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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신교의 회개와 대속(代贖
그리스도교 중 개신교는 이슬람교처럼 별도의 속죄의식 없이 개인이 신에게 회개 기도를 한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리스도교에는 대속(代贖)이라는 교리가 있다는 것이다. 대속이란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음으로써 그때 흘린 피로 인류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했다는 개념이다. 이에 대해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는 게 아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는 것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속죄 덕분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인간의 회개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 얻는다는 이야기이며, 대속 덕분에 누구든 회개하면 구원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개신교에서의 용서와 회개의 본질을 묻는 사례로 영화
‘밀양’이 자주 거론된다.<자료5> 영화에서 여주인공 신애의 어린 아들은 살인범에게 유괴되어 무참히 살해된다. 괴로워하던 신애는 우연히 개신교 부흥회에 나가게 되고, 마음의 평안을 얻은 것 같자 자신에게 끔찍한 죄를 저지른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면회소에서 만난 살인범은 자신도 감옥에서 개신교를 믿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나 제 죄를 용서받았다며 태연하게 얘기한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요?” 반문하는 신애에게 살인범은 이렇게 얘기한다. “예!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부터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하고…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한테 회개하고 용서받으니 이렇게 편합니다, 내 마음이.” 살인범은 이미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있었다. 자식을 잃게 한 유괴범을 용서하러 교도소까지 찾아갔던 신애에게 닥친 처참한 현실이었다. 신애는 혼절하여 쓰러지고 만다.
이후 신애를 만난 교회 사람들은 이런 때일수록 우리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겨내야 한다며, 하나님께서 용서했으니 신애에게도 용서하라고 설득한다. 이에 분노한 신애는 이들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용서요? 어떻게 용서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를 받았대요. 하나님한테.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대요. 이미 용서를 얻었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용서를 해요?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밀양은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의 대속을 믿고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개신교의 구원관에 대해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영화다. 하지만 그 교리가 살인자의 마음을 평안하게 만든 사실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 가톨릭의 속죄 의식 ‘고해성사’
가톨릭에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고해성사’라는 속죄의식이 있다. 고해성사의 방법은 자신이 지은 죄를 생각해보고, 진정으로 뉘우치며,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백기도와 통회기도를 한 다음 신부에게 말로써 죄를 고백하고, 신부가 정해주는 보속을 실천하는 것이다. 보속이란 지은 죄를 적절한 방법으로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보통 기도, 헌금, 자선 행위, 봉사 등을 하게 된다. 그런데 고해성사에는 지금까지 살펴본 다른 종교의 속죄 의식과 구별되는 매우 큰 차이점이 있다. 개인이 신에게 직접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부를 통해 죄를 고백하고 사함 받는다는 것이다.
왜 본인의 잘못을 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야 하는가? 이탈리아의 유명한 설교가 루이지 주세페 가브리아노 신부는 <영혼의 성약(聖藥)-고해성사의 이해(가톨릭출판사, 2001)>라는 저서에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고해 사제는 예수의 대리자요, 예수가 신부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다.<자료6> 신부는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면 그 환자보다 훨씬 병상을 잘 아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과 결점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이 무슨 죄를 범했든지, 또 몇 번이나 범했든지, 신의 대리자를 찾아가 비밀리에 고해함으로써 간단하게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어떤 대죄일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고해 사제에게 고해하면 무조건 용서를 받는다. 신부로부터 명령받는 의무인 보속을 이행해라. 고해 사제의 훈계와 위로를 받아들이는 영혼만이 참된 평화를 마음에 누리게 될 것이다.”
진정한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서는 신부가 인간이 아닌 신으로서 고해를 받고 사죄해준다는 교리를 믿을 것과, 고해 사제에 대한 신뢰, 순종, 존경, 애덕, 감사가 있어야 함을 요구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나 어렸을 때부터 가톨릭 교리를 교육받은 사람들은 이를 진실로 믿고 신부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신부가 부당한 주문을 한다해도 그 말에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성직자가 자신의 지위와 교인들의 순종적인 심리를 이용하여 고해성사 도중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기사들이 숱하게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심리를 지배당한 피해자들은 당시에 그것이 범죄인지 몰랐다거나 신고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뒤늦게 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7년, 호주 조사 당국은 5년간의 조사 끝에 아동 성학대 주요 가해 집단으로 가톨릭교회를 지목하며, 아동 성범죄와 관련한 고해성사 내용을 신고하라고 권고했다.<자료7> 왕립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아동 성학대 가해자의 절반이 종교 단체며, 가해 종교 단체 중 60% 이상이 가톨릭교회로, 1,880명의 사제들이 4,029명의 10~14살 어린이들에게 아동 성범죄를 저질렀다. 당국은 아동 성범죄와 관련한 고해성사 내용을 신고하라고 권고했으나, 가톨릭계는 ‘신성불가침’을 이유로 거부했다.
▣ 고해성사와 마피아의 침묵의 계율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에서 들은 내용의 비밀 유지를 신성불가침한 의무로 삼고 있다. 2019년, 교황청 법원은 “고해성사는 신으로부터 직접 부여받은 임무로, 어떤 정부나 법률도 고해성사의 비밀유지 규정을 위반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내용의 문서를 발표한 바 있다.
