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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값
주 요 한
1
유경이가 죽었다는 소식은 내게 쇽¹을 주었다. 나는 그가 아직 해외(海外)에 있는 줄로만 알았었는데 갑자기 그의 부고를 받고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원 그럴 수가 있나?’ 하고 생각했으나 사실이 사실인 데는 할 수 없다. 더욱이 그가 언제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또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죽었는지 그것이 내게는 큰 의문이었다. 더욱이 그동안 한 일 년 동안 웬일인지 서로 서신이 끊어졌었고 나도 또 이럭저럭 편지를 못 쓰고 있었는데 그가 고향에 돌아온 줄도 전혀 모르고 있었고 또 만일 돌아온 줄을 일짝 알았던들 좀더 속히 내려
가서 반가운 그를 만나 보았을 것인데 퍽 섭섭했다. 그와 나는 소학교 시대부터 제일 가까운 친구였다.
여러 가지 의문이 내 머리를 차고 돌았으나 좌우간 내려가 보면 알 터이지 하고 바로 그날 밤차로 평양으로 내려갔다.
초상난 집에는 사람들이 뜰로 하나 웅성웅성하고 있고 사랑에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장기들을 한가히 두고 있었다. 나는 본래 유경이 부모와 가깝고 유경이가 칠팔 년이나 해외에 있는 동안도 여러 번 평양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경이 어머니를 찾아보곤 했으므로 그 집은 홈 없이 드나들던 터이라 서슴없이 안방으로 들어섰다.
유경이 어머니는 나를 보고는 설움이 또다시 북받쳐서 다시 소리쳐 울었다. 유경이 아버지는 일어서면서 “오나!” 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들어가 앉았다. 그러나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흐늑거리는 유경이 어머니의 잔등과 또 그 풀어헤친 부스러진 머리털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널에 넣어두었던 유경이 시체를 내게 보이려고 다시 뚜껑을 떼었다. 나는 그의 죽은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작년에 그에게서 보낸 사진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 사진으로 보면 두 볼에 살이 통통했었다. 어렸을 적에도 몸이 통통해서 동리 할머니들에게 복스럽게 생겼다는 말을 늘 들었었다. 그리고 내 어머니도 늘 나더러 유경이는 저렇게 몸이 튼튼한데 너는 어째 요리 약골이냐는 말을 늘 들었었다. 그러나 유경이가 해외로 떠나가서 이래 몇 해 동안 서북간도로 다니며 몸에 광한 고생을 했으나 그 육체적 고생이 결코 그의 복스러운 두 뺨을 빼앗아 가지 못했었다. 그러던 것이 바로 일 년 전 사진으로 보아도 통통한 미남자이던 그가 불과 일 년에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뼈만 남아 툭 내민 광대뼈 핏기 없는 입술. 만일 반쪽이라는 것이 있다면 유경이는 지금 반쪽이 되었다. 나는 너무 악착해서 고개를 돌렸다.
방 한편 구석에는 아직도 그가 마시고 죽었다는 유리 약병이 놓여 있다. 나는 그 병을 들고 자세히 검사해보았으나 본래 약학에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그 자살한 이유에 대해서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경찰서에서 검시를 와서 산산히² 검사에보았으나 그럴듯한 단서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남긴 서류로는 종이 뭉텅이 하나와 “김만수 형에게”라고 쓴 죽는 날 밤에 쓴 유서 한 장이 있는데 그 유서에도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리도 써 있지 아니했고 또 다른 종이 뭉텅이는 꽁꽁 싸고 종이로 싼 것인데 겉에다가 “김만수 군께”, “타인은 물개(勿開)할 사(事)”³라 썼으므로 아직 아무도 떼어 보지 않고 내가 온 후에 보기로 했다고 한다.
종이 뭉텅 이를 펴서 보니 그것은 그의 일기였다. 원고지에다가 예의 그의 유명한 악필(惡筆)로 흘려 쓴 일기였다. 일기는 한 일 년 전부터 최근엣 것까지인데 그것도 급하게 뒤적거려가지고는 그 죽은 원인에 대해서 십분지 일의 빛을 던져주기에도 부족했다. 그래 일후(日後) 틈 있는 대로 천천히 다 읽어보아서 혹 무슨 사실을 찾으면 편지로 알게 하기로 했다.
죽은 친구를 서장대 묘지에 묻고 그 이튿날 아침 즉시 서울로 돌아오는 차를 탔다. 나는 차 속에서 그의 일기를 말끔 읽었다. 악필로 흘려 쓴 것이 되어서 서울 다 오기까지에 겨우 모두 읽었다. 그리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일기를 이렇게 공개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유경 군의 일생을 왔던 보람도 없이 그냥 흙 속에 묻어버리기는 싫다. 만일 유경 군의 혼(魂)이 이 일기를 공개하는 것을 불합당(不合當)하게 생각한다면 나는 그 책(責) 함⁴을 달게 받을 터이다.
그의 일기는 이러하다.
*
8월 28일
상해(上海)로 돌아왔다.
항주(抗州)는 퍽 아름다운 곳이었다. 더욱이 서호(西湖)에서 해 지는 구경하는 것은 참으로 신선놀음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나는 고독을 느꼈다. 나이가 차차 먹어서 그런지 어떤 알지 못할 이성(異性)이 그리웠다. 저녁에 서호 가에 나갈 때마다 젊은 남녀들이 쌍쌍이 공원 안으로 거니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슬근히 서운하고도 클클한 감정이 났다. 아! 그 아름다운 해 떨어지는 구경을 나 혼자 하지 말고 누가 같이 있어서
“아름답지요!”
“네!” 하고 이야기해가면서 보았으면 했다.
찻간은 무던히 좁았다. 정거장마다 피란민들이 들이밀린다. 아무래도 전쟁은 시작되나 보다. 나는 찻간에서도 형형색색의 참담한 구경을 보았다. 인생 생활이란 본래 이런 것인가 하고 생각하니 한끝 가이없다.⁵ 발 옮겨놓을 틈도 없어서 내내 오뚝 서서 오는데 더구나 차가 다섯 시간이 연착이 되어서 퍽 괴로웠다. 상해는 피란민으로 우글우글한다.
9월 10일
개학했다. 학생은 절반이나 왔을까! 그러나 자꾸 오는 중이다. 또 한 학기 동안 머리를 썩여야 하겠다. 방학이 좀 지루한 것도 같더니 다시 공부할 생각을 하니 기쁘다.
9월 20일
어젯밤 한잠도 못 잤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어젯밤 일이었다. 강당에서 청년회 주최로 신입 학생 환영회를 열었었다. 열 시가 넘어서 회를 마치고 나오려고 막 일어서다가 우연히 바로 앞줄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어떤 여학생 한 분하고 눈이 마주쳤다. 나는 총각의 수줍음으로 평상시같이 얼른 눈을 옮겼다. 그도 얼른 외면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깜빡하는 일순간에 무슨 큰 감격을 받은 것 같았다. 어째 그 얼굴이 퍽 다정한 듯 하고 한 번 더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앞서 있는 사람들이 아직 다 풀려 나가지를 않아서 우두커니 서 있을 때 나는 어떤 시선이 나를 주시(注視)하고 있는 것을 감각했다. 그래서 다시 고개를 그리로 돌렸다. 그 여학생이―나를 들여다보고 있던 여학생이 ―낭패한 듯이 눈알을 딴 데로 돌리고 귀밑이 빨개졌다―내가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러고는 그가 문 앞까지 갔을 때 한 번 더 힐끗 돌려다 보고는 그만 문밖 컴컴한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얼빠진 사람처럼 무엇을 얻었다가 잃어버린 사람처럼 눈이 멀게서 한참 섰다가 뒤에서 내미는 바람에 밀려 나아왔다. 변소를 다녀와서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얼굴을 돌이켜 불들이 빤하게 켜 있는 맞은편 여학생 기숙사 창문들을 하나씩 하나씩 쳐다보았다. “아! 어느 방에 그이가 계신가?” 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자 탄식했다.
밤새도록 그의 생각이 내 머리를 점령했다. 힐끗 두어 번 본 얼굴이어서―개학 이래 아직 보지 못했었다. 그것은 내가 그리 여학생들을 주의해 보지 않는 까닭이다. 얼굴의 윤곽만도 퍽 희미하게 밖에는 기억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 머리에는 그 쏘는 듯한 광채 있는 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 그 눈, 그 눈이 온밤을 내 몸을 감시하고 있었다.
내가 내 자신으로도 퍽 이상하게 생각이 된다. 성욕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벌써 십여 년 동안에 하고많은 여자들―그중에는 ‘퍽 예쁘다’ 하고 인상을 얻은 여자도 수두룩하다―을 길거리에서 보고 학교에서 보고 한자리에 앉아 공부를 했으되 이처럼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긴 적이 없다. 혹은 거리에서 혹은 전차 안에서 혹은 교실 안에서 수많은 여자들과 눈이 마주쳐보았다. 어떤 때는 퍽 아름다운 여자의 눈이 마주치면 마음이 퍽 기꺼웠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이요 한 시간 후이거나 무슨 다른 생각을 하거나 책을 한 페이지 읽고 난 후에는 그 인상은 벌써 잊어버려질 뻔했었다. 그런데 하필 이 여자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오전에 또 이상스런 일이 있었다. 밤새도록 잠 못 자고 머리가 띵하건만 오늘 갖다 바칠 숙제는 아직껏 남아 있어서 아침 첫 시간 빈 시간에 도서관으로 빨리 가는 중이었다. 나는 항상 걸음을 빨리 걷는다. 그것은 연전(年前)에 어떤 서양 사람이 동양사람 걸음걸이는 사흘 굶은 사람 걸음 같다는 평을 듣고 분개하여 걸음 빨리 걷는 습관을 만들려고 한 일 년 동안 애쓴 결과 이제는 아주 버릇이 되었다. 그래 빨리 걷는 걸음으로 층층대를 성큼성큼 올라서서 바른쪽 문 편으로 홱 돌아서면서 한 걸음 내놓는 차에 아차 하면 어떤 여학생하고 이마를 딱 마주칠 뻔했다. 불현듯 “옛”소리를 치면서 나는 갑자기 멈칫하면서 앞으로 나가던 몸을 뒤로 움츠렸다. 그래 몸은 균형을 잃어 넘어질 뻔했으나 바로잡았다. 마주 오던 여학생도 우뚝 섰다. 그는 무슨 급한 일이 있던지 도서관에서 달음질쳐 나오다가 이렇게 하마터면 마주칠 뻔한 것이다.
둘이 마주 서면서 힐끗 두 사람의 눈은 마주쳤다. 아, 그 눈, 그 눈이었다. 어제 밤새도록 나를 감시하던 그 눈이었다. 나는 부지중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얼굴이 벌게졌다. 그래 얼른 모자를 벗고 “실례했습니다” 하고 모깃소리만치 입을 열었다. “천만에” 하는 가느다란 소리를 남겨놓고서 그는 다시 내가 비켜선 데로 뛰어 달음질로 뛰어나갔다. 나는 거의 모든 의식과 존재를 잊고 그의 뛰는 뒷모양을 바라보았다. 층층대를 다 내려가서 한 번 힐끗 돌아다보다가 아직도 내가 멀거니 서서 저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부끄러웠던지 얼굴이 빨개지고 그러면서도 어떤 미소를 띠고 이상한 몸짓으로 여학생 기숙사 쪽으로 뛰어갔다.
나는 도서관 안에 들어가 앉아 책을 펼쳐놓았으나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책장을 뒤치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았다. 어떤 말할 수 없는 행복과 기대가 가슴에 뭉켜서 정신이 얼떨한 것이 분별을 할 수가 없이 되었다. 한참 만에 정신이 들어 보니 책은 벌써 네댓 페이지 읽었으나 무슨 소리를 읽었는지 한 마디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다시 책을 처음부터 읽으려 했으나 실패였다. 둘째 줄을 읽기두 전에 벌써 셋째 줄에 무슨 말이 있었는지를 기억할 수가 없도록 내 마음은 흥분되었던 것이다.
나는 무엇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아무런 사상 아무런 사색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그 여학생의 생각을 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멀거니 정신이 빠져 앉아 있는 것이었다. 가슴이 멍하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시계를 쳐다보았으나 몇 시 되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었다. 멀거니 창밖 저 강가에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 끝만 바라다보다가 그만 방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다.
그 여자의 이름이 무엇일까? 신입생일까? 몇 년급⁶인가? 하는 생각을 몇 번 했다.
기계처럼 제시간 찾아 교실에 들어는 갔으나 그 시간들을 모두 어떻게 보냈는지 하나도 기억할 수 없다. 만일 어떤 선생이고 내게 무엇을 물어보았다면 나는 두말없이 제로 한 개씩은 꼭 받았을 것이다.
기도회 시간에는 내가 전에는 그렇게 부주의하던 여자석을 아주 자주 건너다보는 나를 발견하고 나도 내가 우스웠다. 그 여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뒷모양을 무한히 바라다보고 싶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하고 열심으로 강대를 바라다보려 했으나 어느새인지 눈알은 자연히 그가 앉은 곳으로 옮겨지곤 했다.
10월 1일
오늘에야 나는 그 여학생의 이름도 알고 년급도 알았다. 어제는 여름 동안 여행을 갔다가 늦게야 돌아온 생물학(生物學) 교수가 오늘부터 교수를 시작한다는 광고를 들었다. 나는 작년에 시간 상치로 생물학 공부를 빼놓았었다. 그런데 그 과목이 이 학교 필수과이어서 금년에는 꼭 배워야 한다는 교무장의 명령이었다. 그래 과정표를 살펴보니 시간 상치가 몇 시간 있는 것을 과정표 개원과 의논해 몇 시간을 고치고 그러고도 상치가 있어서 강의는 같이 듣고 실습은 나 혼자 따로 딴 시간에 하기로 하고 생물학을 배우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오늘 처음으로 학생표를 가지고 생물학 강당에 갔다가 그 여자도 역시 거기 와 앉았는 것을 보았다. 가슴이 멈칫했다. 그리고 교수가 우리들 자리를 잡아주느라고 일일이 호명할 때 나는 그러지 않는다 하면서도 자연히 귀를 기울여 그 여자의 이룸을 들으려 했다.
그는 N이다. 아! N. 무엇이라고 할 음악적 이름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기실⁷ 음악적이기보다는 듣기가 좀 거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조차 듣기 좋게 생각이 되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 했겠지!
나는 그동안 며칠을 어떤 모양으르 지났는지 모른다.
10월 20일
생물학 시간에 보는 것 외에도 나는 한 주일에 서너 번씩 그 N 씨를 보게 된다. 생물학 시간에야 그는 맨 앞줄에 앉고 나는 바로 안 뒷줄에 앉으니까 그와 내가 서로 마주칠 일이 없으나 그 밖 만나는 때는 만나는 때마다 나는 늘 그의 눈이 나를 바라다보는 것을 감한다. 그래 나도 필사의 용기를 다하여 그를 쳐다보면 그의 눈과 내 눈은 마주친다. 그러면 서로 낭패한 듯이 얼굴을 돌린다. 어떤 때 혹 도서관 같은 데서 나는 그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감한다. 그것은 이상한 본능이다. 그를 보지 못했더라도 내 등 뒤에 어떤 주시를 감하여 돌아다보면 나는 반드시 그이의 눈을 본다. 그런데 나는 바보다. 너무 얼뜨다. 나는 그를 일 초라도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없다. 혹 곁눈으로 보살피면 그는 아직도 멀거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 나는 한없는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대담하게 그를 물끄러미 바라다볼 용기는 없는 것이다. 아니 용기만 없는 것이 아니다. 내 속에는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첫째는 나는 자존심이 너무 강하다. 내게는 여자가 홀리려니 저편에서는 내게 홀렸는데 나는 이렇게 못 본 척하고 있으면 저편에서 안타까워하려니 하는 야비스런 자존심의 발동이다. 둘째는 어떤 의미의 도덕심 이다. 의무심이다. 민족 관념이라는 그것이다. ‘아! 나는 외국의 여자와 눈 맞춤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하고 나는 늘 혼자 생각한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왜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가? 나는 아무래도 그를 잊을 수가 없다. ‘아니다. 안 된다. 안 된다’ 하면서도 그러면서도 나는 그를 보고 싶다. 그가 나를 바라다보거나 곁눈질해 보는 것을 바란다. 그러면서 속에서는 자꾸만 의심이 떠오른다. 그가 왜 그렇게 자세자세히 나를 바라다볼까? 혹은? 아니 혹은? 아! 나는 그 한 길 사람의 속을 몰라 애를 쓰는 것이다.
10월 29일
오늘은 토요일이었다.⁸ 아침 첫 시간 공부가 없으므로 마음 놓고 자다가 그만 조반을 잃어버렸다. 마침 마지막 시간에 선생이 결석했으므로 친구들(그 애들도 늦잠 자고 조반 굶은 애들) 몇이 와서 호떡을 사 먹으러 문간까지 나갔었다.
마침 N씨가 다른 여학생 몇과 같이 토요일인 고로 집에를 가는 모양이었다(N씨의 집 이 상해에 있는 줄을 짐작했다). 여럿이서 자동차를 타고 나오다가 대문 앞에서 누구를 기다리는지 서 있는데 N씨는 쌩긋쌩긋 웃으면서 옆에 앉은 여학생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자동차 앞을 돌아서 지나가야만 하게 되었다. 나는 뒤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일행의 선두가 앞으로 가므로 할 수 없이 따라갔다. 나는 두근두근하면서 할 수 있는 대로 외면을 하면서 빨리 그 앞을 지나오려 했다. 그러나 힐끗 곁눈으로 N씨가 내게 향해 머리를 돌리는 것을 보는 듯하고 나는 전신이 짜르르해짐을 감각했다. 내 몸이 어째 갑자기 쫄아들어서 N씨 앞에서 새끼손가락만 하게 작은 사람이 되어 발걸음을 떼어놓지 못하고 자꾸 그에게로 끌려가는 것 같았다. 머리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때 자동차는 다시 푸르르하면서 열어놓은 대문으로 줄곧 달려나갔다. 나는 그 자동차를 바라다 볼 용기도 없어서 급급히 호떡가게로 기어들어갔다. 바로 어떤 쇠사슬에 매였던 몸이 풀려 놓인 것 같기도 하고 몸이 다시 쑥쑥 자라서 커진 것 같기도 하다.
왜 이럴까. 사실 그의 앞에서는 기를 못 펴겠다. 이런 경험은 참으로 처음이다. ‘무엇하러 그리 급히 상해를 갈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떠돌았다. ‘혹시 제 연인(사랑하는 사람)이나 만나러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서 공연히 질투 비슷한 감정의 격동을 맛 보았다. 내가 왜 이럴까. 그 여자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말 한마디도 못 건네보고…… 더욱이 N씨가 나 같은 것 알기나하리! 글쎄 왜 그렇게 바라다보기는 바라다보곤 할까? 아무래도 모르겠다. 머리만 아프다. 일기 쓸 팔 힘도 없다.
11월 15일
그동안 나는 내가 어떻게 공부를 계속했는지 알 수 없다. 한 날 한 시도 한 초 동안도 그를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 글 한 두어 줄 정신 들여 읽다가도 그저 그의 생각이 번듯 나곤 했다. 그동안의 내 생활 전부는 그저 꿈속 생활이었다. 얼마나 그를 잊으려고 애를 쓰는지!
그런데 어젯밤에는 새로운 한 경험이 있었다.
세계 일주를 한다는 연극가 영이란 사람이 자기 마누라와 함께 세계 각처로 다니면서 독연⁹을 한다. 그런데 어젯밤 학교에서 청해다가 구경을 했다. 나는 언제나 하는 버릇대로 방에서 잡지장을 뒤적거리고 앉았다가 연극을 시작한다는 종소리를 듣고야 뛰쳐나와서 강당으로 갔다. 오십 전 주고 표를 사 가지고 들어가니 마침 빈자리가 없고 맨 앞줄이 몇 자리 비었을 뿐이라 그래 저벅저벅 걸어가서 앉으려다가 나는 놀랐다. 걸상 저편 끝에는 그 N씨가 순서지를 들고 앉아 있다가 나를 힐끗 쳐다본다. 나는 화끈했다. 그래 어름어름하면서 N씨와 두어 자리 동이 뜨게 비워놓고 남학생들 가까이 앉았다. 그러나 나는 내 전신이 자꾸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공연히 머리를 끼웃하기도 하고 발을 늘어뜨렸다 다가들였다 하기도 하고…… 이러지 않으리라 하면서도 할 수 없었다. 더욱이 두 팔을 건사할 데가 없어서 큰 걱정이었다. 평상시에는 두 팔이 어디 붙었는지도 모를 만치 무관심했었는데 이 N씨 앞에서는 어쩐 일인지 두 팔 처치하기가 참 힘이 든다. 무릎에다가 척 늘어뜨려도 보고 마주 쥐고 읍하듯이 가슴에 대어보기도 하고 엉덩이 아래로 넣어 깔고 앉아보기도 하고 아무렇게 해도 자꾸만 보기 흉한 것같이 생각이 된다. 내가 몇 번이나 곁눈질을 해 보았는지 또는 그가 몇 번이나 나를 곁눈질을 하다가 나한테 들켰는지!
