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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7 (토) 민주당, 인천 계양을 ‘이재명 전략공천’… 분당갑엔 김병관
더불어민주당이 새달 1일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인천 계양을 재보궐 선거에 지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상임고문을 전략공천했다. 민주당 비대위는 5월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회의 끝에 이재명 상임고문을 인천 계양을에 전략공천하기로 결정했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최근에 지도부가 이재명 상임고문에게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 직접 출마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것에 대해서 이재명 후보도 동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비대위회의에서는 비대위원 차원의 찬반 의견 개진이나 표결 절차는 없었다고, 고용진 대변인은 덧붙였다.
당 지도부는 이와 함께 오는 5월 11일 출범하는 당 선거대책위원회의 총괄 상임선대위원장을 이재명 상임고문에 맡기기로 했다. 이재명 상임고문이 지방선거 선수로 직접 뛰면서 전국 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당 안팎의 요구를 지도부가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출마하는 성남 분당갑에는 벤처기업인 출신인 김병관 전 의원이 공천됐다. 김병관 전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분당갑 국회의원을 지냈다.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6월 1일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인천시 계양을 보궐선거에 지난 20대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상임고문을 전략 공천하면서 인천지역 정가가 요동치고 있다. 특히 민주당에선 "시너지 효과가 폭발할 것"이라며 환영한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별다른 연고가 없는 전력공천으로 국민 정서를 무시한다"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5월 6일 지역정가에 따르면 인천시 계양을 보궐선거가 오는 6월 1일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다. 이번 보궐선거는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된 송영길 전 대표의 사퇴에 따른 것이다.
인천 계양을 선거구는 송영길 전 대표가 16·17·18·20·21대 총선에서 내리 5선 의원을 지낸 민주당의 대표적 우세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인천 계양구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고문이 52.31%(10만532표)를 득표해 43.52%(8만3638표)를 얻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8.79%(1만6894표)차로 승리한 곳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이재명 고문의 전략 공천으로 수도권 유권자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모양새다.
지난 5월 3일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박성민 인천시의원은 "언제나 경선을 원하고 기다리는 입장이었다"면서도 "중앙당에서 경선 없이 이재명 고문을 전략공천하는 상황을 이해한다"고 말했다.김성준 인천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은 "이재명 고문의 시너지 효과가 폭발적일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인천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들도 이재명 고문을 중심으로 열심히 뛰겠다"고 강조했다.
남궁형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은 "개인의 이로움이 아닌 국민과 시대적 소명을 안고 출마한 이재명 고문을 적극 환영한다"면서 "지방정부 단체장 후보들도 이재명 고문의 유능함을 동력 삼아 함께 나가겠다"고 전했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이재명 상임고문 전략공천 소식에 국민 정서를 무시하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최종수 국민의힘 인천시당 대변인은 "별다른 연고 없는 계양을에 이재명 고문을 전략 공천하는 것은 국민적 분노를 더욱 자극, 민주당의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고문은 어떻게 해서라도 방패삼을 만한 금배지를 손에 넣겠다고 마음먹어서는 안 된다"면서 "금배지가 필요하면 국민들 앞에 당당하게, 연고가 있는 분당갑으로 출마하라"고 비난했다. 정의당은 이재명 고문의 계양을 전략공천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정미 인천시장 예비후보는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로 치러지게 된 만큼 민주당의 당헌·당규에 따라 무공천 할지는 민주당의 선택"이라며 "선택에 따른 시민들의 평가에 책임을 질 일"이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안철수, 성남 분당갑 출마… 커지는 보궐선거판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5월 6일 경기 성남 분당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6·1 지방선거와 동시에 열리는 이번 보궐선거에 안철수 위원장을 비롯해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차출설에 힘이 실리면서 판이 커지고 있다. 안철수 위원장은 5월 6일 오후 인수위 해단식에 앞서 수원에서 열리는 경기도 지역정책과제 국민보고회 행사장을 방문해 축사를 한다. 안철수 위원장 측 관계자는 5월 5일 "이번 축사는 안철수 위원장의 공식적인 마지막 인수위 일정"이라며 "행사 후 보궐선거 출마 여부에 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위원장은 그간 인수위 활동을 이유로 출마 관련 언급을 아껴왔다. 다만 국정과제 발표 이후 해단식만 남은 만큼 출마 여부와 관련해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향후 당권 도전을 위해서도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게 필요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고, 이에 안철수 위원장 주변에선 "사실상 출마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경기 성남 분당갑은 안철수 위원장이 창업한 안랩이 위치해 있어 인연이 없지 않다. 