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번 버스와 44번 버스 사이에서
오늘 아침 신문을 펼치다가 나는 뜻밖에도 오래전 기억 속에 묻혀 있던 한 편의 영화를 다시 떠올렸다. 중국 영화
《44번 버스》였다.
수년 전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젊은 여성 버스기사가 불량배들에게 참혹한
폭행을 당하는 동안 수많은 승객들은 침묵했고, 오직 한 사람만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다가 오히려 두들겨 맞는
다. 그리고 사건이 끝난 뒤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기사는 자신을 구하려 했던 유일한 승객을 억지로 하차시킨 후,
불량배들을 태운 채 버스를 낭떠러지로 몰아 모두 죽음으로 이끈다.
그 영화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었다. 인간의 양심과 방관, 용기와 비겁함에 대한 무서운 질문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보다 침묵한 사람들이 더 두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다른 기사에서 또 하나의 버스를 만났다.
폴란드에서 '지옥행 버스'라 불리는 666번 버스가 부활했다는 소식이었다. 독일계 버스회사인 FlixBus가 올여름
Kraków에서 Warsaw를 거쳐 북부 휴양지 Hel까지 운행하는 노선을 개설하면서 번호를 다시 666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666은 악마의 숫자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종착지 이름이 헬(Hel)이다. 영어의 "Hell"과 발음이
같으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지옥행 버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한때 종교단체들의 반발로 번호가 669로 바뀌었지만,
관광객들의 관심과 아쉬움 속에 3년 만에 다시 666번으로 돌아왔다.
신문 기사를 읽으며 나는 문득 웃음이 났다.
세상에는 같은 버스라도 이렇게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구나.
44번 버스는 인간 내면의 어둠을 향해 달려갔다. 그 안에는 침묵하는 군중과 상처 입은 정의가 타고 있었다. 반면
666번 버스는 이름만 지옥행일 뿐, 실제로는 푸른 발트해의 휴양지를 향해 달린다. 하나는 인간이 만든 지옥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웃으며 찾아가는 바닷가 여행길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내가 이 두 버스를 연결하는 작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8년 여름, 나는 두 아들과 함께 세 번째 유럽 자동차 여행에 나섰다. 그때 우리는 폴란드의 옛 수도인 크라쿠프와
현재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했다. 크라쿠프의 구시가지 광장에서는 중세의 시간이 아직도 흐르는 듯했고, 바르샤바
에서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다시 일어선 도시의 강인함을 느꼈다.
세월이 흘러 아들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나 역시 머리에 흰빛이 늘어났다. 그러나 신문 속 666번 버스 노선을
보자마자 그때 함께 걸었던 거리들이 한순간에 되살아났다. 여행은 끝났지만 기억은 아직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은
채 내 마음속을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버스 여행과 비슷하다.
어떤 사람은 44번 버스의 승객처럼 침묵하며 지나간다. 어떤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일어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
은 666번 버스를 타고 웃으며 휴양지로 향한다. 버스 번호는 다르고 목적지도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질문
앞에 선다.
"당신은 어떤 승객으로 살아왔는가?"
나는 이제 여행의 종착역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새로운 버스 이야기를 만나면 가슴이 뛴다. 젊은
시절 두 아들과 함께 달렸던 유럽의 도로들, 크라쿠프의 광장, 바르샤바의 거리, 그리고 오늘 신문 속에서 다시 출발한
666번 버스까지.
버스는 늘 앞으로 간다.
44번 버스가 인간의 양심을 묻는 길이었다면, 666번 버스는 추억을 싣고 달리는 길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신문 한
귀퉁이에서 출발한 작은 버스 한 대를 따라, 어느새 18년 전 유럽의 여름으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