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새벽시간이지만 잠이 안와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스산한 맘을 달래고 있다.
어제, 처음에 봤던 집을 계약했었고 나 말고는 아무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지금 집도 나랑 이모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겨우 엄마 역시 네가 좋다면..... 신랑 역시 진희만 좋다면..... 하고 나와 이모를 제외한 모두가 찜찜한 가운데 계약한 집이었다.
나는 뭔가에 홀렸던 것일까. 준공한지 20년이 훌쩍 지난 낡은 집을 좋다고 계약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뭔가에 홀린 거 같고 솔직히 밤중에 자면서도 소름이 몇번씩 끼치곤 한다. 그래서 잠을 못 이룬 탓도 있다.
약 한달 전에 꿈을 꾼적이 있었다. 꿈속에서 오빠랑 나는 디자인 사업을 하겠다고 집을 보러 다녔고 그 중 부동산 업자 두명에게 꼬여서 보러 간 첫집이 있었다. 넓고 탁 트인 집이라는 말에 나는 솔깃해서 보러 간 집이었다. 꿈 속 두 남자(부동산 업자)는 아마 이 동네에서 이만큼 싸고 좋은 집 보긴 어려우실 거라며 지은지 좀 되긴 했어도 이만한 집 없다고, 전채를 다 쓰시는 거라고 연신 가는 중에도 떠벌떠벌하는 거였다. 오빠랑 나는 좋다고 그 집을 당장에 가보았고 몰딩이며 모든 집안 인테리어가 새 하얀색인 집이었다. 그리고 넓긴 무척 넓었다. 너무 오래된 집 같다는 오빠의 말에도 아랑곳 없이 나는 집을 보자마자 무척 마음에 들어 황홀해 하며 여기 저기 둘러보기 여념이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진즉에 알아본듯 부동산 업자는 사모님이 무척 마음에 들어하시는데, 지금이라도 당장 계약하러 가시죠, 라고 우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꿈 속에서 오빠의 표정은 왠지 어두워 보였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 는 오빠의 말에도 나는 반기를 들며 저 가격에 저런 넓은 집이 어딨냐고 우리가 안하면 다른 사람이 계약 하면 어떡하려고 하느냐고 역정을 냈다. 저렇게 책장도 따로 있고 다락도 있는집이 어디 흔하냐고 말이다. 오빠는 그깟 다락 원하면 내가 만들어 준다고 했고 말이다. 꿈 속에서도 현실에서 계약했던 집과 정말 흡사하게도 하얀색 책장이 있었고 나는 책장이라고 안하고 선반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 같다.
꿈에서 계약까지 하고 나서 당장 이사할 생각에 꿈에 부풀어 있었고 오빠는 여전히 표정이 어두웠다. 나는 그 집이 너무 좋아서 한번 가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두번이고 세번이고 혼자라도 가보기까지 하였다. 두번짼가 세번짼가 갔을 때, 어떤 중년의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가 우리집에 왜 와있지? 싶어서 여기는 우리 집인데 누구세요? 라고 물었고 나는 꿈속이지만 저 사람이 우리가 이미 계약한지 모르고 집보러 왔나보다 이런 생각을 하였다. 여기는 이제 우리 집이란 말야, 라는 식으로 나는 턱을 주억거리며 여기는 우리 집이에요, 라고 다시 힘주어 말했다.
"이 집 꼭 해야겠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 귀신이 많은 집이에요. 여기는 사람이 절대 살 수 없는 집이에요. 아마 들어와서 살게 되면 사람이 죽어나갈지도 몰라요. 아니 반드시 죽을 거에요."
나는 꿈속이지만 순간 소름이 쫙 끼쳤고 그 분은 이 집에 대해 무척 잘아는 분이라고 하였다. 일부러 여기 오려는 사람이 있다기에 소문을 듣고 알려주러 왔다면서 절대 이 집은 계약하지 말라고, 지금이라도 안늦었으니 얼른 계약 파기 하시라고 이 넓은 집이 터무니 없이 싼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절대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이고 사람이 죽어나갈 집이라고 하였다. 얼른 도망치듯 나가라고 경고를 하는 거였다.
결국 나는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해서 저 계약 파기하겠다고 하였고 부동산 업자는 뜬금없는 얘기에 무슨 소리냐고, 이미 한번 계약해놓고 지금와서 해약하면 어떻게 하시느냐고 이미 집을 보고 싶다는 다른 분들 다 전화해서 오지 마시라고 연락까지 넣은 상태라고,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셨으면서 왜 그러냐고 숫제 설득까지 하는 거였다. 조금 있다가 태도가 바뀌어선, 하긴 당신들 아니더라도 이 집 사려고 하는 사람 넘치고 흘렀다고 정 그러면 계약 파기해 드린다고 하는 거였다.
