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1228. 일용 엄니가 죽었다(241122)
요세비
<전원일기>의 사람들이 죽었다. 전미선, 김자옥, 노마 엄마 이미지, 보배 엄마 한영숙, 노인 역의 정태섭, 시할머니 정애란, 노총각 박윤배, 양촌리 이장 김상순, 약방의 감초처럼 역할을 잘하던 일용 엄니도 최근에 죽었다. 박정희도 죽었고, 할러윈데이의 이태원 사람들도, 우리 애들 외숙모도 죽었다. 언젠가는 죽는다. 모두가.
나는 죽을 때 박수 받고 죽을 것인가, 손찌검 받고 죽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세상에는 욕먹고 죽는 이도 많다. 박수는 못 받아도 욕만은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일까? 여러 말이 있겠지만 태어날 때는 저 혼자 울고 모두가 웃고, 죽을 때는 모두가 울고 저 혼자 웃는 죽음이면 가장 행복하게 산 삶이 아닐까라는 말이 있다.
대구교구청 성직자 묘지에 가면 입구 양 기둥에 새겨진 글이 있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이다. 무덤으로 가는 순서는 태어난 순서가 아니지만 누구나 시간차를 두고 그곳을 향한다. 다만 언제인지 모를 뿐이다.
어떤 이는 껄껄걸 하고 죽는다고 했다. 더 사랑할 껄, 더 나눌 껄, 용서 할 껄 했다는 말은 후회하는 것이 더 많다는 뜻이겠지. 한편 생각하면 잘 살았고 다행이었고 다른 한 편 생각하면 후회스럽고 미흡했던 삶,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더 잘 살아 봐야지 하고 또 다른 기대를 해 보기도 하지만 산다는 건, 살아온 것보다는 이제부터 살아가야 할, 갈 곳이나 할 것에 더 열중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연극의 배우로 살았던지,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았어도 죽음 앞에서는 동일한 상태가 된다.
그래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우리는 죽는 것보다 어떻게 죽느냐에 더 많은 관심이 있지요. 병들어 오래 아프지 않게,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게만 살았으면 하지만 죽음은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이기에 기도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