또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민의힘의 대표적인 텃밭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에선 박민식 전 의원 등이 출사표를 던진 상태이지만, 안철수 위원장이 출마할 경우 '공동정부 파트너' 예우 차원에서 전략공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염두에 둔 듯 국민의힘은 지난 5월 4일 보궐선거 후보자를 추가 공모키로 했다. 한편, 민주당에서 차출론이 커지고 있는 이재명 전 대선후보와 안철수 위원장의 빅매치 성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성남시장·경기지사를 역임한 이재명 전 후보는 현재 경기 성남 분당갑이나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로 공석인 인천 계양을에 대한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윤석열 대선 승리 '일등공신'… 2030 민심이 흔들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바라보는 2030세대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는 기간임에도 2030세대 사이에서 윤석열 당선인 지지율은 40%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 2030세대는 전통 보수층인 6070세대와 함께 윤석열 당선인의 대선 승리를 견인한 신(新) 지지층으로 꼽혔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과정의 소통 부족, 새 정부 초대 내각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의 ‘부모 찬스’ 논란, 2030 맞춤형 공약 파기 등 때문에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이들의 기대가 식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1 지방선거를 앞둔 윤석열 당선인 측과 국민의힘은 뒤늦게 ‘집토끼 붙들기' 총력전에 나섰다.
◆ 30대의 34%만 “尹, 직무수행 잘하고 있다”
이달 5월 2~4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사가 함께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30대 응답자 사이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국정수행을 잘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은 52%에 달했다. "잘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41%)보다 11%포인트 높았다. 20대에서는 긍정적 전망(47%)과 부정적 전망(48%)이 비등해 대선 전보다 기대가 꺼진 것으로 나타났다. 50, 60대와 70세 이상에서 긍정적 전망이 60%를 넘은 것과 대조적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국정수행 전망 조사엔 새 정부 기대감이 반영돼 실제 여론보다 후하게 나온다”며 “2030세대의 국정 기대감이 50%에도 못 미치는 건 이례적”이라고 했다. 지난달 4월 25~29일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수행에 대한 20대의 부정적 전망은 50.9%로, 긍정 전망(40.2%)보다 10.7%포인트 높았다. 30대에서는 긍정 전망(49.1%)이 부정 전망(44.5%)과 비슷했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1주(4~8일)부터 4주(25~29일)까지 매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윤석열 당선인 지지율은 45.0→47.9→43.3→40.2%로, 하향세다.
윤석열 당선인의 직무를 평가하는 조사 결과는 더 박하다. 지난달 4월 26~28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30대의 46%가 "윤석열 당선인이 직무수행을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잘하고 있다"는 34%에 그쳤다. 20대에서도 "잘못한다"(48%)가 "잘한다"(41%)보다 많이 꼽혔다. 윤석열 당선인은 60대 이상 장년층 지지세에 2030 표심을 더하는 '세대포위론'을 앞세워 대권을 잡았다. 지상파 3사의 대선 출구조사를 기준으로 윤석열 당선인은 20대에서 45.5%, 30대에선 48.1%를 득표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2030세대 득표율이 30%대 초반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윤석열 당선인의 2030세대 동원 전략은 효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2030의 ‘윤심(尹心)’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 尹, 공정의 화신 자처했는데… ‘아빠의 힘’ 내각 비판
배경은 여러 가지다. 먼저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직후 ‘1호 과제’로 추진한 집무실 이전부터 호응을 얻지 못했다. 3월 22~24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20대의 57%, 30%대의 63%가 ‘청와대 유지’ 입장을 밝히는 등 반대 여론이 거셌지만, 윤석열 당선인이 이전을 강행하며 ‘독선 이미지'가 강화됐다. 여기에 ‘부모 찬스’ 등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 인사를 둘러싼 불공정 의혹이 결정타가 됐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문재인 정부가 싫어 윤 당선인을 선택한 중도 성향의 2030들이 흔들리고 있다. 공정과 상식의 회복이라는 기대감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여성가족부 폐지’와 ‘병사 월급 200만 원 인상’ 등 주요 공약에 대해 유예 또는 재검토 결정을 내린 것은 핵심 지지층인 2030 남성의 이탈을 부채질했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2030의 지지세가 흔들리는 단계는 아니다”면서도 “인수위가 핵심 공약을 철회하며 배경을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는 등 대응 방식이 우려된다”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윤석열 당선인 대변인실 등이 5월 5일 "여가부 폐지와 병사 월급 200만 원 인상 공약을 추진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낸 것은 지지층 달래기 차원이다.
