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압구정 키즈였고 8학군에서 자란 이들이 많다. 자녀 교육을 위한 새로운 학교, 더 넓은 집을 찾아 강남에서 판교로 넘어간 이들이 적지 않은 만큼 소비 수준은 강남권을 뛰어넘는다.”(S사 포커스그룹 인터뷰 보고서 중)
“정보에 진짜 빨라요. 웬만한 신생 브랜드, 새롭게 뜨는 장소는 이미 다 꿰고 있고요, 해외여행 경험이 풍부해서 국내에 없는 브랜드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 이들이 90% 이상입니다.”(화장품 회사 용카 박문경 부장)
요즘 명품·유통업계에선 이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일하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판교맘’ 얘기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백현동·삼현동·운준동·하산운동 일대에 조성된 판교신도시와 분당 지역에 걸쳐 거주하는 엄마를 새롭게 일컫는 단어인 ‘판교맘’. 이들이 최근 뉴스와 유행의 중심에 떠올랐다. 홍보 대행사 컴플리트케이 김지영 이사는 “올해 상반기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는 판교맘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식음료·리빙 트렌드는 이들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압구정 키즈, 엄마가 되다… 판교맘 파워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사는 주부 백지예(34)씨는 스스로를 ‘판교맘’이라고 자랑스럽게 칭하는 사람 중 하나다. 어릴 때부터 서울 압구정동에서 살면서 학창 시절 대부분을 강남에서 지냈다. 서울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에서 디자인스쿨을 다녔다. 결혼 후 신혼살림은 서초동에 차렸으나 임신 직후인 2011년 성남시로 이사했다.
2009년 개교한 혁신 학교인 보평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 일찌감치 판교 근처에 터를 잡은 것이다.
백씨는 “낯선 곳으로 이사를 오긴 했지만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강남 출신 엄마들이 워낙 많고, 생활 습관이나 취미도 비슷해서 전혀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백씨의 가장 큰 낙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또래 엄마 친구들과 브런치 모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육아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그는 “요즘 뜬다는 카페나 레스토랑은 이미 다 가봤다”고 말했다.
- 지난달 21일 문을 연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식품관 풍경. 뉴욕에서 건너왔다는 한 컵케이크 가게 앞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업계 사람들은 “맛집이나 새롭게 뜨는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판교맘의 심리를 현대백화점 측이 정확하게 읽어낸 덕분에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고 평한다. /현대백화점 제공
지난 21일 판교에 새로 매장을 낸 현대백화점이 작성한 라이프 스타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판교맘은 대개 30·40대 기혼 여성으로 취학 자녀를 두고 있고, 한 달 소득은 300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이다. 육아와 미용에 관심이 높고, 최신 유행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또 퍼트리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경제력이 있고 소비 수준이 상당히 높은 엄마들이 많다는 분석인 셈이다.
실제로 이들을 잘 공략하면 ‘기록’이 나온다. 2013년 유명 식당이 몰려 있는 쇼핑몰 판교 아브뉴프랑이 들어서자마자 ‘명소’로 자리매김했고,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개점 직후 3 일 동안 181억원을 벌었다. 22일 토요일엔 하루 매출만 45억원이었다. 백화점으론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는 부산의 신세계 센텀시티 개점 첫 토요일 매출(34억원)을 넘어선 것이다.
업계에선 현대백화점이 미국 뉴욕에서 건너왔다는 컵케이크 가게 ‘매그놀리아’와 뉴욕 유명 식료품 매장 ‘이털리(eataly)’, 부산에서 유명한 ‘삼진어묵’ 등을 들여온 것이 식음료 트렌드에 예민한 판교맘을 움직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해석한다. 현대백화점 이경훈 대리는 “실제로 식음료 매출이 무척 높았고,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지난 3일 동안 50만명이 왔고, 이 중 실제 제품을 산 고객은 20만명 정도다. 매출 목표의 20%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IT 첨단 기술, 부동산 호황이 빚어낸 경제력유통회사 S사가 판교 지역에 새 매장을 낼 것을 대비, 작년 초에 판교맘 200여명의 이야기를 듣고 만들었다는 포커스그룹 인터뷰 보고서를 보면 이들의 소비 파워를 빚어내는 ‘주머니’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지속적인 부동산 매매가 상승의 수혜를 입은 이들이 많음.’ ‘IT 기업들이 대거 판교에 몰려들어 테크노밸리를 형성하면서 도시 부흥을 맞았고 소득이 함께 올라감.’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실제로 판교는 광교·동탄·김포 한강·파주 운정 등을 포함한 2기 신도시 중에서도 2006년 첫 아파트 분양을 시작한 이래 매매가가 가장 크게 상승한 지역으로 꼽힌다. 부동산 포털 닥터 아파트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4년까지 판교 지역 아파트는 분양가 대비 매매가 상승률이 63.7%였다.
<②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