고 흰색 장미는 성모 마리아의 순결의 심벌로 삼았다. 사실상 그 배경에는 다른 꽃보다도 더 인기가 있는 비싼 장미를 포교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12 세기에 들어서서 장미는 서구에서 한층 각광을 받는다. 프랑스에서는 13 세기에 걸쳐 토속 신앙과 크리스트교가 결부되어 성모 마리아 신앙이 단번에 퍼졌다. 그런 시대에 노트르담의 대성당은 세워졌고 마리아에 바치는 장미창이 장착되었다.

 

북쪽의 장미창은 루이9세의 어머니 브란슈·드·카스치유가 만들게 했다. 아들 루이는 그 당시 제6회의 십자군)을 인솔해 이집트에 원정중 포로가 되는 등 고생이 말도 아닐 때였다.  그녀는 자신이나 아들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를 마리아에 바쳤다.

 

노트르담을 떠나기 전에 다시 대성당의 한가운데에 서 보자. 정면의 단상에는 책 모양으로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슬픔의 성모상」.그 대좌나 금속제의 울타리에는 장미의 문양에다가. 가시가 없는 장미가 핀다고 하는 천상의 낙원으로부터 쏟아지는 빛은 하고 많은 사람들의 한숨을 토하게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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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2.15 18:54

    첫댓글 관광을 하면서 한편의 영화처럼 잘 정리되어..잘 읽어보았습니다. 십여년전 아프리카 출장길에 들러 파리의 명물을 이틀간 대충 본적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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