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100% 실화이며, 추억 속의 인물들이라고 해서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음을 밝힙니다. 1970년대 시골은 모두가 어렵고 촌스럽던 시절이었으니까요.
..........................................
1. 1979 무료하던 어느 젊은 날
1979 초가을날이었다.
무료한 객지 군생활에 무기력해 있던 우리에게 어느 지인이 우리 동기 다섯 명에게
5:5 단체 산행 겸 미팅을 주선해 주었다. 우리는 흥분했고 기쁨에 들떴다.
상대는 ㅇㅇ군청 여직원들이라 하여 우리는 설레어서 친구 증 가장 잘 생긴 창우를
사전 준비 겸 탐색(?) 요원으로 보냈다. 여자측 대표 1명을 미리 만나고 온 창우에
따르면 그 아가씨가 인물이 좋고 아주 참하다 했다. 우리는 서둘러 날짜를 잡고 1박
야영준비에 들어갔다. 지리산으로 정했고 예나 지금이나 준비위원장은 나였다.
2. 광주 대인동 시외버스 터미널
약속날 토요일 오전 근무를 끝내고 부랴부랴 장비를 둘러메고 광주 대인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세 명이 문 밖에서 담배만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툴툴대며 지하에 있는 중국음식점에 가보라 했다.
지하에 내려가니 우리 친구 중 가장 착한 재환이가 여자 다섯명에게 짜장면을 사서
먹이고 있었는데, 아! 한 명을 빼고 나머지 네 명은 등산은 고사하고 시골에서 이웃집
마실가는 차림이었다. 당시 농촌에 사는 여성들이 자신을 꾸밀 여유는 없던 때였다.
3. 당혹감 그리고 수습
산행 길잡이 겸 준비물 총 담당이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이 들고 온 보따리였다.
중국집 식탁 아래엔 배낭이 아닌 커다란 보따리가 두 개 있었다.
- 나 : 이... 보따리는... 뭐예요?
- 짜장면 먹던 그녀 : 묵을 것이지 뭐겄소
헉 !! 나는 밖으로 뛰어 나가서 체육사를 뒤져 가장 싸고 큰 배낭을 사갖고 들어와
물건을 옮겨 담는데,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가 나와서 재차 당혹했다.
- 나 : 이... 바가지는... 뭐예요?
- 그녀 중 하나 : 쌀 씻어야지라 (이 말은 지금까지 생생하다)
헉 !! @.@ 버너 코펠 다 있는데 이 무슨 개나리 보따리에 주황색 바가지인가... ㅠ.ㅠ
4. 구례행 시외버스, 서울 여자들에게 흔들리다
주말 구례로 가는 시외버스는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우리 일행은 뒤에 타고 나와 창우가 앞쪽에 서서 가는데, 서울에서 온 아가씨 세 명과
대화가 트였다. 얼마나 유쾌하게 웃고 떠들었는지 사람들이 모두 쳐다볼 정도였다.
참 세련되고 예쁘고 하얀 얼굴을 가진 서울 아가씨들이라서 우리 둘은 신이 났다.
그때 서울아가씨 하나가 불쑥 제안을 했다. "우리 압록에 가는데 함께 내려서 놀까요?"
20 대 초반의 젊은 사내에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무리
상황이 거시기(?) 하지만 사람 도리는 하고 사는 게 기본이던 시기였으니까.
창우는 지금도 만나면 얘기한다. "우리가 그때 압록에서 내렸으면 어땠을까" ...
5. 야영지에서의 밤, 사람을 다시 보다
어쨌든 우리는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냈다. 당시는 아무 데나 야영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그녀들은 그 바가지에 쌀을 씻고 밥을 차리는데 아주 능숙했고 반찬은 정말 맛있었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일을 돕거나 나이를 속여 방직공장에 취업했다는
옛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나마 그들보다 조금 나은 우리 처지에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 명씩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었었는데 그녀들은 군청에
다니는 사람 말고는 노래를 하려 하지 않았다. 매우 쑥스러워해서 무안할 정도였다.