그러는 동안에 나보다도 더 늦게 온 학생들이 있어서 자기들도 여학생 앞에 앉기는 수줍으니까 N과 내가 앉은 그 중간 빈자리로는 아무도 아니 들어오려 하고 부덕부덕¹⁰ 내 위로 파고들어 앉는다. 나도 얼굴이 빨개지기는 졌으나 그래도 한편으로는 슬며시 시뻐서 못 견디는 체하고 조금씩 조금씩 내려앉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그의 거리가 퍽 가깝게 된 때 나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N도 몸을 흠칫흠칫하면서 나를 곁눈으로 보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나도 그가 몸을 퍽 부자연하게 가지는 것을 인식했다. 지금은 아주 N과 내 사이에는 빈자리가 없게 되었다. 의자가 꽉 들어찬 것이다(이 의자는 기다랗게 만들어 한 의자에 예닐곱 여덟씩 앉게 되어 있다). N은 저편 여학생들 쪽으로 조금 돌이켜 앉고 나는 또 이편 남학생 쪽으로 조금 돌이켜 앉았다. 그러나 내 겨울양복 저고리와 그의 약간 솜을 둔 저고리는 스칠 듯 스칠 듯하고 있었다. 나는 퍽 부자연스럽게 생각이 되어서 공연히 말대꾸도 잘 아니 해주는데도 옆에 앉은 남학생과 무슨 이야기를 건네려고 애를 쓰나 이렇게 여학생 옆에 앉아서 눈이 멀게 앉아 있는 것이 어째 자꾸만 안된 것 같고 누가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N도 순서지를 들여다보았다 천장을 쳐다보았다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하면서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래 그가 머리를 만지노라고 팔을 들 때에 그의 팔이 내 어깨를 슬쩍 스치고 할 때마다 나는 몸이 오싹하곤 했다. 그리고 몇 번째나 내 곁눈질과 그의 곁눈질이 마주쳤는지 .
이때 연극은 시작되었다. 강당의 불은 껐으나 무대에 불을 밝히켰으므로 방 안은 그 여광으로 어렴풋했다. 나는 몸을 똑바로 앉혔다. 영이 화장을 하고 무대로 나아온다. 박수 소리가 요란하다. 한참 만에 N도 살그머니 몸을 돌이켜 똑바로 앉았다. 그의 왼팔과 내 바른팔이 꼭 달라붙었다. 따스한 기운이 건너온다. 나는 정신 잃은 사람처럼 되었다. 나는 여자의 살김을 이렇게 몸에 받아
보기는 이것으로 두 번째였다. 첫 번은 바로 작년 겨울 방학 때 남경을 놀러 갔다가 상해로 돌아오는 길에 전부터 친하던 S씨와 같이 오던 때였다. 그때 밤차를 탔는데 S씨는 잠을 안 잔다고 다른 친구들과(여학생은 S 혼자밖에 없고 .그나마는 모두 다 남학생들이었다) 윷을 논다 손금을 본다 하고 떠들었다. 그동안에 나는 좀 곤하기도 했었으므로 혼자 떨어져 나와서 한참 잘 잤었다. 밤 새로 한 시나 되어서 윷 놀던 친구들이 차차 졸기를 시작했다. 그래 나는 일어나 앉아서 나 누웠던 자리를 하품만 하고 앉았는 S에게 양보하였다. 그러나 S는 젊은 처녀가 여기서 떡 벋치고 자기는 싫다고 드러눕지 않겠다고 우긴다. 그래 할 수 없이 P군이 그리 가눕고 S는 그냥 내 옆에 앉은 채로 잔등을 의지하고 자보기로 했다. 그것은 그 동행 중에는 내가 S와 제일 가깝고 또 흠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S도 좀 꺼리어서 내 어깨에만 머리를 대고 졸고 앉았더니 차차 졸음이 더해오니까 고만 이것저것 모두 잊어버리고 내 몸에다 제 몸을 탁 실리고 말았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그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애썼다. 그때 차 안이 꽤 추웠는데 나는 내 팔과 잔등으로 S의 따듯한 기운이 흘러들어와서 몸을 녹여주는 것을 감했다. 그러나 그때는 오늘과 같지는 않았다. 따듯한 몸김이 싫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무슨 내 몸을 격동시키지도 않았고 아무런 다른 감각도 주지 않았다. 다만 집에 있는 누이동생 ―아! 그 애는 지금 죽었다. 그의 영혼이 평안할지어다――과 같은 생각이 나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때에는 S가 여성이거니 하는 생각조차 별로 없었다. 그저 친구로, 어린 누이동생으로 그것밖에는.
그런데 이날은 웬일일까? 작년과는 감각과 자극이 딴판이었다. 그 따스한 기운을 감각할 때마다 나는 몸이 찌르르하는 무슨 격동을 감했다. 꽉 끌어안고 싶은 생각까지 났다. 그리고 그 따끈따끈한 팔을 통하여 나는 그의 할딱할딱하는 심장 뛰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몸을 좀더 그쪽으로 기울였다. N은 꼼짝 아니하고 있다. 내 얼굴이나 N의 얼굴은 모두 무대 쪽만 바라다본다. 나는 N의 꿀꺽하고 침 삼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나도 어쩐 일인지 평상시에는 침을 삼키지 않아도 저 혼자 어떻게 나오는 족족 없어지더니 지금은 웬일인지 침 이 자꾸만 입안에 모여서 꿀꺽 소리를 내어 삼키지 않으면 넘어가지를 않는다. 나는 정신없이 앉아 있었었다.
“핫!” 보니 N의 순서지가 풀썩하고 떨어져서 교의 밑으로 들어간다. 나는 이때에야 정신이 반짝 들었다.
“여러분 로마의 백성이여. 나는 씨자를 칭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씨자를 묻으러 왔소이다” 하고 영은 독연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N이 떨어뜨린 순서지를 꺼내려고 허리를 굽혔다. N도 허리를 굽혔다. 팔을 교의 아래 넣어 더듬더듬하다가 그 순서지가 내 손에 잡혔다. 그래 끌어 올리려고 하는 순간에 나는 더듬더듬하는 N의 손을 슬쩍 다쳤다.¹¹ 나는 가슴이 벌럭
벌럭하는 것을 감각하면서 그 손을 꼭 쥐었다. 온몸이 찌르르하고 아팠다. N는 뿌리치려고도 아니 했다. 천천히 두 손이 교의 밖으로 나왔다. 그의 가늘고 하얀 손이 나의 누렇고 큰 손아귀 속에 꼭 감추어진 손이 희미하나마 똑똑히 보이었다. 나는 화닥닥 놀라면서 얼른 그 손을 놓았다. N도 낭패한 듯이 손을 얼른 무릎 위에 놓고 옆에 앉은 여학생을 힐끗 돌이켜 본다. 모두 연극에 취했
다.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가장 공손하게 그 순서지를 건네주었다. N은 가만히 받으면서 귓속말로
“Thank you, Mr. Lee” 한다. 나는 놀랐다. 어떻게 N이 내 이름을 알까? 그러면 그도 내 이름을 알려고 내가 그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 애쓰니만치 애를 썼는가? 그러면 그도 나처럼 나를 늘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씨자가 괴로워할 때 울었습니다. 씨자가 승리하매 나는 춤추었습니다. 그리고 씨자가 야심을 품었으매 나는 그를 죽였습니다” 하고 무대에서는 흐르는 듯이 내려온다. 군중은 죽은 듯이 고요하다.
나는 정신을 잃고 무엇을 자꾸만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좌우간 나는 N과 나 외에는 아무 존재도 인식하지 못하고 한참을 지났다. N의 쌕쌕하는 숨소리까지가 가장 아름다운 음악 소리로 내게는 들렸다. 한참 만에 다시 나로 돌아오니 영은 어느새 유대인 호헤시오가 되어가지고 나왔다. 「베니스의 상인」 한 막을 독연하는 중이다. 험상궂게 생긴 유대인이 딸 잃은 것에 분이 나서 그 기다란 수염을 잡아 흔들면서 무섭게 생긴 틀니를 드러내고 야단을 치고 돌아간다.
“오! 오! 내 딸아! 오! 저 이단지교를 믿는 놈. 응, 이놈 어디 보아라. 오! 이놈들. 이 이단지교도들. 이번에 꼭 그놈의 살을 잘라서 복수를 해야겠다…… 오! 내 딸아. 딸……” 하면서 미친 듯이 마루에 쓰러진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N을 돌아다보면서 빙긋 웃었다. N도 씽긋 웃고 무엇을 찾아내려는 듯이 나를 열심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얼뜬 놈인가?
연극은 끝났다. 우리는 문 안에 앉은 사람들이 다 풀려 나갈 때까지 서 있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나는 그동안이 퍽 오래게 생각이 되었다. 나는 마음을 잔뜩 먹고 문밖 좀 어둑신한 데 나와서 N에게 귓속말로 ‘I love you’ 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기회는 놓쳤다. 나는 너무 얼떴던 것이다. 종내 그럴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그러고는 그 밤 나는 넘치는 기쁨과 알 수 없는 의심 때문에 잠을 못 자고 말았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이런 일을 잊어버려야 한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이런 달큼한 맛에 취할 때가 아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멀리서 ‘쾅쾅’ 울려오는 대포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디에서 아마 격전을 한 모양이다.
11월 17일
오늘은 주일¹²이었다. 마침 아침 예배당에서 바로 N씨 뒤에 앉게 되었다. 내가 일부러 자리를 거기 정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예배당에 먼저 들어가서 거기 앉아 있는데 N이 다른 여학생 서넛과 들어와서 내가 앉은 앞 줄로 가지런히 앉은 것이다. 자리에 앉을 때 N은 나를 보고 방끗 웃으면서 인사했다. 어째 퍽 가까워진 것 같은 생각이 나서 나도 한없이 기뻤다. 그러나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얼굴을 붉히면서 다른 사람이 보지나 않았나 하고 휘둘러보았다. 저편 맨 뒷줄에 홀로 앉았는 C군(중국 학생)이 웃으면서 한쪽 눈을 끔뻑 감는다. 나는 얼굴이 화끈해지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물론 이날 설교하는 목사의 소리는 한 마디도 귀에 아니 들어왔다. 나는 힐끔힐끔(똑바로는 바라다보지 못하고) N을 바라다보았다. N은 팔로 턱을 괴고 고요히 앉아 있다. 나는 그의 핼쑥한 목뒤와 이따금 파르르 떨리곤 하는 동그스름한 잔등(아마 퍽 신경질인가 보다)을 바라다보다가 무심히 바른편 뺨을 괴고 있는 희고 작은 손을 보고 놀랐다. 다른 것보다도 그 무명지에 맵시 있게 끼인 반지를 보고 놀란 것이다. ‘아! 그러면 약혼을 했는가?’ 하고 생각이 드니 그만 쓸데없는 심술이 났다. 그러면서도 ‘잘되었다’ 하는 부르짖음도 귀에 쟁쟁하게 내 속에서 부르짖었다.
‘단념하자! 물론 처음부터 그리하여야 했을 것이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고 손이 바로 얼마 전에 내 손아귀 속에서 바르르 떨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니 한껏 형용할 수 없는 감개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작고 흰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는 그 당자야말로 얼마나 행복되랴!’ 하고 혼자 궁리를 했다. 그러면 또다시 의심이 나기 시작했다. ‘만일 그렇다면, 그렇다면 어째서 저이는 내게다 이상한 태도를 취할까? 하여간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 태도가 아니었는가?’ 나는 퍽 고심했다. ‘그러면 저이는 그런 불량소녀인가? 아무 남자나 제 손아귀에 넣고 주물러보고 싶어 하는 요부가 아닌가?’ 얼마 전에 한 번 본 활동사진 생각이 났다. 「What a fool he was!」라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으로 보면 어떤 여성 (절세의 미인인 여성) 하나가 많은 남자를 홀리는 것을 유일의 낙으로 삼아서 많은 남자들을 속이고 끌어들였다가는 마침내 남자들이 자살하고야 마는 지경까지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N은 그와 같은 여자였던가?
어떤 생각이 다시 나를 좀 냉각시켜주었다. 그것은 내가 아직 그 손이 왼손인지 바른손인지를 잘 분별해 보지 않았던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N은 손을 내렸다. 나는 얼마나 그가 다시 손으로 턱을 괴기를 기다렸는지! 그러면서 나는 다시 한 달 전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때 분명히 나는 그의 왼손을 붙잡았었다. 그런데 그때 물론 너무 홍분되었었으니까 잘 기억할 수는 없으나 확
실히 무슨 반지를 낀 것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면 그동안에? 아니 바른손에 낀 것이 아닌가?
N은 다시 팔을 턱에 괴었다. 나는 손가락들을 자세히 검사해 보았다. 바른 뺨 목 뒤로 손가락들이 가로놓였다. 나는 내 손으로 가만히 내 뺨에 갖다 대면서 실험해보았다. 만일 왼손일 것 같으면 엄지손가락이 위로 갈 것이요 바른손일 것 같으면 엄지손가락이 아래로 갈 것이다. 그런데 보니 엄지손가락이 아래로 갔다. ‘오! 그러면 바른손이다’ 하고 나는 겨우 안심하는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내가 미친놈이다. 나는 속으로 늘 ‘안 된다. 안 된다.’ 하였다.
2
‘단념하려고 애를 쓰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약혼한 줄 알았다가 다시 아직 아니 했는 줄로 알게 된 때 안심하는 이 모양은 어떠한가!
12월 1일
아무래도 큰일이 났다. 이 모양으로 가다가는 내가 꼭 병이 나고야 말 모양 같다. 이렇게도 단념하기가 힘들다가는 참으로…… 그러면 나는 왜 이렇게 고민하는가? 누가 나더러 네가 왜 그러느냐? 하고 물으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 “나는 N을 사랑한다” 하고 대답할 것인가? 그러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또 내가 N을 사랑한다면 왜 사랑하는가? 나는 그것을 대답할 수가
없다.
내가 N을 사랑한다. 왜? N의 얼굴 돈 인격 이상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만일 ‘사랑’ 이라는 것을 내가 그를 그리워하던 그것으로써 해석한다면 나는 그를 첫 번 눈에 사랑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인격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은 처음에 문제에 들지도 않았다. 그저 맨 처음 그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친 때 그때 벌써 내 혼은 N에게 붙잡힌 바 되고 만 것이다. 얼굴? N은 결코 미인이 아니다. 학교 안에도 N보다 참으로 더 고운 여학생은 많다. 물론 밉게는 아니 생겼다고 다른 사람들도 말한다. 그러나 미인은 아니다. 그러면 나는 그의 색(色)에 취한 것도 아니다. 돈도 아니다. 처음에는 그가 돈이 있는 인지 없는 인지 알지 못했다. 의복으로 말하면 그는 언제나 검소하게 입는다.
그러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보고 그를 사랑하는가? 이상한 일이다. 사랑은 인격의 융합이라거니 무엇이라거니 하는 것은 말짱 거짓말이다. 나는 내실 경험이 있다. 나더러 연애의 정의를 내리라면 그것은 눈의 유혹이라 하겠다. 그렇다. 나는 꼭 그의 눈의 유혹을 받은 것이다. 그의 타는 듯한 애소하는 듯한 무슨 의미가 있는 듯한 그 고운 눈. 그 눈이 나를 얽어맨 것이다. 그렇다. 연애는 눈이다.
나는 어떤 때 기회가 생기면 N의 모양을 좀 똑똑히 관찰도 해보고 해부도 해보았다. 확실히 그의 얼굴은 사람을 끌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같이 있는 D군이 그 여자 얼굴은 삼각형이라는 악평을 하고 웃은 일까지 있다. 더욱이 코와 눈새¹³가 쑥 들어가서 이른바 싀거대일다.¹⁴ 그리고 몸맵시도 없다. 목이 너무 길어서 몸과 머리의 조화가 잘 아니 되고 의복도 다른 학생들처럼 그렇게 몸에 어울리지 아니 한다. 그리고 뒤뚱뒤뚱하고 걷는 걸음걸이를 보면 정 떨어진다. 그래 나는 ‘밉다, 밉다. 원, 저것한테 내가…….’ 하고 속으로 고함쳐본다. 그러다가도 그의 까만 눈이 나를 바라다보고 있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에는 나는 그만 그의 종이 되고 만다. 그저 그를 위하여는 무엇이고 희생하고 싶어진다. 그를 영원히 바라다보고 있어도 싫증이 아니 날 것 같다.
12월 4일
꽤 추워졌다. 피난민과 패군¹⁵이 상해로 자꾸만 몰려 들어온다.
나는 단념하여야 한다. 다는 민족을 위해서는 독신 생활까지라도 하기를 사양치 않던 내가 아닌가? 그런데 지금 이 꼴은 무엇인가. 조그만 계집애 하나에게 미쳐서 공부도 확실히 못 하는 이 꼴은 무엇인가? 나는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
더욱이 N은 외국 여자가 아닌가? 연애에는 국경이 없다고.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러나 현금의 조선 청년은 비상한 시기에 처하여 있다. 비상한 시기에 처한 청년은 비상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목숨도 희생할 때가 있거든 하물며 사랑! 아! 그러나 가슴은 아프다. 이것은 내 목숨같이 귀한 내 첫사랑이 아닌가! 그러나 용감하여라. 대장부답게 꾹 단념해버려라. 아직 너무 늦지 않다. 이 모양으로 지나가다가 너무 늦어지면 그때는 후회하여도 쓸데가 없는 것이다. 지금이 단념 할 때다.
12월 21일
일요일이다. 다시 내 마음이 요동되었다. 하루 종일 놀고 밤 여덟 시쯤 해서 내일 숙제 준비를 맞추려고 도서관에 갔었다. 갔으나 책은 벌써 다른 학생에게 점령되었는 고로 내일 아침에 다시 오지 하고 바깥방에서 잡지들을 뒤적뒤적하다가 고만 가 자자 하고 문을 벌컥 열고 나오다가 마침 이층에서 내려오는 N씨와 딱 마주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쓰려고 하던 모자를 다시 내리면서 N을 바라다보고 웃었다. N도 방끗 따라 웃고 내 앞으로 왔다. N은 피아노 악보를 한 아름 안고 있었다. 새빨간 재킷을 입은 그가 누런 전등 아래서 꽤 예쁘게 보였다. 나는 꿈꾸는 사람처럼 되었다. 그 쏘는 듯한 눈이 다시 나를 감금하고 말았다. 나는 나 자신이 생각을 해도 부자연스럽 게 손을 쑥 내밀며 “저, 들어다 드리지요―” 하였다. 내 목소리도 떨리고 팔도 떨렸다. N은 다시 쳐다보며 방끗 웃고 아무 말 없이 악보들 한 아름 내게 맡졌다. 나는 악보를 옆구리에 끼고 손에 장갑들을 끼면서 문밖으로 나섰다.
둘이서는 아무 말 없이 거의 둥그레진 달이 희고 차게 비춰주는 돌층층대를 천천히 걸어 내렸다. 바람이 없어서 그리 춥지는 않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피 아노 연습하셨어요?” 하고 벌써 다 아는 일이언만 물었다.
“네. 이번 크리스마스 예배에 타달라고 그래서요.”
“네.” 나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한 서너 걸음 시멘트 깐 길 위로 말없이 나란히 걸어갔다. 바른편 쪽으로 우리 두 그림자가 어울려 돌아가는 것을 보고 슬근히¹⁶ 기뻤다.
“미스터 리는 왜 찬양대에 아니 들으셨어요” 하고 이번에는 N의 말.
“아니요! 나 같은 놈이야 목소리가 나빠서 어디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지요.”
또다시 침묵.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하나도 입 밖에 내어놓을 용기가 없었다. 더욱이 뒤에서 자꾸 ‘단념해라 단념해라’ 하는 생각이 말문을 꽉 막아놓는다. 그러나 또 아무 말도 없이 가는 것도 어쩐 듯해서
“달이 꽤 맑지요!” 하고 달을 쳐다보았다. N도 달을 쳐다본다. 달빛에 비친 하얀 얼굴이 꼽게 보였다. 꽉 그러안고 눈에 (입술이 아니고 눈이다) 입을 맞춰주고 싶었으나 꽉 참았다. 둘이서는 누렇게 죽은 잔디밭 위로 내려서서 다시 묵묵히 걸었다. 물리화학 실험실 앞까지 온 때 그는 말을 꺼냈다.
“미스터 리 누이동생 없어요?”
“왜요, 당신과 꼭같이 생긴 누이가 하나 있었답니다” 하고 슬픈 어조로 대답했다. N은 잠깐 웃고
“호호, 어데 있어요? 조선에요?” 아차, 이이가 내가 조선 사람인 것까지 아는구나. 어떻게 알았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떻게 내가 조선 사람인 줄 알으셨습니까?” 하고 물어보려다가 고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왜 그럼 이리로 데리고 오시지 않아요? 거기서 공부해요? 여기 와서 중서여숙¹⁷이나 성마리아에 다녀도……”
“아니야요. 지금은 그 애는 하늘나라에 가 있어요. 벌써 삼 년 되었습니다” 하고 슬픈 어조로 말했다.
“네…….” 하고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같이 그를 쳐다볼 용기가 없었다. 집 모퉁이를 돌아서니 여학생 기숙사에 방방이 불 켠 것이 환하게 앞에 나타났다. 둘이서는 약속했던 듯이 발걸음이 느려졌다. 이번에는 꽤 긴 침묵이 계속되었다. 나는 속으로는 육조배판¹⁸을 다하면서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하면서 종내 못 하고 있었다. 저편에서도 여러 번 무슨 말을 할 듯했으나 나는 모른 척하고 있었다. 어째 픽 비감한 생각이 나서 나는 모르는 사이 ‘후’ 하고 한숨을 한 번 길게 쉬었다. 벌써 여학생 기숙사 앞에 거의 다 왔다. N도 짧은 한숨을 쉬더니 마침내
“미스터 리 ―” 하고 애소를 띤 목소리로 불렀다.
