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룰라 ‘날개 잃은 천사’
“가사에 이렇게 심오한 뜻이 있는 줄 몰랐어요” 이런 분도 계시고, “유행가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시네요” 이런 분도 계시다. 두 분 의견을 다 존중한다. 어려서부터 라디오를 가까이하고 특히 가사에 집중해서 음악을 듣다 보니 노랫말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을 때가 있다. 이런 습성을 권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① 노래 하나가 만들어지고 ② 가수가 그 노래를 녹음하고 ③ 애청 혹은 애창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④ 시간이 흘러도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진 집단의 기억 속에 남는 노래라면 단지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서 점검 또는 해부하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창작자가 심은 고갱이가 잘 전달됐는지, 노래의 씨앗이 어떤 꽃(악의 꽃?)을 피우고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 문화예술의 토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더듬는 일이 헛수고는 아닐 거다.
어떤 노래는 그냥 노래일 뿐이고 어떤 노래는 노래 이상의 것이다. 어떤 노래는 노래도 아니다. 나는 가끔 음악을 음식에 비유한다. 맛있으면(혀가 행복하면) 된 거 아니냐. 그러나 몸에도 좋은(영양가 있는) 음식이어야 마땅하다. 음악도 비슷하다. 귀가 행복하면 된 거 아니냐. 왠지 아쉽다. 가수의 이미지에 더해서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로 자신의 삶도 돌아볼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 사회의 건강성까지 체크해 미래를 대비한다면 금상첨화다.
“어떤 기준으로 노래를 고르세요” 이런 질문엔 즉답을 피한다. 그 대신 “어떤 심정으로 노래를 부르세요” 이러면 산울림의 노래로 응답할 거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중략)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으리’ 노래를 만든 그대와 그림을 그린 화가는 어떤 점에서 일치한다. ‘그린 이는 떠났어도 너는 아직 피어있구나’(산울림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 화가는 떠나도 그림은 남아서 화가의 말을 전한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창작자와 가수는 떠나도 노래는 남아서 말을 건넨다. 그림 앞에서 나는 해바라기가 되고 노래 옆에서 나는 나비가 된다. 그 순간 피곤한 일상은 예술로 승화한다. ‘아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산울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어쩌다 뉴스를 보면 한마디 말이 화살이 되고 칼이 되어 눈에 귀에 가슴에 꽂힌다.
‘니가 니가 니가 뭔데 도대체 나를 때려 왜 그래 니가 뭔데’(H.O.T. ‘전사의 후예’) 노래마을에서 전사(戰士)는 ‘날개 잃은 천사’다. 천사는 어쩌다 날개를 잃었나. ‘조용하게 눈을 감고 생각하면 알 수 있어’(룰라 ‘날개 잃은 천사’) 문제는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도무지 갖지 않는다는 거다. 왜 ‘진실한 사랑의 의미 의미 도대체가 도대체가 찾을 수가 없어’라고 탄식할까. 바로 그 앞에 답이 있다. ‘난 오 이런저런 조건 조건 따지다 보니까’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느낄 수 있니 사랑의 시작은 외로움의 끝인 걸’ 모두 외로워서 만나고 괴로워서 헤어진다. 그리고 핵심에 도달한다. ‘나 이제 알아 혼자된 기분을 그건 착각이었어’ 1995년 히트곡 빅10 중엔 ‘잘못된 만남’(김건모) ‘슬픈 언약식’(김정민) 그리고 ‘날개 잃은 천사’(룰라)가 있다. 제목만 나열해도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가르쳐주지 않는가. 룰라의 데뷔곡(‘비밀은 없어’)까지 추가한다면 노래교실도 인생학교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