◆ 손실보상 공약 파기 논란… 심상찮은 자영업자 민심
국민의힘에선 윤석열 당선인의 또 다른 지지기반인 자영업자 여론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 출구조사 기준 윤석열 당선인의 자영업자 득표율은 50.9%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46.9%)를 4%포인트 앞섰다. 소상공인 1곳당 방역지원금 600만 원 일괄 지급, 총 50조 원 규모의 손실 보상하겠다는 공약이 주효했다. 최근 인수위가 ‘차등 지급’ 방침을 밝히면서 소상공인ㆍ자영업자 사이에서는 “희망고문만 당했다”는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예상보다 소상공인 반발이 더 거세다”며 “새 정부 출범 이후 발표될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기대에 못 미치면 민심 이탈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4월 25~29일 리얼미터 조사에선 자영업자의 54.6%가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수행을 긍정 전망(부정 42.0%)하는 등 여전히 기대를 품고 있지만, 언제든지 수치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박헌영의 아들이다"'… 박헌영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예? 신륵사 주지요?" 1987년 원경은 신륵사 주지를 맡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받자, 원경은 4년 전 일이 생각이 났다. 4년 전, 원경은 신륵사를 비롯한 경기도의 많은 절들을 관장하는 조계종 제2교구의 본사인 용주사 주지를 맡으라는 송담 스님의 지시를 거부했지만, 용주사 주지설이 소문이 나면서 이를 질시한 동료 승려들로부터 "빨갱이 새끼 중"이라는 비방까지 당했다(46회. '빨갱이새끼중' 참조). 그리고 1983년 안성에 있는 작은 절인 청룡사의 주지로 내려왔다.
원경은 청룡사에서 수련을 하며 심심하면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전설적인 여자 남사당 우두머리 바우덕이의 사당을 오가며 지냈다. 바우덕이는 안성남사당에 속한 미모의 예인으로 여성으로는 드물게 남사당의 우두머리가 됐고 그 탁월한 능력이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 대원군이 경복궁 건설에 동원된 공역자들과 백성들을 위한 공연을 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의 공연에서 신명이 얻은 사람들은 공사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고 이에 대원군은 당상관 정삼품 벼슬을 내렸다. 한국 최초의 전국적인 여자 대중스타였던 셈이다. 1985년 이후에는 청룡사 이외에도 역사문제연구소 일에 몰입하고 있었다. 헌데 갑자기 요직 중의 하나인 신륵사 주지로 발령이 난 것이다.
