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28/국악國樂의 성지]토선생, 용궁 가다
대학 2학년 77년, 이대생과 미팅을 하는데, 전북 임실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같아 ‘남원’옆이라고 하니 ‘전남이냐’고 해 기분이 몹시 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 남원은 <춘향전> 하나 때문에라도 이 나라의 거의 유일한 ‘로맨스 도시’인 것을. 남원은 국립민속국악원이 존재하듯, 가히 ‘국악國樂의 성지聖地’라 할 만하다.
어제, 친구 두 쌍과 함께 <토선생, 수궁 가다>는 콘서트 창극을 그 남원에서 보았다. 아내도 모처럼 문화행사인만큼 좋은 모양이다. 사실 지방은 문화적인 혜택이 비교적 적지 않던가. <제4회 대한민국 판놀음>이라는 타이틀로 7월 6일부터 8월 6일까지 주4회 공연이 있다. 이런 공연이라면 전주의 어느 문화행사보다 나은 것같다. 남원 출신의 안숙선님을 비롯해 중견 국악인들의 적벽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등 판소리 완창을 들을 기회가 어디 흔한 일인가. 그것도 예약한 하면 공짜인 것을. 판소리 완창은 아니었어도 <수궁가>로 즐기는 신명나는 콘서트 창극이어서 더 좋았던 듯하다. 남상일(별주부)과 박애리(토끼. 팝핍 현준의 아내)를 중심으로 한 재담, 익살과 소리의 향연은 서도민요 명창 무녀의 굿거리와 수궁풍류의 노래와 함께 다채롭게 어울러졌다.
한 친구가 관계자에게 “이렇게 귀하고 좋은 공연을 무료로 하다니 너무 한 것 아니냐? 5천원이라도 받는 게 좋겠다”고 하니 “그러면 이마저도 관객이 없을 것”이라 했다. 그러한가? 문화불모지도 아닌 남원에서 국악과 퓨전공연을 사랑하는 시민이 그렇게 적단 말인가? 문화가 제대로 꽃을 피워야 선진국이거늘. 시간만 된다면 모든 공연(주4회)을 다 보고 싶은데, 좀 한심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초로初老의 나이에 친구부부끼리 이런 공연을 보는 것이 어찌 사치이겠는가. 공연 후 이어진 저녁 회식의 중심 화제도 ‘추억 만들기’였다. ‘서예 30년’ 내공의 친구는 글씨를 직접 쓴 멋진 부채를 친구부부들에게 선물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남성 부채의 <지란심자형芝蘭深自馨>은 지초와 난초는 깊은 골짜기에서 스스로 향기를 내뿜는다는 뜻이고, 여성 부채의 <기형여란其馨如蘭>은 여인이 내뿜는 향기는 향기로운 난초와 같다는 뜻이란다. 참으로 뜻깊고 고마운 선물이다. 여름철 내내 애용하리라.
“우리 것이 가장 좋은 거시여”라 하던 명창 박동진 선생의 말씀이 떠오르듯, 우리 고유의 판소리가 이제 세계로 진출하여 음악문화를 선도하는 듯하다. 어느날의 공연 제목이 <판소리 레미제라블> <광대가 리골레토> 이다. 우리의 전통과 서양의 오페라 등이 혼합한 퓨전공연인 듯한데,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하다. 이쯤에서‘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성립되는 것일까. <방탄소년단>이 글로벌 음악을 휩쓰는 것은 왜일까? 그들의 팬모임인 <아미army>는 세계평화를 앞당기는 군단이 될까? 음악엔 전혀 문외한이지만, 이런 공연과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어찌 ‘귀명창 도시’인 남원에서만 이런 행사가 국한되면 될 일인가?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국악인들과 국악기를 다루는 시나위합주단들이 새삼 더 고맙게 느껴지는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