그렇게 계약을 파기하고 나서 우리는 도망치듯 나와서 그 집 근처도 얼씬 안했고 오빠랑 나는 조금 가격은 나가고 좁지만 소문이 나쁘지 않은 집으로 이사를 했고 솔직히 꿈 속에 두번째로 보고 이사한 집은 그 전에 귀신 들렸다는 집보다 훨씬 좁고 가격도 비싸긴 하였다. 하지만 오빠도 표정이 무척 밝았고 볕도 잘들고 장사도 잘되었다.
부동산 업자는 우리가 이사한 후에도 와서는 정말 그 집 안할거냐고 하고 나는 왜 왔냐고 썩 꺼지라고 하였다. 부동산 업자는 약올리듯 안그래도 그쪽이 안한다고 강경하게 나와서 지금 다른 분들 와서 살고 있다는 둥 말하는 거였다. 그러다 깨었고 말이다.
솔직히 지금 집 계약하기 전 처음에 집 보러 왔을 때 중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저 꿈이 오버랩 되어 머릿속에 섬광처럼 떠올랐고 나는 약간 찜찜하긴 했지만 꿈은 꿈일 뿐이라며 애써 내 자신을 위로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꿈 속과 완전히 일치했다. 집구조도 그렇고, 책장이 있는 것도, 다락이 있는 것도, 전채를 다 써도 된다고 했던 것도, 집이 낡았던 것도, 심지어 집 크기에 비해 집 전세가격이 무척 저렴했던 것조차도......
꿈 속과 오버랩되어 생각될 만큼 비슷했던 상황이었음에도 나는 뭔가에 홀린듯 그 집을 계약 안하면 안될 것처럼 굴었었다. 뭔가 찜찜해 하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의 의견도 묵살해 버렸다. 엄마는 집이 하얗기만 하네, 라고 지나가는 말씀을 하셨고 너는 하얗기만 한 낡은 집이 뭐가 좋으냐고도 하셨다.
나는 한번도 이렇게까지 넓은 집에서 평생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방이 큰 것도 주방이 넓은 것도 친정집에서 가까운 것도 모두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엄마는 영 찜찜하다며 나 모르게 다른 집을 더 알아보셨고 그 집을 보러 갔지만 이모께서 그냥 이 집으로 하라고 하셔서 한번 더 살펴보고 바로 얼떨결에 우리를 중개해준 부동산에 가서 계약을 하고 왔던 것이었다.
어쩐지, 주인 사모님은 뭔가 표정이 썩 어두웠고 왠지 내 눈을 피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처음에는 세입자인 내가 마음에 안드시나, 생각을 하였지만 우리의 무리한 요구에도 순순히 일초도 생각않고 그러세요, 말씀하기에 더군다나 대놓고 이번 세입자가 참 마음에 든다고 하셨기에 그냥 저분 성격이구나, 하였다.
이모는 이왕 낡은 집 계약하는 거 요구할 건 해야 한다며 본인이 직접 나서서 현관 중문을 좋은 걸로 교체해줄 것과 전등 갓을 모두 새 걸로 갈아줄것, 그리고 전세금을 몇백정도 깎아줄 것을 요구하셨고 희한하게 주인분은 너무나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빛으로 그러세요, 라고 말씀하셨더랬다. 돈은 본인이 다 드릴테니, 알아서 입주청소도 불러서 하시라고 덧붙여 말씀하셨고 말이다.
그래서 이모나 엄마,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천진한 사람마냥 점심을 먹으면서도 연신 안집 사모님 칭찬을 하였고 정말 너는 안집 복은 있다며 이모나 엄마는 나를 치켜세워주기에 여념이 없으셨더랬다.
