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로 휘갈긴 문장
조용미
반곡역 가는 길에 지났던 황새쟁이 사거리, 황새와 사람을 말하는 쟁이가 만나 황새쟁이가 되었나
황새처럼 큰 사람 황새처럼 다리가 긴 사람을 말하는 건 아닐 텐데
크게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는 황새가 옛날부터 좋았다 목과 다리를 쭉 뻗고 일자로 나는 그 자세가 나는 더욱 좋았다
검은색 날개깃은 먹으로 휘갈긴 문장 같아
겨울에 찾아오는 귀하고 보기 드문 조용한 황새가, 멸종위기종이 된 황새가 나는 좋았다
이른 봄 밭둑에서 만나는 황새냉이도 솜털 같은 북극황새풀도 좋았다
올겨울은 황새를 보러 어디로 가야 하나 황새 날개를 보면 또 먹을 듬뿍 먹은 붓을 들고 무언가 그리고 싶겠지
희고, 검고, 붉은 황새는 아주 크고 아주 고요해서 가까이 갈 수 없겠지
---애지 2024년 봄호에서
‘쟁이’란 사람의 성질이나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고,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멋쟁이’, ‘환쟁이’, ‘욕쟁이’, ‘관상쟁이’ 등이 그것이지만, 조용미 시인의 [먹으로 휘갈긴 문장]의 ‘황새쟁이’는 ‘묵향의 선비’를 말한다.
‘묵향의 선비’란 “황새처럼 큰 사람 황새처럼 다리가 긴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검은색 날개깃은 먹으로 휘갈긴 문장 같아”라는 시구에서처럼, 시와 삶이 하나가 된 사람을 말한다. 황새는 크게 울지 않으며, 목과 다리를 쭉 뻗고 일자로 나는 그 모습을 여느 잡새들은 꿈도 꾸지 못한다.
벱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도 있지만, 조용미 시인은 ‘선비 중의 선비’와 ‘새 중의 새인 황새’를 일체화시키고, 그의 삶 자체를 [먹으로 휘갈긴 문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인간 중의 인간’인 전인류의 스승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천부적인 재능과 그 성품이 첫 번째 조건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끊임없이 전인류의 스승들의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황새는 황새목 황새과에 속하는 겨울 철새이며, 시베리아, 연해주 남부, 중국 북동부, 한국 등지에서 분포한다. 황새는 그 옛날에 우리나라 전국에 서식하던 텃새였지만, 이제는 겨울에만 찾아오는 희귀종이라고 할 수가 있다. 몸길이는 102cm 정도이고, 날개는 검은색을 띠며 머리와 온몸이 흰색이다. 부리와 날갯짓은 검은색이고, 다리는 붉은색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 제199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조용미 시인은 이른 봄 밭둑에서 만나는 황새냉이에서도 황새의 숨결을 느끼고, 솜털 같은 북극황새풀에서도 황새의 숨결을 느낀다. “겨울에 찾아오는 귀하고 보기 드문 조용한 황새가” 좋았고, “멸종위기종이 된 황새가” 좋았다. 황새와 나는 둘이 아닌 하나이며,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먹으로 휘갈긴 문장] 같은 삶을 살아간다.
시는 사상의 꽃이고, 사상은 시의 씨앗이다. 우리가 시를 쓰며 사상의 꽃을 피우는 것은 자기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가 다같이 성장하고, 그 결과, 이 세상이 지상낙원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시는 사회적 약속이고 실천이며, 우리 인간들의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다.
고귀하고 우아한 삶, 아름답고 멋진 삶, 먹으로 휘갈긴 문장과도 같은 삶----, 시를 쓴다는 것은 이 세상의 삶을 찬양하고 미화하기 위한 것이다. 상호간의 끊임없는 비방과 모함 속에서는 시가 숨쉴 수가 없고, 이 세상의 삶을 찬양하고 미화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시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아, “올겨울은 황새를 보러 어디로 가야 하나 황새 날개를 보면 또 먹을 듬뿍 먹은 붓을 들고 무언가 그리고 싶겠지// 희고, 검고, 붉은 황새는 아주 크고 아주 고요해서 가까이 갈 수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