여주에 위치한 신륵사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유서 깊은 절로 신도수가 많은데다가 산속에 있는 대부분의 절과 달리 남한강가의 평지에 위치해 경치가 기가 막하고 서울에서 가까워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알짜배기 절'이었다. 신륵사 주지가 된 뒤 원경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아다녔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방황을 끝냈고 아버지의 복수에 대해서도 마음의 평정을 얻었고 어머니 문제도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군 정보기관, 안기부의 조사를 거쳤고 절 동네의 색깔론도 다 겪고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밖으로도, 1987년 민주화가 되면서, 예전 같은 공개적인 억압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원경은 타고난 리더십과 친화력으로 절을 키웠다. 덕원스님을 첫 상좌(제자)로 받아들인 것도 이 때였다. 특히 그는 신륵사의 안정적인 재정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로 만들었다. 운동권과 민주화운동 진영에서 그의 밥과 술을 얻어먹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신화가 생겨난 것은 특히 이 시절이다. 이를 넘어서 그는 보수진영의 사람들과도 많이 교류했다. "제가 어려서부터 산속에 혼자 버려져 한산스님 오기를 기다린 기억이 남아 있어 해가 넘어갈 때면 사람이 그리워져 사람들을 모아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의 마당발 저녁모임에는 이 같은 슬픈 사연이 숨어 있다. 그는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또 다른 슬픈 사연을 풀어놓았다. "제가 대식가인 데다가 식탐이 있어 절대 음식을 안 남깁니다. 워낙 지리산에서 못 먹고 살아서 한이 되어서요."
1987년 이후, 신륵사는 '운동권 인사들의 사랑방'이 됐다. 1987년 민주화된 분위기로 운동권의 공개적인 모임이 많아졌는데, 서울서 가깝고, 공기 좋고, 경치 좋으며, 주지스님까지 친운동권인 화끈한 원경스님이니 신륵사는 최고의 모임 장소였다. 주말이면 운동권인사들의 신륵사 모임이 이어졌다. 1988년 유학에서 돌아와 나 역시 그런 모임에 참석했다. 새로 창간한 진보잡지 <사회평론> 관계자들이 모임으로 원경스님과 가까운 유홍준 교수가 준비 중이던 <나의 문화답사기>의 자료들과 김홍도의 희귀 춘화 슬라이드 특강으로 흥을 돋웠다.
"손 박사, 인사하세요. 원경스님이시니." 운동권 선배인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원경스님에게 나를 소개했다. "스님 처음 뵙겠습니다. 정치학을 공부한 손호철입니다." "아, 원경입니다. 지금 어디서 가르치시지요?" "유학에서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보따리장사(시간강사)'입니다." "아 그러세요? 조만간 좋은 소식 있을 것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1988년 유학에서 돌아온 나는 이 때 이렇게 원경스님을 처음 봤다. 특강이 끝나자, 스님은 참석자들을 가까운 동네 맛집으로 데려가, 진하게 대접을 해줬다. 그런 가운데서도, 원경은 조용히 <이정 박헌영전집>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스님, 식사 중에 갑자기 어디 갔다 오셨어요?" 985년 12월 15일 원경스님은 광주에서 황석영 작가를 비롯한 재야운동권 인사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참 술잔이 돌고 있는데, 어느 순간 원경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원경은 두 시간이 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배낭을 뇌두고 간 것을 봐서는 가버린 것은 아닌데 어디로 간 것인지, 모두들 궁금해 했다. 원경은 근 세 시간이 지나서야 문을 열고 나타났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니 광주에 애인이라도 있습니까? 말로 안 하고 갑자기 사라졌다 오시니." 이실직고하세요." 원경은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다. 언제까지 모든 이야기를 숨기고 살 것인가? 이 사람들 정도라면 까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원경은 눈을 뜨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중에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조선공산당 당수였던 이정 박헌영 선생님이 제 부친입니다."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었던 만큼 자리는 물을 끼어 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시겠지만, 이정 선생님이 오래전에 북한에서 사형을 당하셨습니다. 헌데 처형당한 날짜는 잘 모르겠고 사형을 선고받은 것은 1956년 12월 15일입니다. 그래서 매년 12월 15일이면 제가 선생님 제사를 드려왔습니다. 헌데 오늘 같이 모임이 있는 날은 소문을 내기도 뭐해서 몰래 빠져나가 혼자 가까운 절을 찾아가 제사를 지내드리고 옵니다. 오늘이 12월 15일이니, 기일이라, 제가 잠깐 제사를 지내고 왔습니다."
