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0. 큐티
전도서 4:1 ~ 6
해 아래서 행하는 학대
관찰 :
1)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학대
- 1절.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 솔로몬은 막강한 권세를 가진 왕이었다. 그런 솔로몬이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본이 되는 것이다. 권세 잡은 자가 학대 받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임을 안다면 남들을 학대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억울함을 당한 자의 깊은 탄식을 살펴 신원하여 줄 것이다. 그러나 해 아래서 행해지는 학대에는 위로자가 없고, 그들의 눈물을 신원하여 줄 자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전제는 “해 아래”이다. 즉,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없는 곳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그러한 압제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것이고, 위로가 되시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심을 솔로몬은 전제하고 있다. 도움받을 길이 없는 절망적인 처지의 학대 받는 자들의 위로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 2절 ~ 3절.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 솔로몬은 불의한 압제를 받는 고통스러운 삶이 죽음보다 못하다고 말하고 있다. 부조리한 인생의 현실은 허무할 뿐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의 인생의 모습을 깨달았기에 자신이 압제 받는 자가 아닌 권세자이면서도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이다.
2) 이웃에게 받는 시기
- 4절.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 인간이 받는 시기, 질투로 인한 인생의 허무를 말하고 있다. 수고하고 자신의 재주를 열심히 연마하지만, 그 수고와 재주가 시기로 인해서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허탄한 상황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또한 전도자인 솔로몬이 보는 허무함이다.
- 5절.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 이것은 4절에서 이어지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행하는 수고와 재주를 시기하고 질투할 뿐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를 솔로몬은 우매한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기 몸을 축내어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인생 속에서 타인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들의 그 행위 역시 헛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 6절.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 “두 손에”의 “손”은 “חוֹפֶן”(호펜)으로 가능한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하여 오므린 손으로 주먹을 뜻한다. “한 손에만”의 “손”은 “כַּף”(카프)로서 약간 오목하되 거의 평평하게 펼친 손바닥을 의미한다. 즉 주먹을 쥐는 손(호펜)은 물질에 대해 욕심을 내는 것을 의미하고, 손바닥을 편 손(카프)은 재물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는 평온함을 의미한다. 지나친 과욕이나, 지나친 게으름을 배격하는 절제된 중용의 삶을 권고하는 말이다. 즉, 사람이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살면서 너무 지나치게 많이 취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의 적당량을 취한 상태에서 욕심이 아닌 평안을 취할 것을 말하고 있다.
가르침 :
1) 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학대는 고통스러운 것이며 구제받을 길이 없다. 솔로몬 자신이 권세자로서 압제 받는 자의 입장에 서 본적이 없지만, 그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돌이키고, 인생을 궁구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 사실이다. 이 세상이 아무리 구조적으로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바르게 되어서, 즉 정의사회가 구현되어서 세상의 학대가 근원적으로 사라지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는 그런 일은 존재하지 못한다. 그 말이 압제자들을 두둔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세상의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의 헛됨을 말하는 것이다. 좌편향, 우편향 모두 잘못된 것이고, 오직 하나님의 다스리심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다.
2) 시기를 받는 자도, 시기를 하는 자도 모두 헛된 것이다. 솔로몬은 시기와 질투를 하면서 본인은 팔짱만 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들을 우매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멍청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좀먹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3) 그렇기에 전도자인 솔로몬은 세상의 것을 움켜쥐기 위해 애쓰고 악다구니 쓰는 것보다 그것을 내려놓고 평안을 얻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손을 펴서 붙잡은 것을 놓아주라는 것이다.
적용 :
1) 권세자나 학대를 받는 자나 모두 헛된 것이다. 높은 위치에서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 박살이 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이 세상의 어그러진 구조에 대한 유일한 소망이다. 이데올로기가 소망이 아니다. 이 땅에 대한 고민과 관심 속에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노력으로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시도는 의도는 좋지만 결과는 옳지 않은 것이다. 인간의 부족함, 그 심히 연약함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2)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기와 질투, 불평과 불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더더욱 우매한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세상의 정의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움직이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 전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3) 세상에서 자신의 욕심을 추구하기 위해 악다구니쓰고 그것을 얻어내는 것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움켜쥔 손을 펼쳐서 평안을 얻는 것이 더 나은 길이 되는 것이다. 내가 오늘 욕심을 내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 뜻을 관철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러한 것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내려놓는 것이 우매자의 길을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4)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도 사실은 헛된 것일 수 있다. 하나님 없는 모든 정치가 다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이 의미있는 것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계심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그렇다. 주님께서 이 혹독한 시간을 미얀마에 허용하신 이유를 지금을 알 수 없다. 어쩌면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미얀마를 인도하시고자 하시는 길이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 과정으로 속히 옮겨지고,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그저 간구할 따름이다. 그리고 사랑이신 주님의 긍휼하심이 미얀마에 임하기를 더더욱 간절히 간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