밤이 깊자 좋은 텐트 두 곳에 그녀들을 재우고 우리는 낡은 A형 군용 텐트에서 잤다.
6. 노고단, 그리고 후일담
다음날 아침에도 그녀들은 밥을 챙겼고 우리는 함께 노고단에 올랐다.
그녀들은 씩씩했고 전날 나를 당혹하게 했던 것과는 다르게 정말 착한 모습을 보여서
옆에서 찬찬히 뜯어보니 참으로 순박하고 예쁜 구석이 있었다.
다시 광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그녀들의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태워 보낸 후
우리끼리 앉아 막걸리를 마셨다. 그때 사전 탐색조였던 창우가 말했다.
"한 명만 보고 속은 거 같아" 우리 모두가 말했다 "자꾸 보니 괜찮던데 뭘 그래" 그 뒤로
노고단에 함께 올랐던 짝들끼리 편지를 주고 받다가 그만큼에서 모두 인연이 다했다.
가끔 생각한다. 그녀들은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
현혹되지 말 일이다.
겉 표지나 샘플만 보고 현혹되지 말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속을 보기 전 겉모습만
보고 거기에 현혹되지 말 일이다.
2024. 06. 09
앵커리지
첫댓글
45년 전의 일이라면,
앵커리지님 나이 스물 초반이네요.
군청 직원이란 말에
현혹되었지만,
제 정신은 가지고 계신 것 같네요.
한창 때의 일이니
추억으로 남았고,
현혹되지 않았는 기본 자세는
지금의 엥커리지님이 십니다.
한 명만 군청 공무원에다 자신을 가꿀 여유가
있었나 봅니다. 나머지 친구들은 가정 형편상
그럴 여유가 없어보였어요.
그래도 예의 잘 지키고 끝까지 아름다운 추억
만들다 왔답니다.
젊은날 군시절 예쁜 아가씨들과 좋은 추억을 가지고 계시네요
저는 77년 공무원 시절 같은과 남직원 3명 여직원 두명 이렇게 5명이
양평 남한강가와 용문산에 가서 텐트2개 치고 잤는데
여자들이 무섭다하여 여자 1명씩과 한텐트에서 자게되었지요
자도 보니 우리텐트안 여직원이 제위에 올라터서 이상한 행동을 하길래
기겁을 했는데 제얼굴에 수염을 그렸다는 추억이 있습니다
젊은 날에 짜릿한(?) 추억이네요 ^^
요즘 젊은이들 보면 우리들 시대에는 왜 그렇게 이성을
만나는 것조차 어려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ㅎㅎㅎ
오래오래 기억될
비록 흑백이지만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흑백이지만 색은 바래지 않은 사진입니다 ^^
미팅이란 남녀 학생들이 서로 사귀기 위하여 집단적으로 가지는 모임이라고 나온다
미팅에서는 각자 파트너가 정해진다
그리고는 단체로 몇시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거다
나는 학창 시절에 미팅을 3 번
직장 다니면서도 여대생들과 미팅을 한번 했었다
그런데?
첫 미팅에서는 여대생 섭외를 하는데 에는 성공 했으나 몇번 만나고는 짤렸다
두번째 미팅 파트너? 마음에 안들어서 당일로 내가 짤랐다
세번째 미팅에서 만난 여대생? 섭외는 성공 했으나 데이트 하다가 내가 자기보다 어리다고 짤렸다
직장에서 여대생과의 미팅?