부동산 중개업소 소장님은 이렇게 좋은 주인 사모님 보셨냐며, 마음이 너무 착하셔서 탈이라고 하셨고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님은 본인은 여러해동안 사모님을 알아왔지만, 더한 걸 부탁하면 더한 것도 들어주실 분이라는 둥, 워낙 마음이 유하셔서 심지어 이번에 들어오실 전세집 수리하는 것도 아는 사람 통해서 한 수리업자한테 900만원이나 뜯기고도 제가 전생에 저분께 죄를 많이 지었나보죠,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넘기셨다는 둥 이런 대인배가 어딨냐고도 하시는 거였다. 이번 세입자도 사람 보고 하신다고 온다는 사람들 많았는데도 다 가격 높게 부르셨었다고 그런데 그 쪽은 되려 내놓은 가격보다 더 저렴하게 깎아주신다니 얼마나 세입자 분을 마음에 들어하신 거냐고 하셨고 주인 사모님은 맞장구를 치듯 본인은 돈이 중요한게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솔직히 사람보고 전세금 조절하려고 했었다. 본인은 집만 깨끗하게 사용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 같다, 그런데 이번에 신혼부부가 들어온다니 당연히 집을 깨끗하게 써줄 거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본인은 이번에 공방 사용 때문에 일부러 집을 전체를 다 사가지고 왔는데, 1층에 공방을 차렸으니 2층 전채 가정집은 쓸모가 없었고 그래서 세를 놓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전에 살던 주인집이 본인이직접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무척 지저분하게 쓰셨다, 그래서 일부러 수리도 싹 한 거고 원래 하도 세입자가 안 구해져서 봄까지 기다려봤다가 그때까지도 세입자 소식이 없으면 본인들이 들어가서 살려고 했었다, 고도 말씀하셨었다. 그런데 어떻게 집 인연이 따로 있는 건지 좋은 세입자 만나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본인 사는 집보다 세입자한테 준 집이 더 넓은 집이었던지라 본인이 탐이 났고 신랑도 우리가 직접 그 집에 들어가서 살자고 하셨지만 지금 살고 있는집이 얼마전에 리모델링을 너무 예쁘게 해놔서 좀 더 살다 들어갈 생각이었다, 고도 하셨다. 그런데 그쪽이 만약 여기에서 오래 산다고 하면 본인은 그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이다고도 하였고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천연스럽게 저런 말씀을 하신 거였다. 아, 지금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그 집주인 사모의 말들이 어찌나 위선적으로 들리는지. 나랑 이모, 엄마는 감쪽같이 그 말에 속아서 아, 하면서 연신 그러시구나, 고개를 끄덕거렸더랬다.
집주인은 집을 깨끗하게 써줄 사람이 필요했다, 전 주인은 집을 너무 안좋게, 지저분하게 썼다, 앞으로도 집을 깨끗하게 써줄 세입자만 받을 생각이다, 우리집은 앞으로 깨끗하고 좋은 세입자가 들어와야 한다, 라고 연신 중얼거리듯 말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가장 소름돋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그 '깨끗한'이 가지는 의미가 단순히 집 자체를 청소도 잘하고 관리도 잘해줄 그런 식으로 생각했었다. 아마 내가 아닌 아무것도 몰랐던 이모나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이다.
이모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셨는데,
"이 집에 혹시 이상한 사람은 안살았었죠?" 라고 물으셨고 주인집은 아뇨, 일반적인 사람이 살다 나갔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소장님도 한 마디 거들었다. 전 주인이 담배는 펴도 결코 이상하거나 안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아녔어요. 이모는 그제야, 아, 다행이네요, 라고 하곤 밝게 웃어보이셨다.
그렇게 계약서를 가지고 신나서 룰루랄라 나와서 집주인한테 바로 계약금 500만원 송금해주고, 밥도 먹고 주인이 보조금을 대준다고 해서 현관에 달 새 중문도 알아보고 다녔더랬다. 실제로 중문주문을 하고 나서 좋다고 중문 계약금도 10만원 바로 은행에서 송금해주었고 말이다. 그 집 계약서를 소중히 품에 안고 어찌나 뿌듯해 했던지. 내 손으로 직접 집계약을 했다는 기쁨도 한몫했지만, 이번에 집은 무척 마음에 든다는 기쁨도 더욱더 한몫 했더랬다. 햇볕 잘드는 남향이니 매일 이불 빨아서 다용도실에 널어도 되고, 심지어 전채를 다 쓰는 거니 집주인 말마따나 집 밖에 계단 내려가기 전 난간에다 널어놔도 되고 지금 집에 비하면 궁궐인데다 아기가 울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무척 기분이 좋았다. 집이 조금 낡긴 했지만 창문은 커튼으로 가리면 되고, 중문은 어차피 하얀색 튼튼한 문으로 새로 할 거고 도배 장판도 새거고 욕실이며 다용도실도 타일이며 이것저것 다 새로 했으니 그냥 입주청소만 싹 하면 새 집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겨우 7700만원으로 이렇게 넓고 좋은 집을 얻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슴 한쪽에 조금이나마 남았던 안좋았던 꿈에 대한 찜찜함도 공중으로 한방에 날려버렸다. 여북하면 엄마는 그렇게 좋으냐며 웃으셨을 정도였다.
