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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257) - 조선통신사 옛길 일본기행(5)
17.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고향, 오카자키에 입성하다
5월 8일, 쾌청한 날씨다. 아침 7시 10분에 호텔을 나서 나고야 역으로 가서 나루미(鳴海) 행 열차에 올랐다. 나루미에 도착하니 7시 40분, 역사 안에서 간단한 출발식을 갖고 오카지키로 향하였다. 1일 참가자들 10여명에 Koean World News 기자 2명이 합류하여 다른 때보다 행렬이 길어졌다. 아사히신문에는 조선통신사 일행이 나루미를 출발하여 염직물로 유명한 아리마쓰(有松)에서 교류의 시간을 갖는 등의 소식이 소개되기도.
30분 쯤 걸으니 아리마쓰의 아리마쓰 나루미 교회관(絞會館)에 당도한다. 교회관 앞에 아리마쓰 나루미 교회관 이사장을 비롯하여 수십 명의 인사들이 만장을 들고 기다린다. 박수로 일행을 맞은 관계자들이 '조선통신사, 한일친선, 일한우정' 이라 새긴 염색만장을 정사, 부사, 종사관에게 건네며 환영의 뜻을 표한다. 접견실에서 커피 한 잔씩을 대접하며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중일신문 기자가 선상규 회장과 인터뷰를 청한다. Korea World News 야마다 마사키 기자는 한국어를 잘 하는데 오카자키까지 걸으며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였다. 아내와 함께 사진 찍고 취재한 내용이 기사화 될까?
아리마스에서 30여분 교류의 시간을 갖고 다시 걷기에 나서 한 시간쯤 지나니 도요야케(豊明)시에 이른다. 여러 곳에서 자주 보는 신사와 사원들 외에 학생마작연맹가맹점이라 쓴 건물에 소학생 회원을 모집하는 광고가 눈길을 끈다. 1층에는 시황제(始皇帝), 2층에는 양산박(梁山泊)이라 적힌 마작 실(室)의 이름도 흥미롭다. 곳곳에 붙어 있는 탐정관련 포스터도 한국과는 다른 풍경이다.
11시 15분, 지류(知立)시에 들어서니 고풍이 깃든 신사(神社) 휴게소에서 신사 관계자들이 경주의 황남빵처럼 지류시의 명산인 빵과 차를 대접한다. 오늘 따라 길손대접이 융숭하다.
한 시간 넘게 열심히 걸으니 안성(安城)시에 접어든다. 코스리더는 교정에 있는 한 그루 아름다운 나무를 보여주기 위해 안성소학교로 일행을 안내한다. 교실의 어린이들이 '곤니지와'를 외치며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소학교 옆에 공원이 도시락을 드는 장소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주부들이 많은 공원에서 현지동호인들에게 부탁하여 준비한 샌드위치와 닭튀김, 바나나, 토마토 등으로 점심을 맛있게 들었다.
날씨가 덥고 몸이 무거워서인가, 오후가 되니 30여분간 몽롱한 상태가 지속된다. 잠시 쉬었다 가면 좋겠지만 혼자만 남을 수 없는 일, 이처럼 걷는 중에 가끔 힘든 순간이 있다.
오후 들어 두 시간쯤 걸으니 큰 강을 건너서 오늘의 목적지인 오카자키(崗琦)에 들어선다. 입구에 하쪼미소의 향'이라는 오래된 된장공장이 있다. 관광객들의 견학코스로 개방한 듯, 찾는 이들이 많다.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에서 본 포도주 통보다 더 큰 목조의 통들이 가득한 발효저장창고가 볼만하고 사료관(史料館)에서는 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여러 자료들이 2차 대전의 공습에서도 다행히 큰 피해를 보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다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마지막은 시음(試飮)코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귀로 설명 듣고 입으로 맛보기까지 제대로 된 견학코스다. 동행한 신문기자는 '간장공장공장장,,,'으로 이어지는 어려운 발음도 알고 있어서 웃음이 나오기도.
