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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드 브레뵈프 성인
✝️ 10월 19일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원주민의 언어와 삶 속에서 복음을 전한 선교사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10월 19일은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사제와 성 이사악 조그 사제, 그리고 여섯 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함께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들은 17세기 북아메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목숨을 바친 예수회 선교사들입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 혹독한 자연환경, 전염병과 부족 간의 전쟁 속에서도 자신들이 만난 사람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성 요한 드 브레뵈프는 휴런족의 언어를 깊이 연구하고, 그들의 말로 교리서를 만들며, 다른 선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사전 편찬에도 힘썼습니다. 그의 삶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1. 성인의 생애
① 프랑스에서 태어나 사제가 되다
성 요한 드 브레뵈프는 1593년 3월 25일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콩데쉬르비르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 인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그는 1617년 예수회에 입회했습니다.
한때 결핵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학업과 사제직의 길이 불투명해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1622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선교사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② 1625년, 캐나다 선교지로 떠나다
성 요한 드 브레뵈프는 1625년 캐나다에 도착하여 휴런족을 위한 선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낯선 언어를 익히고 새로운 생활 방식에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629년 프랑스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그는 프랑스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633년 다시 캐나다로 돌아온 그는 휴런족 공동체에서 선교 활동을 이어 갔습니다.
③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이해하다
성 요한 드 브레뵈프의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는 휴런족의 언어를 배우고 이를 선교에 활용한 것입니다.
그는 현지 언어로 교리 내용을 전달하고, 기도와 신앙 교육에 필요한 자료를 마련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다른 선교사들이 언어를 익힐 수 있도록 사전과 교육 자료를 만드는 일에도 힘썼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가 살아가는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④ 전염병과 위기 속에서도 사람들 곁에 머물다
1630년대에는 유럽에서 전해진 천연두 등 전염병이 원주민 사회를 크게 위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공동체는 깊은 슬픔과 불안에 빠졌습니다.
당시 일부 원주민들은 선교사들을 질병과 재난의 원인으로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선교사들의 활동은 부족 사이의 정치적·군사적 갈등과도 얽혀 있었으며, 선교사들은 점점 더 위험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성 요한 드 브레뵈프는 그러한 위기 속에서도 자신이 맡은 공동체를 위해 계속 활동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고, 신앙을 가르치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⑤ 1649년, 순교의 길을 걷다
1649년 3월, 이로쿼이족 전사들의 공격으로 휴런족 마을들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성 요한 드 브레뵈프는 동료 성 가브리엘 랄르망 사제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극심한 고문을 당한 뒤 순교했습니다.
성 요한 드 브레뵈프의 순교일은 1649년 3월 16일입니다. 그의 나이 55세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선교해 온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겪었으며, 끝까지 신앙을 지키려 했던 인물로 기억됩니다.
2.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동료 순교자들
북미의 순교자들은 여덟 명입니다.
1.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사제
2. 성 이사악 조그 사제
3. 성 르네 구필 수사
4. 성 안토니오 다니엘 사제
5. 성 가롤로 가르니에 사제
6. 성 가브리엘 랄르망 사제
7. 성 노엘 샤바넬 사제
8. 성 요한 드 라랑드
이들은 모두 같은 날 순교한 것이 아닙니다.
1642년부터 1649년까지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0년 6월 29일 시성되었습니다.
교회는 이들을 북미 지역의 대표적인 선교 순교자들로 공경합니다.
3. 성 요한 드 브레뵈프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
첫째, 먼저 듣고 이해하는 사랑입니다.
성인은 휴런족의 언어를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을 바쳤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을 전하기에 앞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어려운 이웃 곁에 머무는 사랑입니다.
전염병과 전쟁으로 사람들이 고통받을 때 성인은 선교지에서 자신의 사명을 이어 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병든 이웃과 외로운 사람을 찾아가 함께하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셋째, 평화와 존엄을 존중하는 신앙입니다.
당시 북아메리카의 역사는 전염병, 전쟁, 식민지 경쟁과 문화적 충돌이 얽혀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역사를 겸손하게 돌아보며 모든 사람의 생명과 문화, 자유를 존중해야 합니다.
넷째, 믿음을 행동으로 증언하는 삶입니다.