집도 멀고 미모도 딸려서 그날로 끝냈다
그렇게 젊은 시절에 4번 미팅을 해보았다
그 당시에는 미팅 외에는 여자 사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미팅은 필요했다
그런데 미팅에 큰 기대는 안 갖는게 신상에 좋다
혹시나가 역시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운이 좋은 친구는 미팅으로 오래 동안 교제 하는 친구도 있더라
이상 내 경험담 입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1970 년대의 문화라면 이성을 만나는 것조차 힘든
시대라서 미인, 안 미인(?) 가릴 수 없었습니다 ^^;;;
술집 말고는 여성을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시대라서
더 가슴이 뛰고 설레였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맘에 드는 이성의 기준이 아니었더라도
보이지 않았던 내면의 진가를 발견하셨다니
겉만 보고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은
좋은 추억이 되셨겠습니다.
사실 기대와는 많이 차이가 나는 상대지만 약속은
확실하게 지킨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네 명의 여성들은 대부분 그 시절의 젊은 여인들이
그랬듯 생업을 돕는 입장이었어요.
그래도 투박하나마 장점들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ㅎㅎㅎ
노을빛에 가까운
익은 호박같은 주황색 바가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를 한 수 쓰자면
제목을
쌀 씻게 가져왔다는
그 노란 바가지ㅡ로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
풋풋함이 배어 있어서
단 숨 봤어요''ㅎ
'노을빛에 가까운 호박같은 주황색' 바가지라...
역시 하여님 표현은 잘 벼린 창끝입니다 ^^
사실 그 추억은 모두가 생생한데, 막상 떠올리면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 한 개만 남더라구요.
그녀들이 잘 늙어가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재미있는 추억 공유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현옥 되시길 잘 하셨습니다 .
그때 그 시절 우리는 참 순박했어요 .
저도 홍도가서 텐트치고 놀고 온 추억이 있습니다 .
그 시절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여흥이
그 정도였지요. 지금 보면 참 순박했구요.
돌아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ㅎㅎㅎ
재미있는 추억이네요.
순박함이 묻어나는 군청직원 아가씨들.
겉모습 보다는 내면이 중요하지요.
그러나 남자들은 외모가 중요?하겠지요.ㅎ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시절
이야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참으로 오래 기억될 추억이었지요.
여성들 한 명만 군청 공무원이고 나머지는 그 시절
대개가 그랬듯이 형편상 농사일을 한 듯해요.
외모를 따질 형편이 아니라, 중국집 식탁 아래에
있는 보따리를 처리하느라 진땀 뺐다니까요.
당시는 체육사 라는 곳에서 운동기구와 배낭 등을
파는데 그걸 찾아서 얼마나 뛰었던지...^^;;;
@앵커리지 쌀 씻을 바가지까지~
지금쯤 살림의 여왕이 되어 있을 듯요.ㅎ
어디서 조달해온 처녀들인지.
군청 직원도 나름 애를 썼네요.
남자들이 거의 예쁜 여자를 좋아하더군요.
요즘 돌실글즈를 보는데 다 그래요.
저 또한 그렇습니다.
대만 드라마를 보면 못 생긴 배우 천지라
화면이 영 나빠요.ㅎ
중국은 인구가 많아 뽑을 범위가 넓은
이점 때문에
한중일에서 단연 일등입니다.
조달이라고 할 수는 없고, 군청에 다니는 여성의
친구들이었어요. 그 시절 농촌에선 대부분 농사를
도와야 밥을 먹던 때였으니까요.
지언님은 중국어 방송을 보시는가 봅니다.
저는 평소에 워낙 드라마나 예능 프로엔 관심이
없어서 위에 언급된 프로들을 찾아보려구요.
현혹되지 않을께요~ㅎ
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젊은 날에는 현혹되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다음에는 아름다운 현혹에 대해 써볼까 하는데
소재가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야겠어요.
늘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
진짜 웃겨 죽어요.
보따리에다 쌀 씻는 바가지까지
준비성 끝내주네요
그녀들이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착하니까 아마도 잘 살듯요.
야밤에 실컷 웃어서 잠도 잘 올 것 같네요.
재미난 글 감사합니다.^^
정말로 충격적인 경험이었는데, 떠올려보면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만 떠오른답니다 ㅋ
지금 부천에 사는 친구 창우랑 만나면 빠지지
않는 얘기거리가 위의 사건입니다.