미소공장에서 나와 30여분을 걸으니 오카자키성에 이른다. 아담한 성채가 아름답고 성 바로 옆은 이곳이 고향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신 용성신사(龍城神社), 그 바깥쪽에는 용악당(龍樂堂)이라는 공연장이 있다. 용악당에 들어서니 4시 30분, 때마침 공연장 중앙에 있는 네모진 유리관의 문이 열리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춤추는 모습과 음악을 배경으로 방문객을 환영하는 동작을 5분여 펼친다. 마치 조선통신사 걷기 일행을 영접하는 양.
오카자키성 옆의 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그 앞에 물이 맑은 강이 흐른다. 강에는 커다란 잉어 떼들이 유유히 헤엄치며 놀고 있다. 사흘 전 이치노미아에 이르는 강에서는 어린이 몸통만한 큰 물고기 한 마리가 헤엄치는 광경을 목도하기도.
강변의 큰 다리 밑에서 도착행사를 가졌다. 몸 풀기와 참가증 교부가 주된 내용, 코스리더는 오늘 걸은 거리가 30km라고 알려준다. 하루에 수십km를 여러 날 걷는 일은 힘들지만 새로운 경관과 역사, 문화를 접하며 친근한 교류의 시간도 가지게 되니 매일 매일이 뿌듯하고 새롭다. 일신(日新, 하루가 새롭다는 뜻) 일신(日新), 우일신(又日新)이로구나.
* 숙소는 도카이도의 오카자키 숙박지 자리에 있는 오카자키 선 호텔, 호텔 앞 도로에 조선통신사 모습을 담은 작은 돌조각이 있고 도카이도 53개 숙박지 중 오카자키가 세 번째로 잘 알려진 숙박지로 음식과 유희가 좋은 곳이라고 소개하는 조각도 있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사카에서 해어진 이나카기 유키 씨에게서 아내에게 안부편지가 와 있다. 발이 아프다던데 어떠한가 하고. 일본인들은 여행 중에도 틈틈이 우체국에 들려 엽서나 편지를 부친다. 아들이 어버이날을 기하여 문자를 보내왔다. 감사의 뜻과 함께 '남은 기간 건강하게 행군하시길 응원할께요. 사랑합니다. 아버지, 파이팅.' 모든 어버이들이여, 건승하시라.
18. 맡은 일에 충실한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
5월 9일, 연일 맑고 더운 날씨다. 7시 20분에 숙소를 출발하여 전날 도착행사를 가진 강변으로 향하였다. 현장에 이르니 재일대한민국민단 아이치현 오카자키 지부장인 류기행 씨와 민단관계자들과 한일협회 간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출발행사에 같이 참여한 후 민단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기도. 사회자가 출발인사를 부탁한다. '경관이 좋은 환경을 여러분과 함께 걸을 수 있어 기쁘다. 여러 곳에서 따뜻하게 환영해주고 볼만한 곳들을 방문할 수 있어서 매일 새롭고 좋은 날이다. 오늘도 즐겁고 유익한 행진이 되기를 기대한다.'
오늘부터 새로운 분들이 합류하였다. 한국에서 동국대학교 박윤희 교수 등 세 사람이 5일간 동행하게 되고 오사카에서 돌아간 이나카기 유키 씨가 홋가이도에서 다시 찾아왔다. 한국에서는 참이슬 한 박스, 홋가이도에서는 집에서 손수 구운 빵도 함께.(전날 참여한 일본인 부부도 빵을 가져와 간식이 풍성해졌다.)
8시에 출발하여 두 시간쯤 걸어가니 후지가와(藤川) 숙박지에 이른다. 교토에서 이곳까지 48리(1리는 4km)라는 이정표가 나오고 에도까지의 이정표도 적혀 있다. 각 숙박지마다 역사적 기록들이 적혀 있고 수백 년 전에 지금도 자동차가 지날 만큼 넓은 도로를 만든 것이 돋보인다. 후지가와 사적을 적은 곳에 후지가와소학교가 있다. 넓은 운동장에는 고사리 같은 어린이들이 체조대형을 펼쳐 운동중이다.