“네.”
“……”
“……”
여자 학감이 어디를 가는지 털옷을 둘러싸고 나오다가 우리를 보고 고개를 껀덕거려 인사하고 저편으로 갔다. 그동안에 우리는 벌써 문 앞에 다다랐다. 어느 방에선가 어떤 여자의 웃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나왔다. 나는 문을 열고서 N을 먼저 들여보냈다. 그리고 나도 들어가서 악보를 도로 주었다. N은 모깃소리만치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 들고 층층대를 두어 결음을 나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이쪽을 바라다보았다. 나는 무의식하게 한 발자국 내디뎠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허리를 한 번 꼬더니 쭈르르 뛰어 올라갔다. 나는 멀거니 서서 그 뒷모양을 바라보았다.
다시 문밖에 나오니 산뜻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꿈속에서 걷는 사람처럼 멀거니 땅만 들여다보면서 누런 잔디밭 위를 걸었다. 한참 오다가 얼굴을 돌이켜 여학생 기숙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하고많은 방에 어느 방에 있는가 하고 혼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N도 지금 방 안에 들어가서 정신 잃고 나를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니 내가 퍽 행복자 같으면서도 왜 그런지 슬펐다. 내가 있는 기숙사 문 앞까지 거의 온 때 예의 C군이 무엇하려인지 문간에 나와 서서 기웃기웃하다가 나를 보고
“어디 갔다 오오?” 하고 묻는다. 나는 다만
“저기를” 하고 돌층대 위에 올라서서 다시 한 번 방마다 환하게 비추이는 여학생 기숙사를 바라다보고 내 방으루 올라왔다. T군이
“왜 자네 얼굴이 해쓱하이” 하고 쳐다본다. 나는
“방금 연애하고 왔으니까” 하고 웃어버렸다. T는
“어ㅡ 그럼 한턱 내야겠네그려. 하인 불러올까?” 하면서 같이 웃었다.
12월 22일
어젯밤 한잠도 못 잤다. 여러 가지 생각이 순서도 없이 미친 광풍처럼 피곤한 내 뇌를 습격했다. 나는 ‘안 된다, 안 된다’ 하기는 하면서도 자꾸만 구렁 텅이로 끌려 들어가는 내 불쌍한 몸을 돌아다보고 고소치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라고 할 참극인가? 왜 하필 이날에 이때에 조선 청년으로 태어났단 말인고?
단념은 꼭 해야 하겠는데 단념을 못 하겠으니……
밤새도록 나는 두 가지를 가지고 싸웠다. 첫째는 N씨에 대한 일, 둘째는 종교에 관한 일이었다. 나는 N에 대한 일로 고민하고 하던 끝에 ‘기도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났었던 것이다. 이렇게 고민을 하는 가운데 혹 기도로써 어떤 위안을 얻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못 할 일이었다. 그동안 벌써 삼 년 동안 나는 기도라는 것을 전폐하지 않았는가? 벌써 삼 년 전에 이
십 여 년이나 믿던 (날 때부터 믿었으니까) 종교라는 것이 무가치한 염가의 위안물인 것을 깨달은 이래 나는 늘 종교가들을 저주해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내 마음에 번민이 좀 있다고 삼 년씩 욕하던 기도를 내가 자진하여 드릴 것인가? 아! 나는 너무도 약하다. 내 자존심은 모두 어디 갔는가 하고 나는 주먹을 부르쥐었다.
그러나 극도의 고민을 참지 못해서 한번은 돌아 엎드리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시여’ 하는 말끝이 차마 돌아 나오지를 않았다. 나는 나까지 잊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에잇, 약한 자식, 약한 자식” 하고 혼자 부르짖었다. “하느님? 흥, 하느님? 만일 하느님이 지금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한다면 이리 좀 나오너라. 내 그놈과 씨름을 좀 해야” 하고 나는 이를 갈았다. 마침내 나는 이겼다. 나는 기도 아니 하고 견뎠다. 삼 년 동안 절조를 깨뜨리지 않았다. 내 주의를 관철했다. 그러나 그 덕에 몹쓸 감기가 들었다.
신열이 있는데 열이 오를 때 허튼소리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이 올라서 정신없이 허튼소리를 하다가 N씨 이름을 부른다든가 하면 창피하지. 않은가? 대장부가 계집애 하나 때문에 이렇게도 고민을 하는 것인가? 옛, 사내자식 같지 못한 몸이로다. 왜 선뜻 끊어버 리지를 못하는가?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크리스마스 휴가로 학생들도 대부분은 며칠 전에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기숙사도 텅 빈 집 같아서 퍽 적적하다. 사위도 적적하거니와 마음은 더 적적하다. 말할 수 없는 고독을 일으킨다. 고독을 잊으려고 S군의 방으로 가서 하루 종일 화투를 한다. 그러나 밤에 혼자 빈방 안에 와 누우면 몸과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슬퍼진다. 어젯밤에는 혼자 실컷 울다가 겨우 잠이 들었었다. 이렇게 강한 고독을 느끼기는 생전 처음 일이다.
아침마다 열한 시가 되면 분주히 우편국에는 간다. 가야 편지조차 오는 것이 없다. 더욱이 그렇게 열심으로 우편국에 다니는 것은 딴생각이 있어서이다. 그이가 혹 편지나 아니 보내나 하는 하염없는 생각으로써이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영 무슨 소식이 올 것 같지 않다. 그럼 ‘너는 왜 쓰지 않느냐?’ 나는 여자에게 편지를 쓰기에는 너무나 자존심이 크다. 요새 소위 공부나 했다는 청년들이 만날 분홍 봉투 속에다가 야비한 글귀들을 나열해서 여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 미워서 나는 그따위 짓은 아니 한다. 더욱이 또 작년 겨울의 S씨가 한차에 타고 오면서 이야기하던 생각이 난다. 그는 그때 그가 남경 있는 동안 어떤 남자에게로부터 편지를 자꾸 받던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로
“우스워 죽겠어요 글쎄” 했다. 그렇다. 우스울 것이다. 내가 지금 N씨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다 하자. 그가 그것을 우습게 여기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들고 다니면서 조롱을 한다면…… 차라리 내 팔목을 찍을지언정 편지를 쓸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렇지 않지 그가 만일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가 먼저 나에게 편지를 줄 것이다. 그러면 너는 그이를 진심으로 사랑치 않느냐? 나는 실소할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아침마다 우편국에 가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내가 먼저 편지를 쓰지 못하는 이유가 더 큰 것이 하나이다. 그것은 역시 끊임없이 ‘단념해라, 단념해라’ 하는 양심의 부르짖음이다. 그러면 단념 할 이유는 어디 있는가?
“연애에는 국경이 없다”고는 누구나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개의 이상(理想)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 개의 No Where¹⁹ 이다.
연애는 결혼을 그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결혼 연애를 선조로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같이 엘렌 케이가 말한바 연애가 없는 결혼은 간음이라는 것을 시인한다고 하면 결혼을 무시하는 연애는 또한 간음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육체보다 정신이 더 귀한 점으로 보아서 결혼을 제외시하는 연애는 연애 없는 혼인보다 더 큰 죄악이다.
그러면 나는 그 N씨와 결혼할 가능성이 있는가? 결혼할 가능성이 없이 연애의 계속을 내버려두는 것은 나는 못 할 노릇이다. 내게는 늙으신 부모가 있지 않은가? 내 일은 내가 한다고? 그러면 나는 여지껏 누가 주는 밥을 먹고 자랐는가? 중국인 며느리가 조선인 시부모와 살아갈 수가 있는가? 더욱이 나는 N과 결혼한다면 N을 본국으로 데리고 들어갈 용기가 있는가? 나는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존 파리스의 「기모느」를 연상한다. 「기모노」의 주인공들이 그냥 영국에서 살았던들 비참한 파열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으로 돌아가지 마시오” 하는 간곡한 충고를 받고도 그냥 갔다가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내게도 또한 마찬가지 운명이 아니 이르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역사, 사회, 도덕, 환경, 언어, 풍속, 모든 것이 판이한 고향으로 만일 N씨를 인도한다면 N은 응당 고독을 느끼고 증오와 싫증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면 그때 고통은 지금 단념하는 고통보다 더 심할 것이다. 아무래도 받을 고통이니 미리 받아두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렇다고 N을 내 것을 만들겠다는 그 야심 하나 때문에 내 몸이 늘 중국에 붙어 있을 수는 없다. 나는 흰옷 입은 사람의 자손이다. 그 사람들의 피를 받아서 그 사람들의 유전을 받아서 나서 그 사람들이 세운 집에서 그 사람들이 농사한 밥을 먹고 자랐다. 내 앞에 일이라고 있으면 내게 그 같은 은혜를 준 그 사람들에게 갚기 위해서 그 사람들이 희망을 붙이고 그 사람들이 사랑하는 우리 흰옷 입은 어린이들을 깨우치고 가르치고 사람을 만드는 데 있다. 그 일을 하려면 본국으로 들어가거나 서북간도로 가거나 하여야 한다. 그런데 내가 N을 끌고 그런 데로 갈 용기가 있는가? 없다.
둘째, 국경 문제, 민족 문제를 제외한다 가정하자! 그러면 나는 N과 일생을 같이할 가능성 이 있는가? 결혼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앞으로 높이 쳐다보아야 월급 이십 원짜리에 불과하다. 상해에 그냥 있더라도 나는 월급 작게 받고라도 우리 소학교에서 시무하지 아니할 수 없고 서북간도로 가게 된다면 강낭떡²⁰ 얻어먹고 많이 받아야 십오 원 이십 원일 터이다. 그것 가지고 가정을 꾸릴 수가 있는가? N이 온 천하 여자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바 허영심을 버리고 가난뱅이 나를 따라나설 용기가 있는가? 상해의 야회, 활동사진, 오페라를 내버리고 상투쟁이²¹ 간도 이민들 틈으로 N이 기어 들어올 용기는 있겠으며 설혹 있다고 하면 내가 그 아롬다운 N으로 일생을 그런 참혹한 생활로 보내라고 강요할 권리가 있는가. 나는 N이 잘되는 것을 보고 싶지 결코 나 같은 비렁뱅이, 이해타산주의자, 이기주의자를 따라다니는 불행아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다. N은 여자 대학생이다. 그를 사모하는 백만금 부자도 많을 것이요 또는 미국 갔다 온 박사들도 있을 것이다. N이 그런 곳으로 시집을 가면 퍽 행복스럽게 풍족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N과 같은 깨끗하고 귀족적인 여자와는 결혼할 권리가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연애할 권리도 없다. N도 가만히 눈치를 보면 요새 꽤 흥분을 한 모양이나 그것도 다만 청춘의 한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일후 지각이 들 때에는 지금을 돌아보고 지나간 일에 쓴웃음으로 장사해버릴 것이다. 얼마 아니 있어서 그는 나를 영영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지금 단념하는 것이 낫다. 연애란 다만 찬스로 되는 것이다. N과 내가 우연한 찬스로 얼마 동안 기뻐도 했고 고민도 당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찬스를 피하고 멀리할 때 자연히 차차 멀어지고 그도 나를 잊어버리고 나도 그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대장부가 되어라. 선선히²² 잊어버려라.
1월 1일
나는 왜 이렇게도 약한가? 아니 하려 아니 하려 하여도 N의 눈이 내 앞에 뻔하니 나타나곤 한다. 어찌했으면 좋을는지 알 수가 없다.
오늘 또 아침 둘이 화투했다. 화투하느라고 약을 보느니 흑단 홍단을 보느니 하여 전 정신을 노름에 넣고 있는 동안은 그래도 세상 아무것도 잊게 된다. 다만 몇 분이라도 N을 잊고 나를 잊고 세상을 잊고 다만 비약과 풍약만이 머리를 싸고도는 그 재미는 참으로 귀한 것이다.
점심은 화투해서 모은 돈으로 사다 먹었다. 점심 먹으면서는 쓸데없는 담화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나 화제는 어떻게 굴러서 연애 이야기로 왔다. 중국 애 L군이 나더러 꼭 연인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나는 부인했다. 조선 사람인 C군도 내 편을 들어 부인했다. 그러나 화투할 때에 ‘공산명월’ 발음을 잘못해서 ‘콩쌔밍웨’ 하여 사람을 자꾸 웃기는 중국 애 B군이 L군과 한편이 되어 육박해 들어왔다. 둘이서는 변명하려는 내 입을 막아가면서 주거니 받거니 나를 비행기를 태웠다.
“유경 군이야 연인 없을 리가 있나. 글쎄 공부 잘하겠다.”
“운동 잘하겠다.”
“곱게 생겼겠다.”
“글 잘 쓰겠다.”
“적어도 한 더즌 연인은 있을 거야.”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오락가락한다.
“곱게 생겼겠다!” 이 말은 내가 여러 번 듣던 말이다. “미남자!” “미남자!” 정말인가? 나는 면경²³ 앞으루 갔다. 넓적한 얼굴이 나타났다. 이것이 고와? 홍, 미남자가 다 죽으면! 눈도 크게 떠보고 웃어도 보고 얼굴을 찡겨도 보았다. 곱기는? 해도! 한참 보니 어덴가 참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나하나 떼어 보면 아주 보잘 것 없어도 다 한데 뭉쳐가지고 보면 혹 밉지는 않게 생겼다 하는 생각도 들어온다. 확실히 살갗은 다른 사람들보다 희다. 나는 면경을 엎어놓았다.
“곱다. 미남자다!” 아, 듣기 싫으면서도 듣고 싶어 하는 말이다. 면경을 아니 보고 앉아서 여러 사람들이 나보고 하던 말을 되풀이해보니 정말 내가 퍽 고와지는 것 같았다. 어데서 한번 보았던 미남자의 얼굴처럼 내 얼굴도 갸름해지는 것 같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았다. 뺨이 빤빤하다. 광대뼈가 툭 나오고 그들은 나를 놀린다. 그러나? 정말 잘생겼다면? 나는 그것이 싫다. 만일 내 얼굴이 여자들의 육욕이나 끌게 생겼다면 그러면 N도 다만 내 얼굴이나 탐을 낸다면? 아! 나는 그것은 싫다. N도 다만 내가 전차 안에서 보는 많은 여자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처럼 그런 종류에 불과하다면. 아! 나는 차라리 죽고 싶다. 얼굴이 흉악하게 생기고 싶다. 나는 다시 면경을 바로 놓고 들여다보았다. 정말 잘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N 외에 다른 여자들이 나를 탐내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N이 내 얼굴만 탐낸다면, 다만 한때 육욕으로 나를 유혹한다면 그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나는 다만 N을 사랑하고 N 한 여자뿐이 나를 사랑하면 나는 그것이 제일……아! 내가 왜 또 이런 소리를 쓰고 앉았는가? 나는 벌써 N을 단념하기로 결심하지 않았는가?
나는 한참 동안이나 면경에 비친 내 얼굴을 말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떤 생각이 슬쩍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흥? 그래 그러면 다시 더 말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 그때는 단념 아니 하려 하여도 별수 없지. 저편에서 먼저 싫어할 터이니까? 나는 면도칼을 빼어 들었다. 번들번들하는 날을 볼 때 가슴이 선뜩했다. 그렇다. 이 눈 아래 여기를 짝 내려 베어놓자! 피가 나겠지. 병원에
가겠지. 약 바르겠지. 낫겠지. 흉물스런 허물이 보이겠지. 나는 얼마 전 활동사진에서 보았던 구주전쟁 부상병의 귀신같이 허물진 얼굴을 다시 보았다. 아! 저 모양! 칼을 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다시 한참 동안이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새카만 눈썹이 엊그제 이발소에서 민 대로 곱게 나 있다. 보르르한 솜털 뻔뻔한 턱 오뚝한 코 코털이 가맣게 들여다뵈는 두 콧구멍 또록또록하는 눈 빨간 뺨 반지르르한 머리털. 나는 아무 여념도 없었다.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그리고 칼을 뺨에다 갖다 대고 눈을 딱 감았다. ‘시―’ 하고 내려 벤다. 그 생각 하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얼른 칼 든 손을 내리면서 눈을 떴다. 한숨을 쉬었다. C군이 들어다.
“웬 일인가?”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지를 몰랐다. 한참 어물어물하다가
“면도 좀 하느라고!” 하고 얼굴이 빨개졌다.
“면도는? 수염도 안 났는데. 산보나 나갑시다.”
나는 뽀얀 하늘을 내다보았다. 흰 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했다.
“눈 오는데?”
“눈 오니 더 좋지! 우리 저 촌으로 한번 가봅시다. 농촌의 설경이 오죽 좋겠소!”
나는 C를 따라나섰다.
1월 12일
밤이다. 공부를 하려고 아무리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으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이 있는 학생의 목도리와 방한모를 얻어 두르고 쓰고 문밖으로 나섰다.
“어디 가오?” 하는 소리 대담도 할 새 없이 나는 벌써 층층대 중턱에 와 있었다.
바깥바람은 꽤 찼다. 바람이 높다란 포플러 수척한 가지의 뺨을 때리는 소리가 올곡올곡 불려왔다. 기숙사 창문들로부터 누런 빛들이 처량하게도 말라 죽은 참외 밭 위에 불빛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야자나무와 지금도 잎이 파란 상록수들 틈을 꿰어 강변으로 나아갔다. 두 팔을 외투 주머니에 꽉 들이쏟고 머리를 숙이고 강변을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욍욍하는 무정한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커단 윤선²⁴ 하나가 배 갑판에 불을 환하게 켜가지고 천천히 오송을 향해 어두운 물결을 헤치며 나아갔다. 나는 부지중 한숨을 길게 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카맣게 어두운 하늘에 수만의 별들이 반짝반짝 숨기 내기를 하고 있다. 나는 풀밭 교의 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하늘만 열심히 쳐다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 아이고 모르겠다. 눈이 쇠리쇠리해서 도저히 핼 수가 없다. 저기 은하수가 있다. 몇 달만 있으면 견우 직녀가 또다시 만날 것이다. 오― 저기 빨간 것이 화성. 북두칠성은 오― 저기 있다. 고것이 삼태성, 또― 옳지 저기 북극성이 있다. 목성은 어디 있나? 이렇게 얼마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저편 하늘에서 길게 별띠2’가 떨어졌다. ‘누가 죽나?’ 하고 생각했다.
우주는 넓다. 별은 수없이 많다. 세계는 영원하다. 그런데 사람은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고 한다. 인생 칠십이라지마는 이것을 이 광대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비기면 과연 무엇일까. 한 초 동안 물거품이 아닌가? 요 동안에 있어가지고 슬픔이란 괴로움이란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그저 세월 되는 대로 가지는 방향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기 저 별에서 고 반짝반짝하는 불빛이 여기까지 오려면 적어도 몇만 년씩 걸린다. 그러면 내가 지금 여기 앉아서 한숨 쉬는 모양도 저기 저 별에서 내려다본다면 지금으로부터 이십만 년 후에야 볼 것이다. 그동안에 나는 벌써 형적도 없어지고 말 터인데. 나 살던 집, 나 다니던 거리, 나 묻었던 무덤, 그것이 다 없어지고 인간의 기억에서 사라진 그때에라야 겨우 저기서는 오늘 내가 여기서 앉았는 것이 보일 것이 아닌가? 이 무궁한 속에 나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명예가 어떻고 자존심이 어떻고 책임, 권리, 자유, 홍, 그것이 다 이 무궁에 비하여 무엇인가? 애급²⁶ 이 문명을 지었으니 오늘에 무엇이며, 로마가 문명을 지었으니 오늘에 무엇이고, 이십세기가 문명을 찬란하게 지어놓는다니 이것이 이십만 년 후 아니 단 만 년 후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대양 속의 물거품이 찬란하다면 얼마나 찬란하고 오래간다면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 다시 대양이 물소리 칠 때 사라지는 거품이어니 찾을 길도 없으리! 그러면 요 속에서 바드락바드락거리는 그 노력은 소위 무엇인가?
보라! 저 공허하고 부연한 하늘을 보라. 저 영겁에서 영겁으로 흐르는 해의 계속을 보라. 저 수없는 별들을 보라. 지구라는 이것도 다만 좁쌀알만 하게 반짝거리는 저 속에 하나이다. 그러면 고적은 속에서 아시아 한 모퉁이에서 하루 같은 짧은 생을 가진 내가 구래도 무슨 명예니 책임이니 자유니 떠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한없이 숨겨 있는 자연의 비밀을 해결해보겠다고 옅은 지식으로 바스락거리는 생활은 그 무엇인가? 이러니저러니 좁쌀알만 못한 생이 아닌가? 한 초 같은 목숨이 아닌가? 슬퍼할 것도 없고 고민할 것도 없이 운수 닥치는 대로 내 한 몸의 행복을 탐해 돌아가다가 죽게 되면 죽고 살게 되면 살 것이 아닌가? N과 손목을 잡고 멀리멀리 떠돌아다니다가 죽을 때가 되면 죽으면 그만이 아닌가? 나의 조그만 자존심이라는 것 부질없는 책임이라는 것이 이 대우주 속에서 무엇인가? 희생이란 다 무엇이냐? 우주에는 다못²⁷ 허무가 있을 뿐이 아닌가?