흥분한 상태에서 오빠한테 전화해서 우리 빚 안내고 이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주인집에서 7700만원으로 계약해준다고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고 오빠는 웃으면서 잘했어, 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는 너무 벅찬 마음에 그 뒤 두번은 오빠한테 더 전화를 하였고 그때마다 희한하게 오빠의 목소리가 썩 좋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렇구나, 단순히 생각하였고 집에 와서도 내내 그 집을 썩 마땅치 않아 하는 투로 말하는 거였다. 산남동 좁디 좁은 투룸 집도 처음에 계약할때 나보다 더 좋아했던 오빠였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갈 넓은 집을 오빠는 주차공간이 좀 좁다는 둥, 이상한 데에 다 트집을 잡아서 나는 순간 순간 불쑥 짜증이 올라왔다. 내가 좋으니 오빠도 같이 이 집에 대해 좋아하는 마음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과 어긋나게 오빠는 지금 집을 썩 석연치 않아 하였다. 끝내 뭐 울 희야가 좋다면야.... 라고 말했지만 그 말조차도 왠지 여운이 많이 남는 듯한 묘한 말투였다.
그러다가 오빠는 갑자기 컴퓨터를 켜더니 인터넷에서 다음 로드뷰를 접속했고, 엄마랑 나를 부르는 거였다. 엄마는 설거지를 끝내고 안방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침대에 엎드린채로 그 로드뷰를 멍청히 바라보았다. 오빠는 여기가 우리가 이사갈 집 동네라고 하였고 알고보니 집 주변에 점집들이 몇몇군데 보이더라, 는 말을 하였다. 엄마는 약간 찜찜하다고는 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계약 파기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고 나 역시 대수롭지 않게 원래 예전부터 이런 주택가엔 점집이 많더라, 그건 어쩔 수가 없다, 나 예전 다니던 회사 동네도 이렇게 점집이 많았었다, 고 하면서 약간 신경질적인 짜증을 내비쳤다.
오빠는 뭔가 답답한 마음이었던지, 끝내 사실 이 말씀 안드리려고 했는데...... 하면서 갑자기 우리 집이 될 집을 마우스로 여러번 클릭하여 확대하더니 우리 눈앞에 보여주었다. 엄마랑 나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화면을 보았고,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 하고 단발의 비명을 질렀다. 2011년도에 찍힌 로드뷰 사진에서, 집 창문에는 절표시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간판에는 천상암이라는 상호명이 새겨져 있었다. 순간 나도 그렇고 엄마도 아연실색해서 멍하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이사 가려던 집은 어느 누가 봐도 명백한 무당집이었다.
순간 엄마는 울먹이셨고 이 집은 절대 안된다며, 당장에 이모한테 전화해선 거의 우는 목소리로 언니, 그 집이 무당집이었어, 김서방이 우연히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알아냈어, 라고 말했고 엄마의 목소리에선 절규가 느껴졌다. 곧이어 수화기 너머에선 놀라며 뭐라고? 하는 이모의 소스라친 목소리도 들려왔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며 일단 전화 끊어보라고 본인이 그쪽 부동산에 전화를 한번 넣어보겠다고 하셨다.
한 5분도 안있어 다시 이모한테 연락이 왔고, 그 쪽 부동산에서는 본인의 과실을 인정했고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게 되었다며 다시 집주인한테 연락해서 계약금 돌려주고 계약 파기하는 걸로 하겠다고 순순히 시인했다고 하였다.
나는 부동산에서 알려준대로 곧바로 주인집 사모님께 전화를 하였고 사모는 자기는 별 상관이 없는 줄 알았는데 정 그게 마음에 걸리시면 어쩔 수 없죠, 라고 뻔뻔한 목소리로 말하는 거였다. 마치 그게 어떻길래 이 난리냐는 투가 묻어 있어서 기분이 묘했다. 분명 우리가 부동산에서 계약할 때 물었을 때에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이상한 사람 산 적은 없었다는 말을 하고 나서 지금에 와서 그게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명백한 사기였다.