12시 경에 오카자키시에서 도요가와(豊川)시로 접어든다. 인근에 도요타자동차로 유명한 도요타(豊田), 전날 지나온 도요야케, 오늘 도착지인 도요하시(豊橋) 등 도요(豊)가 들어간 지명이 많은데 그 사연까지는 모르겠다. 점심장소는 도요가와시 고유쪼(御油町)에 있는 야지키타차타야 끽다옥(喫茶屋)이다. 오후 1시, 이곳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었다.
점심장소 찻집의 주인은 이또 야지로 베이 씨인데 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2007년 제1회 조선통신사 행렬이 이 지역을 지날 때 한국 측 진행요원인 한남수 씨가 이 찻집을 알게 되어 교분을 맺었다. 이또 야지로 베이 씨는 평화주의자로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하였다가 일본보다 문화가 앞선 것을 확인하고 출병대열에서 이탈하여 즉시 조선에 귀화한 세카이 씨를 흠모하여 경상북도에 있는 그의 연고지를 방문하는 등 한국과 한국인을 존중하는 분이다. 그런 인연으로 조선통신사 한일우정걷기 2차 때도 이곳에서 점심을 들었다. 지난 4월, 서울에서 부산까지 걷는 동안 참여한 한남수 씨가 이분의 초청으로 이틀 전에 일본에 와서 같이 시장도 보며 점심준비를 도왔다고 한다. 주인 내외는 일행들을 깍듯하게 맞이하며 맥주와 음료도 서비스 하는 등 친절을 베푼다.
조선에 귀화한 세카이는 조정으로부터 김 씨 성을 하사받고 경상북도 가창지방에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아내는 고종사촌동생이 그 후손인 김 씨 가문과 결혼하여서 임란 때 귀화한 김 씨네 사연을 잘 아는 터라 더 반가워한다.
어제는 젊은 청년이 일행들의 출발장소에 나와서 행진에 반대하는 언행을 하여 약간 어색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보다 속이 깊은 일본인들이 더 많은 것을 현지에서 실제로 체험하고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삿갓을 쓰고 같이 걸은 일본인이 다음과 같이 메일을 보내왔다.
'김태호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즉시 메일을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함께 걸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무사하게 도쿄에 골인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들을 기록해 주신 리포트를 보아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즐거웠던 그 날의 사진을, 메일에 첨부해서 보냅니다.
삿갓의 부부 드림'
오후 4시 쯤, 물이 말고 수량이 풍성한 일급하천 도요가와를 지나니 도요하시 시계로 접어든다. 시내를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가니 다시 큰 강이 흐른다. 이를 지나서 도요하시역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 시가 가깝다. 오늘의 행로는 33km, 서울에서부터 선두에서 깃발을 들고 당당하게 행진하는 기수 오시카와 코조(74세)씨가 코스리더의 시속이 6km로 너무 빠르다며 허리통증을 호소한다. 내일은 서울에서 도쿄구간 코스 중 가장 긴 41km를 걷는다. 다른 때보다 일찍 저녁을 파하고 잠자리에 들도록 하는데 기록하느라 11시가 가깝다. 푹 자고 새 힘을 얻어 열심히 걷자.
* 날마다 세탁물을 처리하는 사토 에이코 씨는 77세의 고령에도 잘 걷고 빨래까지 담당하니 너무나 노고가 많다. 일본인들은 행사 때마다 전원이 업무를 분담하여 소리 없이 각기 맡은 바 책무를 다 한다. 임란 때 귀화한 한국인을 기리는 이또 야지로 베이 씨와 맡은 일에 충실한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19. 백리 길도 잘 걷는 노익장들
5월 10일, 오전에는 옅은 구름이 끼고 오후에는 비가 내려 걷기에 좋다. 41km 긴 코스를 어떻게 감내하나 내심으로 걱정이었는데 비교적 선선한 날씨가 도와준다. 세상사도 마찬가지, 힘든 고비가 있지만 활로가 없이 꽉 막히지는 않는다.
