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와 두유 사이
내가 처음 우유라는 것을 맛본 것은 아마 국민학교 1~2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전쟁의 상처가 아직 거리와
사람들 얼굴에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는 미국 원조로 들어온 하얀 분유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도시락 통에 담긴 분유는 그 자체로 신기한 음식이었다. 우리는 손도 씻지 않은 채 허겁지겁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다. 입안에서는 달큰하면서도 낯선 맛이 돌았고, 아이들은 마치 귀한 간식을 얻은 듯 좋아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뒤틀리고 설사가 쏟아졌다. 교실 뒤편과 운동장 화장실은 종일
부산스러웠다.
어떤 아이들은 집에 가져가 밥솥에 찌기도 했다. 그것이 더 맛있다는 아이도 있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
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 우유란 몸에 좋은 음식이기 전에 “배 아픈 음식”이었다.
당시에는 우유를 파는 가게도 거의 없었다. 젖소를 본 적도 없었고, 우유가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지조차 몰랐다.
우유는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의 먼 나라 이야기 같은 것이었다. 나중에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쯤 비로소
유리병에 담긴 우유가 시중에 나오기 시작했지만, 그것 역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진열장 너머
의 우유는 부유한 사람들의 음식처럼 느껴졌다.
세월이 흘러 군 생활을 마칠 무렵, 세상에는 새로운 음료가 등장했다. 콩으로 만든 우유라는 두유였다. 그리고 그
이름은 “베지밀”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건강식이라 불렀고, 배 아픈 우유 대신 마실 수 있는 음료라며 반가워했다.
나중에야 나는 그 두유 뒤에 한 의사의 안타까운 고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아과 의사였던 정재원
박사는 우유를 먹고도 설사와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아이들을 보며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원인
이 ‘유당불내증’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우유 속 유당을 분해하는 락타아제가 부족하면 사람은 우유를 제대로 소화
하지 못한다. 우리 배 속에서 일어난 소동은 단순한 허약함이 아니라 몸의 체질 때문이었던 셈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어린 시절은 우유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목장에서 갓 짜낸 우유를 마시는 문화도 없었고,
치즈나 버터를 먹는 식생활도 아니었다. 된장국과 보리밥, 김치와 나물로 살아온 몸에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서양
의 음식이 들어왔으니, 배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유를 자주 먹어야 락타아제 효소가 유지되는
데, 우리는 그런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반면 두유는 달랐다. 콩은 오래전부터 우리 밥상 가까이에 있었다. 두부가 있었고, 된장이 있었고, 청국장이 있었다.
두유는 어쩌면 낯선 음료가 아니라 오래된 콩 문화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두유
를 마시면 속이 편안했다. 우유처럼 배가 뒤틀리지도 않았고, 화장실을 급히 찾을 일도 없었다. 콩 특유의 고소한 맛
은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의 밥 냄새와 닮아 있었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이 두유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우유를 아무렇지 않게 마시고, 어떤 이는 콩 냄새만
맡아도 고개를 젓는다. 사람의 몸은 저마다 다르고, 음식과의 인연도 다 다르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는 우유보다
두유가 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지금도 우유를 즐기지 않는다. 가끔 마시면 여전히 배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한 시대의 가난과 원조
물자, 학교 운동장의 먼지 냄새, 그리고 콩으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의 노력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하얀 우유는 내게 서양 문명의 상징처럼 멀고 낯선 음식이었다. 그러나 연한 베이지빛 두유는 오래전 우리 부엌의
장독대와 이어져 있는 음식이었다. 우유와 두유의 차이는 단순히 동물성과 식물성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
의 역사와 식문화, 그리고 사람 몸의 기억이 만들어 낸 차이이기도 하다.
세월은 많이 변했다. 이제는 편의점만 가도 수십 가지 우유와 두유가 진열되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신다. 하지만 내게 가장 깊이 남아 있는 것은 여전히 국민학교 교실에서 손바닥 가득 찍어 먹던 하얀 분유의
냄새와, 훗날 처음 마셨던 두유의 고소하고 편안한 맛이다. 그것은 가난했던 시대를 지나 살아온 몸이 스스로 선택한
기억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