개미집같이 쌓아놓더라도 종국 그 끝은 한곳이 아닌가? 인류에게 도덕이 있느니 역사가 있느니 떠든다마는 이 역사책들이 화려한 도회처들 이것들이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또는 삼십만 년 또는 영원한 시간 후에 무엇이 될 것인가? 허무에서 시작한 모든 물건이니 종국에는 다시 허무로 돌아갈 것이 아닌가? 육십만 년 칠십만 년 후에 모든 것이 허무로 돌아간 후에 누가 있어서 내가 남을 위해서 연애를 희생했다고 기억이나 해줄 것인가? 누가 이 고통을 알아나 줄 것인가?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1월 20일
아, 나는 늘 하늘을 쳐다보고 살고 싶다. 나는 내 생활에 하늘과 현실이 있음을 슬퍼한다. 하늘만 있거나 현실만 있거나 했으면 나는 이렇게 심한 고통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만일 내가 하늘만 있다면 나는 벌써 허무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명예니 체면이나 자존심이니 책임이니 무엇이니 모두 내버리고 N과 손목 잡고 행복의 단꿈에만 취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또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 있다. 매일 매시 매초 실제라는 것을 가지고 나를 쏘고 괴롭게 하는 현실이라는 것이 있다.
아! 나는 어찌했으면 좋을까? 사람 틈에 끼여 사니 사람 노릇 아니 할 수 없다. 가슴 답답하다.
2월 5일
어젯밤 처음으로 N씨를 꿈꾸었다. 내가 여태껏 반년 동안이나 N의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었으나 꿈에는 한 번도 그를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어젯밤에 그의 꿈을 꾸었다.
벌써 겨울 방학한 지 한 주일이 지났다. 얼마 아니 있어 다시 개학이 될 것이다. 그동안 N을 한 번도 못 본 것이 퍽 적적하더니 아마 꿈에 보았나 보다. N도 어젯밤에 내 꿈을 꾸었나 하는 미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어 내가 나를 웃었다. N이 상해에서 어떤 다른 남자와 재미있는 날을 보내지나 아니할까 생각하니 슬근히 질투심도 일어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정말 그리되어서 그가 영 나를 잊어버려주었으면 좋겠다. 다시는 나를 유혹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나는 죄를 N에게 씌우려 하는 이기적 생각이 있다. 곧 N이 나를 유혹하지만 아니하면 나는 능히 단념할 수가 있다는 자신이 있는 것처럼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차, 꿈 이야기를 써두어야 하겠다.
꿈에 그와 나는 같이 책보를 끼고 학교를 나서서 어떤 복잡한 거리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왔는지 모르겠는데 그는 어떤 커단 벽돌집 앞에까지 와서 나와 이별했다. 내가 그와 같이 그 집에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더니 그는 웃으면서 “당신은 이런 벽돌집에 들어올 팔자가 아니니깐” 하고는 저 혼자 뛰어 들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 서서 그 벽돌집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다가 눈물을 짓고 돌아섰다.
2월 6일
방학 동안에 한 번도 상해를 나가지 않았더니 상해 있던 T군이 갑갑하다고 찾아왔다. 나는 T군이 반쪽처럼 수척해진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는 고민 때문이라고, 실연을 했다고 한다.
T군의 연애담은 벌써 한 번 자세히 들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실연을 하리라고는 결코 상상도 못 했던 바이다. T군은 나와 같은 등신이었다. 여자 교제할 줄도 모르고 여자한테는 죽어도 편지 쓰지 않고 하던 청년이었다. 그런데 그는 우연한 기회로 본래 기생이던 어떤 여자를 알게 되고 T군이 부모의 억지에 못 견뎌 장가를 들려고 하는 때에 의외에 그 여자에게 저부터 사랑해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를 받고 그는 그 기생(지금은 기생이 아니고 동경 유학생이다)을 불쌍히 여기던 마음 동정하던 마음 또 기생 그만두고 공부하려고 열심 하는 것을 기특히 여기는 마음 그것들이 합한 데다가 그 기생의 삽삽하고 다정한 편지가 고만 T군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말았다. 그래 그는 당장에 부모에게 반항하여 여학생과 약혼하기를 거절하고 그 기생과 약혼하기를 주창했다. 그러나 그 말이 부모의 귀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왜 처녀가 없어서 더러운 기생을 며느리 맞으랴!” 하는 것이 그의 어머니 불평이었다. 그 후로 T군 집은 잠시도 평안한 날이 없었다. 마침내 T군이 연애를 위하여 그의 명예 책임 가족 무엇무엇 모두를 희생하고 그는 상해로 뛰쳐나오고 그 기생은 동경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 그 후에도 한 반년 동안 그들은 열렬한 편지 거래가 있었다. 나도 그 기생에게서부터 T군에게 온 편지를 한번 죽 읽어본 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T군은 그 기생에게 버림을 받았다 한다.
“글쎄, 처음에 남 가만히 있는데 제가 먼저 무엇 고독하웨 괴롭쉐 사랑해주게 하고 편지질을 해놓고 지금 와서는 요렇게 착 차내던진다고는 나는 도무지 그 심사를 이해할 수가 없네” 하고 그는 한숨을 쉬면서 말끝을 맺었다.
그는 퍽 낙심한 모양이었다. 연전에 실연한 어떤 문사(文士)가 잡지에 발표한 대로 여자라는 것은 가죽을 벗겨서 돈 가방을 만드는 데 소용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밤에 심심파적하는 장난감으로밖에는 더 소용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 원수를 갚기 위하여 기를 쓰고 돈을 많이 모아가지고 첩을 하룻밤에 하나씩 얻어서 데리고 자고는 내쫓고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부르짖었다.
나는 소름이 쪽 끼쳤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도 같이 변하기 쉬운 여자의 맘이라” 하는 노래를 나는 속으로 불러보았다. 아! 어서 단념하여야겠다. N도 또한 그러한 종류의 여자가 아니라고 누가 증명할 것인가? 일후에 T군과 같은 운명을 만나기 전에 T군과 같은 참담한 인생관이 들어오기 전에 나는 내 몸을 보호하여야 하겠다. 나를 위해 내 민족을 위해 온 세계를 위해 나는 귀한 몸이다.
3월 30일
N씨 꿈을 또 꾸었다. N씨가 나이가 일곱이나 여덟 살밖에 아니 난 처녀가 되었는데 그를 업고서 이름도 모르고 끝도 없는 좁은 길로 할할 걸어가면서 퍽 행복을 느꼈다. 그 꿈이 깨면서 잠도 깨어가지고는 다시 잠이 들지 못했다.
4월 1일
그는 외국의 여자를 사랑했더라.
아픈 가슴 앓는 마음을 가지고도
그는 속 시원히 사랑의·괄도 못 해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지난 때의 헛꿈
풀 마른 그의 무덤 위에는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뿐이
졸고만 있더라
하하! 내가 언제 시인 (詩人) 이 되었던가?
4월 25일
봄이다. 봄도 늦은 봄이다. 봄철이 또 돌아오니 심란한 마음 더욱 산란해지고 고독한 영혼은 한층 더 외로워진다. 이때 또 사건 하나가 생겼다.
어제 학생 전체로 항주(抗州)로 왔다. 생물학반에서 생물학 표본 모집하러 온 것이다. 어제 종일 싸돌아다녀서 뱀 두꺼비 곤충 물고기 조개 등을 많이 얻었다. 오늘은 놀고 내일은 학교로 돌아간다고.
오후에 배를 타고 서호에 떴다.
왜 신(神)은, 아니 저 자연은 우리에게 쓸데없는 찬스를 자꾸만 갖다 맡겨주는가? 괴롭기만 하다.
서호로 몇 시간 떠다니다가 모두 공원(西冷印社)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서호의 저녁 경치를 바라다보는 것은 두 번 얻기 힘든 절경이다. 해는 벌써 남고봉(南高峰)과 서산 새 뒤로 넘어갔다. 해는 보이지 아니하나 그 여광이 찬란한 채색으로 한가히 떠 있는 구름장들을 물들이고 서호의 잔잔한 물결이 그 구름장의 빛을 반사하여 금빛 카펫을 만들어놓았다. 그 위로 물자리를 빠치면서 슬적슬적 정처 없이 떠도는 수십의 놀이배 그 속에서 희미하게 울려오는 구슬픈 호금(胡琴) 소리 고독하던 내 영은 한층 더 무엇에 감격된 것처럼 이 대자연의 위대하고 섬세한 미 (美) 속에 취해 있었다.
벌써 어슬해질 때였다. 은실 주렴발 같기도 하고 새색시의 면사 같기도 한 뽀얀 안개가 서호가 새파란 언덕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서호면에 깔렸던 물자리가 차차 벌거우리해지다가 다시 창백해지고 다시 탁한 잿빛이 되어 그 물 밑에 수천 년 동안 쌓인 복 비는 재(수십 만의 부인들이 아들 낳게 해달라고 빌고 빈 적 넣은 것)와 보기 싫은 조화를 이루고 장엄한 뇌불탑이 잿빛 배경 속에 은근히 솟아 있는 것이 보일 때였다. 돌의자에 앉아 있던 동창생들이 “내려가지!” 하면서 줄렁줄렁 일어서서 내려갔다. 나는 이 신비스런 저녁 경치를 다만 몇 초라도 더 맛보려고 그냥 차차 희미해가는 다른 언덕과 하늘과 서호 가를 바라다보며 정신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따라 내려가야겠군 하는 생각이 나서 벌떡 일어서다가 나는 내 뒤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을 깨닫고 힐끗 돌아다보았다. 거기는 끔에도 잊지 못하던 N이 와서 있었다. 그리고 저편 나무 숲 사이로 나는 힐끗 여학생 한 무리가 천천히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 N은 그 여학생들 떼를 빠져 내게로 온 것이다.
나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N도 어찌했으면 좋을지 모르는 모양으로 어물어물하고 서 있었다. 다만 한 초 동안의 침묵이언마는 나는 그동안이 퍽 오래게 엥각이 되었고 또 그동안에 온갖 생각이 내 가슴을 격동시켜놓았다. 왜 왔을까? 나를 보려고! 그이가 왜 이렇게 나를 괴룹게 할까? 나는 내 심장이 극도로 박동하는 것을 깨달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N의 주시(注視)를 온몸에 감했다. N도 최후의 용기를 낸 듯이 옆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왔다. 그리고 떨리는 소리로
“미스터 리, 요새 어데가 불편하셔요?” 하고 물었다. 아마 그 동안 내가 그를 단념하려는 결심으로 몇 번 길에서 만날 때에 외면을 한 것이 마음에 키였다가 지금 말하는 것같이 직각되었다. 나는 잠잠히 그를 건너다보았다. 벌써 날은 저물어서 그의 선명한 윤곽이 잿빛 배경과 어우러져 스러지는 듯했다. 두 팔을 힘없이 내려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섰는 것이 퍽 불쌍해 보였다. 이때 만일 내게 조그마한 용기만 있었던들 나는 뛰어가서 그를 끌어안고 무수한 키스를 했을 것이다. 나는 극도로 피어오르는 흥분을 필사의 노력으로 제지하면서 그를 바라다보았다. 그는 무엇을 기다리는 것처럼 여전히 처량한 태도로 서서 발끝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차마 그를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내 온 전신이 부들부들 떨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번갯불같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A선생이 언젠가 불쌍한 민족을 위하여는 가족도 재산도 명예도 행복도 마지막에는 목숨까지도 즐거운 마음으로 희생하라는 권고를 간절히 하던 말이 다시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고 소설(「기모노」)의 일이 다시 생각되었다. 상투 튼 불쌍한 사람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T군의 여자들을 저주하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하고 그의 상기한 얼굴이 다시 보이는 것 같았다. 어디에선가 아마 공중에서
“이때다. 네 용기를 보일 때가 이때다. 대담하여라. 남자다워라. 단념하여라!” 하는 부르짖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나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숨이 가빠서 헐떡헐떡했다. 나는 마침내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모깃소리만치 말을 꺼냈다.
“I do not love you.”
“Oh?!”
나는 뛰어 내려왔다. N이 다시 무엇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귀를 스쳤으나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었다. 나는 벌써 돌층층대를 급히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손이 앞으로 쑥 나올 때마다 뜨거운 눈물이 손잔등에 떨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참으로 경험이 없이는 내 그때의 쓰라린 가슴을 이해치 못할 것이다. 나는 속으로 ‘대장부다워라. 대장부다워라’ 하면서도 억제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다. 걸음이 느린 여학생 떼는 아직도 공원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 나는 가까스로 눈물을 씻고 여학생들을 급히 지나 나와 벌써 배 타고 기다리는 동무들께로 갔다. 벌써 새카맣다. 마침 배에 불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무도 내 눈물겨운 모양을 똑똑히 볼 수가 없어서 나는 안심했다. 호수 맞은편 지야잉 〔旗下營〕 시가지의 연등불들이 눈물에 어린 내 눈에는 가는 금실들 한 무더기가 거기서 내 얼굴에까지 걸쳐 있는 것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 실 몽텅 이가 짧아졌다 길어졌다 하였다. 나는 이때 N의 일이 마음이 아니 놓여서 방금에야 배를 타느라고 서두르는 여학생 떼를 바라다보았다. 우리 배는 벌써 한 십 척 나아왔는데 여학생들 배는 바로 언덕 등대 아래 있어서 거기 모둥켜 섰는 여학생들이 똑똑히 보였다. 나는 주먹으로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분명히 N이 그들 틈에 섞여 있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안심했다.
밤에 남 다 자는 밤에 나 혼자 한잠 못 이루었다. W학교(우리 학교 부속 중학교) 교실을 빌려서 한 방에 침대를 삼십 개씩이나 놓고 줄 이어 누워서 잔다. 그리 밝지는 않아도 글이나는 쓸 수 있을 만치 밝은 전등불은 끄지 않은 채였다. 웬일인지는 모르나 학생이 여럿이 외지에 가서 합숙을 하게 되면 언제든지 불은 끄지 않고 자는 풍속이다. 얼마 동안이나 잠을 좀 들어보려고 애를 썼다.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하여 백까지 세고는 또다시 세어 천을 넘도록 세어서도 종내 잠은 아니 왔다. 전에 혹 잠이 들지 않을 적에는 이백과 삼백을 세는 그 중간 어디서 그만 정신없이 잠이 들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 쓸데도 없었다. 그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생각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직까지도 극도로 흥분했던 머리가 가라앉지를 아니한 것이다. 다시 베개 밑에 있는 회중시계를 살짝 귀밑에 놓고 그 째깍째깍하는 소리에 정신을 기울여서 정신을 통일시켜 잠이 들게 해보려 했으나 역시 실패였다. 더욱이 눈을 감아도 훤하니 비치는 전등불 때문에 더 잠이 아니 온다. 방 안이 온통 캄캄했으면 그래도 잠이 좀 올 것 같다. 나는 견디다 못하여 벌컥 일어나 앉았다. 옆으로 번즈런히 누워서 코들을 골며 곤히 자는 동무들이 부러웠다. 아니 시기가 났다. 미웠다. 더욱이 저편에서 코를 드렁드렁 고는 이가 픽 밉게 보였다. 아이구 듣기 싫다. 자면 곱게 자지 왜 저리 소란스러울까? 견딜 수가 없다. 소리를 꽥 지르고 싶다. 가서 뺨을 한 대 때리고 싶다. 나는 견딜 수 없어서 발을 굴렀다. ‘킁’ 하고 마룻바닥이 울렸다. 코 고는 소리가 잠깐 뚝 끊겼다 다시 시작이 된다. 서너 사람 “으흥 으흥” 하면서 돌아눕는다. 나는 미안한 생각이 나서 숨소리를 죽였다.
‘내가 히스테리나 들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나서 몸을 떨었다. 아! 이래서는 아니 되겠다. 내 몸조심을 단단히 해야겠다. 할 수 있는 대로 유쾌하여야 하겠다.
한참이나 멀거니 앉았다가 시계를 꺼내 보았다. 방금 보았는데 몇 시인지 모르겠다. 다시 꺼내 보았다. 밤 새로 두 시이다. 아직도 밝으려면 네 시가 있다. 아이고, 그동안을 어떻게 기다리나?
누구 말동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정말 답답해 죽겠다. N의 얼굴이 또다시 보인다. 아니 그이 얼굴이 아니라 고 눈이다. 아, 고 눈은 왜 이렇게도 따라다니는가? N과 맨 처음 벌써 반년 전에 만나던 일이 다시 여러 가지가 생각이 난다. 구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감하던 때와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치던 때들이 다시 생각이 나니 내 가슴은 또 뛰놀기 시작한다. 달밤 같이 걸어가던 생각이 나니 숨까지 가빠진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 벌써 어제로군 무슨 짓인가?
유경아! 너는 과연 얼마나 미련한 놈이냐? 바보이냐? 너는 늘 일기에 쓰기는 바로 무슨 뜻이나 있는 놈처럼 ‘단념해라’ ‘단념해라’ 하고 쓰면서도 속으로는 언제나 ‘기회만 또 오면 둘이서 조용히 만날 기회만 생기면 한번 내 속을 설파하고 그의 발아래 꿇어 엎드리리라’ 하고 벼르고 또 벼르지 않는가! 그러던 네가 오늘 그게 무슨 일이냐? 기회가 없더냐? 너는 그것보다도 더 좋은 기회가 올 줄로 아느냐? 아! 지금이라도 나는 N에게 패배당한 것을 항복한다. 그는 이겼다. 아무래도 나는 약자다. 그러나 막상 그를 대하게 되면 다시 내 자존심이 올라온다. 그리고 나는 아주 태연한 체하고 거절할 준비를 한다. 이것은 위선이 아닌 줄 아느냐? 애고, 머리만 아프다.
다시 이불로 머리까지 홱 뒤집어쓰고 드러누웠다. 그러나 할 수 없다. 숨만 막힌다. 다시 일어나 앉았다. 시커멓게 마룻바닥에 깔린 내 그림자가 퍽 불쌍해 보인다. 저것이 왜 잠을 못 자고 저러나? 불행도 해라.
내가 N을 사랑한다.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첫사랑이다. 내 양심이 증명한다. N도 나를 사랑한다. 아직 서로 그런 말을 해본 적은 없으나 그의 눈이 이를 말한다. 더욱이 아까 거기에는 그가 왜 왔던가? 물론 내게 모든 것을 주려고 얻기 힘든 기회일망정 얻어보려고…… 그런데 나는 왜 이다지 고통하는가? 내가 N을 사랑하고 N이 나를 사랑하고 문제는 퍽 단순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나는 N의 일생을 같이할 동무가 될 자격이 없는 자이다. 그의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는 자이다. 그것은 내가 N을 행복스럽게 해줄 수 없는 까닭이다. 지금 당장으로 보면 혹 N이 나와 편지 거래도 하고 키스도 하는 것이 그에게는 행복으로 생각을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만 보지 말고 장래를 보아라. 나는 이기주의자이다. 나는 너무도 이해타산적이다. 나는 이것이 안된 것인 줄은 잘 안다. 그러나 내 천성이 그런데야 어떻게 하겠느냐! 나는 N의 뒤를 거들 만한 힘도 없거니와 인격도 없고 자격도 없다.
“쪽박을 차고도 님 따라나선다”는 말이 있기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현실을 모르는 이상뿐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돈이라는 것 그것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내게는 돈이 없다. 앞으로 생길 가망도 없다. N이 나를 따라오기 때문에 몸이 얼고 창자가 비고 손이 부르튼다면 나는 그것은 못 하겠다. 그렇다고 N과 타협할 수도 없다. N 하나를 위해서 상해서 웗급 많이 받아가지고 자동차 사고 큰 집 짓고 아이 두고 그러고 살지는 못하겠다. 그것은 내 양심이 심히 허락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내게는 N도 귀하거니와 N 외에 수십만 수만 명 어린이가 또한 귀하다. N은 내가 보살피지 않더라도 N을 행복되게 해줄 사람은 암만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불쌍한 어린이들은 내가 돌보지 않으면 버린 몸들이다. N도 사랑이 없는 곳으로 시집을 가면 불행되리라고? 그렇지 않다. 사람이란 다못 한 사람의 남자와 연애하란 법은 없다. 연애란 다만 한때 한때의 찬스로 되어 그 두 이성이 서로 이해하는 동안 사랑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 사랑도 없어지고 잊어버려지는 때가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내 독창적 철학이라고? 그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애 자유 결혼이 성행한다는 서양을 보아라. 남편이 살았을 적에는 극진히 그를 사랑하는 아내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처음에는 물론 슬퍼하나 그러나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난 후에는 다시 다른 남자와 연애하여 개가들을 하지 아니하는가? 그것을 보면 연애란 영속적인 것은 아니다. 지금도 나와 그가 떠나서 일후 다시 보지 않게 되면 떠난 지 갓 얼마 동안은 그도 나를 생각할는지 모르나 몇 해만 지나가면 모두 잊어버릴 것이다. 단념과 죽음은 동 성질이니까! 그리고 나도 세상 여러 가지 사업에 분주하면 자연 N에 대한 생각도 잊어버릴 때가 오겠지! 그러니 지금부터 공연히 그러지 말고 단념을 해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감정으로만 살아서는 아니 된다. 내게는 의지라는 것도 있다. 사람이 감정에게만 지배될 때에는 그는 열등이다. 굳건한 의지로써 웬만한 감정을 억제하고 그리고 지혜스럽게 제 앞옛 일을 판단해나가는 거기 문명인의 특색이 있는 것이다. 내가 내 한 몸의 안락만 위해서 감정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간다면 내가 내 할아버지에서 더 나은 것이 무엇이냐? 새 조선을 건설하겠다는 그 소질은 어데서 찾겠느냐? 만일 현대 청년들이 모두 자기 감정의 지배만 받고 굳건한 의지가 없다면 무너져가는 집을 바로잡을 사람은 어데 가서 찾아올 것인가?