아침 7시 10분에 숙소를 나서 전날 도착행사를 가진 도요하시 역으로 향하였다. 신간선, JR, 전철을 함께 이용하는 역 청사가 출근길 인파로 북적인다. 걷기 시작시간보다 30여분 앞서 출발지점에 가는 것은 1일참가자들의 접수와 환송인사들의 접견 등으로 교제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매일 열 명이상의 1일 참가자가 있는데 오늘은 다섯 명으로 다른 때에 비하여 적은 편이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도요하시지부의 김무상 지부장과 신경자 사무국장이 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가 물으니 민단신문을 통하여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일부러 찾아준 것을 감사하였는데 격려의 뜻을 전하며 금일봉도 건넨다., 도요하시에 1200여명의 재일동포가 살고 있는데 귀화하는 이들이 늘어나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곳곳에 뿌리내린 동포들이여, 건승하시라.
8시에 도요하시 역을 출발하여 다음 행선지인 하마마쓰(浜松)로 향하였다. 도요하시는 물고기요리가 유명한 곳이라는데 숙소에서 먹은 전날저녁과 이침 식사에 여러 모양의 생선요리가 특별하였다. 지역마다 독득한 특성이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시내를 통과하여 8km쯤 지나니 이천(二川)역이 나오고 이천 숙박지 골목으로 들어선다. 조선통신사가 쉬어가기도 하였다는 숙박지의 여러 모습이 다른 지역보다 고풍스럽다.
오전 11시 반, 사거리를 지나는데 엔도 단장과 여러 일본인들이 이정표를 가리키며 아이치(愛知)현에서 시즈오카(靜岡)현의 경계를 지난다고 일러준다. 며칠간 지나온 아이치현이 일본의 중심부로 평야지대가 넓고 물산이 풍부하게 보였는데 이름은 많이 들었으나 정보는 생소한 시즈오카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도요하시와 경계를 이룬 지역은 시즈오카의 고사이(湖西)시, 도카이도를 따라 백수하(白須賀)라는 지명의 고개를 넘으니 태평양바다가 잠깐 보인다. 고개 마루의 찻집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오차로 목을 축이고 한 시간 반쯤 점심을 예약한 아라이(新居)타운으로 들어선다. 일대에 해수면 3m 내외의 낮은 지역이라는 표기가 여러 곳에 보이는데 빙하가 녹는 등의 고온현상으로 해수면이 높아지면 침수의 가능성이 실제로 일어나겠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하마나(浜名)라는 큰 호수를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가니 마이사카(舞坂)라는 지명의 소나무 숲길이 매우 아름답다. 도카이도 곳곳에 소나무길이 일품이라는데 몇 차례 오래된 소나무를 비롯하여 숲길이 아름답다고 여긴 곳을 지났지만 이 길만은 못하더라.
오후에 들어서 구름이 점점 짙어지다가 네 시경부터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 사이 고사이시를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하마마쓰(浜松)시계로 접어든다. 곧게 뻗은 좁은 길이 10여km 끊임없이 이어진다. 빗방울은 점점 커져 막바지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빗길을 뚫고 목적지인 하마마쓰 역에 도착하니 저녁 여섯시 반이다. 모두들 힘들게 걸어온 것을 치하하며 악수를 나눈다. 전날부터 새로 참가한 일행 중 비교적 젊은 분이 양 발에 물집이 생겼다며 힘들어한다. 서둘러 도착행사를 마무리하고 숙소에 이르니 일곱 시가 가깝다. 늦은 저녁을 들고 고단하여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백리 길 힘들게 걸어온 일행 모두 수고하였습니다.
