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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년 11 월 10 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 된 아시아 청소년 축구가 막을 내렸다.
가끔씩 티비로 봤지만 전체적으로 아시아 축구의 수준이 많이 올라 갔다는 걸 실감 한 대회 인 것 같다.
아시아 축구의 미래가 밝아 보였다.
대한민국이 대회 통산 11회 우승을 달성하며 아시아 국가 최다 우승을 자랑 하였다.
중국은 결승전에서 한국을 맞아 분전 했지만 다시 한번 공한증을 실감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8 년 11월 15 일
11월 피파 랭킹이 발표 되었다. 스페인이 부동의 1위를 지켰고 그 뒤를 아르헨티나가 뒤 쫓고 있다.
인도는 지난 달 보다 한단계 하락한 151위를 마크 하고 있다.
2008 년 11 월 20 일
인도 축구 협회 에서 2009 년 인도 대표팀 일정이 발표 되었다.
아시안컵 예선을 대비한 평가전 경기들은 세부적으로 코칭스태프와 논의 후 결정 하기로 하였다.
첫 경기 부터 만만치가 않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경기가 없다. 2009 년 11 월 4 일 우즈베키스탄 원정을 시작으로
5개월 간 아시안컵 예선의 대장정에 나선다.
2008 년 11 월 30 일
아시안컵 일정이 발표 되면서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 진 양 마음이 초조해 졌다. 인도 대표팀의 기술적인 훈련을 위한
전문적인 코칭스탭이나 훈련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 중 제일 시급한건 코치진이었다. 인도 내에서는
단 시간내에 기술적인 부분을 확 끌어 올릴 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심에 고심을 한 끝에 한국에 아는 지인을 통하여 강마에 라는 코치를 소개 받았다.
아는 지인이 그 코치를 알려주면서 하는 말이 말이 거칠고 성격이 괴팍 해서 휘하에 두기엔 좀 힘들 것이다. 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아는 대로 말해보라고 했더니 강마에 코치는 능력만큼은 국내 최고의 평가를 들을 만큼 실력파 이다.
국내 기술코치들 중 능력은 몇 손가락 안에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선수들의 장단점을 빠른 시간에
알아 차리고 그 해법을 제시 하는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수준이 낮은 축구를 구사하거나 옛 고전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팀에서의 그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강마에 코치의 주요 커리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예전에 N리그의 실업팀인 고양 국민은행에서 기술코치 직을 맡게 되었을 때 국민은행 팀은 고전적이고 수준이 낮은
축구를 구사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부임하고 나서 빠르게 기술적인 부분을 접목 시켜서 상위리그인 K리그 주요 팀들을
위협 할 수 있을 정도의 현대 적인 축구를 구사 하는 팀으로 탈 바꿈 되었다고 한다. 2년 전에 열렸던 2006 FA컵 에서
고양 국민은행은 여러 K리그 팀들을 차례로 무너 뜨리고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그 중심에는 강마에 코치의 기술력에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 하고
국내 프로축구의 감독들은 강마에 코치를 휘하에 두기 꺼려 한다고 그랬다. 그 이유는 바로 단지 괴팍한 성격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예전에 어느 프로팀에서 코치직으로 일 할때 였다. 리그 경기 도중
선수들이 자기가 훈련한 대로 움직이지 않자 답답한 나머지 관중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를 쳤다고 한다.
강마에 : 여러분!!!보기 지루 하시죠?? 잠이 쏟아 지시는게 당연합니다. 이건 뭐 도저히 답답해서 참아 줄 수가 없네요!
오늘 표를 사신 분이나 시즌 권 구입 하신 분들.....구단에 문의 해서 환불 받으시고 그 돈으로
브라질의 호나우두 스페셜 DVD 씨디를 사 보세요.........아 참 그리고 오늘 보신 이같은 더러운 경기는
집으로 돌아 가셔서 눈에 아른 거리기 전에 눈을 빡빡 문질러 씻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해 버리고 경기장을 빠져 나가 버렸다고 한다.그 일이 터진 후 그는 구단에서 해고를 당했고 프로축구계에서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 이유에서인지 지금 현재는 무직이고 다시 일을 할려는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현재 찾는 유형의 코치는 국내에 그 코치 밖에 적임자가 없을 것이라고 했고 추가로 덧붙여서 얘기 해주었지만
추천을 해주긴 해주는데 별 기대는 하지 말라고 일러 주었다. 나는 바로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그 코치의 신상 기록을
요청 하였고 팩스로 받은 뒤 쭉~ 검토 해 보았다.