그때 중국집 식탁 아래에 있던 커다란 보따리
생각을 하면 지금도 식은 땀이 흘러요.
당시는 '체육사' 이런 곳에서 운동기구와 함께
배낭을 팔았는데, 체육사를 찾아 얼마나 뛰어
다녔던지...
그래도 깔끔하게 그들 집에 가는 버스표까지
사서 배웅해 준 건 정말 잘했다고 자부해요.
잠을 잠시 잊을 정도로 글의 내용이 매우 좋습니다.
풋풋함 & 신선함이 살아 있던 때의 옛 이야기 참 잼나게 읽고 갑니다. ^^~
당시 아직 젊었던 우리들 5명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에 어이가 없어서 정신이 혼미했어요.
그래도 나중에 집에 가는 차표까지 끊어서 잘
보낸 후 우리끼리 한 잔 했지요.
ㅎ 잘 읽었습니다
서두의 무료한 군생활 ~~ 무슨 대한민국 군대가 등산에 야영까지 시켜주나? 하도 이상해서 서두를 두번 읽었음
간단합니다.
앞선 글에서 조금씩 썼었는데, 저는광주에서
직업군인 생활을 좀 했었습니다..위의 글은
영외에서 출퇴근 할 때 일을 쓴 것입니다.
제 신상에 관한 일이라 거기까지만...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6.10 09:2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6.10 10:55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6.10 10:56
재미있게 쓰셨네요.
웃으며 읽었어요.
풋풋하고
유쾌한 글
감사합니다.
맞아요.
모두가 여유 없고 촌스러웠지만 풋풋했고
순수했던 시절의 이야기랍니다.
역시~제게는 없는 귀한 추억을 가지셨습니다.^^
바가지만 떠오른다 하시지만 아마도 그 지리산에서의 야영이
새록 새록 아름답게 떠오를 것 같습니다.^^
둥실님 처럼 '바른생활' 책과 같은 분들은 미처
경험해 보지 못 한 일인가 봅니다 ㅋ
지리산 여러 곳에서 아영을 했는데, 사실 그보다
아름다운 기억은 없을 정도입니다.
맑고 힘찬 물소리와 반짝이던 별들이 머리 위에
빛나던 아름다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감사하지요.
다음번 글은 둥실님과 다녀온 지리산 이야기를
써볼까 해요. 구미호(?) 같던 그녀 이야기요 ^^
@앵커리지 잔뜩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저는 요즘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합니다. 그러지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잘 되지 않습니다. 추억의 글 감사합니다
누구나 속으로는 겉모습만 보지 말아야지 하면서
습관적으로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게 되지요.
지나고 보면 그게 틀렸다는 걸 알게 되니 그것이
사람사는 세상 아닌가 합니다.
젊은 시절의 이야기라...
순박함 속에서 밝은 빛이 나옵니다.
미팅이며 봉사활동이며
완행 열차나 완행버스와 함께
풋풋한 추억들이 참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베이비부머 세대라서 행복했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전쟁을 겪은 우리 앞의 세대보다 고생을 많이
하지 않았고, 어딜 가나 또래 친구들이 많아서
같이 어울려 놀았으니까요 ^^
넘나 순수하고 잊지 못할 지리산행였어요.
그~쵸
넘나 재미있어서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니까요.ㅎㅎ
저도 잼 난 이야기 하나 놓고 갈께요.
황색 프라스틱 바가지에 꽂혔어요.
'한사랑 산악회'가 있는데요.
거기에서 이박사 이택조가 프라스틱 바가지를 가지고 산행을 하거든요.
유트브로 함 보세요. 강추예요
안 보면 후회 하실 거예요 ㅋㅋ
하하하~~^^/
진짜 그런 분이 있군요. 찾아볼게요.
지리산행 때 사진을 오늘 찾았기에 나무랑님께만 보여드립니다
@앵커리지 우~와
꽃미남 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