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왓챠에서 왕가위 감독의 리마스터링 영화를 독점 공개해 화제가 됐습니다. 재밌는 점은 나이 어린 관객의 반응이 무척 뜨거웠다는 겁니다. 왕가위는 그들에겐 생소하지만 이전 세대에겐 낯익은 감독입니다. 홍콩 느와르 전성시대를 지나 90년대에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홍콩 영화의 자존심을 지켜준 감독입니다.
당시 그의 스타일과 영상미는 많은 젊은이를 열광케 했습니다. 흥행과는 거리가 먼 몇몇 작품들도 작품성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2~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젊은이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걸 보면 그의 영화가 얼마나 감성적이고 세련된 영상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97년 이전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이 그 당시의 홍콩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 중경삼림 관련 인터뷰 중 , 왕가위 감독
<중경삼림>은 1994년 작품입니다. 1994년은 홍콩 반환을 3년 남겨둔 해였습니다. 당시 중국 본토야 들뜬 분위기였지만 홍콩 시민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50년간 1국 2 체제를 약속했다지만 중화인민공화국 통치하에서도 자유와 인권 그리고 번영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떨쳐낼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이런 홍콩 시민의 불안한 심리를 담아낸 작품이 중경삼림입니다. 겉으론 사랑 이야기지만 속으론 홍콩인들의 불안을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많은 영화가 그렇지만 겉과 속이 다른 엉큼한 영화입니다.
두 개의 에피소드
영화는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사랑 이야기입니다. 서로 상관없는 두 이야기를 이어주는 핵심 키워드는 스쳐지남입니다. 스쳐지남은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번화한 도시의 특징입니다. 영화에선 낯선 주인공끼리의 스쳐지남이 에피소드의 연결점이 됩니다. 스토리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서로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이 에피소드를 이어줍니다.
이것은 영화 타락천사까지 이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타락천사가 중경삼림에 들어갈 3번째 에피소드였기 때문입니다. 왕가위는 원래 중경삼림을 3개의 에피소드로 구상하였습니다. 촬영은 했으나 편집 때 분량이 너무 많아 에피소드 하나를 뺐다고 합니다. 빠진 에피소드에 촬영을 추가해 일 년 뒤 공개된 작품이 타락천사입니다. 그래서 느낌이 중경삼림과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