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보다 더 사나운 것에 시달린 사람들
예기(禮記) 단궁(檀弓) 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가 태산의 곁을 지나가는데, 한 부인이 무덤 앞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 앞의 손잡이를 잡고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고
듣더니, 제자 자로를 시켜서 그 연유를 물어보게 하였다.
“부인의 곡하는 모습을 보니 무슨 큰 근심이 있는 듯합니다.”
이에 부인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오래전에 저의 시아버님이 범에 물려 죽었습니다. 그
후에 남편도 또 범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까지
범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가 물었다.
“그러면 이렇게 무서운 곳을 왜 떠나지 않습니까?”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이곳에 살고 있으면 가혹한 세금과 징벌에 시
달릴 걱정은 안 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 뼈저리게 느끼는 바가 있어, 함께 따라온 문
인(門人)들에게 말을 건넸다.
“제자들아 잘 명심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도 더 사납다는
것을.”
가혹한 정치가 끼치는 해독을 호환(虎患)에 비유한 이야기로, 이른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고사성어가 생기게 된 연유담이다. 가렴
주구(苛斂誅求)에 시달리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정치란 두말할 것도 없이,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그 마음을 편
안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백성을 다스린다는 위정자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수탈하고 괴롭히어 자신들의 사욕
을 채우고, 자신들의 향락을 위한 도구쯤으로 여기는 슬픈 역사는 고래
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관리가 되는 것이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고, 또 그것을 유지하고 더
욱 그것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윗사람에게 아첨하며 상납하는 폐습이 자
연히 생기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돈으로 벼슬을 사게 되는 일까지 벌어
지게 되었다.
없었으면 좋았을 이러한 일들이 우리의 지난날에도 버젓이 존재하였
으니, 부끄러운 일이지만 현재를 바르게 다지고 미래를 경계하는 뜻으
로, 이와 관련된 이야기 몇 가지를 더듬어 본다.
먼저 부패한 당대 현실을 풍자한 이규보(李奎報)의 주뢰설(舟賂說)을
보자.
내가 남쪽으로 어떤 강을 건너가는데, 배를 나란히 하고 건너는
사람이 있었다. 두 배의 크기도 같고, 사공의 수도 같으며, 타고 있
는 사람과 말의 수도 거의 비슷하였다. 그런데 조금 가다가 보니, 저
쪽 배는 떠나가기를 나르는 듯이 달아나서 벌써 서쪽에 닿았는데, 내
가 탄 배는 오히려 머뭇머뭇하며 나아가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으니
배 안에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저 배에는 사공에게 술을 대접하여
서 사공이 힘을 다하여 노를 젓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퍽이나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이에 탄식하기를, ‘이 조그마한
갈대잎과 같은 배가 가는 데에도 오히려 뇌물이 있고 없는 데에 따
라, 빠르고 느리며 앞서고 뒤서는 것이거늘, 하물며 벼슬길에서 경쟁
하는 마당에 있어서 내 손에 돈이 없으니, 오늘까지 하급 관리 자리
하나도 얻지 못한 것이 당연하구나.’ 하였다.
뇌물을 얻어먹은 뱃사공은 배를 잘 저어 빨리 가는데, 그렇지 못한 사
공은 게으름을 피워 배에 탄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 사실에 빗대어, 뇌물
을 바치지 않으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작은 벼슬 하나 얻지 못하는 썩
어빠진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뇌물을 갖다 바치고 벼슬을 산 사람은, 시쳇말로 본전을 뽑기 위해 탐
관오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렇게 타락한 현실을 서거정은 ‘돼지가 삼킨 폭포[猪喫瀑布 저끽폭
포]’란 글에서 여실히 비꼬고 있다.
한 조관(朝官 조정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는 신하)이 일찍이 진
양(晋陽) 고을의 수령이 되었다. 그는 가렴주구가 심하여 비록 산골
의 과일과 채소까지도 그대로 남겨 두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절간의
중들도 그의 폐해를 입었다. 하루는 중 하나가 수령을 찾아뵈었더니,
수령이 말하기를, ‘너의 절에 있는 폭포가 좋다더구나.’ 하였다. 폭포
가 무엇인지 몰랐던 그 중은 그것이 무슨 물건인 줄로 알고, 그것을
세금으로 거두어 가려고 하는가 싶어, 두려워하여 대답하기를, ‘저의
절의 폭포는 금년 여름에 돼지가 다 먹어 버렸습니다.’라고 하였다.
강원도 한송정(寒松亭)의 경치가 관동지방에서 으뜸이었으므로, 양반
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말과 수레가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고을 사람
들은 그들을 접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푸념하
기를, ‘저 한송정은 어느 때나 호랑이가 물어갈까.’ 하였다. 어떤 시인이
이를 두고 두어 구의 시를 지었다.