2021년, 프랑스에서 지난 70년 동안 33만 명의 어린이들이 가톨릭교회 관련자들에게 성학대 당했다는 보고서가 발표되었고, 보고서는 가톨릭교회의 조직적인 성착취 은폐를 지적하며 교회가 프랑스의 법치주의를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프랑스 가톨릭 주교 대표자는 “고해성사의 비밀 유지 의무는 세속법 위에 있으며, 영원한 비밀이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되었다. 가톨릭계는 고해성사의 비밀 유지법을 침해하는 것은 누구나 신 앞에 자유롭게 죄를 고백하고 씻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훼손하려 한다 비난했다.
신성불가침한 약속으로 지켜낸 그 종교의 자유는 이탈리아 마피아 단체들도 누리고 있다. 이탈리아 마피아는 대부분 가톨릭 신자다. 그들은 총을 쏘기 앞서 묵주를 만지며 기도한다고 한다. 마피아가 가톨릭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교황청과 검은 커넥션을 유지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마피아 단원 사이에는 오메르타(Omerta)라는 침묵의 규약이 있다. 경찰 등에 잡혀도 조직의 비밀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협력을 거부한다는 침묵의 맹세다. 밀고자는 죽임으로 단죄한다. 다행히 그들이 믿는 종교는 범죄 사실을 고백하더라도 오메르타를 지켜줄 것이다.
2017년 마피아의 본거지인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펜니시 주교는 자신이 담당하는 교구에서 마피아 조직원은 대부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대자나 대녀가 될 아이의 세례식에 입회하여 종교적 가르침을 주기로 약속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하지만 펜니시 주교는 이번 지침이 죄를 뉘우치는 사람들에게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며 “만약 누군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죄를 용서받기를 청한다면 교회는 당사자와 개심의 방법을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회에서 용서해 준다면 마피아들도 구원을 얻는 것일까?
비슷한 물음을 던진 사람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생존한 유대인 시몬 비젠탈은 자신이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화를 책으로 냈다.<자료8> 그는 수용돼 있던 중 죽음에 임박한 한 나치 장교의 병실에 불려가 놀라운 말을 듣게 된다. 나치 장교는 자신이 수백 명의 유대인을 좁은 집에 몰아넣은 뒤 불을 질렀고, 온몸에 불이 붙은 채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했다며 범죄사실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한 것이다. 비젠탈은 대답하지 않고 병실을 나섰다. 이후 그는 번뇌에 빠졌다. ‘용서했어야 할까’, ‘나의 용서가 모든 유대인들을 대신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었다. 비젠탈은 독자들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하는 화두를 남기며 원고를 마무리한다. 그 물음은 독자들로 하여금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를 놓고 많은 상념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나치 장교가 진심으로 뉘우쳤는지, 죽기 직전 마음의 짐을 놓고 싶었던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에게 죄의식이 있었음은 알 수 있다. 죄의식의 기원과 발달에 대한 한 논문에 따르면, 인간이 죄를 지으면 두려움, 불안, 후회, 수치심 등의 다소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하지만, 오히려 그 불편함이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을 유도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죄의식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졌다면, 부정적인 정서를 제거함으로써 평안을 찾기보다는 다시는 그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죄를 짓는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여 평안을 찾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종교보다는 가능하게 이끌어주는 종교가 이상적일 것이다.
기획기사 속 책 소개
1969년. 한 유대인이 강제수용소에서 겪었던 비극적 체험을 담은『해바라기』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세계를 뒤흔든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치의 죄악이 절정으로 치닫던 1940년대 초반.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죽어가던 나치 장교가 어느 유대인을 병실로 불러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간절하게 용서를 청한다.
“저는 나치 장교였습니다. 저는 유대인 수백 명을 집에 가두고 불태웠습니다. 뛰쳐나오는 사람에겐 총을 난사했죠. 오, 하느님…”, “나는 씻지 못할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 죽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유대인은 그의 부탁을 거절한 채 병실을 나서버린다. 증오와 연민, 정의와 관용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끝내 침묵을 선택했던 그 유대인은 훗날 아돌프 아이히만을 비롯한 1,100여 명의 나치 전범들을 추적해 심판대에 세운 전설적 ‘나치 헌터’ 시몬 비젠탈이었다. 글의 말미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 것인가?”
1976년. 그의 질문에 대한 전 세계 지식인, 종교인, 예술가들의 답변이 담긴 책이 출간된다.
“과연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 것일까? 가해자의 참회가 없더라도?
만약 가해자가 참회하면, 당연히 용서해야 하는가?
한 개인이 다른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
용서란 무엇이고, 용서받을 자격은 어떻게 주어지며 용서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지를 저마다의 근거로 제시한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1997년에는 전후세대(戰後世代) 필자들의 글이 추가된 개정판이 출간되었는데, 그 번역본이『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다. 제1부 ‘해바라기’에는 시몬 비젠탈의 글이, 제2부 ‘심포지엄’에는 그의 질문에 대한 53명의 답변이 실려 있다. 어떤 이는 비젠탈의 침묵을 옹호하고, 어떤 이는 비판한다.
종교가들의 견해에는 그들의 교리가 녹아있다.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자들의 종교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주장하는 이의 생각의 바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theweekly.co.kr/?p=75748
첫댓글 읽어봐야겠어요
잘보고가요
저렇게 극악무도한 죄를 짓고도 용서구하면 해결되는줄 안다는 사실이 끔찍하네요
잘보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