캐슬 군 : 으음 괴팍한 성격이라.................과연 수준이 엄청 낮고 시설이 졸라게 후진 인도로 올려고 할까?? 후후훗
성격은 상관 없다. 오기만 해다오!
2008 년 12 월 5 일
나는 인도 축구협회에 공식적으로 코칭스태프의 추가 영입을 요청 하였다.
협회에서는 한번 검토 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그랬고
개인적으로 추천 할 인물이 있느냐고 물어 왔다. 나는 추천 할 만한 인물이 있다고 답하였고 강마에 코치에 대한 신상 기록들을
정리하여 인도 축구협회에 건의 하였다.
2008 년 12 월 8 일
인도 축구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추가 영입을 허락 한다는 것이었다.
잠시 기뻐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강마에 코치가 혹시라도 다른 팀으로 갈까봐 마음이 조급해 졌다.
나는 인도 축구협회에 연말 휴가를 신청 하였다. 허가가 떨어지는 대로 한국으로 가야 했다.
2008 년 12 월 10 일
나는 로자리오 수석코치에게 뒷 일을 부탁 하고 한국으로 휴가 길에 올랐다.
강마에 코치를 어떻게 꼬실 지 머릿 속에서 생각들이 맴돌았다.
2008 년 12 월 21 일
한국에 오자마자 강마에 코치와 계약을 성사 시키기 위해 직접 찾아 다녔다. 아는 지인을 통해 무직 이라고 알았던 그는
현재 고등학교의 어느 한 축구팀의 감독으로 재직 중 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나는 그가 어떻게 고등학교 선수들을 지도 하는지
지켜 보기로 했다. 얼마 쯤 지났을까 그의 입에서 좔좔 거친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누가 들어도 모멸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말들이었다. 나는 그게 그 사람의 지도 스타일이라 생각 했다. 다 각자 나름대로의 성격이 틀리고 사는 방식이 틀릴 수
있다. 나는 오히려 그에게 카리스마 같은 것을 보았고 그가 지휘 하고 있는 고등학교 선수들은 그의 카리스마에 기가 질려
버렸는지 고분 고분 말을 잘 들었다. 일단 내 눈으로 봐도 기술 코치의 자질은 충분 했다. 어서 빨리 그와 계약을 하고 싶다.
2008 년 12 월 22 일
오늘 강마에 코치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날이다. 그의 성격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기에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약속된 장소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는 거두절미 하고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의 방향 그리고 강마에 코치와 왜 계약을 할려고 하는지 구구절절 말했다. 나의 말을 끝까지 묵묵히 들어준 강 코치의
입에서 나에게 돌아온 답변은 No! 였다.
강마에 : 캐슬 군씨의 뜻은 충분히 잘 알아 들었습니다만은 저는 뭐 삥 둘러서 말하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기 떄문에 저도 거두
절미 하고 대답 해 드리자면 캐슬 군씨와 같이 일할 마음이 전혀 없군요.
그냥 없던 일로 합시다. 아무리 설득을 하셔도 저의 생각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겁니다.
허허 어디요? 인도 라고 말 하셨습니까?? 아무리 제 상태가 궁핍 하다고 해서 제 능력을 가지고 그런
기본도 안되어 있고 실력도 안되는 한마디로 오합지졸 인................아 너무 감정에 치우쳐서 그만...
제가 실례를 하고 말았군요. 어쨌든 저는 제 뜻을 알아 듣게 잘 전달 한거 같으니까 더 말할 필요가 없을꺼
같군요. 그럼 먼저 일어 나지요.
2008 년 12 월 26 일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나는 강마에 코치를 어떻게는 구워 삼을려고 갖가지 묘안을 짜내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았다. 그냥 줄기차게 만나서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설득 하는 수밖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오늘도 그를 만나기 위해 학교로 찾아 갔다.
옆에서 내내 설득을 하였지만 그는 정말 매몰 차게 거절 하였다. 점점 나는 오기가 생겨서 어떻게 해서든 그를 붙잡고 싶었다.
꼭 그래야만 했다. 인도의 사상 첫 아시안컵 본선 진출을 위해 그의 능력은 절대적으로 필요 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은근히 화도 치밀어 올랐다. 나는 그의 승부욕을 자극 시켜보기로 했다. 이게 어쩌면 통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은연 중
들었다.