폭포는 옛날에 돼지가 먹어버렸네만
한송정은 어느 때에 호랑이가 물어갈꼬.
돼지처럼 달려들어 빼앗아 먹어 치우고 호랑이처럼 맹렬하게 물어가는
벼슬아치들의 시달림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러한 수탈로 인한 피폐한 삶은 정래교(鄭來僑)의 ‘농가의 탄식[農家
歎]’에 더욱 진하게 나타나 있다.
뜨거운 햇볕 아래 김을 매어 서리 내릴 때 거두건만
홍수 가뭄 거친 뒤라 얼마나 거둘는지
등불 아래 실을 켜고 닭 울 때까지 베를 짜며
온종일 애를 쓰도 겨우 두어 자
세금으로 바치고 나면 몸에 걸칠 옷이 없고
빌린 곡식 갚고 나면 입에 넣을 낟알 없네
거센 바람에 지붕 다 벗겨지고 산에는 눈 쌓였네
지게미와 겨죽마저 배불리 못 먹고 소삼장 덮고 자네
백골징포(白骨徵布)는 어찌 이리도 혹독한지
이웃의 일족 모두 화를 당했다네
아침저녁 채찍질로 세금 독촉당해
앞마을 사람 달아나 숨고 뒷마을엔 통곡 소리
개와 닭 다 팔아도 빚 갚기엔 부족한데
사나운 관리 토색질하니 그 돈 어찌 구할꼬
아비 아들 형제도 모두 구하지 못하고
피골이 상접하여 차가운 감옥으로 간다네
18세기의 충청도의 한 농촌을 직접 보고 쓴 것이다. 수확하거나 생산
한 것도 없는데, 깡그리 빼앗아 가 버려 마냥 굶주림에 떠는 농민의 참상
이 눈에 선하다. 특히 죽은 사람에게까지 구실을 붙여 군포(軍布)를 부과
하는, 이른바 백골징포라는 희대의 학정에 시달리는 농민의 삶이 비참하
기 이를 데 없다.
이러한 처절한 모습은 19세기 관북 지방의 실상을 직접 그린 조수삼
(趙秀三)의 북행백절(北行百絶)이란 글에도 여실히 나타나 있다.
가을에 열 말 알곡을 바치고는
봄에 다섯 말 쭉정이 가져온다네
힘들여 생산한 것 모두 어디로 갔나
날마다 관리들 창자 채우는 데 들어갔네
백성들의 알곡을 받아 가서 쭉정이로 그 반만 주는 수탈로 인하여 굶
주림에 시달리는데, 반대로 벼슬아치들은 고깃국 먹으며 배에 기름기를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백성들의 참상은 19세기 초반을 살았던 다산 정약용의 애절
양(哀絶陽)이란 시에서 그 극치를 본다. 애절양이란 말은, 자신의 성기를
칼로 자르는 애절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산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노전(蘆田)이란 곳의 한 백성이, 낳은 지 사흘밖에 안 된 아이가
군적에 등록되고, 이를 빌미잡아 군포의 대가로 소를 빼앗아 가자, 아이
를 낳은 것이 죄라고 자탄하고는, 스스로 칼을 뽑아 자신의 생식기를 자
르는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시로 쓴 것이다.
갈밭 마을 젊은 아낙 오래오래 슬피 우네
관문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통곡하네
전쟁 나간 남편 돌아오지 못한 일이야 있을 법도 하지만
스스로 남근 절단했다는 소리 예부터 들은 적 없네
시아버지 삼년상 이미 지났고
갓난아이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삼대(三代)의 이름이 군적에 실리다니
달려가서 하소연하려 해도
범 같은 문지기 버티어 섰고
관리는 호통치며 하나 남은 소마저 끌고 갔네
남편 문득 식칼 갈아 방안으로 뛰어들어
선혈이 자리에 낭자하네
스스로 한탄하기를 아이 낳은 죄로구나
여기서도 죽은 사람에게까지 세금을 부과하는 백골징포의 악습이 나타
나 있다. 오죽 답답했으면 자신의 성기까지 자르는 자해를 행했겠는가?
이러한 관리들의 수탈과 그로 인한 백성들의 참담한 모습은, 구한말
우리나라를 여행했던 외국인의 눈에도 비취어 있다. 영국의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가 1894년 2월에 처음으로 입국하여, 그 후 4
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한국을 드나들며 견문을 기록한, 『한국과 그 이
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이란 책에 그러한 면면
이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은 게을러 보인다. 나는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인들이 자기 노동으로 획득한 재산이 전혀 보호되지 못
하는 체제 아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만일 어떤 사람이 돈
을 번 것으로 알려지거나, 심지어 사치품인 놋쇠 식기를 샀다고 알려
지기만 해도, 근처의 탐욕스러운 관리나 그의 앞잡이로부터 주의를
받게 되거나, 부근의 양반으로부터 대부를 갚도록 독촉당하는 식이
었다.