"아니 스님, 그런 사연이 있으면, 여차여차하다고 이야기를 하셨어야지요. 그러면 같이 가서 함께 제사를 지내드렸지요. 여러분, 안 그래요?" "그럼요, 같이 지내드려야지요." 여기저기서 같은 의견이 이어졌다. "말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원경은 이때부터 그전까지 한산스님과 함께 지냈고 한산스님이 잠적한 뒤에는 혼자 지내던 이정 선생님의 제사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됐다. 1991년 소련 동구의 몰락으로 러시아 여행이 가능해지자, 원경은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보고 배다른 누이 비비안나를 만나보기 위해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거기서 만난 전 북한 외무성 차관 박길룡 씨로부터 1957년 7월 19일 김일성이 소련 순방에서 급히 귀국해 박헌영을 처형하라고 지시해 그날 처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원경은 이정 제사일을 7월 19일로 바꿨다.
"원경스님 맞으시지요?" "맞습니다만…" "저는 김기팔이라는 방송작가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제가 '제1공화국' 등 선생님 드라마 팬입니다." "그러세요?" "예, 한데 무슨 일로 빈승을 찾아오셨습니까?" "동아건설 최원석 씨의 동생인 최원용 씨가 시사주간지와 영화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영화사는 영화를 만들어 방송국에 팔 예정인데 첫 작품으로 박헌영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 예정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됐다고는 하지만 이는 충격적인 계획으로 원경은 놀랐다.
"저희가 듣기에 스님이 박헌영 선생의 자제분이라고 하더군요. 스님께서 상하이, 모스크바 등 박헌영 선생의 행적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다큐를 만들까 하는데 도와주시지요?" "이정 선생님을 재조명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제가 공개적으로 나서기는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가요? 그러면 출연은 못 하시더라도, 제작 과정에서 스님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주시고 자료도 좀 챙겨주시고 했으면 합니다." "그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정 선생님의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하니 원경은 '드디어 한산스님이 이야기한 좋은 때가 왔는가 보다'며 기뻐했다. 이후 원경은 김기팔이 박헌영 다큐의 각본을 제작하는 것을 도왔다(이 다큐멘터리는 각본을 완성했지만, 김기팔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시사저널>이 여러 문제에 부딪치면서 제작되지 못했다며 원경스님은 안타까워했다.). "저는 <시사저널>이라는 주간지의 창간 준비팀의 박상기 기자입니다."
어느 날 이 같은 작업에 한 기자가 따라와 인사를 했다. 최원용 씨가 영화사와 함께 만든다는 시사주간지 팀이었다. 박 기자는 박헌영 다큐 각본 작업을 따라다니며 여러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스님, 다큐는 다큐고, 저희 창간호에 인터뷰를 하시지요. 언제까지 숨어서 사실 것입니까? 이제 세상도 변했으니 스님이 박헌영의 아들이라는 것을 떳떳하게 밝히시지요." 너무 갑작스러운 제의라 쉽게 판단할 수가 없었다. "스님, 해주십시오." "시간을 주시기 바랍니다. 쉬운 문제가 아니라 생각을 좀 해보고요. 생각해보고 연락하겠습니다."
결국 원경은 인터뷰에 응했다. 원경은 1989년 10월29일자 <시사저널> 창간호에 박상기 기자가 쓴 "나는 박헌영의 아들이다"라는 인터뷰 기사를 통해 대중적으로 처음 박헌영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커밍아웃했다. 이후 원경은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특히 1997년에는 역사문제연구소를 통해 준비 중인 <이정박헌영전집>의 일환으로 윤해동 박사와 자신의 삶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어머니 정순년의 삶에 대한 구술과 배다른 누이 박비비안나의 회고록을 <역사비평> 1997년 여름호에 실었다. 2001년에는 인터넷 잡지 <퍼슨 웹>과 인터뷰를 했다. 한참이 흘러 2013년에는 진보언론인 손석춘 기자(현 건국대 교수)가 인터뷰를 통해 박헌영과 원경의 삶을 회상하는 <박헌영 트라우마>를 출판했다. …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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