엄마도 나도 밤중에 잠을 한숨도 못이루었고, 그건 신랑도 마찬가지였다. 나 같은 경우, 거의 밤을 꼴딱 새었다는 표현이 알맞을 것이다. 내가 왜 밑도 끝도 없이 믿는 구석도 없으면서 그 집을 좋다고만 생각했을까, 꿈속에서 비슷한 집을 봤고 그 집은 절대 안된다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왜 나는 그 부분을 덮어두고 그냥 간과하려고만 했을까. 만약 나랑 우리 가족이 그 집과 인연이 닿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오소소 소름이 돋았고 그 집에 몇번이나 드나들었다는 사실조차도 나는 무척 찜찜해서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어쩐지, 어제 부동산에서의 일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주인집 사모가 본인은 1층 공방만 왔다갔다 하지, 그 집 2층은 아예 거의 올라가 보지 않았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부동산 소장이 거들듯 교수님(주인집 사모)은 집 수리 공사할 때도 공사업자를 믿으셔서 거의 공사업자한테만 모조리 맡기고 본인은 와보지도 않으셨어요, 라고 했던 말도 어쩌면 힌트가 될 수가 있었다. 아무리 어둑한 사람이더라도 아직 나이가 한참 어린 내가 봐도 속는 데에 말이 안되는 공사비 900만원을 뜯겼다는 것도 지금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다 수긍이 가는 일이었다. 아마 무당집을 건들인다는 명목으로, 동티나는 일을 감수하고서라도 공사업자는 비싼 값을 불러서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했을 것이고 주인은 어쩔 수 없이 절대 아무것도 아닌 공사에 900만원 공사는 너무한 걸 알면서도 해준다는 업체에 믿고 맡길 수 밖에 없었을 거였다. 보통 일반적인 주인집에서는 전세집에 해주지 않으려고 하는 도배 장판도 왜 굳이 본인이 손수 나서서 우리가 해달라는 것도 아님에도 해주었는지, 그리고 나머지 중문 설치와 입주청소는 돈을 줄테니 우리가 직접 맡아서 하라고 했는지도 모두 이제야 이해가 갔다. 본인은 2층 집에 관한한 아무것도 건들이고 싶지도, 손대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계약서를 토대로 그 간 그 집에 대한 내력을 퍼즐맞추기 하였고, 그 집은 무려 그 전주인인 무당이 2009년부터 2014년 8월까지 5년간을 신당으로 써왔던 곳이었다. 그리고 2014년도 8월에 지금 주인은 아무것도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우리가 계약했던 부동산 소장한테 무척 싼 가격에 부동산을 매입했을 것이고 소장의 말에 의하면 집을 둘러본지 10분만에 계약하셨다니까 말이다. 그 주인 사모도 아마 아무것도 모른채로 집을 매입해서 나중에야 알게 되었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최소 못해도 9월경부터 집을 세를 내놓았다고 해도 지금까지 5개월 가까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셈이었다.
부동산 소장도 엊그제 우리가 그 집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5분이나 남았음에도 왜 얼른 안오냐며 독촉과 짜증투로 말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본인이 먼저 들어가 있었고 아무도 없는 빈 집에 혼자 있기가 꺼려졌을 거였다. 보통은 고객이 조금 늦는다고 하면 다른 부동산 업체들에선 그러시라고 천천히 오시라고 배려 차원의 말이라도 해주는데 어제 계약했던 부동산 소장은 알겠다고 하면서도 뭔가 짜증이 잔뜩 묻어 있는 목소리였었다. 그래서 나는 뭔가 당혹스러우면서도 그냥 그 소장 성격인가보다, 단순하게 생각했고 말이다. 그리고 집 안을 보는 도중 자꾸만 본인은 현관문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그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무튼 엄마는 아침 10시쯤에 찜찜한 마음에 얼른 부동산과 연락을 해서 계약서를 돌려주러 다녀오셨다고 하였고 나는 곧바로 계약금을 온전히 돌려 받을 수가 있었다.
엄마는 부동산 소장한테 무척 화를 내면서 따졌다고 하셨다. 당신 딸이 신혼이고 아이를 가졌는데 당신 딸 같으면 이런 집 들여보낼 수 있었겠느냐고, 소장님 절대 이런 식으로 사람을 기만하며 중개 하지 마시라고, 사람 속이면서 장사하는게 가장 나쁜 거라고, 만약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서 변이라도 당했으면 어쩔뻔 했느냐고 앞으로는 집보러 오는 사람한테 먼저 예전에 무당집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마땅한 거라고 절대 속이지 마시라고 하였고 부동산 소장은 정말 죄송하게 되었다고 거의 땅바닥에 손바닥이 닿을 정도로 빌고 또 빌더란다,
아무튼 집을 정말 잘 알아봐서 가야 할 거 같다. 정말 터무니없이 싼 집은 뭔가 이유가 있음을 지금에서 실감하고 있다.
사실 이 글은 제가 일년 전쯤에 일기로 썼던 글입니다.
그때는 소름끼치는 마음에 갈피를 못잡고 새벽에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 썼던 글이네요.
컴퓨터 속 글들을 정리하다 보니 수필로 써도 될 것 같아 올려봅니다.
혹여나 문제가 되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