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패킹 / 임솔아
우리는 괜찮다고 생각했다가가 괜찮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괜찮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강을 바라보았다. 그냥 보기만 하는 돛단배가 강 한가운데에 떠 있었다. 정말 새까맣고 정말 아름다운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카페에 자리를 잡았을 때
친구는 모두에게 캐리어 한 개씩을 나누어 주었다.
게임을 하자고 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캐리어에 물건들을 담아 캐리어를 닫으면 된다.
모자를 담으면 오리발이 튀어나왔고 오리발을 뒤집어 넣으면 곰 인형의 엉덩이가 튀어나왔다. 가방을 싸는 동안에는 가방을 싸는 일만 생각할 수 있어서 우리는 가방을 싸고 또 가방을 쌌다. 이비사에 가기 위해 코란타에 가기 위해 보라보라에 가기 위해
손님은 점점 줄어들었다. 종업원이 다가와 폐점시간을 알려주었다.
한 사람을 남겨두고 우리는 돌아갔다. 잠깐 비가 왔다. 차창에 맺힌 물방울들이 부서지면서 점선이 되어갔다. 침묵을 깨고 누군가 말했다. 오늘은 우리가 함께 가방을 쌌다고. 여행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가방을 싸두었다고.
— 시집 『겟패킹』 (현대문학, 2020.3)
* 임솔아 시인(소설가)
1987년 대전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졸업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 2015년 문학동네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장편소설 『최선의 삶』,
2017년 신동엽문학상, 2020년 문지문학상, 2022년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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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현실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떠날 이유를 백 개는 가지고 있고, 여행은 그 백 개의 이유 모두를 달랠 수 있다.
여행은 우리가 잠시나마 현실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환상을 주고, 현실 밖으로 몸을 펴는 상상을 하게 한다.
가방을 싸는 순간, 우리는 이미 떠나는 자들이고 아무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방을 싸는 쾌감과 흥분이 여행의 에센스가 되기도 한다.
이 시에는 가방 싸는 일에 몰두하는 우리가 나온다.
친구들끼리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가방을 싸는 겟패킹이라는 게임을 한다.
실제 여행이 중요하겠지만, 게임만으로도 마음의 모든 거스러미를 달래고 잠재울 수 있다.
그래서 카페가 문 닫을 시간까지 게임을 즐긴 후 “여행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가방을 싸두었다고” 서로를 위로한다.
그 위로를 나누며 현실로 돌아간다.
그런데 모두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을 남겨두고” 돌아간다. 가방 싸기 게임은 게임에 불과하고 모두 담담히 현실로 복귀할 뿐인데,
복귀하지 않고 카페에 남아 있는 이 사람은 누굴까.
계속 가방을 싸고 싶어 하는 사람, 진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 현실에 영원히 복귀할 수 없는 사람,
우리는 이 사람을 마음으로 잘 알고 있다.
- 이수명 (시인)