만일 한 사람이 얼마의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면 관리는 그것을
빌려달라고 요구한다. 그것을 들어주면 빌려준 사람은 원금 또는 이
자를 결코 받지 못한다. 만일 상환을 요구하면 그는 체포되어 조작된
죄목에 의해, 부과된 벌금 때문에 투옥되고 자신이나 친척이 관리들
이 요구하는 금액을 낼 때까지 매를 맞는다.
기가 찰 노릇이다. 돈을 벌어 보았자 다 빼앗기고 오히려 고초만 당한
다는 것이다.
비숍 여사의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혐오스럽고 실망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게으르다’라는 말이 나오고, 심지어 ‘야만스럽다(barbaric)’,
‘인간쓰레기(the dregs of humanity)’ 라는 극언까지 쓰고 있다. 그러
나 한국의 실정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이 땅의 백성들이 결코 게으른 민
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엇을 생산해 봐야 관리나 양반들에
게 그것을 빼앗기기 때문에, 아예 게으를 수밖에 없었던 실상을 간파한
것이다.
더욱이 이 땅에서 살 수가 없어 간도 지방으로 쫓겨 간 사람들이, 그
곳에서 땅을 억척같이 개간하는 근면성을 보고는, 그것을 확신하면서 다
음과 같이 쓰고 있다.
여행자들은 한국인의 게으름에 많은 느낌을 가진다. 그러나 러시아령
만주에서의 한국인들의 에너지와 근면함, 그리고 그들의 검소하고 유족
하고 안락한 집의 가구들을 보고 난 후에, 나는 그것이 기질의 문제로 오
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가난
이 그들의 최고의 방어막이며, 그와 그의 가족에게 음식과 옷을 주는 것
이외에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탐욕스럽고 부정한 관리들에 의해 빼앗
길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한국인이 게으른 것은 자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노략질을 일삼는
관리들 때문에 빚어진 방어 수단이라는 것이다. 탐관오리가 없는 간도에
서,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부지런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민
족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글을 읽으면서, 그의 예리한 관찰력에 새
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에 치미는 한숨을 몰
아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을 목민관 즉 백성을 기르는 관리라 우리는 부
른다. 이 땅의 벼슬아치들은 ‘백성 기르기’는 그만두고라도, 차라리 순박
한 그들을 건드리지나 말고 가만히 있게만 했었더라면, 그들은 스스로
타고난 근면성을 발휘하여 서로 아끼고 도우며 잘 살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도 바로 여기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은 똑똑할 뿐만 아니라 열정을 지니고 있는 우수한 민족이
다. 우리말에 ‘신난다, 신명 난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민족은 마음만 맞
으면 신나게, 신명 나게 열을 내어 뛰고 일하는 민족이다. 쓸데없이 이
래라저래라 간섭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기분만 맞
추어 주면, 말 그대로 신이 나서 주어진 목표를 향해 뛰어가는 민족이다.
전후의 폐허에서 일어나, IT 강국으로 대변되는 경제 대국을 만들어 낸
것도 모두가 그러한 열정 때문이다.
지도자가 된 사람은 그러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잊지 말고, 그들을
아끼고 늘 감사히 여기는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훌륭한
치자(治者)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규보는 ‘잃었던 산길을 찾다[尋山迷路 심산미로]’ 라는 시에서 이렇
게 읊었다.
날이 저물어 산골 오두막집 찾다가 방향을 잃고
걷는 발길이 거칠고 우거진 숲 속에 떨어졌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문득 나무꾼이 낸 오솔길 만나니
재삼 나무하는 늙은이에게 감사한 마음 가눌 길 없네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문득 나무꾼이 내놓은 오솔길을 만난
덕분에 그 길을 따라 미로를 벗어나니, 그 나무꾼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
음이 든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나무하는 늙은이는 백성을 상징한다. 나
무꾼이 낸 길 즉 백성의 마음을 따라 길을 가며, 길을 내준 백성의 뜻을
존중하고 감사히 여기는 항심(恒心)을 지도자는 잃지 않아야 한다. 바라
건대, 우리에게도 이렇게 유덕한 지도자들만 줄줄이 이어져 나와 날로
312 선비와 지식인의 대화
번영하는 나라가 되고, 다시는 이 땅에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못된
관리는 한 사람도 나오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