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에 서울 한복판에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당시엔 보화각)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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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遺墨과 진경을 만난다.
간송미술관서 50주기 특별전… 겸재·단원, 간송의 갱지 작품 110여점 일반에 공개
"예술품의 존귀한 바는 그것이 우수한 작품일수록 그 시대와 문화를 가장 정직하고 똑똑하게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겁니다."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사진)은 1959년 청소년 잡지 '학원(學園)'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10만석지기 거부(巨富)의 상속자였던 간송은 이런 신념으로 일본에 빼앗긴 우리 문화재 되찾기에 평생을 바쳤다.
그가 1936년 서울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장에서 조선 청화백자 한 점을 1만4580원에 낙찰받은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됐다.
큰 기와집 한 채가 1000원이던 시절, 500원으로 시작된 경매는 순식간에 1만원을 넘어갔다.
일본 골동품상 야마나카와 간송 두 사람이 끈질기게 경합했기 때문. 야마나카가 1만4550원을 끝으로 두 손을 들자, 간송은 1만4580원을 불러 마침내 백자를 손에 넣었다.
나물 캐던 할머니가 야산에서 파내 참기름 병으로 사용하다 단돈 5원에 일본 상인에게 팔아버렸다고 전해지는 국보 294호 '청화백자 양각진사철채 난국초충문병'은 이렇게 고국(故國)의 품에 남게 됐다.
간송 전형필의 1956년작‘묵국(墨菊)’. 그림을 그리게 된 과정을 설명한 화면 왼쪽 글씨는 간송의 외사촌형인 월탄 박종화가 썼다. /간송미술관 제공
올해는 '문화독립운동가' 간송의 50주기.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오는 5월13일~27일 '간송 오십주기 기념 진경시대 회화대전'을 연다.
그의 유묵(遺墨) 넉 점도 이번 전시에 나왔다. 누런 갱지 위에 숲을 거니는 선비를 그린 '방고사소요(倣高士逍遙·1956)'는 추사(秋史)의 '고사소요'를 임모(臨摸)한 것.
최완수(70) 간송미술관 실장은 "아이들이나 쓰는 갱지에 그림을 남긴 것에서 문화재 구입에는 큰돈을 쓰면서도 자신에겐 인색했던 간송의 면모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갈필(渴筆)의 '방고사소요'가 수척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데 반해, '묵국(墨菊·1956)'은 활달하고 호방한 필치. 외사촌 형인 소설가 월탄(月灘) 박종화와 친분이 두터웠던 간송이 월탄과 대작(對酌)하던 중 취흥(醉興)에 그린 것이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진경시대(眞景時代)'는 조선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우리 문화의 절정기였던 숙종(1661~1720)~정조(1752~1800)대 125년간을 일컫는 말. 진경시대 회화의 대표주자 겸재(謙齋) 정선(1676~1759) 작품으로 '청풍계(淸風溪)', '인곡유거(仁谷幽居)' 등이 나왔다.
'청풍계'는 인왕산 특유의 백색 암벽(岩壁)을 장쾌한 붓질로 검게 묘사해 흑백을 뒤바꿔버린 역작. '인곡유거'는 51세 때 인왕산 밑으로 이사한 겸재가 자신의 일상을 수채화처럼 맑은 필치로 그린 그림이다.
이밖에 현재(玄齋) 심사정(1707~1769), 단원(檀園) 김홍도(1745~?), 혜원(蕙園) 신윤복(1758~?) 등 조선후기 화가들의 작품 110여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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