생활에는 연애 생활보다도 더 거룩하고 더 깨끗하고 더 아름답고 더 생활다운 생활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희생의 생활 봉사의 생활이다. 그것이 연애 생활처럼 즐겁지는 못하리라. 그렇게 고소하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더 귀한 것이다. 더 값나가는 것이다. N이라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온 세계 그렇지 못하겠으면 내 민족 전체를 왜 내가 사랑할 수가 없는가? 또 내가 N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할 것 같으면 무모하게 자꾸만 N을 내 것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N에게다 깊고 참된 반성과 생각과 고려를 할 만한 기회를 공급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니 할까?
N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본의도 되고 N을 장차 행복되게도 만들고 또 내가 내 자신을 행복되게 (양심상 가책이 없는 좋은 패를 도의 생활로써 희생과 봉사의 만족 성공의 만족을 누리는) 하기 위하여는 나는 N을 단념하지 아니치 못하겠다. 이렇게 분명하게 안 바에야 왜 아직 이렇게 고민할 리가 있는가? 알아서 그대로 했으니 나는 거기 만족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아무래도 좀 자보아야겠다. 벌써 새로 네 시가 되어온다. 눈을 좀 붙여보아야겠다.
새벽 다섯 시다. 나는 다시 일어났다. 아무래도 잠을 잘 수가 없다. 새벽 기운이 떠온다. 상해보다도 더 더운 항주이언만 새벽이 퍽 더 서늘하다. 아까는 서늘한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을 보니 퍽 흥분했던 모양이고 지금은 퍽 가라앉은 모양이다. 아니 잠을 못 자서 몸이 쇠약해지기 때문에 피부 신경 이 퍽 예민해졌는가도 모르겠다. 하여간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다. 일어서서 좀 왔다 갔다 했으면 좋겠으나 남들이 다 자니까 그럴 수도 없고 안타깝다. 나는 발끝으로 가만가만 걸어서 창문에까지 갔다. 뜨거운 이마를 싼득싼득한 유리알에 대고 시커먼 밖을 내다보았다. 아무것도 아니 보인다. 그래도 한참이나 무엇을 브는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더니 현기증이 난다.
어느새 밝아오기 시작한다. 어렴풋하게 마주 선 높은 담이 보이는 듯하더니 이어 그 앞으로 줄지어 선 포플러 나무들이 시커멓게 한데 어우러져 보였다. 뿌연 하늘에는 별빛이 차차 희미해지고 학교 뜰에 놓인 철봉을 목판 바스켓 골대들이 유령 모양으로 우득우득 섰는 것이 보인다. 나는 뿌젓한 입안을 혀로 핥으면서 창을 떠났다. 방 안에 누런 전등빛과 밖에 새벽빛이 섞여서 일종 이상스런 빛의 조화가 방 안을 채웠다. 나는 산보를 하려고 뜰로 내려섰다.
세수를 마치고 방으로 다시 들어올 때는 벌써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깨어서 욱적북적하고 있을 때였다. 방 안은 환하니 밝아서 아프고 피곤한 눈을 크게 뜰 수가 없었다. 나는 들어서면서 되는대로 구기운 내 침 대 위에 빨간 아침 햇빛이 들이비치는 것을 보고 무의식 중에 몸을 떨었다.
4월 26일
상해로 돌아가는 길에 차 속에서 나는 억지로 『아세아』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슬금슬금 저편 모퉁이에 모둥켜 앉은 여학생들을 바라다보았다. N은 한편 구석에서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눈을 내려뜨고 가만히 앉아 있다. 그 쾌활하던 웃음이 영영 그의 가는 입술에서 떠나가고 만 것같이 생각이 되었다. 나는 그를 오래 바라다볼 용기도 없고 염치도 없었다. 잡지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 듯하다가 고만 잠깐 잠이 들었다. 꿈에 N이 어린애를 안고 재롱 보는 것을 보았다. 꿈이 깨어 N이 아직 소구로²⁸하고 앉았는 것을 보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5월 1일
메이데이라고 저녁에 기념 대회가 있었다. 상해서 유명하다는 사회주의자가 와서 혁명을 고취하는 연설을 했다. 학생들이 모두 무엇에 취한 것 같았다. 무엇이나 모두 희생할 용기가 나는 듯 했다.
그동안 몇 번 N을 기도회실에서 보았다. 역시 전과 마찬가지로 쾌활한 모양이었다. 나는 암만해도 N을 알 수가 없다. 그는 일종 수수께끼이다. 단념한다는 내가 N의 모양을 상금 살피고 있는 것은 무슨 우스운 짓인가? 그러나 N이 전과 동양²⁹으로 쾌활한 것을 보니 어째 공연히 슬프고 심술이 난다.
5월 10일
그동안 나는 N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기도회실에서는 언제나 외면을 하고 앉아서 체육관 지붕 꼭대기에 앉은 새들과 저편에 가지런히 선 벌써 새파랗게 피어서 여름을 생각하는 버들가지들이 바람에 흐늑이는 것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 길에서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생물학 시간에도 나는 늘 외면을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 이것을 쓰고 앉았는가? 우스운 짓이다.
5월 23일
나는 지금 한 세상을 본다. 현미경 아래에 비추인 물방울 한 방울 속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생물학 실험 표본을 그리기 위해서 나는 지금 이 조그만 세상을 내려다본다.
무엇이라고 할 복잡하고 신산한 광경인가!
한 방울 물속에서 날뛰는 한 세상! 왜 이 파라메시움³⁰들은 한곳에 가만히 붙어 있지를 않는가? 꼬리를 두르며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박테리아는 무엇을 구하여 날뛰는가? 먹을 것을 입을 것을 아니 입을 것이야 쓸데 있나 뾰족한 놈 둥글한 놈 가는 놈 굵은 놈 넓적한 놈 큰 놈 작은 놈 꼬리를 홰홰 내두르는 놈 우물쩍우물쩍하는 놈 쫓고 쫓기고 먹고 먹히고 아아! 여기도 생(生)의 참담한 생존 경쟁은 끊임없이 상연되고 있다! 아메바는 박테리아에게 먹히고 박테리아는 또 파라메시움에게 그리고 그것은 다시 저보다 더 큰 놈에게 먹히어 이렇게 이들 한 방울 세계는 진화되고 있다. 소위 생존 경쟁 법칙으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참담한 광경이 지금에 눈 아래에서 연출되고 있다. 아! 그런데도 찰나 같은 생을 잃어버리기 아까운 듯이 도처에서 분할번식 (分割繁殖) 이 실행되고 있다. 저보다 더 큰 놈에게 식료 공급되는 줄은 모르고 그래도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되어 삽시간에 자꾸 늘어나간다. 아! 그들에게도 성 (性)의 욕구가 있을까? 단성동물! 그래도 그것은 육체의 양분으로 성의 만족을 얻을 것이다. 아! 여기도 삶의 강한 욕구, 성의 동경, 창조의 희생이 먼저 한 것이다.
아! 인류의 세계라는 것은 역시 이것과 똑같은 것이 아닐까, 아니 인류라는 것이 또 그 사회 제도라는 것이 다못 이것의 지금 내 눈 아래 나타난 이것에 진화한 것에서 더 지나지 않지 아니하는가? 그러면 이 사회생활도 어디 그 위에 우리 사회도 역시 그 근저에 있어서는 다못 단순한 생존 경쟁에 원리가 있고 그 위에 가지각색 잎과 꽃이 된 것이 아닐까? 그러면 생존 경쟁이란 무엇인가? 내가 어떤 이던 무릅쓰고 내 몸을 남보다 더 잘살게 하는 것! 그러면 내 꿈은 어떤가? 왜 나는 내 행복의 길을 앞에 놓고도 그 길을 억지로 피하려 하는가? 왜 나는 스스로 나아가 생존 경쟁의 패배자가 되려 하는가?
그러나 그러나 나와 우리! 나는 우리라는 것을 잊을 수 없지 않은가! 최선의 생존 경쟁은 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인가 또는 우리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이 만일 후자이랄 것 같으면 나는 우리의 승리를 위해서는 나라는 것까지 희생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이 과거 수다한 철학자의 결론이었었다. 그러면 나도 나보다 우리를 더 위하는가? 아! 나와 우리와 나! 나는 어느 것을 취할 것인가?
그럼 우리는 또 무엇인가? 우리, 우리! 우리는 전 세계 인류를 총칭하는 말은 될 수 없는가? 왜 인류라는 것은 성을 쌓고 담을 막고 울타리를 치는가? 왜 인류 사회에는 큰 우리 속에 또 작은 우리들이 있는가? 큰 우리를 위한다는 점에서 나는 내 행복과 큰 우리의 행복을 동시에 경영할 수가 있지 않을까?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작은 우리가 이 큰 우리거니 우리는 아직 모두 도탄 속에 있다. 이 참담한 살육, 증오, 편견, 사기 속에서 민족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이보다 더 좋은 더 완전한 더 진리에 가까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나는 내 몸을 내맡기지 않았는가? 박테리아가 미바아³¹를 먹지 말고 서로 듭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붙들어 주는 물방울을 만들기 위해 곧 약육강식과 생존 경쟁의 생활 법칙을 부인하고 상호부조(相互夫助) 생존상애(生存相愛)의 생활법칙을 깨워놓기 위해서 남는 몸을 바치노라고 뭇사람 앞에서 맹서를 하지 않았는가. 아…… 왜 나는 그것을 위하여는 내 몸에 행복이라는 것은 단념 하여야 하는가?
아니다. 나는 왜 자꾸 ‘행복을 단념한다’ 하고 써 늘어놓는가? 나는 몇 번이나 연에만이 인간의 행복이 아니요, 또 사리를 헤아리지 않는 맹목적 연애가 장래 행복보다도 더 괴로움을 가져온다는 진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에 되풀이해보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나는 왜 아직도 시간을 낭비하고 종이와 잉크를 새기며 이런 소리를 또 쓰고 앉았는가?
그러나 그러나! 아! 나는 어찌했으면 좋을까? 가슴만 답답하다.
5월 29일
N이 정말 나를 사랑할까? 나는 미치광이가 아닌가? N이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나는 들어도 못 보았고 그가 내게 말하지 아니한 것이 아닌가? 나 혼자만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고 있지 않는가?
아! 나는 알고 싶다. 보고 싶다. 이야기하고 싶다. N아! N! 세상에 믿음이라는 것이 있던가? 너를 믿으랴! 참사랑에는 의심이 없다고 하더라마는! N아! 그대는 내게 참을 보여줄 방법은 없는가? N아! 나는 그대에게 내 속을 알려줄 기회를 얻지 못하겠는가?
아! 나는 그대에게 정복되었노라! 나의 숱한 고민은 모두 헛되이 수포로 돌아갔노라! N아! 나는 그대의 사랑이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노라. 아! 그대는 내가 이런 것을 쓰고 있는 줄이나 아는가? 지금 내 손이 떨리는 것, 지금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 이것을 상상이나마 하는'" 아! 그대는 이때에 한 번이라도 내 일을 생각해주는가? 정신주의자의 말이 만일 옳다고 하면 밤마다 밤마다 그대의 노래를 부르고 안타까워하는 내 가슴이 다못 얼마라도 알려지 련만.
아아! 이 미련한 놈. 아 너는 어느새 또 이따위 일기를 쓰고 앉았느냐! 아! 못생긴 것아!
5월 30일
토요일이다. 오후에 상해 나갔던 S가(S는 나와 한방에 유하는 중국 학생이다) 저녁에 돌아와서 오늘 남경로(南京路)에서 학생이 연설하다가 영국 관헌에게 총살이 되었다³²는 슬픈 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한참 만에 밤이 들어 거의 잘 때가 된 때 S는 다시 내게 슬픈 소식 (아니 도리어 기쁜 소식일는지도 모른다)을 가져왔다. S는 말했다. 그가 오늘 아이씨스 극장에 활동사진 구경을 갔었는데 N이란 여학생이 D라는 남학생 (나보다 한 반 윗반에서 공부하는 학생)과 함께 구경을 왔더라고 했다. 그리고 다 필 후에 N과 D는 자동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가더라고 한다. 나는 가슴이 울렁울렁 했으나 애써서 태연한 태도로
“그자 수가 났네그려” 했다. S는 빙긋 웃으면서
“그까짓¡ 것 수는 무슨 수. 예쁘기나 하면!”
“왜, N이야 그만했으면 밉지는 않지” 나는 얼굴이 벌게졌다.
“하하. L군이 또 N한테 반했나 보이그려. 예뻐? 예쁜 것 다 죽으면 예쁜 측에 들겠지!”
나는 자려고 자리에 누워서도 자꾸 그 생각만 났다.
“그것 잘되었군. 잘되었군!” 하고 입으로는 중얼거리면서도 속으로는 어째 퍽 서운하고 밉살스러운 생각이 났다.
3
6월 1일
학생자치회 결의로 동맹 파학³³ 했다. 재작³⁴ 5월 50일에 남경로에서 영국 관헌에게 중국 학생 근 십 명이 총살을 당한 것이 동기가 되어 상해 전시(全市)에 파공³⁵ 파시 파학을 하게 되는데 우리도 파학을 한 것이다. 학교 교장은 ‘질서를 유지한다’ 하는 학생측 규약으로 불간섭주의를 쓰기로 선언했다. 학교 학생 대표 열 사람을 뽑아 상해학생연합회에 매일 참석하게 하고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강당에 모여서 대표의 보고를 듣고 연보도 하고 하기로 했다. 기숙사에서는 오늘부터는 일절 고기를 먹지 말고 채식만 하여 매일 오십여 원씩 남기는 돈으로 대표들 상해 다니는 차비도 쓰고 파공한 노동자들 생활비도 보태기로 했다. 오후마다 대를 나누어 근처 촌락과 공장으로 나아가서 선전 연설과 파공 선동을 하기로 하였다. 출판부 회계부 선전부 사찰부 조사부 등을 내었다. 온 학교가 벅작벅작한다. 나는 길에서라도 N이 보일 적마다 외면을 했다.
6월 2일
아! 운명은 왜 이다지도 나를 괴롭게 하는가? 어제 회계부장으로 당선되었으므로 오늘 십 이호실인 회계실로 들어갔더니 네 명 부원들이 벌써 와서 예산안 토론들을 하고 앉아 있었다. 부원 둘은 남학생이요 둘은 여학생인데 그중 하나는 곧 N이었다. 어쩌면 공교히도 N과 내가 동일한 회계부에 당선이 되었는가? 나는 문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를 보자마자 내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는 것을 깨달았다. 깨어나지 못할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진 듯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둘도 없는 좋은 기회를 만난 듯도 싶었다. N도 힐끗 나를 쳐다보고는 얼른 눈을 내리떴다.
내 머리는 화끈화끈해지고 무슨 생각을 하려야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예산표를 든 두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태연을 가장하는 목소리도 떨려 나왔다. 나는 이 모양을 하고도 네 부원과 한자리에 앉아서 일을 의논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었다. N은 아무 의견 발표도 아니하고 가만히 마주 앉아 있었다. 의논하는 동안에 몇 번 나와 눈이 마주쳤으나 그럴 때마다 늘 나는 듯이 얼른 눈을 내리뜨곤 했다. 그러다가 강당 대회에서 종 치는 소리가 들리매 우리는 모두 강당으로 갔었다. 강당에서 다시 돌아올 때에도 N은 가만히 서서 오늘 아침 강당에서 거둔 돈을 헤고 있었다. 나는 이편 부장석에 기대고 앉아서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부원들이 동전과 은전을 갈라놓고 세는 곳을 힐끔힐끔 바라다보았으나 N은 눈 한번 거들뜨지 않고 소곳하고 앉아서 그 하얀 손으로 누런 동전들을 짤락짤락 헤고 있었다. 그리고 계산이 끝난 때 N이 계산서를 들고 사뿐사뿐 걸어와서
“도합 은전이 이십 원 사십 전이고 동전이 이 원 오십 닢입니다” 하고 쨍하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물러가서 같이 앉은 여학생과 무슨 이야기인지 소곤소곤 열심으로 하고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에 나는 같이 밥 먹는 친구들과 말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밥도 한 공기밖에 못 먹었다.
왜? N이 노여웠는가? 벌써 나는 잊어버렸는가? D와 어떤 지경까지 들어갔는가? 아! 항주서 내가 너무하지 아니했는가? 그것으로 성을 냈는가? 아니 당초에 그는 내게 아무 뜻도 없었던 것이 아닌가? 내 가슴은 찢어질 듯했다.
‘아니다. 아니다. 지금은 이런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하고 속으로 몇 번이나 부르짖었다. 나는 그만 회계부장을 사면할까 했으나 그것도 뒤에서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자꾸 잡아당겨서 그만 못 하고 말았다. 더욱이 D라는 사람과 같이 다닌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시기로 끌고 가서 어떻게든지 N의 꼴을 보아주고 싶은 생각조차 났다.
6월 3일
어제 우리 학교 학생 선전대의 노력으로 학교 바로 옆 일본인 공장과 강 건너 포동에서 노동자 만여 명이 오늘 아침부터 파공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회계부에서는 종일 노동자들 생활료 지불할 예산을 꾸미느라고 분주하였다.
오후에 오늘 또 강연하러 나갔던 학생들이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학생 하나를 떠메고 모두 황황히 뛰어 들어왔다. 조계³⁶ 근처까지 가다가 모르는 동안에 조계 안에까지 들어가게 되어서 고만 영국 순사의 총에 맞아 넘어진 것이다. 교내 병원에 입원시키고 여학생 몇이 임시 간호부로 간호하러 갔다. 학생들이 모두 퍽 분개했다. 그러나 그 노염과 울분으로 희번덕거리는 그 독 오른 눈동자 속에는 완연히 두려움에 떠는 빛 이 드러나 있었다.
6월 10일
며칠을 아무 변동 없이 지나갔다. 그저 언제나 분주한 사무의 계속이었다. 제각기 제 일만 분담하여 분주한 사무 시간 안에 사무를 처리하는 고로 N과는 다시 별로 이야기할 틈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침 한방 안에서 만날 때마다 보통 하는
“굿모닝” 하는 인사도 추고받고 또 인사할 때에는 서로 바라다보고 빙끗 웃기까지도 되었다. 그동안에 내 마음속에서 얼마나 스스로 참았는지는 내가 여기 다시 쓰고 싶지 않다.
6월 11일
여름날이다. 아침부터 훅훅하는 일기이다. 처음으로 흰옷을 꺼내 입었다.
아침 대회 시간에 나는 늘 하는 버릇대로 강당으로 들어가지 않고 강당 문 맞은 복도 끝에 있는 교실 곧 회계부 사무실로 들어왔다. 직공들이 동맹 파업을 했으므로 전처럼 출판을 마음대로 못하고 다못 네 페이지에다 오자(誤字)가 정자보다 많을까 할 만치 수두룩한 차이나 프레스를 교의에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서 책상 위에 두 다리를 올려놓고 무심히 읽고 앉아 있었다. 열어놓은 출입문으로는 늦잠 자다 늦게야 오는 학생들의 숨찬 쾅쾅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안 있어서 중국 국가 곡조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학생들의 우렁찬 국가 합창 소리가 돌려 들려왔다.
“동맹 파공한 노동자 수 도합 이십만” 하고 특호 활자로 박힌 헤드라인을 보고 있을 적에 나는 슬적하는 옷 스치는 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스르르 닫기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무심코 신문지 너머로 힐끗 건너다보고 놀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두 발을 아래로 내렸다. 가슴에서는 억제할 수도 없이 두방망이질을 하고 신문지를 쥔 손은 푸들푸들 떨렸다. 숨조차 퍽 가빠졌다. 나는 정신이 빠져가지고 한 사십 초 그편만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다른 전 존재를 잃어버리고 거기만 보았다. 나는 내 눈을 의심 할 지경이었다.
문을 가만히 닫고 돌아서는 여자는 누러우리한 저고리와 분홍치마를 입은 봄 동산의 꽃 같은 여자였다. 왼 골을 타서 뒤로 틀어 붙인 머리털은 방금 기름을 발랐는지 반지르르한 것이 햇빛에 반사되고 그 아래로 약간 분칠을 한 하얀 얼굴이 웃음을 머금은 듯하고 있었다. 불그레한 뺨이 아침 햇빛에 광채를 내고 꼭 다물린 입술은 키스를 하기 위해 하느님이 만든 창조물이었다. 오뚝한 코 위로 머리털 한 오라기가 남실남실하고 먹으로 그린 듯한 눈썹 아래로 그 열정에 뜨고 무엇을 간절히 찾는 듯한 맑은 눈동자가 꼼짝도 아니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나는 일생에 그렇게 아름다운 모양을 본 적이 없었다. 아! 그는 N이었다. N이 그렇게까지 아름답던가 하도록 그는 아름다웠다. 내가 내 눈을 의심하리만치 그는 예뻤다. 나는 그의 쏘는 듯한 눈의 광채에 눌린 바 되어 눈을 내려떴다. 그러고는 그의 가느다란 목에서 힘없이 늘어져 있는 백설같이 흰 보석들로 만든 목도리 장식과 맥없이 늘어뜨린 그 옥같이 희고 섬세한 두 손을 바라다보았다.