성인의 신앙은 말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오랜 선교 활동과 헌신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우리 역시 작은 친절과 봉사, 용서와 화해를 통해 신앙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4. 함께 묵상하는 성경 말씀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 13장 34절
성 요한 드 브레뵈프의 삶을 묵상하며 생각해 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을까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낯선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고 있을까요?
복음을 전하는 일은 거창한 말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먼저 들어 주고, 존중하고, 아픈 사람 곁에 머무는 작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5. 마침 기도
사랑이신 하느님,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의 사명을 지키도록 힘을 주셨으니,
저희도 그들의 믿음과 용기를 본받게 하소서.
다른 사람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고통받는 이웃 곁에 머무는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저희가 말로만 사랑하지 않고 행동으로 사랑하며,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해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전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사진 1.
성 요한 드 브레뵈프의 초상화
게시글 제목 아래에 넣기 좋은 대표 이미지입니다.
사진 2.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성 가브리엘 랄르망
두 선교사의 신앙과 순교를 함께 소개할 때 적합한 성화입니다. 북미 순교자들의 이미지 자료
사진 3. 북미 순교자들의 선교 유적
선교사들이 활동했던 역사적 장소를 소개할 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북미 순교자 성지 관련 사진과 자료
참고 문헌 및 자료 출처
1. 바티칸 뉴스 —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동료 순교자들
성인의 선교 활동, 휴런족 언어 연구, 순교에 관한 자료입니다.
2. 미국 예수회 — 북미 순교자들의 축일
여덟 성인의 이름과 선교 활동, 기념일에 관한 자료입니다.
3. 가톨릭 백과사전 —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성인의 생애를 더 깊이 공부할 때 참고할 수 있습니다.
4. 위키미디어 공용 — 성인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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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는 마무리 묵상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성인은
먼저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도 신앙을 전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다른 생각과 문화를 존중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 보면 어떨까요?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사제와 북미의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1. 가톨릭 굿뉴스 모바일 —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성인의 생애, 선교 활동, 참고 문헌과 그림 자료
2. 가톨릭 굿뉴스 모바일 성무일도
10월 19일 전례와 기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가톨릭신문 — 성인의 선교와 예술
성인이 웬다트어로 전한 성탄 노래와 선교의 의미를 다룬 기사입니다.
4. 가톨릭 굿뉴스 — 성인 관련 그림 모음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동료 순교자들의 그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 이사악 조그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 10월 19일성 이사악 조그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북미의 첫 순교자들 · 예수회 선교사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들입니다.”
10월 19일은 성 이사악 조그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들은 17세기 북아메리카의 뉴프랑스, 오늘날 캐나다와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한 예수회 선교사들입니다.
험난한 자연환경과 질병, 부족 사이의 전쟁, 선교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다가 목숨을 바쳤습니다.
교회는 이 여덟 명의 순교자를 ‘북미의 순교자들’ 또는 ‘캐나다의 순교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0년 6월 29일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1. 성 이사악 조그 사제의 생애
① 프랑스에서 시작된 선교사의 꿈
성 이사악 조그는 1607년 1월 10일 프랑스 중부 오를레앙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 예수회에 입회하여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고, 1636년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복음을 먼 땅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들이 캐나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그 사명에 참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636년 그는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 뉴프랑스로 향했습니다.
② 원주민들과 함께한 선교 생활
성 이사악 조그는 오늘날 캐나다 지역에서 휴런족, 즉 웬다트(Wendat)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낯선 언어와 문화, 혹독한 추위와 식량 부족 속에서도 현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북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는 유럽에서 전해진 전염병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었고,
여러 부족 사이에도 갈등과 전쟁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들 역시 이러한 긴장 속에서 위험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③ 첫 번째 체포와 고통
1642년 성 이사악 조그는 보급품을 운반하던 중 동료 르네 구필 수사와 함께 모호크족 전사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는 심한 고문을 당했고, 손가락 일부를 잃었습니다. 동료 르네 구필은 그해 9월 29일 순교했습니다.
성 이사악 조그는 노예처럼 억류되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네덜란드 상인들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향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도 있었지만, 선교의 소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④ 다시 선교지로 돌아가다
성 이사악 조그는 1644년 프랑스로 돌아간 뒤에도 선교를 계속하고 싶어 했습니다.