캐슬 군 : 향간에 떠도는 소문에 국내 몇 손가락에 꼽히는 기술코치라고 들었습니다만은 오늘 고등학생들 지도 하는거 보니
영~~~아닌 거 같군요. 그렇게 맨날 학생들 사기를 꺽으시니 뭐 경기력은 안봐도 다 보이네요~
강마에 : 남의 일에 괜히 끼어 들어서 사람 정신 사납게 만들지 마시고 좀 나가 주시겠습니까?? 훈련 하는데 약간 지장이
있는 거 같아서요.......
캐슬 군 : 말로만 듣고 이렇게 직접 와서 지도 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왔다는 생각이 확 드는게 후회 스럽네요
강마에 : 훈련에 방해가 되니 나가서 혼자 떠드시든지 노래를 하시든 하시고.....여긴 제가 맡은 팀의 훈련장이니 훈련 시간에
한해서는 운동장 이용이 안되니 잠시 비켜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만은....
나는 계속적으로 코치의 신경을 건들었고 승부욕을 자극 시켰다. 다음 초 까지 내가 인도로 돌아 가기전에 어떻게든
계약을 성사 시켜야만 했다. 이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2008 년 12 월 31 일
나는 줄기차게 그를 설득하고 자극 시킨 결과 극적으로 계약을 성사 시켰다. 그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 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나의 두 눈 똑똑히 각인 시켜 보일꺼라고 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확인 시켜 주겠다고
큰소리 쳤다. 나는 아주 프로 다운 행동 입니다. 라고 능청을 떨면서 바로 계약서를 꺼냈다.
며칠동안 승부욕을 자극 시킨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 속으론 환호 했지만. 겉으로는 태연 한 척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우여 곡절 끝에 나는 인도로 돌아가기 3일전에 극적으로 강마에 코치와 계약을 하였다. 이 사실을 인도 축구협회에
통보 하였고 인도 축구협회는 수락 해 주었다.
강마에 코치가 나와 계약 하기 전 몇가지 조건을 내 걸었다
첫번째는 기술적인 훈련 부분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권한을 달라고 하였고 두번째는 어떤 식으로 선수들을 훈련 할 지는
자기 만의 스타일을 고수 하겠다고 했다. 세번째는 마음에 드는 선수가 없거나 생각보다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되었을 시에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일단 나는 그와 계약을 하는게 급선무 였기 때문에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Yes라고
답했고 계약을 위한 세부적인 사항 들은 의논 하여 수준을 맞추었고 결국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2009 년 1 월 2 일
가족들과 새해를 첫 날을 보내고 나는 강마에 코치와 함께 인도로 출국 하였다.
인도로 가면서 내심 걱정이 되었다. 생각 보다 수준 이하 일텐데........흑..........
어찌 됐건 인도 선수들이 잘 따라 주어야 할텐데.....
올해 아시안컵 예선 첫 상대인 우즈베키스탄 전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야 겠다.
할 일이 태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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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경기가 없네요..ㅠㅠ 재미 없을 수도 있으세요...흑흑 일련의 과정이라 생각하시고 봐주세요...
조만간 일 때문에 어디 출장을 가야 해서 글 올리는게 좀 늦을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노력 할테니 이해해 주세요...^^
첫댓글 와.. 이란이 떨어지다니... ㅋㅋㅋㅋ 건필~!
이란 청소년은 약한가 봐요.ㅋ
중간에 우즈베키스탄 2009년1월14일아닌가요??? ㅋㅋㅋㅋㅋㅋ 건필하세요~~ 요즘 이거보는재미로 들어옴
아 1월 14일 이군요 내 정신 좀 봐 이래가지고 감독 해먹겠어?..ㅋ 지켜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인도네시아 쩌네요 ㅋㅋ 계속 잘 보고 있어요 ㅎㅎ 힘내세요~_~!!
인도네시아 미래는 밝다???ㅋㅋ
ㅎㅎㅎㅎㅎㅎㅎㅎ강마에 나오는 이야길 이렇게 재미나게 만들어주셔서 이번편 무척재미나게 보았습니다.
허접 하고 말도 안되는거 같지만 최대한 머리 쓰고 있어용...풉..
강마에 코치 ㅎㄷㄷ 기대되는데요 ㅋㅋ
님 감자전 무척 기대 됨.ㅋ
강마에 목소리가 들려요ㅋㅋㅋ
마지막 뭔 사진인지 점.. 엑박이 계속
엑박이있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