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날씨의 오후,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두물머리’를 찾아
1.5km산책길을 거닐며 강가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
가을을 떠나는 단풍, 강가에 흐드러진 억새풀, 발 밑에 떨어진 낙엽,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저 흐르는 세월 속의 자연은 내년에도 똑 같은
모습으로 다시 피어남이 창조의 섭리일 텐데, 여기에 앉아있는 나에게,
젊었을 때는 도저히 느끼거나 알지 못했던 사색의 세계가 상념의 음률 위에 펼쳐진다.
비록 육체는 점점 사그라지지만, 정신은 맑고 사유가 넓어지며, 마음은 따뜻하고
여유로우며, 가슴은 뜨겁고 깊어지는, 인생의 깊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계절의 변화를 싣고 온 세월의 흐름을 바라 보면서 삶과 함께 나이 듦을 아련히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아름다운 사람아! 그 이름은--나이 듦”이란 명제가.
가슴에 늦가을바람과 함께 스며든다.
땅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손바닥에 얹어 놓고 유심히 들어다 보니,
그 안에는 시간을 타고 흘러간 ‘생명의 궤적’이 뚜렷이 보인다.
봄에는 연녹색의 새순을 보이다가 여름에는 녹음 짙은 푸르름을 자랑하고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을 뽐내다가 겨울이 오면 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낙엽에게서, 모진 삭풍과 추위를 이기고
내년에 다시 새순으로 싹틈을 기약하며 내 손안에서 부서지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신비한 창조의 그 섭리 소리가, 생명이 끝나는 마지막 절규인양 섬뜩함을 넘어,
잠깐 어디 다녀 오겠다고 인사하는 영원을 잇는 부르짖음의 메아리로 들렸다.
나도 낙엽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저 낙엽은 봄에는 새싹의 희망을, 여름에는
푸르름의 누림을, 가을에는 화려한 정취의 절정을, 겨울에는 이 모든 것을 낙엽에 안고
미련 없이 떠나는 삶의 의미를 인간에게 가르치고 선물로 남기지만,
나는 오늘까지 인생을 살아 온, 수 없는 세월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보내면서도,
남에게 무슨 의미를 주었으며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던가?---하는 물음이
그 낙엽 부셔지는 소리에 반추되어 아프게 들려 온다.
무덤을 찾아가 보면, 무덤 앞에는 각양각색의 묘비명이,그 사람의 생전의 삶과 인생을
한마디로 농축하여 보통 새겨져 있다. 대부분, 일반인은 “ㅇㅇㅇ之 墓(ㅇㅇㅇ의 묘)”, 라고
무덤의 주인이 누구라는 이름만 새겨놓고 있다.
유명인의 묘비명을 살펴보면,
헤밍웨이: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다”
존 키즈: “여기, 이름을 물위에 새긴 사람이 잠든다.”
아펜젤러: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스탕달: “살았다, 쓰다, 사랑했다.”
조병화(시인): “나는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 왔습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나는, 오늘 내 손안에서 부서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나의 묘비명에는 어떤 글을 써야, 나의 삶을 가장 진실되게 농축한 말이 될까?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과 같이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이렇게 서정적으로 쓰여질까?
아니면, 버너드 쇼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a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고,
지금 이순간의 나의 심경을 가장 잘 표현한 글이 쓰여질 까봐 걱정이다.
“나는 창조주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이제 창조주의 심부름 다 마치고, 창조주께 돌아 갑니다”
---이렇게 농축된 묘비명을 쓸 수 있는, 보람 있는 인생이 되었으면,
그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램이 밀려온다.
청명한 늦가을 오후, 세월의 무게와 삶의 질곡과 세상 고뇌의 먼지를 내려놓으려고,
단풍과 낙엽과 강물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자연의 절경 두물머리를 찾았다가,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 게 하는 낙엽을 통하여, 오히려 인생의 무게와 지난 삶의 후회와
남은 생애의 각오를 심각히 두터이 하고, 손안의 부서진 낙엽을 털고,
이 시간 단풍과 낙엽의 정취에만 젖어 즐기던 나에게,
자연세계를 통하여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재발견케 하고 가르치시는
창조의 섭리를 보게 함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기쁜 맘으로
서산의 노을이 서서히 땅거미로 비취는 강물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첫댓글 선배님, 글쓰시는 열정을 경하합니다. 컴으로 작업하시지요? 한 달에 한 두편씩 쓰시는 것 같은데 대단하십니다. 저도 선배님의 열정을 쫓아 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희수 드림
조 동문님!
그간 맘대로 긁적인 글들에 대해서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연풍광과 인간사를 바라보면서
떠오르는 상념과 생각, 반성과 다짐 등을
수필의 장르를 통해 시간나는대로
독수리 타법으로 두들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