그린 듯이 서 있던 N이 이때에야 어려운 듯이 걸음을 떼어 내 앞 두어 발자국 거리까지 왔다. 나는 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의 몸에서 나는 고운 향기와 그의 저고리 옷 단춧구멍에 끼운 빨간 장미꽃 향기가 내 코를 스쳤다. 나는 그의 광채 나는 눈을 바로 마주 볼 수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침묵! 말할 수 없이 신비스럽고 기쁘고도 슬프기 그지없는 안타까운 침묵이었다. 나는 모르는 새 손에 들었던 신문지를 떨어뜨렸다. 그 종이가 마룻바닥 위에 ‘털썩’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이 안타까운 그러면서도 천 년이고 만년이고 그냥 계속하고 싶을 만치 기쁨과 재미를 주는 침묵을 깨뜨려버리는 선봉대가 된 것 같았다. N은 떨리는 목소리로 모깃소리만 하게 말을 건네면서 한 발을 내디뎠다.
“놀라셨어요?”
“…….”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참말 몰랐다. 아니 무슨 대답을 하려 해야 목구멍이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대답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는 그냥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하도록 흥분하지 않았던가!
N은 어찌하면 좋은가 하는 듯이 몸을 한 번 비틀더니 두 팔을 꼬아 쥐고 다시 들릴까 말까 하게 말을 건넨다.
“Do you know what is life? Mr. Lee!” 하는 그 ‘Mr. Lee’가 퍽 다정한 듯도 하고 퍽 애원하는 듯도 했다. 나는 만족의 미소를 떨 수 없었다. 어떤 강한 기쁨이 넘쳐 나와서 나는 웃을 뻔했다. 그리고 갑자기 용기가 나는 듯했다.
“Yes, I do know!” 하고 나는 ‘do’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그리고 거의 본능적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다시 거의 입안엣 말로
“No, you don’t” 하고 나를 노려본다. 나는 더 대답이 쓸데없었다. 다시 잠깐 동안의 침묵이 이르렀다. 그 짜릿짜릿하고 현기증 나는 침묵이었다. 내 눈과 그의 눈은 거의 한데 엉킬 만치 마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과 양미간은 시시각각으로 파동을 일으켰다. 그도 아무 말도 아니 하고 나도 아무 말도 아니 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눈으로 서로 이야기했다. “말은 사람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알게 하는 데 가장 불완전한 기계” 라고 따눈치오³⁷는 『죽음의 이김』”이란 책을 통하여 선언했다. 과연 그렇다. 말은 사람의 생각의 그림자나 헛껍 데기밖에 운반하지 못한다. 내 생각의 참혼 내 생각의 정체를 가장 완전하게 내가 그를 알리고 싶어 하는 이에게 운반하는 데는 눈밖에 없다. 묵묵한 가운데서 마주 가고 마주 오는 눈빛 그 빛나는 눈동자는 모든 것을 운반해준다.
나는 N의 눈을 읽었다. 물론 N도 내 눈을 읽었을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안 것 같았다. 나는 퍽 용감한 생각이 났다. 기쁨이 사무쳤다. 백만 적군을 물리지고 개가를 부르며 돌아온 젊은 장수가 승리의 월계관을 그의 애인에게 받는 듯한 깊은 감격을 느꼈다. 나는 부지중 일어섰다. 온몸이 빳빳해들어오고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그다음 순간 나는 가장 행복스러웠다. 무신경하게 된 것 같은 내 두 팔은 N의―그렇게 오랫동안 꿈꾸던 그 N의―말큰한 피부를 부서져라 하고 힘껏 안긴 것을 감각할 따름이었다. 나는 뜨거운 그의 입술을 감각했다. 나는 전신에 경련을 일으킨 것 같았다. 흠씬한 향내가 장미꽃 내와 꿀같이 단 처녀의 향기와 어울려 코를 푹 쏘았다. 나는 N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굵은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내 뺨 위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감각했다.
N은 그의 고운 머리를 내 가슴에 파묻었다. 나는 더욱 꼭 껴안았다.
N은 “I Knew it! I knew it” 하고 가만히 속삭이었다.
N의 팔딱팔딱 뛰는 심장의 고동이 내 것과 한데 뭉쳐 어떤 알지 못할 나라로 우리 둘이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기쁨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그대로 죽었어도 한이 없었으리라. 향내는 그냥 내 코를 즐겁게 했다. 나는 그 향내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내 품에 꽉 안긴 그의 가슴과 어깨의 근육은 자릿자릿 떨고 있었다. 내 두 다리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바른손으로 그를 껴안은 채 왼손으로 그의 아름다운 머리털을 내리쓸고 있었다. 그의 쌕쌕하며 급하게 쉬는 숨소리가 퍽도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세상을 모두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무런 일이 생겨도 겁이 없었다. 세상없는 어떤 힘으로도 우리의 이 순간 쾌락을 빼앗을 것은 없었다. 아! 나는 이 세상 억Ξ} 년 전부터 억만 년 후까지에서 가장 행복스런 사람이었다.
바로 아래에서 대포들이 상해로 떠나던지 자동차를 처음으로 트느라고 푸르푸르 하고 기계 트는 소리가 우리의 한 초 동안의 꿈을 깨워주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다시 내가 어디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옆에는 의자도 있고 책상도 있으며 해도 있고 세상도 있고 소리도 있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나는 꿈 깨는 사람 같은 것을 감하면서 번개 같은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안 된다!’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갑자기 어떤 말할 수 없이 두려운 곳을 피하는 모양으로 마치도 차디찬 뱀의 몸을 집어 내던지는 모양으로 N을 집어 밀어뜨리고 문 쪽으로 뛰어갔다. 문을 홱 열어젖히면서 나는 책상에 주춤하고 기대서서 돌이 된 듯이 음쭉 아니하고 극히 놀란 눈으로 나를 쏘아보는 N을 전기 지나가듯이 볼 수가 있었다. 그러고는 쾅 하고 문 닫히는 소리를 듣고는 나는 정신없어지고 말았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 때에는 나는 어느새 내 침대 위에 되는 대로 옆어져서 흐득흐득 울고 있었다. 어떤 모양으로 층층대를 뛰어 내려왔는지 어면 모양으로 기숙사까지 뛰어왔는지 또는 어떻게 방에까지 뛰어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엉엉 울고 있었다. 왜? 나도 모른다. 왜 그런지 그저 슬펐다. 아! 나는 어찌했으면 좋을까? 두 발을 잔뜩 버티고 섰으면서도 모르는 새 모르는 새 자꾸만 끌려 들어가는 미련한 나! 요망한 계집 하나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는 나! 행복을 눈앞에 놓고 그것의 한끝을 붙잡기까지 했다가도 그것을 내어버리고 와서 혼자 우는 불쌍한 나! 아! 쓸데없는 부질없는 자존심! 시체 청년들보다는 좀 다른 사람이 되어보겠다는 실없는 욕심, 남보다 나아보겠다는 끊임없는 욕구! 그것들로써 받는바 내내 고통은 무엇인가! 또 그렇다고 흑흑 울고 있는 내 꼴은 무엇인가?
나는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즉시로 다시 꼬꾸라졌다. 머리가 힁하고 현기증이 난 까닭이었다. 벌써 대회를 필했는지 아이들이 와당탕탕탕 하면서 기숙사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후닥닥 일어나 웃저고리를 벗어버리고 구두끈을 끌러 벗어버리면서 셔츠와 바지를 입은 채 겹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웠다. 그리고 주먹으로 눈을 비벼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버렸다.
한방에 있는 S군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웬 일이오?”
나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빙긋 웃어 보였다.
“어디가 아프오?”
“머리가 조금” 하고 나는 가늘게 대답했다. 그리고 막히지도 않은 코를 막힌 듯이 ‘홍’ 하고 내불면서
“S군!” 하고 찾았다.
“의사 불러오리까?”
“아니 !”
“왜?”
“저 ― 위층에 올라가서 D군의 타이프라이터 〔打字機〕 좀 빌려다 주구려.”
S는 대답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그동안 나는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머리가 사실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별수가 없다. 사직하자’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때 S가 다시 들어왔다.
“위층에 아무도 없고 문을 걸어두었습디다.”
“이 창문으로” 하고 나는 머리를 조금 돌이켜 눈으로 머리맡에 있는 창문을 가리켰다. 바로 창문 밖으로 사층 꼭대기로부터 밑층까지 내려가는 쇠사다리, 집에 불이 일어나는 경우에 쓰기 위해 놓아둔 쇠사다리 그리로 올라가서 위층 창문으로 기어 들어가 가져오라는 뜻이었다.
“한턱 써야지” 하고 S는 빈정대면서 창문을 열고 나아갔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는 체했다.
‘별수가 없다. 나는 지금 그 구렁텅이 밑까지 빠져들어간 것이다. 이제라도 빠져나오지 아니하면 안 되겠다. 더 늦기 전에 속히, 속히!’ 하고 혼자 생각했다. S가 위층 창문에서 마루로 내려 뛰는 소리가 쿵 하고 들렸다. 나는 다시 더 무슨 생각을 하려 했으나 생각 실머리가 흐트러져서 끝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때 S가 타이프라이터를 들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쓴웃음을 웃으면서
“S군 오늘은 내 비서 노릇 좀 해주오. 저― 머리도 아프고 사정도 그렇지 않은 일이 있고 해서 회계부장 사면을 하는 것이니 아무쪼록 수리해달라고 편지 한 장 써주오.”
S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하더니 그만 두고 짹깍짹깍 소리를 내면서 편지를 찍는다. 나는 그의 손이 기계판 위에서 빠르게 동작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었다.
S가 사직 청원서를 가지고 나간 지 얼마 안 있어서 자치회장이 찾아왔다. 유임 권고를 온 것이다. 나는 결코 다시 일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집에서 급히 오라고 해서 수일간 학교를 떠나지 않으면 아니 되겠노라는 얼김에 거짓말로 대답했다. 자치회장이 간 후 나는 다시 내 거짓말을 되풀이해보았다. 그 거짓말이 입 밖에 떨어지면서 내게 어떤 힌트를 준 까닭이었다.
“집에 가자!” 하고 나는 한 번 더 웅얼거렸다.
비가 오려고 아침이 그렇게 더웠던지 구름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점심때를 지나서는 가는 비가(그 상해에서만 볼 수 있는 시원치 않은 비)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온종일 누워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고는 늘 듣던 말이지만 그 글의 참뜻은 지금에야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D와 구경을 같이 다니고? 하기는 구경쯤이야! 그러나, 그러나 알 수가 없다. 그러면 오늘 아침 일은? 아무래도 N을 알 수가 없다. 마치 여우에게 홀린 것 같다. 아까 N은 나더러 “생활이라는 게 무엇인지 아세요!” 하고 물었다. 내가 “알아요!” 하고 대답하니 “아니, 당신은 모릅니다” 하고 저편에서 반박을 했다. 그러면 N 저는 나보다 더 잘 아노라는 말이다. 그러면 자기가 아노라는 그것은 곧 N 자기의 생활 철학일 것이다. 그러면 N은 왜 나에게 그것을 물어보았을까? 항주 일 때문에? 응, 항주 일로써 N은 적어도 내 인생에 대한 태도를 짐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내 태도 내 마지메³⁹한 태도를 향하여 N은 “당신은 생활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고 오늘 아침에 선언한 것이다. 오! 그러면 나도 N의 인생에 대한 태도를 짐작할 수가 있다. 곧 나와는 반대로 ‘짧은 인생인데 도덕이니 책임 이니 내던지고 향락만을 취하자’ 하는 태도이다. 그렇지, 그러니까 N 자기는 향락만을 취하기 위하여 D한테서는 돈, 그리고 나한테서는 얼굴 그것을 탐낸 것이다. 아아! 나는 유린되었다. 아니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내릴 것도 못 된다……그런데 그다음 그가 내 가슴에 안겼을 때 그는 “내가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지!” 하고 속삭이었다. 무엇을 알았단 말인가? 내가 종내는 저에게 항복해버릴 줄을 알았단 말인가? 그럴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 항주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아니합니다” 하고 내뻗치던 나와 오늘 뛰어들어 껴안고 입 맞추던 그 나와 그 사이에 차가 얼마나 큰가? 나는 그동안에 그만치도 타락이 되었는가? 그가 “알고 있었다” 하는 말이 사실이다. 아! 나는 이렇게까지 약한 물건인가?
그렇다! 지금 문제는 더 단순하게 되었다. 일전까지에는 나는 N이 외국 여자인 것, 생활 정도가 높은 것, 허영심이 있는 것(정말 있는지 없는지 똑똑히 알지도 못하면서 물론 있으려니 하고 혼자 결정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또는 N이 나를 정말 사랑하지 아니 하는지를 모르는 것, 이런 것들 때문에 고민도 했고 단념해버리고 애를 써왔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모든 것을 안 것 같다. 곧 나는 N에게 농락된 것, N은 D의 돈을 사랑하는 동시에 또 내 얼굴을 탐내는 것, 그런데 나는 N의 유혹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막을 강한 힘이 없는 것, 이것을 알았다. 그러니 나는 이제 참말로 N을 단념 아니 할 수 없다. 내 몸을 위해서 N의 깜찍한 행동에 복수하기 위해서…… 나는 극도로 흥분되었었다.
나는 점심도 아니 먹었다고 걱정으로 S가 사다 주는 면보⁴⁰를 좀 뜯어 먹고 벌써 어두워진 하늘에서 바삭바삭 내리는 비 소리만 듣고 누워 있었다. 조금 있다가 전등불이 켜졌다. 이렇게 밤에 혼자서 빗소리만 듣고 누워 있으니 픽 고독한 생각이 난다. 그리고 집에서 어렸을 적에 가을비 오는 날 어머님이 인두⁴¹ 꽂는 화로 속에 밤 구워 먹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밤 꼭대기를 잘 버히지⁴² 못해서 밤알이 확 폭발이˙되면서 화로 재를 사방에 뿌려 어머님이 인두질하는 옷을 버려놓고 어머님께 꾸중 듣던 일이 생각나서 혼자 픽 웃었다. 그때 그 흘겨보시던 어머님 눈이 그리웠다. 그러다가 그 눈은 없어지고 이번에는 N의 눈이 나타난다. 나는 억지로 생각을 아니 하려고 고개를 흔들고 마지막에는 손을 내어 홰홰 저었으나 할 수 없었다.
N의 눈이 나를 노려본다. N의 몸에서 나던 그 향기가 다시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도 N의 그 바르르 떨고 따스하던 입술이 간지럽게도 내 입술을 문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이로 깨물었다. 전신이 다시 N의 따스한 체온을 감하는 것 같았다. N의 향내 나는 머리털이 열난 내 뺨 위를 지금도 슬적슬적 스치는 것 같아서 나는 간지럽기도 하고 재릿재릿하기도 했다.
나는 안으려는 듯이 두 팔을 벌리었다.
아! 이때 N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뛰어 일어났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러다는 미칠 것 같았다. 비 오는 것도 무릅쓰고 갑자기 강변으로 산보를 나가고 싶었다. 이것 내가 아마 정말 미치나 보다. 그러나 어느새 덧구두도 신고 비옷도 꺼내 입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문밖에 나섰다. 비는 오나 마나 했다. 질퍽질퍽 발을 옮길 때마다 소리가 나는 풀밭 잔디 위를 천천히 걸어서 강변까지 왔다. 사면이 캄캄하고 시커먼 물만이 철석철석하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공허하고 어두운 하늘과 물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서 몸이 으쓱했다. 갑자기 머리가 뜨끔하는 것 같았다. 그때 그만 의자에 펄썩 주저앉았다. 눈을 멀겋게 뜨고 모로 앉아 저편 어두운 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캄캄한 어두움을 뚫고 하얀 불빛 하나가 반짝하고 빗줄을 갈갈이 보냈다. 캄캄한 하늘에 비 내리는 속으로 한 점 밝은 빛은 말할 수없이 밝고 맑으며 광채가 들고 더욱이 외로운 영에게 큰 반가움과 위안을 주는 듯했다. 깜박하고 그 불은 죽어지고 말았다. 다시 끝도 없는 어두움이 대지를 안타깝게도 둘러쌌다. 다시 반짝하고 그 아름다운 불빛은 나타났다. 어두움밖에 없는 세상에 한 점 희망 한 점 바른길을 열어주려는 것처럼 다시 깜박 다시 반짝! 이렇게 나는 정신없이 밤에 항해하는 배들 길을 인도해주느라고 쉬지 않고 켜졌다 꺼졌다 하는 등댓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무엇이라고 할 숭고하고 귀엽고 깨끗한 불인가! 무엇이라고 할 책임성 있는 희생적인 등불인가! 어두운 속에 새카만 속에 홀로 서서 그 밝은 불빛을 동시 사방 한 곳도 빼지 않고 두루두루 보내어 큰 배, 작은 배, 이 나라 배, 남의 나라 배, 윤선, 풍선, 할 것 없이 모든 배들과 뱃사공들에게 희망과 참길을 가르쳐주고 인도해주는 저 불이야말로 얼마나 귀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인가! 뱃사공은 저 불을 믿고 저 불은 모든 뱃사공 밉게 생겼건 곱게 생겼건, 늙었건 젊었건, 온 천하 뱃사공 누구나 자기에게 가까이 오는 사공은 모두 한결같이 사랑한다. 그래 그의 밝은 빛으로 모든 사공들의 앞길 안전한 길을 열어준다.
아! 나는 왜 저 등탑불이 되어볼 수는 없는가. 어두운 하늘에 혼자 서서 아무 구별 아무 가림 없이 천하 모든 사람을 모두 한결같이 사랑하여 그들에게 빛을 주고 희망을 주고 안전한 길을 열어주게 될 수는 왜 없는가! 아! 그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되면 그들은 뱃사공이 저 등불을 믿는 것과 같은 순결하고 굳건한 믿음으로 나를 믿을 것이다. 이때 내가 내 몸이 괴롭다거나 내가 내 일신의 행복만 탐해서 내 얼굴을 어떤 한 사람 치마 앞에다 숨겨 놓는다고 하면 등불이 앞길을 인도해주려니 하고 꼭 믿고 의심없이 이 길로 항해해 오던 사공들은 모두 어찌 될 것인가? 저 등불이 제 얼굴을 제 애인의 치마 속에 가리고 달콤한 사랑을 속삭일 적에 여기저기서는 배가 암초에 부딪히고 배와 배가 마주치고 하여 배는 깨지고 사공들은 죽어버릴 것이다. 그때 사공들은 그 등탑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 등탑은 그 후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여념도 없이 깜빡깜빡하고 나왔다 스러졌다 하는 불을 영 바라다보고 앉아 있었다.
6월 12일
어젯밤에 비를 맞은 탓인지 몸에 열이 났다. 아침에 의사가 들어와 보고 약을 몇 봉지 갖다 주고 갔다. S는 옆에 와 앉아서 하룻밤 새에 얼굴이 말이 못되었다고 걱정걱정하면서 무슨 우스운 이야기 같은 것을 들려주고 또 아침 대회에서 들은 대표 보고 이야기도 해주고 신문 기사들도 읽어 들려주었다.
슬며시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흐릿한 날이 시간이 어떻게나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S도 어디로 나가고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선가 벌써 파리가 두어 마리 오늘 아침 S가 사다 준 우유통 위로 욍욍하면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물끄러미 천장을 쳐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좀 하려 했다. 머리를 무엇으로 내리누르는 것같이 뗑하고 지끈지끈 아파서 한 가지 생각을 오래 계속 할 수는 없었다. 그저 단편 단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계속했다.
‘옳다, 집에 가자!’ 하고 나는 생각했다. 벌써 집에 안 가본 지가 칠 년째이다. 그동안 아버님 어머님도 퍽 늙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내 누이는 나를 보지도 못하고 그동안에 죽어버렸다. 나는 연전에도 성공하기 전에는 집에 다시 아니 들어가기로 결심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그 결심을 깨뜨릴밖에 없다. 집에 가서 반가운 부모도 만나보고 친구들 친척들 그리고 산 좋고 물 밝은 평양에서 매일매일 모든 것을 잊고 재미있는 장난에 취하면 자연 N도 차차 잊어버리게 되고 내 상한 가슴도 회복되게 될 터이지. 그리고 또 기회만 있으면 고향에서 다른 애인을 하나 얻어보아야 하겠다. 애인을 하나 얻어서 깊이 위해주고 사랑해주면 자연히 N에게 대한 미련한 정은 차차 희박해지고 세월이 감을 따라 잊어버리기도 하겠지. 여름 방학이 석 달은 될 터이니 그동안 N을 모두 잊어버리고 가을에 다시 와서는 N을 본 척도 아니 하면 N이 나를 농락한 데 대한 복수도 될 것이다.
그렇다.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서 반가운 옛날 추억의 품에 안기자. 그리고 내 사람들과 섞이고 노는 가운데 N을 잊어버리고 말자. N도 여름 동안에 D를 따라 돈의 향락에 빠지거나 또 어떤 다른 사람을 따라 나를 잊어버리고 말겠지. 아니 N이 아무렇게 되든 내게 상관이 있나! 나는 집으로 가겠다. 집으로 가겠다. 돈도 집에서 올 때가 되었으니…… 하고 나는 생각했다. ……집으로 어서 가려면 병이 어서 나아야겠다…… 하고 나는 얼른 머리맡에 놓인 환약을 한 개 더 먹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았다 하고 벌떡 일어나보았으나 아직 낫지는 않았다. 나는 맥없이 다시 침대 위에 쓰러졌다.
