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할렐루야! 여기에 아멘!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런데 하도 이상한 사람들이 이상하게 사용하기에 우리는 지금 아주 정상적인 반응조차 이상한 사람취급 당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이까지 버리는 형국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주일 오후에 보고 있는 시편 146편부터 150편 까지가 시편의 마무리인데 시작과 끝이 전부 할렐루야입니다. 시편의 마무리만 할렐루야가 아니라 모든 성경의 마무리도 할렐루야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끝도 할렐루야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우리가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까?
바울사도가 에베소서를 기록하면서 인사말을 하고나서 바로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바람이 가득 들어있는 풍선의 주둥이를 놓아버리면 급속하게 바람이 빠져나오듯이 찬송하리로다. 하면서 시작한 내용이 14절까지 숨도 쉬지 않고 한 단락으로 다 말해버리는 것입니다. 인사말도 감격에 찬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된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인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요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옥에 갇혀서 이런 찬송이 터져 나옵니다.
그 찬양의 내용을 제가 단숨에 읽어보겠습니다. “3-14절 봉독” 이 말씀들을 들으면서 여러분의 마음에서도 찬송이 터져 나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사도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과 상관이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다면 어떤 표현이 나오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할렐루야 할 것입니다. 성산구서 당선된 국회의원이 크리스천 경남신문에 보니 창원성산교회 다닌다고 합니다. 이것이 영광이라고 사파동 동성아파트 앞에 경주 강씨 사파동 사정회에서 축하 플래카드를 붙여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국회의원은 임기가 4년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욕만 얻어먹는 자리입니다. 그런데도 그 조그마한 권력을 위하여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지 눈물겨운 모습들입니다. 이런 것이 과연 성도에게 영광입니까?
다시 오늘 본문을 3절을 봅니다. 찬송한다고 합니다. 왜 찬송합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복이 무엇입니까?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택하신 이유는 우리로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합니까?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평생이 아니라 영원토록 찬양하여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에 찬양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이 성경이 말하는 복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하여 성도가 무엇을 찬양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3절에서 찬송하는 내용은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에 대한 말씀이 다 나옵니다. 신령한 복이란 바로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는 복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찬양하는 3-14절의 전체 내용이 성부 하나님의 주도하에 있지만 3-6절은 성부 하나님의 주도적인 사역을 인하여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합니다. 7-12절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말하면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13-14절에서 성령의 사역을 말하면서 그의 영광을 찬송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체가 다 찬송할 내용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3절에서의 내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어떤 하나님을 찬송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한분 하나님이신데 어떤 하나님이라고 물으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실 분이 많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4:4-6절입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이렇게 하나님이 한분이신데 어떻게 다른 하나님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분명하게 한정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그냥 하나님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냥 하나님이라고 하면 사람들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들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8-23절을 봅니다. “봉독”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였지만 그 결론들이 결국은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었다는 고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은 어머니 하나님이고, 여호와의 증인 하나님은 여호와만이 하나님입니다. 신천지의 하나님이 다르고 순복음의 하나님이 다르고 장로교의 하나님이 다릅니다.
참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불렀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어떻게 언약의 백성으로 인도하여 내시는가를 보여주셨기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구약의 하나님은 결국 무엇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구약을 기록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하여 구약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전체를 완성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참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은 다 엉터리요 마귀입니다.
요한복음 8:31-59절입니다. “봉독” 조상 때부터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여기는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진리를 알라고 합니다. 진리를 알아야 진리가 자유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자유롭게 되라고 하느냐는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짓는 자 마다 죄의 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지만 아들은 영원히 거하기에 아들이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롭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마귀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오늘날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사람들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상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이런 하나님일 것이라고 상상들을 다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하나님의 상을 심어준 것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심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포이에르 바흐라는 신학자는 ‘신이란 인간의 투사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실현하고 싶은 나의 자아상을 미래에 던져놓고 그 욕망을 향하여 달려가는 그런 욕망들의 총합이 신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모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이름을 부른다고 하여도 그 하나님이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3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참 하나님을 알게 된 이 사실로 인하여 찬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신 것입니까?
로마서 5: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8:3-4절입니다.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린도후서 5:21절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이라” 아주 부분적으로만 본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입니다. 이런 말씀에 감격과 찬송이 없다면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번에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셨다는 말씀에서 ‘하늘에 속한’이라는 말씀을 보려고 합니다. 이것도 다 찾아보려고 하려면 하루 종일 해도 부족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몇 곳의 말씀으로 하늘에 속한 것이 무엇인지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감동이 없다는 것은 하늘에 속하지 않아서 그럴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늘에 속한 사람이지만 땅에 속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하늘의 것에 대한 감동이나 사모함이 없을 수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이라면 아무리 이런 설교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이런 말씀이 싫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에 속한 것을 좋아하고 사모할 수밖에 없도록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환난이라는 방식으로 주어집니다. 우리의 신분은 이미 하늘에 속하여 있지만 그러나 이 몸이 아직 땅에 속하여 있기에 늘 땅을 향하여 살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만 그러나 신분이 하늘에 속한 사람은 반드시 땅에서 떨어져서 하늘을 향하도록 하나님께서 조치하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땅만 바라보던 사람이 하늘에 속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사모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2:5-7절을 봅니다.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하늘에 속한 복에는 관심도 없이 거저 썩어지고 더럽혀지고 멸망할 땅의 것들만 복이라고 여기고 달려온 자들을 창세전의 언약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땅에서 분리를 일으키셔서 결국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만들어내시고 마십니다.
골로새서 3:1-5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에게 반드시 이런 일이 일어나고야 맙니다. 그동안 살아온 것이 탐심이며 우상숭배인줄 알고 위엣 것을 찾게 됩니다.
그러면 땅에 속한 것은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2:15-17절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속한 사람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면 그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4:4절입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여기서 간음한 여인들아 라고 되어 있지만 여인들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이기에 교회로 부름 받은 자는 다 여인입니다. 그런데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 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것에 눈 돌리는 것이 간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투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자기 백성들이 자기 아들 외에 다른 곳에 눈 돌리는 것을 그저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다 불살라서라도 자기 아들의 사랑만 최고임을 드러내고야 마시는 것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자기 백성에서 부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는 자들은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다 사라진다고 하여도, 아니 세상에 믿던 것들이 사라질수록 더욱 찬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