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아펜니노 산맥과 포평원, 롬바리디아평원을 4시간 가량 달려 내려와
드디어 피렌체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문화 예술의 수도라고 지칭하는 피렌체는 영어로 플로렌스라 불리우는 곳이다.
예술의 도시 혹은 꽃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피렌체.
피렌체에 입성하며 도시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가서
붉은 지붕을 한 도시 조망을 했다.
거기엔 복제된 다비드상이 중앙에 서 있는 작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미술책에서나 봄 직한 것들을 눈 앞에 보게 되니 외국임을 실감했다.
아침 일찍부터 4 시간이나 차로 달려 왔으니 이제 점심을 먹어야했다.
아르노 강변을 따라 십 분쯤 걸어가자 엔틱한 느낌의 식당이 있었다.
낭만의 도시에 왔으니 식사때 와인 정도는 마셔야지 싶어 적포도주를 시켰는데
피렌체에서 유명하다는 티본 스테이크가 곁들여져서 점심이 화려했다.
사실 술맛도 모르고 즐기지도 않는데 괜히 겉멋을 부려본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건 음식이나 여행코스를 일행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눈치껏 추가해서 품격여행을 고품격처럼 즐기기로 했다.
그러려면 유익하게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식당앞의 작은 골목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보자 영화속 화보처럼 컨셉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내가 포즈를 잡자 남편이 얼른 사진을 찍었다.
왠지 운수좋은 날처럼 마음이 들떴다.
점심을 먹은 후 산책하듯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으니
중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시인 단테 (1265~1321)의 생가가 보였다.
'단테의 신곡, 페트라르카의 서정시' 하고 외우던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 속의 이름들이 이렇게
눈 앞에 실감나게 있으니 감동적이었다.
게다가 페트라르카의 제자가 단테였다니..
암기식 교육의 폐해다.
무엇보다 그들의 삶터가 예전 모습 그대로 지금 곁에 있다는 느낌이
내가 중세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랄까?
역사를 수 백년을 뛰어넘는 이탈리아 여행의 서막이다.
세계사 속의 내 존재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들과 달리 '그 당시의 시민' 당시 서민들'이라고 역사에 기록될 인물이니
이 시대 , 나 스스로라도 존재에 감사하며 충만을 누려야 한다고 다짐을 했다.
중세는 그리스와 로마의 화려한 문화가 말살되고
오직 신만이 세상의 중심이라하여
교회가 세상의 중심이고 오직 교리만이 지배하던 신본주의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의 삶과 예술은 신 중심으로만 돌아가며 인간성이 말살되었다.
그때가 인간에게는 암흑이었기에 중세를 암흑기라 부른다.
비로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자각하고
다시 그리스 로마의 문화인 인본주의와 문화가 다시 조우한 것을 르네상스라 하는데
그 중심 무대가 바로 피렌체였었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서 있었다.
영혼의 자유를 구가하는 나 같은 인간이 중세에 살았더라면 마녀사냥감이다.
아찔했다.
인간성 말살이라니....
지금 자유의지를 가르치는 교회의 가르침은 그 시절 무엇으로 대체 되었을까?
아니면 중세의 교리의 병폐를 시정해서 진화하여 나온 교리일까?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데 아마도 교회도 절대권력이 되자 예외가 아니었나 보다.
늘 회개하는 교회가 신자로서 위안이 된다.
우리는 르네상스 양식의 상징적인 성당으로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이라는 피렌체두오모 성당으로 갔다.
140년 동안 지었다는 이 성당은 색대리석으로 지었고
브루넬레스키의 걸작인 높이 106m의 둥근 지붕인 큐폴라가 특히 웅장했다.
수학과 천문학과 같은 학문 자체가 금지 되었던 중세 암흑기 신 중심의 세계에서
돌의 무게를 지탱할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전제로 지어진 두오모.
37000톤의 무게라니...
현대에도 그런 돔을 만들기 어렵다던데...
옛 인류의 유산이 놀랍기만 하다.
성당의 한쪽 입구에 서 있는 기둥의 섬세한 조각도 아름답고
새로 수리를 하는 성 조반니의 세례당의 청동 부조도 둘러 보았다.
특히 로렌쪼 기베르티가 제작한 동쪽문의 청동 부조는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칭찬할 정도였다 하는데
나는 유럽의 성당의 입구를 장식한 많은 부조들이 모두 감탄스러워
어떤 것이 최고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고, 놀랍지 않은 게 없으니까.