* 오늘부터 이틀간 걷기에 합류한 와다 아키라 씨는 82세나 된다. 79세의 고바야시 마사히토 씨는 깃발을 들고 씩씩하게 걷는 모습이 장군처럼 당당하고 와다 씨도 일행에 뒤처지지 않고 잘 걷는다. 그간 최고령이던 한동기 선생도 여전히 잘 걷고. 건강한 노익장을 본받자.
20. 종일 비가 내리는데 걷는 이들은 더 많다
5월 11일, 전날에 이어 아침부터 종일 비가 내린다. 아침 7시 10분에 숙소(역에서 5분 거리의 하마마쓰호텔)를 나서 하마마쓰 역으로 향하였다. 비가 오는데도 1일참가자가 20명이 넘는다. 매사에 철저한 일본인들은 신발과 상하의, 배낭까지 완벽하게 준비하여 큰 비가 와도 끄떡없다.
오전 8시에 오늘의 목적지인 가께가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코스리더는 35km의 구간을 안내하며 오후 6시 경에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설명한다. 제법 굵게 내리는 빗속을 뚫고 종일 걸을 생각을 하니 까마득한 느낌이다.
한 시간 쯤 걸어 하마마쓰 아리나(ARENA)라는 다목적 공공건물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여 얼마쯤 가니 나이 지긋한 여성이 하얀 종이에 김중석 님(金重石 樣)이라 쓴 팻말을 들고 일행을 기다린다. 사연인즉 며칠 전에 본 펜팔친구를 찾는다는 기사에 감동하여 당사자의 얼굴을 보러 일부러 나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접은 편지봉투와 과자류의 먹을 것을 싼 봉지를 건네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빗길에 일부러 나와 자신의 견해를 공공연히 밝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잠시 뒤에 눈에 들어오는 破天荒 風雅(파천황 풍아)라는 음식점의 옥호가 분위기에 딱 어울리네.
11시 경에 수퍼에 들러 각자의 점심을 준비하고 한 시간 넘게 걸으니 이와타(盤田)시에 접어든다. 외곽에 있는 공민회관이 점심장소, 회관의 한 방에 40여명이 식사할 수 있는 장소에 다과와 녹차를 준비해놓고 관계자들이 일행을 안내한다. 시의원이라 소개하는 이가 2007년에 조선통신사 방문 400주년을 맞아 이와타시에서 행렬을 재현하는 등의 연고가 있음을 강조하기도.
오후 1시에 이와타 공민회관을 출발하면서부터 빗줄기가 굵어진다. 두 시간 쯤 걸으니 후꾸로이(袋井)시에 접어든다. 교토에서 에도에 이르는 도카이도 53개 숙박지 중 정중앙에 위치한 후꾸로이 숙박지의 찻집에서 지나가는 길손에게 따끈한 녹차를 대접한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후꾸로이 시청이 있다. 시청의 한 코너에 일본걷기협회 후꾸로이 지부에서 쉴 곳을 마련하고 기념품과 과자를 선물한다.
오후 네 시, 비가 잦아지다가 다시 굵어지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가께가와 부근에 이르니 길가에 플레카드를 펼치고 일행을 환영하는 이들이 나와 있다. 플레카드에 적힌 것을 보니 '가께가와에 어서 오십시오'라고 크게 쓰고 그 밑에 '가께가와 일한친성협회, 가께가와청년회의소, 가께가와국제교류센터'의 호칭이 들어 있다. 작은 트럭에 오차와 모찌떡을 싣고 와서 대접을 하고 한국에서 온 일행들의 이름을 새긴 작은 목각도 선물로 준다.
비가 오는 날 종일 걷느라 심신이 지치는데 이처럼 아름다운 환영의 모임들을 접하니 연일 악전고투하며 힘들고 고단함도 능히 견딜만하다. 가께가와는 차(茶)가 유명하고 숙소의 저녁식탁에 오른 덴부라도 특식이라 하니 먹거리도 좋은 고장이다. 출발 때 마다 팔을 힘차게 뻗어 파이팅을 외친다. 잘 먹고 기운을 내서 열심히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