6월 16일
오늘은 몸이 가뜬해졌다. 강변으로 산보도 했다. 오후에는 책장도 뒤적뒤적해보고 집에 갈 짐 꾸릴 준비도 좀 했다. 다만 아직 돈이 아니 와서 걱정이다. 더욱이 돈이 오더라도 조선은행 절수로 나오면 큰일이다 하고 걱정을 하고 있다. 조선은행은 아직 개업을 아니 하고 있으므로 그리로 오면 돈을 찾아올 수가 없는 것이다.
6월 19일
이제야 돈이 왔다. 마침 우편국으로 와서 퍽 기뻤다. 곧 학교 회계실에 가서 찾아달라고 맡겼더니 오늘 아침에 찾아다 주었다. 대판(大阪) 진재로 일본 돈이 픽 떨어졌더니 더욱이 이번 일화 배척 운동 때문에 돈시세가 퍽 떨어졌다. 여비가 모자라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하여간 집에서는 놀랄 것이다. 갑자기 소문도 없이 들어오는 아들을 보고 응당 놀라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렷다.
학교에서는 학기 시험은 고만두고 매일 일강 성적으로 성적 평균을 주기로 하고 예정했던 대로 내일에는 방학을 한다고 한다. 상해학생연합회에서는 또 요새 며칠은 아무 일도 못 하고 급진파 완진파⁴³가 내부에 생겨가지고 밤낮 싸움만 한다고 학생들이 퍽 낙망한 모양이다. 우리 학교 대표들은 연합회에서 탈퇴를 하느니 마느니 하고 야단들을 친다. 아이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서 집에나 가자. 이 집에나 내 집에나 그저 집안싸움으로 망하려나 보다.
6월 20일
아침에 짐을 가지고 상해 T군의 집으로 나왔다. 중로에서 노동자들의 폭동을 만날까 싶어서 자동차를 한 채 세내 타고 나왔다. 자동차도 노동자 무리들이 많이 모둥켜 섰는 곳을 지나올 적에는 그냥 삼십 마일 속도로 내닫는다. 아마 돌질이 날까 무서워하는 모양이다. 학교에서 짐을 자동차에 싣고 있을 때에 우편소에서 나오는 N을 볼 수 있었다. N도 픽 수척해진 것같이 내게 보였다. N은 픽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다보고는 급한 걸음으로 어디론가 갔다. 나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으므로 모른다. 이것이 내 마지막 N과의 작별이었다. T군은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그리고 내 수척한 얼굴에 놀랐노라고 한다. 내가 나 스스로 앓고 일어나서 면경을 들여다보고 놀랐으니 다른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닐 터이다. T군은 내게 이유를 물었으나 나는 그저 앓고 일어난 탓이라 했다. T는 무엇을 찾는 듯한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다보더니 슬픈 웃음을 빙그레 입가에 나타내면서
“무엇 내가 다 알지. 계집에 관한 고통이 있었네그려!” 한다. 나도 말없이 웃었다.
“대장부가 되게! 계집이란 아무 쓸데도 없느니!” 하고 그는 예의 태도로 말을 껴내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버린다. 이제는 그런 소리 하기도 퍽 싫어진 모양이다.
마침 내일 떠나는 배가 있어서 배표를 샀다. 그리고 밤에는 T와 한자리에 누워 부채로 몰려드는 모기떼를 날리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밤이 깊은 줄 모르게 했다. T는 졸음 오는 목소리로
“집에 가거든 내 그것한테 한번 가보게그려. 예쁘게 생겼지!……아니 가볼 것 무엇 있나! 그까짓 요귀 년을…….” 하고 잠깐 있다가 “후―” 하고 한숨을 길게 쉬면서 돌아누웠다. 나는 잠잠히 한참 동안이나 무엇을 생각하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6월 25일
집에 왔다. 마침 음력으로 단옷날이다.
오 분 전에 어디 갔다 들어오는 사람처럼 집에 들어가는 차닌⁴⁴처럼 해보려 했으나 나는 그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범인(凡人)이었다. 그런 일도 비범한 사람(차닌 같은 사람)이 아니면 못 할 일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그동안 퍽 늙었다. 더욱이 어머니는 딸을 잃은 후로 늘 울고만 있다는 소식을 들었더니 참으로 몰라보도록 수척하셨다. 그리고 새벽에 갑자기 들어오는 칠 년이나 못 보았던 아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기쁨이 넘치고 또 딸의 생각이 났던지 그만 나를 붙잡고 울고 쓰러졌다. 나도 눈물방울이나 떨어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꼴도 말은 못된 모양이다. 아버님은
“외지에서 고생하느라 저 꼴이 되었구나!” 하시고 혀끝을 차시고 어머님은 눈을 씻고 들여다보고는 또 보고
“아이고, 이놈의 세상. 그 몹쓸 놈들이 먹을 것도 아니 주었나보구나!” 하고는 엉엉 소리를 내 울었다.
오후에는 슬근슬근 동산에 올라가보았다. 오래간만에 보는 단오 놀음은 퍽도 옛 어렸을 적 일을 연상시켜주었다. 다홍치마를 입고 자줏빛 댕기를 펄필 날리면서 그네를 뛰는 어린 처녀들이 퍽 아름답게 보였다. 그네를 제가끔 먼저 뛰어보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그네 끈을 붙잡고 돌아가며 싸우는 인형(人形)같이 생긴 아씨들도 퍽 예쁘게 보였다. 큰 동산 작은 동산에 울긋불긋하게 모여든 부인네의 떼, 간간이 섞인 얼근한 남자의 무리, 특별히 인기를 끄는 해금쟁이, 어린애 코 묻은 돈 바라다보고 앉았는 아이스크림 장사의 떼, 소화단 들고 다니는 약 행상, 서커스의 외치는 소리와 속된 음악, 여기저기서 반공(半空)에 번득이는 그네, 만수대 아래 길로 오고 가는 사람의 떼, 모든 소리, 빛, 움직임, 생각, 먼지, 술, 땀. 아! 봄의 페스티벌을 마음껏 즐기는 인형 부녀(婦女), 마셔라, 취하라, 춤추라, 날뛰라, 그리고 기절하라!
동산에서 얼굴이 낯익은 듯한 사람을 몇 만났으나 이름도 모르겠고 똑똑지도 않으므로 모르는 척하고 지나갔다. 저편에서도 모르는 척한다. 아마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었던 게지. 평양을 떠난 지 십 년도 못 되었는데 아는 친구는 이렇게도 못 만나 보게 되는가?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퍽 고독한 생각을 느끼면서 나는 뒷짐을 지고 어정어정하면서 일본 사람의 신궁(神宮) 뒤로 돌아 을밀대로 올랐다가 기생 끼고 산보 나온 젊은 풍류객들이 보기가 싫어서 다시 내려서서 모란봉 꼭대기로 올라갔다.
모란봉에서 내려다뵈는 대동강과 평양, 확실히 항주보다 나으면 낫지 못하지는 않다. 나는 어떤 감격을 느끼면서 멀거니 즐비한 평양성을 내려다보았다.
아! 저 속에는 군자도 많고 가인도 많으련만!
나 떠날 때에는 보지도 못하던 시뻘건 벽돌집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새로 된 대동강 철교도 유표하게 눈앞에 나타난다. 맞은편 항공대에서는 비행기가 두 척 떠서 윙윙하면서 우리 머리 위로 돌아다닌다. 새파란 물 위로는 파란 치마를 입은 기생들이 놀이배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어떤 몽상에 잠기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나는 고독스럽다!” 하고 나 자신이 중얼거렸다.
4
7월 1일
“영감이상,⁴⁵ 이거 어떻게 하지우? 이거 지게꾼 그래도 밥 벌어 먹으야 아니하갓소!”
“우리 사람이 몰라, 오늘이 오라구 누가 말이 했나?”
“아니, 영감이상! 그럼 원제나 오라우?”
“내일이, 내일이, 내일이 왓소메 좋소.”
“그럼 오늘은? 지게꾼 이거 오늘도 밥 벌어 먹으야 하디 안갔쉔가!”
“몰라, 몰라, 내일이 일이 있소, 내일이.”
애원하는 듯 우는 듯 빌붙는 듯한 목소리와 책망하는 듯, 비웃는 듯한 목소리 이 둘이 서로 회화를 하는 것이 양복을 입고 자전거 타고 가는 일본 사람과 그 뒤로 빈 지게를 지고 무슨 종이 조박⁴⁶‘을 쥐고 숨차게 쫓아오는 조선 지게꾼이었다. 이것은 오늘 아침 신시가 근처에 나갔다가 본 일이다. (이하 7행 삭제)
아― 그 어렸을 소학 시절에 나는 심술궂게도 그를 따라다니며 “외눈깔이, 외눈깔이” 하고 놀려주었었다. “총 쏘자, 사진 찍자!” 하고 너무도 놀려댈 때에는 그는 성이 독같이 나서 나를 따라잡았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너무 유순하여서 제 힘센 팔에 붙잡혀서 바둥바둥하고 애쓰는 나를 보고는 차마 때리지 못하고 그냥 “이다음 또 그러면 목을 분질러줄나” 하고는 그대로 놓아주곤 했다. 그러면 나는 즉시 또 쫓아가며 성화 먹였으나 그는 내 목을 분지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가 고등과 이년급인가 삼년급 될 때 그는 목수 노릇 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하여 공부를 그쳤다. 우리는 가지고 놀 ‘애꾸눈이’가 없어진 것을 섭섭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나는 여러 번 먹통을 들고 제 아버지를 도와 새집 봇장⁴⁷ 재목에 먹줄을 치고 앉아 있는 그를 종종 거리집 짓는 곳에서 본 일이 있었었다. 그런데 오늘 그는
“이거, 지게꾼 오늘 밥벌이 아니 하야 되갔소!” 하고 애걸하면서 큰 거리로 지나갔다. 그러면서 멕고 쓰고 양복 입고, 흰 구두 신고 홰홰 내두르며 지나가는 짊은 신사인 나를 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니 볼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어째 양복 입은 것이 죄악인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화끈했다.
그러면 그는 어째 지게꾼이 되었는가? 나는 집에 돌아오자 곧 어머님께 물어보았다. 진실한 예수교인이던 그의 아버지가 타락하고 그 후로부터 목수일도 세월이 없는 데다가 집안에 만날 풍파가 있어서 그는 따로 떨어져 나와 혼자서 목수 노릇할 자본이나 재간은 없고 하여 벌써 지게꾼 노릇 하는 지가 수삼 년 되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 언제나 벙글벙글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일요 예배마다 장대재 예배당에 가면 언제나 그 영감이 와 앉아서 예배 시작하기 전에 혼자서 수심가 청으로 찬미 독창도 하고, 또는 “남인⁴⁸ 칸에서 한 분 부인 칸에서 한 분씩 기도하라”는 말이 나오면 언제나 이 영감이 일어서서 목소리를 길게 빼어 기도를 간절히 올리곤 했다. 그리고 부흥회 때마다 그는 늘 무슨 간증이고 하고 또는 성신 받은 신자 중에 하나였다. 더욱이 철없는 아이들은 그를 ‘감사 영감’이라고 별명 지어두었었다. 그것은 그 영감이 무슨 불행을 당하든지 “하느님 은혜 감사합니다” 하고 외치는 까닭이라 했다. 정말인지 거짓말인지는 모르나 언제 한 번은 그 영감이 집을 짓다가 다 된 집이 갑자기 와르르하고 무너지는 것을 보고 “감사합네다” 하고 외쳤다고 한다. 옆에 사람이 물어보니까 그의 대답이
“아, 집은 무너졌으나 사람은 상하지 아니했으니 감사하지 않소!”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 한번은 어떤 교인의 집에 어린애가 죽었는데 조상 가서 척 들어서면서 또 “감사합네다”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놀라서 물어보니 그 대답이
“아, 그 아이가 커서 죄를 짓고 죽었으면 지옥에 가게 되었을지도 모를 것을, 지금 어려서 죄를 모르고 죽어 천당에 갔겠으니 그 아니 감사하오!” 했다고 한다. 하여간 그만치 지독한 예수교인이었다. 그리고 집에는 소경 마누라와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며느리를 맞아 온다는 것이 또 소경을 얻어 와서 소경 여편네 둘이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서 서로 이마를 딱딱 마주치는 것이 아주 장관이라는 이야기였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어서 그 영감이 어떤 과부에게 눈이 빠져서 목수 노릇 해서 돈 백 원이나 모았던 것을 홈빡 들여서 그 과부를 첩으로 들여오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책벌을 맞은 후 어디론가 갔었는데 수삼 년 전에 다시 평양으로 와서 지금은 술 먹고 주정하기가 업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감사 영감의 둘째 아들이 곧 오늘 내가 본 C군이다. 아! 놀라운 일이다. 미신으로 거의 줄 치듯 해놓은 조선의 예수교의 그 두려운 힘으로도 ‘감사 영감’의 성욕을 제어할 수가 없던가? 사람은 과연 그렇게 성욕밖에는 아무것도 없이 생각을 하는가? 이야기가 나왔던 김에 어머니는 또 L장로의 일도 이야기해주었다. 그것은 L장로의 젊은 아내와 D신문 지국장의 간통 사건으로 정부는 징역까지 하고 나왔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제 인격, 제 자존심, 제 명예, 제 재산, 또 그밖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성욕의 만족인지 또 혹은 연애인지를 구했다!
아! 나는 저울대를 가지고 싶다. 그리고 달아보고 싶다. 과연 성욕이란 그만치 힘세고 무서운 것인가? 그런데 나는 그것을 싸워 이겼는가? 아니 이기려고 노력하였는가!
그렇다. 나는 언제나 남이 못 하는 일을 꼭 해보고 싶었었다. 남보다 나은 사람, 특수한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지금 이 싸움에 이겨야 한다. 남들이 이기지 못한 힘든 싸움일수록 나는 꼭 이겨주고 말아야 한다. 그러면 나는 독신 생활을 할 작정 인가? 글쎄?
7월 3일
평양아, 아니 조선아, 네가 하늘에 오를 듯싶으냐? 아! 아! 나는 어떻게 이 센텐스를 마저 말하랴!
(차간 5행 삭제)
평양! 평양! 과연 훌륭해졌다. 육만밖에 아니 되는 인구가 십만 이상이나 되었다. 밀차가 없어지고 전차가 놓였다. 시삘건 벽돌집들이 수십 개 더 생겼다. 시퍼런 대동강 철교가 우뚝하다. 비행기가 서너 개씩 매일 떠돌아다닌다. 아, 이십세기적 대도회로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늙은이들은 입을 벌리고 젊은이들은 머리 쳐들고 횡행한다. (이하 21행 삭제)
7월 10일
나는 왜 집에 왔던가?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것 모든 것이 절망과 권 태뿐이다.
오늘 아침 나는 거리에 나갔다가 어떤 유치원을 보았다. 마침 아이들이 뜰에 나와서 유희 체조들을 하고 있었다. 무엇이라고 할 귀여운 아이들이랴!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사랑스러운 어린이들의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양을 취한 듯이 보고 있었다.
(이하 2행 삭제)
하고 생각하니 그저 들어가서 하나씩 하나씩 붙안고 입을 맞춰 주고 사랑스러운 말도 해주고 싶었다. 정신없이 바라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W군이 어깨를 툭쳤다. W군은 한 사날 전에 어데서 내가 귀국했더란 말을 듣고 찾아온 일이 있었다. W는 빙글빙글 하는 보기에 픽 불쾌한 웃음을 웃으면서
“무얼 그렇게 들여다보나? 홀딱 홀렸네그려. 흥, 평양서는 몇째 안 가는 미인이니까, 아직 처녀라네!”
나는 이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가 하고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는 그냥 빙글빙글 웃으며 나를 보고 또 유치원 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도 다시 유치원 마당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밖에서 수선한 소리를 듣고 밖을 내다보던 유치원 교사인 처녀 얼굴과 마주쳤다. 나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급히 걸어 지나오고 말았다. W는 따라오면서
“그런들 그렇게까지야!” 하고 그냥 빙글빙글 웃는다. 나는 W의 뺨을 갈겨주고 싶었다. 그러나 꿀꺽 참고 말대답도 아니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W는 나에게 퍽 놓지 못한 힌트를 주었다. 오늘 오후에 거리에 나갔을 때에는 길에 지나가고 지나오는 부녀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내가 되었다. W의 실없는 장난은 내 심리 상태에 큰 물결을 일으켜준 것이다. 내 눈도 차차 W의 눈 그것과 같아지는 것 같아서 나는 떨었다.
7월 11일
오늘 한껏 아버지 어머니한테 졸리웠다. 장가들라는 말이다. 나와 동갑인 친구들은 벌써 모두 장가를 들어서 아들딸들을 두셋씩은 낳았다는 둥, 늙은 아비 어미가 늙마⁴⁹에 며느리도 보고 또 손자를 다만 하나라도 안아보아야 기쁘겠다는 둥 여러 가지로 괴롭게 굴었다. 부모로서는 나를 장가를 들이는 것이 시급한 문제가 아닌 것이 아닐 터이다. 첫째 그들 말대로 늙마에 며느리도 보고 손자도 안아보고 싶을 것이요, 둘째로 또 밖에 나가 다니기만 좋아하는 나를 자갈⁵⁰을 물려서 집에 들여다 앉히기 위해서도 또 미끼를 하나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기는 그럴 것이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불쌍한 사람이다. 자수성가로 갖은 고생을 다 해가면서 돈푼이나 모아서 먹을 것은 걱정이 없이 되었으나 자식이라고 단둘이 있는데 재작년에 다 길러놓은 딸을 영이별하고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것은 밤낮 나돌아다니면서 어떤 때는 책임 없는 신문 기자의 잘못으로 무슨 두려운 사건의 연루자로 삼면 기사에 오르고 내려 늙은 부모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곤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부모의 정으로는 자갈도 물리고 싶고 또는 남들이 하는 것같이 예배당에 가서 성대한 예식도 해보고 집에서 떡도 치고, 지짐도 지지고 한번 흥청흥청해보고도 싶어 할 것이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지금 다른 무슨 바람, 다른 무슨 의식, 다른 무슨 즐김이 있으리오!
그들은 연애가 무엇인지 모른다. 연전에 아버지의 친구인 어느 사람이 찾아와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던 끝에 “나는 연애 연애 하니 그것 무슨 소린가 했더니, 이전엔 서방질한다고 하는 걸 신식 말로는 연애한다고 한다드만” 하고 말하고 간 적이 있다고 그것이 참말이냐고 나더러 물었다. 결혼에 대해서 무슨 말을 좀 하려고 연애 문제로 입을 별렸던 나는 그만 입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말하면 무엇하리오? 알아도 못 들을 것이요, 알아들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공부하는 학생 시대이니” 하는 어리삥삥한 대답으로 거절 비슷하게 해두고 클클한 생각이 나서 모자를 떼어 쓰고 밖으로 나아가고 말았다. 구두끈을 매면서 나는 아버지의 땅이 꺼지는 듯한 긴 한숨 소리를 들었다. 내 가슴도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7월 12일
암시라는 것과 환경이라는 것은 무서운 물건이다. 집에 들어가면 장가가라는 소리, 밖에 나오면 거리로 오르고 내리는 기생의 떼, 그동안 여기저기에 몇 번 모이게 된 그다지 가깝지도 않고 그리 생소하지도 않은 친구 몇 사람과 만나면 또 그저 그 소리―여학생 소리와 기생 소리,'그렇게 간 곳마다 암시를 받으니 갑자기도 퍽 성욕이 발동된다. 어젯밤에는 거의 견딜 수 없이 흥분되어서 자리에서 이리 뒤지고 저리 뒤치고 했다. 종내 잠이 들어서는 말하기도 부끄러운 추악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 동안에도 나 스스로가 놀랄 만치 성욕의 발동을 느꼈다.
5
7월 13일
나는 왜 돌아왔던가? 지금에 와서 도리어 후회가 난다. 좀더 좋은 방면으로 나아가보겠다는 결심으로 왔는데 지금에 와서 현저히 나는 타락되었다. 행동으로는 타락 아니 되었다고 하더라도 정신으로는 확실히 걷잡을 수 없을 만치 타락되었다는 것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절망적 감정으로부터 얻은 값이다.
나는 N을 잊기 위하여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내가 N을 잊어버렸는가? 잊어버리는 체하고 잊어버리려고 한 것까지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N을 정말 잊어버렸는가?
집에서 잠잠히 앉아 밥을 먹는 동안, 저녁마다 모란봉 꼭대기에 올라가서 무연한 대동벌과, 맑고 깨끗한 대동강의 굴곡을 바라다보고 서 있는 동안, 혼자 묵상에 잠기어 칠성문 밖 넓은 길로 헤매는 동안, 밤에 잠자려고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때에, 그 어느 때 나는 N을 잊어버린 적이 있는가? 그 아름다운 눈동자를 추억하지 아니한 때가 있는가? 어떤 때 관압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의 집에 한가히 앉아서 거리로 지나가고 지나오는 수많은 여자들을 볼 때 나는 N을 생각하고 한숨 쉰 적이 몇 번이던고! 아버지 어머니가 장가를 들라고 조를 적에 나는 N이 어린애 재롱 보는 모양을 본 꿈을 다시 생각하고 한숨 쉬지 않았는가?