성당 곁에 우뚝 서 있는 높이 84m의 종탑은
조토라는 사람이 제자 피사노와 함께 설계해서 14세기에 지었다 한다.
사진 한 컷에 성당과 종탑을 집어 넣으려니
종탑이 너무 높아 앵글을 비틀고 올려서 겨우 잡았다.
물론 내 사진 실력이 형편없어서였겠지만.
베네치아의 전성기가 15 - 16세기로 500여년 전의 세계였다면
피렌체의 역사적 전성기는 1000년전이다.
어제와 오늘 나는 500년의 역사를 순간이동으로 즐긴 셈이다.
와~!
이탈리아의 매력이 여기에 있었나 보다.
책을 보니 이곳 피렌체에는 많은 유명한 미술관이 있던데
그곳을 관람하기엔 자유여행이 아니면 어림도 없는 꿈이겠다.
그게 좀 아쉬웠다.
허나 우리는 바티칸 박물관을 들를거니까 조금 참아야지.
피렌체의 영화를 이끌어낸 유럽의 최고 가문이라는 메디치가문을 일군 메디치의 청동상과 함께
포세이돈의 동상과 복제된 다비드상이 세워진 시뇨리아 광장은 지금도 중요행사가 열리는 곳이라 한다.
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관광객은 이탈리아 어디를 가도 필수로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도미니크 수도자인 사보나롤라의 화형이 이루어진 곳이라니 숙연해졌다.
그곳 정면에 있는 베키오 궁전을 짧은 자유시간에 얼른 들어가 보았는데
일층에는 전시회 안내문만 가득해서 조금 아쉬웠다.
이곳 피렌체에서 꽃무늬 가득한 신발 두 켤레를 득템했다.
가죽제품으로 유명한 토스카나 지방을 지났으니 으례적으로 들르는 쇼핑시간이었다.
옷과 가방, 그리고 구두들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나는 여행으로 불편하던 발이 가볍다고 느껴질 만큼 편하고, 빈티지한 느낌으로 예쁜 구두를 찾았는데
붉은 색과 까만 색을 두고 고민하는 내게 남편이
"둘 다 사지, 뭐."
해서 바로 결단을 내렸다.
15만원 정도니까 가격도 적당했다.
그러나 내 가방엔 신발이 여섯 켤레나 들어있어
무거운 가방을 끌어야하는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벌로 받았다.
행여 발이 불편할까 한국에서도 신발을 네 켤레나 챙겨온 것이었다.
욕심부리다가....어휴~
피렌체에서 아쉬움 가득 안고 관광을 마친 후 로마를 향했다.
유럽 버스기사의 엄격한 체력 관리로 2시간 가량마다 우리는 강제 휴식을 해야하는데
그 장소가 바로 버스휴게소다.
간단한 음식과 간식거리 그리고 선물들을 살 수 있는데
우리는
"이탈리아에 왔으니 오리지널 에스프레소를 마셔야지..."
하고는 곁에 있는 낯선 분에게 인증샷을 부탁했다.
커피의 이중가격제가 공식적으로 인정 된다는 이탈리아.
서서 마시면 1유로인데 테이블에 앉아 마시면 2.5유로 가량 한단다.
쌉쌀하고도 달콤한 에스프레소맛이 일품이었다.
쵸콜렛과 과자들의 포장 크기가 무서워 보일 만치 컸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쵸콜렛을 좋아하나?
크기가 너무 커서 냉큼 사게 되질 않는다.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4시간 30분을 내려오니 로마다.
역시나 이곳도 로마 외곽의 이름 모르는 작은 마을이다.
대리석과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은근히 유황 냄새가 난다고 후각 예민한 남편은 말했다.
한국보다 해가 늦게 지는 까닭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호텔에 도착하니
근처 쇼핑몰이 다 문 닫을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방 배정을 받고 들어서서 침대에 몸을 누이자 피곤이 몰려왔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그날 밤 우리는 동네에 나가 작은 편의점 같은 레스토랑에서 밤참으로 즐길 와인을 사들고 와서
휴게소에서 산 과자와 싸 온 안주로 동료들과 화장실 물컵으로 와인을 즐기며 사치를 누렸다.
그리고는 꿀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