마침내 다시 북아메리카로 향했고, 1646년에는 모호크족과 프랑스 사이의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동료 장 드 라랑드와 함께
그들의 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현지에는 전염병과 흉작의 책임을 선교사들에게 돌리는 적대감이 남아 있었습니다.
1646년 10월 18일 성 이사악 조그는 오늘날 미국 뉴욕주에 해당하는 오세르네논 지역에서 순교했습니다.
다음 날인 10월 19일에는 동료 장 드 라랑드도 순교했습니다.
그의 삶은 선교의 사명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신앙의 증거로 기억됩니다.
2. 여덟 명의 동료 순교자들
북미의 순교자들은 여섯 명의 예수회 사제와 두 명의 평신도 협력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사제 — 휴런족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한 선교사
2. 성 이사악 조그 사제 — 고문과 억류를 겪고도 선교지로 돌아간 사제
3. 성 르네 구필 수사 — 이사악 조그와 함께 선교하다 순교한 예수회 평신도 수사
4. 성 안토니오 다니엘 사제 — 휴런족 공동체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선교사
5. 성 가롤로 가르니에 사제 — 원주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
6. 성 가브리엘 랄르망 사제 — 요한 드 브레뵈프와 함께 선교하다 순교한 사제
7. 성 노엘 샤바넬 사제 — 어려운 선교 환경에서도 사명을 지킨 선교사
8. 성 요한 드 라랑드 — 이사악 조그와 함께 평화 사절단에 참여했다가 순교한 평신도 협력자
이들은 1642년부터 1649년까지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순교했습니다. 따라서 여덟 명이 같은 날 함께 순교한 것은 아닙니다.
3. 이들의 순교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첫째, 신앙은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사악 조그 성인은 큰 고통을 겪고도 자신이 맡은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삶의 어려움 속에서 신앙과 사랑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둘째,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 이사악 조그와 장 드 라랑드는 부족과 국가 사이의 평화를 위해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줄이고 화해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 선교는 사랑과 존중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들의 선교 역사는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과 함께 당시 원주민 사회가 겪었던 질병, 전쟁, 문화적 충돌을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사람의 존엄과 문화, 자유를 존중하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참된 복음 선포는 상대방의 아픔을 듣고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4. 함께 묵상하는 성경 말씀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복음 15장 13절
성 이사악 조그와 동료 순교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삶으로 증언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목숨을 바치는 큰 희생만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에서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도 가르쳐 줍니다.
나는 오늘 누구를 위해 시간을 내어 줄 수 있을까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5. 마침 기도
사랑이신 하느님,
성 이사악 조그와 동료 순교자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의 사명을 지키도록 힘을 주셨으니,
저희도 그들의 믿음과 용기를 본받게 하소서.
저희가 다른 사람의 문화와 생각을 존중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며,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해의 다리를 놓게 하소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게 하시고, 매일의 작은 희생으로 평화와 희망을 전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성 이사악 조그와 동료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하며, 우리도 이웃을 존중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며,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진 자료
1. 성 이사악 조그 사제의 초상화
2. 북미 순교자 성지
미국 뉴욕주 오리스빌의 북미 순교자 성지 사진입니다. 성인들의 선교와 순교를 기억하는 장소를 소개할 때 좋습니다.
참고 문헌과 출처
1. 바티칸 뉴스 — 10월 19일 성인 소개: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성 이사악 조그 및 동료 순교자들
2. 예수회 미국·캐나다 관구 관련 자료: 북미의 순교자들 기념일과 여덟 성인 소개
3. 가톨릭 백과사전: 성 이사악 조그의 생애와 순교
4. 위키미디어 공용: 성 이사악 조그 초상화와 이용 조건
※ 축일에 관한 참고 사항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사제와 성 이사악 조그 사제 및 동료 순교자들의 기념일은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10월 19일입니다. 그러나 캐나다의 지역 전례력에서는 이들을 캐나다의 제2 수호성인으로 공경하여 9월 26일에 축일로 기념합니다.
따라서 10월 19일은 로마 보편 전례력에 따른 날짜이며, 9월 26일은 캐나다 지역 전례력에 따른 날짜입니다.
참고: 캐나다 천주교 주교회의(CCCB), 「캐나다 순교자 기념」 자료.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
✝️ 10월 19일,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10월 19일은 예수 고난회의 창립자이신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수난을 깊이 묵상하고,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데 평생을 바친 성인입니다.
