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으로 생활비와 검정고시 학원비를 벌던 시절. 밥값이 없어 저녁을 거의 굶을 때가 많았다. 어느날 저녁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주머니에 동전 400원 밖에 없었다.
매일 집으로가는 길목에 포장마차에 들러 어묵 한 개 사 먹고, 국물만 열번이나 더 떠 먹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지.. 아주머니가 어묵을 열 개나 더 주었다.
"어차피 퉁퉁 불어서 팔지도 못하니까 그냥 먹어요." 허겁지겁 먹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그 후(後)에도 퉁퉁 불어버린 어묵을 가끔 거저 얻어 먹곤 했다.
그때 나는 아주머니께 나중에 능력이 생기면 꼭 갚아 드린다고 말했다.
이후 군대(軍隊)를 제대하고 대학교도 졸업하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대기업(大企業) 인사과에 취직이 되었다.
아직도 그 포장마차가 그 곳에 있을까 싶어 찾아가 보았다. 6년 만이었다.
여전히 장사를 하고 계셨다. 그런데 아주머니 옆에 아들이 함께 있었는데, 다리를 심하게 저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장애인이라 마땅한 취직(就職) 자리가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아주머니가 안쓰러웠다.
마침 우리 회사는 장애인을 전문으로 채용하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급여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학자금도 보장되는 회사였다.
당장 회사 부장님께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부장님은 흔쾌히 입사를 승낙해 주었다.
아들이 채용되자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 하셨다. "이 은혜(恩惠)를 어떻게 갚죠?
나는 대답했다. "제가 먼저 빚 졌잖아요. 그걸 갚았을 뿐인 걸요."
나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는 일이 그 분에게는 절실한 일이 될 수 있었고,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게 그 분들께 필요하지 않기도 합니다.
하찮은 당신의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일생 일대에 보은의 가치를 가집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퉁퉁 불어 팔수도 없는 어묵국물 한컵이 그렇게 큰 고마움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꽃 한송이, 물 한모금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따스한 사랑의 눈으로, 따스한 마음의 눈으로 작은 일에 감동할 줄 알고, 작은 일에 감사와 베품의 소중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마음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감사와 소중함을 생각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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