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형사 엄복동 이라는 책을 낸건 그나마다도 내인생의 절반은 정리한 것 같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검사나 판사는 많이 하지만 형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많지 않은 게 아니라 16회 1명이 있었고 시험으로 들어간 동문 중에서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우리 동기중에도 김중겸도 있고 또 중학교 동기 이윤조도 있지만 이들은 중간 간부로 특별 채용된 사람들로서 일선 경찰서에서 발로 뛰는 형사 생활과는 거리가 있다.
나는 형사였다. 전직 형사다, 그것도 경찰로 직업을 바꾼이래 20년동안 형사생활을 했다. 젊음이 펄펄 끓을때는 강력계 형사를 하면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도까지 찾아 들어가서 볏집단 속에 숨어있던 범인을 잡아 오기도 했다. 또 남대문 경찰서에서 형사생활을 할때는 남대문시장의 밀수범부터 양동이나 회현동의 포주들도 수사해봤고 무교동과 다동일대의 유훙가를 주름잡고 있던 조양은이한테 형님이라는 소리도 들어 보았다. 이런 거친 생활을 하다보니 우선은 잘 먹어서 체력도 길러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100키로를 넘는 비만한 체격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으니 조금은 유감 천만이다. 하지만 그런 체격이 있어서 거창하게 나온 배로 피의자를 담벼락에 밀어붙여서 난폭한 고문을 하는 대신 실토를 하게 만드는 성과도 있기는 하였다. 이제 되돌아보니 내가 형사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과학 수사라고는 거리가 멀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경험상 면식범 여부를 추정하고 연고를 조사해서 뒤를 쫒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금처럼 CCTV 추적은 상상도 못했고 휴대폰 분석을 해서 접촉인물을 조사할 수 있는 기능도 없었다. 더군다나 DNA 수사 같은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했다. 형사들은 오직 자신의 추리력에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누기 끝질기게 추적해나가냐 하고 또 설정하는 방향이 용케도 틀리지 않아야 되는 심하게 말하면 복걸복 수사를 했다. 육감 수사도 한목했는데 가다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원시적인 방식이었으니 지금까지도 미제 사건이 많은 이유다. 물론 당시에 최중락 형사니 몇사람은 밤잠 안자고 사무실에서 자면서 노력하는 형사들이 사건 해결을 잘한다고 각광을 받았는데 오로지 땀과 노력의 결정판이었지 과학 수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나는 배운 머리가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추적방향을 내나름대로 비교적 틀리지 않게 설정한 덕에 큰 노력없이 많은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지만 평범한 일상 생활이었지 세간의 관심을 끌 만한 공과는 없었다. 지금도 수법은 조금 달라졌지만 자해 공갈단 사건이 많았는데 보험도 없는 시절이라 가해운전자로 몰리면 돈을 뜯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흉악하게 생긴 불구자들을 내세워 협박하는 일도 많았다. 다행히 지금처럼 인권유린이니 하는 제제가 약해서 이런 못된 놈들의 범행을 자백받기 위해서는 속칭 통닭구이니 하는 고문을 해서 사건을 해결했다. 물론 사람이 죽거나 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비록 경찰서 출입하는 기자들이 알아도 못본체 해주던 시절이었다. 다만 어느시대나 기상천외한 지능범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과 심리전으로 제압하는 역할로 한껏 주목을 받는 생활도 누렸다. 요즘은 소위 프로파일러 라고 전문직까지 생겼지만 아나로그 시대에 몸으로 때우는 형사 세계에서는 그런 고급인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를 하면 옷 벗고 감옥까지 가야하는 세상이라 형사들이 절대로 무리한 수사를 하지 않는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소개하는 장면을 보면 범행을 저지르고 도피를 한다고 해도 우리나라는 촘촘히 CCTV 가 설치되어 있어서 꼼짝없이 붙잡히게 되어있다. 살인을 해도 혈흔 감정이니 DNA판독이니 해서 범행을 숨길수 없겠금 과학수사가 많이 진전되었다. 또한 경찰서도 예전에는 강력계 폭력계 도범계 정도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반사건도 취급했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여 수사본부가 설치되기 전에는 명확히 업무가 구분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범죄도 지능적으로 발전하여 예전에 살인강도 조직깡패, 마약사건을 취급하는 강력계외에 보이스 피싱전담 스토킹 전담 사이버 수사팀등 분야별로 세분화 되어 효율적으로 운영 되고있다, 또 경찰인력도 에전처럼 달리기 잘해서 뽑던 시대가 아니고 대학교를 졸업해도 몇차례 낙방할 정도로 실력있는 청년들이 많이들어와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 같다. 범죄없는 밝은 세상이 되어야 하겠지만 전직 형사의 입장에서 죄지은 놈이 있으면 한놈도 남기지말고 디지털시대 AI 시대의 과학기법을 활용하여 끝까지 추적 검거해서 응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