그에게 십자가는 단순히 고통과 죽음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난 자리였습니다.
성인은 기도와 고행만으로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의 성 바오로를 통해 고통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고,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의 삶을 묵상해 봅니다.
1. 성인의 생애
1694년 1월 3일 — 이탈리아 오바다에서 탄생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의 오바다에서 파올로 프란체스코 다네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가정의 16남매 가운데 맏이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신앙을 배우며 기도와 미사에 가까이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가족의 생계를 돕기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어떤 삶으로 부르시는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1713년 — 신앙의 회심과 새로운 결심
성인은 강론을 들으며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군 생활도 경험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소명이 아님을 깨닫고 제대했습니다.
그는 결혼과 유산을 물려받을 기회도 내려놓고 기도와 참회의 생활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세상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을 찾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1720년 — 예수님의 수난을 전하는 소명을 깨닫다
성인은 기도 중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드러난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소명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는 검은 수도복에 흰 십자가와 예수님의 이름을 표시하는 모습을 환시로 보았다고 전해집니다.
이 체험은 훗날 그가 설립한 예수 고난회의 영성과 상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성인은 기도와 묵상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동시에,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1725~1727년 — 수도회 설립의 길을 열다
성인은 교황 베네딕토 13세에게 수도 공동체 설립에 관한 구두 승인을 받았습니다.
1727년에는 동생 요한 세례자와 함께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두 형제는 오랜 기도와 준비 끝에 예수님의 수난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어 갔습니다.
1737년 이후 — 예수 고난회의 성장
성인은 이탈리아 몬테 아르젠타리오에 첫 수도원을 세우고 공동체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수도 생활은 엄격했고, 여러 어려움도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와 선교를 함께 실천하며 수도회를 성장시켰습니다.
성인은 이탈리아 여러 지역을 다니며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전하는 그의 설교는 많은 이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회개하도록 이끌었습니다.
1771년 — 관상 수녀회 설립
성인은 여성 수도자들이 기도와 관상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공동체도 세웠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전하는 사도직이 더욱 넓어졌습니다.
1775년 10월 18일 — 로마에서 선종
성인은 노년의 병고 속에서도 영적 지도와 사목 활동을 이어 갔습니다.
마지막에는 수도회 형제들에게 서로 사랑하며 십자가 아래 머물러 살라는 뜻의 당부를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1867년 6월 29일 — 시성
교황 비오 9세는 성인을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오늘날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깊은 사랑과 기도, 선교의 모범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2. 예수 고난회란 무엇인가요?
예수 고난회는 십자가의 성 바오로가 창립한 수도회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것을 고유한 사명으로 삼습니다.
성인은 예수님의 수난을 과거에 일어난 비극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서 죄와 죽음을 이기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오늘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예수 고난회 회원들은 기도와 공동생활을 바탕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피정과 영적 지도, 고해성사와 선교 활동 등을 통해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합니다.
이 수도회의 특별한 영성은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십자가의 성 바오로가 가르쳐 주는 영성
첫째, 십자가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통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성인은 이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살았습니다.
둘째, 기도와 실천은 함께 가야 합니다.
성인은 깊은 기도 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참된 기도는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으로 응답하도록 이끕니다.
셋째, 고통받는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향한 성인의 사랑은 십자가 영성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은 도움도 사랑의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성인은 수도회 설립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기도하며 자신의 소명을 이어 갔습니다.
우리도 삶의 어려움 속에서 하느님께 의탁하고, 할 수 있는 사랑을 꾸준히 실천할 수 있습니다.
4.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고통을 무조건 참거나 어려움을 외면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통받는 사람 곁에 머물고, 도움을 청하는 이의 목소리를 듣고, 상처 입은 이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직장에서, 성당 공동체에서 내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면 십자가의 사랑은 오늘도 살아 움직입니다.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의 축일을 맞아 우리도 마음속에 예수님의 사랑을 새기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5. 함께 묵상하는 성경 말씀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1코린토 1,23 참조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패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과 구원의 희망을 보여 줍니다.
나는 오늘 누구의 아픔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요? 내가 먼저 용서하고 화해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6. 마침 기도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님,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드러난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하셨으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저희가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기도에서 얻은 사랑을 일상에서 실천하게 하소서.
가정과 성당 공동체 안에서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작은 희생으로도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게 하소서.
저희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십자가에 드러난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