아, 아! 내게는 왜 건망증이 없던가? 나는 이렇게까지도 약한 자인가? N은 내가 어디 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할 것이다. 혹 소식을 몰라서 애쓰지나 않는지? 아니, 무엇을, D와 돈의 열락에 취했겠지! 아니 아직도 상해 상태가 평온하지 못하니까 혹은 집에 가만히 있어서 나를 추억하고 눈물짓지나 않을는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 아니 된다. 남 못 하는 일을 해보려는 내가 아닌가.
나는 N을 잊기 위하여는 여기서 다른 연인을 얻지 않으면 아니 될 줄로 생각을 하고 온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나는 거기 성공했는가? 아니 그것보다도 조선서 연애라는 것이 성립될 가능성이 있는가? 젊은 남녀의 교제라는 것이 일에서 열까지 꼭 금지된 이 사회 제도 속에서 연애를 찾아보겠다는 내가 미친놈이 아닌가? 남녀 교제는 말도 말고 여자들을 볼 수도 없다. 젊은 처녀들을 볼 수 있는 곳은 곧 예수교 예배당뿐이다. 그러나 처녀를 보러 예배당에 가기는 나는 싫다. 학교에 있을 때에는 학교 규칙으로 할 수없이 예배당에 다녔거니와, 지금 자유행동을 할 수 있는 때가 되어가지고 평생 가기 싫은 그곳에 다니기는 싫다. 주일마다 아버지와 조그마한 충돌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무슨 핑계든지 꾸며서 예배당에 아직 아니 갔다. 나는 이 자존심 때문에 늘 좋지 못
한 일을 당한다. 그러나 함 수 없다. 내 성질이 그런 것을. 또 한 가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거리에 나앉았다가 길로 지나다니는 많은 여자들을 유심히 검사해가지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그 밑구멍을 줄줄 따라다니다가 편지나 한 장 해보고 어쩌고 하는 방법일 것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여자한테 편지는 평생 쓰지 않기로 맹서한 나로는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다. 다른 처녀를 보면 무엇하리오, 지금 내가 N을 잊고 다른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졌는가.
남녀 교제라는 것이 사방으로 꼭 틀어막힌 이 사회에서 남녀 교제가 가장 공공연하게 시인된 데는 꼭 한 곳이 있다. 거기는 기생사회이다. 시대는 내가 이곳을 떠날 때보다도 말할 수 없이 변했다. 지금에 와서는 난봉⁵¹이나 상인들은 말도 말고 학생모 쓴 학생까지도 기생과 사귀는 것은 떳떳한 일인 것처럼 그것도 한 유행이 되었다. 또 기생으로서는 아무러한 남자와도 마음 놓고 사귀는 특전이 있다. 여염집 처녀로는 꿈도 꾸지 못하리만치 담대하고 활발하다. 누구를 꺼리랴? 무엇에 구속을 받으랴? 기생은 종달새처럼 지저귀며 자유스럽게 몸치장하고 남자들과 사귄다. 이 점에 있어서 기생은 조선 여성의 반역자(叛逆者)이다. 인습, 도덕, 구속, 관념 모든 것에서 뛰어난 자유주의자이다. 기생에게 있어서 다못 한 가지의 흠점은 곧 이 공공연한, 자유스러운 교제로써 그들의 생계(生計)를 삼는 한 가지 일이다. 정당한 교제보다도 매춘을 하는 한 가지 일이다. 만일 그것만 아니 한다면 조선의 기생은 훌륭한 반역자, 훌륭한 선도자들이 되리라. 조선의 모든 여성은 돈 안 받는 기생이 될 필요가 있다. 조선 여자들은 너무 보수적이다, 그리고 또 너무 남의 시비를 무서워한다. 여성 혁명의 봉화를 들고자 하는 여성이 없다. 남의 욕이 무서워서, 남의 오해가 무서워서. 그러나 남의 오해를 안 받는 영웅이 어디 있더냐?
7월 14일
“나 고기 몰라. 주면 먹긴 해두 고기 몰라.” 오늘 아침에 어머니가 나 주겠다고 어제 틔어두었던 닭고기를 부엌에서 뜯고 있을 적에 어떤 얼굴 와당탕하게 생기고 여기저기 센 머리털이 섞인 두꺼비 꽁지만 한 머리채를 산산이 풀어헤치고 남루한 옷을 두른 건장하게 생긴 여인 하나가 부엌 문 앞에 들어와 서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 고기 몰라. 먹긴 해두 몰라!”
방 안에서 신문을 읽고 앉았다가 나는 이상해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어머니는 웃으면서
“도깨비란다, 도깨비” 하고 고기가 묻었는지 말았는지 한 뼈다귀를 한 개 집어 주었다. 거지는 부엌 문밖에 쭈그리고 앉아서 뼈다귀를 쭉쭉 핥고 있었다.
“아, 글쎄 거 우습지 않소. 아들 서른두 개 낳든 거 하나도 안 살고 다 죽었소고레, 쌍둥이두 죽구. ……아, 그놈의 새끼 때문에 참, 우리 메느리 있든 건 또 지금 서울 가서 살구…….” 이렇게 그 불쌍한 늙은이가 혼자 중얼중얼하고 있었다. 집에 하인이 뜰을 쓸다 말고 옆으로 오면서
“이 도깨비 무얼 쭝얼거려? 도깨비!”
“아니, 앤 알지두 못하문성. 그 왜, 우리 맏메느리 말이야. 그 애 지금 이 × × 이네 집에 가서 살지 않니…….”
그는 뼈다귀를 홱 집어 내던지고 머리를 한 번 홰홰 내두르더니 부시시 일어서서 다시 또 손을 내밀었다.
“이젠 없어!” 하고 어머니가 외쳤다.
“나 고기 몰라, 주면 먹긴 해두 몰라, 몰라.”
“도깨비 같은 거, 거정, 우스워 죽갔네, 데 가라우, 가” 하고 하인이 비를 둘러멨다.
“데 ―파! 시누이를 때리나? 시누이두 때리나?” .
“도깨비 소리 고만두고 어서 가디 안칸?”
“하―, 글쎄 시누이를 때리누만, 이런” 하면서 불쌍한 노파는 비츨비츨하면서 피하여 대문 밖으로 나갔다. 집 안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나는 한참이나 눈이 멀게 앉아 있었다.
어머니 설명을 들으면 그는 본래 서촌 어디 있던 예수교 장로의 아내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 십 년 전에 이××을 암살하려 한다는 혐의로 붙잡혀서 경성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당한 후 아내는 그만 저렇게 미쳐서 서울 남편 찾아가느라고 평양까지 와서 벌써 몇 해째 평양서 저렇게 돌아다니며 얻어먹는다고 한다.
정신에 이상이 생긴다! 미친다! 분수에 넘치는 자극을 받을 때에는 신경 계통이 조화를 잃어버리고 착란이 된다. 미친 사람도 자기가 미친 줄을 의식 할까? 자기는 가장 진면목(眞面目)하게 무슨 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듣는 사람에게는 아주 그렇게 우습고 터무니없고 연락 없는 주절거림으로 들리는 것이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지금 나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누가 증명할 수가 있을까? 나는 그동안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그래도 연락 있는 내 일기를 쓰느라고 여기다 써놓았는데 일후 누가 이것을 읽어보고 미친 이의 짓이라고 웃어줄는지 누가 알 것인가? 이제 그 미진 사람도 자기 속에는 정신이 똑똑한데 다만 그의 언어 관능 기관이 그의 뇌의 지배를 착란해서 그렇게 저도 모를 소리를 주절거리는 것이 아닐까? 만일 극도의 고통이나 고민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면 나도 확실히 미쳤을 것이다. 나는 내가 미친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또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웃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면서 항상 남의 웃음거리가 되어 있지나 아니한가?
나는 하루 종일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퍽 불편하였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혹시 다른 사람이 웃지나 않나 하고 모여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또는 방금 내가 한 말을 되풀이해서 속으로 생각도 해보아 혹 우스운 소리가 아니 나왔나 하고 검사도 해보았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입을 닫쳐버리고 말았다.
7월 16일
장맛비가 내린다.
우레 번개질을 해가면서 앞집 뜰에선 포플러 가지가 보이지 않으리만치 비가 억수로 내리붓더니 지금은 가는 보스락비가 되어서 조르락 조르락 하는 소리가 어째 가슴속에 말할 수 없는 비곡을 들려주면서 쉴 새 없야 지붕을 두드린다. 나는 불 땐 따끈따끈한 구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물끄러미 비 오는 마당을 내다본다. 넓지도 않은 마당이 여기저기 패어서 늙은이 이마처럼 되어 있다. 저편 화단 쪽에는 아직 소나기 물이 쭉 찌지를 못하고 풍덩하니 고여 있다. 하늘은 멀건 것이 비가 언제 그칠 것 같지도 않다. 아마 한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올 것 같다. 집에서는 아들 떡해 먹인다고 떡쌀 삶는 구수한 내가 코를 슬쩍슬쩍 스친다.
처마 끝 아래는 강한 처마 낙숫물에 파여서 둥그런 소⁵²가 지고 거기 물이 가뜩 채워 있다. 그리고 지금 조금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연방 크고 둥그런 물거품을 짓는다. 그 물거품이 핑그르르하고 이편으로 둥둥 떠 나오다가는 스러지고, 스러지면 또 저편에서 벌써 새 물거품이 생겨 이리로 온다.
“세상은 물거품이라”고 그 누가 말했다. 그러면 이 오뇌, 이 고통, 이 슬픔, 이 고독, 이 광란, 이것도 모두 물거품이던가! 나는 긴 한숨을 쉬지 아니치 못했다.
물거품은 연해 생겼다 꺼졌다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도 있지, 그 물거품마다에서 나는 N이 빙그레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그 얼굴, 그 눈을 보았다. 물거품마다에서 그는 나를 희롱하고 있었다. 나는 ‘보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은 하나 이 광경에서 떠날 용기가 없어서 그냥 앉아서 오래오래 그 물거품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때 아버지는 또다시 나의 약점을 습격했다. 내가 이렇게 정신없이 뜰을 내다보고 앉았는 것을 본 아버지는
“얘, 너 무슨 근심이 있니? 흥, 그렇지, 그만 나세가 되면 그런 법이니라. 그러기 이런 때 너를 위로해줄 사람을 하나 구해야 하느니라. 글쎄 네 애비가 어련히 하랴. 이번에는 꼭 허락을 해라. 이런 좋은 자리는 다시 구할래야 없으리라. 저 서문 밖 구 장로 딸인데, 인물도 잘나고 재간 있고, 숭의여중학교 졸업하고, 일본가 공부하다가 지금은 S유치원 교사 노릇 한다더라. 그런 자리가 또 어데 있겠니!”
‘S유치원’이란 말에 내 귀가 번적 뜨였다. S유치원 교사 노릇 하는 여자일 것 같으면 일전에 내가 그 학교 앞에서 W군을 만났을 때 잠깐 본 여자이다. 그때 인상이 결코 나쁘지는 않았다. 퍽 예쁘다 하고 생각하였었다. 처녀의 순결이라는 것보다도 남자의 육욕을 격동시키는 야비하면서도 요염한 참을 가진 여자라고 보았었다. 나는 속으로 다시 그 여자의 얼굴을 되풀이해 보았다. 내가 말없이 잠잠하고 있는 것을 본 아버지는 좀 열중되어서
“무엇 우리가 사돈댁 덕이야 바라겠느냐마는 또 부자란다. 삼천 석을 하느니, 오천 석을 하느니 하는데 네 역⁵³ 돈 없는 집보다는 낫지 않니! 내가 네게 나쁘도록 해주겠느냐? 어련히 좋도록 해주랴. 그리고 또 그가 원한대면 너 가자는 데로 어데든지 공부도 같이 보내주겠노라더라. 그 집 에서는 오늘이라도 네가 허락만 하면 곧 작정을 하자는구나. 어제 이 권사가 한것⁵⁴이나 와서 말을 하고 갔다.”
사람들아, 나를 비웃지 마라. 이 소리가 결코 내게 싫지가 않았다. 싫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픽 강한 힘으로 나를 유혹했다. 곱다! 고운 처녀를 아내로 한다. 육욕의 만족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이 고운 여자와 결혼하여 같이 사는 동안에 애정도 생기고 자식도 낳고 하면 자연 N도 잊어버리고 말게 될 터이지. N을 잊어버리는 데는 이 여자가 아주 좋은 대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또 여지껏 반대만 하던 혼담을 지금 갑자기 “네, 그럽시다” 하고 나앉는 것도 어째 우스운 것 같아서 아무 대답도 아니 하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글쎄 이번엔 꼭 허락해라. 옛적 같으면 내가 억지로라도 벌써 작정했을 게다. 너도 또 한 번 보고 싶다면 오는 주일날 나하고 예배당에 가자. 그 집에서도 네가 보고 싶다면 예배당에서 보여주마고 하더라. 응!”
“하면 하지요, 무엇 보면 별한가요!” 하고 나는 뱉는 듯이 대답했다. 아버지는 기쁜 듯이
“무얼, 그럼 허락한단 말이냐? 웅, 약혼하잔?”
나는 아무 대답도 아니 했다. 그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는 기뻐 죽을 지경이었다.
“여보 유경이 어머니, 얘가 오늘은 허락을 하는구료! 그 구 장로 딸 말이야!” 하고 좋아서 야반을 쳤다. 나는 가만히 일어서서 내 방으로 건너왔다. 모르는 새 내 뺨으로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씻으려고도 아니 했다.
7월 19일
혼약은 성립되었다. 오늘은 주일인데 K(나와 약혼한 여자)를 처음 인사드리러 만나 보러 가는 날이다. 어제까지 비가 왔으나 오늘은 해가 쨍쨍 난다. 대동강은 물이 붉어지기는 했으나 열 자도 늘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 한강은 물이 사십육 척이나 불었다고 한다. 거리거리에 신문 지국 게시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기차 불통이라고 서울 신문들도 내려오지 않았다. 한 곳에서는 이렇게 죽는다 산다 하고 야단인데 여기서는 평안하다고 계집 찾아보러 다닌다. 이것이 아마 인생인가 보다.
K와의 면회는 참으로 우습고 부자연하였다. 오후 예배 필한 후 K의 집에서 했는데 입회인으로는 구 장로 부부와 중매의 공이 있는 이 권사 할멈, 그러고는 내 아버지였다. 사랑도 아니요 안방도 아닌 그 중간 방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을 때 K가 부모와 이 권사와 함께 들어왔다. 어머니 등 뒤로 숨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오는 그는 얼굴이 홍당무같이 빨개졌었다. 미상불 나도 벌게졌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리 부끄러워서! 자 장래 남편이 여기…….” 하고 이 권사는 버룩버룩하면서⁵⁵ 나를 그 여자에게 소개했다. K는 잠깐 나를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리고 저고리 고름만을 만적만적하고 있었다. 구 장로 부부와 내 아버지는 공연히 허허 웃었다. 아무도 K를 나에게 소개해주지 않았다. 모두 앉았다. 나는 좀더 가까이서 K를 해부해볼 기회가 있어서 기뻤다. 나는 슬금슬금 도적질하는 곁눈질로 그를 보았다. 멀거니 볼 때에는 그저 남자를 호리는 듯한 참만이 있더니 가까이서 보니 어딘가 역시 처녀다운 부드러운 맛이 있었다.
K는 확실히 미인이었다' 저런 미인이 내 아내인가 하고 생각하니 슬근히 기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나는, 이 자리에서도, 억 제하기 힘든 육욕의 발동뿐을 감했다.
수박 먹고, 이 권사가 기도하고 그리고 이 회견식은 끝났다. 결혼식은 좀 급하지마는 내가 학교로 다시 가기 전에 하기 위하여 8월 29일로 하기로 했다. 그래 예장은 때가 좀 부적당하나 간략하게 어서 보내기로 했다.
어머니는 벌써부터 분주스럽게 떠들고 돌아갔다. 밤에 자리에 누워서 나는 다시 K의 얼굴을 연상해 보았다.
‘한번 데리고 자고 싶은 것, 그리고 돈 많은 것.’ 이것이 과연 결혼의 요소가 되는가? 아! 나는 죄를 짓지 않는가?
내가 N을 잊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N에게 대하여 육욕을 품어본 적은 없다. 설혹 그가 어린애 재롱 보는 꿈까지 꾸었다 하더라도 사실로 N을 끼고 자보았으면 하는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지금도 없다. N의 얼굴을 보면 또 지금 그를 회상하면 그는 다만 내 눈 앞에 한 아름다운 천사 그다. 그저 그와 이야기해보고 싶고, 마주 보고 웃고 싶고, 끌어안고 고운 뺨과 눈에 입 맞추고 싶고, 이러고 내 모든 것, 내 몸, 내 영혼을 그를 위해 바치고 싶었을 따름이지 결코 지금 K를 볼 때처럼 육욕의 발동은 없었다. 말하자면 내가 N에게 대한 정은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였던가 보다. 그러나 K에게는 사랑이라는 정이 아니 간다. 다만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야비한 격동뿐을 K의 얼굴은 일으킬 따름이다. 내가 지금 K에게 구하는 것이 있다면, 또 장차 구한다면 그것은 야성적 육욕의 만족 그것뿐이다. 그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 우리가 결혼하여 행복될 것인가? 또 K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여간 오래 상종하노라면 좀더 고상한 사랑도 생기겠지!’ 하는 억지 발뺌을 되풀이하면서 나는 잠이 들었다.
7월 20일
밤 열 시가 지나서 W군이 술이 잔뜩 취해가지고 와서 주정을 한참 했다. 공연한 일을 트집을 잠아가지고 야단을 치던 끝에 “미인하고 약혼해서 행복되겠느니, 건방져졌느니” 하고 떠들어댔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래도 친구 체면으로 좋게 받아주었더니 차차 더 못되게 굴어서 마그막에는 할 수 없어서 뺨깨나 단단히 때려서 내쫓았다. W군은 울고불고 야단을 치면서 “네 이놈 보자!” 고함 고함 지르면서 쫓겨 갔다. 밤이 퍽 깊도록 마음이 불쾌했다.
7월 21일
아침에 W가 와서 “어젯밤에 술잔이나 마신 김에 실수하였노라”고 용서를 빌러 왔다. 좋은 말로 대답하고 한참 놀다 보냈다.
7월 22일
가보고 싶기도 하던 차에 어머님이 자꾸 권고하는 데 못 견디는 체하고 K를 보러 갔다. K는 유치원 방학한 후 집에서 놀고 있었다. 내가 K의 집에 간 때 K의 어머니는 곧 나를 K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K는 풍금을 타고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낯도 붉히지 않고 아주 구면인 듯이 인사했다. 그의 살짝 웃는 옆모습까지가 어떤 알지 못할 강한 매력으로 남자를 충동시켰다. K는 타던 풍금을 멈추었다. 그리고 ‘아직 타고 싶다’는 듯이 의자에 앉은 채로 발로 바람은 넣지 않고 그냥 건반만 여기저기 눌러보고 있었다. 나를 그리 반기는 기색도 없는 것같이 생각되어서 나는 비관했다.
“어서 타시지요” 하고 나는 그렇게 말해야 할 의무나 있는 듯이 말했다. K의 할머니가 명주나이⁵⁶ 하느라고 생때⁵⁷에 고치 피어 씌운 것과 가락꼬치⁵⁸를 들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찬미나 한 장 타보렴.”
“요거 뭐 풍금이 작아서. 글쎄 언제부터 큰 것 하나 사달라니까!”
“작으문 작은 대로 하지. 원 즈라리두!”
“풍금 살이 작아서 어려운 찬미는 못 타요, 글쎄. 살이 요것 배곱만 된대문, 그래도…….”
“그럼 두 번 누르렴.”
“하하 하하, 할마니두……”
나는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K는 허리가 부러질 듯이 웃고 나서 생생하면서 듣기도 싫은 감상적 일본 곡조를 타고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무엇 꺼리는 것이 있는 듯이 가만가만히 타더니 조금 만에는 아주 열중이 된 모양이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와도 나는 모릅니다’ 하는 듯한 것같이 생각되어서 나는 슬퍼졌다. 나는 흥을 잃고 멀거니 할머니가 명주실 뽑는 모양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좀, 원시적 인 감은 있으나 갈고리 달린 가락꼬치가 시들시들 늙은 손을 핑그르르 돌리면 그것이 팽글팽글 돌아감을 따라 길게길게 고운 명주실이 꼬아지는 것이야말로 화가의 한 폭 그림 재료가 넉넉히 된다. 갑자기 ‘馬鹿ニサレタ”⁵⁹ 한 생각이 나서 그만 “갑니다” 하고 모자를 집었다.
국수 사다 먹고 가라고 할머니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나는 그냥 나왔다. K는 잠깐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안녕히 가세요” 하고 차게 인사했다. 나는 그 인사는 대답도 아니 하고 나왔다.
무엇이라고 할 우스운 일인가? 나는 K를 사랑하지 않는다. 또 사랑할 수도 없다. K도 분명히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결혼은 장차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다시는 K의 집에 가지 않겠다. 기다리다 결혼한 후에 실컷 내 육욕이나 만족시켰으면 그뿐이다. 나는 내게서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더 요구하지 않는가?
K야! 나는 이렇게까지 타락했는가!
〔미완성 〕
2016년 4월1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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